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
“아리엘 님. 그거 아세요?”
내 머리카락을 들어 올린 레아가 머리를 부드럽게 빗어 내렸다.
“세드리한 가문 있잖아요.”
“응.”
“거기 일하는 마구간지기가 똥통을 처리하다가 자기 몸에 똥통을 엎었대요. 근데 하필, 그 마구간 지기가 똥통을 엎을 때 모든 사람이 모여서 그를 쳐다보고 있었던 거죠.”
그 말에 아리엘의 동공이 살짝 흔들렸다.
“이름이 한스였던 것 같아요.”
“그래?”
순간적으로 저번에 머리를 맞대고 메리와 양다리를 걸친 남자를 어떻게 해야 할까 하고 작당한 것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아리엘이 아무것도 모른 척 시선을 창밖으로 돌렸다. 창문 바로 앞에 있는 나뭇가지에는 파랑새가 걸터앉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파랑새를 보지 못한 척, 파랑새에서 눈을 돌려 먼 산을 바라봤다.
‘꼴 좋다.’
당장이라도 웃음이 나오려고 하는 마냥,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것을 가리기 위함도 있었다.
“아 근데 똥통에 빠지고 나서 ‘저주받은 편지 때문이야!!!’ 라는 정신 나간 소리를 하면서 화를 냈다는 거예요! 자기가 잘못했으면서.”
내 머리를 빗겨 주던 레아가 키득키득 웃었다.
음. 그 편지는 내 짓인데.
나는 애매한 미소를 입가에 걸쳤다.
“이제는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보기만 해도 발끈하면서 ‘이 빌어먹을 편지….’라고 중얼거리고 다녔다는데, 하필.”
“지나가는 그 집 아가씨께도 한 거죠. 리카 세드리한 영애님께.”
“그 세드리한 영애님께??”
한스는 내 생각보다 더 대단한 위인이었다.
양다리도 모자라 모시는 가문의 아가씨에게 욕이라니.
‘그것도 세드리한의 금지옥엽 딸에게.’
세드리한의 금지옥엽 딸에 대한 것은 유명했다.
‘이 저택에 오자마자 가장 먼저 듣게 된 소문들 중 하나가 세드리한 가(家)의 딸이 고용인들에게 어떻게 벌을 내렸는지에 대한 것이었으니까.’
세드리한 영애의 앞에 찻잔을 내려놓다가 찻물을 흘린 하녀는 그녀의 전담 하녀에서 ‘세드리한 영애가 아끼는 식물 키우는 일을 맡은 사람’으로 직업이 바뀌었다.
세드리한 가의 영애는 물의 소중함과 물을 다루는 방법을 알게 하기 위해 시녀에게 식물을 키우도록 했다.
‘그런데 그 식물이 보통 식물이 아니었지.’
그 시녀가 키우게 된 식물은 파리 같은 벌레를 잡아먹을 수 있는 영애가 아끼는 식물이었다. 그런 식물을 키우는 일에 적성이 맞은 하녀는 하녀로 일하는 대신에 정원사로 직업을 바꾸었다.
‘곤충을 잡기 위해 입을 쩍 벌리는 모습이 사랑스러워 보인다나 뭐라나.’
그 식물의 이름을 한나절 동안 세드리한 영애와 같이 고민하여 ‘날벌레 지옥’이라고 붙여 준 일화는 유명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발이 꼬여 철퍼덕 넘어져 실수로 음식을 엎어 버린 하녀에게는 음식의 재료들과 친구가 되라며 돼지와 닭을 관리하는 걸 시켰다고 한다.
높은 연봉과 사랑스러운 생물체들에 만족한 하녀는 그 뒤부터 다모아 영애가 동물을 수집하면 그것을 맡아 돌봐 주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밀대로 가지고 싸운 사용인들을 보고 어떻게 반응했는지에 대한 것은 이미 대륙에 자자했다.
“그렇게 열심히 싸우는데 나무 밀대 하나도 부러트리지 못하다니, 실망스럽기 짝이 없어.”
그녀가 한순간에 밀대를 부서트리고 이렇게 말했다고 했지.
“그렇게 부실해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려고 해.”
“팔 힘을 길러야겠네. 나한테 좋은 방법이 있는데.”
그다음 날부터 그들이 나무 밀대를 한 손으로 부러트릴 수 있을 때까지 바닥을 청소하는 밀대를 가지고 싸웠던 하인들은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아침마다 저택 한 바퀴를 구석구석 돌았다고 한다.
가끔씩은 세드리한 영애가 찾아와서 ‘쯧, 이러다가 언제 팔 힘을 기르려고.’ 하면서 혀를 찼다는 이야기도 나돌고 있었다.
세드리한 영애는 자신의 사용인들을 혹독하게 처벌하지 않았다.
단지 처벌하는 방식이 좀 특이했을 뿐.
“그래서 그 집 하녀들이 어디에 내놔도 다 잘하잖아요.”
“워낙 상상치도 못한 이유들로 인사이동이 잦은 곳이라.”
자신에 대해 자부심이 넘친다는 카델리온 가(家)의 사용인들도 인정하는 수인들이 세드리한 가(家) 수인들이었다.
처벌을 받고 나서 능력이 좋은 사용인이라고 이름을 떨친 수인들이 꽤 많기 때문에 분명 사교계에서 가장 뜨거운 이야깃거리들 중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그 집에서 쫓겨났대요.”
“그게, 어떻게 쫓겨냤냐면….”
내 머리를 빗질하던 레아가 잠시 멈칫하더니 마저 빗어 내렸다. 내 머리카락 한 가닥까지 다 빗어 내린 레아가 환한 미소로 짝하며 박수 쳤다.
“아! 세드리한 가(家) 영애께서 한스에게 돼지 분장을 시키셨대요.”
“그리고….”
레아가 말끝을 흐렸다.
아리엘이 눈을 크게 뜬 궁금한 표정으로 레아를 쳐다봤다.
“파리를 잡으러 뛰어다니는 개구리처럼 저택에서 팔짝팔짝 뛰면서 나가라고 하셨다지 뭐예요?”
“울음소리는 양 소리를 내도록 했대요.”
세드리한 영애는 그새 그 마구간 지기가 다른 여자와 바람핀 것까지 조사한 게 분명했다.
그리고 이런 사항은 신분을 가리지 않고 모든 수인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양다리를 걸친 결과가 이렇게 된 것이다.
물론 다모아 영애에게 신경질을 낸 것도 있지만.
‘메에에에에…’ 거리면서 개구리 점프를 하는 돼지 분장을 한 마구간 지기라니.
“푸흡…. 푸하하하하!”
손으로 입을 가리고 들썩이던 나는 웃음을 참는 것을 포기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얼마나 많이 웃었는지 내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하긴, 원래 세드리한 가(家) 영애의 체벌이 유별난 걸로 유명하긴 했지.”
한참을 웃느라 내 눈에 그렁그렁하게 맺혀 있는 눈물을 닦았다.
“삐…. 삐삑.”
옆에 앉아 있는 새도 열린 창문으로 그 이야기를 들은 건지, 중간에 뚝뚝 끊기는 새 울음소리가 들렸다.
옆을 보니 가만히 앉아 있던 파랑새가 이젠 자신의 날개로 자기 입까지 가리고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나중에는 나뭇가지를 치면서까지 웃었다.
그녀가 동물인 상태인 걸 아는데도 기분이 묘했다.
친구 딸 재롱잔치 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고양이 상태인 나를 본 이안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내가 옆에 있는 파랑새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레아가 방긋 웃었다.
“혹시 저기 위에 올라와 있는 새가 무리를 했는지 날개를 부들부들 떨고 있는데, 혹시 보기 불편하시다면 나무 위에서 내려오게 할까요?”
내 머리를 다 빗은 레아가 팔에 힘을 준 상태로 빗을 쥐었다. 당장이라도 저 빗이 날아가 파랑새의 머리에 강타할 것 같았다.
하지만 파랑새는 내 측근이었다.
때문에 바로 옆의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파랑새의 머리가 터지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면 곤란했다.
나는 파랑새의 머리가 펑 터지는 그 장면을 머릿속에서 지우곤 고개를 내저었다.
“종이랑 펜 어디 있는지 알아?”
“빨리 가져오도록 하겠습니다.”
그러자 파랑새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레아가 아쉬운 눈빛을 하곤 방에서 나갔다.
“왜 왔어?”
“삐-삐-.”
“지금 와서 일반적인 새인 척하기에는 너무 늦은 것 같지 않아?”
“…….”
“입 가리고 웃으면서 부들거릴 때부터 그른 것 같은데.”
그러자 나뭇가지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던 파랑새가 못마땅한 눈빛으로 나뭇가지에서 날아와 내 어깨 위에 착지했다.
내가 손가락을 갖다 대자 파랑새가 내 손가락을 콱 물었다.
“아.”
손가락에 희미하게 파랑새가 문 자국이 남았다.
“이안이 화낼 텐데.”
아리엘이 중얼거리자 콧방귀를 한 번 낀 파랑새가 날개를 활짝 펼쳤다.
“아, 그건 자기 일이 아니라고?”
“삐.”
날개 사이에 숨겨져 있던 꼬깃꼬깃하게 접힌 종이가 툭 하고 책상 위에 떨어졌다.
아리엘이 앞에 있는 꼬깃꼬깃하게 접혀 있는 종이를 펼쳤다. 종이는 메모장 정도 되는 크기였다.
‘내가 노안이 온 건가.’
아직은 그렇게 늙지 않은 것 같은데.
나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 종이 안에 써져 있는 글씨를 살펴봤다. 그렇게 한참을 쳐다본 후에야 겨우 메모장을 해독할 수 있었다.
“그레이트 홀이 거의 다 준비가 되었다고?”
“삐.”
옆에 있는 새가 위아래로 고개를 끄덕였다. 경매장에서 보았던 형형한 눈빛과 달리 그녀가 부리는 파랑새들은 귀엽고 깜찍하기 그지없었다.
“나는 그날 그레이트 홀 시녀로 들어가게 해 달라고 전해 줘.”
“삐이.”
그러자 내키지 않는 듯 파랑새가 고개를 끄덕였다.
“클로에랑은 잘 지내?”
그러자 내 어깨 위에 있던 새가 팔짱을 끼는 것처럼 자기 날개를 모았다.
“아 잘 지낸다고?”
아리엘이 능청스럽게 웃었다.
“나도 잘 부탁해. 이제 한 식구가 될 거잖아.”
나는 앞에 있는 새에게 악수를 청했다. 그리고 악수를 청한 내 손은 앞에 있는 쌀쌀맞은 파랑새의 날개에 맞았다.
새침하게 내 손을 때려 버린 파랑새는 내 어깨를 받침으로 삼아 힘찬 도약을 하며 포르르 날아갔다. 나는 날아가는 파랑새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이게 은근 아프구나.”
나는 새의 부리 자국이 남은 내 손가락을 보며 허망하게 중얼거렸다.
“어디가 아파?”
그때 종이와 펜을 들고 온 이안이 물었다.
나는 황당한 눈초리로 그를 쳐다봤다.
‘난 분명 레아에게 시켰는데 왜 쟤가 오는 걸까.’
나는 자연스럽게 내 손을 자연스럽게 뒤로 숨기곤 고개를 저었다.
“아무 데도.”
좋아. 자연스러웠어.
뒷짐을 진 나는 창문이 있는 벽에 붙었다. 내 허리 정도 위치에 있는 창틀의 촉감이 뒷짐을 진 손에서 느껴졌다. 나는 창틀을 만지면서 손을 만지작거렸다.
“창틀에 머리라도 박았어?”
어느새 다가온 이안이 내 머리카락을 들어 유심히 두피를 관찰했다.
“무슨 소리 하는 거야.”
“한두 번이 아니잖아. 어디에 박고, 넘어지고.”
“그거 착각이야.”
아리엘이 창틀에 걸터앉았다. 창틀에 걸터앉는 걸 바라본 이안이 아리엘의 머리를 창틀에 기대게 했다.
“코뿔소도 그렇게 박아 대지는 않을걸.”
“코뿔소는 세니까 약자를 배려하는 거겠지.”
아리엘이 아무 말이나 내뱉는 것을 본 이안이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아리엘, 코뿔소야, 호랑이야.”
“코뿔소.”
“남부의 코뿔소가 얼마나 흉악한지 몰라서 하는 말인 거야?”
“모르니까 하는 말이지.”
그가 비뚜름하게 웃었다.
“아리엘, 새로운 남자는 안 돼.”
“나 아직 연애 한 번도 못 해 봤거든!”
모솔 서운하게. 자기는 마음만 먹으면 하루 한 번씩 사귈 수 있으면서.
아무랑도 사귀지 말라는 말과 다름없는 그의 말에 그녀가 발끈했다.
그녀가 이안에게 항의하면서 몸이 기우뚱거렸다. 아리엘이 급하게 자신이 앉아 있는 창틀을 붙잡았다. 그리고 이안의 눈이 아리엘의 손에 닿았다.
‘아. 맞다. 손 숨겼어야 했는데.’
나는 화들짝 놀라며 손을 뒤로 숨기려고 했지만 이안이 더 빨랐다. 이안이 내 손을 가져가 파랑새가 문 자국을 손가락을 세우고 손끝으로 쓰다듬었다.
“아리엘, 이거 뭐야?”
“새랑 싸웠어.”
아리엘이 그의 눈을 피했다. 그러자 이안이 손을 쓰다듬으면서 페로몬을 흘려보냈다.
따뜻한 기운이 내 몸 안에 맴돌더니 손끝에 있던 상처가 감쪽같이 사라졌다.
‘쟤는 저렇게 페로몬을 남발해도 되는 걸까.’
새가 내 손가락을 문 상처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을 본 이안의 눈동자에 만족스러움이 차올랐다.
상처를 지운 그가 비뚜름하게 입매를 올렸다.
“누가 너한테 흔적을 남겨 놨네.”
“나도 못 남긴 흔적을.”
“어떤 새야.”
새 뒤에 끼가 들리는 것은 기분 탓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