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9. (60/111)

59.

“오오오. 이게 그 광물이군요.”

“이 정도면 보석들 중에서 최고급에 속할 것 같은데.”

“베이스로 새하얀 보석 위에다가 여러 빛깔이 있는 게 참 신기할세.”

에티아 장인촌에는 광물 하나에 괴팍하기로 소문 난 에티아 장인들이 한데 둘러 모였다.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고 붙어 있는 그들은 보석 하나를 이리저리 넘기며 돌려봤다. 흔들어보기도 하고 굴려보기도 하고 앞에 두고 가만히 기도만 하기도 하고 그 보석을 대하는 장인들의 방식은 가지각색이었다.

누군가 보석을 이로 깨물어 보기라도 할 때는 야유 소리가 흘러나왔다. 초등학생들이 야외수업 시간에 신기한 생물을 보고 둘러앉아 구경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어이, 보고 있는데 가져가면 어떡하나.”

“난 참, 보석 앞에 두고 기도하고 있었지 않았나. 그래서 안 보는 줄 알았지.”

“내가 왜 그 광물을 안 보겠나! 웃기는 소리 하지 말게.”

물론 중간에 트러블이 생기기도 했다.

그렇게 두 장인이 싸우는 틈을 타 그 보석을 그들에게서 슬쩍 빼 온 다른 장인들이 마저 그 보석을 돌려봤다.

“이거, 이거 좋은 장인에게 찾아가면 엄청난 빛을 발하겠군요.”

엄청난 장인인 자신이 이 광물을 세공하고 싶다는 거였다.

“예끼! 아직 보석 세공에 들어온 지 20년도 채 되지 않은 녀석이 이걸 탐하는 게냐?”

그런 장인들을 보고 있던 카린은 한 마디 툭 던졌다.

“어차피 너네 다 질리도록 실컷 보게 될걸.”

“너네, 앞으로 이거 세공해야 해서.”

사실, 에티아 장인에게 의뢰하는 것은 다른 곳과는 달리 조금 특이하다. 괴팍하고 유별난 그들의 성격 탓인지, 아니면 세상 모든 것을 귀찮아하는 그들의 성미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직접 의뢰를 받지 않는다.

모든 의뢰는 에티아 가주 혹은 그들의 보좌관을 통해서 받는다.

그런 그들을 에티아 가주는 높이 사 제대로 된 대우를 해 줬으니 장인들과 에티아 가주와의 친목이 대대로 이어진 지는 꽤 되었다.

그러니 에티아 장인들에게 의뢰하기 위해서는 돈은 물론이고 인맥까지 필요하다.

‘어떻게 그런 부탁을 할 생각을 했는지.’

카린은 다시 생각난 그 상단주에 하, 하고 웃음을 내뱉으며 시선을 돌렸다.

장인들은 여전히 아웅다웅하면서 광물을 구경하고 있었다.

고용인을 시켜 광물을 더 가져오게 끔한 카린이 가장 오랫동안 이 마을에서 보석을 세공해온 수인을 가리켰다.

“자네.”

“예?”

신난 어린아이처럼 보석을 구경하던 장인은 아쉬운 듯이 보석에서 눈을 돌렸다.

그는 제일 오래된 세공사답게 그들 중에서 제일 섬세하고 우아한 보석을 만들어 내는 세공사였다.

“처음은 자네가 세공해.”

처음에는 시대의 흐름을 타지 않는 고급스럽고 우아한 보석을 만들어 달랬으니, 저 사람이 제격이었다.

카린은 어안이 벙벙한 장인을 신경 쓰지 않고 계속 말했다.

“펠릭스 광물로 만들어진 첫 번째 작품이라는 걸 알 수 있게 조그맣지만 알아볼 수 있고 눈에 띄지만 눈에 띄지 않는 곳에 고급스러운 글씨로 ‘0’이 적혀 있으면 좋겠어요.”

카린은 상단주의 요구를 그대로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전했다.

“…라는 게 의뢰자의 요구.”

무슨 따뜻한 냉차 같은 소리인지 모르겠지만, 앞에 있는 장인은 일단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그것을 확인한 그녀가 발을 뗐다.

“그럼, 난 간다.”

그리곤 쿨하게 뒤돈 상태로 팔을 흔들었다.

“모두 수고하고.”

그녀를 꼬맹이일 때부터 봐온 장인들이 그녀가 사라진 허공에 외쳤다.

“잘 가슈.”

“만나서 반가웠소.”

그들의 목소리가 전달이 되었을지 안 되었을지는 모를 노릇이지만 그들은 하나둘 제자리로 돌아갔다.

바람처럼 나타났다 바람처럼 사라지는 에티아 가주가 그들에겐 퍽 익숙한 광경인 것처럼 보였다.

***

“돌아오셨습니까.”

생기라곤 하나도 없는 엘라더가 비실거리고 있었다.

그의 일거리를 힐끗 본 카린이 자신의 자리에 가서 털썩 주저앉았다.

“세상 풍파를 다 맞이한 얼굴인데 용케도 안 쓰러지고 아직 버티고 있네.”

사흘 내리 밤을 새우고 그녀를 찾으러 대륙에 쫓아왔다가 펠릭스 상단주까지 만난 그가 아직 안 쓰러 진 것은 거의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비실비실하기론 보좌관들 중 최고일 텐데, 그래도 그새 수인 됐나?”

사약으로 보일 정도로 진하게 우린 홍차를 한 모금 마신 그가 설핏 미간을 찡그렸다.

“덕분에요. 대륙에 왔을 때 관련된 일은 다 끝내 놓고 가야 마음 편하지 않겠습니까.”

독한 놈.

마음속으로 혀를 찬 카린은 어느새 한가득 쌓인 서류를 바라봤다.

“에티아가가 대륙 정계에서 난리 치지도 않는데 왜 이렇게 해야 할 일이 많냐. 속세를 떠나 바다에서 사는 노인네에게 볼 일이 뭐가 있다고.”

…지금 가주님 마흔도 안 넘으셨습니다만.

사약 같은 홍차와 함께 목 끝까지 차오른 말을 넘긴 엘라더가 입을 열었다.

“대륙 정계에서 활동하지 않아도 대륙이랑 얽혀 있는 꽤 됩니다.”

“예를 들면 카델리온 가와 진행 중인 해상교역권이라던지. 기타 상단들과의 보석 교역이라던지.”

눈을 내리니 중앙에서 예쁘게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카델리온의 초대장이 있었다.

대충 자기네 저택으로 오라는 이야기와 해상교역권에 대한 이야기가 있는 것이었다.

‘끈질긴 놈.’

예의상 초대장을 꺼내 한 번 훑어본 그녀가 다시 초대장을 봉투에 집어넣었다.

“아, 저번에 그 갯지렁이 새끼 말이야.”

“네. 그 카델리온 가에서 보내 준 머리말이요.”

카델리온 가에서 보내 준 첩자를 받은 에티아는 얼마 전 대대적인 첩자 색출에 나섰다.

“그 첩자 네 후임이었잖아. 아니, 후임이자 친구였지.”

“첩자는 첩자일 뿐입니다. 그들이 죽는다고 제가 슬퍼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이 딱 끊어 말했다.

그러나 그의 주변에는 평소보다 수북한 일거리들과 홍차 가루가 아닌 철 가루를 빻아서 섞은 것인지 의심될 정도로 짙게 우려낸 홍차가 있었다.

저 정도면 에티아가의 모든 일거리를 끌어온 것 같은 양이었다.

카린은 그걸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모른 척했다.

“그럼 그런 걸로 하고, 갯지렁이 친구들은 뭐래?”

“글쎄요…. 첩자를 넣은 쪽에서 뭐라고 일렀는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진 입을 열지 않고 있습니다.”

단지 새로운 세상이 도래할 것이다라는 말만 중얼거릴 뿐이더군요.

끈질긴 수인들이었다. 손가락 하나가 잘려 나가고 팔이 잘려 나가는데도 입을 열지 않는다니. 그들이 스스로를 세뇌하는 것 같이 보이기도 했다.

“다들 정신이라도 나간 것인지 잘 모르겠더군요.”

“쯧, 정신 나갔네. 아니면 독이라도 걸렸나.”

안타까움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그녀가 가엾다는 듯 중얼거렸다.

“…독에 걸렸을 수도 있겠군요.”

엘라더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런 종류의 독은 서부만 쓸 수 있잖아?”

“그러니, 하는 말입니다.”

서부가 이상할 정도로 너무 평화로워서요. 마치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이.

“그런데 북부에서는…….”

곰곰이 생각하던 카린 에티아는

“만약 갈 데까지 갔는데 입을 안 열면,”

끄적이던 펜이 잠시 멈칫했다.

“다 죽여. 살아서 후환이 되는 것보단 나으니까.”

잠시 멈칫해 있던 펜이 움직였다.

“나머지 밑에 있는 첩자들은 잡아들이지 말고 주시만 해. 걔네가 무엇을 하고 누구한테 연락하는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 다 감시하도록 해.”

“그리고 그 첩자들과 관련되어 있는 가문 싹 다 보고해.”

그녀가 쓰고 있는 것을 마치고 펜을 탁 내려놓았다. 카린은 다시 한번 종이를 훑어보더니, 종이 한 장을 큰 소리가 나게 엘라더 책상에 탁, 내려놨다.

“그거 가지고 그쪽 뽑아먹을 때까지 뽑아내고 버려 버려야지.”

그 서류는 휴가를 허한다는 내용이 담긴 종이였다.

정확히는 휴가를 가라는 명령장이었다.

엘라더는 그 종이를 힐끗 보더니 다시 그녀에게 돌려주었다.

“좀 더 품위 있는 언행을 행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어. 없는데. 그래도 이안 카델리온 보다는 낫잖아.”

“그분의 언행은 품위 있으십니다만.”

카린은 엘라더가 돌려주려던 그 종이를 받지 않고 매정히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자리의 정중앙에는 이미 열었다가 봉투 안에 다시 넣어놓은 카델리온 초대장이 그녀를 반기고 있었다.

“아, 가야지.”

모두가 이안의 얼굴을 보고 싶어 했지만 카린은 그 얼굴이 보기 싫었다. 자신을 대신해서 누가 그 저택에 좀 가 줬으면 하는 마음이 한가득이었다.

생글생글 웃는 낯과 함께 에티아에게 필요한 걸 가지고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판을 이끄니.

생글하게 웃으면서 음험한 짓은 다 하고 다니는 부류.

좋아할 수가 없는, 그녀가 딱 싫어하는 스타일이었다.

‘호랑이 굴인 것을 알고도 호랑이 굴에 도대체 왜 들어가야 하는 걸까.’

이안 카델리온이 성격 더러운 건 동서남북과 대표들 사이에서는 꽤나 알려진 이야기였다. 물론 아래의 귀족들이 믿지 않는 바람에 생긴 공공연한 비밀이었지만.

그들이 이안이 아무리 비정상이라고 외쳐도, 다른 귀족들은 겉으로 ‘아, 그렇군요’라고 끄덕거려도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마당이니.

“야, 왜 수장들 중에는 정상이 없냐.”

무언가를 이끌기 위해서는 일단 정신이 먼저 나가야 하는 걸까. 그녀가 중얼거렸다.

그런 카린 님은 신비주의 은둔자라는 이미지를 가장한 채, 대륙을 활보 중인 상어이신데.

엘라크가 어이없는 표정과 함께 진지한 음성으로 물었다.

“에티아 가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건 가주님을 포함하는 겁니까?”

그녀는 그의 말에 대답하지 않곤, 보기 싫은 초대장을 다시 한번 바라봤다.

재수 없게 웃으면서 해상교역권을 내놓으라는 이안 카델리온의 모습과 그레이트 홀을 빌려달라고 당차게 요구하는 상단주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도대체 누구랑 누구를 비교하는 거지.’

순간 그녀가 멈칫했다.

‘…어쩌면 그 상단주는 매가 아니라 호랑이를 닮은 것일 수도 있겠어.’

생각을 해 보니 묘하게 하는 행동들이 호랑이 가문을 닮은 것 같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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