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6. (7/111)

6.

“먀옹!”

‘마리!’

“안녕히 주무셨어요?”

‘응!’

나는 쿠션에 앉아 앞발을 흔들며 마리의 인사를 받았다. 차갑고 이성적일 것 같은 느낌을 풍겼던 마리는 예상과는 다르게 감정 표현이 풍부했다. 아마도.

악의 가득한 얼굴들만 보다가 무덤덤한 얼굴을 봐서 그녀의 표정 변화가 크게 느껴지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일주일 동안 이곳에서 지내면서 저택에 있는 여러 수인이랑 친해졌는데, 그중 가장 먼저 친해진 것이 마리였다. 마리가 내 전속 시녀이니 당연한 얘기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귀여우시군요.”

‘칭찬 고마워.’

나는 마리의 손에 대고 갸르릉거렸다.

마리도 기쁜 듯 나를 다정하게 바라보며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몇 번 내 털을 어루만지던 그녀가 방석 앞에 손바닥을 올려놓았다.

내가 그녀의 손에 대롱대롱 매달리는 것을 무서워한다는 것을 알게 된 마리는 이제 자신의 손바닥에 나를 올려 드는 것으로 방식을 바꾸었다.

덕분에 나는 누구의 손아귀에 매달리는 끔찍한 경험을 다시 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녀의 손바닥을 한 번 쳐다본 나는 익숙하게 그 위로 폴짝 올라갔다.

손바닥에 올라간 상태로 들어 올려지는 것은 마치 유리로 되어 있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느낌이라 딱히 무섭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잡아 들어 올려지는 것이 무서웠던 거지, 높은 곳이 무서웠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유리로 만들어진 엘리베이터와 달리 사방이 뚫려 있다는 게 문제긴 하지만.

끽하면 사망행이지, 뭐.

처음 저택에 왔을 때와 다르게 딱히 무섭지 않았다.

“고양이님, 오늘도 정원 산책하시게요?”

‘응응.’

저번에 못 찾은 개구멍 찾아야지.

제정신으로 있을 수 있게 된 첫날부터 나는 이 방과 정원을 샅샅이 수색하며 개구멍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떻게 된 게 방에 구멍 하나 없었다.

…원래 방에는 구멍이 없나? 하긴, 구멍이 있으면 이 저택을 지은 사람의 목이 날아갔겠구나. 아니면 저택을 관리하는 사람의 목이 날아갔으려나, 아무튼.

내가 그녀의 손바닥 위에 올라가자 그녀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손바닥을 들어 올려 방 밖으로 나갔다.

허둥지둥하던 처음을 생각하면 장족의 발전이었다. 마리가 손바닥을 실수로 기울였을 때는 정말 추락사로 죽는 줄 알았다. 그 짧디짧은 순간에 얼마나 많은 순간이 스쳐 가는지.

여하튼 방에는 개구멍이 안타깝게도 없는 관계로, 요즘 나는 방에서 개구멍 찾기를 포기하고 정원을 산책 중이다. 정확히 말하면, 정원에 있는 개구멍을 찾고 있는 것이지만.

앞으로의 내 편한 인생을 위해 개구멍 정도는 알아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인생이란 원래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거니까.’

위험할 것 같으면 튀어야지.

“고양이님, 오늘은 슈 어떠신가요?”

마리가 나를 들어 올린 상태로 조용히 속삭였다.

‘응. 완전 좋아.’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여튼 절대 먹고 노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엄연히 내 앞길을 위해 위대한 일(개구멍 찾기)을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상태 그대로 생활하면, 돈 많은 백수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날 이곳으로 데려온 백호의 애완 고양이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하루 3끼 꼬박꼬박 먹고, 간식도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심심할 때는 산책하러 나가면 되고.

게다가 주인은 찾지도 않는다.

오. 이거 생각해 보니깐 괜찮은데.

이것보다 꿀 직업이 있으려나? 없을 것 같은데.

“여기다가 깔게요.”

‘응!’

나는 풋풋한 풀 내음을 맡으며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양이님.”

어디에서 부르는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가까이에서 누군가 나를 불렀다.

나는 고개를 돌려 두리번 두리번거렸다. 아무도 없는데?

근처에는 마리를 제외한 수인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갑자기 수풀이 흔들리는 일도 있지 않았다.

하긴 정상적인 고용인이면 수풀들 사이에 왜 숨어 있겠어. 개구멍 넘어갈 때나 수풀 사이에 몸을 욱여넣는 거지.

그때 내 머리 위 나무에서 검은색 물체가 휙 하고 떨어졌다.

‘악!’

깜짝 놀란 정신을 달래고 앞을 보자, 검은색 옷을 입은 남자가 내 앞에 서 있었다.

아니, 그렇게 사람이 불쑥불쑥 갑자기 튀어나와도 되는 거야?

나는 삽과 나뭇가지를 다듬을 때 사용하는 가위를 들고 있는 남자를 올려다보았다.

…근데 보통 사용인들은 나무 위에서 뛰어내리기도 하고 그런가.

분명 시몬드 가문에 있는 사용인들은 나무 위에 올라가지 않았는데. 하하. 시몬드 가문이 잘못된 걸까…?

‘…아니면 내가 알지 못하는 지역 차이?’

새삼 다양한 수인들이 많다는 것을 다시 깨닫는다.

‘마리, 저 사람 누구야?’

나는 의문을 품은 눈빛으로 마리를 쳐다보자, 그녀는 이런 일이 익숙한 듯, 빙그레 웃으며 바로 답했다.

“정원사예요.”

남자는 어딘가를 보고 순간 흠칫하더니, 다시 고개를 돌리고 또 화들짝 놀랐다.

조금 전에 한 자신의 행동이 이상하게 보인다는 것을 알았는지, 그가 멋쩍게 웃으면서 뒷머리를 긁었다.

“네. 정원사입니다. 하하.”

그렇구나. 누가 봐도 뛰어내리는 폼이 보통 정원사 같지는 않았는데…….

내 착각이겠지.

‘하긴, 마리의 메이드 복도 까만색인 것을 보면, 정원사의 옷도 까만색일 수도 있겠다.’

나는 나름대로 생각의 정리를 마치고 그 정원사를 다시 보았다.

“고양이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안녕하세요.’

나는 앞발을 흔들며 인사했다. 그에 정원사가 가위를 꽉 움켜쥐자, 가위가 다물어지면서 사이에 걸려 있던 나뭇가지가 툭, 하고 떨어졌다.

“혹시 제 선물을 받아 주실 수 있으시나요?”

‘뭔 선물?’

내가 기대에 찬 눈빛으로 정원사를 쳐다보았다.

나에게서 긍정의 눈빛을 읽은 그가 나에게 다가오더니, 내 머리에 꽃을 얹어 주었다.

머리에 꽃을 얹은 고양이의 모습을 마리가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고양이님 머리에 꽃 꽂으셨네요.”

마리… 뭔가 말이 이상하잖아….

나는 미묘한 표정으로 마리를 바라봤다.

분명 마리의 표정에서 악감정은 안 보이니 비유적인 표현으로 말한 것은 아닌 것 같은 게 다행이랄까.

“그러게요. 머리에 꽃을 꽂으셨네요. 너무 귀여우십니다.”

정원사가 진지한 표정으로 박수를 쳤다.

아니, 둘이 진지하게 내 머리에 꽃 꽂았다고 말하지 말아 줄래…? 아무리 생각해도 뭔가 이상하거든. 잘못 들으면 이상하게 해석될 수도 있어.

엄연히 말하면 나는 꽃을 머리에 얹은 거라고.

나는 제발 다른 수인들이 나를 정신 나간 사람으로 오해하지 않길 빌었다. 비유적인 표현이 절대 아니고 머리에 실제로 꽃을 얹은 것뿐인데.

이상하게 오해하면 곤란하다.

나는 이안의 관심을 끌지 않고 조용히 살다가 인간이 되어서 나오고 싶었다.

“고양이님. 어떡하죠? 제 심장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아요.”

마리가 진지하게 얼굴을 굳힌 채 나를 쳐다보았다.

곧 심장이 남아나지 않을 것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지을 법한 진지한 표정이었다.

마리야. 그런 말 진지한 표정으로 하지 말아 줘.

마리가 표정 하나 안 바뀌고 진지한 표정으로 저런 말을 하는 건 봐도 봐도 정말 적응이 되지 않는다.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그녀에게서 나는 고개를 돌려 외면했다.

‘미안. 아무리 마리라도 심장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다는 말을 정색한 표정으로 하는 것은 받아줄 수 없어.’

나는 꼬리를 내 몸에 감싼 상태로 돗자리 위에 앉았다.

“고양이님….”

“고양님….”

그러자 뭐라도 해주길 기대하는 것처럼, 정원사와 마리의 초롱초롱한 두 쌍의 시선이 나에게로 날아와 박혔다.

그래. 다른 사람으로부터 무언가를 받으면 답례를 하는 게 당연한 도리긴 하지.

‘근데 해 줄 게 없는데…?’

지금 이 고양이 몸으로는 정원에 있는 꽃을 갖다가 화관을 만들어 줄 수도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정원에 있는 꽃을 꺾기도 뭐하고.

‘그냥 이 꽃을 머리에 올린 상태로 돌아다니는 걸 보고 싶은 건가…?’

원래 선물을 해 준 사람은 선물 받은 사람이 그 선물을 어떻게 쓰고 있는지 보고 싶은 법이었다.

솔직히 결론이 왜 그리 튄 건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머리에 꽃 꽂고 열심히 정원 돌아다녀 주면 되나?’

나는 내 짧은 다리를 쭉 편 상태로 런웨이 하듯이 한 발 한 발 내디뎠다.

마치 우아한 고양이가 걸어 나가는 것처럼.

보아라. 이것이 캣워크다.

‘오. 이거 하다 보니 재밌는데?’

이거 은근 중독성 있다.

왠지 과몰입하니 모델이 된 것 같기도 하고. 다리를 쭉쭉 펴다 보니 정말 우아한 고양이 한 마리가 된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나는 모델 역할에 심취해서 저택 정원을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하지만 실상은 조그마한 솜뭉치가 머리에 꽃을 꽂고 우아한 척하면서 짧은 다리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모습이었다.

마리는 흐뭇하게 아기 고양이님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처음에 꾸벅꾸벅 조시거나 주무시기만 하던 우리 고양이님이 드디어 정원에서 스스로 산책을…!’

그녀의 가슴속에서 뿌듯함이 벅차 올라왔다.

마리가 달라진 고양이의 모습에 뿌듯함을 느끼고 있을 때, 곳곳에서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가 또 났어.’

신나게 걸어 다니던 나는 곳곳에서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식겁한 상태로 주위를 두리번 두리번거렸다.

“아… 너무 귀여워서 깨물어 버리고 싶다.”

저편에서 몽롱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확… 잡아먹어 버릴까…?”

“저택을 부숴 버리자… 그래. 저택을 부수자….”

사르륵-

수풀들이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차자장-!

공교롭게도 그 타이밍에 저택의 창문이 깨지더니, 벽면 일부분에 금이 갔다.

나는 아연한 상태로 그 자리에서 입을 벌리고 망부석처럼 멈춰 서 있었다.

툭.

내 머리 위에 올려져 있던 꽃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저거 뭐야….’

‘저택을 부순다고 하더니 정말 저택이 부서졌어… 이게 가능한 일이야…?’

‘몰라….’

나는 혼자서 마음속에서 자문자답하고 결론을 내렸다.

“먀아…….”

엄마아…. 여기 다 이상해….

***

시간 가는지 모르고 머리에 꽃을 꽂은 상태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늦게까지 놀다가 방으로 돌아갔다. 정원사와 마리랑 같이 있는 것은 생각보다 즐거운 일이었다.

‘나에게 호의적인 수인이랑 같이 있었던 게 행복했던 것일 수도 있고.’

여태까지 만난 카델리온 저택의 고용인들은 모두 눈에 보일 정도로 나에게 호의적이었다.

‘도대체 나한테 왜 호의적인 걸까.’

나는 삐죽 튀어나와 있는 방석을 발로 잡아 뜯었다.

추운 밖에서 놀다가 따뜻한 방에 들어오니, 온몸이 노곤했다.

고양이 집이라고 추정되는 곳 안에서 추욱 늘어진 상태로 있으니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그리고 고양이 집은 안락했다.

딱 내가 들어가면 알맞은 정도.

꼬르르륵-.

이 와중에 내 배는 제 할 일을 열심히 수행 중이었다.

먹은 지 얼마 됐다고 배가 고프냐.

“냥!”

‘초콜릿 쿠키!’

나는 테이블에 있는 쿠키를 발견했다. 역시 당 떨어질 때는 초콜릿 쿠키가 최고지.

나는 무거운 발걸음을 질질 끌고 쿠키가 있는 곳으로 갔다.

‘아… 나한테 염력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왜 저 초콜릿 쿠키는 테이블 위에 있는 거지.’

어차피 한 개도 다 못 먹을 텐데. 한 입도 못 먹을 수도.

‘아. 그래도 한 입 정도는 먹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처음 저택에 와서 무언가를 먹으려고 하다가 헛구역질을 계속하고 손 까딱도 못 한 채 쓰러진 기억이 떠올랐다. 강인한 의지로 맛있는 걸 먹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한 끝에, 며칠이 지난 지금은 쓰러지지는 않았다.

세상만사가 귀찮았다.

하지만 아무리 몸이 노곤하고 무겁다고 해도 배가 고프면 잠이 안 오는 법.

나는 간식을 먹었던 여느 때처럼 힘겹게 테이블 위에 올라가 주인 없는 쿠키를 오독오독 씹어 먹으려고 했다.

“도둑고양이네.”

그때 방 안에서 짓궂은 목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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