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
“간단히 말씀드리자면 나비의 첫 날갯짓을 그곳에서 시작하고자 합니다.”
그레이트 홀에서 그 보석을 보여 준다는 얘기였다.
그 한 마디로 뭔 말을 하는지 알아들은 피식, 웃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그레이트 홀에서 시작을 하는데, 그것이 나비인가? 막 날아오르는 새끼 매이지.”
“새끼 매라뇨. 과분한 말씀이십니다. 물론, 그레이트 홀은 새끼 매 말고 그냥 매에게도 쉽게 열리지 않는 곳이지만 말입니다.”
콕. 푸딩을 찍어서 끌어왔다.
지금 내 위치는 나비와 같았다.
지금 막 번데기에서 나비가 된 나비.
번데기에서 나비로 변하면 잠시 관심을 받는 것처럼, 지금은 펠릭스가 귀족들의 관심을 뜨겁게 받으며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지만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는 법.
그리고 당연히 나는 대로 그 광물의 가치를 올릴 것이다. 아니, 올려야 한다.
할 수 있는 방법들을 총동원해서.
“나비가 열려 있는 창문으로 그레이트 홀 안으로 들어올 수도 있지 않습니까.”
가볍게 스쳐 가는 기분 좋은 봄바람 같은 어조였다.
“그레이트 홀의 대관비는 저희 상단을 향한 투자로 생각해 주세요.”
말이 없는 카린에 불안해진 내가 한 마디 덧붙였다.
“나비의 날갯짓으로 인한 작은 바람이 세계를 바꾸어 놓을 수도 있지 않습니까?”
나비효과. 나비효과는 전생에서 유명한 말이었다.
나비의 날갯짓이 바로 옆에 있는 작은 벌레를 나뭇잎에서 떨어뜨려 벌레가 원숭이 털 속에 떨어지면,
원숭이는 가려운 곳을 긁다가 잎의 열매를 떨어뜨리게 되고,
열매는 돌에 부딪혀 돌을 구르게 만든다.
그리고 그 돌은 큰 바위를 지탱한 작은 돌을 쳐서 밀어내면서 작은 산사태를 일으키고,
이런 변화는 물의 흐름을 바꾸어 화산의 구멍을 막게 되며,
약한 지반을 꺼지게 해 화산 폭발을 일으키게 되며 이는 대기압의 큰 차이를 일으켜 커다란 폭풍을 일으킨다는.
그런 이야기다.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상상치도 못하는 변화를 불러오는, 사람들의 우스갯소리로 도는 이야기.
이 이야기는 한마디로 축약될 수 있다.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토네이도를 일으킬 수 있는 것처럼 작은 변화가 폭풍우와 같은 커다란 변화를 유발시킬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는 그 한 마디를 에티아 가주에게 전한 것이다.
“하하하하.”
그러자 시원한 웃음소리가 응접실 안에 울려 퍼졌다.
앞에 있는 에티아 가주가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내가 사람을 잘못 봤네.’
처음에는 앞에 있는 상단주가 다람쥐 같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그 상단주가 상업이라는 정글에서 능글거리는 장사치들에게 못 당해낼 것 같다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었다.
중앙 도시는 통상적으로는 기회의 땅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실질적으론 어떻게든 자기가 이익을 보려는 장사치들이 득실거리는 곳에 불과하니까.
그리고 그곳에서 다람쥐 같은 상단주가 가지고 있는 상단이 이 치 저 치에게 뜯겨 없는 것보다 더 못한 처지가 되는 것은 물 보듯 뻔한 일이었다.
근데 다시 보니 앞에 있는 상단주는 다람쥐보다는 독수리나 매 같았다.
물론 자신이 나비 같다고 하기는 했지만, 카린이 매력적으로 느낄만한 부분을 골라서 말하는 것부터 마치 세상을 내려다보는 것 같은 오만한 말은 독수리나 매에 더 어울렸다.
가만히 있다가 필요한 것을 모두 낚아채 가는 매.
‘호구같이 다 뜯기는 것보다는 자기 거 잘 챙기는 게 훨씬 낫지.’
정말 보면 볼수록 호감이었다.
에티아 가주는 그렇게 한참 동안 자신의 손으로 입을 막고 어깨를 들썩이다가 말했다.
“좋아. 그 계약 받아들일게. 나비의 날갯짓이 진짜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네.”
정말, 재밌을 것 같았다.
중앙 도시의 장사치들이 그녀에게 뜯기며 당황할 것을 생각하기만 해도 즐거웠다.
“감사합니다.”
카린이 응접실에 있는 종을 흔들어 시종이 아닌 보좌관을 불렀다.
“계약서 쓰는 종이와 펜을 가져와.”
그러자 아까 보좌관은 웃으면서 꾸벅 허리를 숙이고 곧바로 펜과 종이를 가져왔다.
카린이 이리저리 종이를 확인했다.
“제대로 잘 가져왔네. 가 봐.”
그러자 그가 허리를 숙이고 물러났다.
문이 닫히자, 그녀가 계약서를 적는 법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여기다가 계약 조건을 써넣고 서명을 하면 돼. 서명할 때는 네 몸 안에 있는 기운을 담아 꾹 눌러서 써야 하고.”
“그러니까, 페로몬을 담으라는 말인가요?”
“맞아. 상대방과 합의를 통해 같이 계약을 해제하지 않는 한, 계약을 어기게 되면 체내에 있는 페로몬의 흐름이 뒤엉켜서 자신의 페로몬을 사용하지 못하게 돼.”
…저거 사업에서 이용되는 계약서 맞아?
분명 저런 종이는 신하가 충성을 맹세할 때나 누군가 입막음시킬 때 사용하는 종이 아닐까.
아무리 생각해도 평범한 상단이 이용하는 계약서는 아니었다.
왠지 모를 찝찝함에 저 종이를 빤히 바라봤다.
‘…그래도 확실한 게 좋긴 하니까.’
하지만 곧, 나에게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에 별다른 의문을 갖지 않고, 계약서를 작성했다. 혹시 몰라 하단에 계약을 위반했을 때 발생되는 효력까지 추가로 적어 놓았다.
유려하게 서명을 마치고 펜을 내려놓은 카린이 흥미로움을 가득 담은 시선으로 쳐다보았다.
“그럼, 왜 그레이트 홀을 대관할 생각인지 말해 줬으면 하는데.”
그리고 그 시선을 받은 나는 서명을 마친 뒤 펜을 내려놓았다. 카린 에티아의 페로몬이 나에게 한층 얇게 덧씌워지더니 몸 안으로 흡수되자 정말 계약한 것이 실감 났다.
‘계약을 어기면 이 페로몬이 내 페로몬을 구속하려나.’
나는 내 몸에 서서히 퍼졌다가 빨리 사라지는 그녀의 기운을 느끼며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그레이트 홀을 대관하기로 한 까닭은 경매를 열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경매?”
“에티아 장인의 손길에서 탄생한 펠릭스 상단의 첫 광물을 팔기 위한 경매입니다.”
이번 경매로 벌어들인 돈을 가지고 나는 상단의 사무실과 건물을 살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선 귀족들이 펠릭스를 얼마나 가치 있는 것으로 생각하느냐가 중요했다.
‘정확히는 펠릭스가 그들의 허영심을 채워줄 수 있는 물건으로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거지.’
다이아몬드도 사람들이 그것이 비싸다고 인식해야지 값비싼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경매에서 첫 번째 펠릭스를 보여준다는 소문과 펠릭스 광물에 대한 이야기를 더 부풀리는 게 좋았다.
“그리고 그 경매의 초대장은 고위 귀족들에게 한정적으로 뿌릴 것입니다. 동행권까지 포함해서요.”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귀족들은 그곳에 갈 수 있는 인원이 적으면 적을수록, 그것을 갖기 어려우면 더 어려울수록 더 갖고 싶어 한다. 그리고 펠릭스에 대한 소문 또한, 그들의 입에 계속 오르락내리락하겠지.
그리고 그 연회에 간 일부 귀족들이 펠릭스의 신비로움을 부풀릴 것이다.
가질 수 없는 것을 갖고 싶어 하고, 갈 수 없는 것을 가고 싶어 하는 것은 귀족들의 본능이고 생리였다.
“경매뿐만 아니라, 일종의 사업설명회가 될 수도, 혹은 고급스러운 파티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아직, 여기까지는 계획이 없었다.
하지만 이것은 확실했다.
나는 입가를 씨익 올렸다.
“그것이 무엇이든 진귀한 경험이 될 거라고 약속하겠습니다.”
***
카린 에티아의 집무실 창문은 바닷속 물고기들이 아닌, 맑은 하늘을 비추고 있었다. 바닷속을 비추는 것이나, 창문을 비추는 것이나 각자 나름대로의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에티아에서 가져온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엘라더가 카린을 불렀다.
“가주님.”
“왜.”
“왜 펠릭스 상단주와 계약을 체결하셨습니까?”
그것은 그의 순수한 호기심에서 비롯된 질문이었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주군이 상단주와 왜 그런 식으로 계약을 체결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가 아는 카린 에티아라면 절대 그 자리에서 계약을 체결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도 ‘에스티피아’로.
에스티피아.
수인들은 그것을 깰 수 없는 맹약이라고 부른다. 페로몬을 잃으면 수인으로써 그들의 정체성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수인들이라면 모두 에스티피아를 통해 약속하는 것을 꺼려 하는 분위기다. 물론, 그 맹약을 할 수 있는 종이마저도 얼마 없는 실정이긴 하지만.
“에스티피아는 보통 충성 맹세나 배신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들을 때 주로 사용하는 문서 아닙니까.”
그녀는 갑자기 그것을 사용할 만큼 즉흥적인 수인이 아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방식으로 계약을 체결하시니…….”
갑자기 여행을 간다며 소리소문없이 대륙에 오가지만 업무에 있어서는 냉정함을 유지하는 그녀였다. 냉정함을 유지한다기보다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계획에 의해서 움직이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일에 대해서는 그녀의 계획이 조금이라도 어그러지거나 깨지는 것을 싫어했다.
그것이 에티아와 직접 연결되었다면 더더욱.
“웬만해서는 거래에 사용하시길 안 좋아하시는 걸로 아는데요. 무조건 필요한 곳에만 쓰시지 않습니까.”
“너는 정말 그것이 필요 없다고 생각해?”
무심한 듯 가벼운 어조였다. 하지만 그 말 안에는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었다.
“…….”
엘라더가 곰곰이 생각에 빠졌다.
그러나 카린 에티아는 그의 대답을 바란 게 아니었던 듯, 이야기를 시작했다.
“처음 만난 상단주는 새초롬한 다람쥐 같았어. 물론 자기 말로는 나비라고 했지만.”
“안녕하세요. 카린 에티아 님. 펠릭스 상단주. 비안 웨스트라고 합니다.”
손에는 미처 다 닦지 못한 땀이 느껴졌었고, 표정 관리를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미세하게 경직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엄청 말라서 뭔가를 자꾸 먹이고 싶게 만들었어.”
그래서 정신을 차려 보니 그녀는 어느새 상단주 쪽으로 디저트를 하나둘 앞으로 밀어주고 있었다.
사람의 호의를 사는 것.
그것은 생각보다 엄청난 능력이었다.
“근데, 대화를 하다 보면 그 상단주는 다람쥐보다는 매에 가까웠어.”
“매, 말입니까?”
그는 그가 만났던 상단주를 떠올렸다.
담담한 척하고 있지만 은근히 떨던 사람. 성인이라기보다는 소녀에 가까워 보였는데.
매라니.
카린은 이야기를 계속했다.
“그녀는 귀족들의 욕구를 잘 파악하고 있어, 그리고 귀신같이 에티아에게 필요한 것을 골라 제시했고.”
“에티아 가문의 누가 봐도 매력적으로 보이게끔. 그리고 나는 그 제안을 무시할 수 없었지.”
“그리고 그 대가가 이거야.”
그녀는 탁자에 상단주가 추가로 보내 준 광물의 아주 일부를 올려놓았다.
하얀빛과 푸른빛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나, 빛에 따라서 빨간색으로 보이기도, 노란색으로 보이기도, 초록색으로 보이기도 하는 광물.
“…그걸 본 사람들마다 하는 말이 다를 만도 하군요.”
그걸 본 보좌관의 눈이 커졌다.
이전에 그녀가 보았던 것과 같은 것이었다.
“계약을 했으니 계약을 이행하러 가야지.”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나 무심하게 말했다.
“다녀온다.”
그러자 그녀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집무실에 남은 것은 한쪽이 활짝 열린 창문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