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 (16/111)

15.

항상 그렇듯이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의 하루하루가 바쁘고 빠르게 지나갔다.

땅거미가 어둑어둑하게 내려앉자 밤을 비추는 반딧불이처럼 도시에 있는 여러 조명이 하나둘 켜졌다. 도심을 비추던 빛이 햇빛에서 각종 화려한 조명들로 차츰차츰 바뀌었다.

‘와. 예쁘다.’

마차에서 며칠을 봐도 처음 보는 제대로 된 바깥 풍경은 너무나 예뻤다.

나는 창문에 코를 박고 마차 바깥의 광경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색색의 연등이 계속해서 하늘로 높이 올라갔는데, 그 모습이 밤하늘의 별들을 거꾸로 올라가는 것 같았다. 하늘로 계속해서 떠오르는 별똥별들을 보는 것 같은 느낌.

마차 밖에 있는 사람들은 활기차고 자유로웠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이라도 달려 나가 그들의 틈에 섞이고 싶을 정도로.

“위험해.”

이안이 내 목덜미를 잡고 창문에서 떨어뜨려 놓았다.

창문에 코를 박고 바깥 풍경을 보고 있던 나는 강제로 창문에게서 멀어져 미련이 뚝뚝 흘러넘치는 표정으로 창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창문에는 내 입김과 콧김으로 내 코가 닿은 부분 빼고 그 주변에 하얗게 김이 서려 있었다.

창문에게서 멀어져 고개를 숙이자 새까만 털로 뒤덮인 짧은 다리가 보였다.

괜히 밝은 저 바깥이랑 내 다리가 비교되었다.

내 털의 색깔은 모든 빛을 포용할 수 있는 바깥의 밤과 달리 칠흑처럼 깜깜했다. 그 어떠한 빛도 받아들일 수 없는, 모든 빛을 집어삼킬 것 같은 모습.

내 몸은 자연스럽게 그림자에 녹아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사람들이 왜 내가 불운 덩어리라고 하는지 알 것 같달까.

밝은 색색의 연등이 계속해서 떠오르는 밖이랑 참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또 새삼스레. 뭘.’

저 거리에서 보통 사람들과 같이 돌아다니는 내 모습을 그려 보았다. 어울리지 않았다.

‘어차피 저기에 가도 수인들이 싫어하겠지.’

저기 활기차게 야시장을 돌아다니는 수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자 입안에 쓴맛이 맴돌았다.

설렘 가득했던 눈은 낮게 가라앉은 지 오래였다.

‘나 내려 줘.’

내가 이안의 손바닥을 두 번 두들겼다. 그러나 나를 들고 있는 손바닥은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내려 줘.’

나는 다시 한번 그의 손을 두들겼다.

“저기 가고 싶어?”

이안이 내 발길을 무시한 채 비뚜름하게 웃으며 턱으로 창밖을 가리켰다.

‘아니. 괜찮아.’

나는 고개를 저었다. 축제에서 놀고는 싶었지만 혼자 저기를 돌아다니기엔 좋은 일이 생길 확률보다 좋지 않은 일이 생길 확률이 더 높았다.

주삿바늘이 몸에 들어온 이후부터 인간화 적응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무슨 수를 써도 인간화에 다시는 성공하지 못했다.

나는 먹을 갈아 넣은 것 같은 내 털을 다시 쳐다보았다.

‘어차피 이런 내 모습과는 어울리지도 않고.’

불운의 상징.

사람들이 나를 부르는 말이었다.

카델리온 가의 고용인들이 특이한 거지, 보통 사람들이 나를 보게 된다면 경멸의 눈빛을 보낼 것이 당연했다.

‘그런 경멸의 눈빛을 받으면서 산 것이 십수 년인데.’

호랑이의 집에서 호의호식하다 보니, 하고 싶은 게 많아졌나 보다.

신년회로 설렜던 마음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나는 다시 그의 손을 퍽퍽 쳤다.

‘내려 달라고.’

코끝이 시큰거리는 게 눈물이 막 나올 것만 같았다. 이미 내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할 수도.

나는 호랑이의 손을 두들겼다. 어서 빨리 바구니 안으로 들어가 방석에 얼굴을 박기 위해서.

하지만 이안은 날 내려 주지 않았다.

툭툭.

내가 그의 손을 다시 두드렸다.

앞이 흐릿해지고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안은 자신의 손에 엎드려 있는 아리엘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아리엘은 바구니 안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했는지 자신의 손에 고개를 파묻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손바닥에 차가운 물방울이 하나둘 떨어졌다.

눈물방울이 떨어지는데 어떤 흐느끼는 소리도 나지 않았다.

자세히 살펴보지도 않으면 우는지도 모를 것 같이 고양이가 조용히 숨죽여 울었다.

그가 가만히 떨어지는 눈물방울을 받으며 살짝 움찔거리는 까만색 솜뭉치를 바라봤다.

‘언제부터였지.’

오늘 아리엘은 여느 때보다 들뜬 상태로 돌아다녔다. 마차에 타고 나서도 창밖으로 시선을 떼지 않은 체 한참 동안 상기된 표정으로 밖에서 돌아다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밖으로 처음 나간 것 같은 반응이었다.

‘창문에서 얼굴을 떨어트리고 나서부터였나.’

그러던 중 갑자기 어느 순간 표정이 착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 표정 그대로 미동도 없이 자신의 다리를 쳐다보았다.

‘그 눈.’

그 어느 때보다 깊게 가라앉은 눈으로.

표정 변화가 다양한 솜뭉치였지만, 그런 표정은 처음이었다.

뭐라고 표현할 수 없이 무겁지만, 텅 빈 표정이었다.

굳이 비유하자면 이 세상을 거부하는 느낌이랄까.

신경을 아주 곤두세우고 있지 않으면 모를 정도의 미세한 페로몬도 축 가라앉았다.

혼자 속으로 땅굴을 파고 있을 것이 그 고양이의 마음속을 보지 않아도 보였다.

그녀의 표정과 그녀의 페로몬이 말해 주었으니까.

그녀를 좀 먹고 있을 생각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가만히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던 이안은 생전 하지도 않았던 화살 쏘는 척을 고양이에게 했다.

“팅.”

그에 앨런이 춤추는 말미잘을 보는 듯이 그를 쳐다보았으나, 턱짓으로 수심에 잠겨 있는 아기 고양이를 가리키니 금방 납득했다.

그리고 그 행동은 땅굴 좀 그만 파고 어서 밖으로 나오라는 이안의 작은 배려였다.

‘너 뭐 해…?’

이안의 손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나는 고개를 들어 황당한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눈물이 떨어졌는지 아직까지도 시야가 뿌옜다.

탕.

이안이 손가락으로 다시 화살 쏘는 척을 했다.

나는 어딘가 이상한 이안의 행동에 앨런을 돌아봤다.

‘쟤 왜 저래?’

‘죽은 척하십시오.’

앨런이 조용히 입만 뻐끔거리며 조언했다.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내가 콧잔등을 찡그렸다.

정말 완벽한 동문서답이었다.

나는 답을 구하기 위해 다시 앨런을 쳐다보았지만, 그의 입에서는 ‘죽은 척을 하십시오.’라는 대답밖에 들려오지 않았다.

‘…죽은 척을 하라고?’

앵무새처럼 똑같은 말만 계속 반복하는 앨런에, 오늘만큼은 이안의 가장 오래된 수하의 말을 따라보기로 했다.

물론, 전혀 믿음직하지는 않지만.

나는 한 박자 늦게 이안의 손바닥에 엎드려서 죽은 척을 했다.

‘됐어?’

나는 게슴츠레 실눈을 뜨고 이안을 바라봤다.

그리고 이안은 작게 눈을 뜨고 슬며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아리엘을 쳐다봤다.

죽을 척을 하는 저 고양이는 수심 깊게 생각하던 고민을 어느 정도 머릿속에서 지워 냈는지, 현재 가느스름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눈은 앨런과 비슷한 눈이었다.

마치 뛰어다니는 해삼을 보는 듯한 그런 눈.

그러나 이안은 그런 아리엘의 반응에 개의치 않았다. 그가 아리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똑똑하네. 역시 천재 고양이야.”

“그렇죠. 화살 쏘는 척에 죽은 척을 하는 고양이가 세상 어디에 있겠습니까.”

뛰어다니는 해삼을 보듯이 그를 보던 아리엘의 동공이 황당함에 의해 확장되었다. 그러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죽은 척해야 한다는 것이 기억이 났는지 황급히 눈을 다시 감았다.

“심지어 죽은 척하는 연기도 수준급이야.”

“맞습니다. 눈꺼풀 하나 떨리지 않고 고요하게 가만히 계시고 있지 않습니까.”

그때 아리엘의 눈꺼풀이 움찔, 떨렸다.

이안이 그런 아리엘을 못 본 척, 웃음을 꾹 참고 한마디 더 했다.

“배우가 될 자질을 갖췄나 보지. 아리엘에게 노래를 알려 줄 사람을 따로 붙여서 공연이라도 시켜야 하나.”

그러자 그건 싫은지 이안의 손바닥을 누르고 있던 그녀의 발에서 나오는 힘이 더 세졌다.

“아리엘, 자.”

이안이 힘들게 죽은 척하는 고양이에게 이안은 따로 챙겨 온 젤리를 건넸다.

젤리를 건네자 죽은 척할 때까지도 황당함으로 물들어 있던 표정이 환해졌다.

‘젤리…!’

“엎드려.”

아리엘이 재빨리 엎드렸다. 젤리를 얻기 위해서 이쯤이야. 황당무계한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죽은 척한다고 가만히 있기까지 했는데.

‘그 덕에 젤리를 얻긴 했지만.’

하지만 고개를 들라는 말이 들리질 않자, 내가 이안을 동그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젤리 안 줘…?’

그러자 이안이 다른 젤리를 아리엘의 입안에 넣어 주었다.

“왼손.”

“오른손.”

“앉아.”

“일어서.”

“박수”

…저 호랑이들이 신났는지 각종 이상한 것들을 나에게 시킨다. 내가 무슨 저쪽 동네의 개들인 줄 아나.

치욕스러움도 잠시, 내 입안으로 들어오는 젤리에 나는 그가 뒤이어 말하는 행동을 안 할 수 없었다.

‘아. 이런 게 조련당하는 건가.’

“반짝반짝.”

그때 위에서 이안의 목소리가 아닌 앨런의 목소리가 들렸다.

‘젤리도 없으면서.’

아리엘이 그의 목소리를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나는 도도한 고양이라고.’

…젤리에 그 도도함을 잠시 내려놓긴 했지만.

그런 둘의 모습을 본 이안이 조용히 승리자의 미소를 지었다.

“아리엘이 나 아니면 싫다잖아.”

어딘가 의기양양한 목소리였다.

뿌듯해하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그의 입에 걸린 미소는 검은 솜뭉치에게 박수를 받은 자가 받지 못한 자를 향해 짓는 미소였다.

“카델리온 가문이십니까.”

그렇게 정신없이 한참 놀다 보니, 수정궁 정문에서 신원을 확인하는 경비병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안이 슬쩍 마차 안에 있는 커튼을 들춰 그 경비병을 바라봤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경비병이 고꾸라지는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과하게 허리를 꺾으며 인사했다.

인사를 하고 난 경비병의 볼에 홍조가 돌았다.

“네. 넵! 신원 확인되셨습니다! 안녕히 들어가십시오! 이안 카델리온 님!”

우리는 그렇게 수정궁에 가기 위해 긴 줄을 기다리고 있는 마차들의 옆을 지나 다른 길로 빠져서 들어갔다.

들어가는 과정에서도 몇 가지 검문이 더 있었다. 수정궁에서 검문을 하고 있는 병사들은 이안의 얼굴을 보더니, 별말 없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선 안으로 들여 보내줬다. 물론 말을 하게 되면 모두 하나 같이 기합이 잔뜩 들어간 소리로 말을 했지만.

‘오. 이게 권력의 맛인가.’

권력은 굉장했다.

우리는 검문을 할 때 빼고는 그 어떤 기다림도 없이 수월하게 들어갔다.

옆에 까마득하게 많은 마차가 앞에 줄지어 기다리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마차들이 전진하는 속도는 굼벵이보다도 느렸다.

그에 반해 내가 타고 있는 마차는 빠른 속도로 그들을 지나갔고.

나는 이안의 손에서 내려와 작은 하얀색 바구니 안으로 폴짝 뛰어 들어갔다. 처음 가는 평기일 파티이다 보니 설렘으로 가슴이 두근두근 뛰었다.

단정하게 내린 앞머리와 제대로 안경을 착용했는지 한 번 확인한 그는 바구니 뚜껑을 열어 나를 바라보았다.

바구니에 들어가 있는 아리엘과 그의 눈이 마주치자, 그가 하얗고 조그만 바구니를 들었다.

‘…내가 제대로 잘 들어갔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건가.’

연회장에 가는데 하얀 정장에다가 하얀 바구니라니 객관적으로나 주관적으로나 참 안 어울리는 조합이었다. 애초에 연회장에 바구니를 들고 가는 것부터 이상하긴 했다.

일단 어디서 볼 수 없을 법한 조합이란 건 확실했다.

‘이제 곧 들어갈 거야.’

이안이 소곤거렸다.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시종이 큰소리로 외쳤다.

“얼음의 수호자, 이안 카델리온 님 입장하십니다!”

거대한 문이 열리고 이 파티의 주최자가 들어왔다.

순식간에 홀에 정적이 찾아왔고, 본격적인 평기일파티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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