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고아원 바닥에 깔린 타일이 하나에 2실버나 든다고?’
그럴 리가.
그곳에 있던 타일은 비싸도 1실버 정도 될 텐데.
갑자기 대륙 물가 상승이 일어난 것도 아니고.
‘그리고 무슨 인테리어 공사 업체라고 해도 되겠어. 왜 이렇게 인테리어를 못 건드려서 안달인지.’
이거 거의 멀쩡한 타일들이랑 벽들을 다 뜯어고치는 것 같은데. 하긴, 타일이나 벽, 이런 자제가 많이 사용되는 인테리어가 돈을 떼먹을 가장 좋은 수법이긴 했다.
장부에는 2실버라고 기록해놓고 실제로 1실버로 사고 나머지 남은 1실버를 주머니로 넣은 건가.
타일 하나에 그 정도니까 싹 다 뜯어고치면 꽤 떼어먹었을 것이다.
‘자산 과대계상이라…….’
나는 손에서 <예술특화 트라바슈 고아원>이라고 써진 회계 장부를 내려놓곤 손을 툭툭 치며 생각에 빠졌다.
의도적으로 고아원에서 지출한 금액을 부풀려서 적어 놓은 것이 뻔히 보였다.
그럼, 후원금 요구서에다가 실제 필요한 금액보다 부풀려서 요구하고, 실제 지출금보다 많이 부풀려서 다 사용했다고 제출하면…….
“고아원이 몰타 가(家)에 후원 금액 요구한 게 어디 있지.”
“여기. 아리엘.”
아무 위화감 없이 내밀어진 종이를 가져간 아리엘이 건네받은 종이를 계속 읽어내려갔다.
“역시.”
여기도 부풀려 놨네.
금액을 많이 요구해서 조금 쓰고 나머지는 다 다른 곳으로 흘러간 거야. 눈에 보이는 전형적인 수법이었다.
보지 않아도 상상되는 수법에 입가에서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고아원에서 몰타 가에 후원금을 요청한 서류에도 인건비가 만만치 않게 명시되어 있었다. 1,000골드라니. 그것도 귀족도 아닌, 평민인 수인에게.
“거기엔 선생님들이 별로 없던데…….”
인건비가 그렇게 많이 드나? 내가 고아원 저택 전체를 활보하고 다녔지만, 실질적으로 본 선생님의 수는 2명 밖에 없었는데.
원장이랑, 원장의 귓속말을 받고 어딘가로 바삐 달려간 선생님.
이렇게 둘.
‘둘이서 1,000골드……?’
말이나 되는 소리를.
거의 7명 정도 되는 수인에게 흘러넘치도록 월급을 줘야지 나올 수 있는 금액이었다.
고아원에 몇 번이라도 방문했으면 알 수 있는 사실인데 이걸 내버려 둔 몰타 가주는 얼마나 무관심했던 걸까.
“신뢰하는 이에게 맡겼으니, 잘 운영되고 있을 겁니다.”
순간적으로 머릿속을 스쳐 가는 몰타 가주의 말에 내가 혀를 끌끌 찼다.
“뒤통수 제대로 맞았네.”
아니면 일부러 모른 척해 준 거던가.
종이를 몇 장 더 넘기자, 앞의 회계 장부는 보여주기 위한 것인 듯 자금이 실제 어디로 흘러가고 어떤 곳에 쓰였는지가 담겨 있는 종이가 나타났다.
별거 없이 간단하게 쓰여 있었지만, 내용이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아, 내가 고아원에 들어가서 서랍 문 따고 가져온 거.’
왼쪽 팔을 내주려고 하면서까지 지키려고 했던 귀중한 것이었다. 나는 아련한 표정으로, 박진감 넘치게 서랍 문을 따던 그때를 회상했다.
‘강박적인 것처럼 빽빽한 그림들로 가득 찬 공간. 들려오는 발소리와 잠겨 있었던 첫 번째 칸.’
자주 보는 문서는 필연적으로 손이 많이 가는 곳에 있기 마련이었다.
그니까, 첫 번째 맨 위 서랍에 넣어 놓은 것은 볼 일이 많다는 문서라는 거고, 그 서랍이 잠겨 있다면 중요한 문서라는 건데.
‘도대체 여기 안에 무엇이 쓰여 있길래.’
뒷주머니를 차는 것 정도는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나는 눈을 다시 서류 쪽으로 돌렸다.
「타일, 에타, 50쿠퍼.」
‘1실버보다도 훨씬 싸게 샀네.’
그리고 역시나, 첫 시작은 돈을 빼돌린 것이 나타나는 부분이었다.
‘공식적인 문서에서는 2실버라고 적어 놨었는데.’
괜찮다. 나중에 다섯 배로 털어 오면 되니까.
그러나 페이지를 넘기면 넘길수록 내 표정은 점점 딱딱해졌다.
「와인의 꽃, 카디스 카지노, 수입, 5,000골드」
‘아하……. 그 이상한 하얀 가루 넣은 와인이 카디스 카지노로 흘러가는 거구나?’
하얀 가루를 사고팔 정도면 일반적인 카지노는 아닌 게 분명했다.
마약은 물론 다른 이상한 것도 성행하고 있겠지.
‘예를 들어 불법적인 노예 거래가 일어나고 있다던가, 노예와 마물의 결투를 지켜볼 수 있게 하는 이벤트가 있을 수도 있고.’
종이를 훑던 내 눈이 얼마 되지 않아 이어진 거래 내용과 거래처에 오랫동안 머물러 있었다.
「화가 6명, 카디스 카지노, 1,200골드」
「화가 12명, 카디스 카지노, 2,400골드」
「화가 3명, 카디스 카지노, 600골드」
연달아 이어진 기록들에 아리엘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화가라니…….’
화가를 어떻게 넘길 수 있는 거지?
그 순간 하나의 생각이 섬광처럼 머릿속을 번뜩 스치고 지나갔다.
‘예술특화 트라바슈 고아원.’
이 고아원의 정식 명칭이었다.
예술특화 고아원은 길거리에 나앉은 아이 중, 예술적으로 재능 있는 아이들을 키워 화가로 배출해 내는 곳이었다.
‘그리고 이 대륙에서는 흔히 있는 고아원의 종류 중 하나고.’
악기를 다루는 것에 특화된 고아원도 있고, 노래에 특화된 고아원도 있는 것처럼 고아원의 종류가 다양하다는 것을 고려하면, 특별히 이상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그게 유명한 화가를 배출하기 위함이 아니었던 거라면?
아이들을 넘기기 위해, 그런 목적으로,
‘설마.’
에이. 설마.
종이를 들고 있던 내 손이 잠시 멈칫했다.
다락방에서 옹기종기 모여서 두려움에 가득 찬 눈을 질끈 감고 있던 아이들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가 사라졌다.
애들을 진짜 실력 있는 화가로 기르기 위해선 그런 취급 따윈 하지 않았을 텐데.
오히려 좋은 장비들을 제공해주려고 하면 모를까.
마음속에서 자그마한 의심이 싹텄다.
그렇게 종이를 몇 장을 넘기자, 쪽지 한 장이 툭 떨어졌다.
『 ㅇ┫〡ㅋ ┛┫ㄹ ┫] 』
그리고 그것을 본 내가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굳었다. 그 쪽지를 알아본 내 머릿속이 새하얘져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아리엘?”
이안의 의아함이 담긴 음성에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목소리를 냈다.
“이안……. 들고 있던 쪽지 180도 돌려봐.”
이안이 느릿하게 들고 있던 쪽지를 돌리자 글자가 완성되었다.
『 [┣ ㄹ┣ ┑ヒㅣ┣ ㅇ』
ㄷㅏㄹㅏㄱㅂㅏㅇ
그대로 읽으면 다락방이었다.
‘미친놈들.’
어딘가 오한이 드는 느낌에 아리엘이 자기 팔뚝을 쓸어내렸다.
“아리엘, 진정해.”
어느새 그녀의 옆에 앉은 그가 아리엘을 자신에게 기대게 만들곤 느릿하게 말했다.
“느릿하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뱉어.”
아리엘의 가슴팍이 크게 오르락내리락했다.
“한 번 더.”
그 말에 한 번 더 가만히 숨을 가다듬은 그녀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때, 고아원 다락방에 있던 그 아이들이 다가 아니었어…….”
생각만 해도 차갑게 머리가 가라앉았다.
갑자기 몸속을 찌르듯이 느껴지는 한기에 몸을 부르르 떨자 뒤에서 따뜻한 기운이 몸 안으로 들어왔다.
뾰족하게 날 서 있던 기운을 잠재우고 그녀의 몸에 페로몬을 덕지덕지 묻힌 이안이 흘러내린 그녀의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겨 주었다.
그를 가만히 쳐다보던 아리엘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이안. 그때 그 고아원 기억나? 몰타 가주가 신뢰하는 사람에게 맡겼다던 고아원.”
“그래. 널 만나러 오니, 웬 멧돼지가 너에게 들이받으러 달려가고 있던데.”
“고아원 원장은 쥐 수인이야. 이안.”
“그럼 아리엘은 쥐 수인에게 고양이 고기가 된 채로 먹힐 뻔했던 거네?”
“아무리 고양이라도 칼 들고 있는 쥐는 못 이긴다고…….”
이 말을 하면서 자존심이 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리엘이 들고 있던 종이 뭉치들을 손에서 내려놓았다.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고아원에 있던 아이들은 어떻게 했어?”
책상에 널브러진 종이들이 복잡한 그녀의 마음을 대신하는 듯했다.
치우기 귀찮아서 안 치운 것이 아니다.
절대로.
‘어차피 뭔 내용인지 다 아는데.’
나중에 치워도 괜찮다.
자유를 찾아 만끽하려는 것처럼 이리저리 흩어져 있는 문서들을 힐끗 쳐다본 이안이 책상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고아원에 있던 아이들은 현재 카델리온 쪽에서 관리하고 있긴 한데.”
“나중에는 어떻게 할 거야?”
“글쎄…….”
“만약에 다른 계획이 없다면 공식적으로 학문이나 연구를 장려하거나 인재를 양성하는 재단을 만들어 보는 건 어때?”
이 정도는 선물로 말해줘도 되겠지.
은혜 갚는 고양이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아이들을 모아서 그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부분의 재능이 꽃피우도록 도와주는 건데, 자금을 지원해 준다든가 하는 식으로. 아니면 재능을 나눠 줄 사람을 찾아서 그들을 가르치게 하는 거지.”
어느 시대에서나 인재는 그 무엇보다 소중한 자산이다.
“그럼 카델리온 가문에서 지원을 받은 아이들이 자라서 카델리온에서 일하겠지.”
좋은 순환과정이잖아. 안 그래?
원을 빙빙 그리는 그녀의 손가락에 이안의 곧은 입매가 비스듬히 올라갔다.
“만약 그것이 아니더라도 카델리온의 명성을 쌓을 수 있을 거고.”
“맞아! 그리고 카델리온에서 일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아이들은 대륙에 퍼져 일할 것이기에 카델리온의 영향력을 높일 수 있어.”
아리엘의 말을 들은 이안이 잠시 손가락을 툭툭 치며 고민했다.
그렇게 재단을 하나 만들게 되면, 북쪽 설산은 다른 곳보다 떨어져 있어, 정보를 수집하기 어렵다는 단점을 보완할 수도 있다. 그들이 키워 낸 아이들이 정보망이 되어 대륙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을 테니까.
현재 카델리온의 자금으로 불가능하지 않았을뿐더러, 대륙에 미치는 영향력과 명성까지 높일 수 있는 좋은 생각이었다.
“좋은 생각이네. 아리엘.”
생각을 마친 이안이 명징하게 빛나는 아리엘의 눈동자를 보며 입매를 끌어 올렸다.
“근데, 그렇기엔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의 수가 적은 것 같은데.”
“다른 아이들을 데려오면 되지.”
그러자 아리엘이 입꼬리를 씩 끌어 올렸다.
“내가 다른 아이들이 어디 있는지 알고 있거든.”
트라바슈 고아원 원장이 다른 아이들을 어디에다가 팔아먹었는지 이 회계 장부에 나와 있더라.
***
“후…….”
그리고 정신 차려 보니 나는,
“내가 살면서 카지노에 다 가 보네…….”
이안과 함께 카디스 카지노 앞에 서 있었다.
“주인님, 들어가셔야죠.”
붉은 눈꼬리를 나른하게 휘며 나를 바라보는 이안을 쳐다봤다.
평소와 달리 흑발에다가 적안인 그의 모습은 어딘가 요사스러운 면을 띄고 있었다.
‘도대체 왜 이렇게 된 거지.’
잠시 신세를 한탄한 나는 카지노 안으로 들어가려고 했다.
“저기요.”
갑자기 부르는 그 소리만 아니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