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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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

모두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연회장 안을 지켜보고 있었다.

적막이 감도는 연회장 안에서 리카 앞에 있는 청량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래도 청혼은 제가 하고 싶었는데. 리카는 너무하세요.”

그가 얼굴을 붉히며 반지를 가져가려고 했다.

그러나 리카는 그가 반지를 가져가기 전에 반지 케이스에서 반지를 빼 그의 약지손가락에 끼워 줬다.

“이런 건 원래 더 좋아하는 사람이 하는 거야. 다일.”

그러자 녹색 머리카락이 살짝 흔들렸다. 그가 눈썹을 누그러뜨리며 조용히 속삭였다.

“…제가 당신을 더 좋아하는걸요.”

곳곳에서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났다.

흥미로운 가십거리를 찾아낸 귀족들의 눈이 빛났다.

안 보이는 곳에 숨어든 몇몇 기자들도 빠르게 그 상황을 글로 적고 있었다.

리카 세드리한이 반지를 낀 그의 손을 자신의 손으로 은근히 훑곤 그에게서 살짝 떨어졌다.

그러자 어느새 조용히 연회장 안에 들어와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루카스가 그들에게 다가갔다.

“서로 결혼하기로 마음먹었으니까, 이제 둘이 결혼하겠네.”

그가 리카에게 다가가 속삭였다.

“네 성격에 정략결혼이 아닌 결혼이 가능할 줄이야. 둘이 저택 구해서 살 때 남편 내쫓지 말고.”

“호호 할머니 될 때까지 남편 닮은 애 낳고 오순도순 행복하게 잘 살 거거든.”

리카 세드리한이 웃으면서 루카스의 귀에 속삭였다.

“리리…….”

그리고 그 말을 들은 그녀의 애인의 귀가 새빨개졌다. 그가 수줍게 한 마디 읊조렸다.

“…그런 말을 대놓고 하면 어떡해요.”

그러자 그녀가 능글맞은 웃음을 지으며 그에게 속삭였다.

“애는 안 낳고 싶은 거예요?”

“그게 아니라… 리카를 닮은 아이이면 더 좋을 것 같아서요….”

‘아. 커플 망해라.’

쟤 고지식하다고 소문난 세드리한 가(家) 기사단장 아닌가.

어쩌다가 악어 종족이 저렇게 순해질 수 있었던 걸까.

루카스는 리카의 남편이 될 그의 명복을 속으로 조용히 빌어 주며 아무렇지 않은 척 미소를 지었다.

“다른 분들도 궁금한 게 많으실 텐데, 나는 일찍 자리를 비킬게.”

그들의 대화 내용이 안 들리는 다른 이들의 눈엔 사이좋게 남매끼리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말투로 말하는 루카스의 한마디를 시작으로 웅성거리던 연회장 곳곳에서 함성 소리가 터져나왔다.

“리카 님! 축하….”

“축하드려요!!”

“루카스 님….”

***

“호외요, 호외!! 사교계의 꽃, 남부의 영애께서 결혼하신답니다!!!”

“마지막 한 장 남았습니다!!!”

“신문 다 팔렸습니다!”

“헐, 벌써 품절인가?”

“당연히 그렇겠지. 신문사에서 찍어 내는 신문 부수를 늘리는데도 요즘은 낮이 되기도 전에 항상 품절이라네.”

리카 세드리한과 다일 로커가 결혼한다는 소식부터,

“리카 세드리한이 그 보석을 샀을 줄이야…. 허어….”

“분명 세드리한 영애가 보석을 산 사람을 자기도 모른다는 것처럼 말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세드리한 가는 그 보석을 펠릭스 상단과 연줄을 붙이는 데에도 이용하겠죠?”

“당연한 거 아니오.”

첫 번째 펠릭스가 리카 세드리한의 손에 들어갔다는 소식,

“소문으로는 유유자적 여행을 다니고 있던 세드리한 가주 부부도 헐레벌떡 뛰어 왔다던데.”

“당연하죠. 딸이 어느 날 대뜸 결혼하겠다고 선포한 거나 다름없는데.”

“그래도 상대가 악어여서 다행이지요.”

남부에서 느긋이 여유를 즐기던 세드리한 가주 부부가 뛰어 왔다는 소식.

“하지만… 그런 청혼은… 좀… 색달랐달까요.”

“솔직히 말해서 멋있었어요….”

“어떤 영애가 먼저 청혼할 생각을 했겠어요.”

리카의 프러포즈까지.

“근데 펠릭스의 상단주님은 그것을 알고 리카 님께 보석을 전해 드린 걸까요?”

“그건 아무도 모르죠.”

그렇게 대륙은 갖가지 소식으로 뜨겁게 달구어져 갔다.

그리고 그 소문들 곁에는 당연히 펠릭스도 나란히 언급되었다. 펠릭스 상단은 금방 귀족들의 입에서 곧 사라질 것이라는 몇몇의 예상과는 다르게 오랫동안 수인들의 입에서 오르락내리락했다.

리카와 다일의 일로 펠릭스 보석의 가치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상승했다.

“아리엘, 진짜로 리카가 그런 행동을 할 줄 알았던 거야?”

소파에 늘어져서 파랑새들과 대화하고 있던 슈엘라가 아리엘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아리엘이 그녀를 바라봤다.

“무슨 행동?”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는 리카한테 펠릭스를 건네주었잖아. 가장 높은 가격을 써낸 사람은 녹스 히아트였는데.”

“아, 그거?”

가장 높은 가격을 쓰는 사람에게 펠릭스를 가져다준다고 했지만 아리엘은 그러지 않았다. 그녀는 가장 높은 가격을 써낸 녹스 히아트 영식이 아닌, 리카 세르디한에게 그 보석을 전달하도록 부탁했었다.

“슈엘라, 네가 아몬드 홀이 열린다는 정보를 경매 전에 가져다줬잖아?”

슈엘라가 상단에 들어온 이후, 그녀는 틈틈이 다른 파랑새들을 통해 얻게 된 정보를 아리엘에게 물어다 줬다.

“보통 큰 홀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몇 번 안 열려.”

그러자 클로에가 말을 이었다.

“생일이나 결혼식 피로연 같을 때 빼고는 닫혀 있긴 하죠.”

클로에의 말에 아리엘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아몬드 홀을 열었지. 세르디한이 제일 아끼는 아몬드 홀을.”

“고작 그거 가지고 추측하기는 힘들지 않아? 리카 영애의 생일이 얼마 안 남은 상태였잖아.”

그래서 슈엘라도 리카 영애의 생일 때문에 아몬드 홀이 열리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일 때문에 열리는 것인지 감을 쉽게 잡지 못했었다.

“하지만 그렇다기에는 너무 일러. 그 홀이 연회 준비를 끝낼 시기를 계산하면 리카 영애의 생일보다 대략 1주 정도 빨리 준비가 다 끝나거든.”

게다가 세드리한 영애가 악어를 키우고 있다는 소식까지.

설명을 계속하던 아리엘이 빙그레 웃었다.

“그럼, 다른 이유가 있단 소리인 거지. 그리고 상단 연회에서…”

마침 경매에서 나누어 준 종이에서 펠릭스의 가격을 적는 칸 밑에 첫 번째 펠릭스에 관련된 요구사항을 쓴 칸에 리카는 두 개로 나누어 제작해 달라고 부탁했었다.

‘그 말인즉슨 사귀는 사람이 있을 확률이 높다는 소리.’

하지만, 커플링을 그렇게 값비싼 걸로 한다?

그렇다기엔 펠릭스가 말도 안 되는 가격이었다.

그러면 커플링보다는 더 거창한 이벤트일 확률이 높았다.

예컨대, 프러포즈 같은.

사실, 이건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문제였다.

하지만 대륙에는 영애가 아닌 영식들이 프러포즈하는 것이 암묵적으로 지켜져 오고 있었기 때문에 슈엘라는 거기까지 생각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전생의 기억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더 쉽게 떠올릴 수 있었던 것이었고.

“아…!”

“와…”

클로에와 슈엘라도 이제야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는지 그들의 입에서 동시에 깨달음에서부터 비롯되는 감탄이 튀어나왔다.

아리엘이 드르륵 의자를 밀며 일어났다.

“리카는 아몬드 홀에서 자신의 약혼자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프러포즈할 생각이었으니까. 그리고 그 과정에서 펠릭스 보석을 다른 귀족들이 보게 되겠지.”

익숙한 것보다는 새로운 것이 귀족들의 뇌리에 더 강하게 박혔을 것이다.

‘아마, 그 프러포즈는 그들에게 충격적이었겠지.’

그러면 그들의 입에 그 보석을 더 오르락내리락할 거고, 펠릭스를 사고 싶어 하는 사람은 더 많아질 것이었다.

‘쉽게 잊힐 리도 없고.’

물건을 파는 것의 핵심은 ‘얼마나 오랫동안 소비자에게 기억되느냐.’였다.

‘마침 변화와 행운이라는 이미지를 챙기고 싶던 우리 상단이 추구하는 바와 맞기도 하고.’

그것까지 계산했을 때의 실질적으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녹스 히아트의 손에 펠릭스가 들어갔을 때보다 리카 세드리한의 손에 들어갔을 때가 더 컸다.

“그러니 나는 제일 높은 가격으로 써낸 사람에게 건넨 게 맞지.”

그녀가 아무렇지 않은 어조로 말했다.

‘물론, 그 보석이 셀레스틴의 손에 넣어 주기 싫은 심보도 있었지만.’

아리엘이 뒤를 돌아봤다.

“클로에 뭐 해? 건물 보러 가야지.”

***

사무실에서 나와 마차를 탄 지 얼마 안 되어 마차가 멈추자, 마부가 클로에와 아리엘을 내려줬다.

마차 삯을 지불한 클로에는 아리엘과 거리를 나섰다.

얼마 걷지 않자, 앞에 있는 남자가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무얼 보러 오셨나요?”

“저번에 말씀해 주셨던 3층 건물 알아보려고요. 보니까 괜찮은 것 같아서요.”

중개업자가 앞에 있는 두 명의 여인을 훑어봤다.

‘둘 다 세상 물정 모르게 생겨서 어디 취미로 건물 하나 사고 싶었나 보지.’

그 말이 끝나자 남자의 메기 같은 수염이 씰룩씰룩거리며 올라갔다.

‘오늘 호구를 잡는 날이구만. 흐흐흐.’

“그럼, 아가씨께서 처음 말씀해 주셨던 건물 먼저 안내하도록 하죠.”

그가 발걸음을 떼자 아리엘과 클로에도 이동했다. 아리엘은 주위를 열심히 둘러보면서 기억 속에 저장했다.

‘저기 아카데미도 있고.’

저 뒤에 있는 아카데미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아카데미가 있는데도 시끄럽지도 않고.’

사무실로 쓰기에는 정말 나쁘지 않은 입지 조건이었다.

“생각보다 괜찮네요.”

아리엘이 흡족한 목소리로 말했다.

“암요. 암요. 저희만큼 잘 나온 매물도 없을 겁니다.”

어느새 건물 앞에 도착한 중개업자가 건물의 문을 열며 그들에게 안내했다.

‘어차피 인테리어는 다시 할 거니까 상관없고.’

그녀가 꼼꼼한 눈으로 건물을 쳐다보았다.

그녀들을 안내하던 중개업자가 그들의 반응을 쳐다보았다. 그들은 신기한 듯이 눈을 동그랗게 눈을 뜨고 ‘우와. 너무 좋다.’, ‘이런 곳이 또 있을까.’ 등의 말들을 내뱉으며 둘러봤다.

‘딱 봐도 세상 물정 모르는 아가씨들이네.’

이 근처 시세나 건물 가격을 모를 게 틀림없었다.

애초에 그들의 행동에서부터 이런 건물을 많이 보러 오지 않은 것이 느껴졌다.

그는 앞에 있는 아가씨들을 속여먹을 생각을 하며 음흉하게 웃었다.

중개업자가 딴생각을 하는 것을 확인한 클로에가 아리엘의 귀에 조용히 속삭였다.

“이쪽이 제일 좋긴 한데, 문제가 있어요.”

“뭔데?”

클로에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아리엘은 이 건물의 가격을 예측했다.

‘이 주변의 건물 시세는 8만 골드 후반대 정도인데, 여기는 코너에 위치해 있네. 그러면 보통 건물 가격의 10-20% 더 나가는 걸 고려하면, 3000 정도 더 나갈 거고 그러면 비싸도 4만 골드 정도 될 것 같은…’

계산을 마친 아리엘이 입을 열었다.

“여기 가격은 얼마인가요?”

잠시 고민하던 중개업자가 입술을 꿈틀거렸다.

“으음… 9만 골드입니다.”

‘하? 이걸 몇만 골드 높여서 불러?’

그때 건물 밖에서 월! 월! 하는 떠돌이 개의 소리가 건물 안으로 들렸다.

“어디선가 개소리가 들리네.”

아리엘의 표정이 무섭도록 딱딱하게 굳었다.

“네? 무슨 소리가 들리신다고요?”

그러나 그녀의 목소리를 듣지 못한 중개업자가 고개를 틀었을 땐, 아리엘은 이미 이안이 모르는 사람에게 짓는 으레 상냥한 미소가 그녀의 입가에 걸쳐져 있었다.

“아니, 밖에서 개소리가 잘 들려서요.”

“원래 잘 들리지 않는데, 아리따우신 영애분들이 방문하시니. 개들도 신났나 봅니다.”

그리고 중개업자는 이걸 긍정적인 신호로 받아들였다.

‘이번에도 한 건 하는구나!’

저번 주에 이어 오늘까지. 이 정도면 신은 저를 도와주는 게 아닐까.

중개업자는 딱딱하게 굳은 아리엘의 표정을 보지 못하고 성취감에 차 있었다. 그의 얼굴이 점점 고양되기 시작했다.

클로에가 그 모습을 보곤 혀를 차며 내 귀에 속삭였다.

“중개업자가 심각한 사기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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