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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O. (1/111)

PRO.

사아아아-

한겨울임에도 불구하고 저택 개구멍에서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칼을 든 호랑이 수인과 꽃을 문 새끼 고양이의 기묘한 대치 상황.

새끼 고양이에게 무기라고는 입에 물고 있는 꽃밖에 없었으나, 그 기세만큼은 앞에 있는 호랑이 못지않았다.

현재 선뜩한 은색 날붙이를 들고 있는 이안 카델리온을 보고도 아기 고양이는 전혀 쫄지 않은 듯, 그를 노려보았다.

그렇게 살벌한 긴장감을 내뿜으며 서로를 노려본 지도 벌써 15분이 되어갔다.

고양이는 중간중간 꽃을 활용한 괴상한 동작을 선보이며 자신의 존재감을 점점 키워 나갔다.

그런 아기 고양이에게서 나중에 크게 될 싹이 보였다.

그들 사이에서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수하들은 안 보는 척, 힐끔힐끔 그 광경을 지켜봤다.

저 정도 담력이면 주군의 전속 보좌관 앨런 님을 넘어선 것이 분명하리라.

유일하게 이안 님께 깐족거릴 수 있는 분인 앨런 님은 심장이 여러 개라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을 정도였다.

그를 넘어선 정도라면…

‘저 아기 고양이님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어떻게 주군의 눈을 저렇게 똑바로 바라볼 수 있는 것인지.

그들은 자괴감과 경외심을 동시에 느꼈다.

훗날 역사에 큰 획을 그을 인물임이 분명했다.

그렇게 미묘하고 박진감 넘치는 대치가 한참 동안 계속됐다.

그러던 중, 갑자기 들려오는 자그만 한숨으로 대치상황이 깨졌다.

한숨과 함께 고양이는 선심 쓴다는 듯 자신이 물고 있던 꽃을 내려놨다.

수하들은 주군의 검정 구두 위에 떨어진 빨간 꽃을 조마조마하게 바라보았다.

‘오다 주웠다…?’

얼굴에 귀찮음이 덕지덕지 붙어 있는 상태로 가만히 앉아 꼬리를 탁탁 흔드는 것이….

‘아. 이제 꺼져라. 이런 건가…?’

수하들은 한 번, 두 번, 세 번 눈을 다시 껌뻑이고 그 광경을 다시 쳐다봤다.

암만 여러 번을 깜빡이고 다시 봐도 이건 ‘오다 주웠다.’라고 하는 것이 확실했다.

주군께 ‘오다 주웠다.’라니.

평소였으면 상상하지도 못했을 장면에 그들은 기겁했다.

‘맹랑한 고양이네.’

이안은 그 뻔뻔한 모습에 속으로 헛웃음을 뱉었다.

보통은 상대가 칼을 들고 있으면 긴장하거나 움츠러들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 새끼 고양이는 처음부터 그런 모습 따위 보이지 않았다.

봐라.

피 묻은 칼 따위는 보이지도 않다는 듯이 떳떳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있는 저 모습.

심지어 눈까지 똑바로 마주치면서.

보통 평범한 고양이는 아니었다.

‘또 꽃까지 주는 건 무슨 경우인지.’

흥미가 생긴 이안은 구두에 있는 꽃을 주워 이리저리 돌려봤다.

밑에서 살려 줄 거냐고 묻는 제법 따가운 눈초리가 느껴졌다.

그는 이리 빙글 저리 빙글 여유롭게 꽃을 돌렸다.

끈질기게 따라오는 시선에 이안이 입을 열었다.

“살려 줄게.”

그러자 조그만 털 뭉치는 씩 웃으며 앞발을 흔들고 인사까지 하는 여유까지 선보였다.

그 표정에서는 엄청난 성취감과 뿌듯함을 엿볼 수 있었다.

마치 세기의 천재와의 대결에서 승리를 거머쥔 것처럼.

개구멍으로 나가는 그 표정은 당당하게 쟁취한 자의 것이었다.

그런데 표정과는 다르게 개구멍을 향해 뛰어가는 그 모습만큼은 필사적이었다.

‘그렇게 달려도 크게 달라지는 건 없는데.’

이안은 열심히 구멍을 향해 바삐 움직이는 검은 솜뭉치를 보며 이유 모를 패배감을 느꼈다.

그가 저도 모르게 그 솜뭉치를 붙잡았다.

퍽퍽. 퍼벅.

그러자 부푼 솜뭉치가 그의 손을 힘차게 때렸다.

그가 솜뭉치를 공중에다가 들어올리자 짧은 다리들이 이리저리 휙휙 거리며 움직였다.

그중에는 제법 폼 잡힌 가상한 발차기들도 있었다.

도대체 고양이에게 발차기를 연습할 시간은 어디 있었는지, 한두 번 차 본 것이 아닌 솜씨였다.

그렇게 몇 번을 휙휙거리던 아기 고양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상태로 눈을 치켜떴다.

마치 상대에게 지는 모습을 보이기 싫다는 듯이.

그는 아기 고양이를 들어 올리면서 고양이에게 묻어 있는 물기를 닦아 냈다.

꽃을 주는 행동부터 당돌한 이 모습까지 어딘가 상당히 만족스러워 이안은 눈꼬리를 휘며 충동적으로 말했다.

“얘도 데려간다.”

이제껏 흥미진진하게 모든 장면을 지켜봤던 수하들은 그의 결정에 어떤 의문도 갖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 정도 배짱을 가진 고양이님이시라면 모셔갈 만도….’

그가 데려가겠다고 하자마자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떨어뜨릴 것 같던 아기 고양이가 그를 째려보았다.

어느새 눈물이 증발하기라도 한 건지, 그렁그렁했던 눈은 물기 하나 없었다.

그렇게 노려보면서도, 그가 자신을 손바닥에 얹자 금방 편안한 자세를 취하는 것이 범상치 않았다.

상대방을 안심시킨 후 반격을 준비하시는 걸까.

수하들이 모두 긴장한 채 고양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모두가 흥미진진하게 아기 고양이를 바라보고 있는데,

‘…드르렁…푸우….’

어디선가 코 고는 소리가 고르게 들렸다.

언제 곯아떨어졌는지,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이안의 손바닥 위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일정한 박자에 맞춰서 오르락내리락하는 아기 고양이의 조그만 몸통으로 향했다.

…역시 보통 분이 아니신 게 분명하다. 전생에 대륙 통일이라도 하셨던 걸까.

그 광경을 본 수하는 다시 한번 경외심에 잠기며 조용히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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