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9. (70/111)

69.

방문을 열고 나오자 그 많던 사용인들은 어디 갔는지 조용했다.

‘카온 가의 영식이 이 근처 어디였을 텐데.’

아무래도 카온 가의 영식이 미쳤다는 말이 고용인들 사이에서 암암리에 퍼져 있으니 은근히 꺼리는 것일 확률이 높았다. 카온 가(家)의 가주가 잘 입막음을 해 놓고 있는지 아직까지 귀족 사회에서 카멜레온 수장의 아들이 정신이 나갔다는 이야기가 떠돌지는 않았다.

아마 원래 은거 중인 종족이었다는 점도 한몫했겠지만.

‘근처에 있기 꺼려져서 안 있는 거겠지.’

그리고 고용인이 없는 틈을 타서 나는 수월하게 구석진 곳에 있는 그의 방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내 앞에 있는 방문은 닫혀 있는 상태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행히 정원이 근처였다. 나는 정원에서 돌을 주워 다시 돌아왔다. 돌을 양발로 꽉 집곤 힘차게 문을 두드렸다.

똑. 똑. 똑.

‘돌을 너무 무거운 걸 들고 왔나.’

돌을 양발로 잡고 문을 두드리는 것은 의외로 엄청난 노력을 필요로 했다. 생각보다 큰 동작에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뚝뚝 끊어져서 났다.

똑. 똑.

몇 번 돌로 문을 두들기던 나는 돌을 내려놓고 문 앞에 앉았다.

달칵.

몇 분을 그렇게 앉아 있었을까, 문이 뒤늦게 살짝 열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것을 놓치지 않고 살짝 열려 있는 문틈을 비집고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 들어가자 커튼이 환히 걷히지 않은 상태로 사방이 어둑했다. 커튼 하나 걷히지 않은 방 안이 어두컴컴해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갈색 머리인 사람이 방구석에 틀어박혀서 귀를 막고 있는 것은 분명하게 보였다.

며칠 동안 밥을 먹지 않은 것인지 몸은 삐쩍 말라 있었고 곳곳에 엎어진 식기들이 있었다.

그에게 한 발짝 한 발짝 다가가자 미친 듯이 중얼거리는 소리가 가까워졌다.

“죄송합니다. 잘못했어요. 살려만 주세요. 제발. 오늘은 넘어가 주세요.”

내가 조금씩 그에게 다가가자 벽에 막혀 뒤로 갈 데도 없음에도 그는 뒤로 물러나려고 했다. 몇 번을 시도하던 그가 물러날 데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안 그래도 창백했던 그의 얼굴이 희게 질렸다.

패닉이 짙게 드리워진 눈동자가 심하게 떨렸다. 그는 눈을 감고 하던 말을 계속 반복해서 중얼거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어요. 앞으로는 반항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패닉이 드리워진 눈동자를 똑똑히 봤다. 눈을 감기 전의 눈동자에 서린 것은 분명한 체념이 섞인 공포였다. 그런 감정을 가져 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감정이 드리워져 있었다.

몸이 산산이 부서지고 있고 고통스러운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무력감으로 인해 미쳐 가고 있는 상황에 있었던 사람들만 알 수 있는 감정이었다. 나는 잠시 시몬드 가에 있을 때를 생각했다.

그리고 앞에 있는 수인처럼 귀를 막고 눈을 감은 채 지내던 생활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나를 실험체로 쓰려고 했던 수인들과 아무것도 못 하고 끌려가는 나.

저건 나를 통해 누군가를 투영해서 보는 것이 분명했다. 정확히는 그가 이곳에서 사라졌을 때 동안 그가 당했던 일들을 투영해서 보는 것이겠지. 그리고 아직까지도 그 기억에 사로잡혀 있는 게 분명했다.

‘문을 열고 구석에 박혀 있는 것도 그것 때문이었겠지.’

나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냐아옹.”

나는 조그만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

우선은 여기가 네가 예전에 있던 그곳이 아니라는 것을 자각시켜야 할 필요가 있었다.

“미야옹.”

한 번도 그를 부르자 그가 고개를 들었다. 눈꺼풀이 파르르 떨리며 살짝 걷어 올려졌다. 힘겹게 눈을 뜬 그는 얕게 뜬 실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눈꺼풀에 가려진 틈새로 겨우 보이는 초점 없는 주황색 눈동자가 앞에 있는 흐릿하게 나를 담고 있었다.

“냐아옹.”

정신 차려. 네 앞에 있는 건 작은 고양이일 뿐이라고.

너를 해친 그 사람이 아니라. 너는 이제 그곳에 없다고.

사시나무 떨 듯 바들바들 떨고 있던 떨림이 어느 정도 멎었다. 공포에 눈앞이 흐릿해져 초점이 없었던 그의 주황색 눈동자에 서서히 초점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의 상태가 어느 정도 확인한 나는 그에게로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그러자 그는 구석에 웅크려서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그에게로 다가가 그의 몸에 앞발을 올렸다. 아직 내가 아기 고양이라는 것을 완벽하게 인식하지 못한 듯, 그가 크게 몸을 움찔하며 눈을 다시 감았다.

나는 앞발을 올려놓은 상태에서 가만히 앉아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리엘의 깨끗한 녹안이 빛이 들어오지 않는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수인을 담고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자 구석에 몸을 웅크리고 있던 그의 근육이 서서히 이완되는 것이 느껴졌다.

그가 질끈 감은 눈꺼풀을 서서히 들어 올렸다. 그리고 나를 보고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었다.

그의 다리 위에 앞발을 올려놓은 나는 그가 진정될 때까지 기다려 주었다. 꽤나 많은 시간이 지나고 어느 정도 진정된 그는 나를 바라봤다.

“…새, 새끼 ㄱ…고양이?”

깨지 않는 악몽에 잠도 못 잤는지 그의 눈 밑은 거무튀튀해져 있었다.

적어도 의사소통이 가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 나는 그를 향해 내 페로몬의 기운을 흘려보냈다. 내 심장 깊숙이 있는 서릿발 같은 페로몬이 아니라 내 몸을 맴돌던, 내가 외형 변화를 할 때 쓰던 페로몬이었다.

어느 정도 정신을 되찾은 그는 경악하는 목소리를 내뱉었다.

“ㄴ, 너 그그 페…로몬 내 거잖아.”

몇 년 만에 말을 처음 해 보는 것과 같이 그는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네가… 왜 가, 가지고 있어?”

나는 대답하지 않고 그를 쳐다봤다.

‘이 정도면 대화할 수 있겠지.’

나는 근처에 있는 깨끗한 이불을 발견하곤 그 밑으로 들어가 내 심장 깊숙이 박혀 있는 기운을 밖으로 빼내어 몸에 두른다는 생각으로 그 기운을 응용했다.

서릿발처럼 차가운 기운이 스치고 지나가는 자리마다 동상에 걸릴 것 같이 시렸다.

‘…추워.’

익숙하게 인간으로 변한 나는 얼굴만 내놓은 채 이불을 꽁꽁 감싸고 다시 그에게 다가갔다.

그에게 다가가니, 그의 눈동자가 다시 어둑해지고 있었다. 초점이 어긋나고 점점 어두워지는 눈동자와 함께 두려움에 잠식당해 몸을 잃어버린 것처럼 그가 몸을 다시 덜덜 떨었다. 금방이라도 공포에 이지를 잃은 아까의 상태처럼 돌아갈 것처럼 보였다.

그는, 기억에 집어삼켜지고 있었다.

나는 그의 앞에 쪼그려 앉은 채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야. 정신 차려.”

내 말이 들리지 않는지 그는 덜덜 떨며 귀를 막으려고 손을 귀에 가까이 가져다 대었다. 그가 귀를 막기 바로 전, 나는 아까와 달리 그의 몸에 손끝 하나도 대지 않은 상태로 말했다.

“정신 똑바로 붙들라고. 그깟 하찮은 기억에 몸을 빼앗기지 말고.”

그러자 멈칫한 그가 다시 눈을 들어 나를 쳐다보기 시작했다.

“ㄴ, 너는 아, 안 겪, 어 봤잖아!! ㅁ, 뭐가 하, 찮다고 하는 건데!”

발끈한 그가 헐떡거리며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됐다.’

이곳이 그곳이 아니라는 걸 인했어.

우선, 내 말을 인식하게 하는 데는 성공했다.

“숨을 깊게 들이마셔.”

그러자 그의 가슴이 올라갔다.

“…천천히, 깊게 들이마셔.”

그러자 그가 천천히 숨을 들이마셨다. 눈동자를 보니 수인의 말을 그냥 듣는 최면에 걸린 것 같이 보일 정도였다.

‘악의 있는 사람이 봤다면 엄청 위험할 텐데.’

“그리고 깊게 내쉬어.”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가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몇 번을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던 그가 다시 천천히 안정을 찾아가는 것 같이 보였다.

“지금 너는 안전해.”

나는 그의 앞에 앉아 그를 바라보았다.

“누구도 너를 해치지 못하고, 지금 너는 네가 가고 싶다고 죽도록 되뇌었던 집에 와 있어.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집 말이야.”

나는 저택이 지옥이었는데.

마음이 순간적으로 깊이 침전했다.

‘그래서 도망갈 곳도 안정을 찾을 곳도 없었지.’

“그니까 너를 잡아먹고 있는 빌어먹을 악몽에서 빠져나오라고.”

이건 내가 나에게 전하는 말이기도 했다.

내 앞에 있는 수인과 마찬가지로 과거와 얽히기만 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나에게.

“하찮은 기억에 잡아먹히지 말라고. 왜 그런 거에 휘둘려.”

“너, 너가 뭘 안다고! 계속 그런 말을 해!”

그러자 어느 정도 정신을 찾았는지 그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그의 눈동자에 증오가 가득 찼다. 그가 꽤 크게 소리쳤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지 사용인들은 그를 찾지 않았다.

아무도 그 끔찍했던 그의 악몽에서 꺼내어 주지 않았다. 가주조차도.

‘수인들을 못 꺼내어 준 것이라고 한 것이겠지.’

나는 헛웃음을 내뱉었다.

“나도 당했으니까.”

그러자 그의 눈이 풍랑을 맞은 배처럼 거세게 흔들렸다.

“뭐, 뭘?”

“그 빌어먹을 실험을 나도 당했다고.”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하며 담담히 내뱉었다. 그러자 잠시 혼자 경멸과 증오로 가득 찼던 그의 눈빛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그가 내 손과 자기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설마.”

나는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매일같이 이곳이 현실이 아니라고 되뇌었으니까.”

“나는 그것에 벗어날 수도 없었어. 반항하나 반항을 하지 않나 결과는 항상 똑같았고 나중에는 체념에 이르렀어.”

처음에는 복수하겠다는 독기로 버텼고, 나중에는 이곳이 단지 책 속 세상일 뿐이라는 사실로 버텼다. 이곳이 책 속 세상이라면 내 고통 또한 거짓된 것일 테니까.

“누구는 네 얘기를 이상한 헛소리로 치부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나는 그걸 믿어. 내가 겪었으니까. 그니까 당장은 힘들 수도 있겠지만 벗어나라고. 너도.”

그리고 나도.

말을 끝마치고 고개를 들었을 때는 그는 그를 잡아먹고 있던 악몽에서 완벽히는 아니어도 그것에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난 것 같았다.

그가 내 손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그럼 너는…”

그리곤 어두운 눈으로 자기 손을 다시 내려다보았다. 그 말을 꺼내기도 힘든 듯 그가 입술을 달싹였다.

그런 그를 보고 나는 덤덤히 입을 열었다.

“누군가가 빼앗겼다면, 누군가는 강제로 주입되었겠지.”

다른 무언가를 했을지도 모를 노릇이지만.

“너, 예전에도 똑같이 당했었잖아.”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입을 닫았다. 물어보고 싶은 게 한가득이었지만 나는 쉽사리 입을 열지 않았다.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알고 있기 때문에.

내 궁금증에 답을 찾자고 아무렇지도 않게 상처로 가득한 그 사람의 마음을 헤집어 놓을 수는 없으니까.

한참 동안 미묘한 정적이 그와 나 사이에서 흘렀다.

오랫동안 그가 입을 뗐다.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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