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2. (23/111)

22.

케이크 박스를 열자 케이크가 아닌 웬 동태 눈깔을 가진 죽은 생선들이 접시 위에 쌓여 있었다.

“미야오옭!”

정신 건강에 심히 해로웠다.

……이 정도면 고양이 학대가 아닐까.

나는 털을 부들부들 떨고 경기를 일으키며 이안에게 뛰어갔다.

이 생각 없는 맹수야. 날생선을 줄 거면 회로 떠서 주던가. 물고기가 죽은 동태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는데 어떻게 먹어. 게다가 먹다가 목에 가시라도 걸리면 어떡해. 그리고 누가 화해의 의미로 날생선을 주냐.

이건 싸우자는 거지.

대결 신청이냐?

저 생선들이 꿈에 나올까 봐 무서웠다.

……아무래도 호랑이들과 화해하기는커녕, 감정의 골이 더 깊어질 것만 같다.

“앨런, 아리엘이 단단히 토라진 것 같은데.”

나를 자신의 품에 안은 이안이 느릿하게 말했다. 거기에는 얼핏 승리자의 미소가 보이는 듯하기도 했다.

물론 죽은 생선 때문에 기겁한 상태로 이안의 품속에 있는 아리엘은 보지 못했지만.

앨런은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좋아하실 줄 알고 열심히 가져온 건데. 슬프군요.”

‘이 생각 없는 맹수들아 생각이란 걸 좀 해 봐. 디저트 받을 생각으로 열심히 일했더니 피가 철철 나는 쥐 시체를 주는 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니? 게다가 달래겠다고 날생선을 주는 심보는 또 뭐야?’

‘그리고 미안한데, 너 다 연기인 거 알거든. 그냥 극단의 배우가 되어 보는 게 어때? 직성에 맞을 수도 있어.’

나는 도끼눈을 뜨며 이안과 앨런을 노려봤다.

‘아 맞다. 너도 공범이었지.’

나는 이안의 가슴팍을 발로 힘껏 차곤 책상으로 뛰었다.

“윽. 아리엘 아픈걸.”

아프지도 않으면서.

태권도 3품 출신의 날아 차기였다.

“아리엘 님, 그런 눈빛으로 쳐다보시면 저의 심약한 마음이 온전치 못합니다만.”

앨런이 퍽 상처받은 표정으로 고양이를 바라봤다.

고양이는 이에 지지 않고 눈을 부라렸다.

‘심약한 마음 같은 소리 하고 있네. 그런 연약한 마음을 가진 수인이 초속 180km/s로 날라오고 있는 만년필을 고개만 까딱하고 피하냐.’

심약한 호랑이라니 어디서 듣도 보도 못한 소리야.

정말 신뢰성이라곤 하나도 없는 말이었다.

“아리엘, 나는 그런 눈빛도 좋아.”

아픈 연기를 하는 건 어디로 집어치웠는지, 이안은 삐뚜름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쳐다봤다.

제발 그 취향을 나한테 표출하지 말라니깐. 혼자만 조용히 속으로 생각하라고.

나는 짜게 식은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다.

……생각해 보니 저 변태 호랑이보다는 차라리 말도 안 되는 헛소리하는 저 심약한 호랑이가 더 나은 것 같기도 하고.

아, 그냥 둘 다 싫어.

이 얄밉고 성격 이상한 호랑이들 같으니라고.

오늘도 애벌레 인형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다.

***

‘다들 내 마음을 읽기라도 하나?’

저 얄미운 호랑이들이 어떻게 내 반응을 그렇게 잘 아는 건지. 내 반응을 다 알고 약 올리는 짓을 하는 것이 그렇게 얄미울 수가 없었다.

나는 지금 고양이 상태인데, 고양이 표정을 읽는 게 쉽나? 마리도 그렇고. 내가 필요한 건 척척 가져다주던데.

방석에 앉아 있는 나는 빤히 앉아 고민했다.

“고양이님 왜 그러세요?”

내 표정이 어지간히 심각해 보였는지, 생각에 잠겨 있으면 옆에서 말을 잘 걸지 않는 마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나는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마리, 영상구 있어?’

그러자 그녀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혹시 슈가 먹고 싶으신가요? 하지만 이안 님께서 금지하셔서…….”

‘아니, 그게 아니라!’

최대한 항변을 해도 마리는 진심으로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며 나를 쳐다봤다. 마치 슈를 못 먹는 것이 자신의 한인 것처럼.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마리가 내 마음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평소에 필요한 걸 척척 가져다주고 말하고 싶은 내용을 귀신같이 알아채서 대신 말해 주는 마리가 오늘따라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영상구가 간절히 필요한데.’

그래. 꼬리로 글자를 한 번 써 보자. 나는 꼬리에 온 신경을 기울이고 열심히 영상구의 ㅇ을 쓰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내 꼬리는 좌우로 휙휙 움직이기만 했다.

도대체 꼬리로 글씨 쓰는 수인들은 뭐지. 내가 이상한 건가. 다른 수인들은 퍽 자연스럽게 꼬리로 글씨를 써서 의사소통하기도 하던데. 나는 왜 안돼.

나와 그 수인들의 다른 점이 뭘까.

‘음. 하지 말자.’

나는 누구보다 빠르고 산뜻하게 꼬리로 글씨 쓰는 것을 포기했다.

원래 포기는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법이다.

이 정도면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지 말고 살아가라는 신의 계시가 아닐까.

‘마리, 봐 봐.’

“네. 볼게요.”

그녀는 슈를 먹지 못하는 내가 퍽 안타까워 보였는지, 아직까지도 약간 측은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내가 슈를 못 먹어서 슬퍼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게 틀림없었다.

제대로 된 오해였다.

‘뭐, 목적이 어떻든 어쨌든 보긴 보는 거니까…….’

마리가 열심히 나를 보는 것을 확인한 나는 바닥에서 한 바퀴 뒹굴었다.

그리고 네모난 것을 앞발로 그렸다.

그런 후에, 그것을 그린 허공을 툭툭 치고 다시 뒹굴었다.

내 모습이 찍히고 영상구가 똑같이 재생하는 장면이었다.

영상구에 대한 완벽한 설명이다.

나는 내 설명에 만족하며 뿌듯한 표정으로 마리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마리는 더더욱 어두운 표정이 되었다. 얼굴에 먹구름이 떠다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곧 있으면 번개도 칠 것 같은 그런 어두운 표정이었다.

‘나 뭐 잘못 설명했나? 아무리 봐도 나는 완벽하게 설명했는데.’

“혹시 과자가 먹고 싶으신 건가요? 그것도 이안 님께서…….”

마리는 침울한 표정으로 말을 흐렸다. 곧 비도 쏟아질 것 같았다.

‘아니야 그거 아니야!!’

물론 이안이 과자를 금지한 건 맞지만.

“혹시 케이크인가요……?”

‘아니 그게 아니라!!’

나는 고개를 세차게 도리도리 저었다. 어떻게 영상구가 과자가 될 수 있는 거야. 내가 아무리 디저트를 많이 먹는다고 해도 내 머릿속에 디저트 생각만 있는 건 아니거든.

디저트를 먹는 건 너희가 내 밥그릇에 당근을 올려놔서 그런 거잖아. 물론 그게 밥을 안 먹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긴 하지만.

누가 한 끼 식사를 생당근으로 시작해서 생당근으로 끝내고 싶겠어.

‘자 다시 봐 봐.’

나는 진지한 눈빛으로 마리를 바라봤다.

“네 고양이님. 잘 볼게요.”

마리는 저번의 실수를 만회하려는 듯, 눈을 부릅뜨고 나를 바라봤다. 눈에서 레이저가 나올 것 같았다.

그 모습이 살짝 무서웠지만, 나는 못 본 척하고 영상구를 설명하기 위해 동그라미를 그렸다.

‘이해됐어?’

“네. 너무 귀여우세요.”

그녀는 진리를 깨달은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무시하고 설명을 다시 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자, 봐 봐.’

“네.”

나는 다시 데굴 굴렀다. 그리고 그 동그라미가 있던 허공을 다시 가리키곤 또 데굴 굴렀다. 아까 건 네모난 영상구를 그렸지만 이번 건 동그란 영상구였다.

“혹시 침대에서 구르고 싶으신 건가요?”

그녀가 짐짓 갸웃거렸다.

내 행동을 항상 잘 알아듣던 마리는 왜 이런 중요한 순간에 못 알아듣는지.

‘그것도 좋지만. 다시 봐 봐.’

나는 아까와 같이 동그라미를 그린 후 이번에는 폴짝 뛰었다. 그리고 동그라미를 그린 자리를 가리키고 나서 다시 폴짝 뛰었다.

‘…이 정도면 알아들을 법도 한데.’

이번에는 내가 뛰는 모습을 찍는 영상구에 대한 설명이었다.

“혹시…… 영상구?”

마리는 스피드 퀴즈를 맞추는 듯 열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맞아!!!’

와. 드디어 맞췄어.

뿌듯함과 성취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엄청난 성취감에 털이 쭈뼛 섰다.

나는 열심히 내가 말하는 것을 맞추려고 눈에서 불이 나올 정도로 최선을 다했던 마리에게 축하의 박수를 열심히 보내 줬다.

하지만 솜뭉치로 박수를 쳐서 그런지, 아리엘이 박수를 쳐도 박수 소리가 나지 않았다는 사실은 모른 척하기로 하자.

***

‘아니, 저걸 어떻게 알아.’

나는 나를 찍은 영상구를 고심해서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옆에서 보면 검은 솜뭉치 덩어리가 영상구 안으로 빨려 들어갈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마리가 영상구를 가져올 때 주저한 이유를 알았다. 영상구 안에는 정원에서의 런웨이를 비롯한 여러 흑역사가 영상구 안에 있었기 때문인데…….

‘저 영상들은 또 언제 찍은 거야.’

언제 찍었는지 감도 안 잡히는 영상들이 꽤 있었다. 그리고 그 영상들의 대부분은 이안이 나를 놀리는 내용이었고.

‘삭제하라고 이안의 멱살이라도 잡아야 할까.’

나는 내 앞발을 한 번 내려다보고 다시 영상구로 시선을 옮겼다.

저번에 마담 헤일라가 영상구에서 본 내 모습도 이 영상구 안에 있는 모습 중 하나였던 걸까. 그러면 살짝 많이 쪽팔리는데.

그래도 덕분에 내가 내 모습이 찍힌 영상구를 바로 볼 수 있으니까 이번 한 번은 넘어가기로 했다.

나는 열중해서 영상구에서 나오는 영상을 시청했다.

[슈가 먹고 싶어?]

[그래도 안 돼.]

[냐아오….]

아. 맞다. 저 때 디저트 금지령이 내려진 다음 날이었지.

지금 생각해도 완전 얄밉다. 이빨 썩는다고 어떻게 디저트를 금지할 수 있는지.

나였으면 이빨 썩고 말았다.

슈를 위해서 저런 애처로운 눈빛쯤이야.

영상구 속에는 슈를 먹기 위해 애처로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척하는 내가 있었다.

‘어떤 기분인지 표정에서 너무 잘 보이네. 저 정도면 읽을 만할 수도.’

아 근데 무슨 생각을 하고 무엇을 원하는지는 표정에 안 쓰여 있는데, 그건 어떻게 아는 건지. 참. 나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마리가 조금 전에 영상구 가져와 달라는 말을 못 알아들은 걸 보면 얼굴에 모든 것이 다 쓰여 있는 건 아닌 것 같은데.

그래도 확실한 건 내 표정 변화가 매우 크다는 거다.

영상구에서 나오는 내 모습은 어딘가 생경했지만, 그래도 재밌어 볼 만했다.

뭔가 예능프로그램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마치 오래전에 써 놓은 일기장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영상구 속에 있는 나는 날아 차기를 하고 있었다.

‘한 번 해 볼까.’

저기서 열심히 날아 차고 있는 날 보니 다리가 괜히 근질거렸다.

아리엘은 그녀의 모습이 재생되고 있는 영상구를 중지시키고 거기에서 눈을 뗐다.

그리고 진지하게 책상과 바닥의 거리를 가늠했다.

‘가능할 것 같은데.’

좀 먼가.

몸 성히 착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아리엘은 엄청난 점프력으로 용맹하게 뛰어올랐다.

그리곤 허공에다가 발을 쭉 뻗었다.

퍽.

그 발이 결 좋은 은빛 머리카락을 강타했다. 이안의 앞머리였다.

그의 머리를 본 나는 그 상태 그대로 굳었다.

“오. 10점 만점에 10점 드립니다.”

옆에 있던 앨런이 박수 치며 환호했다. 진심이 담긴 환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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