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_소동
“지금 도성에 호랑이가 출몰하였다 하였는가?”
“송구하옵니다, 전하. 호랑이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출몰하니 백성들이 두려움에 집 밖을 나서기조차 꺼리고 있사옵니다.”
“밤이 아니라, 벌건 대낮에도 호랑이가 출몰한단 말인가?”
“송구하옵니다, 전하. 소신을 벌하여 주시옵소서.”
고개를 조아리고 선 착호장(착호갑사의 수장)의 얼굴이 흙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이틀째, 민가를 발칵 뒤집어 놓은 호랑이의 그림자도 발견하지 못하다니. 자신의 무능을 탓하는 착호장은 감히 왕 앞에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예, 전하. 이는 군의 기강을 바로잡지 못하여 경계를 느슨하게 한 착호장의 책임이 크옵니다. 착호장을 파직하시고, 새로운 착호장을 임명하여 당장 호랑이를 포획하도록 명하여 주시옵소서.”
대신들의 고하는 소리에 도운은 잠시 고민하였다. 밤이 아니라, 낮에도 호랑이가 출몰한다는 말이 심히 거슬렸다. 봄이라 산에 먹이가 모자란 것도 아닐 텐데, 굳이 위험을 무릅쓰고 호랑이가 민가에 출몰할 일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이번 일은 산의 경계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여, 산에 살아야 할 산짐승이 민가로 내려오게 한 착호장의 책임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아직 호랑이에게 당하여 부상을 입은 자가 없고, 착호장만큼 호랑이를 능히 알고 다룰 수 있는 자가 없으니, 그에게 한 번의 기회를 더 주어 호랑이의 종적을 찾도록 하는 것이 옳을 것이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착호장은 민가에 호랑이를 잘 아는 사냥꾼이 있거든 그들의 도움도 주저 없이 받도록 하라. 하루빨리 호랑이를 포획하여 백성들의 시름을 덜게 하고, 그들의 안전을 책임지는 것이 그대의 임무인 것을 항시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성은이 망극하나이다, 전하.”
하지만 그 후로도 며칠째 계속된 호랑이 출몰로 궁 안팎이 소란스러웠다. 착호장이 이끄는 착호갑사(범을 잡기 위하여 배치하던 군사)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신출귀몰한 호랑이는 도성 곳곳에 모습을 드러내며 백성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였다. 그리고 그것은 궁의 사람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착호갑사를 이리저리 따돌리는 신출귀몰한 호랑이에 관한 이야기는 부풀리고 부풀려져 풍문처럼 떠돌았다. 궁의 높은 담장 정도는 단번에 뛰어넘는 무시무시한 괴력과 사람을 홀리는 여우 같은 능력을 가진 호랑이 이야기에 궁인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당장이라도 호랑이가 궁 담장을 넘어와 자신들을 물어 가면 어찌하나, 어린 생각시들과 나이 어린 나인들의 동요가 특히 컸다. 저희들끼리 삼삼오오 모여 걱정하는 호랑이 이야기를 우연히 들은 영의 오동통한 뺨이 걱정으로 우물거렸다.
“청아.”
“예, 저하.”
“호랑이가 무서운 거야?”
“저하, 어찌 그것을 물으시옵니까?”
아이의 동그랗게 빛나는 눈에 알 수 없는 그림자가 서렸다. 영은 한참 골똘한 표정으로 청을 바라보다 천천히 대답 했다.
“내관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아직 나이 어린 영의 혀 짧은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던 청이 익살맞은 미소를 지었다.
“예, 저하. 호랑이는 아주 무서운 것이옵니다.”
“청이 너는, 본적이 있느냐?”
“호랑이 말씀이시옵니까?”
“응.”
호기심에 가득한 눈동자가 청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보았지요.”
“어찌 생겼어? 무서워?”
“예, 무섭지요. 호랑이는 저 높은 산을 다스리는 맹수 중에 맹수이옵니다. 저하께서 개를 본 적이 있으시지요? 호랑이는 개처럼 네발로 걸으며, 그 크기가 황소만 하여 장성한 사내의 가슴까지 닿지요. 허나 그것이 뒷발로 이렇게 사람마냥 일어서면, 그 크기는 사내의 키를 훌쩍 넘어가 버리는 것이옵니다.”
“참말?”
“예, 참말이옵지요. 온몸에는 노란 털이 수북이 덮여있고, 먹물로 그려 넣은 것만 같은 검은 줄무늬가 온몸에 퍼져 있습니다. 길고 날카로운 발톱이 할퀴는 힘이 얼마나 장한지, 그 커다란 발로 이렇게 한번 할퀴면 나무토막도 움푹 패어버릴 정도로 강하옵니다. 그리고 그것의 이빨이 어찌나 크고 뾰족한지, 천둥과 같은 울음소리를 울리는 그것에게 한번 물리면 살아날 수가 없습니다.”
손을 들어 할퀴는 흉내를 내고 입을 크게 벌려 ‘앙’ 무는 흉내까지 내며 무섭게 설명하는 청의 모습에, 어린 영의 눈썹이 가운데로 한껏 모여들었다.
“그럼 음, 백성들이 죽으면, 어쩌나?”
눈썹을 모으고 걱정하는 아직 어린 저하의 모습에 청은 고개를 살며시 흔들었다.
“그런 걱정은 하지 마시옵소서. 전하께서 백성들을 보호해 주실 것이옵니다.”
“아바마마께서?”
“예, 저하. 전하께서는 누구보다 용맹하신 분이시옵니다. 호랑이가 아무리 무섭다 하나, 전하께는 상대가 되질 않습니다. 그러니 전하께서 곧 호랑이를 잡으시어 저하와 백성들을 보호해 주실 것이옵니다.”
“어마마마도?”
“아무렴요.”
“할마마마도?”
“예에, 그러하옵니다.”
“그럼, 청이 너도?”
“예, 소인도 전하께서 보호해 주실 것이옵니다. 허니 걱정을 마시옵소서.”
“으음.”
여전히 걱정이 가시질 않는 것인지, 솜털 같은 눈썹을 찡그린 영은 앙다문 입술을 오물거렸다. 영은 그날 저녁 교태전에 들러 청조의 품을 파고들었다. 곁에서 유모가 궐내 법도를 들먹이며 말렸지만, 영은 더욱 청조의 품을 파고들었다. 청조는 송구함에 머리를 조아리는 유모를 내보내고 영을 품에 꼭 안아 다독여 주었다.
“네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이냐?”
마침 처소에 들어오던 도운이 청조의 품에 매달린 영을 보고 타박하듯 말하였다. 회임으로 배가 나온 청조의 몸이 아니 그래도 무거울 것인데, 아무리 작은 아이라고는 하나 저리 무릎에 올리고 품고 있으면 힘이 부칠 터였다.
“그리하지 마시어요. 아직 어린아이옵니다.”
“네가 너무 힘들어서 아니 된다. 영이 무엇 하느냐, 어서 내려오너라.”
영이 도운의 눈치를 보며 청조의 무릎에서 내려와 혀 짧은 소리로 예를 다하였다.
“소자, 아바마마를, 뵈옵니다.”
“네가 아직 나이 어리다고는 하나, 이 무슨 어리광이냐. 네가 이 나라의 세자이니라. 항시 몸가짐을 바로 해야 할 세자가, 몸이 무거우신 모후의 무릎에 앉아 매달리다니.”
“나무라지 마시어요. 세자가 낮에 호랑이 이야기를 듣고 무서워 그러는 것이옵니다.”
아무리 영이 세자이긴 하나, 청조는 아직 어린 영을 다그치는 도운이 야속하였다.
“하지만 궐내의 법도가 있지 않느냐. 아랫것들이 흉잡는다.”
“그런 분이 소첩을 너라 부르십니까?”
“뭐라?”
서운한 듯 입술을 삐죽거리는 청조의 모습에 도운의 입술이 비죽비죽 올라갔다.
“네가 그것이 서운하였더냐? 그럼 내가 이제부터 너를 중전이라 부를까? 중전, 중전, 나 좀 봐 주시오.”
“흥, 누가 중전이라 불러 달라 이러는 것입니까?”
“그것이 아니야? 그럼 부인이라 부를까? 부인, 부인, 마누라, 나 좀 봐 주시오.”
흥, 앵돌아져 몸을 틀어버린 청조의 복스러운 뺨이 웃음을 참느라 씰룩거리는 것이 도운의 눈에 다 보였다.
“이것도 아니야? 그럼 내가 너를 무어라 부를까. 청조야, 청조야. 내가 잘못 하였다. 그러니 나 좀 봐 주거라. 네가 나를 아니 봐주면, 내가 너무 서럽다.”
결국 청조가 웃음을 터트리자, 도운은 밖을 향해 수라상을 들이라 명하였다. 이것도 먹어보아라, 저것도 먹어보아라, 청조에게 저분질을 해주던 도운은 몸이 제법 무거워진 청조가 잠시 잠이 들자 영과 함께 밖으로 나섰다. 도운은 휘영청 보름달이 밤하늘에 밝게 빛나는 교태전 후원을 거닐며 영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겨우 자신의 무릎을 넘어선 아이는 곁에서 아버지의 걸음을 열심히 쫓으며 아장아장 걸었다.
“영아.”
“예, 아바마마.”
“호랑이가 무서웠느냐?”
영이 아무 대답이 없자 도운은 곁에 선 영의 몸을 들어 올렸다. 도운의 용포를 고사리 같은 손으로 꽉 쥔 영은 도운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아비가 꾸중을 하여 섭섭하였느냐?”
아이는 아니라는 듯 단단한 아버지의 가슴팍에 얼굴을 비볐다. 그 모습을 본 도운은 낮게 웃었다.
“호랑이 이야기가 무서웠느냐?”
이번에는 가슴팍에 묻은 작은 이마가 위아래로 비벼졌다.
“청이, 아바마마가, 호랑이를 잡는다고 하였습니다. 호랑이가 아바마마를 물으면, 소자가 무섭습니다.”
“그것은 무서울 필요가 없느니라. 이 아비가 다칠 리가 없으니.”
“하지만, 호랑이는 발톱이 이렇게 강하고, 이빨이 이렇게 크다고 하였습니다. 물리면 음…….”
“영아.”
“예.”
도운은 청조를 닮은 영의 빛나는 눈동자를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모두에게 빛이 되어라 영(煐:빛날 영)이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 일찍 승하하신 형님의 자와 같은 영이란 음에, 뜻만 다른 이름이었다. 아이는 이름 그대로, 그리고 승하하신 형님을 닮아 심성이 바르고 밝게 빛나는 존재였다. 세상 그 어느 아이보다 소중하고 소중한 아들이었다.
“이 아비가 너를 무척이나 아끼느니라. 그리하여 이 아비는 호랑이가 하나도 무섭지 않다. 그러니 아비가 호랑이를 이길 수 있는 것이다.”
작은 얼굴이 뜻을 모르겠다는 듯 의문을 가득 매달고 도운을 바라봤다.
“만약 이 아비가 없을 때 호랑이가 나타나면 어찌할 것이냐. 호랑이가 네 어머니를 물려고 달려들면 어찌할 것이냐. 네 어머니와 복중 아우를 두고 도망갈 것이냐?”
“……아니옵니다! 소자가, 소자가 때려줄 것입니다!”
“어찌하여? 호랑이가 무섭지 않느냐?”
“어, 그것은…… 그것은…….”
도운은 고운 아미를 잔뜩 모으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이의 몸을 높이 한번 치켜 주었다.
“네가 어머니와 아우를 많이 아끼니 그러는 것이 아니냐. 그런 것이다. 이 아비도 너와 네 어머니와 앞으로 태어날 네 아우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다. 허니, 지키고자 하는 마음은 두려움을 이기는 것이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아바마마의 말씀이 어려워 다는 알 수 없으나, 어린 영은 왜인지 알 것 같았다. 도운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는 아이를 번쩍 들어 목마를 태워 주었다. 그 모습에 기함하여 부산을 떨어대는 청과 내관 놈들은 가볍게 무시하였다. 아비의 목을 탄 것이 즐거운 듯 익선관을 꼭 붙잡고 앉은 아이의 까르륵 웃음소리를 들으며, 도운은 행복한 듯 저 멀리 보름달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
* * *
청조는 영과 둘이서 연경당에 들었다. 아직 잡히지 않은 호랑이 일로 정무가 길어진 도운은 저녁에 따로 들겠다는 전갈이 있었다.
연경당 후원에서 봄나물을 찾아 캐는 청조의 손이 바지런히 움직였다. 서방님께서 좋아하시는 이것들 넣어 된장조치를 끓일 생각만으로도 나물을 캐는 손이 바빠졌다. 하지만 점점 불러오는 배가 무거워 간간이 일어나 허리를 폈다. 이번에는 꼭 여자아이를 점지해 주셨으면. 도운이 밤마다 배를 쓸며 입버릇처럼 하는 말을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되새기며 청조는 둥근 배를 쓸었다.
후우, 이마에 땀을 한번 닦고 주위를 둘러보는데 영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분명 곁에서 나무로 만든 작은 호미를 들고 어머니를 돕겠다며 이리저리 흙을 파헤치고 있었는데, 어디를 간 것일까?
“영아, 영아.”
청조는 영을 찾으며 후원을 살폈다.
영은 아까부터 그것의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아까부터 몸을 숨긴 채,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을 따라 그것의 뒤를 몰래 밟았다. 그리고 드디어 저희들을 바라보는 그것의 빛나는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호랑이였다. 호랑이는 청이 묘사한 그대로의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갈색빛 노란 털, 검은 줄무늬, 동그란 눈을 쭉 따라 이어진 둥근 코, 사방으로 뻗친 흰 수염.
호랑이와 눈이 마주친 영은 조용히 몸을 숙였다. 자신을 따라 호랑이도 몸을 숙였다. 영은 곁에 계신 어마마마와 아우를 지키기 위해 호랑이를 따라 조용히 움직였다. 살금살금, 호랑이에게 점점 더 다가갔다. 높게 자란 풀들 사이에 최대한 몸을 숨긴 호랑이는 점점 다가오는 영을 향해 입을 씰룩거렸다.
씰룩거리는 입매를 따라 흰 수염이 파르르 떨렸다. 하지만 두렵지 않았다. 용기가 치솟았다. 아버지가 아니 계실 때면, 어머니와 아우를 지키는 것은 자신의 몫이라던 아바마마의 말씀을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 엉금엉금 땅을 기어서 가까이 다가가면, 호랑이 역시 최대한 배를 바닥에 붙이고 엉금엉금 기면서 영을 견제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영의 작은 몸이 호랑이를 덮쳤다.
“이 노옴!”
“캬르릉!”
청이 말한 천둥 치는 요란한 울음소리가 울렸다. 영은 최선을 다해 호랑이의 수염을 잡고 몸을 굴렸다. 싸움은 매우 치열했다. 결투 끝에 뱀처럼 움직이는 꼬리를 작은 손에 꽉 쥐자 호랑이가 놀란 듯 펄쩍 뛰어올라 영의 손과 얼굴을 할퀴었다. 청의 말대로 날카로운 발톱이 살갗을 파고들었다.
“네 이놈이!”
“이야옹!”
“영아! 영아!”
꼬리를 잡힌 호랑이의 포효 소리에 섞여 영을 부르는 청조의 비명 소리가 울렸다.
* * *
“전하, 호랑이를 포획하였사옵니다.”
“그래, 어찌 잡았는가?”
“그것이 전하께서 사람을 해칠 생각은 아니 보이는 호랑이가 민가를 어슬렁거리는 것이 이상하다 하시지 않으셨사옵니까? 하여 혹시 하는 마음에 도성 사냥꾼들의 초가를 일일이 탐문하였사옵니다. 그 중, 한 놈의 행태가 하도 수상하여 그자를 추궁하니 그자가 호랑이의 새끼를 산채로 포획한 일을 실토하였사옵니다.”
“새끼 호랑이를 포획하였다? 어찌 그리 잔인한 일을.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이라 하나, 새끼를 향한 어미의 마음이 어찌 사람과 다를까. 그러니 자식을 찾는 어미 호랑이가 민가까지 내려온 것이 아닌가. 그래, 무슨 연유로 어린 호랑이를 잡았다 하던가?”
“아뢰옵기 송구하오나, 궁의 내의관인 성 참봉(參奉)이 금전을 주고 사주하였다 하옵니다.”
“뭐라? 내의원에 있는 자가 무슨 이유로 그런 일을 사주하였단 말인가?”
“그것이…….”
착호장은 잠시 곤란한 듯 뜸을 들였다.
“그것이, 그자의 아비 되는 이가 병에 걸렸다 하옵니다. 그자가 가진 재주로도 아비를 구할 방도가 없자 무당을 부른 모양이옵니다. 무당이 말하길, 사나운 짐승의 원혼이 씌었으니 원혼을 쫓아내기 위해 집안에 범을 들이라 하였다고 하옵니다. 아무래도 성체인 호랑이는 산채로 집안에 가두기가 어려우니 몸집이 작은 새끼를 들였다고 하옵니다.”
“이런!”
도운의 역정이 머리끝까지 올라왔다. 아니 그래도 과거의 일 때문에 무속인을 탐탁지 않아 하는 도운은, 무당의 말을 듣고 그런 짓을 벌인 성 참봉이 참으로 어리석어 보였다.
“그래서 새끼 호랑이는 무사한가?”
“예, 전하. 어미의 곁으로 돌려보냈더니, 두 마리가 정다이 함께 산으로 돌아갔사옵니다.”
“그래, 수고하였네. 이 일에 대한 처결은 차후에 하도록 하지.”
“예, 전하.”
호랑이 일이 마무리되자, 도운은 용포를 훌훌 벗어버리고 급하게 연경당으로 향하였다.
“청조야!”
큰소리로 청조를 찾으며 방으로 들어서던 도운은, 검지를 입가에 살짝 가져다 대는 청조의 행동에 금침 위에서 잠을 자고 있는 영을 발견했다. 그리고 영의 곁에 함께 누워 잠이 들어 있는 이상한 것도 발견했다. 영의 작은 고사리 같은 손이 그것의 꼬리를 꼭 쥐고 놓지 않고 있었다.
“이것이 무엇이냐. 고양이가 아니냐?”
도운의 물음에 청조가 결국 웃음을 터뜨려버렸다. 이어지는 청조의 설명에 도운은 잠든 아이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쉭쉭 숨을 내쉬며 잠이 든 아이의 오동통한 뺨에 고양이가 할퀸 발톱 자국이 희미하게 보였다.
“호랑이를 잡았노라 어찌나 큰 소리로 외치던지. 소첩이 얼마나 놀랐는지 모릅니다.”
“그리하였더냐?”
“예, 꼭 저만한 고양이를 번쩍 들고는 호랑이의 크기가 사내의 가슴까지 온다더니 정말 그 크기가 자신의 가슴까지 온다며 흥분하였지 뭡니까.”
청조의 말에 도운은 크게 웃어버렸다. 이제 겨우 제 무릎을 넘어선 놈이, 자신을 사내라고 아는 것이 우스웠다.
“말린 식재료를 보관하는 고방에 쥐가 생겨 고양이를 들였다 하더니, 그것이 어쩌다 연경당에 들어왔나 봅니다. 아버지가 오시면 잡은 호랑이를 보여드린다며, 저리 손에 꼭 쥐고 잠이 들었습니다. 영이가 일어나거들랑, 어머니를 위하여 호랑이를 잡은 용기를 크게 치하해 주셔요.”
“암, 우리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아니냐. 제 어머니와 복중 아우를 위해 호랑이에게 덤벼들다니, 과연 산의 정기를 받아 호랑이의 기운으로 태어난 아이가 틀림이 없다.”
도운과 청조는 잠든 아이의 동그란 이마며, 상처가 난 손등을 함께 어루만져 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조곤조곤 말을 하는 청조의 뺨이 복사꽃 같이 달아올라 참으로 어여뻤다. 도운은 청조의 보드라운 뺨을 한번 쓰다듬고 입을 맞추었다.
“너는 어찌 이리 어여쁜 것이냐. 나는 세상에 태어나 너처럼 어여쁜 여인을 본 적이 없다.”
“참말이십니까?”
“참말이지, 이것은 거짓 한 점 없는 나의 진심이다.”
청조는 배시시 웃으며 도운의 품으로 안겨들었다. 도운의 품에 한껏 안겨있던 청조가 도운의 귓가에 손을 대고 속삭였다.
‘소첩도 세상에 태어나 서방님처럼 늠름한 사내를 본 적이 없습니다.’
<끝>
* 인용에 대한 안내
해당 남자 주인공의 대사는 세종 105권, 26년(1444 갑자 / 명 정통(正統) 9년) 윤7월 24일(신축) 3번째 기사를 차용하였습니다.
- 구름을 비추는 새벽 3권 중 대사 -
“노비 역시 하늘이 내린 사람이다. 이는 하늘이 과인에게 주신 귀한 백성이고 목숨이라는 뜻이오. 하늘이 내려 주신 귀한 목숨을 위해 세워진 왕으로서, 무릇 백성을 감싸고 보호하는 것은 임금된 자의 덕목이라 할 수 있다. 허니 아무리 죄가 있다 하나, 백성이 함부로 죽임을 당하는 모습을 보고 어찌 아무렇지도 않을 수가 있는가. 또한, 상주고 벌주는 것은 임금의 대권이니 치하할 사람에게 상 주는 일은 분명 과인의 일이오. 허나 이것이 어찌 상 받을 일이어 치하를 할 수 있는가. 생명을 경시하고, 백성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는 자를 어찌 치하할 수 있는가 이 말이오!”
“아무리 임금이라 하더라도 남의 귀한 목숨을 사사로이 취하는 것은 하늘을 거스르는 일이다. 만약 백성이 억울하게 죽는 것을 보고도 아무렇지도 않다면, 또 아무렇지 않게 사람을 죽인 자를 치하한다면 이것이 폭군이 아니고 무엇인가! 이것은 매우 옳지 않은 일이다! 모두 들어라!”
“지금부터 아무리 작은 죄라 해도 노비의 죄를 관에 고발하지 않고 함부로 벌을 내린 자는 그에 따른 형벌을 엄히 내릴 것이다! 벌로써 노비를 구타하거나 잔인하게 죽인 자는 장 일백 대의 형에 처할 것이며, 죄 없는 노비를 함부로 죽인 자는 장 이백 대에 처할 것이다. 또한, 주인의 횡포로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노비의 식솔들이 다시금 그 주인을 모시고 받드는 일은 너무나도 잔인한 처사이다. 하여 주인에 의해 억울하게 죽은 노비의 식솔들은 차후에 모두 양민으로 속량할 것이니 형조는 이를 숙지하고 시행하라!”
- 차용된 기사 -
“우리 나라의 노비(奴婢)의 법은 상하(上下)의 구분을 엄격하게 하기 위한 것이다. 강상(綱常)이 이것으로 말미암아 의지할 바를 더하는 까닭에, 노비가 죄가 있어서 그 주인이 그를 죽인 경우에 논의하는 사람들은 상례(上例)처럼 다 그 주인을 치켜올리고 그 노비를 억누르면서, 이것은 진실로 좋은 법이고 아름다운 뜻이라고 한다. 그러나, 상주고 벌주는 것은 임금 된 자의 대권(大權)이건만, 임금 된 자라도 한 사람의 죄 없는 자를 죽여서, 선(善)한 것을 복 주고 지나친 것을 화(禍) 주는 하늘의 법칙을 오히려 함부로 하지 못하는 것이다.
더욱이 노비는 비록 천민이나 하늘이 낸 백성 아님이 없으니, 신하된 자로서 하늘이 낳은 백성을 부리는 것만도 만족하다고 할 것인데, 그 어찌 제멋대로 형벌을 행하여 무고(無辜)한 사람을 함부로 죽일 수 있단 말인가. 임금된 자의 덕(德)은 살리기를 좋아해야 할 뿐인데, 무고한 백성이 많이 죽는 것을 보고 앉아서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금하지도 않고 그 주인을 치켜올리는 것이 옳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나는 매우 옳지 않게 여긴다.
율문(律文)을 참고하여 보니, 노비구가장조(奴婢毆家長條)에 이르기를, ‘만약 노비가 죄가 있는 것을 그의 가장(家長)이나 기복친(朞服親), 혹은 외조부모가 관(官)에 고발하지 않고 구타하여 죽인 자는 장(杖) 1백 대의 형에 처하고, 죄 없는 노비를 죽인 자는 장(杖) 60대에, 도(徒) 1년의 형에 처하며 당해 노비의 처자(妻子)는 모두 석방하여 양민(良民)이 되게 한다. 만약 노비가 주인의 시키는 명령을 위범(違犯)하였으므로 법에 의거하여 형벌을 결행(決行)하다가 우연히 죽게 만든 것과 과실치사한 자는 모두 논죄하지 아니한다. ’고 하였은즉, 주인으로 노비를 함부로 죽인 자는 일체 율문(律文)에 따라 시행해야 옳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노비는 대대로 서로 전해 내려오는 것으로서 명분이 매우 엄중하여 중국의 노비와는 아주 다르니, 그들을 양민으로 만드는 법은 사세가 시행하기 어려우며, 또 노비의 죄있는 자를 그 주인이 처벌하는 법도 실행한 지가 이미 오래된 것이니 갑자기 고치기는 쉽지 않다. 더욱이 사삿집[私家]의 은밀(隱密)한 곳에서 죄 지은 노비를 그 주인이 어떻게 하나하나 율문을 상고하여 논죄(論罪)할 수 있겠는가. 그것이 법에 의거하였는지 아닌지는 고핵(考覈)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그가 함부로 무고한 자를 죽이고도 그에 따른 가족은 그냥 계속하여 부리게 한다면, 이것이 어찌 백성을 사랑하고 형벌을 신중히 하는 뜻이겠는가. 지금부터는 노비가 죄가 있건 없건 간에 관에 진고(陳告)하지 않고 구타 살해한 자는 일체 옛 법례(法例)에 따라 과단(科斷)할 것이며, 만약 포락(炮烙)·의형(劓刑)·이형(刵刑)·경면(黥面)·고족(刳足)과 혹은 쇠붙이 칼날을 사용하거나, 큰 나무나 큰 돌을 사용하는 등 모든 참혹한 방법으로 함부로 죽인 자라도, 그 죽은 자의 가족이 자기의 노비가 아니면 속공(屬公)시키지 못하도록 한다. 만약 기복친(朞服親)이나 외조부모가 구타 살해한 것이라도 그 죽은 자의 가족이 살인에 관계된 자의 노비라면 또한 속공(屬公)하게 하라.”
구름을 비추는 새벽 3권
ⓒ 2017, 5月 돼지
이 책은 (주)북팔이 작가와의 계약에 따라 발행한 것으로, 본사의 서면 허가 없이는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발행일 2017년 12월 22일
지은이 5月 돼지
펴낸이 박대령
펴낸곳 (주)북팔
출판등록 2011년 3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