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
[이안 side 2]
그 일이 있었던 이후, 이안에게는 페로몬 폭주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폭주가 진행되는 동안 앨런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켰다.
그 후, 앨런과 이안은 대화다운 대화를 시작했다.
어딘가 비틀린 그들은 꽤나 빠르게 서로와 가까워졌다.
“이안 님, 페로몬 과잉증 말입니다.”
“어.”
“상성 페로몬이라는 것을 찾으면 치유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정확히는 진정이 된다고 나와 있습니다만.”
“웃기지도 않는 소리. 사막에서 바늘 찾는 것이 더 쉽겠어.”
그리고 어느 날이었다.
“이안 님, 가주 부부께서 이안 님을 부르십니다.”
그제야 그들은 그의 이상을 알아챘지만 이미 한참 늦은 뒤였다.
한 번 잘려 버린 실타래의 실들은 다시 이을 수 없었다.
갈기갈기 잘린 종이를 다시 붙인다고 새 종이가 되지 않듯이.
그 소년의 이상을 알게 된 그들도 처음에는 잘해 줬다.
처음에는.
“이안 어디 가고 싶은 곳 없니?”
“그래. 이안 우리 놀러 가자!”
“이안, 저녁은 외식하는 게 어떻겠니?”
이제 와서 이러는 것이 어처구니없게 느껴졌다.
이렇게 살갑게 굴려면 처음부터 잘해 줬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십이 년 동안 별관에서 방치하다가 갑자기 가족 놀이를 하는 것이 우스웠다.
그래도 그는 그들이 하는 가족 놀이에 어울려 주었다.
“네. 좋아요.”
그들이 무엇을 제안해도 그는 고개를 끄덕였고, 그 제안을 수락했다.
“이 스테이크가 맛있는 것 같지 않니?”
“그런 것 같아요. 어머니.”
“많이 먹으렴.”
“감사합니다.”
“이안이 맛있다니 좋구나.”
소년은 입안의 사탕처럼 만들어 낸 웃음을 사르르 지으면서 그들을 대했다.
비록 무미건조한 눈동자는 그대로였지만.
아름다운 미소에 가려 그 눈동자는 보이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메말라 있었고,
이 단순한 가족 놀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는 자각하지 못했다.
사막에 사는 식물이 물이 별로 없어도 살 수 있게 변하는 것처럼,
그에게도 가족들의 애정과 관심이 필요 없어졌다.
그와 그의 가족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간격이 이미 존재했다.
그 소년의 살갗이 찢어지고 벌어지고 있을 때, 가족들은 그 사실을 알지도 못했다.
‘굳이 알려고 들지 않은 건가.’
그도 의식하지 못한 채, 그의 마음은 가족에게서부터 완전히 닫혀 있었다.
그는 생명이 죽어 나가는 것을 봐도 덤덤했다.
죽는다는 것은 그에게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는 죽음보다 더 큰 고통을 느꼈기 때문에.
그 자신이 어그러져 있는 상태를 가끔씩 통제할 수 없게 되자 어느 순간 그들도 그 간격을 깨닫게 되었다.
이 모든 게 회복계 페로몬과 페로몬 폭주에 의한 것이라는 것도.
페로몬 폭주와 고용인들의 학대로 무너진 그의 성격을 정상적으로 되돌리는 것에 가능성이 없다는 것 또한.
그를 바라보는 가주 부부의 시선이 달라졌다.
따스함과 동정, 연민으로 가득 찬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비집고 들어왔다.
성격이 고쳐질 가망이 없자 뛰어난 기사로라도 쓰고 싶었던 것일까.
이를 깨닫게 되자 그들은 그를 전쟁터로 보내 버리려고 했다.
사람을 죽여도 괜찮은 곳, 그가 합법적으로 날뛸 수 있는 곳.
그가 증오하는 그의 페로몬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곳으로.
“이안을 전쟁터로 보내야겠어.”
“아니요. 그럴 순 없어요! 아직 이안은 열네 살밖에 되지 않았다고요.”
루이즈가 격렬하게 그들에게서 반대했다.
“동생이 가면 저도 가겠어요.”
“아니, 너는 여기서 할 일이 많아. 루이즈.”
“맞아. 그 아이는 살인을 아무렇지 않게 생각하잖니. 너와 다르단다.”
“그리고 일반적인 열네 살과는 달라. 앨런도 이안도.”
그리고 소년은 그 대화를 다 듣고 있었다.
그를 전쟁터로 보내려고 하는 가주 부부, 이를 반대하는 루이즈.
그들이 이안이 남들과 다르다고 한 것까지.
그는 그날 밤, 전부 다 들어 버렸다.
소년을 감당하지 못할 것 같았던 그들은 루이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를 전쟁터로 보내 버렸고, 결국 그는 전쟁터에서 청소년기를 보냈다.
자신의 보좌관과 함께.
루이즈 또한 그 전쟁에 참여해 그를 도왔다.
열네 살의 나이에 그는 다른 사람들과 칼을 맞댔고, 목숨이 오가는 전장에서 살기 위해 타인을 죽였다.
그 상대가 누구이든지 그에게는 큰 의미가 없었다.
전쟁에서 당당히 승전보를 울리고 온 그는 루이즈의 가주 포기 선언에 가주가 될 준비를 빠르게 진행했다.
그는 처음부터 카델리온 가를 모조리 갈아엎어 버렸다. 필요 없는 수인들을 빠르게 처리했고 예전의 흔적들을 다 지워버렸다.
그리고 빈자리에는 새로운 수인들을 집어넣었다.
카델리온 가는 빠르게 그의 손안에 집어 삼켜졌다.
어릴 적 항상 그를 괴롭혔던 작열감과 두통.
상성 페로몬을 찾는 것을 시도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포기했다.
쓸데없는 시간 낭비였다.
없을지도 모르는 상성 페로몬을 찾는 것은 모래에서 바늘을 찾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다.
그는 그의 고통을 진정시켜주는 사람에게 얽매여 살고 싶지 않았다.
숨이 막히도록 더운 공기는 이제 그에게 익숙한 존재가 되었다.
거슬리는 것들은 다 밟았고, 신경에 거슬리는 것들은 다 치웠다.
그것은 지루한 과정의 연속이었고,
시몬드 가문도 그중 하나였을 뿐이었다.
***
그날은 그의 기분이 저조한 날이었다.
단지 그 쓰레기들을 다시 치워야 한다는 성가심이 그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었지만.
자신의 방문을 어떻게 예상했는지 시몬드 가주와 그 가족들은 짐까지 다 챙긴 상태로 모두 어딘가로 떠났다.
차가운 겨울바람이 그의 뺨을 스쳐 지나갔고, 하늘에서 내리는 눈 같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따라 흔들렸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그에게는 차가운 바람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페로몬 때문에 열기로 가득 찬 뜨거운 바람으로만 느껴질 뿐.
그의 페로몬 덕에 계절에 상관없이 언제나 그는 너무 뜨거워서, 메마르고 버석버석한 사막 속을 걷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는 항상 텁텁하고 더운 공기 속에서 홀로 살아갔다.
겨울 꽃으로 아름답던 정원이 지나가는 바람에 흙먼지만 날렸다.
떨어진 꽃들이 이리저리 굴러다녔다.
‘도망간 잡초들은 언제 정리하지.’
그의 입가에 싸늘한 비소가 걸렸다.
오늘 걸리면 죽는다.
그 웃음을 본 수하들은 그에게 걸리지 않기 위해 더 열심히 적을 처단했다.
악마라도 본 듯한 반응이었다.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 가는 듯, 그의 귀에 들리던 수인들의 비명 소리도 잠잠해졌다.
그것을 확인한 이안은 돌아가기 위해 발걸음을 떼려고 했다.
그때였다.
검은색 털 뭉치 같은 생명체가 힘차게 굴러들어와 칼을 든 그의 발에 자신의 몸을 박는 것은.
‘얘는 뭐지.’
새끼 고양이였다.
한 손에 올려질 법한 아주 작은 크기의.
구두가 있다는 것을 알고도 생각 없이 구두에 자신의 몸을 과감하게 박는 행동을 하는 것이 우스웠다.
처음에는 호기심이었다.
호기심으로 그 고양이를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와 눈이 마주친 털 뭉치는 힘찬 동공 지진을 하며 영혼이 빠진 표정을 지었다.
마치 현실 부정을 하는 것처럼.
그가 누군지 아는 눈치였다.
수인일 확률이 매우 컸다.
‘죽여 버릴까.’
그 고양이가 그를 아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한 이안이 순간적으로 고민했다.
아니다.
조금 더 지켜보자.
그 새끼 고양이의 행동이 퍽 웃겼기에 누군가를 죽인다는 것에 있어서 오랜만에 고민했다.
살리기로 결정한 것은 더더욱 오랜만이고.
그가 있다는 것은 어느새 까먹었는지 그 솜뭉치는 갑자기 자신의 볼을 양발로 때렸다.
그러고선 비장한 눈빛으로 그를 응시했다.
마치 전장에 나가는 비장한 장수처럼.
그 기상 또한 자신의 기사들보다 더 빛났다.
그 연두색 눈에서 삶을 향한 집념이 누구보다 강렬하게 타올랐다.
비장한 눈빛을 한 고양이는 엎드렸다.
그러던 중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꽃을 문 상태로 앞발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흥미로웠다.
이 모든 것이 한 편의 우스꽝스러운 연극을 보는 것 같았다.
그는 한 연극의 관람객이 된 듯 팔짱을 낀 상태로 그 고양이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렇게 빤히 쳐다보니 꽃을 물고 있는 새끼 고양이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뭘 또 원해?’
그 고양이의 표정이 앞에 있는 고양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내비쳤다.
그것을 본 그는 아무 반응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고양이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그의 신발에 그 꽃을 올려 주었다.
마치 ‘이거 먹고 꺼져라.’라고 말하는 것처럼.
꽃을 잡아 뱅글뱅글 돌리던 그가 결정했다.
죽이지 말까?
죽이지 말자.
“살려줄게.”
그것이 그녀가 바란 답이었는지 그 털 뭉치는 콧구멍까지 씰룩거리며 쥐구멍으로 잽싸게 도망치려고 시도했다.
도망치게 내버려 두고 싶지 않은 마음이 왠지 모르게 그의 가슴속에서 꿈틀거렸다.
그는 털 뭉치를 잡았다.
아주 충동적이었다.
그때 매우 미세하지만 청량한 페로몬이 그의 손바닥 위에서 느껴졌다.
그 한순간에 그를 잡아먹을 듯이 불타는 듯한 작열감이 물로 씻겨 내려갔다.
텁텁하고 뜨겁던 공기가 청량하고 시원한 공기로 변했고, 그의 숨통을 다시 트여 주었다.
메말라 있는 흙에 물이 한 방울 떨어진 것 같았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 듯했던 머릿속이 맑게 개었고, 그의 감정에 날뛰던 페로몬 때문에 끊임없이 울려 대던 머리가 고요해졌다.
잠잠했다.
그 순간 그의 세계가 재정립되었다.
그가 끊임없이 걷고 있던 말라비틀어진 사막에 시원한 소나기가 내렸다.
뜨겁기만 했던 사막이 식었고, 건조하기만 한 모래가 물기를 머금었다.
오아시스가 생겼고, 그 사막 속에서 청량한 물을 찾은 기분이었다.
텅 비고 메말라 있던 사막이 기분 좋은 바람으로 들어찼다.
그 순간, 지긋지긋한 고통이 멈췄다.
열감에만 빠져 살던 그가 처음으로 미약하게나마 ‘시원하다’라는 것을 느꼈다.
그가 알던 세상이 파괴되고 새로운 세상이 그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그는 깨달았다.
상성 페로몬이구나.
하늘이 점지해 줘야만 만날 수 있다는 상성 페로몬이었다.
그것은 그의 인생을 다른 방향으로 바꾸어 줄 전환점이었다.
그의 고통에서 구원의 손을 내밀어 줄.
좀 더 닿고 싶었다.
그대로 있고 싶었다.
그는 이 중독된 맛에 빠져나올 수 없을 걸 예감했다.
이 기분을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이안은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고는 그 고양이를 붙잡고 있었다.
고양이에게서 흘러나오는 미약한 페로몬 열이 날뛰는 페로몬을 안정시켰다.
그 양이 미약함에도 불구하고 소름 끼치도록 좋았다.
그는 새끼 고양이를 들어올려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눈물을 닦아줬다.
이대로라면 고양이에게 얽매여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애써 시선이 가는 고양이에게서 눈을 돌리고 그 고양이를 자신의 저택에 데려갔다.
하지만 저택에 들여놔서도 그 고양이의 괴상한 행동은 계속 눈이 갔다.
“이안 님께서 데려오신 고양이님이 머리에 꽃을 꽂고 정원에서 화려하게 힘찬 걸음으로 정원을 도시는 중이십니다.”
“기분 전환으로 한 번 보는 것은 어떨까요?”
하는 짓도 범상치 않았다.
“이안 님. 아기 고양이를 구경하시다가 집무실 창문을 다 깨부실 줄은 몰랐습니다만.”
물론 그녀를 지켜보다가 집무실 창문을 다 깨부순 것은 실수였지만.
“여기 금액이 맞지 않다고?”
영리했고, 보통 수인들이 생각할 수 없는 생각을 했다.
자신만 느꼈을 것으로 생각했던 그 고통을 그녀도 느꼈고 그럼에도 그 조그만 몸을 가지고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이 대단하게 보였다.
귀찮아하면서도 항상 챙겨 주는 것이 특이했고,
“이안 님, 집무실에 암살자들의 습격이 있었습니다.”
“고양이님께서 의무실에 들어가시자마자 총집사님의 손을 깨무시곤 피를 철철 흘린 채 숨을 헐떡이시면서 도망가셨습니다.”
용사 이야기라도 찍는지 항상 위험에 빠져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했다.
정신 차려 보면 그는 어느새 그 고양이에게 푹 빠져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가끔씩 텅 빈 공허한 눈으로 어딘가 아득한 곳을 바라보곤 했다.
밖을 바라보는 것을 보면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같이 불안했다.
“아리엘?”
그녀는 가끔씩 초점이 어긋난 채 허공을 쳐다봤다.
누구보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면서도 가끔은 이곳에 있으면 안 되는 느낌을 풍기곤 했다.
굳이 덧붙이면 이 세상을 거부하는 느낌이었다. 당장이라도 떠나 버릴 것 같은 느낌.
그러나 그는 그 고양이를 놔줄 생각이 없었다.
그 고양이가 자신의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면 했다.
그녀에게서 고통으로부터 구원받은 그는 그녀가 사라진다면 미치지 않을까.
평소 페로몬이 폭주할 때처럼 느껴지는 고통에 그는 감겨 있던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눈을 떠 보니 당황한 채 어쩔 줄 모르며 이리저리 초조하게 돌아다니는 검은 털 뭉치가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