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그러자 이안이 픽, 웃으며 나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손을 피하려고 했지만 역시나 오늘도 실패했다.
‘야. 나 책 볼 건데.’
나는 그의 팔을 퍼버벅 치다가 불만스러운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가 나를 들고 자연스럽게 자기가 있던 자리로 옮기자 앨런이 내가 내려놓았던 책을 주워 이안을 따라갔다.
‘안 내려놓을 작정인가 보네.’
그것을 본 나는 그냥 나를 안고 있는 그에게 머리를 기댔다. 어느덧 서재에 있는 책상에 나를 올려다 놓은 이안이 나를 보며 말했다.
“이럴 때 고양이로 변하는 건 뭐야.”
뭐긴 뭐야. 대답하기 싫은 거지.
꼬리를 좌우로 흔들던 나는 앨런이 책상 위에 올려다 놓은 책 앞에 가서 앉았다. 그러자 그가 내 머리를 툭 건드려 자신을 보게 했다.
“먀오?”
왜.
나는 그를 보면서 물었다. 그러자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던 그는 손수건을 가져와 연신 내 털을 닦았다. 정확히는 손수건으로 내 털을 빗었다.
“너한테서 다른 수인의 페로몬 냄새가 나. 그것도 일부러 묻힌 것 같은데.”
아. 아까 윈닉타 길드장이랑 헤어질 때쯤 갑자기 춥게 느껴진다 했더니 페로몬 묻힌 거였나.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그를 바라봤다.
‘다음에 그딴 짓 하지 말라고 해야지.’
이안이 연신 손수건으로 나를 쓰다듬다가 만족이 되지 않았는지 손수건을 치우곤 자기 기운을 내 몸속에 흘려 넣었다.
그가 쓰다듬으면서 기운을 불어넣어 주자 훈훈한 기운이 서늘한 한기를 잡아먹으면서 몸속에서 맴도는 훈기에 입꼬리가 보드랍게 올라갔다.
볕에 나른하게 늘어져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은지 내 손을 들곤 냄새를 맡더니 목덜미에 고개를 묻어 다시 냄새를 맡았다.
‘너 혹시 호랑이가 아니라 개인 게 아닐까.’
비누 냄새 말고 내 몸에서 다른 냄새는 안 나는데. 그런 그의 반응에 나는 다시 내 앞발에 코를 박고 킁킁거렸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 냄새도 나지 않자 나는 포기하곤 이안의 손길에 몸을 맡겼다.
내 털을 쓰다듬다가 앞발을 꾹꾹 누르고 목덜미를 갑자기 지압하다가 다시 목덜미에 고개를 묻고 별 난리를 다 치더니 그가 웃으면서 한마디 했다.
“아리엘, 어차피 너 새끼 고양이 상태인데 오늘은 같이 자자.”
‘잠시만 새끼 고양이라니?’
나 아직도 성장 안 했어? 나에게 성장혈이란 게 없는 건가.
그러나 그는 내 의아한 시선을 보지 못한 건지 봤으면서도 일부러 모른 척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었다.
“다 큰 도덕적인 호랑이는 잠자는 새끼 고양이는 죽이지 않아. 암살자도 아니고 그런 파렴치한 짓은 하지 않거든.”
‘그 말을 하는 것부터가 너는 틀렸어. 애초에 너는 무도한 호랑이잖아. 정말 네가 정상적으로 도덕적인 호랑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내가 인간이 된 이후로 그와 나는 같이 자지 않았다. 물론 처음에는 이안 보고 호랑이인 상태로 자고 내가 인간인 상태로 자는 것과 내가 고양이인 상태로 자고 이안이 인간인 상태로 자는 것을 가지고 한참을 논쟁했지만, 결론은 같이 자지 않는 것으로 나왔었다.
그에 이안이 매우 아쉬워했지만.
왜냐하면 호랑이와 인간인 상태로 같이 자려니 그때 이안이 호랑이로 변한 크기가 생각보다 매우 컸고, 내가 고양이인 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을 어떻게 하는지 몰라 연신 실패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나랑 그가 같이 자지 않은 지 꽤 오래됐는데.
‘근데 같이 자자고…?’
나는 떨리는 동공을 주체하지 못하며 엄청난 동공 지진을 일으키며 그를 바라봤다. 그러자 그가 예쁘게 눈꼬리를 반달로 접었다.
그 눈웃음을 보니 괜히 고양이로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잠자는 고양이는 개도 안 건드린다는데.’
여태까지 저 호랑이와 같이 자면서도 잠에서 깬 적은 없었다. 오히려 편하게 잤으면 편하게 잤지.
근데 불안한 기운이 스멀스멀 올라오는 것은 왜일까.
만족스럽게 웃는 그를 보니 왠지 어딘가 달아나고 싶어졌다.
***
이안과의 동침은 우려했던 것과는 다르게 편안했다. 생각해 보면 평소 혼자 잘 때보다 더 빠르게 잠든 것 같았다.
평소, 자신의 배 위에 올라앉아서 자라고 하던 이안은 이제 나를 끌어안고 잤다. 요즘 유달리 나에게 안겨 오는 호랑이에 의해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사실, 호랑이 배 위에서 자나 호랑이한테 끌어안겨서 자나 똑같이 편했다. 안겨서 자는 게 조금 더 아늑한 것 같긴 했다. 저 호랑이는 성격과 다르게 나를 느슨하게 안고 자서 오히려 포근하기까지 했다. 어디서도 느낄 수 없었던 따뜻함을 쟤가 가져다주니까.
“아리엘.”
‘왜.’
“잘 잤어?”
‘네가 왜 여기 있어?’
보통 새벽에 나가잖아.
그의 하얀 머리카락이 내 눈앞에서 사르륵 흐트러졌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잘난 얼굴에 나는 팔을 쭉 뻗어 그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은 후 그의 볼을 밀었다. 내가 그의 얼굴을 쭉 밀어 버리자 그의 볼살이 내 발에 눌렸다.
‘이제 저런 얼굴에 면역이 될….’
“아리엘 기지개 켜는 거야?”
그리고 그걸 본 나는 그의 얼굴에서 조용히 발을 내려놨다.
‘리가 없지.’
이안의 볼에 내가 꾹 밀어 넣은 발자국이 불그스름한 빛으로 남아 있었다. 다 큰 어른 고양이의 발자국이라고 치기엔 지나치게 작았다.
도대체 성체는 언제 되려는지, 인간화에 완벽하게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몸은 아직도 아기 고양이인 상태였다. 하지만 걸어가야 하는 거리를 누군가의 손 위에서 편하게 운반되는 걸 생각하면 그것도 그것대로 나쁘지 않았다.
‘…성체가 되면 항상 혼자서 걸어 다녀야 하잖아.’
생각만 해도 귀찮았다.
이안은 내가 자기 뺨을 발로 민 것이 흡족한 건지, 밖에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아름답게 들려와서 기분이 좋은지는 모르겠지만 눈을 내리깔고 입가를 매끄럽게 끌어 올려 고운 미소를 지어냈다.
그리곤 내가 쓰다듬은 머리를 한 번 자기가 만지작거리더니 자기 뺨을 연신 매만지곤 피식피식 웃어 댔다.
‘야, 괜찮아?’
애가 더위 먹었나.
‘오늘 날씨가 더운가? 평소보다 더운 건 아닌데.’
기다려 줘도 계속 자기 뺨을 매만지며 바람 빠진 웃음만 연신 내뱉는 그에 나는 진심으로 걱정되기 시작했다. 내가 그의 손등을 두어 번 두드리곤 이마에 내 앞발을 오래 가져다 대었다.
그의 이마에 내 앞발을 가져다 대자 내 몸속에 있는 찬기가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래도 열은 없는 것 같은데.’
나는 바람에 펄럭이는 커튼을 바라봤다.
창문을 열어 놓은 방은 여름치고는 바람이 많이 불어 평소보다 시원했다. 평소보다 적은 양의 찬기가 빠져나가는 느낌에 내가 그의 이마에서 슬그머니 내 앞발을 그의 이마에서 떼어 놓으려고 했다.
그러자 이안이 자기 손을 들어 올려 자기 이마에 떨어지지 않게끔 내 앞발을 꽉 잡았다. 그러곤 눈꼬리를 접어 사르르 웃었다.
“조금만, 조금만 더 이러고 있자….”
나는 그에게 쥐어져 있는 발을 옴짝달싹이다가 뙤약볕에 쿨 팩이라도 만난 듯한 그의 표정에 내 앞발에 힘을 슬그머니 뺐다. 내가 원한다면 금방이라도 발을 놔줄 것 같았던 손이 만족스러운 듯 내 앞발을 더 꽉 쥐었다.
그가 내 앞발을 더 꽉 잡자 그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기운이 내 몸을 안정시켰다. 그의 페로몬이 내 몸 안을 들어가면서 꼬여 있는 페로몬들을 다 풀어내었다. 그러자 온몸이 급격하게 나른해져 왔다.
덕분에 나는 그렇게 한 발은 그의 손안에 잡힌 채 이마를 짚고 있고 다른 쪽은 흐물흐물 늘어져 있는 요상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
‘아. 얘는 근데 왜 집무실이 아니라 여기에 있는 거지.’
나는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리곤 책상에 쌓여 있는 서류들을 힐끗 쳐다보곤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뭐 쟤가 어련히 다 잘했겠지.’
곧 있으면 동부에 간다고 하는데 언제 갈려나. 나는 시답지 않은 생각을 하며 다시 축 늘어졌다. 아기 고양이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던 때에 누군가의 처절한 울부짖음이 들렸다.
“이안 님!!”
앨런의 목소리였다.
“하나밖에 없는 수하가 불쌍하지도 않습니까. 공포스러울 정도로 많은 종이를 넘겨주시고 홀라당 사라지시다니요.”
앨런의 목소리가 처량할 정도로 간절하게 들렸다. 일벌레인 앨런이 저 정도로 말하는 것을 보니 진짜 서류로 산을 쌓은 것이 아닐까. 일단, 정상적인 양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하다.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나는 아연한 눈으로 잠시 이안을 쳐다봤다. 도대체 뭘 했길래 앨런이 저렇게 울부짖어. 물론 목소리에서 한 톤의 무거움도 느껴지지 않긴 하지만. 원래 깃털처럼 날아갈 것 같은 가벼움만으로 이루어진 앨런에게 무겁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과분한 기대였다.
작위적으로 연출한 서운한 표정이 아닌 일말이라지만 진심이 담겨 있는 처절한 외침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아니, 애초에 앨런이 진심으로 말하는 것이 처음이었다.
‘도대체가.’
이안은 무엇을 한 것일까.
나의 아연한 시선을 마주친 이안은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아리엘, 나 좀 숨겨 줘.”
새끼 고양이에게 숨겨 달라고 하니 제정신인가.
‘…뭔가 저번이랑 상황이 바뀐 것 같은데.’
나는 물끄러미 그를 쳐다봤다. 내 몸을 최대한 넓게 쫙 펼치고 있어도 이안의 얼굴이 안 가려질 텐데. 지금 185가 넘는 거구를 나보고 숨겨 달라니.
나는 황당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그리고 그 와중에 앨런의 절규는 저 멀리서부터 착실히 들려오고 있었다.
“도대체 언제 일을 하셨길래 제 책상 위에 이안 님께서 사인해놓으신 서류가 한가득인 겁니까.”
그 말에 나는 서류가 얼마 쌓여 있지 않은 책상으로 눈을 돌렸다. 책상 위에 있는 반듯하게 정리된 종이와 펜이 눈에 들어왔다.
“제가 아무리 일벌레라고 불려도 그렇지, 이러다가 꽃다운 나이에 과로사로 요절할 것 같습니다.”
앨런이 빠르게 이 방을 향해 다가왔다. 앨런의 한 섞인 외침을 계속 듣고 있던 이안이 조그마한 나를 불렀다.
“아리엘.”
그리곤 입을 뻥긋뻥긋 움직였다.
‘안 숨겨 줄 거야?’
“월급으로 받는 그 많은 돈을 한 번도 제대로 쓴 적이 없는데 이른 나이에 요절은 조금 그렇지 않습니까.”
앨런의 말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그냥 소리 내 버릴까.’
앨런이 바로 찾아올 것 같은데. 이미 찾아오고 있는 것 같지만.
잠시 고민하던 나는 한숨을 쉬곤 그의 손에서 내 앞발을 쓰윽 빼 이불을 물곤 이안에게로 던졌다. 그리곤 이안의 머리털이 한 가닥도 보이지 않게 꼼꼼히 이불을 덮어 주곤, 그 위에 올라갔다.
***
“아리엘 님. 왜 어제 모른 척하셨습니까.”
앨런이 퍽 서운한 모습을 꾸며 내며 말했다. 그를 모르는 사람이 봤으면 힘내라는 이야기 한 마디하고 지나갈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거야 오늘 동부로 갈 줄 몰랐으니까 그렇지.’
저 호랑이들은 말 나오자마자 바로 실행하는 걸까.
무슨 말 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동부를 바로 가.
나는 멍하니 내 앞에 있는 마차를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