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2. (83/111)

82.

클로에의 손에는 앞에 있는 중개업자가 한 화려한 행적들이 적혀 있는 종이가 들려 있었다.

“죽… 아니 잘 말해 보면 어느 정도는 가격을 낮출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것도 있고요.”

“잘 모르실 텐데, 9만 골드면 이 근처에서 싼 편입니다. 아가씨.”

그때, 그가 뻔뻔한 웃음을 지으며 아리엘을 쳐다봤다.

나는 내 귀가 잘못됐나 귀를 긁고 다시 앞에 있는 중개업자를 쳐다보았다.

“몇 골드라고?”

그러자 앞에 있는 중개업자가 그녀의 표정을 살짝 보고 말을 바꾸었다.

“8만 8천 골드로 깎아 드리겠습니다. 더는 안 돼요. 저희도 먹고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시세로 따지면 아무리 비싸도 4만 골드인데?’

싸게 산다면 3만 골드로도 살 수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8만 골드로 사는 건 말이 안 됐다.

8만 골드 정도면 이 건물 사고 변방에 건물 1개보다 더 살 수 있는데.

‘근데 뭐? 8만 골드가 아니면 못 먹고 살아?’

이게 지금 누굴 호구로 보나.

그의 말에 내 얼굴이 싸늘해졌다.

낮아진 목소리가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에드윌 로워드 31처럼 비싼 골목도 아니고, 이미 가격이 폭등한 곳도 아닌데. 어째서 그런 가격일 수 있는 거지?”

내가 손바닥을 비비고 있는 그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였다.

그러나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중개업자는 싱글벙글 웃으며 말했다.

“여기는 코너 지역이니까 다른 지역보다 더 비쌀 수밖에요.”

“대개 코너를 끼고 있는 지역은 보통 10% 많으면 20% 정도만 더 비싼 걸로 알고 있는데?”

“그니까 이곳은 코너고…”

“코너 중에서도 샛길로 들어가는 코너지. 때문에, 가격이 추가되는 것도 별로 비싸지 않고.”

“게다가 이 거리 자체가 시세가 좀 높은….”

허둥지둥 대는 그의 말에 내 표정이 더 차게 식었다.

“아, 참고로 말해 주자면 이 근처 주위의 가격은 3만 골드였다네.”

나는 일부러 그가 알아본 가격보다 낮추어서 금액을 불렀다.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이 근처 원가는 원래 8천 골드였습니다만!!”

‘오, 다행이군. 원래부터 무지한 것이 아니었어.’

그냥 모르는 거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걱정했는데.

그래도 이 길가의 시세는 제대로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말을 내뱉은 그가 아차 싶은 표정을 했다.

아리엘이 음산하게 입꼬리를 올렸다.

“근데 자네만 8만 8천 골드이군? 사기를 칠 거면 현실성 있게 쳐야지. 몇백 골드만 올린다던가.”

생각할수록 어이가 없었다.

얼마나 얕보였으면 5만 5천 골드를 올려서 불러?

“원가를 잘 알고 계셨던 분이 이렇게 사기를 친 건가?”

옆에 있던 클로에가 그의 행적이 담긴 종이를 그의 눈앞에 내밀었다.

“완전 악질 중에 악질이네요.”

그녀가 즐겁다는 듯이 눈을 휘었다.

“주인 있는 자리를 판 것이 4번, 시세에 맞지 않는 가격으로 판 것이 2번, 건물주와 짜고 처서 먹은 것이 2번, 있지도 않은 곳을 판 적도 있고….”

“이야, 이건 중개업자가 아니라 사기꾼이 아닐까?”

펄럭거리는 종이를 보고 있던 그의 얼굴이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새파래졌다. 그 종이에는 누굴, 어디서, 어떻게 등쳐 먹었는지에 대한 내용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마지막 장에는 그의 얼굴과 함께 하루 동안 그가 다닌 이동 경로가 세세히 나와 있었고.

클로에의 말이 끝날 때까지 기다린 아리엘은 신난다는 듯이 박수를 짝 쳤다.

“와! 그러면 이걸 가지고 신문사에 제보하면… 사례금 정도는 신문사에서 주지 않을까?”

그러자 그의 얼굴이 졸도하기 직전처럼 푸르죽죽해졌다.

“그럼 나는 정의를 실현하는 정의의 사도도 되고, 돈도 공짜로 버는 거네?”

내가 꺄르륵 거리며 웃었다.

그러자 그가 목소리를 억지로 쥐어 짜내며 말했다.

“그럼…. 3만 골드로.”

어쭈? 지금 이 상황까지 됐는데 시세에 맞게 팔아먹으려고 해?

아리엘이 해사하게 웃었다.

“에이, 그건 안되죠.”

날 약 올릴 때 이안이 짓는 웃음을 생각하면 어떤 식으로 웃어야 할지 생각하기 쉬웠다.

“더 내려요. 신문사에 제보하기 전에.”

“2만 5천 골드….”

“더.”

“그럼, 2만 4500 골드…?”

“더.”

“그럼 2만 4천 골드로 하겠습니다. 더 이상은 정말 안 됩니다. 한 번만 봐주십시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클로에가 곤란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럼….”

“2만 골드로 하겠습니다! 그 이하는 정말 안 됩니다…! 정말요…!!”

“네. 좋아요.”

나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지금 당장, 계약서 가져와요.”

앞에 있는 중개인은 울 것 같은 얼굴로 품속에 있는 계약서를 꺼냈다. 그리고 그 계약서에는 8만 8천 골드라고 적혀 있었다.

‘많이 깎아 주는 척해서 8만 8천 골드로 팔아먹으려고 했었나 보지.’

바로 금액을 수정해 버린 나는 즉석에서 문제가 없는지 계약서를 꼼꼼하게 계약서를 읽어 보았다.

“계약서에는 이상한 곳 없습니다…. 아가씨….”

앞에 있는 중개업자는 울 것 같은 얼굴이었다.

2포인트 글씨로 적혀 있는 부분까지 꼼꼼하게 살펴본 나는 클로에에게 문서를 넘겼다. 그러자 문서를 다 읽은 클로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야, 엄지 대.”

그러자 클로에가 칼을 가방에서 꺼냈다.

“예, 예?!? 혹시 엄지손가락 자르시려고….”

“무슨 소리 하는 거야. 저기다가 손가락 찍으라고.”

나는 종이 두 장을 붙여 놓고 그 중간을 가리켰다.

“그럼 제 피로….”

도대체 왜 다 피를 내서 찍으려고 하는 걸까.

여기 전통이라도 되나.

‘굳이 피를 보고 싶진 않은데.’

내가 옆을 바라보자 클로에가 가방 안에서 인주가 들어 있는 박스를 칼로 잘라 개봉했다. 나는 그 박스 안에서 인주를 꺼냈다.

“여기다가 찍으라고. 피를 보고 싶다면야 말리진 않겠지만.”

그러자 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찍으려고 했던 걸까.’

이곳에서는 지장을 피로 찍는 문화가 있나.

나는 그를 이상한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그가 두 개의 계약서를 이어 놓은 중앙에 도장을 찍자 클로에도 손가락을 찍었다.

“이거 찍혀 있는 게 원본이야.”

원래 생각한 가격보다 훨씬 싸게 매입한 나는 종이를 챙겨 그 자리를 떠났다. 아리엘의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매달려 있었다.

빈 건물에는 사기꾼만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사기꾼에게서 원래 가격보다 6천 골드나 더 싸게 토지를 주고 샀다.

그리고 그다음 날, <먼 데이 신문>으로 들어온 익명의 제보로 인해 그 중개소는 망해 버렸다.

***

‘쯧쯧. 그렇게 마음을 곱게 써야지.’

나는 분명 내가 제보를 안 한다고 했었다. 슈엘라 말고. 나만.

슈엘라가 제보한 소식이 적혀 있는 <먼 데이 신문>을 방 안 어딘가에 휙 던져 놓은 나는 방 안을 뒹굴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그때 똑똑하는 소리와 함께 방문을 벌컥 열고 이안이 들어왔다.

“이안, 그렇게 들어올 거면 노크는 왜 하는 거야?”

“들어올 거라는 통보.”

아. 그렇구나.

이 정도 수준 가지고는 놀랍지도 않았다. 카델리온 저택에 살면서 헛소리에 면역력이 생긴 걸까.

“먼저 노크를 하면 네가 기대되는 마음을 가지고 나를 마주할 수 있잖아.”

곱게 휘어진 이안의 눈가를 한 번 바라본 나는 내가 방금 했던 생각을 철회했다.

나는 아직 호랑이들의 헛소리에 면역력이 생기지 않은 듯했다.

이안이 문 앞에 떨어진 <먼 데이 신문>을 내 옆에다가 올려 두었다.

<먼 데이 신문>은 도대체 무슨 뜻인 걸까. ‘먼 데이’라는 말과는 다르게 이 신문을 매일매일 따끈한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다.

아리엘은 신문에서 눈을 돌리고 자신이 붙잡고 있던 종이를 팔랑팔랑 흔들었다.

“이안, 내 그림 어때?”

“잘 그렸어. 닭이 죽어 가는 과정을 그린 거야?”

그가 옆에 있는 <먼 데이 신문>에서 특별 소식으로 싣고 있는 ‘세상에 이런 일이!’ 코너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그곳에서는 300m를 날아다닌다는 닭이 그려져 있었다.

“마치 비명 소리가 여기까지 생생히 들리는 듯하네.”

그가 만족스럽게 그림을 바라보았다.

“침대야.”

“어디 침대? 그림에 있는 이 침대를 구상한 사람은 침대계에 큰 파장을 불러오겠는걸. 삶의 죽음과 안녕을 이렇게나 잘 묘사하는 침대라니.”

한 마디로 죽음의 침대 같다는 거잖아.

내 표정이 실망으로 물들었다.

‘이게 그렇게 못 그렸나?’

이래 봬도 전생에서 6살 때까지는 미술에 재능 있는 것 같다는 소리를 들었던 실력이었다.

“여기 침대인데.”

그 말을 마친 나는 그림 한 장을 더 꺼내 들었다.

“그럼 이건?”

“곰 발바닥? 곰 발바닥이 흉포하고 무서운 기세로 저기 그려져 있는 먼지를 밟으려고 하고 있는데.”

“네 얼굴 그린 건데…….”

흉포하고 무서운 기세까지 맞췄으니까 이번 그림은 나름 괜찮게 나온 것이 아닐까.

아무래도 내 그림 실력은 6살 이후로 전혀 늘지 않은 듯했다.

‘눈, 코, 입 멀쩡하게 달려 있는 거 보면 딱 이안인데.’

나는 그 그림을 앞에 두고 그를 바라보았다.

만약, 그의 초상화를 그리다가 못 그리겠다고 뛰쳐나간 화가들이 들으면 기함할 만한 생각이었다.

‘그 그림을 보는 즉시 화가들은 아리엘을 향해 붓과 물감들을 던졌을 수도….’

마리는 이안과 아리엘이 서로 노는 모습을 익숙하게 바라봤다.

“마리 님, 저는 천직을 발견한 것 같아요.”

그때 옆에 서 있던 레아가 마리에게 속삭였다.

“정보 캐내고 사람을 죽이는 일보다 저는 하녀 일이 천직인 것 같습니다. 저기 저기 보세요! 저 힐링되는 광경….”

엊그제까지 마물의 피를 뒤집어쓰고 히죽히죽 웃었던 그녀가 몽롱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인과 귀여운 동물은 정말 거부할 수 없는 조합이라니까요. 마물들을 잔혹하게 죽이는 남정네들만 보다가 이걸 보니….”

레아의 직업 만족도는 주위의 얼굴에서부터 얻는 것 같았다.

‘잔혹하기는 이안 님이 제일 잔혹한데.’

그러나 정신 나간 레아 앞에서는 아무것도 먹혀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는 마리는 시선을 돌렸다.

침대 위에 앉아 무언가를 그리고 있는 이안과 엎어져 있는 아리엘이 있었다.

“새 발바닥은 왜 그려?”

“네 얼굴인데.”

‘…너 원래 그림 잘 그리잖아.’

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내 얼굴이 정말 저렇게 생겼나.

축제에서의 애벌레 인형이 나랑 똑같이 생겼다는 것부터 해서 이안의 눈에는 내가 어떤 식으로 보이는 걸까.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노아.”(놔.)

“싫은데.”

내 볼을 쭉 늘이고 있는 그가 눈꼬리를 휘었다.

“이 운에느 애가 오애체 어떠에 보이는 어야.”(네 눈에는 내가 도대체 어떻게 보이는 거야.)

그걸 본 나는 불만스러운 눈초리를 지었다.

“어읍 마하지마 애이 오양이도 매수이어든.”(거듭 말하지만 새끼 고양이도 맹수이거든.)

“그럼. 아리엘 맹수지. 아주 무서운 맹수. 용감하게 백호의 대가리도 날아 차 버리고 박치기까지 마다하지 않는.”

“으언 미안하다고 마했자나.”(그건 미안하다고 말했잖아.)

눈을 내리깔자 바로 밑에 있는 그림이 눈에 밟혔다.

“…….”

그리고 곰 발바닥과 새 발바닥이 단란한 가족같이 나란히 그려져 있는 것을 본 나는 생각하기를 포기했다. 내 손이 저절로 그림을 구겨 잡으려고 했으나, 내 손을 잡는 다른 손 때문에 나는 그러지 못했다.

“이건 액자로 걸어 놓을 거야. 왜 구겨.”

그가 종이를 고이 접어 자신의 품속에 넣어 놓고는 다시 내 볼을 찌부러트리기 시작했다.

미친.

‘그걸 왜 액자로 걸어 놓는데.’

카델리온 저택에서 전시회라도 할 셈이야?

내 눈이 자동으로 뾰족해졌다.

“야. 싸우애?”(야. 싸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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