소설리스트

108. (109/111)

108.

그 말을 들은 슈엘라의 입꼬리가 매끄러운 곡선을 그렸다.

“만인의 인기가 있으신 분이긴 하지. 비안도 반해 버린 거야? 어쩐지, 저번에 카델리온 가주가 어떤지 묻더라.”

“전 그분이 왜 인기가 있는지 정말 모르겠어요. 오히려 루카스 세르디한 님이 더 잘생기신 것 같은데…….”

미간을 찌푸리는 클로에의 표정에 슈엘라가 비웃듯이 한쪽 입꼬리만 끌어 올렸다.

“어머, 클로에. 이번 평기일 때 바구니에 대고 웃으셨던 일로 얼마나 많은 영애가 가슴을 붙잡고 쓰러진 줄 아니? 원래 차가운 미남이 사르르 풀릴 때 심장을 더 저격하는 법이란다.”

“내 여자에게만 따뜻한 사람, 이라는 컨셉인가요? 슈엘라?”

“말을 들어 보니까 컨셉이 아니라 진짜인 것 같던데. 바구니 안에 있었다는 게 새끼 고양이긴 하지만. 하필 그것도 검은 고양이라서 분위기가 한참 어수선해졌지.”

클로에의 머릿속에 검은 고양이였던 아리엘이 스쳐 지나갔다.

‘설마.’

힐긋 아리엘 쪽을 쳐다봤던 클로에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 아니겠지.

“…그렇군요.”

클로에와 슈엘라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듣지도 않고 자기만의 생각에 빠져 있던 아리엘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클로에, 슈엘라. 내 친구 이야기인데…….”

“네. 상단주님.”

“어떤 수인이 내 친구한테 넌지시 잘해 주더래. 막 이것저것 사 주고, 밥도 챙겨 주고, 상처도 치료해 주고…….”

슈엘라가 의미심장한 눈을 빛내며 책상 위에 있던 부채를 착, 펼쳤다.

“비안 잡아. 돈 많은 남자는 콱, 잡아먹는 거야.”

“슈엘라, 입 좀 다물고 있어 주실 수 있으시겠어요?”

클로에가 스산하게 웃자, 그녀가 익숙하다는 듯이 빙긋 웃었다.

“미안. 비안, 계속 말해 줘.”

“근데 심지어 스스럼없이 은근슬쩍 손끝만 살짝 스친다던가, 뒤에서 안는다던가 한다는 거야.”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짓는 아리엘이 심각한 말투로 말했다.

“그러다가 친구가 쓰러져서 인공호흡을 해 준 거지. 그 친구한테 잘해 주는 수인이. 근데 그 수인은 이후에도 계속 똑같은 생활을 하는데, 내 친구만 그 얼굴이 계속 떠오르더래. 막 허공에 둥둥 떠다니고.”

방 안에 탁, 하고 부채를 내려놓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이건 쌍방이네. 서로 좋아하는 거야.”

“슈엘라, 비안이 더 아깝지 않아요?”

클로에의 말투가 무언가 잘못 삼킨 것처럼 딱딱하게 변했다.

저번에 봤던 카델리온 가주는 어딘가 음험한 구석이 있어 보였다. 유리알 구르듯이 매끄럽게 휘어지는 가면 같은 미소는 티 없이 깨끗하신 상단주님이랑 어울리지 않았다.

얼굴만 번드르르한 북부의 수장보다는 아리엘 님이 훨씬 아까웠다.

클로에가 누구 하나 죽일 표정으로 슈엘라를 바라보았다. 그 둘을 바라보고 있던 아리엘은 당혹스러운 말투로 중얼거렸다.

“얘들아, 내 친구 얘기라니까……?”

으르렁거리는 개와 뺙뺙대는 새 사이에 낀 불쌍한 아리엘은 황망히 그 광경을 쳐다보았다.

***

“오…….”

진짜 잘 나왔다.

직접 보게 된 외관은 생각보다 훨씬 깔끔하고 아름다웠다. 클로에의 말대로 푸른 스카프를 건물에다가 두른 것 같은 모양새였다.

바닥에다가는 마정석을 박아 놔 빛이 벽을 타고 위로 올라가도록 해 놨으니, 밤에는 훨씬 더 예쁘겠지.

일부러 클로에를 카델리온에 보내서 대량의 마정석을 가져온 이유였다.

“어서오십시오.”

“안녕하십니까, 상단주님.”

정장을 입은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면서 매장 안으로 들어갔다.

어디 대기업의 회장이 된 기분이었다.

직원들의 정장에 달린 명찰 옆에는 물방울 모양의 배지가 있었다.

펠릭스를 상징하는 물방울 모양의 배지였다.

매장 안쪽은 중간이 위로 뚫려 있어서 1, 2층이 시원하게 보이는 구조였다. 가운데 부분에는 1, 2층을 이어주는 원형 계단이 있었다. 부드러운 곡선이 우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그 주위를 한 번 훑어본 내가 벽면 중간중간에 걸린 그림을 확인했다.

“그림들 다 알맞게 배치한 거 맞지?”

펠릭스와 잘 어울리면서도 매장 내 분위기에 묻히지 않는 그림들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이곳의 포인트였다.

다양한 조형물과 그림들.

시대에 따른 인문 사회적인 메시지를 그림으로 표현해 고급스럽고 격식 있는 브랜드와 제품 이미지를 돋보이도록 노력했다.

매장 자체가 전시회장처럼 보이는 것.

그것이 내가 노린 것이었다.

“이번 ‘행운’이라는 주제를 통해 기적, 일상, 노력 같은 여러 테마를 잡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클로에가 노트를 보고 꼼꼼히 체크 표시를 해나갔다.

“공간의 구성 및 배치, 색채 조화, 마정석이 주는 조명 효과, 동선 등 다양한 것을 고려해 기획하였으며, 상단의 정체성을 보여 주기 위해 이 공간 자체를 구체적인 형태를 갖춘 예술 작품으로 표현하기 위해 힘썼다고 나무아 바나아 님께서 꼭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확실히 일을 잘하는 클로에다웠다.

나무아 바나아의 실력도 녹슬지 않았고.

미셸과 나무아 바나아가 만들어 낸 결과물은 지금 이 시대에 기획한 것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안에 있는 그림에 흥미를 보이는 고객들이 있으면 전시회장처럼 그림을 팔아도 돼.”

“네. 전달해 놓도록 하겠습니다.”

고아원 원장의 기준에 충족되는 그림을 그리지 못했다고 갇혀 있었던 고아원의 아이들이 생각났다.

‘절대 그런 일이 생겨선 안 돼.’

새로운 예술가들을 지원하고 널리 알리고 싶었다.

“현재는 이 건물이 나무아 바나아 님과 ‘미셸’이라는 신예 건축가와 협업을 통해 건축된 것이 알려져, 귀족 사회에서 화자가 되고 있습니다. 여태까지 어떤 작업을 하지 않는지 적혀 있으면 좋을 듯합니다. 나무아 바나아님이셨으니까요.”

이런 식으로 나아가면 됐다.

“굳게 닫혀 있던 이 건물이 언제 여는지 궁금해하는 귀족들도 많다고 합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전시회장을 꼼꼼히 살핀 나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괜찮네. 보완할 점 있으면 보완하고, 개장일까지 1주일 남았으니까.”

기대감인지, 긴장인지 모를 감정으로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

“아리엘, 이게 뭔지 알아?”

“뭔데?”

“저 건물.”

평민들이 다니는 저잣거리임에도 불구하고 에드윌 로워드 12에 있는 건물들이 훤히 보였다. 귀족나리들의 얘기를 즐겨 하는 평민들의 입에도 오르락내리락했다.

펠릭스 건물을 바라본 나는 어색한 미소를 입꼬리에 올렸다.

“그렇게. 저게 뭘까? 저 건물의 정체가 뭐냐고 신문에 많이 나오던데.”

그러자 이안이 낮은 목소리로 지나가듯이 말했다.

“……정말 탐나네.”

새로운 광물의 발견부터 대륙에서 꽤 영향력이 있다는 사람들만 모인 연회에, 첫 구매자인 리카 세드리한의 펠릭스와 저 건물까지.

자칫하면 사람들의 관심이 쉽게 사라지기 좋은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펠릭스 상단은 쉴 틈 없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분명, 리카 세드리한보다도 높은 금액을 써서 낸 사람이 있을 텐데도 리카 세드리한에게 펠릭스를 넘긴 것이겠지.’

리카 세드리한과 세드리한 기사단장인 다일 로커가 사귄다는 것을 알아낸 것부터, 그들이 펠릭스를 어떻게 사용할지 추측해서 넘긴 것까지.

따로따로 떨어져 있는 정보를 모아서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 내는, 갖고 싶은 인재였다.

“이안 여기 가 보자!”

아리엘이 이안의 손을 붙잡고 돼지가 그려져 있는 식당을 가리켰다.

식당 안에 들어가니, 바삭바삭하게 튀겨지고 있는 돼지고기 냄새가 식당 안을 감싸고 있었다.

‘맛있겠다.’

돼지고기 튀김 2인분을 시킨 아리엘은 꼬르륵 소리를 참으며 기다렸다. 메뉴도 돼지고기 튀김 하나밖에 없는 것이 맛집인 게 분명했다.

아니, 솔직히 뭐든 튀기면 맛있게 변한다.

신발도 튀기면 맛있다 라는 말이 그냥 튀어나올 리가 없지 않은가.

“2인분 나왔습니다.”

보기만 해도 바사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포크를 들어 곧장 돼지고기 튀김을 향해 뻗었다.

“……?”

“아리엘, 안 돼.”

그러나 곧장 이안에게 제지당했다.

‘내 튀김…….’

돈을 안 갖고 나왔으니, 엄연히 말하자면 ‘내 튀김’이 아니긴 했다.

아리엘이 솜사탕을 씻은 너구리 같은 표정으로 이안을 바라보았다.

“며칠 전에 검술훈련 땡땡이쳤잖아.”

“…….”

그건 펠릭스 매장을 꼼꼼히 둘러보느라 늦은 거였는데!

딱히 할 말이 없는 내가 축 처져 조용히 앉아 있었다.

이안이 보란 듯이 튀김 하나를 찍어 입 안에 집어넣었다. 튀김 가루가 부서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약속은 약속이니까…….’

문득 며칠 전에 검술훈련을 하루 미루는 대신 땡땡이치면 벌 받겠다는 약속을 한 내가 원망스러워졌다.

“이안 맛 괜찮아?”

태생 귀족이라서 이런 건 안 맞을 줄 알았는데.

알면 알수록 의외였다. 저번에 샀던 닭꼬치도 잘 먹고.

나는 미련이 뚝뚝 흐르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한 입만 먹고 싶다.’

“자, 먹어.”

내 앞으로 들이 밀어진 튀김에 눈을 휘둥그레 뜨고 바라봤다.

“밥은 굶으면 안 되니까.”

그치. 밥은 굶으면 안 되지.

나는 홀린 듯이 튀김 쪽으로 입을 가져다 댔다.

결국 배가 빵빵할 때까지 먹어 치웠다.

“어?”

식당에서 나서려는 내 발길이 잠시 멈췄다.

검은 고양이로 된 도자기 인형이다.

앞발을 대롱대롱 흔들며 앉아 있는 게 어딘가 동질감이 느껴졌다. 왜지.

내가 응시하고 있는 쪽으로 눈길을 던진 이안이 고양이를 가리키며 물었다.

“이거, 어…….”

“어이쿠! 죄송합니다, 손님! 용서해 주십시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부리나케 달려온 주방장이 땅에 박을 듯이 고개를 숙였다.

“사특한 것을 잠시 내놓은 제가,”

“그게 아니라. 이 고양이 도자기 인형 어디서 파느냐고 물어보려고 했던 건데.”

눈을 둥글게 휜 이안이 검은 고양이 인형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러자 다른 쪽으로 놀란 주방장의 눈이 훨씬 커졌다.

“제, 제가 만든 겁니다…! 혹시 하얀색 고양이가 필요하시다면 그냥 드릴게요! 고양이 말고도, 백호나 표범이나 늑대 같은 여러 동물도 갖고만 싶으시다면…….”

“아니, 값을 지불하도록 하겠습니다.”

단호하게 잘라낸 이안이 주방장이 갖고 온 고양이를 보며 잠시 침묵했다.

“……근데 검은 고양이는 없는 건가요?”

“그, 그건 잘못 만들어진 거라 다 폐기 처분했…….”

“단 하나도 안 남기고요?”

이안이 지그시 남자를 바라보자 살며시 눈치를 본 그가 주머니에서 도자기 인형 하나를 꺼냈다.

검은 고양이 인형이었다.

“마음에 드네요. 그럼 이거,”

“옆에 있는 하얀색 백호 인형도 같이 주실 수 있나요?”

“그럼. 여기.”

“허억! 1골드…라니요…. 저 같은 사람에겐 너무 과분한 돈입니다.”

주방장이 덜덜 떨리는 손으로 인형을 건넸다. 백호 인형과 고양이 인형을 쥔 나는 식당을 나섰다.

“우리 이제 어디 갈 거야?”

갑자기 표정이 진지해진 이안이 나를 바라봤다. 그래 봤자 검은색 고양이 인형이 들려있어서 별로 진지해 보이지도 않았지만.

“지금 치안대 감옥에 히아트 가(家) 가주가 잡혀 있대.”

그가 별로 좋지 않은 표정으로 고양이 인형을 주머니 안에 넣었다. 방금까지의 가벼운 분위기와 딴판이었다.

“만나러 갈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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