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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딜러가 셔플한 카드를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이안 몰래 팔뚝을 한 번 꼬집은 나는 졸음에 잠긴 눈으로 상황을 관찰했다.

‘딜러 쪽은 5.’

가장 왼쪽 플레이어 카드는 9, 7.

‘그다음 플레이어는 8, 2.’

내 오른쪽 플레이어는 5랑 10.

나는 시선을 힐끗 내려 패를 내려다봤다.

‘2, 2’

카드를 내려놓기 무섭게 내가 검지와 중지를 바닥에 대고 가위 모양으로 펼쳤다.

“스필릿.”

내 카드를 각각 하나씩 나눈 딜러가 입을 열었다.

“베팅,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3천만 골드.”

“5천만 골드.”

“8천만 골드.”

직원이 불러서 따로 안내한 곳이라서 그런지 시작 단위가 천만 골드였다. 잠시 고민하느라 침묵했던 내가 입을 열었다.

“1억 골드. 그 옆에도 1억 골드.”

내가 베팅하는 곳 위로 칩을 모조리 쏟아부었다. 각각 다른 가격을 뜻하는 색색의 칩들이 배팅하는 곳 위로 가지런히 올라갔다. 칩을 다 밀어 넣은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올인.”

‘빨리 집에 가고 싶어.’

반드시 이번 한 판에 끝을 봐야 한다.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자칫하다간 이곳 숙박 시설에서 머물겠어.’

이곳 숙박 시설이 아니라, 카델리온 집이 너무나 그리웠다.

나를 반겨 주는 포근한 베개와 이불이.

‘자야 해…….’

많이 버틴다고 버텼지만 졸음에 빠지기 직전이었다.

분명 전생에서는 새벽에 자도 거뜬했는데.

이게 다 키가 커야 한다는 등의 이유로 항상 일찍 재우는 호랑이 때문이다.

‘몸이 길들어져 버린 거지.’

슬프게도 내 성장판은 닫힌 지 오래인데.

베팅이 끝나자, 딜러가 스필릿한 카드 중 왼쪽에 카드를 한 장 더 내려놓았다.

스필릿한 다른 카드를 제외하면 내 카드는 2와 9.

21까지 남은 숫자 10.

“더블 다운.”

카드를 한 장만 받고 내건 돈의 2배를 얻는다.

더블 다운을 외치자마자, 옆에 있는 직원이 웃으면서 1억 골드 상당의 칩과 함께 그것을 빌려 갔다는 증서를 내려놓았다.

증서는 빌린 1억 골드와 이자 20% 즉, 2,000만 골드를 더 내겠다는 차용증이었다.

‘이런 식으로도 털어먹는구나.’

예상했던 바였다.

신속하게 사인을 마친 받은 칩을 내가 배팅하는 곳에 다 밀어 넣자마자, 딜러가 내 앞에 내려놓은 마지막 카드 한 장을 뒤집었다.

스페이드 J.

숫자 10.

블랙잭이었다.

옆의 스필릿한 카드 중 오른쪽 카드 위에 딜러가 새로운 카드 한 장을 올려놓았다.

다이아 5였다.

‘2와 5.’

총합 7.

“히트.”

카드가 뒤집히자마자 내가 책상을 두어 번 두드렸다.

‘스페이드 7.’

내 시선이 딜러의 손을 따라갔다.

‘클로버 6.’

총합 20.

나쁘지 않았다.

소파 뒤에 기댄 나는 다른 플레이어들이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히트.”

하트 5, 다이아 10이 놓여 있는 플레이어 앞에 카드 두 장이 올려졌다.

하트 5, 다이아 10, 다이아 3, 클로버 6.

총합 24.

버스트였다.

‘거기선 스탠드를 했어야지.’

나는 마음속으로 혀를 찼다.

“더블 다운.”

“더블 다운.”

나머지 두 플레이어의 차례가 끝나자 딜러가 자기 카드 위로 두 개의 카드를 더 올려놓았다.

다이아 5, 스페이드 7, 클로버 1, 클로버 5.

총합 18.

딜러의 패가 뒤집히자 곳곳에서 칩을 수거해 가거나 돌려주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내 앞에 수북이 쌓인 칩들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돈 벌기가 이렇게 쉽나?’

빌린 1억 골드 상당의 칩과 추가로 2천만 골드의 칩을 주고 나서도 원래 있던 칩보다 한참 많이 쌓여 있었다.

유독 내 칩들이 영롱해 보이는 이유는 왜일까.

알고 보니 나 이런 거에 잘 맞는 거일 수도.

그때 가까이 다가온 이안이 작게 속삭였다.

“주인님, 눈동자가 맛이 갔는데.”

“멀쩡해.”

“아무리 그래도 도박은 안 돼.”

그게 도박장에서 할 말이냐.

순간적으로 뜨끔했다.

사실 지금하고 있는 블랙잭은 플레이어가 카지노와 비슷하게 승률을 높일 수 있는 몇 안 되는 게임이었다. 완전히 확률 싸움이니까.

그렇게 플레이어 승률을 50% 넘게 올릴 수 있는 게임은 이 게임이 거의 유일했다.

즉, 적당히 계산해 가면서 플레이하면 이길 수 있는 게임이라는 것이었다.

게다가 전생에서는 이 게임으로 카지노를 털어먹는 소설까지 나왔을 정도로 블랙잭 필승법에 대한 정보가 넘쳐났었다.

전생의 나 같은 경우도 소설을 읽고 관심이 생겨 찾아보게 된 거니까.

블랙잭에서 플레이어의 승률을 올리는 법은 간단했다.

플레이어와 딜러의 카드 상황에 따라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명시되어 있는 308가지 경우만 다 외우고, 카드 카운팅을 해서 베팅액을 정하면 된다.

심지어 카드 카운팅 방법도 쉽다.

숫자 2부터 6까지는 1, 7부터 9까지는 0, 10과 a는 -1로 취급해 현재 나와 있는 카드를 다 더해 주면 된다.

그리고 사용하는 덱의 수에 따라서 카운팅 숫자를 조절해 주면 되고.

이곳은 여섯 덱을 사용하니까 계산해서 도출된 카운팅 숫자에다가 남은 덱의 수 5를 나누어 주면 됐다.

‘전생에서 재미 삼아 외운 게 이런데 쓰일 줄이야.’

정말 아주 유용하게 쓰이고 있었다.

그때 직원이 와인병과 잔을 들고 옆으로 다가왔다.

“서비스로 와인 한잔 드실 생각 없으신가요?”

어, 저 와인병 익숙한데.

와인병을 힐끗 쳐다본 내가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톡톡 치며 옆에 놔두고 가란 신호를 보내자, 눈치 빠른 직원이 와인병과 잔을 놓아두고 물러났다.

‘아, 이거 그거다.’

이걸 내가 모를 수가 없지. 고아원에서 아이들이 하얀 가루를 넣고 있던 와인병이 이 와인병이었으니까.

같은 생각을 한 건지, 이안의 눈이 한동안 와인병에 머물더니 곧이어 살짝 휘어졌다.

올라간 그의 입꼬리에 흥미로움이 가득 담긴 것이 보였다.

아, 저 미소는 이곳과 연관된 사람들을 어떻게 조질지 생각할 때 짓는 그 미소인데.

“한 판 더 진행하시겠습니까?”

이안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머리를 위아래로 가볍게 흔들자, 카드를 모은 딜러가 패를 플레이어들에게 다시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가장 오른쪽 수인의 패, 클로버 2,클로버 5.

가장 왼쪽 수인의 패, 다이아 6, 다이아 7.

‘그다음 내 옆쪽은 하트 3, 클로버 8.’

내 패는…….

‘스페이드 3, 하트 4.’

마지막 한 장만 공개된 딜러의 카드는 3이었다.

카드 카운팅을 하면 총 +5, 덱의 수로 나눠서 카운팅 수를 조절하면 +1.

좋은 패가 뜰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올인.”

나는 또다시 칩들을 밀어 넣었다. 옆에서 날 미심쩍은 눈초리로 바라보는 이안의 시선을 필사적으로 무시하며 입을 열었다.

“히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딜러가 카드 두 장을 내 앞으로 가져와 뒤집었다.

클로버 6, 스페이드 8.

‘그리고 원래 있던 스페이드 3, 하트 4.’

총합 21.

또다시 블랙잭이었다.

그 어렵다는 승률 100%를 기록한 나는 받은 칩들을 모두 가방 안에 하나씩 담기 시작했다.

직원들의 미심쩍은 눈초리가 보였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이미 자기들이 이상한 거 가져왔는지 아닌지 다 검사해 놓고선 뭘.

어차피 내가 사용한 건 카드 카운팅과 약간의 지식밖에 없었기 때문에 문제 될 것도 없었다.

“나가자.”

아무래도 너무 졸려서 자러 가야겠어.

가방을 싸고 턱을 까닥이자, 이안이 의외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다.

설마, 진짜 나를 도박꾼으로 본 건 아니겠지.

칩들을 정리하고 일어서려고 하자, 자기들끼리 웅성거리며 얘기하던 직원이 허겁지겁 다가왔다.

“이곳의 주인님께서 뵙고 싶어 하십니다. 사장실로 안내해 드려도 될까요?”

기다리고 기다리던 그 한 마디에, 졸음이 와장창 달아났다.

어깨에 달린 보석인 척하는 페로몬석을 살짝 만진 내가 의자를 드르륵 밀고 일어났다.

‘그래, 털어먹을 거 끝까지 털어먹어야지.’

아무 말 없이 안내만 하던 직원이 이윽고 커다란 문 앞에서 발을 멈추곤 빙글 웃었다.

“뒤에 있는 노예는 같이 들어갈 수 없으며, 저 직원을 따라가 다른 방에서 대기하면 될 것 같습니다.”

고개를 돌려 자기는 괜찮다는 그녀의 눈길을 확인한 이안은 다가온 직원을 향해 발을 돌렸다.

***

한편 그 시간, 이안의 그림자인 에인트는 카지노 곳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최대한 조용히, 많은 문서를 털기 위해.

에인트의 일원인 마리와 레아 또한 카지노의 후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아리엘이 들어간 곳과는 달리, 같은 곳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어둑했다.

“레아, 벽 한번 만져 보십시오.”

“어머, 가벽이네요.”

마지막 가벽이겠죠?

가볍게 중얼거린 레아가 익숙하게 가벽을 향해 주로 쓰는 곤봉을 내리치자 가벽이 큰 소리 없이 스르륵 무너졌다.

남들의 눈을 피해 한두 번 건물을 부숴 본 실력이 아니었다.

마리와 레아는 아무런 표정 없이 이어진 복도를 향해 걸어갔다.

걸어간지 얼마 되지 않아, 마지막 문이 나타났다.

익숙하게 문을 따낸 마리의 앞에 펼쳐진 상황을 본 레아가 씩 웃으며 곤봉을 돌렸다. 철로 만들어진 무거운 곤봉이 그녀의 손안에서 맥없이 돌아갔다.

“안녕, 꼬마 신사 숙녀 여러분들?”

그 안에는 아리엘이 찾던, 고아원 다락방의 어린아이들이 서로를 껴안은 상태로 눈을 댕그랗게 뜨고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곤봉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레아의 모습과 아이들을 힐끗 본 마리가 한숨을 쉬었다.

“레아.”

“네. 선배님.”

“닥치십시오.”

말을 마친 그녀가 뚜벅뚜벅 걸어가 아이들을 가둔 철창을 따곤 문을 열었다.

***

아리엘은 자기 앞에 있는 수인을 바라봤다.

‘보기 싫게 자란 짧은 콧수염, 어디서 본 것 같은데.’

분명히 어디선가 본 익숙한 얼굴이었다.

‘평기일 파티에서 본 건 아닌 것 같고…….’

아! 저번에 이안이 가신들이랑 회의했을 때!

그때 본 얼굴이었다.

‘이름이… 모르타 가주였나?’

이안이 카드 섞기 좋은 손이라며 조롱 섞인 말을 내뱉었는데.

이 카지노의 주인이었을 줄이야.

새삼스레 낯익은 얼굴을 다시 바라보다 책상으로 시선을 내렸다.

‘책상 위에 있는 게……. 와인 잔이랑 꽃병, 두꺼운 책 한 권 정도인가.’

저기에 책은 왜 있는 거야.

“모든 게임에서 엄청난 돈을 벌어들인 분이 있다 해서 궁금해서 불렀는데…….”

그녀의 옆에 다가온 모르타가 씩 웃었다.

“아름다운 숙녀분이시군요.”

‘아름다운’이라니, 이안이 들으면 콧방귀를 낄 만한 말이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숙녀분을 뵙게 될 줄은 몰랐는데.”

그가 팔을 쓸어 올리며 자신의 페로몬을 진득하게 뿌렸다.

농밀한 성적인 의미가 담긴 것이었다.

‘이 방 안에서 잠긴 문 정도는 딸 수 있지 않을까.’

잠시 기절시킨 다음, 문 따고 나가버릴까.

아니야. 조금만 더 참아 보자.

개미들이 팔에 스쳐 지나가는 더러운 기분이었지만, 나는 꼿꼿하게 앉아있었다.

“아름다운 것을 매일 보는 분께서 아름답다고 해 주시니, 참으로 영광입니다.”

저절로 미간이 찌푸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살짝 입꼬리를 올린 것은 덤이었다. 나는 힐끗거리며 그의 손이 쓸고 지나간 내 어깨를 쳐다봤다. 직접적으로 돌에 주입되는 그의 페로몬에 페로몬석이 천천히 색깔이 바뀌고 있었다.

“여기까지 온 것도 인연인데, 와인 한잔 어떻습니까.”

VIP룸에서 직원이 건넨 와인과 똑같은 것이었다.

가볍게 고개를 끄덕인 나는 페로몬석의 색깔을 확인하기 위해 힐끗 어깨를 다시 바라봤다.

‘드디어!’

마음 놓고 기절시킬 수 있어!

페로몬석 안에 그의 페로몬이 완벽하게 담긴 것을 확인하기가 무섭게 책상에서 책을 집었다.

“영애…? 왜…….”

그리곤 질 나쁜 웃음을 짓는 모르타 가주의 뒷목을 온 힘을 다해 가격했다.

뻑!!

‘나이스샷.’

큰 소리와 함께 모르타 가주의 몸이 스르륵 책상 위로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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