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그렇게 그녀가 흔들리는 눈빛으로 총집사를 바라보고 있을 때, 그가 입을 열고 어딘가 들뜬 목소리로 저택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 카델리온 저택은 수인사의 생생한 증거지요. 저택 곳곳에 수인의 역사와 카델리온의 역사를 담고 있는 아름다운 건축물입니다. 이 저택의 고유한 미를 말하자면 끝이 없다고 할 수 있는데….”
끝이 없으면 넘어가도 좋을 텐데….
목 끝까지 차올랐던 말을 꾹 눌러 삼켰다.
‘그런 관광 가이드는 사양하고 싶은데….’
“허허. 말이 길어졌군요. 그럼 함께 둘러보실까요?”
저택을 구경하고 싶었던 나는 그렇게 울며 겨자 먹기로 원치 않았던 선생님과 함께 저택을 돌아다녔다.
‘와. 저택 엄청 넓네.’
가이드의 설명을 뒤로하고, 새로운 방들을 구경하는 거라니 뭔가 두근거렸다.
새로운 나들이를 떠나는 느낌이랄까.
기대감에 가슴이 몽글몽글 부풀었다.
여태까지 몇 주일 동안 저택에 와서 한 거라고는
“냐!!(마리, 슈 먹자!!)”
먹고.
“고양이님, 며칠 동안 주무셨어요.”
자고.
“미에오!!(마리, 물, 물 잠가야지!! 나 죽어.)”
씻고… 그 뒤는 내 프라이버시를 위해 생략하도록 하자.
하여튼 그러느라 저택 구경을 제대로 할 수도 없었다. 맨날 마리에게 안겨 갈 때도 내 생존을 위해 떨어지나 안 떨어지나 노심초사하며 바닥만 열심히 노려봤기에 주변에 무엇이 있는지 잘 알지도 못했다.
‘바닥 색깔이 어떤지는 누구보다 정확히 알지 않을까.’
저택을 본격적으로 둘러보면서 주위를 자세히 살펴보니 물건부터 시작해서 천장까지 저택 구석구석에서 장인의 손길이 묻어 나왔다.
솔직히 말해서 곳곳에서 돈의 향기가 느껴졌다. 물론, ‘이거 엄청 비싼 거예요!’ 하고 물건들이 외치진 않지만.
원래 정말 비싼 거는 자기가 비싸다고 외치지 않는다.
은근히 고아하고 예뻐 보이는 게 진짜 비싼 거지.
예뻐 보여서 오랫동안 쳐다보았던 것들이나 신기해서 만지작거렸던 것들은 죄다 장인이 제작한 작품들이었다.
‘오. 이거 이쁘다.’
“고양이님, 이것은 장인 미켈라 슈의 작품으로 약 3억 골드에 낙찰된 작품입니다. 이 작품에는 어떤 역사적 가치가 담겨 있냐면….”
‘우와. 여긴 드레스 룸인가? 이 옷 진짜 예쁘다.’
“이 드레스는 마담 헤일라의 역작들 중 하나로… 드레스에 별빛처럼 박혀 있는 다이아 하나하나 이름있는 장인이 다듬은 것이 드러나면서 화제를 몰았습니다. 이 드레스는 선대 가주 부인을 위해 만든 단 한 벌밖에 없는….”
‘오. 얘는 뭐지?’
“고양이님, 이 그릇은 장인 도르자스 기유의 작품으로… 도르자스 기유는 세기를 풍미한 천재이자…… 총 5억 골드 상당의 가치가….”
‘이거 신기하다!’
“역시 고양이님이십니다. 이 물빛 보석함은 가장 기술이 발전된…… 건축과 디자인의 거장 나무아 바나아와 에티아가 장인들이 합작한 작품으로… 대략 이바스 섬 하나 정도의 값으로 추정되며…….”
가격은 저택 하나를 호가하는 것이 수두룩했다.
어떤 거는 섬 하나 정도 되는 가격인 것들도 있었다.
그래, 여기가 카델리온 저택이란 걸 간과했다.
곰돌이 풍을 닮은 집사의 설명을 듣고 저택 하나 가격인 내가 들고 있는 그릇을 깰 뻔했지.
그 뒤론 앞발이 후들후들 떨려 고귀하신 저택에 있는 그 어떤 것도 만지지 못했다. 만졌다 하면 저택 한 채이니 만졌다가 스크래치라도 나면… 상상하기도 싫다. 아마 저것들은 현재 내 몸값보다도 훨씬 비싸지 않을까.
저걸 떨어뜨렸을 때의 불길한 미래를 추측하기도 싫었던 내가 걸으면서 고개를 부르르 떨었다.
‘알고 보니 설마 내가 지금 밟고 있는 바닥도 장인이 섬세하게 조각해 놓은 바닥인 거 아니야?’
설마. 아니겠지.
‘에이.’
내가 맨날 노려보던 바닥도 무슨 깊은 뜻이 있다던가. 나는 내가 맨날 노려보던 바닥을 꾹꾹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고양이님, 바닥에도 관심이 많으신가요? 보통 사람들은 주의 깊게 보지 않는 이런 사소한 것까지 관심을 두시다니, 정말 세심하시군요. 역시 평범한 보통 고양이가 아니신 것 같습니다.”
총 집사가 말을 이어 나갔다.
“이 바닥은 형태학적으로 완벽한 미를 자랑하며… 카델리온의 무구한 역사를…… 세르디한의 초대 가주께서 이 바닥을 보고…….”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그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그래. 바닥도 범상치 않았다.
‘카델리온의 역사를 담고 있다니. 바닥이 제일 중요한 거였어.’
나는 카델리온의 역사를 담고 있는 바닥을 매일 노려봤던 건가.
설명을 듣고 나니 이 바닥을 밟고 있던 내 발바닥이 황송스러워져 벌벌 떨렸다.
카델리온의 무구한 역사 어쩌고가 내 발밑에 있다니.
내가 세르디한 초대 가주께서도 감탄한 이 바닥을 내 발바닥으로 밟고 있네. 세르디한의 초대 가주가 밟았던 바닥과 똑같은 바닥을 내가 밟고 있는 거야.
‘카델리온의 무구한 역사를 내 발밑에 두는 이 기분.’
불안하다.
근데 우리 근본적인 의문을 가져 보자.
아니 애초에, 카델리온의 역사를 바닥에 왜 새기는 것이고, 세르디한 초대 가주는 또 왜 남의 저택 바닥을 보고 감탄하는 거야?
‘…보통 남의 집 가서 바닥 보고 감탄하나…?’
사자들도 나사 하나가 빠진 것이 틀림없었다.
‘앞으로 무조건 안겨 다니자. 저택에 있는 물건들이랑 바닥에는 얼씬도 안 하는 거야.’
‘무조건.’
나는 앞으로 마리에게 안겨 다니기로 조용히 속으로 다짐했다. 역시 안아 주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어. 걸어 다니다가 긁히기라도 하면, 카델리온의 유구한 역사를 담고 있는 바닥에 스크래치가 나는 거잖아.
저 비싼 것들을 갖고 있다가 깨버리거나 걸어 다니다가 망가뜨리니 차라리 맨날 내 목숨의 위협을 느끼면서 안겨 다니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이 저택에 보통의 사람들이 사용할 법한 게 하나는 있을까. 이곳 고용인들은 살 떨려서 이 저택을 어떻게 청소하고 관리할까.
‘나는 절대 못 해.’
하나라도 깨지면 돈만 깨지는 게 아니라 인생도 깨지는 거잖아.
설마 오x의 마법사에나 나올 것 같은 방 안에 있던 탑도 장인의 세기의 역작인 것은 아니겠지…?
문득 쓸데없는 궁금증이 들었다.
‘앞으로 그 탑에 다시는 안 올라가.’
또 새롭게 다짐했다.
‘옛말에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 말을 한 사람이 이 저택에 와서도 그 말을 할 수 있을까.’
이 집에 있는 돌다리는 두들겨 보고 건너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안전한지 확인하려고 돌다리를 두드렸다가 그 돌다리 부서지면 어떡해. 어쩌면 그것도 저택 한 채 값일 수도 있어.
차라리 그럴 바엔 내가 물에 빠지는 게 낫지.
‘나…… 여기 와서 뭐 깨 먹거나 부서뜨린 것 하나도 없지…?’
갑자기 내 지난 행적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그렇게 장식품 하나하나, 가구 하나하나 벽과 바닥 등의 고유한 가치와 그 유래, 그리고 어떤 장인이 무슨 정신으로 제작하였는지 등을 알려 주는 살 떨리는 방 투어는 마지막 방만을 남겨 두고 있었다.
물론 그 가격에 한 방 맞아서 나머지 설명은 잘 들어오지도 않았지만.
‘후- 이제 드디어 마지막….’
제발 이번 방에는 보기만 해도 벌벌 떨리는 송구스러운 물건들이 없었으면.
이쯤 되니 무슨 방인지 기대보단 걱정이 앞섰다.
벌컥-
‘이거 뭐야…?’
앞을 보니 이안 카델리온이 의자에 앉아 나를 향해 살랑살랑 손을 흔들며 상큼하게 웃고 있었다.
그 주위에는 보좌관들이 다크서클을 볼까지 매달고 있었다.
단연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건 이안의 테이블 옆쪽에 있는 핫 핑크색 쿠션이었다.
딱 내가 누울 수 있을 만한 정도의 크기인.
‘너희가 왜 거기서 나와…?’
내 표정이 급격하게 썩어들어갔다.
저건 환상의 방일까? 아무래도 내가 잘못 보고 있는 게 틀림없는 게 분명했다. 저기 안에 있는 환상에 관련된 물건이 있음이 확실했다.
‘역시 수인이 어떤 부분에서는 인간보다 더 발달해 있다더니 사실인가 봐.’
환상까지 만들어 낼 수 있다니. 그게 설사 믿고 싶지 않은 환상이라지만.
‘근데 저거 환상 아닌 거 아니야?’
환상 아닌 것 같은데.
‘환상이라기엔 너무 진짜 같아.’
아. 저건 환상이 아니다. 현실이다.
상황 파악을 끝마친 나는 그 자리에서 돌처럼 굳었다.
이안 카델리온, 저 백호의 얼굴에서 빛이 나잖아. 살짝 흐트러진 상태로 반짝이는 은발이며 날카로운 턱선이 신비한 푸른 빛 눈동자까지. 천사가 강림이라도 한 건지 보기 싫은 비현실적인 외모가 현실과 아주 똑같았다. 환상이었으면 저 얼굴에 빛이 났겠어? 안 났겠지.
문을 여니-물론 내가 연 것은 아니지만- 나타난 송구스러운 물건이 아닌 얼굴에 고개를 돌렸다.
‘나는 아무것도 못 봤다.’
고개를 돌려 현실을 외면한 나는 최선을 다해 방으로부터 가장 멀리 있는 곳을 향해 달렸다.
‘아, 바닥에 스크래치 나면 안 돼!!’
그렇게 털을 휘날리면서 달리며 바닥에 스크래치 하나 남지 않도록 사뿐사뿐 발을 옮겼다.
“푸하하하하.”
방 안에서 엄청 큰 웃음소리가 들렸다.
“앨런.”
검은색 솜뭉치가 빠르게 뛰어가는 것을 본 이안이 말했다.
“네. 이안 님.”
“너가 여기서 어떻게 해야 할까?”
“설마 저 고양이님을 잡아 오라는 겁니까?”
다 알면서 왜 묻냐는 듯, 그가 눈꼬리를 살포시 접어 올렸다.
“설마, 그런 겁니까…? 잡아 오면 저 고양이님께서 저를 가만히 내버려 두시지 않을 텐데요. 저는 미움받고 싶지 않습니다. 예쁨 받는 거면 모를까.”
앨런이 울상을 한 채 말을 이어 갔다.
물론 그것이 퍽 과장되어 슬픈 느낌은 전혀 나지 않았지만.
“저 달리기 보세요. 얼마나 빠르십니까.”
“그래. 거의 말 수인 급으로 빠르네. 아니면 치타 급으로 빠르려나.”
이안이 생글생글 웃으면서 만년필을 빙빙 돌렸다.
한 번만 더 입을 놀리면 저 만년필이 자신의 머리에 박힐 거라고 보좌관 생활 10년 차의 직감이 경고를 보냈다.
그건 개 같은 상사를 두고 있는 직장인의 노련한 생존 본능이었다.
물론, 여태까지 날아간 만년필들은 모두 앨런의 뛰어난 반사 신경으로 다 피했지만.
앞으로 날아올 모든 만년필을 그의 반사 신경으로 다 피할 수 있다고 장담하기는 어려웠다.
그리고 저 만년필에 맞게 되면 최소한 두개골에 구멍 뚫리는 것은 자명했다.
‘그런 위험을 감수할 바에는 차라리 그냥 갔다 오지.’
앨런이 가볍게 한숨을 쉬곤 사라졌다.
“이거 성과급으로 달아 주십시오. 안 달아 주시면 사직서 낼 겁니다.”
팔랑거리는 이안의 손이 대답을 대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