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
‘흐…… 너무 아파…….’
나는 혼절과 깨어남을 반복했다.
페로몬 연습할 때 유독 갑자기 춥게 느껴졌던 것을 무시하면 안 됐던 걸까.
얼마나 많이 혼절을 한 것인지, 혼절한 횟수조차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몸이 시리도록 차가웠다.
내 몸 전체에 서리가 낀 듯했다.
밖으로 나가 사람을 불러오고 싶었지만, 나갈 수 없었다.
몸의 감각은 없어진 지 오래였고, 나는 발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축 처진 채 얼어 있는 것 같이 경직된 내 몸은 마치 시체 같았다.
도서관에서 찾았던 책이 말했던 이질적인 기운.
얼려 버릴 듯한 냉기가 내 몸을 감쌌다.
‘페로몬이 이렇게 아프게 만드는 거였어……?’
책에서는 분명히 태어날 때부터 내재 되어 있는 것으로 수인을 보호하는 거라고 했는데.
내 페로몬은 왜 나를 공격하는 걸까.
날카롭고 뾰족한 무형의 형체가 숨통을 점점 옥죄어 오자, 숨조차도 잘 쉬어지지 않았다.
숨을 들이마시기도 어려웠다.
매일 아프기만 했다.
“네가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겠어.”
순간적으로 머릿속에서 목소리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왜…… 나는 고양이여서 할 수 있는 것도 없는 거야…….’
방석에 눈물방울이 하나둘씩 방울방울 떨어졌다.
후두둑.
무력감에 눈물이 흘렀다.
이 쓸모없는 몸뚱이. 인간화도 안 되고.
“모든 수인이 널 싫어할걸.”
“아니, 싫어하는 것을 넘어 혐오하고 증오할 거야. 그게 누구든.”
“너는 단지 버림만 받는 인생을 살겠지.”
“그게 네가 태어난 이유니까.”
과거에 들었던 목소리가 기억 속에서 메아리쳤다.
어두운 감정의 파도가 그녀를 집어삼켰다.
‘만약, 이안이 나를 버리면 어떻게 되지……?’
당장이라도 내가 귀찮아졌다고 내보내면?
나는, 무얼 해야 하지.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미래에 숨이 덜컥하고 멎었다.
이성적인 사고가 되지 않았다.
그때의 그 참혹하고 처절했던 기억들이 또다시 나를 잠식했다.
그것들이 내 숨통을 천천히 말아쥐었다.
두려움이 나를 익사시켰다.
나는 고양이 집에서 웅크리고 누운 상태로 겨우 얄팍하게라도 나오는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마치 그때 주사기에 있는 액체가 내 몸에 있는 것처럼.
그 액체를 끊임없이 내 몸에 주입당할 때의 그때처럼.
지겹도록 익숙한 고통이었다.
“액체 투여할까요?”
“투여해.”
“쯧, 죽겠군.”
“그래도 계속 버텨 내고 있질 않나.”
“당연히 버텨 내야지. 앞으로 할 게 많은데.”
그때의 기억이 두둥실 떠올라 내 귀로 들렸다.
‘아니야. 여긴 책 속이야.’
책 속일 뿐이라고. 네가 느끼는 모든 것들은 가짜야.
나는 옛날에 그랬듯이 습관적으로 나를 세뇌했다.
불안함이 내 몸을 휘감았다.
내 몸은 정상이 아니었다.
겨우겨우 버티는 것이 내 한계였다.
‘체력 훈련에서 기른 체력을 이런 데다 쓰다니.’
루이즈는 미래를 볼 수 있는 것이었을까.
체력 훈련마저 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이마저도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
진작에 정신을 놓고 까무룩 기절한 상태로 깨어나지도 못했겠지.
죽었을 수도 있다.
‘지금’ 이 1초를 살아가는 것이 겨우 전부일 정도로 아픈 내 몸이 정신을 놓으면 어떻게 될지 상상하고 싶지 않았다.
온몸을 날카로운 송곳으로 찌르는 듯한 격통이 그녀에게 찾아왔다.
계속되는 아픔에 잠시 멎었던 차가운 눈물방울이 내 방석에 후두둑 떨어졌다.
한두 방울씩 떨어지던 눈물이 어느새 방울방울 떨어졌다.
분홍색이었던 방석이 내 눈물에 점점 젖어 들어가면서 진분홍색으로 바뀌어 갔다.
하염없이 떨어지는 눈물을 닦을 생각조차 못 하고 멍하니 어딘가를 쳐다보며 속으로 고통을 억누르고 참았다.
온몸이 얼음으로 변해 가는 것 같았다.
꽝꽝 얼어 있는 신체에 누군가 망치로 쾅쾅 망치질을 하며 내리쳤다.
온몸에 끔찍한 고통이 스며들었다.
쿵쿵. 쿵쿵.
망치로 얼음을 내리칠 때처럼 심장 소리가 몸을 내리치듯이 크게 울렸다.
심장 소리에 맞춰 머리가 쪼개지는 것 같았다.
곧 있으면 몸 전체가 완전하게 산산이 조각나 버릴 것임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공기의 압력이 한층 심하게 느껴졌다.
어서 빨리 부서지라고 재촉하는 것 같이, 보이지 않는 무거운 벽돌들이 내 몸을 짓누르는 것 같았다.
진짜 이렇게 바스라져서 소멸하는 것은 아닐까.
정말로 죽을 것 같다는 느낌.
죽음의 공포가 선연히 그리고 빠르게 내 앞으로 다가왔다.
‘누가…… 나 좀…… 살려줘…….’
나는 신음 소리를 참으며 최대한 웅크리고 있었다.
통증을 조금이라도 덜 느끼도록.
“넌 가주님의 쓸모가 다하면 그대로 죽을 거라니까.”
‘제발…….’
이렇게.
이렇게는 죽기 싫어.
기분이 끝도 없이 떨어졌다.
이제야 살고 싶어졌는데.
이제야 사는 게 즐거워졌는데.
소중한 사람들도 생겼는데.
원작처럼 언급도 되지 않은 채 죽고 싶지 않았다.
이러면 굳이 더 살려고 한 이유가 없잖아.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하나도 남기지 못하고 이렇게 죽어 버린다면,
오랫동안 이 고통과 괴롭힘을 참고 견딘 것이 너무 아까웠다.
내가 생각했던 나의 미래는 이런 것이 아니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여태까지 안 버텼지.’
원작 속에서는 언급도 되지 않는 엑스트라라고 하더라도, 내 인생이라는 이야기에서는 주연이 되어 찬란하게 빛나고 싶었다.
이런 허무한 죽음 따위는 이쪽에서 사양이었다.
내가 써 내려가는 내 이야기는 이도 저도 아닌 이런 맥없는 결말을 맞지 않을 것이다.
반드시.
하지만 고통에 시달리는 몸이 내 이야기는 거의 끝나 간다고 소리치고 있었다.
어서 완결을 맞을 준비를 하라고.
아늑한 죽음의 그림자가 나를 덮고 있었다.
아득한 심연, 가늠할 수 없는 그 너머 어딘가로 떨어질 것 같은 정신을 억지로라도 붙잡아 두고 있었다.
지금 정신을 놓으면 경주마처럼 미친 듯이 빠르게 쿵쿵 뛰어 대는 심장이 당장에라도 멈출 것 같았다.
무서웠다.
이런 몸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고통과 별개로 아무도 와 주지 않는 것이 외로움에 사무치게 했다.
웃겼다.
이 아픈 와중에도 외로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주위에 사람 하나 없던 내가 사람이 와 주지 않는다고 실망한다는 것이.
옛날 같았으면 사람들이 와 주지 않는 것이 당연할 텐데.
“아리엘!”
그때 누가 방문을 열고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아. 그래도 누가 와주긴 와 줬구나.
그 와중에 나를 찾아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옅은 안도감이 들었다.
새끼 고양이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맺혔다.
‘어쩌면 살 수 있지 않을까.’
마음속에서 ‘혹시나’하는 희망이 바깥으로 고개를 들었다.
툭.
하지만 그런 희망을 짓밟듯, 그것을 마지막으로 정전이 난 것처럼 의식이 끊겼다.
불길하도록 깜깜한 구멍에 정신이 빨려 들어갔다.
은연 중에 죽음을 바랐던 것일까.
벗어날 수 없는 어둠보다도 까마득하게 어둡고 깊은 심연이 입을 벌리며 환히 웃고 있었다.
나를 선명하고, 또렷이 바라본 채로.
***
이안은 기절한 아리엘을 바라보았다.
방 안에 들어오자 서늘한 냉기로 가득 찬 방 안이 느껴졌다.
그 냉기는 그녀의 상태를 대변하듯, 매우 곤두선 상태로 날카로워져 있었다.
예민한 그녀의 냉기가 문을 열고 들어온 그를 둘러쌌다.
페로몬 폭주.
페로몬이 넘쳐흘러 역으로 주인을 공격하는 현상.
페로몬 과잉증을 겪고 있는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증상으로,
현재 아리엘이 겪고 있는 증상이다.
그가 온 순간 갑자기 눈을 스르르 감고 힘이 빠진 상태로 쓰러져 있는 그녀를 보자 이안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저렇게 차갑게 시체처럼 누워 있는 아리엘을 보니 죽은 것이 아니란 것을 알면서 아리엘이 죽어 버린 것만 같았다.
그는 기절한 아리엘을 보자마자 순간적으로 정신이 돌아 버릴 뻔했다.
아직 흥분이 채 식지 못한 그의 페로몬이 그의 안에서 맴돌고 있었다.
당장 손가락 하나만 까딱하면 그의 페로몬이 스스로 뛰쳐나와 난동을 부릴 것만 같았다.
아리엘은 아직 죽은 것이 아님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쿵.
가파른 절벽 밑으로 심장이 떨어졌다.
그의 기분이 깊은 나락으로 처박혔다.
그 순간, 누군가 그의 머리에다가 양동이째로 차가운 물을 부어 버린 것처럼 머리가 차게 식었다.
차갑게 가라앉은 머릿속과 달리, 몸 안에는 당장이라도 날뛰고 싶어 하는 열기가 서린 광폭한 피가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것이 느껴졌다.
본성과 이성이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이어 가고 있었다.
위험하도록 위태로운 감정들이 그에게서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 감정들이 강풍이 일은 밤바다의 거친 파도처럼 거세게 일렁였다.
감정의 파도는 거대하게 너울거려서 배가 한 척조차 출항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는 성난 감정의 파고를 덮어 두고 침착하게 아리엘을 살폈다.
‘저번에 짐작했던 대로 특이한 케이스라서 그런지 외상이 아니라 내상이 먼저 생기는 방식으로 진행되네.’
치료하기 어렵겠는걸.
실패할 수도 있겠는데.
본능적으로 그는 알았다.
아니다.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로.
그는 자신에게 암시를 걸었다.
‘실패하면 어떻게든 살려 내야지.’
무엇을 하더라도.
이안이 아리엘에게 서서히 자신의 페로몬을 넘기기 시작했다.
서늘한 그녀의 페로몬이 그의 몸 안으로 들어와 이곳저곳 누비기 시작했다. 흐릿한 안개가 낀 듯한 머리가 씻은 듯이 깨끗해졌고, 희미하게 들려오는 환청도 조용해졌다.
환청과 작열감에 시달리는 그에게 아리엘이라는 존재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중요한 존재였다.
한 번 맛본 서늘한 냉기와 함께 찾아오는 안정감은 중독적이었다.
이미 자신은 아리엘이 없을 때로 돌아갈 수 없다.
‘아리엘이 죽어야 할 운명이라면.’
운명이라면 신을 죽여서라도 그 운명을 바꿀 것이고,
그 자신을 희생해야 한다면 기꺼이 희생할 수 있었다.
그녀의 몸에 그의 페로몬이 들어오자 그녀의 페로몬이 기다렸다는 듯이 그의 페로몬을 잡아 끌어당겼다.
온 방 안을 얼려 버릴 듯이 차갑던 냉기가 한층 따듯해졌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페로몬을 그녀에게 흘려 넣고 그녀의 페로몬을 받았다.
그의 황금빛 페로몬이 검은색 털 뭉치를 포근히 감쌌다.
얼려 버릴 듯한 냉기 속에서 있었던 따스한 기운이 다시 그녀의 몸에 맴돌았다.
***
나는 눈을 떴다.
눈을 뜨자 낯익은 천장이 보였다.
익숙한 정경의 방이 나를 반겼다.
‘천국인가……?’
진짜 죽은 건가.
천국은 제일 애착이 많이 담긴 공간을 보여 주는 곳인 걸까.
나는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고양이 탑도, 고양이 집도, 방석도, 내가 있는 침대도 모두 똑같았다.
천국은 자기가 가장 애착 있는 장소의 형상이라더니 진짜인가.
잠깐만,
‘……이거 진짜 카델리온 저택인 거 아니야? 천국이 아니라.’
실제와 똑 닮은 너무나도 사실적인 방 안의 풍경에 나는 내 볼을 때렸다.
그러자 손에서 부드러운 털의 촉감이 느껴졌고, 볼에서는 통증이 느껴졌다.
믿기지 않는 사실에 내 눈이 일순 커졌다.
‘나 살아 있어?’
살아 있네. 진짜 살았어.
이번에는 정말로 죽을 줄 알았는데.
마음속 깊은 곳에서 살았다는 안도감, 그리고 환희가 올라왔다.
나는 내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고 그제야 주위를 다시 둘러보았다.
여기는 천국이 아니었다. 현실이었다.
그 방은 내가 어제 있던 방과 똑같은 방이었다.
내 추억이 가장 많이 담긴 방.
그제야 내가 살아 있다는 것이 다시금 실감이 났다.
나는 방 안을 눈에 새기듯 꼼꼼히 둘러봤다.
‘……미친.’
그리고 발견했다.
옆에서 피를 철철 흘리고 있어 죽지 않은 것이 더 신기할 정도인 백호랑이 한 마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