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1. (72/111)

71.

클로에의 뚱뚱한 개코원숭이를 필두로 콧구멍을 벌렁거리고 있는 뚱뚱한 고릴라를 비롯한 몇 명이 음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가씨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 일대에서…”

“됐고, 필요 없습니다. 좋은 말할 때 보내 주시죠.”

클로에가 무표정하게 그 사람들의 말을 뚝 잘랐다. 앞에 있는 수인들에게 기죽은 기색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쟤가 왜 저기 있어.’

나는 그 광경을 보다가 어둠에 숨어 그들에게로 다가가 그들을 가만히 지켜봤다. 마음 같아서는 그 자리에서 클로에를 데려오고 싶었다.

‘잘못 나서면 망하는 거야.’

때를 봐서 기회를 노리자.

“이게 말로 오냐오냐 해 줬더니. 지가 뭐라도 된 줄 아나 보네?”

‘뭔 개소리하는 거야.’

그러나 클로에는 아무 말 없이 차가운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앞에 윙윙거리는 파리를 볼 때보다도 못한 것을 볼 때의 시선이었다.

그러자 개코원숭이는 그 눈빛에 부아가 치밀었는지 그녀를 향했던 끈적거리던 눈빛이 차차 이글이글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상품에 흠집이 나도 이 정도는 괜찮겠지.’

노골적으로 앞에 있는 클로에를 훑어본 그가 입맛을 다시며 씩 웃었다. 그가 기분 나쁜 웃음을 짓자 삐뚤빼뚤하게 난 누런 이가 드러났다.

허공으로 치켜든 그의 손과 함께 입 냄새가 날 것 같은 불쾌한 입이 열렸다.

연한 황토색을 깔 맞춤한 그의 옷이 그의 살로 인해 터질 것 같았다.

“따라오라면 곱게 따라…”

빡.

보다 못한 내가 그 자리에서 있는 힘껏 허공으로 뛰어오르며 그의 중앙을 강하게 가격했다.

“아아악!”

공격이 제대로 먹혀들어 갔는지 그가 중심을 잡고자 비틀비틀거렸다. 그때, 아슬아슬하게 그의 배를 채우고 있던 단추 하나가 튕겨 올라갔다.

‘이 벌레보다도 못한 새끼가 뭐라고 하는 거야.’

그의 중심을 세게 차고 바닥에 안전하게 착지한 나는 비틀거리는 수인을 차갑게 쳐다봤다. 무슨 멋을 부리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에 서 있는 수인들 모두 하나같이 장발이었다.

‘장발이라면 앨런처럼 철저하게 관리라도 하던가.’

좋지 않은 걸 보니 기분이 나빴다.

그 몸에 닿은 내 발을 당장 씻어 버리고 싶었다. 아무것도 묻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불결하고 끈적끈적한 액체를 온몸에 뒤집어쓴 느낌이었다.

눈이 빨갛게 충혈된 채 중심을 잡고자 비틀거리던 개코원숭이가 두리번거렸다.

“어떤 새끼야!!”

쓸데없이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길거리를 울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축제 날에 그런 목소리 하나만 듣고 마차 대여소 뒷골목으로 오는 수인들은 없었다.

“나와. 안 나와?”

충혈되어 붉은 눈을 희번득 뜨고 나를 찾기 위해 돌아다니는 모습에서 광기가 느껴졌다. 자기를 찬 사람을 가만두지 않겠다는 다짐이 여기까지 느껴졌다.

바닥에 서서 그를 노려보고 있던 나는 클로에의 그림자 속에 숨었다.

“어? 여기 있었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그와 눈이 마주쳤다.

나랑 눈이 마주친 개코원숭이가 씨익 웃으며 몸을 굽혀 나를 끌어 잡으려고 했다.

그 순간, 내가 클로에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잽싸게 달렸다.

“야! 너네. 쟤 안 잡아?”

그 말이 끝나자마자 벙쪄 있던 다른 수인들이 나를 잡기 위해 그 좁은 길거리를 뛰어다녔다. 나는 거대해 보이는 그들의 다리 사이를 휙휙 빠져 나가며 이를 악물고 피했다.

‘연무장 몇십 바퀴 뛰기가 이때를 대비한 건가.’

성인 남자들이 새끼 고양이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헛손질을 해 댔다. 아리엘이 누구의 다리 사이로 지나갈 때면 자기들끼리 충돌하는 일도 발생했다.

‘대로, 대로까지만 더 나가면.’

정신없이 달아나자 환한 대로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바로 뒤를 힐끗 보니 커다란 손이 나를 향해 뻗어오고 있었다.

뻗으면 바로 닿을 만한 거리였다.

그 커다란 손이 나를 잡기 위해 다가오는 일련의 과정이 슬로 모션이라도 된 듯 느리게 보였다. 나는 앞을 향해 계속 달리며 곧 얼마 남지 않은 그 손과 나 사이의 거리를 가늠했다.

‘잡히겠다.’

망할.

“어억.”

그리고 그 순간 신음 소리와 함께 성인 남성의 체구가 내 바로 앞에 풀썩 쓰러졌다.

클로에가 처음 보는 서늘한 표정으로 앞에 있는 쓰러진 남자를 바라봤다.

“그러게, 내가 좋게 말할 때 보내 달라고 했잖아요.”

새로운 마음으로 다시 살아가려고 했더니.

클로에가 혼자 중얼거린 뒤, 뒤를 돌았다.

아리엘은 멍하니 자기 앞에 쓰러진 황토색 개코원숭이를 바라봤다.

‘썩은 참깨 빵 같기도 하네.’

나는 쓰러진 남자의 손가락 위에 올라가서 있는 힘을 다해 뛰었다.

‘손가락 하나는 부러져라.’

그렇게 그 손가락에서 내려오기 무섭게 그 위에 회색 옷 입은 다른 수인이 쓰러졌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무심코 생각했다.

‘썩은 참깨 빵 위에 순 쇠고기…?’

잠시만. 이거 노래로 만들었던 것 같은데.

나는 어딘가 익숙한 느낌에 기억을 더듬었다.

왠지 노란 장갑을 쓰고 붉은 입술로 포인트를 준 광대가 반겨줄 것 같은 곳에서 나왔던… 그 노래?

‘그래! 그거였어.’

차곡차곡 쌓이는 모양새가 광고에 나온 노래 가사와 찰떡같다.

기억을 복기하는 것을 끝내기가 무섭게, 마지막 한 명까지 그 위에 정확하게 쓰러졌다.

‘따라따따따.’

쓰러진 개코원숭이 위로 차례차례 쓰러지는 그들의 모습이 햄버거가 만들어지는 과정 같았다.

내가 입을 떡하니 벌린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그러자 그 서늘한 모습으로 뒤에 있던 남자들의 뒷목을 때리던 모습은 어디 가고 그녀가 수줍게 말했다.

“옛날에 뒷골목에서 일했을 때 관련된 일을 한 적이 있어서…”

‘책 속에서 궂은일을 도맡아 했다고 했는데 궂은일이 이런 궂은일이었어?’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었다.

내가 놀란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가 볼을 붉힌 채 눈을 밑으로 내리깔았다.

“사실 아리엘 님을 만나고 나서 과거를 청산하고 착하게 살고 싶었는데, 저것들이 아리엘 님께 손을 대려고 하니 그만….”

거기까지 말을 마친 그녀가 걱정스럽게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원래라면 무서움에 덜덜 떨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나는 딱히 기겁한다든가 하지 않았다.

이것에 기겁하기에는 내 뒤에 있었던 사람의 머리를 태연하게 몸통과 분리시켰던 이안과의 첫 만남이 워낙 강렬했던 탓이었다.

카델리온 가(家)에 살면 이런 이상현상에 점점 적응하게 되는 건가.

‘여주인공이 이런 비하인드 스토리를 가지고 있을지 몰랐네.’

착하게 산다고 했으니까 좋은 게 좋은 거겠지, 라고 생각한 나는 두 앞발을 들어 그녀를 향해 박수를 쳐 주었다.

“잠시만요.”

그러자 그녀가 배시시 웃고는 앞에 쌓여 있는 인간 햄버거들에게 다가갔다. 그러곤 맨 밑에 있는 사람의 발을 밟았다.

그녀가 발을 밟고 나자 나는 그녀에게 달려갔다.

‘클로에.’

그녀 앞에 달려간 나는 필사적으로 그들의 머리를 묶기 위해 최선을 다해 내 양발에 들고 있는 머리를 비비적거렸다. 그러자 그런 나를 지켜보던 클로에가 말했다.

“아. 모두의 긴 머리가 엉켜 버리게 서로의 머리를 묶자. 이런 얘기인 거죠?”

정확해.

나는 씩 웃었다.

그렇게 나는 클로에를 도와 그들의 머리를 하나하나 엮었다. 그러곤 서로의 머리카락이 잘 엉켜 있나 꼼꼼히 확인했다.

골목에 있는 수인들의 머리가 얇게 한 가닥 한 가닥씩 서로의 머리카락과 묶여져 있었다.

‘깨어날 때 서로의 머리가 엉켜 있는 짜증 나는 기분 좀 느껴 보라지.’

어딘가 통쾌한 기분을 느낀 나는 그대로 뒤를 돌아 유유히 골목에서 나와 클로에와 같이 그녀가 머물고 있는 여관으로 걸어갔다.

***

“자기야, 사랑해.”

“나도….”

남자의 손이 애인의 허리를 은근히 매만졌다. 여자가 달콤한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봤다.

“여기서는 말고….”

여자가 애교스럽게 앞에 있는 수인에게 말하며 그에게 뒤에 있는 골목을 눈짓했다.

그렇게 한참 꽁냥거리던 수인 둘이 분위기를 탔는지, 축제에서 빠져나가 뒷골목으로 향했다. 아무도 없는 뒷골목 길에서 남녀가 묘한 눈길을 주고받았다. 격정적인 스킨십이 시작될 찰나였다.

“자기야, 저게 뭐야…?”

그녀의 손가락 끝에는 성인 남자 네 명이 차곡차곡 포개져 있는 모습이 있었다. 술 대신 머리카락으로 도원결의를 한 듯, 머리카락은 예쁘고 세세하게 서로의 머리카락과 묶여 있었다.

그때 차곡차곡 쌓여 있는 수인들 사이에서 손가락 하나가 움찔 움직였다. 이상한 광경을 본 것 같이 미간을 살짝 찌푸린 여자가 자신의 애인의 팔목을 잡았다.

“…여기 이상한 것 같아. 가자. 자기야.”

어느덧 그들 사이에 흐르는 농염한 분위기는 다 깨진 지 오래였다.

“그래.”

남자는 다정하게 말하며 여자 몰래 그들을 째려보고 발을 돌렸다.

‘젠장, 이게 무슨 꼴이야.’

그들이 가자, 맨 아래 깔려 있던 수인이 옆으로 자신의 몸을 틀어 자기 위에 올라가 있는 수인들을 거칠게 떨어뜨려 놓았다.

“아!!”

그렇게 일어나려고 할 찰나, 누가 머리카락을 강하게 잡아당기는 느낌에 그가 다시 주저앉았다. 그대로 일어났다가는 자신의 머리털이 다 뽑힐 것 같았다.

찬찬히 자신의 머리를 살펴보던 그가 자신의 머리카락이 다른 수인들의 것과 엉켜 있다는 것을 알아내기에는 얼마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한 명, 한 명 일어날 때마다 머리가 떨어질 것 같은 고통을 경험해야 했다.

그가 이를 뿌드득 갈았다.

‘작은 항아리’에 가야 하는데.’

아는 수인에게 부탁해 운 좋게 작은 항아리의 외각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데 황금 같은 기회가 떠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런 불길한 기운에 그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했다.

‘망할.’

다음에 검은 고양이 새끼가 보이면 반드시 뼈도 못 추리게 자근자근 짓밟아 놓으리라.

그가 턱에 힘을 꽉 주었다.

그렇게 성인 남자 넷은 서로의 머리를 맞댄 채 빙글빙글 돌며 서로의 꼬인 머리를 한참 동안 풀었다.

***

인간화를 한 채 옷까지 다 갖춰 입은 아리엘은 앞에 있는 문 앞에서 한 번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녀는 지금, <작은 항아리>의 입구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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