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이거 진짜야?’
꿈 아니야?
믿기지 않는 현실에 나는 손으로 내 뺨을 꼬집었다.
볼에서 느껴지는 얼얼한 통증이 현실이라고 말해 주고 있었다.
‘인간이 되었다.’
‘와. 진짜 인간이 되었어.’
항상 나를 가로막고 있던 기운이 사라졌다.
온몸의 활로가 트인 것 같았다.
몸 안에서 차가운 기운이 광활하게 움직이는 것이 하나하나 느껴졌다.
속으로 내가 인간이 다시 되는 순간을 수천 번을 상상했지만 이런 상황만은 예상하지 못했다.
애초에 그가 이렇게나 아플 수 있다는 것을 고려조차도 하지 않았다.
그 상황에서 내가 인간이 될 것이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도 못했고.
‘인간화 적응 기간에 인간이 되는 것에 실패해서 다시는 인간화를 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인간이 되고 싶었던 마음 한편에는 항상 인간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동시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근데 이렇게 인간이 되다니…….’
기쁜 마음보다는 얼떨떨한 마음이 앞섰다.
신기루를 마주한 것 같았다.
‘아. 내 몸.’
잠시 멍을 때리다가 팔을 내려다보니 아무런 누더기조차도 걸치지 않은 팔이 보였다.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은 현실을 금방 자각했다.
‘그나마 가릴게…….’
주위를 둘러보다가 급한 대로 주섬주섬 이불을 챙겼다.
사부작사부작하고 이불이 내 쪽으로 끌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설마 보고 있었던 건 아니겠지.’
나는 이불을 끌어오며 경계 어린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이불 안에 더더욱 파묻힌 채 대굴대굴 굴러가 그 큰 이불을 거의 다 내 쪽으로 슬며시 끌어들였다.
그 모습이 흡사 누에고치 안에 들어간 수인의 모습이었다.
철저하게 경계한 것이 무색하게도 그는 이런 상황을 예상하기라도 했던 듯, 나에게서 뒤돌아 있는 상태였다.
저 무시무시한 회복력 때문인지, 피로 가득 찬 거대한 욕조 안에 담근 것처럼 피에 절여 있었던 호랑이는 피가 멎은 상태로 새 살이 돋아나고 있었다.
이불을 어느 정도 끌어모은 나는 이불을 머리까지 뒤집어쓰며 시야 확보를 위해 눈만 빼꼼 내밀었다.
이불이 떨어지는 불상사가 나타나지 않도록 손에 이불을 꼭 쥐었다.
그리곤 이불을 둘러싼 채 침대에서 나와 뒤뚱뒤뚱 걸었다.
핫도그 안에 있는 소시지가 인간이 되어 벌떡 일어나 제 발로 뒤뚱뒤뚱 걸어가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거울. 거울 어디 있어.’
나는 다른 방향 따윈 보이지 않는 듯, 거울을 향해 직진했다.
내 몸을 다 뒤덮고도 한참 남은 큰 이불이 바닥에 질질 끌렸다.
이불 때문에 움직이기가 힘들어 발걸음 보폭을 좁게 하여 종종걸음으로 거울 앞까지 다가갔다.
거울 앞에 마주 서자 보이는 모습은 고양이가 아니었다.
자기 몸보다 더 큰 이불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필사적으로 둘러 싸맨 소녀가 있었다.
거울은 햇빛에 비치는 싱그러운 풀을 수놓은 듯한 연둣빛 눈을 가진 소녀를 비추었다.
미처 정리하지 못해 하얀 이불 안에서 몇 가닥 삐죽 튀어나온 칠흑같이 까만 머리카락은 확실히 더 눈에 띄었다.
나는 머리까지 덮어쓰다시피 하고 있던 이불을 내려 어깨에 두르곤 머리카락을 이불 안에서 빼내었다.
‘……이게 나야?’
깜빡.
나는 눈을 다시 감았다 떴다.
거울이 비추고 있는 소녀는 이불을 둘러싼 채로 서 있었다.
날씬하다고 하기보다는 말랐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했다.
이불을 둘러싸도 마른 것이 숨겨지지 않았다.
허리께까지 내려온 까만색 머리카락이 보였다.
고양이였을 때의 내 털처럼 어둠을 먹은 것같이 새까맸다.
창백한 피부가 까만색 머리카락과 대조되어 더 하얗게 보였다.
그것이 깜깜한 밤에 빛나는 달 같았다.
나는 이상한 기분에 머리카락을 만지작만지작했다.
그러자 거울 안에 있는 소녀도 어색한 표정을 지은 채 머리카락을 만지고 있었다.
‘……나구나.’
이도 저도 아닌 맛의 밍밍한 음식을 먹은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머리카락을 만지고 있는 것을 보니 의심할 필요도 없이 확실히 거울 안의 인영은 나였다.
내가 하는 행동을 똑같이 따라 하는 거울의 인물을 보니 다시 한번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어제는 죽을 뻔하고, 오늘은 인간이 되다니.
인생사 한 치 앞도 모른다.
나는 멍하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보았다.
‘음…. 뭘, 어떻게 해야 하지……?’
너무 당황스럽고 갑작스럽게 일어난 일에 머릿속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인간이 되면 하려고 생각해 둔 100가지가 넘는 버킷리스트들은 기억 속 저 너머 휴양지에서 파라솔 펴 놓고 산타 할아버지와 여행 중인지 오래였다.
나는 거울 속의 내 모습에서 눈을 떼고 터덜터덜 걸어갔다.
어느 정도 사부작거리는 소리가 멈추고 그에게 다가오는 소리가 들리자 그가 고개를 돌려 아리엘을 바라봤다.
그와 내 눈이 정면으로 마주쳤다.
연둣빛 눈동자와 파란 벽안이 서로 교차했다.
하나는 인간이었고, 하나는 백호였다.
백호인 상태로 있는 이안과 인간의 상태로 있는 아리엘은 평소와 상황이 뒤바뀌어 있었다.
원래는 새끼 고양이와 인간이었다면,
지금은 인간과 백호로.
그에게 말을 건네기 위해 성대를 울리면서 공기를 내뱉었다.
“아…… 아…….”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아 메마른 상태로 거칠게 갈라진 목소리가 내 입에서 나왔다.
냐옹하는 고양이 소리가 아닌 인간의 소리가 나는 건 참으로도 오랜만이었다.
몇 번 더 목소리를 내면서 목에다가 손을 가져다 대었다.
성대가 진동하는 생경한 떨림이 손끝으로 느껴졌다.
울컥하고 눈물이 차오를 것 같았다.
목소리를 내기 위해 목에서 성대 울리는 느낌이 낯설었다.
9살 이후니깐 10년 만인가.
느껴지는 그의 시선에 어딘가 멋쩍어졌다.
하긴 나도 당황스러운데 쟤는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고양이인 줄 알고 지냈던 옆의 고양이가 갑자기 사람이 되다니.
그것도 어린이 수인이 아닌 수인으로.
극악의 확률도 이런 극악의 확률이 없었다.
나는 입을 동그랗게 열었다가 입을 살짝 모으며 발음했다.
“아녕.”
……아.
너무 오랜만에 발음해서 그런지 이상한 발음이 입에서 흘러나왔다.
나는 목을 가다듬고 다시 발음했다.
“큼……. 안녕. 이안.”
막상 입 밖으로 내뱉으려니 속으로는 그렇게 잘도 불렸던 이름이 어색했다.
목 끝까지 차오른 상태에서 나오지 않으려고 하는 단어를 끌어 올려 겨우 내뱉었다.
어이없을 때도 화날 때도 아플 때도 속으로는 수도 없이 생각하고 되뇌었던 이름인데, 입 밖으로 말하고 나니 어딘가 간질간질한 기분이 들었다.
그 간질간질한 기분에 아리엘은 괜히 이불을 잡은 채 꼬물거리며 이불을 잘 잡고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아. 근데 이렇게 부르면 안 되나.’
내적 친밀감이 너무 커서 자연스럽게 격 없이 그의 이름을 불러 버렸다. 원래 가주의 이름은 마음대로 툭툭 내뱉고 다니면 안 되는 건데.
순간적으로 어딘가 미쳐 있는 원작의 그가 떠올랐다.
그가 나를 정원에서 납치해 오지만 않았으면 그는 평생 볼 일조차 없었던 수인이었다.
그와 나의 신분은 똑같은 수인이라도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 컸으니까.
아마 나는 점처럼 멀리 있는 그를 올려다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나는 내 실책을 깨닫곤 슬쩍 그의 눈치를 보곤 다시 말했다.
“아니면, 그으…… 카델리온의 가주님…… 이라고 해야 하나요…?
확실히 미묘한 관계이긴 했다.
예를 차리고 더 높임말을 쓰면서 불러야 하나.
시간이 지나자 갈라진 목소리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되었다.
나는 눈을 도르륵 굴리면서 그의 눈치를 봤다.
‘한 지역의 수장이면 폐하라고 부르면 되겠지……?’
아리엘의 기억들 중 파티에 갔을 때 귀족들이 차렸던 예법의 기억도 인간이 된 충격에 의해 저 멀리 날아간 듯싶었다.
그녀는 생명줄인 양 이불을 꽉 쥔 채 동공을 굴렸다.
그리곤 옛날에 배운 정확한 순서로 절을 했다.
마치 사극에서 나올법한 기가 막힌 포즈였다.
아리엘이 방금 인간이 되어 멀쩡하지도 않은 목소리를 내려 깔았다.
“폐하를 뵙습니다. 소인 아리엘 인사드리옵나이다.”
제법 경건함이 느껴지는 비장한 음성이었다.
아. 사극에서는 한 마디 덧붙이던데.
“이렇게 뵙게 되어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나는 절을 한 상태에서 고개만 살짝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돌아온 것은 미쳤냐는 듯한 시선이었다.
언뜻 보면 감탄하는 것 같기도 했다.
“제가 감히 폐하의 존함을 입 밖으로 내뱉어도 될까요?”
그러자 허파에 바람 빠진 듯이 피식피식 이안이 웃었다.
야! 너 웃지 마. 안 보여? 네 피부 다시 벌어지고 있잖아!
새살이 돋아나면서 여물다가 다시 벌어지는 그의 피부에 나는 기함했다.
내가 입이 떡 벌어진 채로 그를 향해 눈을 부라렸다.
일단 허파에 바람 빠진 듯이 웃어 대는 백호부터 잠잠히 시켜야 할 것 같았다.
“왜, 불만 있어?”
‘송구하오나 무슨 문제라도 있으신지 소인이 감히 여쭤봅니다.’
음……?
아. 실수.
생각과 말이 바뀌어서 나왔다.
너무 오랜만에 성공한 인간화의 부작용이었다.
나는 눈동자를 그를 향해 도르륵 굴리고 변명을 생각했다.
“저건 소인이 한 말이 아니옵고, 제 안의 다른 자아가…….”
그러자 가지가지 한다는 그의 표정이 보였다.
아. 그 백호가 여태까지 이렇게 내 얼굴을 읽었던 건가.
어째서 말을 하면 할수록 상황이 악화되는 것만 같았다.
이래서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건가.
‘아. 몰라. 때려치워.’
“그……러니까, 그게!”
아리엘이 앞에 있는 백호를 슬쩍 다시 쳐다봤다.
“……요.”
어디서 왔는지 모를 예법을 때려치워도 여전히 이안을 대하는 것은 어려웠다.
가깝게만 느껴졌던 그가 한순간 멀어진 기분이었다.
아니. 쟤를 어떻게 대해야 해.
환장할 노릇이다.
고양이인 상태로 주워졌다가 수인이 된 이 이상한 상황 때문에 그에게 어떻게 말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내가 속으로 쟤를 그렇게 서슴없이 불러 대었던 것은 당연히 쟤가 못 듣기 때문이었다.
나는 정자세로 꿇고 있던 무릎을 탁탁 털고 몸에 돌돌 말려 있는 이불을 두른 그 상태 그대로 침대 위에 풀썩 손을 뻗고 누웠다.
마치 나무에 착 달라붙어 있는 매미를 그 상태 그대로 가로로 눕혀 놓은 것처럼.
‘……아.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앞으로 어떻게 살 건지, 이안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도, 다 어려웠다.
슬슬 수인 대륙에서 본격적으로 살아남기 프로젝트를 짜야 할 듯싶었다.
***
앨런은 오늘도 이안 님을 보좌하기 위해 방문을 두들겼다.
“들어와.”
다행히 페로몬 폭주 증세는 끝났는지 사람의 말소리가 들렸다.
‘이번에는 빨리 괜찮아지셨군.’
앨런은 왠지 모르게 미미한 실망감이 들었다.
상사와 같은 공간에서 일하기 싫다는 마음과 상사가 있는 만큼 일거리가 빨리 줄어들어 좋다는 마음이 공존했다.
방문 너머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그는 한 번 목소리를 가다듬은 후 활기차게 익숙한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안녕하십니까. 좋은 아침…….”
‘고양이 사체는 어디 있지. 묻어줘야 하는데.’
고양이의 사체를 찾기 위해 방 안을 둘러보던 앨런이 황당한 표정으로 앞을 바라봤다.
앞에 있는 침대에는 나체의 여자와 자신의 주군이 한 이불 안에 있었다.
이안은 침대에 앉아 있긴 했지만, 일단 그거는 다른 문제였다.
“……은 아닌 것 같군요.”
앨런은 썩어들어 가려는 표정을 겨우겨우 폈다.
제 상사가 여자와 한 침대에 있는 모습을 봐야 한다니.
그것도 여자가 나체인 상태로.
아. 퇴사할까.
그는 생에 처음으로 퇴직서를 작성해 버릴까 순간적으로 고민했다.
그가 눈을 꾹 감고 충언을 올렸다.
“이안 님, 드디어 미치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