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 (22/111)

21.

비품 구매 금액 청구 부분에 있는 숫자들이 이상하게 어긋나 있었다.

‘…이게 맞아?’

어긋난 부분부터 위로 올라가 자세히 보니, 실제 금액보다 더 부풀려져서 금액이 청구된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나는 계산이 이상한 부분에 서류에 코를 톡 갔다 댔다.

‘야. 여기 이상해.’

“이 종이에서 좋은 냄새라도 나?”

이안은 일 따윈 때려치우기로 한 건지, 이젠 아예 안경도 벗고 책상에 엎드려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어때, 내 냄새도 맡아봐.”

그가 자신의 목을 아리엘의 코에 갖다 댔다.

그에게서 나는 특유의 어둡지만 따뜻한 향기가 훅, 하고 올라왔다.

아. 더 맡고 싶다.

아니 무슨 생각하는 거야. 정신 차려. 아리엘.

지금 이러고 있으면 안 되지.

‘넘어갈 뻔했어.’

정신을 다시 붙잡은 나는 이안을 향해 눈을 홉떴다.

‘네 냄새를 맡으라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여기 금액 적혀 있는 이상하다고!’

들이밀어 진 그의 목을 최선을 다해 밀어낸 나는 종이에 발자국이 남지 않도록 조심히 발을 탁탁 쳤다.

이안의 느리고 날카로운 시선이 장부를 훑었다.

그렇게 스윽 한번 장부를 훑어본 그는 내가 코로 가리킨 부분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손가락으로 한 번 잘못된 부분을 짚은 그가 별 감흥 없이 내 털을 계속 쓰다듬는 것만을 계속했다.

“그러네. 여기 이상하네.”

‘어? 야. 여기도 이상해.’

서류를 보다 보니 금액이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몇몇 군데가 금액이 교묘하게 불려 있었다.

그런 실수가 반복되자 불안한 기운이 스멀스멀 퍼져 올랐다.

이거 계산 실수 맞는 거지…?

에이. 계산 실수가 맞겠지. 설마 어떤 간 큰 인간이 카델리온의 돈을 빼먹으려 들까.

하지만 이상하게도 거의 모든 계산이 너무 교묘하게 안 맞았다. 엄청 큰 금액도 아니고 엄청 적은 금액도 아닌, 신경 쓰지 않고 보면 모를 딱 그 정도로.

고심해서 생각하는 아리엘의 콧잔등에 주름이 잡혔다. 도대체 누가 돈을 빼먹으려는 걸까. 그것도 그 카델리온의 돈을? 정신이 없는 걸까.

‘근데 겨우 저 정도 돈을 빼돌린다고?’

무슨 농락하는 것도 아니고.

물론, 일반 귀족가를 생각하면 적지 않은 돈이긴 했지만, 여기는 카델리온이었다.

삼대가 망해도 돈이 넘쳐나는 그 카델리온.

‘빼돌릴 거면 더 많이 가져가도 됐을 텐데. 아니, 더 많이 가져갔어야지.’

나였으면 목숨 걸고 돈 빼돌리는 거 더 가져갔을 것 같은데.

‘아, 일부러 기만하는 건가?’

도대체 뭐지.

나는 콧잔등을 찡그리며 열심히 고민했다.

이 와중에도 별 감흥 없다는 듯 아기 고양이의 털을 쓰다듬는 이안의 모습을 본 앨런은 생각했다.

느릿하게 쓰다듬는 손짓과 잔잔한 눈빛. 그리고 저런 침착함.

‘다년간의 보좌관 생활의 감으로 볼 때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은데.’

분명 어떻게 할까 고민 중이신 게 분명하다.

‘아… 주님 한 명 더 갑니다….’

장부보다도 돈 빼먹은 사람의 앞날이 더 걱정되었다.

태평하게 상단 관련 문서를 빠른 속도로 처리해 버린 이안은 앞에 놓여져 있는 다른 서류를 보고 흥미로움이 가득한 미소를 지었다.

“앨런.”

“네?”

“카멜레온 족에서 도움을 요청하는데.”

“거기는 은거하는 종족들 중 하나 아닙니까.”

도움을 요청하지도 주지도 않는 종족.

카멜레온 종족은 그들끼리 모여 살며 필수적인 것이 아니면 교류조차 잘 하지 않는 종족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밖으로 잘 나가지 못하는 종족이다.

나가기만 하면 쥐도 새도 모르게 없어지는 일이 태반이니.

그만큼 그들의 페로몬은 희귀했고 그만큼 효용 가치가 높았다.

그래서 수인들은 유독 카멜레온 종족에게 은혜를 입히려고 한다.

귀한 것일수록, 원하는 수인들이 많아지는 것처럼 당연히 자연스럽게 그들을 노리는 수인들도 많았다.

때문에 그들은 무언가 도움을 주지도 받지도 않는 그들이 있는 자리만을 지키는 종족으로 남았다.

“근데 도움을 요청한다니요?”

이안이 아무렇지도 않게 엄청난 말을 던졌다.

“카온 가(家) 자제가 사라졌다는데. 사라진 지 꽤 된 것 같아. 몇 년 된 것 같은데.”

“예, 2년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카온 가(家)는 그 희귀하다는 카멜레온 종족의 수장이었다.

“카멜레온 종족이 또 사라지다니.”

이거 흥미롭네.

한 종족 수장 가문의 자제가 사라지는 일은 흔치 않았다. 아니, 거의 없었다.

게다가 은거하고 있는 종족이면 더더욱.

음지에서 수인들을 팔아넘기는 자들도 한 종족의 자제이면 무조건 손도 대지 않고 떨어진다.

아리엘은 속으로 조용히 방금 들은 말에 대해 생각했다.

‘근데 카멜레온 종족의 자제가 이번에 또 납치되었다고?’

과거에도 납치된 적이 있단 말이야?

엄밀히 말해서 납치는 아니었다.

‘실종’이지.

하지만 그 실종은 납치로 연결될 확률이 확연히 높았다.

아니, 종족의 자제들의 실종은 거의 납치로 연결되었다. 특히 카멜레온 족같이 희귀한 페로몬일 경우 더더욱.

“최근에서 곳곳 발생하고 있는 평민이 실종되는 사건의 연장선 아닐까요.”

오랜만에 앨런이 사무적인 목소리를 내었다.

“그리고 일부 평민 수인들도 실종되는 사건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고요.”

“특히, 빈민가에서는 더 심하다고 합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이안이 입을 열었다.

“마치 9년 전 같네. 아니 그 연장선인가.”

“네. 저도 그 생각 했습니다.”

“누구의 짓일까.”

9년 전에도, 지금에도 그렇게 간 큰 짓을 할 사람은.

그가 진한 미소를 덧그렸다.

***

이안의 서류에서 고의적인 계산 실수를 잡아낸 이후, 나는 집무실에서 뜻밖의 거래 아닌 거래를 계속하는 중이다.

처음에는 천사같이 그냥 도와줬다.

“고양이님, 이 서류 혹시 봐주실 수 있나요?”

“고양이님, 혹시 이 서류에 틀린 점이나 잘못된 점이 있나요?”

“천재 아기 고양이님, 혹시 저를 위해 한 번만 자비를…….”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때려치웠다.

천사는 나의 적성에 안 맞는 직업이었다.

‘야. 대가를 내놔. 기브 앤 테이크 몰라?’

왜 나는 기브, 기브, 기브만 하는 것 같지.

뭔가 자원봉사를 한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 일하기를 거부하고 파업하자, 이안과 보좌관들은 나에게 일감을 잔뜩 가져다주고 날마다 디저트 또한 잔뜩 갖다 바치고 있다.

“고양이님 초콜릿 쿠키 좋아하십니까?”

“고양아, 오늘은 케이크 어때.”

날이 갈수록 디저트의 퀄리티도 좋아지는 것은 물론이었다.

“고양이님, 오늘은 슈 어떠십니까.”

“고양이님…….”

일하면서 디저트를 먹으니 손해 보는 장사도 아니었다. 심심하지도 않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렇게 나도 서류 산 앞에 앉아서 일하고 있었다.

‘……근데 이게 맞는 걸까.’

내가 카델리온의 서류를 이렇게 보아도 되는 걸까.

아무리 새끼 고양이라고 하지만.

중요한 서류가 아니더라도 보여주면 안 되는 거 아닌가.

이안이 나를 집무실에 데려온 후부터 ‘이안 카델리온에게 눈 안 띄고 살다가 조용히 저택에서 빠져나가기’는 때려치운 지 오래였다.

‘이안이라면 내가 수인이라는 걸 알 확률이 높은데.’

도대체 무슨 생각인 거지.

보좌관들은 자기들이 일거리를 맡겨 놓고 처음에는 나를 멍하니 쳐다보며 볼 때마다 감탄하고 새로워하더니 이제는 익숙하게 서류 더미에 파묻혀 보이지 않는 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다.

나도 이제 서류 산에 파묻혀 사는 익숙한 집무실의 일원 중 한 명이 되었다.

나 또한 허공으로 날아다니는 만년필과 이를 익숙하게 피하는 보좌관들에게도 찬찬히 적응 중이다.

가끔씩 종이도 날아다니고 손수건도 빳빳하게 날아다니긴 하는데 그건 그냥 모르는 척 넘어가기로 하자. 어떻게 손수건이 살상 무기로 변할 수 있는지 참.

하여튼 이런 일상에 익숙해질 정도로 나도 같이 서류를 보니, 이안과 보좌관들의 퇴근 시간이 점점 눈에 띄게 빨라졌다. 덕분에 보좌관들은 나를 자신들의 서류 지옥에서 구출해 줄 구세주 같은 걸로 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날이 갈수록 더 맛있는 걸 갖다 바치는 걸 보면.

앨런이 잔뜩 기대한 얼굴로 말했다.

“고양이님, 오늘은 제가 특별히 준비한.”

‘준비한?’

나는 다음 말이 이어지길 기대하며 앨런을 올려다봤다.

“쥐입니다.”

“냐아아옭!”

‘이…… 미친…… 미친 맹수야!!!!’

오늘치 서류가 화려하게 허공에 흩날렸다.

나 쥐 못 먹는다고! 나 수인이라고! 저리 가져가!

나는 팔짝 뛰며 이안에게로 매달렸다.

“이안 님, 고양이는 쥐를 잡아먹으니 쥐를 잡아 고양이님께 대령하면 좋아하실 거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앨런이 퍽 억울한 얼굴로 이안을 쳐다봤다.

“내가 언제?”

그가 아무 죄도 없는 것 같은 청렴결백한 표정으로 앨런을 쳐다봤다.

나는 배신감 어린 표정으로 얼굴로 그를 바라봤다.

‘야, 너도 공범이었던 거야……?’

세상에 믿을 수인 한 명 없었다.

내 목을 탁, 치고 오는 배신감에 낮게 꼬리를 파르르 떨던 내가 그에게 고개를 돌려 바닥에 엎어졌다.

‘너랑 같이 안 있어.’

완전한 파업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냉전 상태가 되었다.

냉전 상태보다는 내가 일방적으로 삐진 것에 가깝지만.

나에게 쥐를 가져다주다니.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야. 내가 서류까지 검토해 줬는데.

나는 생각할수록 머리끝까지 치미는 배신감에 털이 부르르 떨렸다. 쥐를 받은 그 날부터 나는 집무실에서 하던 모든 일을 하지 않고 다시 파업을 시작했다.

덕분에 보좌관들과 이안은 다시 야근의 수렁으로 빠져들었다.

이미 퇴근이라는 달콤한 과실을 맛본 보좌관들은 날이 갈수록 죽어가고 있었다. 그들은 각종 디저트를 나에게 진상하며 나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애썼지만, 지금의 집무실은 조용했다.

정확히는 있는 듯, 없는 듯 있었으면서도 존재감이 은근히 컸던 그들이 없었다.

축젯날 서로를 부둥켜안고 야근을 했던 두 보좌관이 지금 휴가를 갔기 때문이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이 직장이 좋은 건지 안 좋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성과급이랑 월급은 빵빵하게 주는 것 같은데 주인 성격이…….

‘……그래도 케이크랑 슈를 주는 건 좋았는데.’

뭐가 어찌 됐든 앞으로 자신들의 미래를 생각해서라도 제발 푹 쉬고 왔으면 좋겠다.

덕분에 집무실에는 이안과 앨런, 그리고 나만 남겨져 있었다.

앨런이 진지하게 자신의 책상 위에 케이크 상자를 올려놓았다.

‘오 이번엔 케이크인가.’

내 시선이 자연스럽게 케이크 상자가 있는 쪽으로 따라갔다.

“고양이님.”

‘왜.’

케이크 상자를 바라보던 내가 앨런의 얼굴로 퉁명스럽게 시선을 돌렸다.

내 시선이 그에게 닿자 그가 케이크 박스를 열었다.

“혹시…….”

‘혹시 뭐?’

어딘가 불안한 느낌에 내가 그를 빤히 쳐다봤다.

“화해의 의미로 날생선은 어떠십니까?”

미친. 호랑이들에게 뭔갈 기대하는 게 아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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