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름을 비추는 새벽-24화 (24/25)

외전 _제자리

첫눈이 온다는 소설(小雪)에 들자 거짓처럼 하늘에서 눈이 내렸다. 나라의 가장 북쪽, 척박한 함경도의 땅은 이미 대한에 들어선 듯 그 추위가 너무 혹독하고 가혹할 정도였다. 함경남도 단천의 관아에서 생활하는 예화는 하루 종일 광산에서 일하는 관노들에게 끼니를 만들어 날랐다. 무식한 그들이 ‘중전마마, 중전마마 여기 물 좀 주시오.’ 하고 자신을 부르는 소리만 들어도 욕지기가 올라왔다.

더러운 것들.

중전인 자신을 감히 주막의 주모 부르듯 부르는 소리에 울화가 치밀 대로 치밀었다. 예화는 그들이 먹고 남은 더러운 그릇들을 설거지하고, 그들의 누더기 같은 옷을 하루 종일 빨아야 했다. 벌써부터 얼어 버린 냇가에서 세답을 하고 나면 손이 떨어져 나간 듯 감각조차 사라지곤 했다. 세답거리가 없는 날에는 그들의 옷을 꿰매고 더러운 버선을 꿰매야만 했다.

그 밖에도 관아를 소제하거나 관비들과 함께 광산의 돌을 나르는 등, 일은 한도 끝도 없었다. 그렇게 끊임없이 이어지는 하루의 노동으로 몸은 천근만근이었다. 예화는 오늘도 허리 한번 펴지 못한 채 하루 종일 일만 하다, 어두운 밤이 되어서야 여인들 다섯이 함께 기거하는 관노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궁을 떠나 이렇게 지낸 지 벌써 한 해가 됐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반항도 많이 했다. 감히 중전인 저에게 관비나 할 일들을 시키는 저것들의 행패에 그리는 못 한다고 버티었다. 자신은 관비가 아니니 당연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광에 갇혀 며칠씩 굶어야 했다. 굶주림을 참지 못하고 처음으로 관노와 관비들의 더러운 옷을 빨던 그 순간, 무너진 자존심에 얼마나 울었는지 몰랐다.

자신의 곱디곱던 손은 끝없는 노동으로 거칠어지고 손톱 끝은 다 갈라져 버렸다. 꽤나 살이 빠져 버린 홀쭉한 뺨은 추위에 얼어 빨갛게 터져 있었다. 오늘따라 몸이 으슬으슬하고 잔기침이 나왔다. 백정으로 살던 어린 시절은 차라리 인간답게 사는 것이었다는 걸, 예화는 이곳에 와서 깨달았다.

백정이라는 것이 기실 동리를 떠나지만 않으면 불편한 것은 없었다. 아버지가 도축한 고기와 그 가죽을 판 이문이 꽤나 좋았기에 진수성찬은 아니더라도, 배곯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머니는 늘 따뜻한 밥을 고봉으로 퍼 주었고, 아버지를 돕는 힘든 일은 오라버니의 몫이었다.

아버지가 도성으로 떠난 후부터 오라버니는 자신을 더욱 살뜰히 챙겨주었다. 가끔씩 생기는 맛있는 당과도 모다 누이에게 양보해 주던 오라버니였다. 밤이 내리면 누이가 잠들 때까지 등에 업고 자장가를 불러주던 다정한 오라버니였다. 자신을 동생이자 마치 그의 딸인 듯 키워주었다.

허나, 이제 그것은 다 옛일이었다. 백정이 가장 더럽고 천한 신분이라고 누가 그러던가. 아니, 아니었다. 백정보다 훨씬 아래까지 추락할 수 있는 것이 사람의 삶이었다. 차라리 주어진 삶에 만족하였으면,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가 보지 못했더라면 이런 지옥까지 추락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억울하기도 했다.

“마마! 중전마마! 내 이것 세답해 놓으라고 한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이리 더러운 것입니까?”

앙칼진 언년이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속에서 신물이 올라오는 듯했다. 자신의 삶이 지옥으로 변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저것의 패악이었다. 속이 너무 쓰렸다.

“정말, 내 오늘 이것 입어야 한다고 그리 말을 했거늘, 누구 덕에 입에 풀칠하고 사는 것인지 아직도 모르시옵니까? 마마 때문에 애꿎은 저까지도 이 척박한 함경도에서 이리 고생하는데, 정녕 미안하지도 않사옵니까? 그것을 안다면 좀 잘하시지요!”

“…….”

“흥, 마마라 불러주니 아직도 저가 귀한 마마인 줄 아는가 보지?”

들으라는 듯 작은 소리로 짜증스럽게 웅얼거리는 언년의 말을 못 들은 척해야 하는 것이 제일 힘겨웠다. 언년은 짜증을 부리며 다른 옷을 걸쳐 입고 방을 나섰다. 이곳에 와 보니, 노비 신세에도 상중하의 계급이 따로 구분되어 있었다. 권력과 암투가 존재했고, 불만과 질시가 존재했다. 언년은 이곳 관비들의 계급 중에서도 권력을 틀어쥔 가장 상급이었다.

그것을 위해 언년은 광산에서 노비들을 감시하는 관아의 나졸들에게 끊임없이 추파를 보냈었다. 그중 몇 명의 사내를 거쳐, 얼마 전 나졸보다 계급이 높은 아전 하나를 꾀어내는 데 성공했다. 지금쯤 어둠을 틈타 아전들의 숙소인 질청으로 괭이 새끼마냥 숨어들고 있을 것이었다. 아전이 지방의 말단 관리라지만, 권력은 권력이었다. 그 권력을 등에 업은 언년은 상전이 따로 없었다.

같은 관비들을 자신의 하녀 부리듯 부리고, 성질을 부리며 안하무인으로 굴어댔다. 자신에게 배당된 노동은 나 몰라라 하고 낮이면 방에서 잠만 잤다. 하지만 관비 중에서도 실세가 돼 버린 언년에게 대들 관비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나마 다른 관비들은 중간 계층이었다. 그리고 그들에게 구박을 받는 예화의 신세는 노비들의 계급 사이에서 가장 밑바닥인 하급 신세였다.

언년이 노동에서 빠지면 당연히 다른 관비들의 몫이 가중되는 것이었다. 언년이의 행실에 불만이 많은 관비들은 예화를 더욱 닦달했다. 노동에 익숙하지 않은 예화는 종종 실수를 했고 손도 느렸다. 아니 그래도 미운털이 콱 박혀 있는데, 거기에 언년의 일까지 더해지자 노비들은 대놓고 예화를 구박했다.

조금이라도 일을 늦게 끝내고 관노청으로 돌아올 때면 감자 한 알을 얻어먹기도 힘들었다. 저녁 식사로 나온 자신의 몫을 다른 관비들이 다 같이 나눠 먹고 모른 척했다. 그러다 보니 늘 배가 고팠다. 간혹 언년의 기분이 좋을 때면 던져주는 주전부리를 은근히 바라고, 점점 언년의 비위를 맞추게 됐다. 그런 자신이 실로 비참했다.

오늘도 배가 고팠다. 기실 배도 고팠지만 감모라도 오는 것인지, 몸이 으슬으슬했다. 이럴 때면 오라버니가 더욱 보고 싶었다. 늘 자신을 보호해 주고 귀애해 주시던 오라버니.

비좁고 추운 방에서 여인들과 나란히 누워 있던 예화는 익태를 그리워했다. 어린 시절 자신에게 쏟아지던 구타를 온몸으로 막아 주시던 오라버니. 불면 날아갈까, 쥐면 부서질까 전전긍긍, 노심초사 저를 아끼어 주시던 오라버니. 눈물이 한줄기 흘렀다.

다음날 예화는 몸이 천근만근이었다. 두통도 있는 것이 정녕 감모에 걸린 듯했다. 허나 몸이 아프다 해서 편히 쉴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예화가 꾸물거리자, 같은 처소를 쓰는 여인들이 닦달하기 시작했다.

“이보시야요, 중전마마. 바삐 나올 것이지 뭣 하고 있는 것임매? 참나, 속 터지오, 속 터져.”

“아, 중전마마 상관 말고 그냥 빨리 나오시라우. 늦겠시오. 거, 중전마마께서도 얼른 채비하고 나오시오. 우리 먼저 갈라니까.”

감히 저에게 방자하게 구는 건방진 관비들에게 대답 따위 하지 않았다. 옆을 보니 언년은 아직 들어오지 않은 모양이었다. 괜히 이 시각에 아전의 방에서 나오다 군수에게 발각되기라도 하면 크게 경을 칠 것을. 흥, 차라리 발각이라도 됐으면 좋겠다. 괘씸한 년이 풍기문란죄로 장이라도 맞아야 정신을 차릴 테지. 겨우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오는데 동헌 쪽이 시끌시끌했다.

무슨 큰일이라도 생긴 것인지, 관노들과 아전, 나졸들까지 모다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차가운 동헌 바닥에 놓인 거적때기 위에 피투성이로 발가벗겨진 여인과 남성이 누워 있었다. 겨우 얇은 종이 한 장만이 아무것도 입지 않은 두 남녀의 아랫도리만 아슬아슬하게 가려놓고 있었다. 사내는 날카로운 것에 찢긴 것인지, 몸이 난장판으로 난도질 돼 있었다.

그 흉악한 몰골에 충격을 받은 예화는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사내의 곁에 누워 있는 여인의 시신은 더욱 끔찍했다. 누군가에게 심하게 구타를 당한 듯, 얼굴이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흙바닥을 기며 도망이라도 했던 것인지, 이 매서운 한파에 버선조차 신지 않은 여인의 맨발은 온통 흙으로 지저분했다. 반항을 하다 맞은 듯 벌거벗은 온몸과 팔은 울긋불긋하게 부어 있었다. 하지만 여인의 시체가 끔찍한 이유는 다리가 이상한 모양으로 꺾여 있는 것 때문이었다.

너무나 무서운 몰골로 죽어 있는 여인에게서 눈을 떼던 예화는 여인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반지를 보는 순간 충격으로 온몸이 덜덜 떨려왔다. 얼마 전, 몸을 대주던 나졸에게 받았다며 얇은 옥가락지를 손에 끼고 이리저리 돌려보던 언년의 모습이 생각났다. 겨우 이따위 하품이나 주었다며 나졸에 대한 불만을 짜증스럽게 늘어놓았었다.

그 순간 나졸들에 의해 온몸에 피 칠갑을 한 사내가 끌려 들어오고, 곧 동헌 대청에 군수가 등장했다.

“네가 저 두 남녀를 끔찍하게 살해하였느냐?”

“예, 사또.”

“왜 그랬느냐?”

얼굴을 온통 핏물로 뒤덮은 사내는 아직도 분이 안 풀린 것인지, 붉게 빛나는 눈동자를 힘껏 부라렸다. 눈빛이 정상인 사람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이 사또, 조년이 실로 죽일 년이었슴다.”

“어찌하여 죽일 년이냐?”

“조것이 방댕이를 흔들어 가며 소인의 혼을 쏙 빼어 갔슴다. 괜히 덥다며 소인의 앞에서 옷고름을 훌렁훌렁 풀어헤치는데 고것이 어찌나 사내의 음심을 자극하는지, 지가 그만 홀랑 넘어가 버렸지 말임다. 콧소리는 또 얼마나 앵앵거리는지, 젖가슴을 들이대며 콧소리로 소인을 꾀어냈슴다. 소인이 그 속살 맛에 푹 빠져서는, 크흑. 소인, 조년을 위해 다 했소꼬마. 저것의 꾐에 빠져 소인의 늙은 홀어머니의 하나뿐인 옥가락지까지 훔쳐다 주었슴다. 한데…… 조년이 어찌나 이놈 조놈이랑 붙어먹는지…….”

갑자기 억울한 듯 큰 소리로 울기 시작하는 사내를 보고 군수는 혀를 차며 시체를 바라봤다.

“그래서, 화가 나서 아전까지 죽였느냐?”

“예, 사또. 소인이 죽였슴다! 조것들이 아랫도리를 딱 붙이고 헉헉대는 현장을 보니까 참으로 분하고 화가 나서, 내 이 연놈들을…….”

엉엉 울어대는 나졸을 보던 관아의 노비들과 포졸, 아전들까지 혀를 차며 사내의 아둔함과 잔인함을 욕했지만, 한편으로는 순정을 짓밟힌 그를 동정했다. 잔인한 살인범인 사내를 향해 아낌없이 동정하던 그들이 언년을 두고는 욕설을 서슴지 않았다. 그들이 언년을 향해 차갑게 비난하는 말들이 비수가 되어 예화의 가슴을 난도질했다.

“허이구, 그 상전에 그 종자 아니오? 예전에 중전마마랑 그 식솔들이 주제도 모르고 날뛰더니, 저거이 딱 지 상전 하는 것 보고 고 꼴값을 떤것입찌비. 아주 잘 뒈졌네.”

“그르게. 백정 주제에, 하늘 같은 우리 임금님의 은혜를 등에 업고 그 꼴값을 떨어대더니, 조 년이 딱 그기 따라 하다 뒈진 것이지. 아주 그냥, 꼴 보기도 싫었는데, 잘 뒈졌지비. 내 언제가 저리 죽을 줄 딱 알았꾸마. 내 이 관아에 사십 평생을 살면서 저런 애미나이 한두 번 본 거이 아님매.”

“거기 말이 옳소. 송충이가 솔잎을 먹어야재, 괜히 욕심부리다 저리 뒈졌지비.”

혀를 차고 침을 뱉으며 언년을 흘기는 관비들의 눈에는 일말의 동정도 들어 있지 않았다. 옆을 보니 나졸들과 관노들 역시 같은 말들을 하고 있었다. 잘 죽었노라 사방에서 키득거리는 눈빛들, 그리고 흉측하고 끔찍한 모습으로 죽어 나자빠진 언년의 모습에 예화는 그 자리에서 그대로 정신을 잃었다.

며칠을 앓아누운 것인지, 눈을 감고 뜰 때마다 밤낮이 바뀌어 있었다. 앓는 내내 꿈속에서 오라버니를 만났다. 차갑고 음습한 검은 동굴 속에 홀로 갇혀 있던 오라버니는 죽은 듯 누워만 있었다. 두 눈은 푹 꺼지고, 몸은 꼬챙이처럼 말라 있었다. 시체처럼 변해 버린 오라비의 모습에 충격을 받은 예화는 식은땀을 흘리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 순간 ‘드르렁’ 우렁차게 울리는 코골이 소리에 예화는 너무 놀라 몸이 경직돼 버렸다. 어두운 밤, 곁에 누운 노비의 코 고는 소리에도 놀랄 정도로 예화는 불안감에 빠져 있었다.

허옇게 각질이 일어난 마른 입술이 팽팽하게 당겼다. 언년의 모습이 실로 저의 모습을 보는 듯했다. 사내의 알량한 권력에 철썩 붙어 으스대던 꼴이라니. 관아라는 작디작은 세상에서의 우습고 초라한 감투를 쓰고, 교만을 떨어대다니. 호랑이 없는 곳에서 여우도 아닌 한낱 하룻강아지가 왕 노릇 하는 꼴이었다.

문득 저는 어떠했던지 의문이 들었다. 백정의 딸로 태어나 세상의 꼭대기에 서 있었다. 중전마마가 되었다. 여인들 중 가장 신분이 높고 권력이 높은 여인이 되었었다. 이런 작은 지방 관아가 아닌 구중궁궐에서, 중전이라는 감투를 쓰고 나라를 들었다 놨다 교만을 떨었다. 하지만 그랬던 저 역시도, 호랑이 없는 곳에서 하룻강아지가 왕 노릇 하는 꼴과 같았다. 언년과 다를 바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잘못인가? 언년을 향해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 지껄이던 여인들의 말들이 떠올랐다. 왜? 왜 그래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세상에 맛보고 싶고 맛있는 것이 얼마나 많은데. 그것을 먹고자 하는 것이 왜 잘못인가. 사람으로 태어나 야망을 가지고 꿈을 꾸는 것이 무슨 잘못이냔 말이다.

백정도 사람이었다. 백정을 천하다 욕하는 저들의 잘못이지 사람답게 살고자 노력한 저희들의 잘못이 아니었다. 예화는 무릎을 끌어안고 엄지손톱을 물었다. 관의 모든 노비들도 나졸들도 모다 언년을 빗대어 은근히 저를 비웃고 욕하고 있었다.

언년이 욕을 먹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간 언년이의 교만하고 못돼먹었던 행실에 저도 이를 갈았으니까. 허나 문득 깨달았다. 저 관노들의 말대로, 교만하고 방자하기까지 한 언년의 모습은 기실 저의 모습과 같았다. 어릴 적부터 제 옆에 찰싹 붙어서 자신을 흉내 내던 아이였다. 그 사실을 깨닫자 너무 무서웠다.

그리 많은 것을 욕심내었지만, 이 추운 날 결국 버선 한 짝 건지지 못하고 맨발로 저승길을 걷게 되었다. 만인 앞에서 벌거벗겨진 채 흉측한 모습으로 죽어 나자빠진 언년의 모습이 꼭 제 미래의 모습 같았다. 그리 끔찍하게 맞아 죽었는데, 사람들은 동정은커녕 잘 뒈졌노라 침을 뱉으며 비웃었다.

언년의 못된 행실에 지옥 같았던 지난 한 해가 떠오르자 문득 청조가 생각났다. 산에 올랐던 자신과 언년의 다리를 주무르던 그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그런 푸대접을 받고 멸시를 받으면서도 자신의 신분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었다.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성의를 다하였었다. 그런 청조에게 자신이 뭐라 충고를 했었는지 연이어 떠올랐다.

‘주어진 천명대로 소임을 다하며 충실히 살거라.’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송충이가 솔잎을 먹지 않은 것이 잘못이 아니었다. 남의 것을 뺏어 먹은 것이 잘못이었다. 백정으로 태어나 높은 자리를 꿈꾼 것이 잘못이 아니었다. 남의 자리를 빼앗았기 때문에 잘못이었다. 우습게도 궁을 떠나기 전, 도운 오라버니가 했던 충고가 떠올랐다.

‘남의 누룽지를 욕심내지 말거라.’

그 말이 우습기도 하고 설움이 복받치기도 하여 예화는 눈물을 터뜨렸다. 잘못으로 얼룩진 과거를 떠올리며 예화는 그렇게 울다 잠이 들었다. 며칠을 더 앓으며 계속 꿈을 꾸었다.

꿈속에 죽은 언년의 얼굴이 저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끔찍하고 비참한 모습으로 거적때기 위에 누워 있는 저를 둘러싸고 사람들은 침을 뱉으며 박수를 쳤다. 그 꿈에서 깰 때마다 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서야 겨우 몸을 추슬렀다. 몸이 조금 우선해지자 예화는 군수를 만나러 동헌에 들었다.

* * *

도운은 사정전에 들러 이천에서 재환이 보낸 장계를 읽고 있었다. 장계에는 이천 군수가 해마다 진상되는 도자기를 빼돌려 온 사실이 적혀 있었다. 이천 군수는 관아의 하급 관리들과 결탁하여 조직적으로 왜구와 밀무역을 시도하였으며, 이를 위하여 도예가들을 착취함은 물론이고 몇몇 도예가를 아예 왜에 팔아먹었다고 적혀 있었다.

이런, 말려 죽일 놈들이. 감히 뉘의 백성을 착취하고 팔아먹어! 염병할 후레자식들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괄괄한 성질이 그대로 욱하고 올라왔다. 당장 재환에게 보낼 교지를 휘갈겨 쓰고 있던 도운에게 상선이 조용히 다가왔다.

“전하.”

“무슨 일인가?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나중에 듣겠다! 상선이 보다시피 과인이 지금 매우 바쁘오. 내 이것들의 사지를 그냥!”

“함경남도에서 서신이 한 통 왔사옵니다.”

“함경남도?”

“예, 중전마마께서 보내신 서찰이옵니다.”

중전이라는 말에 도운은 휘갈기던 붓놀림을 잠시 멈추고 상선을 뚫어지게 쳐다봤다. 목판 위에 놓인 서찰을 탐탁지 않게 바라보며 서안을 톡톡 두드리다 결국 서찰을 펼쳤다. 자신의 안부를 묻는 글로 시작된 긴 글이었다. 내용을 모다 읽은 도운은 한숨을 내쉬고는 교지를 마저 써 내려갔다.

늦은 오후, 도운은 잠시 짬을 내어 애류당에 들렀다. 장지문을 살짝 열고 들어가니, 손에 바느질거리를 든 청조가 머리를 꾸벅거리며 졸고 있었다. 손에 들고 있는 것을 보니 아마도 아이의 배냇저고리를 만들고 있던 모양이었다.

회임을 한 이후 청조는 쏟아지는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종종 이리 잠이 들었다. 머리를 꾸벅거리며 잠든 모양새가 어찌나 어여쁜지 도운은 청조의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하염없이 청조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때 머리를 크게 까닥거리다 놀란 청조가 잠에서 깨어났다.

“언제 오셨어요?”

“아까 왔다.”

“그럼 깨우지 그러셨습니까?”

도운은 미소를 한가득 피우고 고개를 살며시 흔들었다.

“부러 깨우지 아니했다. 네가 잠든 모양새가 꼭 파랑새마냥 어여쁘니 내 한참을 보고 있어도 질리지가 않는다.”

“이리 뚱뚱한 파랑새가 어디 있답니까?”

“요기 내 앞에 있지 않느냐? 나의 청조(靑鳥)가.”

도운은 새침하게 웃는 청조에게 입맞춤을 하고는 복스럽게 살이 오른뺨을 살살 만졌다. 청조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다시금 예화의 서찰이 떠올랐다.

‘이제 와 돌이키니, 소인의 죄가 태산의 크기만큼 크고 그 무게만큼 무겁다는 것을 깨달았사옵니다. 분수를 깨달아라, 죄인의 첩지를 환수하지 않은 주상전하의 깊은 뜻을 이제야 이해하겠나이다.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갔다 생각하였는데, 아무도 올려 봐주지 않는 참으로 허울뿐인 중전이었습니다. 허니 그 망극한 칭호로 불릴 때마다, 백만 개의 바늘이 소인의 가슴을 찌르는 듯하옵니다. 실로 부끄러움과 비참함으로 괴롭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사옵니다. 하여 감히 전하께 용서를 구하지는 않겠지만, 일말의 동정이라도 구하고자 서찰을 띄웁니다. 부디 이제 그만 죄인의 첩지를 환수하여 주시옵소서. 이대로 관비로 살다 관비로 소임을 다하며 충실히 살게 해 주시옵소서. 염치없는 소원이나, 죽기 전 오라버니를 한 번만 뵙게 해 주시옵소서. 이 두 가지 청 외에는 아무것도 바라는 것이 없사옵니다.’

진정 예화가 잘못을 깨닫고 쓴 서찰인 것 같았다. 잠시 고민하던 도운은 작게 하품을 하는 청조를 보료에 눕혀 주고는 금침을 잘 덮어주었다.

“서방님, 서방님…… 소첩이 너무 졸립니다. 우리 아기 호랭이가 자꾸만 함께 자자고 소첩을 조릅니다.”

“그럼 호랭이 녀석이랑 잠깐 눈 좀 붙여라. 내 저녁에 다시 들를 것이니, 그때 함께 수라 들자.”

“예, 서방님…… 어디 가지 마시고…… 조금 있다 소첩 보러 꼭 오시어요. 소첩이 서방님 좋아하시는 맛있는 반찬도 집어 드리고…… 잠도 재워 드릴 것입니다.”

“그래, 알겠다. 꼭 올 테니 그때까지 잘 자거라.”

대답도 못 하고 청조는 잠이 들었다. 잠든 청조의 얼굴을 쓰다듬다 금침 사이로 손을 넣어 청조의 둥근 배를 만져 보았다. 하루가 다르게 쑥쑥 커지고 있는 배를 슬슬 어루만지는 순간 강한 태동이 느껴졌다. 아비의 손길을 느꼈는지 뱃속의 호랑이가 앞발을 뻥뻥 차댔다. 처음 느끼는 아이의 존재에 도운은 깊은 전율을 느꼈다.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 없고, 비쭉 비쭉 스며 나오는 웃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어여쁜 아이를 쓰다듬듯, 태동이 느껴지는 부분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도운은 미소 지었다.

“호랭아, 호랭아. 조금만 기다리거라. 이 아비가 너에게 가장 완벽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줄 것이다. 네 어머니와 너를 세상에서 가장 귀한 여인과 아이로 만들어 줄 것이다. 봄에 네가 태어나거들랑 이 아비가 교태전 후원을 구경시켜 주마. 이 아비가 한 손에는 너를 안고, 다른 한 손에는 네 어머니의 손을 잡을 것이다. 계절마다 화원들을 불러다 우리 셋의 다정한 모습을 그려 기록하게 할 것이다. 고것들을 엮어다 화첩으로 만들어 후에 네가 크거들랑 이 아비가 다 보여 줄 것이다. 어떠냐? 기대가 되느냐?”

기대가 된다는 듯, 앞발이 뻥뻥 배를 두드렸다. 강한 태동을 느낀 도운은 혼자 키득거리며 웃다 말을 이었다.

“네가 좀 더 크면 이 아비와 함께 후원에서 봄나물을 캐자. 이 아비가 봄나물을 제법 잘 캐니 너에게도 캐는 법을 모다 알려 줄 것이다. 그것 캐서 네 어머니께 된장 조치 끓여 달라 조르자. 그리고 여름에는 네 어머니를 위해 교태전 후원에 금불초를 심자. 너와 내가 심어 준 금불초를 보면 네 어머니께서 얼마나 기뻐하시겠느냐. 그리고 또 네가 더 크거들랑 가을에는 사냥을 데려가 주마. 사냥 나가서 잡아 온 토끼고기로는 네 어머니께 만두를 빚어 달라 하자. 네 어머니가 끓인 만둣국만큼 맛난 것이 세상에 없다. 또 털은 잘 무두질한 후 배자 만들어 달라 하여 겨울에 함께 입고 다니자꾸나. 네 어머니는 눈처럼 하얀 토끼 잡아다 드리고, 너랑 나랑은 새벽빛 같은 회색 토끼 잡아다가 배자 만들어 입자.”

대답이라도 하는 것인지, 다시 발길질이 뻥뻥 느껴졌다.

“요, 아기 호랭이가 아비 말을 찰떡같이 알아들으니 참으로 기특하지 않느냐.”

도운은 혼자 호탕하게 웃으며 청조의 배를 쓰다듬었다.

* * *

겨우내 얼었던 눈이 녹아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함경도는 여전히 너무 춥고 강풍이 불었다. 추위에 곱아 버린 손을 호호 불어가며 예화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함경도에서도 가장 끝인 함경북도는 자신이 있던 함경남도보다도 훨씬 춥고 척박한 것이 얼어 버린 땅 같았다.

예화는 광산 주위에 모여 있는 관노들의 초가에서 홀로 떨어진 외딴 초가를 찾아갔다. 다 쓰러져 가는 초가의 모습은 초가라기보다는 허술한 움막에 가까웠다. 곧 쓰러질 것만 같은 움막을 바라보니 눈물이 앞을 가렸다. 대충 입구를 막아 놓은 거적때기를 들추자 안에서 콜록거리는 잔기침 소리가 들렸다.

그나마 은을 제련하는 불길에 움막 안이 춥지 않은 것이 다행이었다. 하지만 홀로 은을 제련하는 사내의 뒷모습은 너무 깡마르고 초라했다.

“……오라버니.”

목이 꽉 메인 여인의 소리에 일을 하던 사내의 등이 움찔했다.

“오라버니.”

잠시 멈추어 선 사내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예화는 사내의 얼굴을 보자 손으로 입을 가렸다. 푹 꺼진 검은 두 눈, 두 뺨, 메말라 갈라진 하얀 입술에 백지장만큼이나 창백한 얼굴. 곧 쓰러질 듯 보이는 사내는 자신의 기억 속 오라버니의 모습과 너무 달랐다.

“예…… 예화, 화인 것이냐?”

“예, 화입니다. 오라버니의 누이가 왔습니다.”

“네가 여기는 어떻게…….”

“주상전하께 청을 넣었습니다. 첩지를 환수하고 오라버니를 한 번만 뵙게 해 달라 마지막 청을 드렸습니다.”

“어찌하여 그런 청을! 첩지를 환수하다니! 후일을 기약하려면……!”

“오라버니. 처음부터 저희의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제 그만 욕심을 버리세요.”

눈물을 뚝뚝 흘리며 간청하는 예화의 모습에 결국 익태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모다 예화를 위해서였다. 어여쁜 자신의 누이를 위해서였다. 저자에서 발길질을 당하던 그때, 그 누구도 이 어여쁜 아이에게 발길질을 못 하도록 만들어 주겠다고 머리에 흐르는 자신의 피에 대고 맹세했었다.

겨우 양반 계집아이가 하고 있던 그까짓 댕기가 부럽지 않게, 더 귀하고 화려한 것들로 치장해 주고 싶었다. 국혼을 치를 당시, 예화의 머리 위에서 화려하게 빛나던 금빛 화관에 얼마나 마음이 흡족하였었던가. 가르마 중앙에 놓인 화려한 첩지가 아름다웠었다. 붉은 비취로 만든 여의주를 물고 있는 용잠, 아름다운 떨잠을 누이의 머리에 모다 꽂아주었다. 겨우 그런 댕기 따위가 아닌 모다 값지고 진귀한 것들이었다.

자신의 누이를 가장 고귀한 여인의 자리에 올리고자 많은 죄를 지었지만, 후회하지 않았다. 죄의식도 없었다.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았으니 이제 모다 되었다 생각했다. 누구도 이 아이를 괴롭힐 수 없을 것이다 생각했으나, 자신의 어여쁜 누이는 행복하지 않았었다.

그리하여 그가 더욱 증오스러웠다. 예화에게서 서방을 뺏어간 그 작은 여인이 증오스러웠다. 한데 그것이 다 나의 욕심이었던가. 욕심을 버리라는 예화의 말에 익태는 자신의 안에서 무엇인가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깨달았다. 멍하니 눈물을 흘리는 익태에게 다가온 예화는 그의 앙상한 몸을 안아 주었다.

“전하께 오라버니를 한 번만 뵙게 해 달라 청을 넣었는데, 전하께서 오라버니와 함께 있을 수 있도록 명을 내려 주셨습니다. 이제 이 누이가 오라버니를 보살펴 드릴 것이어요. 지금껏 오라버니께서 해 오신 것처럼, 이제 제가 해 드리렵니다.”

자신을 안아 주는 누이를 마주 안고 익태는 눈물을 쏟아내었다. 납의 사기가 자신의 몸을 천천히 갉아 먹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미 큰아버님께서 돌아가셨다. 제 분을 못 이기고 소리를 지르며 발악을 하던 그는 소리를 지를 때마다 어김없이 장 서른 대를 맞았다. 결국, 쇠약해진 몸은 장독을 이기지 못하고 겨우내 죽어 버렸다.

아버님 역시 겨우내 모진 노동에 힘겨워하다 낙석사고로 치료 한번 변변히 받지 못하시고 목숨을 잃으셨다. 어머니는 몇 년 전 지병으로 돌아가셨고, 관비가 되어 멀리 충청도로 내쳐진 안사람과의 사이에는 정도 자식도 없었다. 이제 자신에게 남은 것은 예화뿐이었다. 차라리 백정으로 살았으면, 몸이라도 건강했을 것을. 몸이라도 건강하여 열심히 일하였으면, 이 어여쁜 아이를 좋은 사내에게 시집이라도 보낼 수 있었을 것을,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것을 볼 수 있었을 것을. 후회의 눈물이 한없이 흘렀다.

* * *

찬란하게 빛나는 청명한 가을에 백성들은 환호했다. 연이어 든 풍년에 곡식은 넘쳤고, 살림은 풍요로웠다.

이른 봄, 어진 임금님께서 결국 악랄했던 중전의 첩지를 회수하시고, 국혼을 무효화시키셨다. 악의 축을 격파하고 왕권을 강화시키니 나라가 튼튼했고, 중전마마께서 백성들을 생각하시는 애민의 마음이 깊으시니 백성들의 삶이 풍요로웠다.

바야흐로 태평성대의 시대였다. 봄에 태어나신 원자마마, 그리고 중전마마와 함께 고양 행궁으로 능행을 떠나시는 왕의 행차가 있었다. 화려하고 긴 행차가 지나갈 때까지 백성들은 땅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고 위엄 있는 주상전하와 아름다운 중전마마의 용안을 한 번이라도 뵙고 싶어 곁눈질을 하느라 바빴다.

그중엔 왕의 용안을 가까이서 뵌 섬골에 사는 막돌의 자신만만한 얼굴이 보였다. 자신을 보고 헛소리를 한다고 지껄이던 놈들은, 이제 와 자신을 볼 때마다 저희들의 입술을 스스로 찰싹 소리가 울리도록 쳐댔다. 막돌은 제 옆에 듬직한 아들들을 데리고 왕의 행차에 환호했다. 그들의 곁에는 도운이 적선을 해 주었던 오누이와 아이들의 부모도 보였다.

깨끗한 무명옷을 입고 서 있는 아이들에게서 예전의 비쩍 곯은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살이 통통히 올라 입을 벌리고 임금님의 용안을 훔쳐보던 아이들의 눈이 놀라움으로 점점 커졌다. 이제 막 돌이 지난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은 그중에서도 가장 놀란 얼굴로 서 있었다. 억억거리다 겨우 숨통이 트인 여인은 곁에 선 서방에게 뭐라 뭐라 큰 소리로 떠들었다. 하지만 환호하는 백성들의 소리에 묻혀 여인이 떠드는 소리는 공중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저 멀리 남루한 차림의 사내가 행차를 바라보고 있었다. 행색은 남루했으나 풍채는 좋았고, 얼굴에는 비루함이 없었다. 오히려 귀티 나는 잘생긴 얼굴에 혈색도 좋았다. 얼마 전 잠시 도성에 돌아온 재환은 환호하는 백성들 사이에 섞여 행차를 바라보았다. 가교 처마에 매달린 흔들리는 아름다운 수실 아래로 청조의 얼굴이 보였다.

원자를 직접 품에 안고 화려한 가교 위에 앉은 여인에게서는 여전히 빛이 흘렀다. 품에 안은 아이를 너무도 귀하게 바라보는 얼굴에선 한층 성숙한 어머니의 다정함이 엿보였다. 앞에서 말을 직접 타고 가던 도운이 가교로 다가서자 가교 안에서 청조가 몸을 내밀었다. 청조의 화사한 얼굴을 바라보다, 잠이 든 세자의 얼굴도 흐뭇하게 바라보며 행차를 이어가던 두 사람이 점점 멀어졌다.

그들의 행복한 모습에 재환은 마지막 남은 마음의 부스러기를 털어내었다. 부디 늘 행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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