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닭꼬치 팝니다-! 싸다 싸! 하나에 5쿠퍼.”
‘아쉬운 대로 닭꼬치라도 먹자.’
나는 이안을 툭툭 쳤다. 설마 이것도 안 사 주지는 않겠지.
“닭꼬치 하나.”
닭꼬치를 받은 이안이 내 입가에 닭꼬치를 갖다 대 주었다.
나는 닭꼬치에 있는 닭 한 조각을 입에 다 넣으려고 입을 쩍 벌렸다. 그러나 슬프게도 한 조각이 다 입안에 들어가지 않았다.
“하마보다도 입이 크게 벌어지네.”
“다른 동물들은 이 닭꼬치를 건들지 말라는 경고를 위협적으로 하고 계시죠.”
몇 번의 시도가 실패하자 들리는 이안과 앨런의 대화에, 결국 나는 닭 한 조각을 반으로 나눠서 오물오물 먹었다.
그 모습을 본 이안이 피식 비웃었다.
‘야. 웃기냐.’
나는 닭꼬치를 우물우물 먹으면서 이안을 째려봤다.
내가 열심히 씹는 걸 보던 이안은 자기도 닭꼬치를 한 입 먹었다.
‘의외네. 이런 음식은 안 먹을 것 같았는데.’
나는 길거리 음식도 잘 먹는 그를 새삼스럽게 다시 쳐다보곤 다시 먹는 데 열중했다.
닭꼬치가 내 입에 잘도 술술 들어갔다.
‘와. 그 맛이야.’
한국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파는 그 닭꼬치 맛. 그 맛.
우리 동네 포장마차가 닭꼬치를 진짜 맛있게 잘했는데. 그래서 틈날 때마다 먹었었다.
‘이렇게 생각하니 고양이가 아니라 닭으로 환생했으면 큰일 날 뻔…….’
닭꼬치도 못 먹고 치킨도 못 먹을 거 아니야.
그 전에 아마 같은 닭들에게 쪼여 죽지 않았을까. 맨날 닭꼬치 먹고, 치킨 먹고…….
닭으로 태어났으면 이렇게 잔혹한 동족상잔이 따로 없었다. 동족을 부위별로 잘라서 구워 먹고 튀겨먹다니.
그런 식으로 생각하니 닭에게 원한을 사는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아리엘?”
잠시 딴생각에 잠겨 있는데 그가 닭꼬치를 내 앞에 내밀었다. 꼬치를 어떻게 자른 건지, 꼬치의 절단면이 날카로운 부분 없이 지나치게 깔끔했다.
그의 손에 단검이 들어 있는 검집이 있었다.
그것도 닭꼬치의 꼬치를 자르는 데 사용되었을 거라고 추정되는 고급 단검이.
‘…저거 심각한 재능 낭비 아니야?’
나는 흠 잡을 곳 없이 완벽하게 잘린 꼬치를 보다가 고개를 돌려 앨런을 바라보았다. 그도 떨떠름한 표정으로 이안을 보는 건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꼬치를 자르는 방법이 어쨌든 간에 꼬치 윗부분이 지나치게 잘 잘려 있어 쏙쏙 빼먹기는 쉬웠다.
나는 닭꼬치 한 조각을 다시 빼먹고 고개를 저어 주위를 둘러봤다.
주변을 둘러보니 바로 앞에 인형을 파는 노점이 있었다.
그 노점에는 강아지, 고양이, 호랑이, 사자를 비롯한 귀엽고 깜찍한 여러 동물 인형들이 사이좋게 줄지어 손 잡고 서 있었다.
그 앞에는 여러 동물 인형들뿐만 아니라 용사 인형, 왕자, 공주 인형 등 여러 사랑스러운 인형들이 앉아 있었다.
길거리에서 파는 인형들치고는 질이 좋아 보였다. 그 사실을 다른 수인들도 아는지, 인형을 파는 노점 앞에는 수인들로 북적북적했다.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우리 아빠. 이거 사 줘!”
한 여자아이가 아빠 손을 잡고 공주 인형을 번쩍 들고 있었다.
‘아이가 아부할 줄 아네.’
“그 공주 인형이 딸 아이와 똑같이 생겼네! 허허. 딸 아이가 참 이뻐.”
노점상에 있는 할아버지께서 허허 웃으시며 말씀하셨다. 인자한 할아버지가 자신의 손녀딸을 보는 느낌이었다.
“아빠, 들었죠?”
아이가 아빠를 향해 찡긋거렸다.
주인 할아버지는 그 손님뿐만 아니라 다른 손님들한테도 재치 있고 유쾌하게 옆집에 사는 할아버지 같이 말했다.
“이거 너 닮았다.”
그 모습을 본 이안이 인형을 손에 잡고 짤짤 흔들었다.
‘이게……?’
저게 지금 장난하는 건가. 내 눈이 가늘어졌다. 그의 손에는 인상을 쓰고 있는 애벌레 인형의 대가리가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허허. 이건 비 오고 난 후의 지렁이를 보고 만든 거여.”
‘애벌레가 아니라 지렁이인데.’
내가 애벌레로 보면 애벌레인 거지. 뭐.
그 한 마디를 끝으로, 다른 수인들에게 너스레를 잘만 떨던 주인 할아버지마저도 아무 말 없이 나를 외면하셨다.
하긴, 팔려면 아니라고 말도 못 하고. 그렇다고 나한테 애벌레가 잘 어울린다고 하거나 똑같다고도 할 수도 없고. 애벌레를 짚고 있는 사람에게 양심상 보는 안목이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겠지.
‘그럼 너는 얘 닮았어.’
나는 옆에 메롱하고 혀를 내밀고 있는 애벌레 인형을 가리켰다. 아주 얄미운 게 너랑 똑같아. 누가 보면 분신인 줄 알겠어.
물론 비인간적인 이안 카델리온의 얼굴을 보고 지렁이를 떠올릴 사람은 아리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린 사이좋게 애벌레 인형을 하나씩 들고 다시 거리를 걸었다.
나는 내 손에 메롱하고 있는 애벌레를 보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짜증 나는 일이 생길 때마다 이 인형을 한 번씩 패줘야겠다.’
인형이 곧 남아나지 않겠는걸.
우리는 사이좋게 서로가 골라 준 인형을 하나씩 끌어안고 거리를 이리저리 누볐다.
거리에는 맛있고 신기한 것들이 상당히 많았다.
시계탑의 작은 시곗바늘이 숫자 8을 가리키고 있을 때 도착했는데 어느새 놀다 보니 거의 12에 인접해 있는 시곗바늘을 발견했다.
“이안 님. 불꽃놀이 시작 시각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가지.”
그 말을 들은 이안이 빠르게 이동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새 어떤 언덕 위였다.
언덕 위에서는 축제가 벌어지는 자유 도시의 야경이 한눈에 다 보였다.
큰 느티나무 밑에 철퍼덕 앉은 나는 그 광경을 넋 놓고 바라봤다.
‘우와…….’
캄캄한 밤, 저기 아래 조명으로 환하게 비추는 자유 도시의 불빛들은 마치 땅 위에서 빛나는 밤하늘의 별 같았다.
여러 지붕과 소원을 적어 걸어놓으면 나무 신이 그 소원을 들어준다는 환한 나무, 그리고 길을 비추는 조명들과 노점의 불빛들이 이루는 모습이 하나의 은하수 같았다.
저만치 멀리서 흥분한 사람들의 목소리와 안내 방송이 작게 들려왔다.
“불꽃놀이 시작까지 3초 남았습니다!.”
모든 사람이 한마음으로 초를 셌다.
나도 부푼 설렘과 기대를 가지고 불꽃놀이를 기다렸다.
“3.”
‘삼.’
“2.”
‘이’
“1.”
‘일’
평기일 파티의 마지막이자 새해가 다가오고 있었다.
“0.”
한 해가 졌고, 새로운 해가 떠올랐다.
펑-! 퍼펑-!
큰 폭죽 소리와 함께 형형색색의 화려한 불꽃이 밤하늘을 수놓았다. 하늘에는 불로 만들어진 꽃이 피어올랐고 땅에는 조명으로 이루어진 별들이 반짝였다.
두 개의 우주가 이 언덕에 맞닿은 것 같았다.
펑-! 펑-!
하늘에 오색찬란한 꽃들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붉은 동백꽃부터 보랏빛 수국까지.
‘우와. 루드베키아다.’
내가 아는 몇 안 되는 꽃들 중 하나인데.
불꽃이 핀 하늘은 꽃이 만개한 화원같이 찬연했다.
불꽃이 떨어지는 광경은 수많은 꽃잎이 하늘하늘 떨어지는 것 같기도 했고, 무수한 별똥별들이 땅으로 쏟아져 내리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멍하니 홀린 듯이 그 광경을 눈에 박은 채로 쳐다봤다.
‘예쁘다.’
불로 된 꽃들이 밤하늘에 만개했다.
펑-! 펑!
정말 꿈결 같았고 생생했다.
여기가 책 속의 세상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
다사다난했던 평기일이 지나고, 모든 게 평소처럼 제자리로 돌아왔다.
평기일이 지난 지금은 북부에 있던 저택이 아니라 중앙도시의 타운 하우스에 와 있었다.
북부에 있는 저택이나, 이곳 타운 하우스나 둘 다 엄청나게 큰 것은 똑같았다.
이곳에 온 나는 가장 먼저 새로운 총집사님에게 여기는 어떻고 저기는 어떻고 등 이곳에 대한 강의를 받았다. 본가에 계신 총집사님이나 이곳에 계신 총집사님이나 둘 다 저택의 덕후인 것은 똑같았다.
소문으로는 둘이 쌍둥이라던데.
아, 그리고 나의 일과도 많이 바뀌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이안의 집무실 안이었고, 눈을 감기 전까지도 그의 집무실 안이었다. 눈을 뜰 때부터 눈을 감을 때까지 거의 온종일 집무실에 있었다.
추측 상, 이안이 집무실로 출근하면서 나를 같이 데려가는 것 같았다.
말만 들으면 끔찍할 것 같았지만, 나에게는 주어진 일이 아무것도 없기에 나쁘지 않은 생활이었다. 나는 한가하게 핫 핑크색 방석에 눕거나 앉아서 디저트를 먹고 가만히 있는 게 대부분이었다. 짜증 나는 거라면 저 호랑이들 정도.
‘그래도 더 맛있는 디저트를 먹을 수 있으니까 그 정도는 뭐…….’
“너 밥 잘 안 먹는다며. 디저트만 먹고.”
업무를 처리하던 이안이 안경을 벗었다.
‘아니야! 밥도 잘 먹거든.’
예전과 비교하면 요즘은 그래도 꽤 먹는 편이었다. 밥보다 디저트를 더 많이 먹긴 했지만.
밥을 먹으려면 옛날 생각이 나서 그런지, 유독 먹기가 힘들었다.
그래도 음식 먹는 것 자체를 피했던 것보다 많이 나아진 것이 아닐까.
나는 슬쩍 그의 시선을 피했다.
‘……아마.’
“이러다가 충치 생기겠어.”
내 입을 벌린 그가 입안에 있는 이빨을 꼼꼼히 살폈다. 이빨을 꼼꼼히 살피는 모습이 치과 의사들이 충치가 생겼는지 안 생겼는지 살펴보는 모습이랑 다를 게 없었다.
“미야아아아.(놔.)”
야. 불편하다고!
눈이 가늘어진 내가 그를 째려봤다. 입이 벌어진 채로 말을 해서 발음이 새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나름 짜증 난 척 말했는데 말로 나온 목소리가 실실 웃는 목소리와 다를 게 없어서 심기가 불편해졌다.
카하악!
놔!
내가 그의 팔목을 파팍, 쳤다.
내 저항에도 굴하지 않고 꼼꼼히 내 구강 상태를 관찰한 이안이 단호하게 말했다.
“앞으로 디저트 금지야.”
‘이 나쁜……!’
내 눈이 저절로 도끼눈이 되어 그를 째려봤다. 디저트가 금지라니. 그럼 이 재미라곤 하나도 없고 부아만 치미는 집무실에서 무엇을 하면서 스트레스를 풀어야 하는가.
애벌레 인형을 때리는 것 말고는 할 게 없었다.
디저트가 금지됐다.
디저트가 금지됐어.
생각할수록 슬펐다.
쿠구구궁.
맑은 하늘인데도 불구하고 천둥 번개가 치는 것 같았다.
퍽. 퍼퍽.
갑자기 마음속에서 부아가 치밀어 오른 나는 내 앞발로 저번에 축제에서 사 온 이안을 닮은 애벌레 인형을 끌고 와 마구 때렸다. 얄밉게 혀를 내밀고 있는 게 보면 볼수록 저 얄미운 호랑이와 똑 닮았다.
죄 없는 애벌레 인형의 얼굴이 한순간에 찌그러졌다.
“저게 그 유명한 냥냥 펀치라고 하는 건가요?”
앨런이 일을 하다가 나를 빤히 바라보며 말했다. 다른 보좌관들도 신기한지 하던 일을 멈추고 나를 바라봤다. 집무실에 있는 모두가 나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뭘 봐. 인형 때리는 아기 고양이 처음 봐?’
나는 마음에 안 들어 고개를 쳐들고 모두를 째려봐 준 뒤, 다시 인형을 때렸다. 디저트가 없어지니 행복하던 세상이 다시 삐뚤게 보였다. 나에게 때늦은 사춘기가 온 게 분명하다.
“파괴력이 꽤 센데. 한 대 제대로 맞으면 발자국 모양으로 손등이 빨개지겠어.”
그가 처참하게 찌그러진 애벌레 인형을 눈에 담았다.
“그리고 아리엘, 그렇게 강철 같은 솜 주먹으로 때려서 애벌레 인형이 아프다는데.”
이안이 한 손으로는 느슨히 턱을 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애벌레 인형을 아리엘의 주먹으로부터 막아 주었다.
“이런. 애벌레 인형이 벌써 눈물까지 흘리고 계시는군요.”
“그렇지.”
그가 나를 쓰다듬으면서 답했다. 쓸데없이 그의 손에 갈라지는 털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마저 서류를 탁탁 정리한 이안이 유들유들하게 웃으며 한 마디 덧붙였다.
“그래도 기쁨의 눈물일 수도 있죠. 고양이님에게 맞으셨으니.”
“그럴 수도.”
‘저 인간들이 뭐 하는 거야…….’
애초에 인형이 어떻게 눈물을 흘리는데. 게다가 맞았는데 기쁨의 눈물이라니.
무슨 이상한 소리를.
야. 됐다. 됐어. 안 해. 이씨…….
나는 애벌레 인형을 때리는 것을 멈추고 앞에 있는 서류를 쳐다봤다.
‘델리온 비품 구매 청구 최종 결재서류……?’
델리온 상단은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이 카델리온 가문이 운영하는 상단이었다. 델리온 상단에서는 주로 마물에게서 나온 전리품으로 만들어진 각종 물건과 보석 등 여러 물품을 취급했다.
‘특히 마물의 부산물로 만든 것들이 유명하지.’
델리온 상단에서만 구할 수 있는 것이니까.
아리엘이 방석에서 일어나 이안의 책상으로 찬찬히 이동했다.
나는 서류를 앞발로 넘기며 빠르게 읽어내려갔다.
‘어? 여기 계산 이상한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