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 (14/111)

13.

나는 들려오는 인사에 앞발을 흔들어 줬다.

‘안녕하세요.’

“어머. 이분이 그 고양이님이신가요? 너무 아름다우시네요. 영상구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더 깜찍하세요. 어떻게 지상에 있는 생물체가 이렇게 귀여우실 수 있으시지. 고양이님이 사랑스러운 수인 접으라 했을 때 이 행성이 반으로 접히겠어요.”

여인은 목소리랑 눈이 몽롱하게 풀린 채 나에게 물어봤다. 언뜻 광기가 보이는 것 같기도 한데, 내 착각이겠지?

옆에 서 있던 직원은 옅은 흥분으로 볼에 붉게 홍조가 떠오른 마담을 보고 자기 눈을 의심했다.

분명 그 누가 와도 아무 반응이 없이, 사무적으로 일하시는 분이셨는데.

‘누군가에게 흥미를 두시지 않는 줄 알았는데.’

근 10년, 아니 그 직원이 이곳에 일하기 시작했을 때를 통틀어서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사실, 헤일라는 크게 옷 만드는 것에 대해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헤일라에게 다른 영애들의 옷을 만드는 건 똑같은 과정의 연속이었다.

“사장님 세르디한 영애께서 드레스를 구매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 언제인지 잡아두렴.”

“플뢰르 영애의 드레스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 밑에 천을 덧대면 괜찮겠네.”

초창기, 아무도 그녀의 옷에 대해 모를 때 찾아와줬던 카델리온의 부인을 제외한 모든 주문은 똑같았다.

모두의 뮤즈라고 칭해지던 이안 카델리온도 똑같은 존재였다.

단지 ‘아, 더럽게 잘생겼구나’ 정도.

이안 카델리온으로 가주가 바뀐 후, 카델리온 가(家)에서는 정해진 때에만 옷을 주문했다.

“사장님, 카델리온 가에서 영상구와 함께 옷 주문 제작을 요청했습니다.”

“그래.”

‘아직 카델리온 가의 옷을 만들 때가 아닌데.’

태연한 대답과는 달리 그녀의 머릿속에서는 갖가지 의문이 맴돌았다.

현재 카델리온 가주가 바뀌었나. 아닐 텐데. 아직, 이안 카델리온이 가주직을 맡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그럼 카델리온 가문이 대체 왜?

그들이 왜 지금 주문 제작을 하고 왜 영상구를 요구하는 걸까.

‘이안 카델리온이 자기 얼굴 담긴 영상구를 보내줬을 리가 없고.’

그렇게 호기심에라도 보게 된 영상 속의 고양이는 너무…….

[아리엘 손.]

[이런. 아리엘, 뒷발을 내밀라고 하는 게 아니었는데.]

[아리엘 님이 같잖은 소리 하지 마시라는 듯한 눈빛을 보내고 있습니다만. 역시 도도한 고양이이십니다.]

사랑스러웠다.

[아리엘, 네가 잡고 있는 게 내 머리카락 아니야?]

[아리엘 님, 이안 님의 머리카락은 어디에 고아 먹으려고 뽑으신 겁니까.]

[마녀 고양이인가. 그러면 곤란한데. 고양이를 키울 생각은 있었지만, 마녀를 키울 생각은 없었는데.]

[이안 님, 아리엘 님이 말 같지 않은 소리 하지 마시라는 듯한 눈초리를 보내고 있습니다만.]

[어? 아리엘 내 머리카락 네 앞발에서 떨어지는데.]

[역시 고양이님, 머리카락 잡는 모습마저 너무 귀여우십니다.]

[마리 님께서 그런 말씀도 하실 수 있으신 존재셨습니까?]

그리고 신기했다.

‘어떻게 조그만 고양이가 앞에 있는 호랑이에게 기가 안 죽을 수 있는 거지.’

세상 그 누가 이안 카델리온의 머리카락을 잡아뽑고 그의 손에 발을 내밀겠는가.

그 순간, 헤일라의 머릿속에서 종소리가 울렸다.

자신의 작업실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혼자 영상을 보고 있던 헤일라는 문득 중얼거렸다.

“반해버린 것 같다.”

“……아니, 나 반해버렸다.”

오히려 호랑이를 하찮다는 듯이 대하는 그 모습이 너무 매력적이었다.

일어난 책상을 둘러보니, 자신도 모르게 끄적거리며 그려놓은 도안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그리고 그때, 깨달았다.

영상구로 본 고양이는 만에 하나 수인이든 그냥 길고양이든 그거에 상관없이 자신의 뮤즈라는 것을.

‘검은 고양이는 불운이 아니라, 행운의 상징이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 것이 뮤즈구나. 헤일라의 가슴이 벅차올랐다.

‘살다 살다 고양이를 뮤즈로….’

너무 좋았다.

“헤일라 님, 이 드…….”

“거기, 이 도안 당장 지금부터 제작하게 준비해둬.”

“그럼 나머지 주문은….”

“더 중요한 주문이 들어왔으니까, 이거 먼저 처리하고 진행하도록 해.”

그렇게 폭풍같이 디자인과 옷 제작 작업을 시작한 헤일라는 이 주일이 채 되지 않아 카델리온 응접실을 꽉 채울 정도의 옷을 만들 수 있었다.

‘어떡하지. 실물로 보니까 또 다르다.’

더 많은 의상을 만들고 싶은데.

응접실에 있는 이런 옷들보다 훨씬 더 좋은 옷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헤일라는 두근두근 설렘으로 뛰는 심장을 느꼈다.

“자기소개 먼저.”

소파에 기대 아리엘 옆에서 느른히 다리를 꼬고 그녀의 털을 쓰다듬고 있는 이안이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근데 털을 쓰다듬고 있는 분위기가 심각하게 나른했다. 얘 오늘따라 분위기가 왜 이러지. 어린아이들이 보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다.

‘…누가 이안 좀 재워야 할 것 같은데.’

흐트러져 있는 정장 차림으로 소파에 뒤로 기대 있는 것을 보니 퇴폐적이기까지 했다.

그러나 헤일라는 그런 이안은 보이지도 않는다는 듯이, 아리엘만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어머머머. 자기소개를 깜빡했군요. 고양이님이 워낙 귀여우셔야지. 저는 마담 헤일라라고 합니다.”

‘아. 헤일라.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이 보석과 드레스는 하나의 짝으로…….”

저번에 저택 구경을 하다가 총집사 할아버지께서 말씀하셨던 것이 머릿속에서 스쳐 지나갔다.

‘다이아 하나하나 장인들이 심혈을 기울여서 만든, 무슨 드레스를 선대 카델리온 가주 부인에게 만들어줬다 했나.’

“부티크, 세리안의 주인이죠.”

헤일라는 우아하게 치마를 들고 다리를 살짝 굽힌 채 허리를 숙였다. 그 모습이 고고하게 수면을 헤엄치는 우아한 백조 같았다.

인사를 마친 헤일라는 허리를 들고 나에게 찡긋했다.

“마담, 혹시 눈이 어딘가 안 좋다면 나중에 의원에게 가보도록 해.”

아리엘은 이안의 목소리를 배경음악으로 삼은 체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와. 너무 예뻐.’

마담 헤일라는 가시가 있는 장미 그 자체였다.

불타는 것 같이 강렬하게 구불거리는 긴 빨간색 머리.

게다가 신비한 적안은 사람을 매료시킬 것 같았다. 새까만 검은색과 검붉은 색을 적절히 조합한 치마 밑단에 장미가 수놓아진 드레스는 마담 헤일라의 화려한 매력을 더 돋보이게 만들어 줬다.

그 모습이 정말, 가시가 있는 걸 알면서도 아름다워 만질 수밖에 없는 장미랑 똑같았다.

특히 이안 앞에서 전혀 주눅이 들지 않는 게 보통이 아니었다.

나중에 크게 되실 언니가 분명하다. 원래 이쁘고 돈 많으면 다 언니다.

‘안녕하세요. 아리엘입니다. 아마 저 호랑이의,’

나는 이안을 힐끗 쳐다보곤 솜뭉치 다리로 나를 가르켰다.

‘반려동물…은 아니고 애완 고양이…… 일 거예요.’

나는 고개를 끄덕하고 짧은 솜뭉치 다리로 인사하는 것으로 마음속으로 하는 자기소개를 마쳤다.

인사를 받고 내가 자기소개를 한 것이 퍽 감격스러운지 그녀는 감격한 얼굴로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내게 시선이 붙박여 있었다. 그녀의 얼굴에 ‘어머나! 세상에 이런 일이!’라고 쓰여 있는 것 같았다.

그녀는 자신의 붉은 머리를 뒤로 쓸어넘겼다.

저 귀여운 고양이를 보자니 자신의 심장이 다 아파져 오는 것 같았다.

‘하긴, 이안 카델리온이 주워 올 정도면.’

사실, 영상으로 고양이의 행동들을 보았을 때 영특하고 귀엽다는 것을 느꼈지만 이토록 사랑스럽게 생겼을지는 몰랐다.

‘옷을 다시 만들고 싶은데.’

이렇게 보니, 심혈을 기울여 만든 자신의 옷이 어딘가 부족해 보였다.

보슬보슬한 털과 마른 편인 몸집. 그리고 특히 영롱한 저 연둣빛 눈은 사람을 빨아들이는 구석이 있었다.

최근 들어 운명 같은 만남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카드 점을 보았는데 그 운명 같은 만남이 이 만남인 것이 틀림없었다.

‘색다른 작업을 해 보고 싶었는데.’

앞에 있는 고양이의 깜찍함은 헤일라의 직업 정신을 더 불태우게 했다.

‘여태까지 수많은 손님을 접대해 보면서도 이런 기분은 느낀 적이 없었는데.’

“혹시 한 번 쓰다듬어봐도 될까요?”

“안돼.”

이안이 단호하게 헤일라의 말문을 끊었다.

‘나는 괜찮은데.’

너가 왜 안된다고 해.

내가 어이없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는 생글 웃었다.

“내가 데려왔잖아.”

거의 끌고 온 거잖아.

아리엘이 불퉁한 표정으로 이안의 손등 위에 올라가 장갑을 깨물었다.

그러자 이안이 아리엘이 있는 다른 쪽 손에 낀 까만 장갑을 벗고 자신의 손가락을 갖다 댔다.

“아리엘, 그런 거 먹지 말고 밥이나 잘 먹어. 건강에 안 좋아.”

‘원래도 가죽 안 먹어.’

고개를 들자, 이안의 손가락에 이빨 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래서 내 손가락은 맛있었고?”

‘뭔 소리….’

이빨 자국이 있는 이안의 손가락을 본 나는 헤일라 쪽으로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가죽이 더 맛있어, 내 손가락이 더 맛있어?”

‘둘 다 별로거든!’

“나는 아리엘의 자국이 있어서 좋은데.”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이안의 짓궂은 표정을 본 아리엘은 세모꼴로 눈을 치켜떴다. 그러자 이안과 아리엘의 대치 상황을 지켜보던 헤일라가 입을 열었다.

“오오-! 어쩜 좋지. 이 귀여움은 우주를 갈아 버릴 귀여움이세요.”

“저희 고양이는 천재 고양이입니다. 표정으로 욕도 하실 수 있으시니, 못하시는 것이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앨런은 뭐가 그렇게 자랑스러운지 가슴을 쫙 펴고 말했다.

‘도대체 표정으로 욕을 할 수 있다는 게 왜 모든 걸 잘한다는 것으로 연결되는 거지.’

그리고 표정으로 욕을 할 수 있다는 말은 칭찬인지, 욕인지도 모르겠고.

나는 저 말이 칭찬인지 욕인지 구분이 되지 않아 콧잔등을 찡그렸다.

분명 칭찬을 들었는데 뭔가 한 방 먹은 것 같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그치. 세기의 천재 고양이지.”

이안이 느릿하게 말했다.

방금 장난쳤던 목소리와는 달리 피곤함이 묻어 있는 노곤한 목소리였다.

‘사람이 저렇게 분위기가 휙휙 바뀔 수 있나.’

저러다가 누구든지 다 홀려 버릴 것 같았다.

제발 세계 평화를 위해서든 뭐든 누가 우리 이안 좀 재워 줬으면 좋겠다.

‘세기의 천재 고양이는 무슨.’

이상한 소리 하지 마.

방금까지 가죽이 맛있냐, 손가락이 더 맛있냐 물어봤으면서.

‘누가 얘 좀 재워야겠는걸.’

나는 졸려서 헛소리하는 이안에게서 고개를 돌려 마리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 뒤에서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마리를 보니 머리가 다 아파 왔다.

‘아이고 두(頭)야…….’

관자놀이가 찌르르 아파져 오는 것 같았다.

나는 내 앞발로 관자놀이를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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