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0. (51/111)

50.

“…죄송한데 여기가 카델리온 저택 아닌가요?”

그녀가 옅은 웃음을 지었다.

“맞는데.”

“근데 저택으로 보낸다뇨…?”

저건 훈련을 안 끝낸다는 거 아닌가.

나는 그녀의 다른 반응을 기다리며 빤히 쳐다보았다.

해명이 필요한 문제였다.

그러나 그녀는 입가에 미묘한 웃음을 걸치기만 했다.

기다리고 기다려도 내가 원하는 반응–예컨대 방에 보내 준다든가, 오늘의 훈련은 여기서 끝낸다든가…-은 나오지 않았다.

‘…정말 하루 종일 훈련시키려고 했던 거였어…?’

점점 확신이 되어 가는 추측에 식겁하여 얼굴이 점점 새파래졌다.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새로운 단검을 내 손에 쥐여 주었다.

“할 수 있어.”

할 수 없다니까.

나는 호랑이가 아니라고.

불가능한 것을 해내라고 하는 루이즈를 보고 원망의 눈초리를 보냈다. 그러나 루이즈는 생각을 바꿀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래도 딱 3번만 던지면 되는 거니까 한번 해 볼까.’

제대로 자세를 잡고 루이즈가 쥐여 준 단검을 힘껏 던졌다.

‘제발 과녁 중앙에 좀 박혀라.’

나는 간절하게 그 단검이 잘 나아가기를 빌면서 단검이 날아가는 궤도를 지켜보았다.

‘제발.’

단검은 처음엔 힘차게 하늘에서 비행했다.

“오. 될 것 같은….’

그러다가 급격하게 수직으로 추락했다.

‘…데가 아니었네.’

3분의 2도 날아가지 못한 채 땅속으로 처박힌 단검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았다. 은색 날붙이가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면서 빛났다.

‘왜 제대로 되어야 할 때는 안 되는 거지.’

이놈의 머피의 법칙.

허탈하게 터덜터덜 걸어간 나는 땅속에 박혀 있는 단검을 손에 쥐곤 바닥에서 빼내었다.

단검이 무 뽑히듯이 바닥에서 뽑혔다.

무를 뽑아 본 사람은 알겠지만 무를 뽑는 것은 의외로 어려운 일이다.

한 마디로, 땅에 박힌 단검을 뽑기는 또 엄청 힘들다는 얘기다.

나는 낑낑대며 바닥에서 단검을 뽑은 뒤, 연무장에 앉아 허탈하게 앞을 바라봤다.

어느덧 하늘은 옅은 주홍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상태였다. 해가 지평선 뒤로 숨기 위해 그 주변을 자신과 비슷한 빨간 빛으로 어스름히 물들이며 서서히 구름 사이로 숨어 들어갔다.

나는 미동도 없이 가만히 앉아서 그 광경을 바라보며 멍때렸다.

짝.짝.짝.

그때 재수 없는 박수 소리가 들렸다.

누군지 너무나 잘 예상되는 인물에 고개를 돌려보지도 않았다.

“역시 단검을 던지는 실력도 만만치 않게 예술적이야. 아리엘.”

그가 눈을 곱게 접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게 원하는 곳에다가 단검을 착지시킬 수 있는 실력. 검은 고양이는 달라도 뭐가 다른 걸까.”

무슨 소리 하는 거야.

“10점 만점에 11점 줄게. 예술 점수 10점에 기술 점수 1점. 어때?”

누가 봐도 놀리는 듯한 말에 그를 바라보고 있던 내 눈이 세모꼴로 변했다.

‘그럼 네가 해 보던가!’

단검 던지는 게 얼마나 어려운데.

자기 멋대로 자유의지를 가진 채 비행하는 단검을 지켜보는 사람의 마음을 그는 알기나 할까.

그것도 퇴근이 달려있는데.

나도 침대에 눕고 싶다.

“그럼 네가 던져 보든가요.”

그러자 이안이 내 옆에 누워있던 단검을 잡곤 아무렇지 않게 앞으로 던졌다. 아니 던진 게 아니라 단검을 손에서 내려놓았다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퍽.

강력한 소리를 내며 단검이 정확하게 표적 정중앙에 꽂혔다.

‘아. 맞다. 쟤 이안 카델리온이지.’

잘생긴 걸 기본 설정으로 해서 모든 걸 잘해야 하는 소설 속 남주인공.

‘주인공은 주인공이다. 이건가.’

나는 지나가는 엑스트라 1이고.

그와 가까워져서 그런 걸까, 요즘 쟤가 책 속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자꾸만 까먹게 된다.

나는 다시 한번 떠오른 알고 싶지 않은 사실에 망연자실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저 주인공을 믿은 내가 바보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역시. 세상에는 믿을 수인 한 명 없다더니. 정말이었어.

‘루이즈도 단검을 무슨 연필 한 자루 던지듯이 쉽게 던져서 과녁 정중앙에 맞히고, 쟤도 마찬가지이고.’

아니야. 저 남매는 천재라고 불리는 수인들이잖아.

새삼스럽게 세상이 주는 상대적 박탈감이 유독 많이 느껴졌다.

하긴, 남자주인공은 누구나 쉽게 될 수 있는 직업이 아니었다. 굳이 따지자면 극한 직업에 가까웠다.

얼굴도 잘생겨야 하지, 몸도 좋아야 하지, 능력도 있어야 하지….

그 모든 것이 갖춰져야 남자주인공의 역할을 비로소 수행할 수 있다.

나는 힐끔 이안을 쳐다보았다.

‘…저걸 쟤 얼굴이라고 생각하고 던져 볼까.’

그러자 이안이 혼자서 나를 보곤 계속 웃고 있었다. 나와 마주친 그가 오만하게 고개를 까딱했다.

‘뭘 웃어. 웃겨?’

나는 그 모습이 괜히 마음에 들지 않은 나는 과녁으로 시선을 돌렸다.

예로부터 때리고 싶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때리면 더 잘 때려진다던데.

던지는 것도 똑같지 않을까.

실제로 못 던지니까 상상 속으로라도 던져야지.

그동안 내가 얼마나 많이 고달팠던가.

이안에게 괴롭힘당한 일들이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어떨 때는 쥐를 가져오고, 어떨 때는 생선을 가져오고, 어떨 때는 자기한테 주먹질을 시키던 나날들.

저절로 단검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이안의 정수리를 향해…!’

확실히 아까보다 단검이 날아가는 속도부터 달랐다.

‘…내가 그렇게 이안에게 원한이 많았었나.’

앞으로 나가는 칼을 새삼스레 다시 바라봤다.

팍.

“오. 정중앙이네. 잘했어.”

루이즈가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루이즈의 부드러운 손길이 내 머리카락을 어루만져 주었지만 이안에게서 항상 느끼는 내가 원하는 포근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괜한 아쉬움에 눈동자를 내리깔았다.

게다가 여기서 이렇게 고생하는 것이 저 수인 덕분이라고 생각하니 별로 기분이 좋아지지는 않았다.

과녁을 보니 과녁 한가운데에 내가 던진 단검이 꽂혀 있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과녁 안에 잘 들어가지도 않던 단검인데.

‘음. 알게 모르게 이안에 대한 원한이 많았나 보군.’

나는 속으로 그에게 감사하며 과녁에서 시선을 돌렸다. 은근히 미안함이 드는 것은 기분 탓일 거다.

‘아니지. 쟤는 맨날 나 괴롭혔잖아.’

나는 허리를 꼿꼿이 펴고 당당하게 이안에게 다가갔다.

“자, 봤지?”

얼굴에는 뿌듯한 미소가 걸쳐진 채였다.

그러자 이안이 새로운 단검을 가지고 오더니 다시 던졌다.

단검이 빠른 속도로 올곧게 앞을 향해 나아갔다.

그의 한쪽 입꼬리가 얄밉게 말려 올라갔다.

‘이 불공평한 인생.’

잠시 얼빠져 있던 아리엘의 표정이 상한 나뭇잎을 먹은 애벌레처럼 썩어들어갔다.

현실을 자각하고 있는 수인의 표정이었다.

“너. 따라오지 마.”

나는 이안에게서 고개를 돌려 내 방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어서 씻고 잘 거야.’

몸이 땀으로 범벅이 된 것이 진득한 음료수를 뒤집어쓴 것 같기도 했다.

내 방을 향한 발걸음이 더욱 빨라졌다.

빠르게 종종걸음으로 사라지는 아리엘을 본 루이즈는 이안의 어깨를 살짝 두들기곤 우아한 웃음을 머금으며 사라졌다.

“잘해 보렴. 동생아.”

이안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웃으며 자신의 어깨를 털어냈다.

***

펄럭펄럭 종이 넘어가는 소리만 집무실에 적막하게 울리고 있었다.

허리를 꼿꼿하게 편 루이즈가 빠른 손놀림으로 업무를 보고 있었다.

“루이즈 님.”

“왜.”

문서를 처리하던 펜이 멈추자 무심한 갈색 눈동자가 그녀에게 닿았다. 아리엘을 쳐다볼 때와는 다른 눈빛이었다.

“주제넘은 물음이지만 한 가지만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주제넘은 물음이면 안 해야지 맞는 것이 아닐까. 리스 데몬트.”

“…죄송합니다.”

책상에 쌓여 있는 서류들에서 한 뭉텅이를 가져온 루이즈가 만년필을 들었다.

“그래도 이번 한 번은 물어볼 수 있게 해줄 게.”

“아리엘 님이 외출하시는 건 왜 따로 조사하지 않으십니까?”

리스 데몬트는 정말 궁금했다.

항상, 상대가 뭘 하든 무서울 정도로 철저하게 조사하고 대비하시는 루이즈 님이신데 이번에는 희한하게 어디서 뭘 하는지 그 어떤 것도 알아내지 않으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뭘?”

되려 루이즈가 무슨 말을 하느냐는 듯한 어조로 물었다.

“보통 어디서 뭘 하시는지 다 철저하게 알아보시지 않습니까?”

“그건 알아볼 필요성이 있거나 적대 관계여서 그런거고.”

“아리엘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잖아.”

하긴 그렇긴 하지.

사람을 죽이더라도 손발, 머리까지 덜덜 떨면서 죽일 것 같은 아리엘은 굳이 알아보지 않더라도 위협이 되지 않았다.

애초에 수인을 죽일 수나 있을까.

‘아마도.’

못 죽이겠지.

루이즈가 피식 웃으며 앞의 서류에 사인했다.

“그렇네요. 수인 한 명도 겨우 죽이실 것 같으신데.”

잠시 펜을 멈추었던 리스 데몬트도 루이즈와 똑같은 사고 흐름을 거쳐 굉장히 이상한 방식으로 납득했다.

하긴, 그도 그럴 것이 카델리온의 기사단에서 부단장 정도의 무력을 가지고 있는 수인들이 그들이었다.

전장에서 자신의 주군과 생사를 함께했으니, 원치 않아도 살기 위해서는 무력이 뛰어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밖에 더 큰 이유도 존재하지만.

그러니 수인을 한 명도 못 죽이는 것은 그들에게는 엄청나게 나약한 수인이 되는 것이다.

펜에서 흘러나온 잉크가 종이에 거뭇하게 번졌다.

리스 데몬트가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쓰던 종이를 손아귀 안에서 꼬깃꼬깃하게 구겨 능숙하게 뒤로 던졌다.

그러자 동그랗게 구겨진 종이가 정확하게 쓰레기통으로 떨어졌다.

루이즈의 머릿속에선 밖에 나가도 빨빨거리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아리엘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선연히 보였다.

종이 뭉치가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자 루이즈가 풋 하고 웃었다.

“얼마나 귀여워.”

수인 하나 죽이지 못하는 새끼 고양이가 혼자서 그렇게 엄청난 일을 이뤄내거나 카델리온에게 위협이 될 만한 일을 할 수 있을까.

업무를 처리하던 그녀가 피식하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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