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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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바구니 안에 들어가 외출하려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간 뒤, 어느덧 1주일이 지났다.

그리고 1주일 간의 냉전을 거친 결과,

‘우와, 여기가 어디야?’

나는 정말로 외출을 했다.

그게 나 혼자 아닌 외출이라는 것이 문제였지만.

이건 루이즈가 외출을 허락한 조건 때문에 벌어진 일이었는데, 루이즈는 두 가지 조건으로 외출을 허락해 주었다.

첫 번째, 인간화에 성공했으니 자신에게 단검을 던지는 법을 배우도록 할 것.

두 번째, 자신과 외출을 할 것.

그렇게 나는 외출을 하게 되었다.

“이안 님, 오늘 저는 휴가를 쓰면 안 됐을까요?”

“말도 안 되는 소리.”

“흐음, 앨런. 심심하면 내 보좌관이랑 대련이라도 할래?”

“아, 대련을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습니다만 매우 안타깝게도 검을 안…….”

“여기 검 있는데.”

“리스 데몬트 님, 이 부러질 듯 가녀린 제 손목 보이지 않으십니까. 이런 제가 어떻게 건장한 리스 데몬트 님과 겨루겠습니까.”

“가녀린 손목을 단련시키려면 나랑….”

“이안 님, 가녀린 손목이 제 매력 포인트인데, 봐주실 수는….”

“없는데.”

저 호랑이들과 함께.

‘우와…….’

옆에 있는 커다란 호수가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면서 빛났다. 맑은 하늘색이 반짝이는 것이 마치 작은 보석 알갱이들이 잔잔하게 물결치는 것 같이 보였다.

‘이안의 눈이랑 비슷한 색깔인가?’

나는 그 호수를 한 번 바라보고 이안의 눈을 한 번 더 바라봤다. 그의 눈과는 결이 다른 파란색이었지만, 호수는 호수대로 예뻤다.

“아리엘, 메이즈 호수는 대륙에서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호수 중 하나란다.”

루이즈가 마차에서 나를 안고 내려왔다.

슬프게도 오늘부터 인간화가 풀린 상태라 내 몸은 아직 새끼 고양이인 상태였다.

‘그래도 내일모레면 이 인간화 적응 기간이 끝나!’

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던가.

‘안 보여!’

‘다들 어디 있는 거야.’

“이안 님, 똑똑한 개들이 훈련을 할 때 천을 뒤집어쓰고 천 안에서 나오기, 이런 훈련 하지 않습니까?”

“아리엘, 혹시 정말 개가 되려고 하는 거야?”

“개는 좀 곤란해. 호랑이들은 개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거든.”

간식을 앞에 둔 상태로 드레스 안에서 탈출하지 못한 채 허우적대다가 이안에게 구출당해 강아지가 되고 싶은 고양이라는 엄청난 오명을 쓴 적도 있었고,

푹.

“미야옥!!”

“괜찮아. 아리엘. 진정해.”

인간인 상태로 단검을 던지려고 하다가 단검을 날리기 직전에 새끼 고양이로 변해서 단검이 바로 내 발 앞에 꽂혀 그 자리에 팔짝 뛴 적도 있었다.

그 자리에서 팔짝 뛰어오른 나는 루이즈가 그 단검을 뽑아 줄 때까지 바들바들 떨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게다가 디저트를 먹기 위해 포크질을 할 때, 고양이로 변하는 순간은 부정할 수 없는 정말 무서운 순간이었다.

“냐……옭……?”

“이안 님, 아리엘 님 옆에 있는 저 무시무시한 살상 무기 좀 치워 주는 게 어떻겠습니까?”

“아, 당연하지. 이런 위험한 병기가 있어 귀한 고양이 옥체에 털 하나 상하면 안 되니.”

조그마했던 포크가 나에게 살상 무기가 되니까. 그에 따라오는 앨런과 이안의 헛소리들은 덤이고. 먹고 있었던 포크가 나를 죽일 수 있는 무기가 된다는 건, 무서운 걸 떠나서 솔직히 너무나 굴욕적인 일이었다.

나는 내 등 뒤에 가방을 멘 채 빛나는 호수를 보며 아련히 생고생의 추억에 잠겼다.

힘들었던 기억들에 눈물이 다 나올 것 같았다.

나는 내 배낭을 주섬주섬 열어 지도를 펼친 채 잔디 위에 풀썩 주저앉았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지, 저 호랑이한테 안 걸리고 노후 자금을 마련할 수 있을까.’

지역별로 원작을 떠올린 이후로 내 미래 계획에는 전혀 진척이 없었다.

‘카델리온 가를 떠나도 편하게 먹고살아야 하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빠져나갈 수 있는 구멍은 하나 만들어 놔야 하고.

안락하고 호화로운 생활을 한 번 맛보고 나니 이 생활을 놓지 못할 것 같았다.

‘어떻게 해야지 부자가 되냐고.’

이쪽 세상이나 저쪽 세상이나 부자 되기 어려운 건 매한가지였다.

나는 지도를 뚫어져라 한참을 쳐다보았다.

그때, 내 앞으로 데구르르 당근이 굴러왔다.

안 봐도 호랑이들의 짓이었다.

나는 힘껏 당근을 뻥 차 준 후, 굴러간 당근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다시 앉아 생각에 잠겼다.

‘어……?’

저 산 어딘가 익숙한데.

지도가 지겨워질 때쯤, 동부의 산이 그려져 있는 부분이 눈에 밟혔다.

이용 가치도 없는 그냥 평범한 산처럼 보이는데.

‘도대체 어디서 본 거지?’

모기가 귓가에 윙윙거릴 때처럼 계속 머릿속이 거슬렸다.

‘내가 저걸 어디서 본 걸까.’

나는 뒤죽박죽이 된 온갖 기억을 뒤지면서 나는 내가 있던 자리 근처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어디서 봤는지 깨닫지 못한 상태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마치 비 오는 날 비를 맞고 씻지 못했을 때처럼 찝찝한 기분이 온종일 따라다닐 것만 같았다.

나는 앞발로 내 머리털을 쥐어뜯으며 지도를 붙잡고 골몰히 고민했다.

그러자 어느새 내 옆으로 당근을 들고 다가온 이안이 내 앞발에서 머리털을 놓아줬다.

“그러다가 머리카락 다 뽑혀서 대머리 고양이 돼. 독수리랑 친구하고 싶은 거야? 아리엘?”

이안의 손길에서 자유를 찾은 내 머리털을 내버려 두고 나는 혼자 열심히 나무 밑을 빙빙 돌았다.

‘아!’

『동쪽의 그 보잘것없는 돌무더기 산은 알고 보니 광산이었다.』

순간적으로 퍼뜩 원작의 한 구절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생각났다.

광산.

‘그래. 이거였어!’

놀라운 깨달음에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

분명 보지 않아도 꼬리까지 바르르 떨렸을 것이다.

호수에서 불어온 서늘한 바람이 흥분된 내 뺨을 스치고 지나갔다.

여주 상단을 대륙에서 7번째로 크게 만들어 주는데 일등 공신을 한 신비로운 광산이 동부의 돌무더기 같은 산에 위치해 있었다.

『-쨍그랑!

“아. 죄송합니다.”

클로에가 주변을 밝히기 위해 들고 있던 램프를 실수로 떨어뜨렸다.

“어……?”

그때, 옆에 있던 인부가 멍청하게 입을 벌렸다.

그 순간, 평범한 돌무더기였던 산이 신비한 빛깔을 한껏 머금은 광석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될놈될이라는 말이 진짜인지, 원작에서 여주는 램프를 떨어트려 새로운 광석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도 빛의 반사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광석을.

그리고 그것은 여주의 인생 자체를 바꿔 버릴 사건이었다.

‘클로에는 정말 될 놈은 된다. 라는 말의 표본이지.’

수인들은 새로운 종류의 보석에 열광했다.

자연스럽게, 아무 가치도 없던 돌들의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건 당연한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니 작가가 글쓰기가 귀찮았나? 너무 사기적이잖아.’

나는 똑같은 나무를 계속 빙빙 돌며 생각했다.

어째 나무 그늘이 나에게 더 가까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기분이 좋아서 그런가.

그래!

‘내가 그 광산을 사면 돼!’

놀라운 깨달음이 파드득 스치고 지나갔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진동이 고막을 울렸다.

그럼 벼락부자가 되는 건 한순간이다.

‘와. 이런 게 바로 로또 당첨인가.’

돌았네.

이번 생 운 다 썼다.

아리엘이 나무 그늘에 나와서 잔디밭을 달렸다.

원작에서는 그 광산 덕분에 여주의 상단이 대륙에서 일곱 번째로 커질 수 있게 된다.

그만큼 광산의 파급력은 컸다.

‘……그럼 잘만 하면 대륙에서 제일 큰 상단도 만들어 낼 수 있는 거 아니야?’

잔디를 열심히 달리던 아리엘의 발이 갑자기 멈췄다.

헐. 대박.

엄청난 희열감이 밀려들어 왔다. 수염이 부르르 떨렸다.

온 세상이 무척이나 아름다워 보였다.

주위에 보이는 청량한 물색을 가진 호수,

바로 내 앞에 있는 푹신푹신한 잔디밭,

그리고 그 군데군데 있는 큰 아름드리나무까지!

이렇게 아름드리나무를 아름답게 배치해 놓다니. 모든 아름드리나무에서 호수의 풍경이 보이게끔 심어져 있었다.

수인은 욕심이 끝도 없는 동물이라더니, 하나를 깨닫게 되니 다른 하나도 해 보고 싶은 욕망이 가슴속에서 몽글몽글 샘솟았다.

앞에 있는 잔디밭도, 위에 있는 하늘도,

‘그리고 뒤에 있는…….’

너희가 왜 있냐.

나는 내 뒤를 보고 황당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내 뒤에는 어느새 돗자리를 펴 놓고 합법적으로 쉬고 있는 앨런을 제외한 나머지 수인들이 서 있었다.

‘각자 쉬기로 한 거 아니었어?’

암묵적으로 그렇게 정한 줄 알았는데.

이안이 손에 들고 있는 당근을 흔들었다.

“당근 버리고 갔잖아.”

루이즈가 옅게 웃었다.

“나는 이안 누나니까 따라온 거야. 남매는 흔히들 하나라고 하잖니.”

“최소한 양심이 있다면, 누님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습니다만.”

“저는 루이즈 님의 보좌관이므로 루이즈 님의 곁을 지켜야 해서 따라간 겁니다.”

‘이안. 그러면 당근 줘 봐.’

아리엘이 당당하게 당근을 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아리엘은 건네받은 당근을 조그만 가방 안에 쑤셔 넣었다.

‘됐지?’

당근이 큰 건지, 가방이 작은 건지 당근이 들어 있는 가방은 지퍼가 끝까지 닫히지 못해 가방 가운데 당근이 빼꼼히 튀어나와 있었다.

한참을 당근과 씨름하던 아리엘은 가방을 자기 발로 한 번 퍽 치더니, 그냥 그 상태 그대로 가방을 메고 잔디밭을 걸었다.

돌이 있다면 돌을 차고 싶었지만, 고위 귀족들을 상대로 하는 관광지라 그런지 잔디밭에는 돌 하나 없이 푹신했다.

‘근데 어떻게 해야 하지.’

상단을 세운다고 하더라도 상단을 운영할 인재들을 고르는 게 문제였다.

게다가 이안이 최대한 눈치를 못 채도록 운영하는 것도 문제고.

루이즈가 안 들키도록 도와준다고 하더라도 그 백호는 기필코 알아내고 말 것이다.

그니까 이안에게 들키기 전까지는 상단을 어느 정도 키워놔야 했다.

‘……잠시만. 그럼 원작을 뽑아먹으면 되지 않을까…?’

여주인공부터 시작해서, 7대 상단주, 정보 길드장…….

생각해 보니 그 책에서 나오는 인물은 다들 대륙에서 한 가닥 하는 사람들이었다.

어느 하나 빼먹을 사람이 없었다.

‘……저기 뒤에 있는 수인들처럼.’

내가 뒤돌자 나를 따라가던 수인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호수를 둘러보거나 하늘을 둘러보는 둥 열심히 딴짓하는 척하고 있었다.

‘너네 거기서 뭐 해?’

내가 그들을 빤히 쳐다보자 이안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너가 네 머리털을 다 뽑을까 봐. 걱정돼서.”

“나는 전과 같은 사유란다.”

“저는 루이즈 님의 보좌관이니까 붙어 있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그냥 포기하자. 걷다 보면 사라져 있겠지.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곤 발이 내키는 대로 걸어 다녔다.

‘이안이…… 생일이 지났으니까 지금 19살이네.’

나보다 생일이 몇 개월 느리긴 하겠지만.

그래도 생일로 지나면 나이를 세는 이곳 기준에서는 몇 개월 차이가 나도 큰 차이였다.

심지어 지금은 아직 원작이 시작하지 않았을 시점.

원작 속에서 활동하던 인물이 아직 다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니까 활동할 시기가 되지 않은 거다.

그럼 지금은 원작 인물들이 아직 진흙탕 속에서 데굴데굴 구르고 있는 시기였다.

‘거기서 내가 원작 인물들을 그 고난에서 탈출시켜서 데려오면……?’

나는 내 방에 있는 각종 값비싼 보석들을 한번 힐끗 쳐다보았다.

이안이 언제 그리 많이 사 놨는지, 방 안에는 어느새 품질도 좋은 귀한 보석들이 옆에 한가득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들을 고난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충분해 보였다.

돈으로 못할 것은 없었다.

‘어? 그럼 원작은 인재 대백과 사전이네.’

‘이용할 수 있을 때 밑바닥만큼 다 뽑아 먹어야지.’

그리고 나는 결심했다.

원작 따윈 파괴해 버리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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