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이안 Side.]
이안은 어렸을 때부터 빌어먹을 자신의 페로몬을 증오했다.
그리고 수인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넘쳐흐르는 회복계 페로몬.
많은 기사와 언론들은 그의 페로몬을 신에게 받은 축복이라고 칭송하고 찬양했지만, 그에게 있어서 그 페로몬은 신이 내린 끔찍한 저주였다.
베어내고 싶지만 베어낼 수 없는 저주.
그는 자신의 페로몬을 도려내서 없애 버리고 싶었다.
그 페로몬은 항상 그에게 달궈진 철 끝으로 찌르는 듯한 작열감을 느끼게 했다. 그리고 그 작열감은 뜨거운 안개로 머리를 데우는 것 같은 두통을 동반했다.
페로몬 폭주가 진행될 때는 더 심했다. 어떨 때는 한 달 이상 방의 문을 걸어 잠그고 혼자 처박혀 있어야 했다.
물론 방문을 걸어 잠그는 게 효과가 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그 아이에게는 그것이 마지막 심리적 방어막이었다.
방문을 잠그고 나면 얼마 지나지 않아 페로몬 폭주가 진행되었다.
살갗이 터지고 피부가 찢겨나가 온몸에서 피가 흐르고 뼈가 뒤틀렸다.
아무도 없는 고요하고 넓은 방 안에 고통을 삼키지 못한 아이의 신음 소리만 새어 나왔다.
아이는 참을 수 없는 고통에 몸부림쳤다.
방 안에서는 뭔가 부딪치고 깨지는 소리들이 끊임없이 들렸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넓은 방은 엉망이 되었다.
평소보다 더한 작열감이 그를 공격했다.
그의 페로몬이 모든 것을 불태워 버릴 것 같았다. 그 자신까지도.
세포 하나하나가 불타 사라지는 듯했다.
침대보를 바꾸는 것이 의미가 없었다.
하얀색 침대보로 바꾸어 놓으면 언제 하얀색이었냐는 듯이 금방 빨간색으로 젖어 물드니.
두려움을 담고 있던 아이의 눈동자는 고통으로, 분노로, 슬픔으로 바뀐 끝에 끝내는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았다.
공허함의 색깔을 담은 텅 빈 아이의 눈이 허공을 바라봤다.
전신이 갈라진 몸이 찢어진 종잇장처럼 피로 너덜너덜해졌다.
그것은 감히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이었다.
피비린내가 그의 방 안을 가득 채웠다.
극심한 고통은 사람의 정신을 갉아먹었고 끔찍한 통증은 사람의 정신을 미쳐 버리게 했다.
그 어린아이는 죽고 싶었다.
죽어서 이 죽음보다도 더한 고통을 끝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죽지 못했다.
누군가에게는 구원의 존재인 망할 신은 그를 죽게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의 피부들이 모두 찢기고 피가 철철 넘쳐흘렀지만, 그는 죽지 않았다.
그 회복계 페로몬 때문에.
환멸 났다.
찢겨나간 상처는 빠르게 아물었고, 뒤틀려진 뼈들 또한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 맞춰졌다.
뒤틀려진 뼈들을 다 뭉개어 그 뼛가루들을 가지고 새로운 뼈를 만들어 내는 고통이었다.
살이 새로 아문 순간, 그 살이 다시 벌어졌고, 뼈가 제자리를 찾아 맞춰진 순간 다시 어그러졌다.
찢기면 치료되고, 치료된 살이 다시 벌어지고…….
이 과정의 반복이었다.
고통은 계속 남아 맴돌며 그를 괴롭혔다.
그 통증이 갉아먹은 그의 정신은 정상이 아니었다.
아이의 정신은 너덜너덜해졌다.
남들이 찬양하는 그의 치유계 페로몬은 그가 느끼고 있는 정신적 고통은 치료하지 못했다.
공허만이 그를 가득 채웠다.
살아 있다는 것은 그를 죽음보다 더한 절망의 심연으로 떨어지게 했다
그 아이에게서 아이의 것이라고 믿을 수 없는 탁하게 갈라져 쉰 목소리가 나왔다.
“그냥…… 차라리…… 나 좀 죽여 줘…….”
주기적으로 찾아드는 죽음보다 끔찍한 고통은 그를 절대 내버려 두지 않았다.
“제발 죽여 줘…… 누가…….”
“그냥 이 짓거리 좀 이제 끝내자.”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은 그의 눈동자에서 눈물이 흘러나왔다.
방 안에서 혼자 처박혀 있는 그 어린아이는 비어 있는 눈으로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죽음을 갈망했다.
누군가가 시계를 돌리는 태엽을 멈추게 한 듯이 시간은 느리게만 흘러갔고, 금방 지나갈 것 같았던 폭풍우는 지나가지 않았다.
그 과정은 처참했고, 잔인했으며 기괴했다.
그리고 그를 이해해 주는 사람 또한 아무도 없었다.
아니, 이 고통은 그 누구도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린아이에게는 너무나도 가혹한 시련이었다.
죽지 못한다는 것은 그에게서 저주였고, 그는 항상 죽음이라는 구원을 바랐다.
죽음이 그를 먹어치운다면 그는 기꺼이 자신의 몸을 내어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카델리온 수장 부부는 과도한 업무량 때문에 소년에게 신경 쓸 겨를조차 없었다.
그리고 당연한 수순으로 저택에서 작은 도련님이 홀대당하고 있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는 여러 기사와 그의 선생들, 여러 수인의 괴롭힘으로 이어졌다.
자신의 몸을 주체하지 못하는 데다가 가족들에게 홀대당하는 어린아이는 열등감에 빠져 사는 수인들에게 최고의 먹잇감이었다.
그들은 언제든지 그를 찾아가 상처가 있으면 상처가 난 곳에 매질을 해 댔고, 아물어가는 상처를 벌렸다. 핏줄기가 흐르는 상처에 칼날들이 살가죽 아래를 헤집었다.
그들보다 신분이 더 높은 수인이 이리저리 휘둘리며 당하는 모습은 그들로 하여금 쾌감과 희열을 선물했다.
혹자는 그들의 지인을 치료하라고 협박하는 수인들이거나 그걸 이용해서 돈을 받아 처먹는 수인들이었다.
“안 치료하시면, 더 아플 텐데요.”
“혹시 더 아프고 싶으신 거예요? 아니죠?”
어린아이가 치유계 페로몬을 사용하면 아픈 사람보다 더 많은 고통을 떠안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치유를 거부하면 전과 같은 매질과 구타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짧게는 몇십 분에서 길게는 몇 시간 동안.
결국 그 아이는 사람들을 치료했다.
후에 있을 매질이 무서워서.
페로몬 폭주가 끝나도 평소에 드는 작열감과 구토감, 그리고 매질의 통증이 합쳐지면서 느끼는 고통은 배가 되었다.
물론 그 작열감마저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그 사람들의 끔찍한 고통과 치명상들을 온전히 자신이 몇 배로 되받았다.
하지만 증거 따위는 어디에도 남지 않았다.
그의 치유계 페로몬이 그를 치료했으니 흉터도 지지 않았고, 멍도 남지 않았다.
그 넓은 저택에서 그를 감싸 주는 수인은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그가 어렸을 때 본 수인들은 그의 고통을 이용하거나 그것을 그들의 즐거움으로 느끼는 수인들밖에 없었다.
모두가 방관자였고,
동시에 모두가 가해자였다.
그에게 수인들은 모두 그런 존재였다.
증오스럽고 혐오스러웠다.
아니, 어쩌면 경멸스러웠는지조차 모른다.
역겨웠다.
자신이.
다른 수인들이.
이 페로몬이.
매질과 구타로 몸이 가위에 찢겨나간 천처럼 너덜너덜한 아이의 몸에서 새로운 살이 돋아나고 있었다. 살이 아무는 고통은 생각보다 컸다.
그는 자신을 매질한 수인들을, 자신을 방치한 수인들을, 그리고 저택의 모든 수인을 곱씹고 또 곱씹었다.
이 처참한 순간을 그의 눈동자에 새겼다.
힘없이 침대에서 쓰러져 있는 아이가 눈을 희번덕 뜨며 이를 갈았다.
그는 상처가 터져 잘 열리지도 않는 입을 억지로 열었다.
“다…… 죽여 버릴 거야…….”
달빛이 비치는 밤,
차갑게 식어 있는 그 소년의 파란색 눈만이 살벌하게 빛났다.
캄캄한 밤의 어둠이 깃든 방 안과 피로 엉겨 붙은 그의 새하얀 머리카락이 달빛을 반사하며 찬란한 대조를 이루었다.
***
불행히도 그는 죽지 못했다.
아이는 그 끔찍한 과정을 반복적으로 견디며 어느덧 소년으로 자랐다.
그리고 그에게 한 가지 변화가 생겼다.
“안녕하십니까. 이안 님.”
“앞으로 이안 님을 모시게 될 앨런이라고 합니다.”
가문의 수순에 따라 자기 또래의 보좌관을 받은 것이다.
소년은 물끄러미 그 고동색 머리의 아이를 바라보았다.
‘나는 신경도 쓰지 않으시더니 가문의 수순은 지키시네.’
‘도와줄 거면 진작에 도와줬겠지.’
그는 상관하지 않기로 했다.
그가 한쪽 입꼬리를 비뚜름히 울리곤 아무 말도 없이 그를 지나쳐 갔다.
자신이 앞에 있는 아이를 보지 못한 것처럼.
부모에 대한 그의 기대는 어렸을 때 버린 지 오래였다.
그렇게 앨런이 온 뒤, 앨런과 그는 서로 한 번도 찾지 않은 채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이안은 앨런을 찾지도, 부르지도 않았다.
그리고 앨런도 굳이 이안을 찾아가지 않았다.
그렇게 그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던 나이를 지나갔다.
어느덧 힘없었던, 완전히 어린 나이에서 벗어난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을 괴롭혔던 수인들을 모조리 죽여버렸다.
어릴 적 자신이 간절히 염원했던 대로.
그는 그들을 결코 편안히 보내지 않았다.
그를 괴롭혔던 수인들의 피부는 갈기갈기 찢겨 있었고, 찢긴 피부 위로 막 굳으려고 하는 흐르다가 멈춘 피가 보였다.
뼈는 모조리 다 뒤틀려져 있는 상태였다.
그렇게 그들은 넝마가 되어 땅에 널려 있었다.
그것은 그가 페로몬 폭주에서 겪었던 모습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어쩌면은 더한.
차이점이라면 그는 살아 있는 상태였고, 그들은 도중에 죽은 것일 뿐이었다.
‘그들이 그토록 바란 회복계 페로몬까지 써 줬는데 죽어 버렸네.’
지금 죽이려던 생각은 아니었는데.
열두 살 정도 되는 이안이 무감각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그 광경은 그야말로 모든 부분이 꺾여 있는 메마른 나뭇가지들을 땅에 펼쳐 놓은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참혹하다기보단 기괴하고 괴이했다.
‘아. 밤 산책하려고 했는데.’
그리고 여느 때처럼 밤에 정원을 돌아다녔던 앨런은 그 무참한 정경을 눈에 담았다.
그는 그 뒤에 가만히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그의 눈동자에 잠깐의 파문이 일긴 했지만 익숙한 일을 보는 것 같이 이내 잠잠해졌다.
자신의 앞에는 기괴하게 죽은 시체들이 쌓여 있었고 그것을 태연하게 바라보는 소년이 있었다.
후에 자신이 모셔야 할 주군.
“이런…… 보여 줄 생각은 아니었는데.”
이안이 감흥 없는 말투로 얘기했다.
그는 앨런과 이미 죽어 버린 시체들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고 피 묻은 칼을 닦았다.
“네가 봐 버렸네. 어쩌지.”
정말로 걱정하는 말투는 아니었다.
그의 눈빛과 표정에는 아무런 감정도 없었으니까.
“괜찮습니다.”
같은 또래인 앨런이 의연하게 입을 열었다.
전과 다름이 없는 말투였다.
“상관없습니다. 저분들은 이유가 있기에 죽이셨겠죠.”
“그것이 뭐든.”
앨런이 이안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잠시 뜸을 들이던 그가 입술을 열었다.
“저만 아니면 됩니다.”
그 말에 이안이 처음으로 앨런을 똑바로 쳐다봤다.
앨런은 이기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가 살아남는 방식이었다.
“또한 이 사건은 공작님께 보고하도록 하겠습니다.”
“보고를 받은 그분이 어련하겠어. 관심을 가지시긴 할까.”
이안이 입매를 비틀며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공작님께서 소문으로 사건을 처음 접하는 것보다는 보고로 먼저 보시는 것이 이안 님께 더 나을 테니까요.”
그는 냉정하게 머리를 회전시켜 이안에게 최대한 득이 되는 쪽의 방안을 제시했다.
어쨌거나 그의 업무는 이안을 돕는 것이니.
“일부러 보란 듯이 쌓아 놓으신 것을 보니 시체 치우실 생각도 없으시잖아요.”
잔잔한 파문도 없는 고동색 눈과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은 무기질적인 벽안이 서로 마주쳤다.
찌르르. 찌르르.
여름이 되면 언제나 울리는 풀벌레 소리가 조용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어둑한 아니, 새까만 나무의 그림자가 그들을 덮었다.
단정하게 묶어진 고동색 머리와 달빛에 비추어 반사되고 있는 새하얀 머리칼이 바람에 휘날렸다.
“마음대로 해.”
잠시 그를 바라보던 이안이 고저 없이 냉소적인 그 한마디를 끝으로 자리에서 벗어났다.
수인에게 기대라는 것을 전혀 하지 않는 말투였다.
앨런은 이안의 보좌관으로서 주어진 첫 임무를 그렇게 시작했다.
이안이 쌓아 놓은 시체들에 대해 보고하는 것으로.
일반적이지 않은 시작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정상적이지 않은 두 소년,
앨런과 이안의 두 번째 만남이었다.
앨런의 말대로 이안이 그들을 죽인 일은 수장 부부의 귀에 들어갔다.
그러고 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카델리온 가주 부부와 루이즈는 이안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