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1. (102/111)

101.

“이 카지노는…….”

아리엘은 앞에서 설명을 하고 있는 목소리에 신경을 두지 않고서 옆에 있는 수인만을 멍하니 바라봤다.

내가 어쩌다가 카지노까지 오게 된 거지.

나는 평소와 달리 까만 이안의 머리를 보며 기억을 되짚었다.

***

“아리엘, 아리엘도 카지노 같이 가야겠네.”

“……나도?”

저게 뭔 소리지.

마음 같아선 혼자 쳐들어가서 찢어 버리고 싶긴 했다. 당연히 불가능하겠지만.

‘혼자 박살 내려던 게 아니었나.’

저절로 눈동자가 가느다래졌다.

도대체 무슨 의도지?

쟤 성격상 누굴 데려가는 게 이상한데.

그러자 옆에서 피식, 하고 바람 새는 웃음소리가 났다.

“시몬드 가에 복수한다며?”

“근데?”

“연습이라고 생각해.”

한없이 가벼운 이안의 어조에 내가 입을 떡 벌렸다.

“누가 연습 삼아 카지노를 터는데.”

물론 나야 좋지만.

마음 같아선 우리 동글동글한 미셸을 괴롭힌 수인들을 끝장내고 싶었다.

“카델리온은 연습 삼아 전쟁에도 나가는데, 뭘. 다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거야 아리엘.”

“전쟁에 나가면 그냥 피와 살이 분리되지 않을까.”

“그럼 안타깝게 된 거지.”

아, 여긴 약육강식의 세계였지.

‘새삼스럽게.’

예전에는 누구보다 이 세계가 약육강식의 법칙에 따라 돌아간다는 것을 잘 알았던 나였다.

“그럼 아리엘, 고양이 모습으로 갈래? 다른 사람들에겐 나만의 고양이…….”

“거기 동물 반입 금지 아니야?”

수인들이 동물로 변한 후에 들어올 수 있어서 엄격하게 잡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러자 단정했던 그의 입매가 비뚤게 변했다.

“아리엘이 어떻게 알아?”

아. 실수.

“……그냥 책으로 봤어.”

요즘 음지의 일을 많이 하고 있는 슈엘라가 이것저것 많이 알려주는 바람에 너무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아리엘, 도대체 요즘 무슨 책을 보고 있는 거야. 저번에는 ‘도련님과의 은밀한 하룻…….’”

“이안! 그건 언제 본 거야!”

아리엘이 황급하게 두 손으로 이안의 입을 막았다.

그녀의 손을 아프지 않게 깨문 이안이 입을 막고 있는 손 틈이 벌어지자 그 사이로 페로몬을 흘려 넣었다. 그녀의 손가락 사이에 짙은 황금빛 기운이 머물렀다가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그가 만족스러운 눈웃음을 지어냈다.

푸른 눈매가 휘영청 휘어지는 것을 본 아리엘의 얼굴이 화르륵 불타올랐다.

아무래도 요즘 저 백호가 자신을 꼬시려고 작정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세드리한 저택에서도 그렇고, 리카 세드리한이랑 같이 갔던 레스토랑에서도 그렇고.

‘후우…….’

아무래도 심장이 빨리 뛰는 게 죽을 때가 일찍 왔나 보다.

‘아니야. 이건 자연스러운 섭리야. 잘생긴 걸 보면 심장이 빨리 뛰는 아주 지극히 당연한 반응이라고.’

열심히 자기 세뇌를 마친 나는 푸른 눈과 마주치기 무섭게 다시 고개를 내렸다.

왜 이러지. 내 뇌가 미쳤나.

요즘 피곤해서 제 기능을 못 하는 게 분명했다.

귀가 붉게 물들어 있는 것을 본 이안이 낮은 웃음을 흘리며 속삭였다.

“왜, 이 방엔 우리 둘밖에 없는데.”

그, 둘만 있는 방에서 그 말을 하는 게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거야? 백호야?

‘물렀거라, 음란 마귀야, 훠이훠이.’

나는 열심히 폭포 물줄기가 떨어지는 상상을 했다.

“그럼 아리엘이 내 주인하면 되겠네.”

“응??? 뭐???”

그리고 폭포의 물줄기가 떨어지는 상상은 백호의 입 안에서 흘러나온 말에 의해 와장창 깨져 버렸다.

“원래 카디스 카지노는 노예랑 같이 가는 걸로 유명해.”

이안이 매끄럽게 입꼬리를 올리며 조곤조곤 설명을 계속해 나갔다. 새빨간 사과처럼 붉어진 아리엘을 담고 있는 이안의 눈동자에 만족스러움이 묻어났다.

“노예랑 같이 온 귀족들을 따로 취급하는 방도 만들 정도니까. 무작정 쳐들어가면 서류를 다 불태워 버릴 테니까, 카디스 카지노 이면에 뭐가 있는지 알려면 필히 같이 가야 할걸.”

“뭐???”

뭐가 문제냐는 듯 가증스럽게 갸웃거리는 그의 모습에서 즐거움이 묻어났다.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즐거워하다니, 악취미가 따로 없었다.

그러나 이안의 입에서 나온 연이은 폭탄에 정신 차릴 틈이 없는 아리엘은 혼자 심각한 생각에 빠지기 바빴다.

‘근데 내가 왜 이안의 주인인 거지.’

오히려 우리의 관계를 따지면,

“그럼, 네가 내 주인하는 게…….”

맞지 않나?

그러자 이안이 감당할 수 있겠냐는 듯 입매를 비뚤게 올렸다.

“정말?”

“…….”

아니 애초에 내가 이걸 왜 생각,

“주인님.”

그리고 이어진 말에 하고 있던 생각들이 깡그리 사라졌다.

***

“……저기 듣고 계십니까. 숙녀분?”

그제야 생각에서 빠져나온 아리엘이 앞을 바라봤다.

‘아. 방금 날 부르고 뭔갈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지.’

아리엘이 물끄러미 쳐다보자 얼굴이 붉게 익은 경비원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수인이 기분 나쁘게 입꼬리를 올리며 다른 경비원이 하던 이야기를 계속했다.

“…돈은 칩으로 환전하시면 됩니다.”

‘먼저 잡는 사람이 임자다. 임마.’

옆에서 홍당무가 된 경비원을 팔꿈치로 툭 친, 그가 메스꺼운 눈깔을 뜨고 그녀의 팔을 잡기 위해 손을 내밀었다.

“그럼 환전소까지 안내해 드릴까요, 영애분?”

이안의 입에서 나온 주인, 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는지 물건을 취급하는 것처럼 그는 안중에도 없는 태도였다.

그때였다.

우드득.

‘우드득?’

아리엘이 놀라 소리의 근원을 쳐다보았다. 그곳엔 피가 안 통하는 것처럼 새하얘진 손목을 비틀고 있는 까만 장갑이 보였다.

어느새 까만색 장갑을 끼고 경비병의 손목을 붙잡은 이안이 화사하게 웃고 있었다.

‘이래서 저런 옷 안 입히려고 한 건데.’

입구를 지키는 경비병마저 이러한데 안으로 들어가면 얼마나 많은 날파리들이 꼬일지.

“카지노에 가는데 목 끝까지 단추를 잠글 수 없잖아요!”

“아리엘 님, 진짜 예쁘십니다. …같은 여자가 봐도 반할 정도로.”

“마리 님, 저는 이미 반한 것 같은데……. 이건 꼭! 입고 가야 해요.”

이 드레스를 입고 가야 한다는 마리와 레아의 목소리를 떠올린 이안이 비뚜름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리엘도 만족스러워하는 표정을 짓길래 놔뒀지만.

지금 아리엘이 입고 있는 옷은 둥근 어깨뼈를 시스루 느낌으로 감싸면서 드레스 라인은 몸에 달라붙다가 퍼지는 검은색 드레스였다.

‘다 죽이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득.

한 번 더 경비병의 손목을 비틀은 이안이 서늘한 눈으로 들고 있던 것을 놓았다. 그러자 앞에 있는 팔이 힘없이 축 내려갔다.

‘당장 저 시선도 싫은데, 어떡하지.’

끝까지 참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자신의 오판이었다.

그래도 그 모습을 보고도 살아있을 수인은 그뿐일 테니까.

그리고 시선을 옮겨 자신의 망막에 아리엘을 담은 이안이 더할 나위 없이 예쁘게 웃었다. 붉은 눈매가 매혹적으로 접혔다.

“나만 바라봐 줘. 주인님.”

그가 그녀의 손을 잡아서 자신의 볼에 갖다 댔다.

카온 가(家) 자제의 도움을 받아 눈과 머리 색깔이 원래의 모습과 모두 반대로 변한 저와 달리, 그의 망막에 비친 아리엘의 모습은 가발만 써서 새하얀 머리에 신비로운 연둣빛 눈을 하고 있었다. 새하얀 머리를 올려 묶은 모습은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숨이 턱 막히게 했다.

아리엘은 자신의 손에 대진 볼을 느릿하게 쓰다듬었다. 그녀의 손가락이 점점 그의 볼을 부드럽게 쓸어내리자 이안이 갸르릉 거리며 기분 좋은 듯 소리를 내었다.

그를 홀린 듯이 바라보다가 정신을 차린 아리엘이 경비원을 향해 눈을 새초롬히 뜨며 물었다.

“이제 들어가도 될까? 빨리 카드 게임이 하고 싶은데.”

붉은 그의 눈동자가 앞에 있는 경비원들을 향했다. 이안은 싸늘한 표정으로 경비원의 얼굴을 머릿속에 새겼다.

“네넵!”

그러나 문 앞의 경비원들은 어딘가 이상함도 느끼지 못한 채 길을 비켜섰다.

카지노 안은 생각보다 훨씬 넓었다.

환전소에서 칩을 교환해 온 아리엘은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우와.’

생각보다 게임의 종류도 다양하고, 재밌는 것들도 엄청 많아 보였다.

“주인님, 책에서 본 게임이라도 있어?”

“근즌한 측이었드느까.(건전한 책이었다니까.)”

입을 꽉 물고 중얼거린 그녀가 그를 살짝 째려본 후에 보이는 아무 테이블에 가서 칩이 들어 있는 가방을 내려놓았다.

“이 사람이다!”

그때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양복을 입은 사람들이 주위를 빙 둘러쌌다.

‘원래 이렇게 시끄럽게 처리하지 않을 텐데.’

잠시 눈이 가늘어진 아리엘이 이안을 향해 고개를 틀었다. 이런 상황이 올 줄 안 것 같이, 그는 생글생글 웃으며 그녀를 쳐다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쯧, 혓바닥을 작게 찬 아리엘이 심기가 불편한 것처럼 미간을 찡그렸다.

“단지 게임을 하러 왔을 뿐인데 이게 무슨 취급이지?”

“내 손목을 이렇게 만들어 놨잖아!”

아, 이안이 손목을 으스러뜨린 사람이 생각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었나 보다.

이안에게 손목이 으스러졌던 수인이 아리엘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 나오다 이안이 한 발짝 다가오자 겁먹고 한 걸음 주춤거리는 것이 우스웠다.

‘옛날 같았으면 이런 사람들에게 꼬리 말고 도망갔을 텐데.’

덜덜 떨면서 도망갔겠지.

맨날 호랑이들이랑 싸워서 그런가.

새삼 많이 바뀌었다는 생각이 들어 피식, 하고 입가에서 바람이 새어 나왔다. 고개를 옆으로 돌리니 여전히 생글생글 웃고 있는 이안이 보였다.

아리엘은 그녀도 모르게 검은 머리칼을 쓰다듬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러자 그가 자신의 머리를 쉽게 쓰다듬도록 허리를 숙였다. 느릿하게 머리를 쓰다듬던 아리엘이 입을 열었다.

“내… 것이 질투가 심해서 말이야. 그렇지, 얀?”

입이 백 개가 달려도 저 호랑이는 자신의 노예라고 절대 못 하는 아리엘이 말을 바꾸었다.

“네. 주인님.”

‘자신의 것,’이라는 말을 조용히 입안에서 몇 번 굴린 이안이 환하게 웃었다. 그것을 본 경비원들이 잠시 주춤거렸다.

아리엘이 테이블에 내려놓은 가방을 달랑달랑 흔들었다. 그녀가 흔들 때마다 코인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면, 이제 베팅하면 되는 건가?”

“예. 베팅하여 주십시오.”

앞에 있는 딜러의 말에 아리엘이 찰칵, 가방을 열자 수많은 코인이 가방 안에 쌓여 있었다.

코인이 들어있는 가방이 열리자 저 멀리서 다가온 양복을 입은 남자가 그녀에게 말을 걸었다.

“죄송합니다. 저희 측 경비원이 착각했나 봅니다. 소란을 피운 자는 저희 쪽에서 조치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용하는데 불편을 드린 대가로 하루 숙박권을 드려도 될까요?”

카디스 카지노의 하룻밤은 꽤나 유명했다. 하루에 3팀밖에 받지 않지만, 무척 호화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는 것으로.

“그래.”

별생각 없는 아리엘의 대답에 이쪽엔 아무 관심도 없이 게임을 하던 수인들의 시선이 쏠렸다.

“그럼, 즐거운 베팅 되시길 바랍니다.”

양복을 입고 있는 남자가 매끄럽게 입꼬리를 올리고 물러났다. 그리고 그들을 둘러싸고 있던 경비원들이 멀어지자 아리엘이 털썩하고 의자에 앉았다.

뒤에 서 있는 이안을 가까이 부른 그녀가 이안에게 속삭였다.

“얀, 나 괜찮았어?”

분명 처음엔 아무렇지 않았는데 수인들의 시선이 몰리자 다리가 후들거려 아무렇지 않은 척하느라 죽는 줄 알았다.

아, 이런 건 정말 적성에 안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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