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0. (71/111)

70.

“너는 내 페로몬을 가지고 있는 게 맞나 보네.”

그가 착잡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생각보다 빠르게 마음 정리를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더 이상 더듬지 않았다.

“나도 의심만 하고 확실하진 않았지만 네 반응을 보고 알았어.”

“원래 페로몬 주인은 자기가 제일 잘 아는 법이라고 하잖아.”

아리엘의 말을 들은 그는 느릿하게 입을 뗐다.

“…그럼 네 페로몬은?”

“…….”

나도 몰라.

할 말이 없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고개를 숙였다. 나 또한 많이 하고 있었던 고민이었다. ‘내 페로몬’은 무엇일까. 한때는 외형 변화가 내 페로몬인 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은 내 것이 아니었다. 다른 수인의 것이었지.

내 표정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페로몬이 활성화가 된다면 눈에 띄는 변화가 생길 거라고 했는데. 내가 아무리 페로몬을 사용해도 무언가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페로몬 과다라고 했던 이안이 생각났다.

페로몬이 넘쳐흘러도 눈에 띄는 변화는 없었다.

‘애초에 페로몬이 없는 것이 아닐까.’

나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래를 바라봤다.

아리엘에게서 그런 분위기를 읽은 소가주는 말을 돌리기 위해 달싹이던 입술을 열었다.

“그들은 별을 딴다고 했어.”

그는 아득한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 둠 속에서 별을 딴다고도 했었던 것 같고.”

떠올린 것만으로도 괴로운지 그가 한쪽 손으로 머리를 붙잡았다. 그의 숨이 점차 가빠지고 있었다.

“별…?”

나는 그가 말한 말을 따라 말했다.

소가주가 의식적으로 느리게 심호흡을 하더니 말했다.

“그리고 그곳에는 나만 있는 게 아니었어.”

그가 다시 아리엘을 바라봤다.

“나는 그것밖에 몰라.”

“그 실험이 페로몬을 뽑아내서 다른 사람에게 심는 것인지는 몰랐지만.”

그의 표정이 어둡게 물들었다.

“어차피 이거 듣고 싶어서 찾아온 거 아니었어?”

그건… 맞았다.

고개를 올려 그를 보니 그의 얼굴이 수척해져 있었지만 악몽에 자기 몸을 빼앗기지는 않을 것 같았다. 나는 그의 말에 긍정을 표하는 것보다 다른 길을 선택했다.

“그 기억에 몸이나 또 뺏기지나 말아요.”

고양이로 다시 변하려던 내가 한 마디를 덧붙였다.

“…만약에 정 불안하면 여긴 안전하다고 강박적으로 되뇌는 것도 어떤 방법이 될 수도 있죠. 현실을 자각하면 불안함이 덜할 테니.”

일부러 현실을 외면하는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웃기긴 하지만.

“하는 김에 취미나 그런 걸 만들어 놓으면 좋을 수도 있으니까, 취미도 만들어 보던가.”

그 말을 끝으로 내 몸이 작아지고 시야에 있는 물건들이 커 보였다.

“…냐옹.”

‘아. 이불.’

이불을 꽁꽁 싸매고 있는 상태에서 동물로 바뀌었더니 온통 눈앞이 다 하얀색이었다. 나는 위에 있는 이불을 펄럭이며 앞으로 전진했다.

“냐아아오…”

이불 좀 들어 줘.

하지만 가도 가도 끝도 없이 등장하는 이불에 나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원래 이불이 이렇게 커다랬던가.’

호랑이 저택의 이불만 큰 줄 알았는데, 이불은 종족 가리지 않고 다 거대했다.

고양이로 변해서 멋지게 퇴장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실패한 것 같았다. 그렇게 이불 안을 열심히 헤매고 있는데 하얀색으로 가득 찼던 세상이 거멓게 보였다.

“혹시 이름, 알려 주실 수 있나요.”

이불을 들어 올린 소가주가 물었다. 나는 이불을 들어 올린 소가주를 보곤 감사의 눈빛을 보냈다.

“먀옹.”

근데, 나 아기 고양이 상태잖아.

소가주도 방금 그걸 깨달았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다음에 만나면 알려 줄게.’

나는 심심한 위로의 눈빛을 건넸다.

“이불은 저 뒤로 다 치웠으니 조심히 가.”

나는 푹 수그린 얼굴로 끄덕거렸다. 그리곤 앞발을 들어 인사한 뒤, 방을 나가 원래의 방으로 돌아갔다.

열려 있는 방문 틈새로 방에 들어오니 다행히도 백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완전범죄 성공이야.’

소가주의 방에서 꽤나 오랫동안 있었기 때문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리엘.”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 무섭게 뒤에서 나를 부르는 느른한 목소리가 내 귀에 내려앉았다. 고개를 돌려보니 이안이 내 뒤에 서 있었다.

내가 그를 돌아보자, 그가 나를 들어 올렸다.

내 발이 공중에서 대롱대롱 흔들렸다.

“너, 몸이 왜 이렇게 차가워. 평소보다도 차갑네.”

그가 나를 훑어보는 눈빛으로 내 몸을 샅샅이 살폈다.

그가 자기 페로몬을 내 몸에 흘려 넣었다. 따뜻한 기운이 내 몸을 돌아다니며 이리저리 엉킨 찬 기운들을 풀었다.

그리고 페로몬을 흘려내는 동안 순간적으로 서늘한 이안의 눈빛이 아리엘을 훑었다.

“페로몬 사용했지.”

나는 고개를 그에게서 돌리곤 그를 아예 쳐다보지 않았다. 이안은 내 표정을 귀신같이 읽는 요상한 재주가 있기 때문에 얼굴을 보면 알아챌 확률이 매우 높았다.

나는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허우적거리며 내려 달라는 의사를 강경하게 전했다.

하지만 그는 피할 수 있음에도 허우적거리는 내 발에 그냥 맞았다.

내 발이 그의 입술을 퍽, 하고 때렸다.

“아. 아파.”

한 번 자기 입술을 핥은 그가 눈매를 휘었다.

“이제 아리엘의 발차기는 한 발, 한 발이 강력해서 한 번 차이면 아픈데.”

그의 붉은 입술이 짙은 호선을 그렸다.

“물론, 예전에도 강력했어. 슈퍼 펀치가 초강력 슈퍼 펀치로 진화한 느낌이랄까.”

그가 나를 침대 위에 내려놓았다. 나는 최대한 그에게서 먼 침대 가장자리로 도망쳤다. 하지만 도망친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두 뒷다리가 잡혀 질질 끌려왔다.

나를 자기 눈앞으로까지 끌고 온 그는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아리엘, 화목한 가정에선 보통 수인이 아프면 호 해 준대.”

‘…그래서?’

우리는 가족이 아니야.

설마 자기도 호 하고 불어 달라는 거 아니겠지. 나는 불안한 눈초리로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가 싱긋 웃으면서 자기 입술을 두드렸다.

‘…정신 나간 호랑이.’

‘네가 몇 살인데 지금….’

나보다 생일이 조금 빠른 이안은 스무 살이 되었을 거다.

“나도 호, 해 줘.”

그러나 내 불안한 감이 틀리지 않은 듯 그가 웃었다.

‘저 개 같은 호랑이.’

“미야오….”

나는 질린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서 돌아앉았다.

“나 오늘 밤에 늑대랑 싸우러 가야 하는데. 누구 덕분에 아파서 잘 못 싸우면 어떡해.”

그러자 그가 날 끌어안곤 애처로운 목소리를 꾸며 냈다. 나직한 그의 목소리가 바로 내 위에서 들렸다.

나는 자세를 틀어 이안 쪽을 다시 바라봤다.

‘너 몸싸움 하러 가는 거 아니잖아.’

애초에 싸우는 것도 아니고. 대화를 나누러 가는 걸 누가 싸우러 간다고 표현할까.

“입술 다쳤잖아.”

그가 자기 입술을 톡톡 쳤다.

‘잘 말하고 있잖아. 고양이 입김이라도 받고 싶은 거야…?’

서늘한 색을 띠고 있는 그의 벽안이 둥근 선을 그리며 휘어졌다. 저 눈빛은 물러날 눈빛이 아니었다.

‘맙소사.’

한 번 빠르게 그의 입술로 옅게 바람을 불어 준 내가 그에게서 쏜살같이 멀어지려고 했다.

하지만 기다렸다시피 날 안고 있던 그가 나를 더 꽉 안았다. 순간적으로 그의 입술과 내 입술이 충돌할 뻔했다.

‘아무리 아기 고양이라고 해도.’

속은 수인이라고.

당황한 내가 그의 입술을 내 발로 막았다. 너무 당황했는지 내 페로몬이 그에게로 새어 나갔다. 그러자 내 앞발에 부드럽고 축축한 느낌이 닿았다.

‘부드럽고 축축…?’

내 발을 쳐다본 내 눈이 커졌다. 입술 틈 사이로 이안의 붉은 혀가 보였다. 내 발을 핥고 있는 이안이 눈을 요망하게 접어 올렸다.

‘야!’

이 미친… 개보다도 정신 나간….

내 얼굴이 화르륵 불타올랐다.

‘인간인 상태가 아니라 고양이라서 망정이지….’

근데 얘 나 지금은 인간이라는 걸 알고 있는 상태잖아.

움찔거리는 아리엘의 귀를 본 이안이 나직하게 웃었다.

‘수인 증오하는 애 어디 갔냐….’

나는 그의 어깨에 얼굴을 파묻은 채 부끄러움을 삼켰다. 꼿꼿하게 굳은 고양이 꼬리가 이안의 볼에 닿았다.

***

그렇게 한바탕 난리 치고 시간이 좀 지나자 이안은 늑대의 수장과 대화하러 떠났다. 꽤 오랫동안 동부에 머무르기로 했는데 이안은 둘째 날에 모든 스케줄을 몰아 놨다.

“그쪽 늑대들은 야행성이어서.”

“아리엘, 그냥 늑대한테 가지 말까?”

혀를 차며 떠나기 싫다는 이안이 가고 나는 창문에 앉아 밝은 달을 바라봤다. 다행히 그가 늑대의 수장과 대화하러 가는 오늘은 내가 무조건 혼자 움직여야 하는 날이었다. 이안과 앨런에게 들키지 않게끔.

손님방이 1층에 있어서 그런지 창문의 위치는 생각보다 높지 않았다.

‘기회는 오늘밖에 없어.’

나는 가뿐하게 방에 있는 창문에서 뛰어내려 고양이인 상태로 정원으로 달려갔다.

느리게 불어오는 여름 바람이 털을 스치고 지나갔다. 나보다 더 큰 꽃들이 빠르게 뒤로 넘어갔다. 달빛에 비친 꽃들은 은은한 빛을 내었다.

이런저런 꽃들과 식물들이 많은 시몬드 가보다는 아니었지만, 이렇게 정원 사이를 달리다 보니 카온 가도 꽤 예쁜 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몬드 가에 있던 꽃들은 모두 샐레스틴 시몬드의 것이었지만.’

생각해 보니 시몬드 가주가 왜 셀레스틴을 그렇게 아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윈스턴 시몬드는 그렇게 아끼는 것 같지 않았는데 딸이라서 느낌이 다른가.

‘…시몬드 가주가 딸바보라고?’

딸바보 시몬드 가주.

어떻게 그렇게 안 어울리는 단어가 있을 수 있지.

그렇게 한참 정원을 가로질러서 개구멍으로 나왔다.

개구멍으로 나오자 바로 앞에 마차가 서 있었다. 내가 마차 앞에 바로 서자 마차 문이 서서히 열리면서 사람의 모습이 드러났다.

“아리엘 님, 오랜만이에요.”

마차에서 내린 클로에가 나를 향해 웃었다.

“냐옹.”

나는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자기 손에 나를 올려놓은 후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출발해 주세요.”

그녀의 말이 끝나자 마차가 덜커덩거리면서 움직였다. 덜커덩거리는 마차에 넘어지지 않도록 클로에가 나를 붙잡았다.

동부에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나는 곧바로 클로에에게 부탁했었다.

“내가 편지 보내면 카온 가 앞으로 내가 입을 옷이랑 해서 직접 와 줘. 아마 까만 고양이가 앞에 서 있을 거야. 걔 태워 줘.”

“네! 옷을 갈아입으실 공간이 필요하신 거면 여관까지 잡아놓을게요.”

그리고 돌무더기 섬이 새로운 광산으로 변한 이후 클로에는 거의 내 말을 무조건적으로 따랐다.

‘…까만 고양이인데 아무렇지도 않나.’

보통 다 불결한 것을 바라보듯 쳐다보던데.

나는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봤다.

“아리엘 님.”

‘왜?’

“이렇게 보니까 너무 귀여우신 것 같아요.”

응. 그래.

나는 그녀에게서 눈을 돌렸다. 마차 밖의 소리가 점점 떠들썩해지자 덜컹거리면서 갔던 마차가 정지했다.

“저는 마차 대여소에 잠시 다녀올게요.”

‘어. 다녀와.’

나는 길가 구석으로 빠져 두리번거리며 축제를 둘러봤다. 중앙 도시 축제와는 다르게 동부의 여름 축제의 길거리에는 평민인 척 위장한 귀족들이 주위를 돌아다녔다.

“설탕보다도 더 단 과일 팝니다!!”

“시원한 과일 주스 드세요!”

한쪽에는 설탕을 입은 과일들을 팔고 있었다. 그 밖에도 시원한 과일 주스나 과자들을 모아 포장한 작은 봉지, 귀족들을 따라 하고 싶은 평민들을 위한 싼 티백들을 파는 곳도 있었다.

생각보다 흥미로운 곳들이 많았다. 그리고 흥미로운 것들이 많은 만큼 사람들도 더 많이 돌아다녔다. 나는 한참 동안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근데 클로에는 왜 안 오지.’

나는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 클로에가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지금쯤이면 마차를 반납하고 여관까지 가도 남았을 시간인데.’

가 봐야 하나.

나는 클로에가 사라진 쪽으로 발걸음을 틀었다.

‘마차 대여소는 이쯤인데.’

앞에 마차들이 줄지어서 있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도 클로에는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애가 어디 간 거지?’

나는 두리번거리면서 클로에를 찾아다녔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녔을 때쯤, 마차 대여소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길거리에서 소리가 들렸다.

“아가씨, 우리랑 같이 놀자니까.”

“이 정도 얼굴이면 꽤 높게 나올 거고…, 몸도 나쁘지 않으니까.”

“우리가 잘 대해 줄게. 응?”

마차 대여소 바로 뒤에 있는 길거리는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인적이 드문 길이었다.

거기에 내가 찾아다니던 클로에가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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