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9. (80/111)

79.

“흠~흐흠~.”

아리엘이 정원 이리 저리를 뛰어다녔다.

마리와 레아는 그 뒤를 조용히 뒤따르고 있었다.

이안이 두 최상위 포식자들을 이끌고 팔랑거리며 뛰어다니는 아리엘을 바라봤다.

“어제 아리엘 훈련이 일찍 끝났나?”

“아니요. 오히려 자진해서 더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근데 쟤는 무슨 새하얀 눈 본 강아지처럼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어?”

앨런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추측했다.

“이단 발차기에 성공하신 거 아닐까요.”

“하긴, 한참 이단 발차기를 차고 있긴 했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유리잔을 들고 막 돌아다니던데.”

“크기도 종류별로 다 들고 다니셨습니다.”

“근데 요즘 저글링 안 하는 거 같지 않아?”

“아, 유리잔으로 하는 저글링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

앨런이 아리엘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유리잔은 보이지 않네요. 생각해 보면 각종 접시와 유리잔을 안 들고 다니신 지 꽤 되신 것 같습니다.”

“유리잔을 안 들고 다닌 후부터 아리엘의 기분이 유독 좋아졌지.”

‘어디로 사무실을 옮겨야 하지.’

아리엘의 머릿속에서 행복 회로가 가열차게 돌아갔다.

1억 금화면 엄청 큰돈이었다.

드넓은 저택에 여러 고용인을 두고도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평생 살아갈 수 있는 돈이었다.

‘이 꽃도 아름답다.’

풍경이 아름다워 보였다.

‘이걸로 화관을 만들어서 호랑이한테 얹어 주면.’

아리엘이 꽃을 꺾어 자신의 귀 옆에 꽂으며 킥킥 웃었다. 그리곤 주위에 있는 수인들에게까지 꽃을 귀 뒤에 꽂아 주었다.

“이안 님, 아리엘 님이 자신의 머리에 꽃까지 꽂으셨는데요.”

“봤어. 그녀의 정신이 사자에게 잡아먹힌 건 아닐까.”

“아리엘 님과 가장 가까이 있는 동물은 호랑이인데요. 이안 님.”

“나는 아리엘의 정신을 잡아먹을 정도로 나쁘지 않잖아. 너무 선량해서 탈이지.”

아. 예 그러십니다.

그러신 분이 마물들 머리 따고 다니시고 가문 몇 개를 무너뜨리셨군요.

앨런은 하고 싶은 말을 목 끝까지 삼켰다.

“스스로 머리에 꽃 꽂고 돌아다니는 아리엘이라니.”

그가 어딘가 묘한 미소를 지었다.

“뒤늦은 사춘기가 아닐까.”

“그럴 수도 있습니다. 아직 생일이 안 지나셨으니 19살이시니까요.”

앨런이 이안을 바라보았다.

그 사이 아리엘이 옅은 분홍색 꽃들과 하얀색 꽃들을 몇 개 꺾어 손안에 쥐었다.

‘화관을 쓴 백호라니.’

요새 이안의 집무실에 들어가지 않아, 그의 집무실에 그녀가 준 꽃이 아직도 살아 있다는 것을 모르는 아리엘이 연보라색 꽃들을 마저 따고 철퍼덕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이 정도면 3, 4개는 만들 수 있겠어.’

하나는 실패에 대비하기 위함이었고, 다른 하나는 여분의 화관을 만들기 위해서였고, 나머지 하나는 진정한 성공작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아리엘이 조그마한 꽃송이들이 있는 줄기를 따기 시작했다.

‘여기서 꽃을 하나 더 추가하고.’

아. 근데 사무실은 어디로 옮겨야 하지.

‘매장 위치도 봐야 하는데.’

중앙 도시 명품골목은 건물을 살 때 드는 매매 가격이 높았지만 그만큼 상류층들이 많이 다니었고, 중앙 도시의 일반적인 건물은 수인들의 유동 인구가 높았다.

‘어디를 사무실로 쓰고 어디를 매장으로 쓰나. 그것이 문제로다.’

같은 건물에다가 사무실과 매장을 같이 둘 것이냐, 그것도 문제이고.

그녀가 클로에에게서 받은 장소들을 떠올렸다.

갑자기 이안이 방에 들어오는 바람에 마지막 장소는 제대로 확인도 못 했지만.

개중에는 정말 괜찮은 곳들도 몇몇 있었다.

입지 조건이나 근처의 유동 인구나.

아리엘이 빠른 손놀림으로 화관을 마저 매듭지었다.

‘이제 끝!’

그녀가 만족스럽게 화관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화관에 묶여 있던 꽃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아.’

제대로 안 묶었나?

나는 힘없이 떨어지는 꽃들을 망연히 바라보았다.

‘내가 어떻게 묶은 꽃들인데.’

사실, 꽃을 묶는데 별 노력을 안 들이긴 했다.

역시 뭐든지 쉽게 되는 건 없었다.

마리가 떨어진 꽃들 중 하나를 주워들어 열심히 손을 움직였다.

“아리엘 님, 머리에 꽂으셨던 꽃 떨어지셨어요.”

아리엘과 똑같이 귀 뒤에 꽃을 꽂은 레아가 빙그레 웃으며 떨어진 꽃을 주었다.

“상관없어.”

어차피 아무 생각도 없이 기분 좋아서 하나 따다 머리에 꽂은 거거든.

“꽃 꽂고 헬렐레하고 돌아다니는 고양이는 너무 매력 넘치는데. 다른 사람들 앞에서 그러고 다니지 마.”

자연스럽게 다가온 이안이 아리엘의 옆에 앉아 엉망이 된 아리엘의 머리카락을 빗었다.

‘쟤는 품속에 빗도 들고 다니는 걸까.’

도대체 왜 들고 다니지. 자기 머리 빗으려고 들고 다니는 걸까.

이안에게서 시선을 뗀 아리엘은 이런 사태를 예견하고 옆에 쌓아둔 꽃들을 집어 들었다.

화관 만들기에 정신을 집중한 아리엘이 빠르게 화관을 만들어갔다.

“아리엘, 근데 나는?”

“너, 뭐?”

“나는 왜 꽃 안 꽂아 줘?”

그가 레아와 마리를 쳐다봤다.

레아와 마리가 이안에게 짧게 고개를 숙였다. 그들의 귀 뒤에는 똑같이 꽃이 꽂혀 있는 상태였다.

“네 건 없어.”

아리엘이 무심하게 말했다.

‘이 부분에서 새로운 꽃을 집어넣어서 같이 엮기 시작하고….’

어느덧 이안이 만지고 있던 그녀의 까만 머리는 가지런하게 예쁜 모양새로 땋아져 있었다. 세 갈래로 그녀의 머리를 땋은 이안이 머리카락을 손에서 놓지 않은 채 다른 손으로는 품을 뒤적거렸다.

“너무한데. 이렇게 호랑이 차별하면, 호랑이들 사이에 끼어 있는 백호 소외감 느껴.”

익숙하게 자신의 품에서 끈을 꺼낸 이안은 아리엘의 머리 끝부분을 빙빙 둘러 끈으로 꽉 묶었다.

“네가 다 씹어먹는 건 아니고?”

너라면 모든 호랑이를 이길 수 있을 것 같은데.

머리들이 하늘 높은지 뻗쳐 있게 빗어 내렸던 처음과 달리, 그가 아리엘의 머리로 이것저것 장난을 치면서 아리엘의 머리를 묶는 그의 솜씨는 일취월장했다.

“나는 고양이의 보살핌이 필요한 연약한 백호인데.”

땋아져 있는 아리엘의 머리를 몇 번 만지작거리던 이안은 만족스럽게 그녀의 머리를 내려놨다.

머리에서 미세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어느새 화관을 다 만들고 이안이 자신의 머리에 자유를 줄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던 아리엘이 고개를 틀었다.

“이제 됐어?”

그녀가 뒤를 돌아 정성껏 만든 화관을 무심하게 씌워 줬다.

“자. 오다 주웠어.”

“…이건 물 안에 담가 놓을 수도 없는데.”

“뭐라고?”

“아니야.”

그가 머릿속에서 이 화관을 어떻게 해야지 오랫동안 최상의 상태로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했다.

‘…저기다가 페로몬을 걸어 놓고, 시들 때쯤이면.’

“이안?”

아리엘이 어딘가 주눅 든 목소리로 말했다.

“마음에 안 들면 땅에 묻어서 자연으로 돌려놔…”

그래도 나름 잘 어울렸는데.

화관을 쓴 하얀 호랑이는 생각보다 너무 예뻤다.

북부를 지배하는 용맹한 호랑이에다가 꽃이라니.

너무나 완벽한 조합이었다.

‘하얀 계열 말고 색깔이 뚜렷한 꽃으로 만들 걸 그랬나.’

막상 그의 머리 위에 화관을 올려 두고 나니 티가 안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너무 하얀색 계열로만 했나 봐.’

아리엘이 이안의 머리 위에 씌어진 화관을 향해 손을 뻗었다.

‘……?’

그러나 화관은 아무런 미동 없이 꼼짝 않았다.

“난 이걸 자연에 돌려놓겠다고 한 적 없는데.”

이안이 아리엘을 똑바로 쳐다보면서 말했다. 햇빛이 부스스하게 그를 비추었다. 그의 파란 눈동자가 투명한 호숫가의 물처럼 보였다.

아리엘은 그의 눈을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생각했다.

‘…이렇게 보니까 또 나름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그가 꽃들을 주워들어 주섬주섬 엮기 시작했다.

근데, 지금 업무 시간 아닌가?

“이안 근데 일 안 해?”

“잠시 쉬는 중이야.”

빠른 손놀림으로 꽃을 엮고 있던 그가 그녀를 바라봤다.

“땡땡이치는 상관은 별로던데.”

“평소에 일 열심히 하니까 괜찮아.”

“보좌관들이 보고 싶어 하지 않을까.”

“보좌관들은 내가 없는 지금을 더 행복해할걸.”

화관을 거의 다 만들어 낸 이안이 아리엘을 은근히 쳐다보았다.

그의 손은 어느덧 화관의 끝매듭을 짓고 있었다.

화관을 이리저리 흔들어 보던 그가 꽃이 떨어지지 않는 걸 보고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쟤는 왜 화관도 잘 만들어?’

정말 성격 빼고 모든 게 완벽한 걸까.

금세 화관을 만든 이안이 아리엘의 머리 위에 올려 주어 줬다.

그와 똑같은 꽃들로 이루어진 화관이 아리엘의 머리 위에 씌어져 있었다.

검은색 머리 위에 하얀 꽃송이들이 있으니 화관이 눈에 띄었다.

‘오. 신기하다.’

몇 번 화관을 만지작거리던 아리엘이 어서 일을 하라며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이안에게 일어나라고 손을 내밀었다.

그가 눈꼬리를 살포시 휘며 그녀의 손을 맞잡고 일어났다.

“……?”

그러나 그는 잡고 있던 손을 풀지 않았다.

다 일어난 그가 손을 내려놓을 거라고 생각했던 아리엘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그를 쳐다봤다.

세지 않게 그녀의 손을 맞잡은 그가 그녀를 향해 고개를 툭 숙였다.

곧 그녀의 귀에 느른한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아리엘, 더워.”

전혀 더워 보이지 않는 목소리였다.

뻔뻔한 이안의 작태에 아리엘은 황당함을 숨기지 못했다.

180 후반대의 남자가 몸을 숙여 자기에게 기대는 일은 생각보다 심장에 해로운 일이었다.

아리엘이 그를 쳐다보자 그가 햇빛이 가장 자신의 머리에 잘 반사되는 각도로 고개를 틀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치자 그가 눈을 살포시 접어 올리며 눈웃음을 쳤다.

자신한테 기대서 이러고 있는 게 강아지 같기도 하고,

강아지가 아니면 꼭….

‘여우…?’

끼 부리는 여우 같았다.

아리엘이 어버버하면서 당황해하는 사이, 그가 능숙하게 저택 앞까지 그녀를 이끌었다.

그가 서운한 듯 눈을 내리깔았다.

“고양이에게 일하라고 저택 앞에까지 떠밀려진 불쌍한 백호는 이만 가 볼게.”

네가 데리고 왔잖아.

말문이 턱 막힌 아리엘은 멀어져 가는 이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

“스칼, 이안이 드디어 미친 걸까?”

“갑자기 무슨 말씀이십니까?”

집무실에서 문서를 보고 있던 루카스 세르디한은 문서를 내려놨다.

그가 내려놓은 문서에는 이안 카델리온이 화관을 쓰고 저택을 돌아다닌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아. 걔는 원래부터 미쳐 있었지.”

확실히 이안은 환희의 전쟁 때부터 봐도 정상은 아니었다.

그가 내려놓은 문서를 다시 집어 확인한 뒤 촛불에 불태웠다.

그때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시종의 목소리가 들렸다.

“펠릭스 상단의 대표와 리카 세르디한이 만나 얘기를 나누고 있다고 합니다.”

그 말을 들은 스칼이 입을 딱 벌렸다.

“펠릭스 상단의 대표면 요즘 가장 화제의 인물 아닙니까. 경매 이후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던데 여기는 웬일인지….”

이런 미친.

자신의 여동생은 또 무얼 한 것일까.

그는 황금빛 머리를 쓸어넘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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