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8. (69/111)

68.

그러자 나뭇가지가 흔들리더니 은색 머리의 남자가 나뭇가지에서 뛰어내려 방으로 들어왔다.

“윈스턴 시몬드.”

그녀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제 방으로 들어온 사람의 이름을 불렀다. 셀레스틴보다 나이가 많은 오빠였으나 그녀는 개의치 않았다.

그러나 윈스턴 시몬드는 그것도 좋다는 듯이 웃으며 앞에 있는 의자에 걸터앉았다.

“너는 왜 그 짓거리까지 하는 거야?”

“무슨 짓?”

“그 더러운 새끼의 기운까지 왜 네 팔에 꽂아 넣는 건데. 나는 아무리 이해해 보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어.”

“너보고 이해하라고 한 적 없는데.”

그녀가 은은히 웃었다. 옅은 웃음에 가려진 눈동자가 차게 빛났다.

하지만 윈스턴 시몬드는 그에 굴하지 않고 계속 입을 열었다.

“생각해 봐. 그건 상식적인 일이 아니라니깐?”

“근데?”

“애초에 그 더러운 오물의 기운을 너한테 심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돼. 처음에는 너 그 기운이랑 맞지 않아서 며칠 동안 밤새 토하고 누워 있었잖아.”

“근데 아버지께서 어떤 위대한 목적이 있으셔서 그 운수불길해 보이는 그것의 기운을 너에게 심느냔 말이야.”

“그것도 가장 고귀한 너에게.”

그가 다리를 꼬고 두 손을 맞잡은 채 머리 위로 올렸다. 그리곤 느른히 소파에 기대 중얼거렸다.

“너는 무슨 목적을 가지고 왜 또 받아들이고.”

셀레스틴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턱을 괸 상태 그대로 그를 바라봤다. 그 시선을 바라보고 있던 그가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아, 그 아리테아의 쪽지 때문인가?”

그러자 셀레스틴이 무섭게 정색하며 말했다.

“윈스턴 시몬드.”

그가 과장스럽게 중얼거렸다.

“시몬드 가문에 태어난 암흑이 시몬드 가문을 멸망시킬 것이다.”

셀레스틴에게 가까이 다가간 윈스턴이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그리고, 새로운 아리테아가 나타날 것이다.”

싸늘하게 정색한 셀레스틴이 차갑게 뱉었다.

“윈스턴 시몬드, 멍청하게 굴지 마.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지기 싫으면.”

“너 무슨…!”

“이 짓거리를 하지 않으면 네가 살아 있을 수 있을 것 같아? 방금도 들킬 뻔했잖아.”

그녀가 싸늘한 조소를 머금었다.

“머리가 있으면 똑바로 살아.”

***

마차는 꼬박 며칠을 달리고 달려 동부에 도착했다. 중간중간에 여관도 들리며 간단한 배 채우기 위한 밥을 먹기도 했다. 나는 혼자서도 대부분의 시간을 고양이인 상태로 잠으로 때웠다.

“아리엘, 아.”

‘내버려 둬. 나 잘래….’

어떨 때는 졸음에 잠긴 상태로 꾸벅꾸벅 졸면서 이안이 수저로 입에 집어넣어 주는 음식을 삼켰던 것 같았다.

“차세대의 천재이신 아리엘 님, <사회와 정의>의 첫 문장이 뭔지 아십니까?”

‘그런 거 묻지 마.’

아리엘이 귀찮다는 듯이 꼬리를 느릿하게 흔들며 앨런으로부터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이안이 느리게 털을 매만지며 즐거운 목소리를 내었다.

“아리엘, 설마 너 책을 베개로 쓰는 거야?”

‘정의란 자기방어이다.’

“냐아아. 미야오옹.”

본격적으로 귀찮아질 것 같은 분위기에 아리엘은 바로 말했다. 입으로 나오는 것은 고양이 소리뿐이었다.

알아들은 것인지 못 알아들은 건지 이안이 나를 <사회와 정의>의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정의란 자기방어이다. 정의는 중상모략에 대한 진실의 최선의 해명이 될 수 있고, 서로를 해치지 않게 하는 역할이 될 수도 있다.”

‘저 책은 또 언제 챙긴 걸까.’

“이안 님, 책을 정복한 늠름한 아기 고양이 한 마리께서 저를 죽일 듯이 노려보고 있습니다만. 혹시 <사회와 정의>는 휘두르라고 고양이님께 주신 건가요?”

“글쎄.”

가끔씩은 이런 식으로 호랑이들과 이것저것 하며 시간을 때우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그 먼먼 여정의 끝이 보이고 있었다. 어느덧 마차 창문에서 카멜레온 종족인 카온 가(家) 대문이 저 멀리서 보이고 있었다.

“아리엘. 이거 신어.”

추적추적 오는 비에 내릴 때가 되자 이안이 새끼손가락보다도 작은 것 같은 장화를 내 발에 신겼다. 쨍한 빨간 색깔과 겉에 새겨진 장미가 인상적인 장화였다.

‘세리안 부티크는 엄청 바쁜 것 같았는데 마담 헤일라는 이걸 언제 만든 걸까.’

굳이 안 만들어 줘도 되는데.

나는 물끄러미 장화를 쳐다보다가 다른 발을 장화 신은 발 위에 올려두었다. 그리곤 힘껏 장화를 벗었다. 그러자 이안이 다시 장화를 내 발에 밀어 넣었다.

답답해.

‘벗고 싶은데.’

그가 장화를 내 발 쪽으로 다시 밀어 넣자 나는 도로 장화를 열심히 벗었다.

‘안 신을래.’

그러자 그가 빗물이 떨어지면서 증식하고 있는 웅덩이를 가리켰다.

“저기 물웅덩이 있는데 그냥 건널 거야?”

‘네 손 위에 얌전히 올라타서 가면 안 될까…?’

나는 애처로운 표정으로 눈만 뻐끔거리며 쳐다봤다. 장화를 신으면 장담컨대 장화 신은 고양이라고 할 것이 뻔했다.

“그래도 장화는 신어야 해.”

‘너무해.’

나에게 고양이용 우비까지 꼼꼼히 걸쳐 준 이안은 나를 자기 손으로 올려놨다. 슬쩍 내가 입고 있는 우비를 보니 우비까지도 빨간색 깔 맞춤이었다. 우비를 묶은 끈을 당겨 우비를 벗으려고 했지만 얼마나 세게 묶은 건지 양발로 암만 당겨 봐도 우비는 풀리지 않았다.

나는 우비와의 사투를 벌이면서 저택의 대문을 지나 저택 안에까지 들어왔다.

“와 주셔서 영광입니다. 이안 카델리온 님.”

저택 안에 들어오자, 카온 가(家)의 가주가 앞에서 이안을 향해 알은체를 했다. 이안을 바라보던 카온의 가주는 이안이 들고 있는 빨갛고 거먼 무언가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다가 나와 눈이 딱 마주쳤다.

그리곤 그는 자동적으로 입을 움직였다.

“오! 장화 신은 고양이시군요.”

‘망할. 내가 저 소리 들을까 봐 싫다고 했던 건데.’

나는 눈동자를 굴려 앞에 있는 카온 가주의 얼굴을 바라봤다. 검은 고양이가 불운을 몰고 온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인지, 화통한 미소를 짓고 있던 그의 표정 이면에 찝찝한 표정이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안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것을 본 카온의 가주는 칭찬을 계속했다. 그리고 나는 절망했다.

‘쟤 분명 일부러 입꼬리 올렸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절망해 봤자 이 짧디짧은 다리로 날아가서 앞에 있는 가주의 입을 막을 수는 없었다.

“붉은 디자인이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이안이 예의 바른 웃음을 머금으며 말했다.

“용맹함을 상징하는 망토까지 걸치고 있는 게 영웅 같지 않습니까?”

제대로 현타 온 표정이 앞에 있는 가주에게 일순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그가 뿌듯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안을 보더니 열심히 입을 놀린 보람을 느꼈는지 그의 표정이 다시 밝아졌다.

그리고 내 표정은 점점 썩어 들어갔다. 내가 봤을 때 이안은 그것을 알고도 즐기는 게 분명했다.

“그래서 이번 컨셉은 빗속에서의 영웅입니다.”

그리고 그 말에 옆에 있던 앨런이 한마디 거들었다.

“표정 보십시오, 용맹한 영웅 같은 표정이지 않습니까.”

우비가 그런 용도였다니. 그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밀려오는 수치심에 그의 얼굴에 코를 박았다.

그리고 카온 가의 가주는 다 포기했는지 옆에서 열심히 맞장구를 치고 있었다.

‘제발 너네 언제 가?’

그런 내 마음을 알아챈 듯, 카온가의 가주가 입을 열었다.

“오늘 하루는 편히 쉬시고 내일 대화를 나누어 보고 싶습니다.”

“네. 그러면 카온 가주도 오늘 하루 편히 쉬시길 바라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가주의 옆에 있었던 시종이 방을 안내해 주었다. 방은 카델레온 저택에 있는 방만큼은 아니었지만, 넓고 깔끔했다. 일주일 동안 지내기에는 굉장히 쾌적한 환경이었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나는 신고 있던 장화를 제일 먼저 벗었다.

“장화 신고 있던 모습도 귀여웠는데.”

그것을 본 이안이 자기 손가락보다도 작은 장화를 잡고 내 앞에다가 가지런히 정리해 놨다.

“정화 신은 고양이는 흔치 않은데 그냥 오늘 하루 정도 신고 있는 게 어때.”

‘사자 소리 하지 말고 묶여 있는 우비나 풀어.’

나는 내 머리를 이안에게 가까이 가져다 대며 빨리 우비 끈을 풀기를 종용했다. 그러자 이안이 못 이기겠다는 듯이 우비에 있는 끈 한쪽을 잡아당겼다. 내가 끙끙거리며 우비에 있는 끈을 잡아당길 때와는 다르게 묶여 있는 리본이 스르륵 풀렸다.

이안은 내가 입고 있던 우비를 접어 가지런히 놓여 있는 장화 옆에다가 두었다.

‘…….’

우비가 쓸데없이 각이 잡혀 있었다. 어지간한 시종들보다도 훨씬 좋은 솜씨였다.

‘나중에 옷 접어야 할 일이 생기면 이안한테 배워야겠다.’

나는 쓸데없는 생각을 하며 내가 서 있었던 책상에서 훌쩍 뛰어 내려왔다. 그걸 본 이안은 익숙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본래 목적지였던 침대로 향했다.

쯧, 얘는 나를 너무 잘 안다니까.

나는 혀를 차며 다시 침대 위로 뛰어 올라가 이불 속에 숨었다. 지금 무엇이든 그가 원하는 일은 절대 들어주고 싶지 않았다.

***

아침치곤 성대한 만찬을 마치고 방에 돌아오자 이안은 나를 침대 위에 올려놨다. 나를 침대 위에 올려놓은 그가 자기 왼손을 내밀며 말했다.

“아리엘 손.”

퍽.

나는 그의 손바닥을 힘껏 내려쳤다. 아리엘의 솜뭉치 펀치가 꽤나 강력했는지 그의 손바닥이 살짝 붉어져 있었다.

자기 손바닥을 확인한 그가 눈꼬리를 휘었다.

“손힘이 꽤나 세졌네.”

‘얘는 나를 정말 애완동물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며칠 전까지 인간이었는데. 지금이라도 인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있어.

나는 가느스름한 눈을 뜨고 그의 얼굴을 훑어봤다.

“가만히 방에 있어.”

그러자 그는 나를 한두 번 쓰다듬은 뒤 방 밖으로 나갔다. 방에 혼자 남은 나는 침대에서 폴짝 내려갔다.

‘지금쯤이면 카멜레온 가주랑 대화를 하러 나갔겠지.’

나는 절대 가만히 방에 있을 생각이 없었다. 왜냐하면 저번에 앨런과 이안이 나누었던 대화가 너무 신경 쓰였다.

“혼자서 ‘이건 아니야….’ ‘더 이상 이렇고 살 수 없어….’ ‘그만할래.’ 하면서 허공에 대고 중얼거린다고 합니다. 그것도 텅 빈 눈으로.”

“그리고는 어떨 때는 갑자기 죄송하다고 그만해 달라고 울면서 발작하기도 하고요.”

그뿐만이 아니라 어딘가 이상한 내 페로몬도 신경 쓰였다. 일반적인 외향 변화 페로몬은 동물일 때도 사용 가능한 몇 안 되는 페로몬이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니까 외형 변화라고 생각했던 내 페로몬이 완전하지 않았다.

살짝 열려 있는 문을 나는 슬며시 밀고 밖으로 나갔다. 카온 가주도 없는 지금이 딱 맞는 타이밍이었다.

‘이안에게는 미안하지만 나는 카온 가의 영식을 보러 가야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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