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이거 제대로 된 훈련 맞아?’
아니, 페로몬을 어떻게 다루는지 알려 주는 거 아니었어?
루이즈에게 가르침을 받은 지 벌써 1주일이 지났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인간화의 ‘인’자도 달성하지 못한 채 오늘도 고양이의 몸으로 헉헉대며 연무장을 뛰는 중이었다.
“파이팅. 넌 더 뛸 수 있어. 아리엘.”
‘아니, 절대 못 해. 못한다고. 선생님 못하겠어요.’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발을 멈추려고 했지만, 뛰는 것이 다리에 각인되어 멈추지 못하는 것인지 나의 다리는 자꾸만 움직였다.
후들거리면서 뛰는 이 모습이 얼마나 웃길까.
이렇게 술에 취한 고양이처럼 휘청휘청 뛰다가는 얼마 지나지 않아 평소처럼 다리가 풀려 주저앉을 것이 분명했다.
허공에서 안전하게 뛰어 내려오는 것을 목표로 힘차게 뛰어내리기 30번.
개구리 점프하듯이 높이 점프하기 100번.
헉헉대며 술 취한 고양이인 것처럼 연무장 4바퀴 돌기.
마지막으로 페로몬을 어떻게 다루는지에 대해 배우는 것까지.
요즘 들어 생긴 살인적인 나의 하루 일정이다.
이것은 초등학교 때 방학 숙제로 엄청난 나의 열정으로 분 단위까지 쪼개 세운 <나의 하루 생활계획표>보다 더 살인적인 일정이었다.
몸뚱어리에서 욱신거리지 않는 부분이 없었다. 온몸이 비명을 지르는 느낌이랄까.
하루 일정이 디저트 먹고 아무것도 안 하고 가만히 있기가 전부인 나에게 이 각박하고 빽빽한 계획표가 생기니 삶이 피곤해질 수밖에 없었다. 덕분에 훈련을 마치고 목욕만 하고 나면 어느새 꿀 같은 달콤한 잠에 빠져들었지만.
그리고 다음 날 일어나면 몸이 상쾌해져 있었다.
그 장점만 빼면 모든 것이 단점이라는 것이 문제지만.
루이즈와 훈련을 시작하고 나서 이안의 얼굴을 본 지는 꽤 되었다.
이안이 방에 들어오기도 전에 잠과의 사투에서 항상 대패해 쓰러져 잤으니. 해일이 몰려오듯 몰려오는 잠에 나는 항상 속수무책이었다.
나와 잠과의 치열한 전투는 무패의 전설을 가지고 계신 이순신 장군님을 불러들여도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도대체 왜 내가 루이즈의 제안을 받아들였을까.
놀고먹던 그때가 좋았는데.
‘아…… 호랑이들은 정상이 없어서 다 믿으면 안 된댔는데.’
그래. 이 재앙의 시작은 첫날 루이즈가 나에게 건넨 이 첫마디부터 시작이었다.
“건강한 신체는 인간화를 촉진한다. 따라서 체력 운동은 필수야.”
“인간화되는 과정을 버티면서도 당연히 필요하고.”
체력 운동이라니. 정말 내가 밟고 있는 이 땅부터 땅이 꺼져 세상이 멸망하는 것 같은 절망적인 소리였다.
아닌가. 루이즈를 도서관에서 만날 때부터 문제였던 것일까. 아니야. 내가 루이즈의 제안을 승낙했을 때부터 문제였던 거야.
“너 내 제자 할래?”
그래. 그 아름다운 얼굴로 우아하게 말한 이 말이 문제였던 거야.
제자는,
제자리에서
자네를 골로 보내 주지.
라는 것의 줄임말이었던 거지.
분명 나는 훈련을 진행하다가 못하겠다고 뻗대고 누워 있었던 적도 꽤 되었다.
“아리엘, 이제 한 바퀴만 더 돌면 돼.”
하지만 이런 나의 필사적인 생존권을 위한 투쟁에 그녀는 특유의 나긋나긋하고 우아한 목소리로 할 수 있다고 격려하며 나의 할당량을 다 채우게 했다.
그렇게 나는 원치 않은 격려를 받으며 운동을 하고 있는지도 1주일째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또 루이즈를 만난 것부터가 문제였다.
아니, 이 정도면 그냥 인생이 다 문제였던 건 아닐까.
모든 게 다 꼬여 버렸어.
항상 생각하지만 연무장 달리기를 하면 뜬금없는 도덕적인 성찰을 굉장히 많이 하게 된다.
그렇다고 내적으로 한 단계 성장하는 느낌은 아니고.
푸념만 하게 되는 느낌이랄까.
이러다가 해탈의 경지에 올라 제2의 석가모니가 될지도 모른다.
아리엘과 석가모니.
‘그럼 나는 아가모니가 되는 것인가.’
왠지 ‘아가, 이게 뭐니.’의 줄임말 같은 느낌인걸.
“쓸데없는 생각 말고 계속 달리자. 이번이 4바퀴째잖아.”
옆에서 지친 기색 없는 수인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 저, 저 귀족적인 말투가 문제인 거다.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말투.
그녀는 옆에서 나와 같이 연무장을 뛰며 나를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1바퀴를 돌 동안 그녀는 5바퀴보다 더 도는 것 같았다.
‘에너자이저이신가. 지치지 않는 배터리…….’
이렇게 체력 훈련을 열심히 하는데도 불구하고 나의 인간화를 위해 페로몬을 다루는 실력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여전히 주먹을 암만 질러 봐도 책장 하나 안 넘어가고 나뭇잎 하나 날아가지 않는 것은 똑같았다.
이 정도면 나의 페로몬은 평소와 같은 상태를 유지하게 해 주는 힘이 아닐까.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고 매일 주먹 지르기를 하며 살고 있다.
“오. 이것이 냥냥 펀치의 발전형이라는 것인가.”
“역시 발전형은 인형을 때리실 때 진행하는 기본형과 다르게 포스부터 남다르군요.
“기본형보다 손목이 일자로 쫙 펴져 있네. 기본형은 살짝 꺾어서 내리찍던데.”
“동작 하나하나에 절도가 묻어 나옵니다. 이 손목의 스냅 보십시오.”
“다른 손으로도 질러 봐.”
“냐아옹!”
하필 그것을 우연히 본 이안과 앨런이 업무를 내팽개치고 온종일 주먹 지르기를 하라며 나를 놀린 작은 트러블이 있었지만.
하여튼 매일 주먹 지르기를 하며 살고 있는 덕분에 저택의 모두가 내가 무술을 창조하고 있는 줄 안다. 이 말이다.
‘아니, 대체 고양이가 어떻게 무술을 창조하냐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나는 달리기가 끝나고 여느 때처럼 주먹 지르기를 하고 있었다.
‘……태권도는 전생에서는 있었지만 지금 이 세계에서는 없으니 새로운 무술 창조가 맞나.’
아닌가.
고개를 갸웃거리던 나는 자세를 바로잡았다.
단전에서부터 이질적인 기운을 모아서
‘쏜다.’
그때, 주위가 갑자기 스산해지는 것이 추워지기 시작했다.
‘분명 겨울이 지나가고 여름이 다가오고 있는데.’
나는 평상시와 같은 주위 사람들과 땀을 흘리면서 체력 운동을 하는 루이즈를 바라보았다.
나만 추운 건가. 그렇게 한참을 뛰었는데도.
분명 이걸 알면 몸을 덥히기 위해 더 뛰라고 하겠지.
‘갑자기 든 한기였나 보지 뭐.’
그렇게 아무렇지 않게 생각을 돌렸다.
이 나뭇잎 한 장을 조준하고 다시 시도해 봐야지.
이게 마지막이야.
하나.
둘.
셋.
‘……아무 변화도 없네.’
나는 실망한 채 저쪽에서 운동하고 있는 루이즈를 쿡쿡 찌르며 가자고 했다.
하지만 아리엘은 보지 못했다.
아리엘이 주먹을 뻗는 순간 나뭇잎 한 장이 이질적인 기운에 의해 끝부분 색깔이 살짝 변한 것을.
과연 그 살인적인 체력 운동이 빛을 발한 것일까.
그 이상한 운동이 쓸데없는 것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벌써 페로몬 연습을 하는 거야?”
루이즈가 놀란 듯이 눈을 크게 떴다.
아. 새로운 지옥의 시작이었다.
아리엘은 체념한 체 루이즈에게 질질 끌려갔다.
***
사각사각.
집무실에는 만년필로 서류에다가 사인하는 소리만이 들렸다.
집무실에 있는 보좌관들은 아침부터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다.
‘주군 좀 말려 봐요.’
들어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한 보좌관이 앨런에게 눈빛을 보냈다.
‘못 말립니다.’
앨런이 유감스러운 눈빛으로 그 보좌관을 바라봤다.
같은 주군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보니 눈빛만으로도 통하는 능력이 생긴 것일까.
너도 그렇니? 나도 그렇다. 유감. 이런 느낌이었다.
‘정말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입은 앨런을 유일한 구원의 수단으로 보는 양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그러나 앨런은 그 눈을 단호하게 외면했다.
‘네. 저걸 말리다가 제 목이 날아갈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집무실이 안 부서진 것이 다행이에요.’
하지만 돌아오는 단호한 대답에 신입은-신입이라 해도 몇 개월이 지났지만, 1년이 되지 않았기 때문에 신입이라고 하자- 좌절스러운 눈빛을 했다.
앨런은 측은한 눈빛으로 그 신입 보좌관을 한 번 쳐다보고 자신의 주군에게 시선을 돌렸다.
저 비정상적인 또라이는 기분이 나쁠 때 웃던데 현재 그는 턱을 괸 채 피식피식 웃으면서 힘차게 짜증을 가득한 사인을 해나가고 있다.
‘제정신이 아니시군.’
신경질적인 사인이 새겨진 문서들이 하나, 둘 무서운 속도로 쌓였다.
‘이런 속도로 일하시면 조기 퇴근인데.’
앨런은 그런 문서 속도에 순간적으로 꿈에 그리던 조기 퇴근이 눈앞에 보이는 듯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짜증이 가득 담긴 사인을 받아야 하는 죄 많은 문서가 한가득 기다리고 있었다.
마치 그 빽빽한 글씨에서 문서들의 처참한 기분이 느껴지는 듯했다.
‘……하지만 분명 저 상태에서 누가 주군을 건드리면 꼴이 말이 아닐 거다.’
짜져 있어야지.
앨런은 속으로 다시 한번 생각했다.
앨런의 예측대로, 현재 이안은 상당히 저기압 상태였다.
현재 그는 그 자신도 모른 채 새끼 고양이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 차 있었다.
‘아리엘이 날 피하는 걸까?’
아리엘은 이안을 쫓아다닌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그런 것 따위는 머릿속에 없는 이안이 피식 웃으며 생각했다.
물론, 아리엘은 현재 루이즈와 지옥 훈련 중이다.
‘내가 가면 자고 있고. 항상.’
그것은 고양이의 수준을 뛰어넘는 훈련 때문에 그런 것이고,
‘옛날에는 기다려는 줬었는데.’
훈련 때문에 꾸벅꾸벅 졸면서 잠과의 사투를 진행하다 이안을 기다리다가 쓰러져 자는 것을 모르는 이안이 생각했다.
이안이 들어왔을 때는 항상 자고 있으니.
‘집무실에도 안 오고.’
물론, 이것도 루이즈가 할당량을 다 채우기까지 아리엘을 안 놓아주기 때문이다.
거기에 반항하는 아리엘 때문에 늦어지는 것이기도 하고.
슥. 슥슥.
한참을 유려한 필체로 사인하던 이안이 입을 열었다.
“아리엘이 날 피하는 걸까?”
‘아리엘 님이 누구시지.’
새로 들어온 신입은 집무실에 맨날 연행되어 오던 고양이가 아리엘이라는 것을 모른 채 대답 먼저 했다.
“아닙니다!”
“네.”
상반된 두 대답이 동시에 나왔다.
한 대답은 군기가 잡힌 신입의 것이었고, 하나는 목숨에 경각이 달려 있지만 노하우가 쌓인 경력직의 것이었다.
물론, 이안이 답을 바라고 한 질문은 아니었다.
혼자만의 생각을 이어가던 이안은 말했다.
‘그래. 루이즈를 처리해야 해.’
“적당히 불구 상태로 만들면 되겠지.”
아리엘이 자신을 찾지 않는다면, 자신이 아리엘을 찾아가면 되겠지.
이안이 칼을 잡고 일어나는 순간, 뭔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앨런이 이안의 기분을 살피며 누구보다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안 님, 마리 님께서 보낸 전보가 도착했습니다.”
정말 귀신같은 타이밍이었다.
역시 경력직은 뭐가 달라도 다른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