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7. (48/111)

47.

회의장 내부는 동, 서, 남, 북의 가주가 대륙의 정세를 의논하는 회의장이라는 사실을 보여 주듯 그 위엄을 여실히 빛냈다.

금보다도 비싸다는 하얀색 수정으로 넓게 펼쳐진 우아하고 웅장한 궁.

그중에서도 군데군데 금으로 강조를 한 부분은 고아한 미를 돋보이게 했다. 샹들리에는 저 높은 곳에서 끝도 없이 내려와 회의장을 비추었고, 군데군데 박힌 조명들이 넓은 회의장을 환하게 비추었다.

그리고 그 가운데에는 네 개의 커다란 의자와 원형 테이블이 자리하고 있었다.

“다들 미리 와 계셨군요.”

이안이 회의장을 쭉 훑어보더니 재수 없게 눈꼬리를 접었다. 그가 자신의 외투를 벗곤 자기 자리로 걸어갔다.

그가 의자의 뒤쪽에 기댄 채 자리에 앉아 있는 나머지 세 명의 가주를 보곤 느릿하게 입을 뗐다.

“회의를 시작할까요?”

“마음대로 하십시오.”

먹 같은 새까만 머리칼의 뱀의 가주가 여유롭게 앞에 놓여진 펜을 돌렸다.

“빨리 시작하시죠.”

회색 빛깔 머리의 여자가 귀찮다는 듯이 손을 휘저었다.

“늑대는 성질이 급해 무엇이든 성급하다더니, 정말인가 봅니다.”

그 모습을 보던 루카스가 묘하게 비릿한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그러자 우아하게 웨이브를 넣은 회색 머리 여자가 의자 뒤로 느긋하게 기대었다.

동부의 수장, 그레이스 마르코스였다.

“게으르고 느린 것들은 경쟁에서 도태되기 마련이죠.”

“글쎄요. 딱히 그런 건 아닌 것 같던데.”

그가 웃으며 맞받아쳤다.

“처음부터 아직까지 이리 남부의 대표에 잘 앉아 있는 걸 보면.”

이야기를 들으며 펜을 돌리던 아쉴라 가주의 손이 어느 순간 멈추었다.

“근데 괜찮으십니까.”

“곧 남부의 뮤트족과 동부의 마르트족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있던데 이렇게 평화롭게 앉아 있어도 되시는지.”

그가 기분 나쁜 웃음을 옅게 지었다.

“그들에게 지원군을 넣을지에 대한 문제 의논하려던 거 아니었습니까.”

“글쎄.”

이안이 입을 뗐다.

“굳이 연합군을 어느 지역에 지원을 할 필요가 있을까 싶습니다만.”

그레이스가 요요하게 팔짱을 꼬았다.

“제 18조 7항, 동, 서, 남, 북의 대표 가문 가주들은 각 지역에서 전쟁이 발생했을 때, 평화를 목적으로 하여 연합군을 지원한다.”

“이 전쟁을 빨리 양쪽이 납득할 만한 결과로 마무리 짓는 것이 연합군의 목적이지 않습니까.”

뱀의 가주가 이안을 바라보았다.

“설마 이대로 전쟁이 계속되게 하고 싶으신지.”

그 말에 피식 웃은 이안이 자신의 의자 손잡이를 두드렸다.

“오히려 반대의 경우는 생각해 보지 않았는지 궁금한데.”

“흐음. 그러면 그냥 전쟁이 일어나도록 이대로 두자는 말씀이십니까?”

“오히려 연합군을 지원해 전쟁이 더 커질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 보셨는지.”

“도대체 뭘 믿고 어떤 것을 바라기에 아직 전쟁이 일어나지도 않은 곳에다가 연합군을 넣지?”

그가 입을 열자 삽시간에 주변이 조용해졌다.

“설사 그들 사이에서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연합군이 개입해서 그들의 전쟁이 빨리 끝날 가능성은 별로 없는 것 같은데.”

타닥. 타다닥.

이안이 의자의 손잡이를 느긋하게 두드렸다.

“더 커질 가능성은 몰라도.”

“마치 전에 일어났던 전쟁처럼.”

“아. 환희의 전쟁?”

가벼운 말투로 늑대 가문의 수장이 겉옷을 벗으며 말했다.

“그래. 환희의 전쟁.”

그러자 이안이 칼바람이 부는 것 같은 매서운 시선과 함께 눈을 휘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이 차게 식어 있었다.

그것을 본 아쉴라가 새까만 눈을 휘었다.

“그 환희의 전쟁은 연합군 때문이 아니라 다른 복합적인 요인들이 섞여 한 번에 터져 오래 간 것이 아닙니까.”

루카스가 맞받아쳤다.

“자급 문제나, 상인들의 문제나 그에 얽혀 있는 세력들이나.”

“그리고 마물 같은 문제들까지. 안 그렇습니까?”

이안이 느른하게 다리를 꼬았다.

“아아, 그러면 북부가 문제라고 말하는 건가?”

“그것도 나쁘지 않겠네. 제대로 한 번 북부가 문제를 일으켜 보는 것도.”

그의 눈이 시리게 빛났다. 느른한 눈빛에 살기가 맴돌았다.

“여태까지 북부가 특별히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지 않았나?”

그 모습은 집요하게 노리는 먹이의 목을 언제든지 물어뜯을 수 있다는 것을 아는 오만한 지배자의 모습이었다.

“마물들의 위험성을 다시 경고하려고 했던 것이지, 다른 의도는 없었습니다.”

루카스가 아무렇지 않게 어깨를 으쓱하곤 한 발 뺐다.

“아, 그리고 마물들의 부산물로부터 만들어 내는 물건들의 가격이 폭등해서 민심이 흉흉하던데…….”

그레이스 마르코스가 눈을 살짝 굴리며 슬쩍 말끝을 흐렸다.

“언제부터 북의 마물 부산물 가격이 다른 지역에서 관여할 수 있게 된 것인지 그것참 궁금하네요.”

이안이 빙긋 웃었다.

“그렇게 원하신다면 찬찬히 설명해 드리죠.”

그가 앞에 있는 펜을 들어 종이에다가 펜으로 가격을 적어 내려갔다.

“영주민들이 생활하는데 필요한 한 달 생활비 1실버, 그중 마물의 부산물들이 영지민들에게 필요한 금액 12쿠퍼.”

“그리고 영지민들이 생활하는 데 필수적으로 필요한 마물 부산물의 현 금액 10쿠퍼.”

“한 달 필요한 금액에서 남는 금액 2쿠퍼.”

탁. 하고 검은색 펜을 내려놓는 소리가 회의장에 울려 퍼졌다.

“이 정도면 여유롭게 잡힌 거 아닌가?”

그러곤 턱을 괴어 나머지 가주들을 바라보았다.

“마물의 부산물 값이 너무 높다면, 그건 귀족의 사치품이겠지. 영지민들이 아니라.”

“가격이 오른 것은 사치품뿐이니.”

“그리고 귀족의 사치품은 원래 과시용으로 쓰이는 거 아닌가? 그러면 값이 비쌀수록 좋을 텐데.”

그가 느릿하게 입술을 다시 움직였다.

“도대체 어디가 문제인 거지? 그레이스 마르코스?”

이안이 천천히 의자 뒤로 자신의 몸을 눕혔다.

“아니면, 동부의 수장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사치라도 하고 싶은 것인가.”

그러곤 비뚜름히 입꼬리 한쪽을 올렸다.

“내가 동부의 수장이다, 라고 과시하기 위해서?”

그가 여유롭게 빙글빙글 웃으며 다른 가주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녀가 앞에 놓인 사탕을 하나 집어 뒤로 기대앉은 채 아득, 씹어먹었다.

마치 앞에 있는 상대를 씹어먹듯이.

“……앨런 님, 오늘 이안 님 왜 이렇게 무서운 겁니까.”

다른 보좌관들이 회의실의 구석에서 서로 말을 나누었다.

“제가 어떻게 하늘 같은 주군의 마음을 알겠습니까.”

앨런이 어깨를 으쓱였다.

“저는 단지 그분을 보좌하는 직책밖에 되지 않는걸요.”

그러곤 여태까지 회의에서 나온 결정들을 앞에 있는 펜을 들어 노트에다가 요약했다.

옆에서 앨런이 회의 내용을 요약하는 것을 본 다른 보좌관이 이해를 못 한다는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어차피 머릿속에 다 있으시지 않나. 왜 저런 쓸데없는 짓을 하시는 거지.’

앨런 데몬트는 보좌관들 중에서도 유독 머리가 좋은 편이었다. 옆에 있던 보좌관은 그 생각을 머릿속 뒤에 넘긴 채 입을 열었다.

“그래도 평소 회의는 저 정도로 살벌하지는 않지 않습니까. 오늘따라 유독 모두들 살벌하십니다.”

회색 머리 보좌관이 다른 보좌관들을 향해 말했다.

“도대체 오늘 회의는 언제 끝나련 지.”

보좌관들은 그들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내뿜는 기세에 꼼짝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들이 각 가주의 보좌관이라서 어느 정도 버틸 만한 것이지, 아마 일반 기사가 왔으면 몇 분도 채 되지 않아 게거품을 물고 쓰러졌을 것이 자명했다.

“그래도 최대한 빨리 끝났으면 좋겠습니다.”

스칼이 자신의 외알 안경을 올려 썼다.

“제 퇴근 시간은 소중하거든요.”

그러자 모두가 어이없는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퇴근해 봤자 어차피 세르디한 저택 아닙니까.”

자신의 옷차림을 다시 재정비하며 맞추던 그가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건 맞긴 합니다만.”

“그래도 퇴근을 안 한 상태로 있는 것과 퇴근을 한 상태로 있는 것은 심적 부담감이 다르지 않습니까.”

그러곤 다시 묵묵히 자신의 머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모두의 눈초리가 그를 공감하는 눈초리로 바뀌었다. 오늘도 한참 난리 치는 가주들 사이에서 보좌관들만의 묘한 공감대가 형성되는 때였다.

시간이 한참이나 지났음에도 저 멀리서는 살벌한 분위기가 사그라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중앙 도시 관련해서 저희 서쪽 영토와 중앙 도시를 연결한 길을 하나 틀까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걸로 얻는 중앙 도시와 나머지 영토의 이익은 무엇이지?”

루카스가 눈을 빛냈다. 틈만 나면 물어뜯을 수 있을 것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아쉴라의 가주는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며 여유롭게 받아쳤다.

“서쪽의 장인들을 중앙 도시에 더 풀고, 천의 수출량을 더 늘리도록 하죠. 각 영토에.”

‘나쁘지 않은 제안이긴 한데.’

도대체 서쪽이 저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지.’

곰곰이 생각하던 이안이 입을 열곤 싱긋 웃었다.

‘뭐 어쨌든 간에.’

“그거면 나쁘지 않군요.”

그때, 가만히 듣고 있던 루카스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북부, 동부, 서부, 남부 다 연결될 수 있는 길을 하나 만들죠.”

“무역량이나 수출량이나,”

“각각의 영토에 이득 되는 걸로 치면 그게 더 많은 것 같은데.”

‘그것도 나쁘지 않은 생각이네. 서부에 얹혀서 가겠다는 건가.’

이안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회색 머리칼을 한 번 뒤로 쓸어넘긴 그레이스 마르코스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러면 서쪽과 중앙 영토를 연결하는 길은 설치하는 것으로 결정하고 동서남북 모두 연결하는 길을 하나 만들도록 하겠습니다. 또 자세한 것은 각 가주의 서신으로 전달하는 것으로 하죠.”

“중앙 도시에 관련된 일이니 각별함은 필요하지 않겠습니까.”

***

“회의는 어떠셨습니까?”

얼굴을 다 가리는 새까만 가면을 쓰고 있는 수인이 앞에 앉아 있는 사람에게 물었다. 가면을 쓰고 있는 수인은 태울 것 같은 붉은 색 머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 색이 앞에 있는 수인과 더욱더 비교가 되었다.

“글쎄.”

그 사람이 미묘한 웃음을 지으며 느른히 다리를 꼬았다.

“특히, 제가 말한 건은 잘 해결되었는지. 궁금합니다만.”

“받고 싶은 게 있으면”

그가 앞에 있는 주사위들을 던졌다.

“주는 것도 있어야지.”

높이 떠오른 주사위 중 하나가 책상 바깥으로 떨어졌지만 둘은 모두 그것을 신경 쓰는 척하지도 않았다.

“뭘 원하십니까.”

얼굴을 새까만 가면으로 가리고 있는 수인이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말했다.

“대답해 드릴 수 있으면 대답해 드리죠.”

하지만 가면 때문인지 그의 표정이 바깥으로 직접적으로 드러나지 않았다.

책상에 떨어진 한쪽 주사위를 만지작거리던 수인이 아무 눈도 표시되어 있지 않은 쪽을 천장을 바라보게 만든 후 입을 열었다.

“이안 카델리온을 그렇게까지 싫어하는 이유가 무엇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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