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5. (56/111)

55.

창문 열고 ‘나 돌아갈래!!’를 외치고 싶은 심정을 겨우겨우 억누른 나는 수많은 초대장과 편지들을 싸그리 무시하고 책상 앞에 털썩 앉았다.

원래의 신조는 베짱이처럼 일하고 풍요롭게 살자였는데, 내 앞에 있는 현실은 개미처럼 일하자가 되어 버렸다.

그래. 몇 년만 개고생하면 끝난다.

앞에 쌓인 종이들을 바라보며 한숨을 한 번 내쉬곤 클로에에게 물었다.

“여태까지 지출한 내역이랑 현재 얼마 정도 남았는지 말해 줄 수 있어?”

“1500골드에서 광산 하나를 사는데 950 골드, 월세 및 창고비 50골드, 인부들을 고용하는 계약금 160골드. 그래서 기타 남은 금액은 340골드 정도 남았습니다.”

“돈이 넉넉하진 않네.”

클로에도 그 말에 동의하는지, 말이 끝나자마자 그녀가 내 시선을 피했다.

…돈을 벌어야 했다.

‘정말 순식간에 없어지는구나.’

물론, 현재 새로운 광물이 채굴되긴 했지만 어디에도 팔지 않아 수익은 0인 상태였다.

“그리고 이건 채굴된 새로운 광물입니다.”

클로에가 엄지손톱 정도 되는 크기를 가진 광물을 아리엘의 앞에 가져다 놨다. 광물은 기본적으로 뽀얀 하얀색과 옅은 하늘색이 섞인 느낌이었으나 빛이 비치는 각도에 따라서 보이는 빛깔이 달랐다. 홀로그램 보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보면 볼수록 오묘한 빛깔을 내뿜어서 보는 사람이 계속 홀린 듯 바라보게 했다.

원작에서는 신비한 광물이라고 했는데, 딱 맞는 묘사가 아닐 수 없었다.

‘이걸 어떻게 써야 하지.’

어떻게 팔아야지 잘 팔았다고 소문이 날까.

‘콜라를 생각하면 바로 코X콜라가 떠오르는 것 같이 이 보석을 보면 우리 상단이 바로 떠오르면 좋을 텐데.’

그럼 그 광물 자체를 상단의 이름으로 지으면 되지 않을까. 새로운 광물이니까 어차피 이름을 지어야 하잖아.

현재는 이름이 없는 상태이고.

어차피 상품을 파는 것은 이미지 싸움이었다.

‘스카치테이프나 대일밴드, 포스트잇처럼 어느 순간 이름 그 자체가 되어 버린 물건들처럼 될 수 있으면 완벽한데.’

“펠릭스…?”

나는 그 광물을 빤히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펠릭스. 다시 바라보니 ‘행운’이라는 고대어 뜻에 딱 맞는 광물이었다.

행운을 가져다주는 보석.

‘나쁘지 않은데.’

아니, 나쁘지 않은 정도가 아니었다. 좋았다.

잠시 뜸을 들이고 고민하던 아리엘이 느릿하게 입을 뗐다.

“광물의 이름은 펠릭스로 하자. 어때?”

“행운이라는 뜻이군요!”

“맞아. 뭔가 사면 뜻밖의 행운이 올 것 같고 좋지 않아?”

“네. 좋은 것 같아요. 사람들도 그걸 사면서 은연중에 저희 상단과 같이 이걸 생각하게 될 거예요!”

“그걸 노린 거야.”

“아, 그러니까 행운이라는 말을 들으면 저희 상단이랑 광물이랑 같이 떠오르게 끔요?”

“정확해.”

“네. 그러면 그렇게 처리해 둘게요.”

새로운 광물의 이름 때문에 고민이 많았던 클로에가 한결 묵은 체증이 내려간 표정을 짓고 있었다.

말간 얼굴에 저런 미소라니.

큰일을 하나 끝내고 클로에를 흐뭇하게 보고 있던 아리엘은 곧바로 앞에 있는 서신들을 뒤적거리며 무언가를 찾았다.

서신을 찾느라 잠시 가만히 있던 손가락 사이로 카델리온에서 보낸 서신이 끼워져 있었다.

이안의 스산한 미소가 생각났던 나는 그것을 보자마자 조용히 종이 꾸러미 안으로 집어넣었다.

‘저거 열어 보고 답장했다가 무슨 일이 날 줄 알고.’

이런 건 처음부터 모르는 게 상책이었다.

“클로에, 혹시 에티아 가주에게서 초대장이나 편지 같은 거 온 거 있어?”

그러자 그녀가 자연스럽게 가장 왼쪽에 있는 종이들을 가리켰다.

“제일 왼쪽에 모여 있는 종이들은 동, 서, 남, 북 수장님들과 에티아 가문, 독수리 가문에서 보내온 서신들입니다.”

아. 어쩐지 카델리온 가에서 보내온 편지가 있더라니. 이쪽 부분이 이 대륙에서 제일 영향력이 센 사람들의 편지였군.

‘…건들고 싶지 않다.’

“그리고 그 옆에 있는 것들은 중앙 도시 상단들에게서 연락이 온 것들이고 그 옆에 있는 건 각 종족의 수장들, 그리고 그 옆은 지위별로 정리해 놓았습니다.”

“고마워.”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서신들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 종이들이 아무런 규칙도 없이 이리저리 널브러져 있는 광경은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카델리온의 편지를 조용히 넣어 두고 편지 몇 개를 읽어 보던 나는 입을 열었다.

“와. 생각보다 훨씬 많이 보냈네.”

“상단주님이 곧 대륙을 좌지우지할 사람들 중 한 명이 될 것이 분명하니까요. 그러니 최대한 빨리 연을 대려고 하는 거죠.”

귀족들이 자신들의 자금줄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었다.

제일 왼쪽에 있는 서신들 중 에티아 가문에서 온 편지를 발견한 나는 종이 꾸러미들 속에서 그것을 꺼내 펼쳐 읽었다.

『펠릭스 상단주께.

하늘이 푸르르고 녹음이 우거진 여름이 찾아왔습니다.

바다도 한층 따스해진 햇볕에 물이 따뜻해지는 것이 잘 느껴지는 계절입니다.

이런 아름다운 계절에 동쪽에 기적 같은 일이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중략)……

에티아 가문은 상단주님과 행운을 같이 나누어보고 싶습니다.

그럼 언제나 행운이 함께하길 바라며,

에티아 가주, 카린 에티아.』

내용은 간단했다. 한 번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다고 에티아에 방문해 달라는 것이 끝이었다.

‘상어가 자신의 영토로 와 달라니.’

상상치도 못한 수확에 가슴이 두근두근 떨렸다.

바다에 사는 에티아 가(家)는 뭍으로 잘 나오지도 않고 다른 수인들을 저택에 들이지도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쉽게 말해서 방구석에 박혀 있는 종족들 중 하나이다.

그런 만큼 그들이 찾아가겠다고 한다던가 초대하는 것은 그만큼 놀라운 일인 거다. 이안도 저번에 에티아 가주가 방문했다는 말에 바로 응접실로 나갔으니까.

편지를 다 읽은 나는 앞에 있는 편지지랑 펜을 이용해서 답장을 썼다.

『바다의 주인, 에티아 가주님께.

……(중략)……

초대에 감사드립니다.

빠른 시일 내에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에티아 가(家)에 항상 행운이 함께하길 빌며,

펠릭스 상단주, 비안 웨스트.』

유려한 글씨체로 편지를 쓰던 아리엘이 마지막 점까지 찍곤 만년필을 내려놨다.

펠릭스와 같이 보내줘야지.

‘에티아의 가주의 성별에 관련된 논쟁이 뜨겁던데.’

어서 빨리 에티아의 가주를 만날 날이 기대되었다.

***

새로운 광물의 이름이 펠릭스라는 것이 밝혀지면서 대륙 전역이 ‘펠릭스’에 대한 소문으로 떠들썩했다. 호기심을 못 참는 귀족들은 자신의 연을 다 끌어다 써서 ‘행운’이라고 불리는 광물의 정체를 미리 알아보려고 했다.

“제가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이 펠릭스 상단과 계약을 맺은 곳과 연이 닿았는데, 그 광물이 우유보다 뽀얀 하얀색 빛깔이래요!”

“어? 저는 하늘색을 띠는 광물로 알고 있었는데.”

“제 영지민의 사촌이 펠릭스 상단이 소유한 광산에서 일하고 있는데, 아름다운 붉은빛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것이 예술이래요.”

아직 공개되지 않은 광물을 보았던 사람마다 그 광물에 대해 하는 얘기가 상이하게 달랐고, 이는 광물의 신비로운 이미지만 무럭무럭 키워 주었다.

별 관심 없던 것이라도 앞에서 거슬리게 입방아에 오르면서 알 듯 말 듯하게 굴면 오히려 더 신경 쓰이는 법처럼, 펠릭스에 대한 귀족들의 궁금증은 폭발하기 시작했다.

펠릭스에 대한 조그마한 정보라도 알고 있으면 그날, 파티에서 주목을 받는 일은 당연지사였다.

그렇다 보니 영애들은 눈에 불을 켜고 펠릭스에 대한 정보를 알아 오려고 했다.

“여태까지 이렇게 다들 다른 말을 하고 있는 주제가 있었나요?”

“아니요. 단언컨대 존재하지 않았어요.”

“사람들마다 어떤 사람은 분홍빛을 띤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뽀얀 우윳빛을 띤다고 하고, 어떤 사람들은 청량한 하늘색을 입혀 놓은 것 같다고 하니. 그 광물의 정체를 알 것 같으면서도 도리어 뭔지 감도 못 잡겠어요.”

“맞아요. 하지만 모두가 입을 모아 말하는 것은 눈을 떼지 못하게 아름답다는 거죠.”

“혹시 그러면 신의 축복이 담긴 광물이라 보는 사람마다 다 다르게 보이는 것 아닐까요?”

그렇게 소문만 무성한 펠릭스는 발에 날개가 달린 듯, 신의 축복을 받은 광물이라는 말까지 귀족들 사이에서 쫙 퍼졌다.

그리고 영식들과 가주들 사이에서는 펠릭스 상단의 행보가 쉼 없이 오르락내리락하며 그들의 행보가 주목되고 있었다.

“정체도 모를 상단주에게 누가 편지를 보냅니까? 소문으로는 평민이라는 말도 있던데.”

“확실히 그 광물도 별거 아닐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자신의 정체도, 광물도 공개를 안 할 리도 없지 않습니까.”

앞에서 이렇게 까내리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물론 뒤로는 모두가 한 번씩 그 상단주에게 편지를 보냈겠지만.

“도대체 펠릭스 상단의 상단주는 무슨 생각일까요?”

“그니까. 그런 광물을 가지고도 아직 공개하지 않는 건 무슨 생각인지.”

“아직 그 누구와도 계약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하. 저였으면 발견하자마자 빨리 다른 가문이랑 계약을 맺었을 텐데요.”

아무튼 ‘펠릭스’ 광물이나 상단 ‘펠릭스’나 그 무엇이든 그 둘에 얽힌 것이라면 뜨거운 화제가 되었다.

‘바다에 빠뜨리면 입만 동동 뜰 놈들.’

중성적인 미인이 어두운 보라색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떠들고 있는 귀족들을 가만히 앉아 구경했다. 카린 에티아의 눈에는 어차피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열심히 떠드는 그놈이 다 그놈이었다.

‘하여튼 떠드는 것만 그렇게 좋아해서.’

표면에 물방울이 맺혀 있는 유리잔을 한 번 닦은 후, 레모네이드를 한 입 마신 카린은 그들이 말하는 정보를 대수롭지 않게 주워들었다.

몇몇 귀족들은 품위를 신경 쓰지 않고 마시는 카린의 모습을 못 볼 꼴을 봤다는 듯 쳐다보았지만, 그녀는 개의치 않아 했다.

‘역시 레시아에서 파는 레모네이드는 기가 막혀.’

레시아는 중앙 도시에서 가장 큰 카페였다. 카린 에티아는 한 귀로는 귀족들이 떠드는 내용을 배경음악으로 삼아 창가 쪽 카페에 대놓고 앉아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레모네이드를 매너 없이 마시곤 바깥 구경을 하는 사람이 에티아의 가주라는 것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아. 저기 오네.’

느긋하게 레모네이드를 즐기고 있던 카린은 마저 남은 음료를 입안에 털어 넣고 책상 위에 컵을 대충 올려 둔 채 카페에서 나섰다. 그러자 몇몇 귀족들의 황당한 시선이 다시 한번 꽂혔지만 역시나 카린은 개의치 않고 자기 갈 길을 갔다. 정확히는 맹렬한 속도로 카린을 쫓아오고 있는 수인에게서부터 도망쳤다.

“카린 님!”

목숨까지 걸고 자신을 쫓아오는 사람에 카린이 천천히 속도를 늦추었다. 그러자 얼마 가지 않아 보좌관에게 덜미를 잡혔다. 물론, 카린이 일부러 내어 준 거긴 하지만 말이다.

“도대체 어딜 그렇게 휘적휘적 가십니까. 그렇게 빨리 가시니 이제는 따라가기도 벅찹니다.”

카린을 잡은 보좌관이 숨 가쁘게 헉헉거렸다.

“가끔은 말도 없이 사라지는 경우도 허다하지 않습니까.”

바닷속에 칩거한다는 소문과 달리, 카린 에티아는 대륙을 꽤나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편이었다. 물론, 공식행사나 연회에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대륙을 돌아다니는 동안 카린은 중성적이고 시원시원한 이목구비 덕분에 남자 여자 가리지 않고 대시를 꽤 많이 받았다. 그리고 그들 중에서는 카린이 에티아 가주라는 것을 알아본 사람이 없었다.

거기에는 자신의 이름이 길 가다가 마주칠법한 아주 흔한 이름이라는 것과 이안 카델리온, 루카스 세르디한과 같은 수인들과는 달리 신비주의를 지키는 덕분도 없지 않았다.

그리고 그런 점을 이용해 그녀는 대륙을 자기 집처럼 들락날락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말해 주지 않았나.”

“중앙에 있는 타운 하우스에 갈 예정이라고.”

툭하면 바다에 있는 자신의 저택을 나가서 여유로운 방랑자처럼 돌아다니는 가주에 보좌관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물었다.

“그니까, 왜 그곳을 가시는 겁니까.”

그러자 살짝 입꼬리를 말아 올린 카린이 평이한 어조로 말했다.

“펠릭스 상단주를 만나기 위해서.”

그렇게 대형 폭탄을 던진 카린은 ‘왜, 그런 이야기를 미리 알려 주시지 않으셨습니까!!!’라는 보좌관의 절규를 무시하곤 자신의 타운 하우스를 향해 유유히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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