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름을 비추는 새벽-22화 (22/25)

외전 _귀가(歸家)

초록은 짙어지고, 햇볕은 부쩍 따가워졌다. 산을 오르던 청조는 손에서 흘러내리는 깔깔한 모시 치마 끝을 다시 한번 잘 말아 쥐고, 구름처럼 부푼 치마를 갈무리했다.

“힘들지?”

“아니요, 아니 듭니다.”

“업혀라. 내가 업고 갈란다.”

“산세가 이리 험한데, 어찌 업고 가신다 하십니까? 힘드셔요.”

“아니다. 업고 가다 힘이 들면 잠시 쉬어가면 된다. 지게꾼도 짐을 지고 오르던 길을 내가 너 하나를 못 업고 갈까 그러하냐?”

“그것이 아니라, 전에도 잘 오르던 길입니다. 어찌…….”

“그건 전이 아니냐.”

망설이는 청조에게 도운이 어서 업히라 등을 내주며 자리를 잡고 앉았다. 여전히 청조가 머뭇거리자 도운은 짐짓 엄하게 타일렀다.

“막녀 뭐하느냐? 얼른 마마 업히시게 도와드리지 않고.”

“예, 전하! 마마, 얼른 업히셔요. 이러다 전하의 다리가 저리시겠습니다.”

곁에서 막녀가 청조의 장옷을 건네받고는 얼른 청조를 부액했다. 청조가 몸을 숙여 도운의 몸에 기대자 도운은 청조를 업고 가볍게 일어섰다.

“무거우시지요?”

“하나도 아니 무겁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어찌 이리 가벼운 것이냐? 좀 더 잘 먹어야겠다.”

“여기서 어찌 더 잘 먹으란 말씀이십니까? 무거우시면 말씀하시어요. 소첩이 걸어갈 수 있습니다.”

“요 여우 같은 마누라가, 또 앙큼한 여우 짓을 하는구나. 네 걸어가겠다고 입으로만 말을 하면서, 이리 업힌 것이 좋아 내 목을 꽉 그러안고 있지 않느냐.”

도운의 농에 청조가 조그만 웃음소리를 내며 그의 목에 두른 팔에 더욱 힘을 주었다.

“예, 좋습니다. 소첩이 서방님의 등에 업힌 것이 너무너무 좋습니다.”

청조의 대답에 도운 역시 맑게 웃었다. 한참을 걸어가자 드디어 저 먼 곳에 목적지가 보였다. 가슴이 심하게 동당거렸다. 산을 내려올 적 닫았던 그 모습 그대로, 싸리문은 굳건히 닫혀 있었다. 도운은 청조를 내려 준 후, 함께 손을 잡고 앞으로 걸어나갔다. 싸리문을 열려는 청조의 손이 저도 모르게 바들바들 떨렸다.

옛 기억이 물밀 듯이 밀려왔다. 꽉 닫아 건 싸리문에 이마를 맞대고 맹세를 남기던 그때의 기억, 막막하고 두려웠지만 굳게 다잡았던 그때의 감정들이 모다 되살아나 청조는 한참 동안 문을 열지 못하고 서 있었다. 청조의 바들거리는 손에 자신의 손을 겹친 도운은 함께 싸리문을 밀어 활짝 열었다.

마당으로 들어서 보니 집안이 엉망이었다. 온통 거미줄과 먼지가 가득 쌓여 있는 초가는 그야말로 흉가 같은 몰골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뺀다면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자신을 달래주던 따뜻한 아궁이의 위치도, 늘 반짝반짝 닦아 놓았던 가마솥의 뚜껑도, 또 함께 앉아 고드름을 먹던 마루와 처마도 그대로였다.

“서방님, 조금만 기다리셔요. 소첩이 금세 집안 소제를 끝마치고 점심 차려 드릴 것입니다.”

“집안 소제는 내 알아서 할 것이니, 부인은 점심이나 차려 주구려. 사실 내가 배가 많이 고프다.”

“시장하셨습니까? 예까지 소첩을 업고 오느라 기력이 쇠하여 그런 게지요. 소첩이 얼른 점심상 봐 드리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리셔요.”

따로 일할 사람을 데려오지 않았으니, 남현은 청을 도와 함께 집안 소제를 시작했다. 집안 소제는 사내들에게 맡기고 청조는 막녀와 반빗간을 대충 정리한 후 음식을 만들었다. 가볍게 산에 오르다 보니 식재료가 마땅치 않았으나 시장이 반찬이라 모다 맛있게 밥그릇을 비웠다.

“한데, 전하. 정녕 이곳에서 두 분만 지내셨사옵니까?”

근자에 살이 통통하게 오른 청이 뺨에 밥풀을 달고 도운에게 믿을 수 없다는 듯 질문을 던졌다.

“그래. 왜, 이상하냐?”

“그것이 아니오라…… 소인이 생각했던 것보다…….”

“생각했던 것보다 무엇 말이냐?”

“너무 무서울 것 같사옵니다. 밤이 되면 산짐승들이 집 안으로 들어오지 않사옵니까?”

청의 질문에 도운은 처음 산에 올랐을 때를 떠올렸다. 어린 나이에 이 산에 올라 어찌나 무서웠는지. 산속에서의 밤은 두려움 그 이상의 것이었다.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칠흑 같은 어둠 속, 멀리서 끊임없이 울리는 산짐승들의 울음소리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유모의 곁에 딱 붙어 달달 떨었었다.

“그래, 내 이 산에서 귀신을 만난 적도 허다하지. 밤만 되면, 이상하게 마당으로 자욱한 연기가 가득 끼어든단 말이지. 그리고 저 멀리서 조그만 여인의 울음소리가 점점 귓가로…….”

“히끅, 그만하시옵소서! 제발 그만하시옵소서! 히끅, 너무 무섭사옵니다. 전하, 소인이 너무 무섭사옵니다.”

청은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고 엎드려 바들바들 떨었다. 딸꾹질을 해가며 달달 떠는 어린 내시의 모습에 남현도 괜히 헛기침을 하며 웃음을 참았다.

“그리 무서우면 밤이 오기 전에 어서 산을 내려가거라.”

도운의 말에 청은 고개를 발딱 들었다. 여전히 뺨에 밥풀을 매단 채로 손사래를 쳤다.

“아니 되옵니다. 소신이 내려가면 전하의 수발은 누가 든다 하시옵니까?”

“유빈이 있으니 괜찮다. 배를 든든히 채웠으니, 이제 남현과 막녀를 따라 산을 내려가거라. 내 유빈과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다 닷새 후에 내려갈 것이니.”

“허나, 전하. 혹 전하를 해하려는…….”

“그런 자는 없네. 혹 그런 자가 있다 하더라도, 내 몸은 내가 지킬 수 있으니 이만 내려가게. 유빈과 둘이 함께 오자 약조를 했던 일이네. 그러니 이번만은 내 뜻에 따라 주게. 청이 너는 내려가는 길에 배가 고프면 네 뺨에 묻은 밥풀을 떼어 먹으면 되겠구나.”

청이 얼른 뺨을 더듬어 밥풀을 떼어냈다. 전하의 곁을 지키는 긍지 높은 소환으로서 이런 추태를 부리다니,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가는 길에 사가에 들려 푹 쉬어라. 그리고 주막에서 닷새 뒤에 함께 만나 궁으로 돌아가자. 알겠느냐? 그대도 이참에 정무를 내려놓고 푹 쉬게.”

결국 마지못해 초가를 떠나면서도, 청은 계속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간 꾸준히 탕약을 달여먹고 좋은 것을 먹어서인지 청은 살도 통통히 오르고, 조금이지만 키도 자랐다. 거기다 맹한 줄만 알았더니 어린것이 어찌나 장사수완이 좋은지, 자신이 개발한 고약을 궁녀들에게 팔아 짭짤한 이문까지 챙기고 있었다.

또한, 이제는 청의 사가에서도 고약을 만들어 재환의 소개로 만난 행수의 객주에 납품을 한다 하였다. 너구리 같은 객주는 도운과 재환을 도와준 대가로 나라에서 독점 인삼판매권을 받아가더니, 이제는 고약의 가치까지 한 번에 알아보고 자신의 객주에서만 독점판매를 하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고약이 사대부 댁 부녀자들 사이에서 점점 인기가 높아지며, 청의 누이는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고 했다. 식솔을 도와 고약을 만들어 팔며 새 삶을 시작하여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고, 청은 조잘거리며 도운에게 이야기하곤 했다. 이야기의 끝에 모든 것은 전하의 하해와 같은 성은 덕이라며 아부를 떠는 것도 절대 빼먹지 않았다. 점점 영악해지는 어린 내시의 모습은 도운을 웃게 만들었다.

모든 이들이 돌아가자 이제야 초가가 조용했다. 도운과 청조는 산을 돌며 방아 잎을 따와 장떡을 부쳤다. 아직 여린 방아로 만든 장떡에서는 애초롬한 향이 강하게 풍겼다. 장떡을 안주로 감주 한 사발을 마시고 간단히 저녁을 먹었다. 둘은 마루에 함께 누워 주홍빛이 물들어 있는 하늘을 바라보며 한적한 한때를 보냈다. 해가 지기 바로 전, 하루의 마지막을 불사르는 듯 서쪽 하늘이 타는 듯 붉게 달아오르더니 곧 어둠이 내려앉았다. 어둠과 함께 초여름의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주위는 어둑했지만, 하늘에 총총히 떠 있는 별들은 밝고 아름다웠다. 별들을 바라보며 청조는 며칠 전 대비마마와 나누었던 말들을 떠올렸다. 벌써 청조가 궁에 든 지 한 해였다. 한데 아직 기쁜 소식이 없으니, 많은 이들이 진심으로 걱정하기 시작했다. 청조가 궁에 들기 전에야 후사가 없음이 당연했지만, 이제 상황이 달라졌다.

미안해하면서도 은근히 후궁 간택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대비의 말씀에, 청조는 그만 눈물을 왈칵 쏟을 뻔하였다. 정화수를 떠놓고 매일 밤을 치성으로 빈다던 친정어머니의 말씀에도 눈물을 삼켰었다. 그리 바라고 정성을 보였는데도 아이를 점지받지 못하였다면, 정녕 자신은 틀린 것일지도 몰랐다.

“며칠 전, 어마마마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안다. 그것 때문에 네가 고민하고 슬퍼하는 것도 안다.”

단단한 사내의 가슴에 안겨 하늘을 바라보던 청조는 곧 도운을 올려다보았다. 근자에 우울한 자신을 달래주려 도운이 산에 오른 것을 알고 있었다. 국사를 논하고 정무를 보기에도 빠듯하신 분이, 모두의 거센 반대를 물리치고 단출하게 인원을 꾸려 산에 오른 것이었다. 지금쯤 왕의 안위를 걱정하는 대신들은 똥줄이 빠지고 있을 것이었다.

“내 너와 가례를 치르기 전 어마마마께 말씀드린 적이 있다. 만일 궁의 예법 때문에 너 하나만을 온전한 지어미로 받아들일 수 없다면 차라리 왕의 자리를 내려놓고 너와 함께 이 초가로 돌아와 살 것이다, 그리 말씀을 올렸느니라.”

“그러시면 아니 되십니다. 서방님께서는 이 나라의…….”

“다 필요 없다. 얼굴도 모르는 자식 놈을 위해 내 귀한 정조를 잃을 수는 없지, 암. 나의 지조를 우습게 보지 마라.”

농인 듯 진심을 말하던 도운이 쿡쿡거리자 그 반동이 청조에게까지 닿았다. 그의 털털한 웃음에 애써 추슬렀던 청조의 마음이 한 번에 무너져 내렸다.

“이 산에서 나와 둘이서만 사는 것이 싫으냐? 왜, 이제 와 궁에서 편히 마마로 살다 산에서 생활하려니 힘이 들 것 같아 그러냐?”

“소첩이 너무 두렵나이다.”

“무엇이? 산에서 사는 것이?”

청조가 도운의 품을 파고들며 그의 가슴에 뺨을 비벼댔다.

“다른 후궁을 보는 것이 너무나 두렵나이다. 기실 서방님께서 다른 여인을 들이실까 너무 두려웠나이다. 소첩, 그리하면 아니 되는 것을 알지만, 서방님을 누구와도 나누어 갖기 싫습니다. 정말 그것만은 못 하겠나이다. 저만의 사내이시니, 저만을 바라보소서. 다른 여인을 그냥 쳐다만 보는 것도 싫습니다. 궁녀에게도, 무수리, 각심이, 의녀도 싫습니다. 소첩 외에 누구에게도 눈길조차 주지 마소서. 너무 싫습니다. 후궁을 보시려거든 차라리…….”

“차라리?”

청조는 말을 잇지 못하고 한참 동안 도운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곧 울 것 같은 촉촉한 눈망울로 그를 올려보다 입술을 깨물었다.

“정녕…… 임금의 자리에서 내려오실 수 있으셔요? 모든 것을 잃어도 소첩을 원망하지 않을 것이어요? 서방님만 계신다면, 평생을 숨어 살아야 한다고 해도 소첩은 무서울 것도 두려울 것도 없습니다.”

도운이 쿡쿡거리자 가슴의 들썩거림이 다시 느껴졌다.

“우리 여우 같은 마누라가 이제야 본심을 말하는구나. 내가 잃을 것이 무엇이 있다 그러느냐. 임금의 자리가 다 무엇이냐. 다 필요 없다. 왕이야 나 말고 누가 해도 되는 것이지만, 청조의 서방은 나 말고는 그 누구도 해서는 아니 될 일이지. 아무렴, 그러니 걱정을 말아라.”

걱정을 말라 하지만 청조의 마음은 여전히 무겁고 무서웠다. 말처럼 모든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더욱 그러했다.

“나 때문일 것이다. 하늘이 나를 벌주는 것이다. 우리가 함께 이곳에서 살 적, 내 너의 신분이 다소 한미하다 하여 씨물을 아니 주려 노력하였지 않느냐. 그리 고얀 마음을 먹었었으니, 그것이 괘씸하여 하늘이 나에게 벌을 주는 것이다. 그러니 마음을 편히 가져라. 하늘이 곧 착한 너를 봐서 나를 용서하시겠지.”

“너무 늦게 용서하시면 어찌합니까?”

“우리 나이가 아직 이리 어리고 젊은데 무엇을 걱정하느냐. 선왕께서도 다 늙어서 나를 보셨다. 늙어서 자식이 생기거든 늦게 얻은 선물이라 기뻐하면 되고, 자식이 없으면 우리끼리 해로하면서 살면 될 것을 무엇이 걱정이냐. 이래도 한세상이고 저래도 한세상이다.”

“그 한세상 자식과 함께하면 더욱 좋겠지요.”

“그래? 네가 원한다니 그럼 오늘 한번 만들어 보자. 산에 올랐으니, 산의 정기를 받은 아이가 나올 것이 아니냐.”

커다란 손이 저고리 아래로 불쑥 들어왔다. 청조의 입안을 헤집던 도운의 혀가 가녀린 목덜미를 핥다, 눈물이 들러붙은 두 눈을 핥아 주었다. 속눈썹에 매달린 이슬 같은 물방울에서 짠맛이 풍겼다. 하늘을 가로지르는 무수한 별빛 아래, 두 남녀의 애정이 열정으로 슬슬 피어올랐다.

* * *

“서방님, 어디 계셔요?”

도운이 어디를 간 것인지 보이지 않았다. 청조는 마루로 나와 서방님을 불러 보았지만, 초가는 고요하기만 했다. 마루에 서서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보는데 활짝 열린 싸리문 뒤에서 누군가가 눈만 슬쩍 내밀고 청조를 훔쳐보고 있었다.

“거기 누구요?”

청조가 섬돌을 내려와 묻자 고개가 쏙 들어갔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자 문 옆으로 까만 눈이 다시 슬금슬금 삐져나왔다. 저것은…… 이마에 검은 줄무늬가 뚜렷하게 王(왕)자를 그리고 있으니 호랑이가 분명했다. ‘王’자가 어찌나 두껍고 선명한지 꼭 먹물로 꾹꾹 눌러 그려 놓은 것만 같았다. 호랑이는 청조를 보는 것이 부끄러운 듯, 영롱하게 빛나는 까만 눈만 빼꼼 내밀었다 숨었다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몸집이 어찌나 큰지 담벼락 너머로 등 털이 비죽비죽 솟아올라 있는 것이 다 보였다. 또한, 나무 몸통만큼이나 두꺼운 꼬리가 팔랑팔랑 흔들리는 것도 다 보였다. 기분이 좋은 듯 꼬리를 양옆으로 휙휙 흔들며 큰 포물선을 그리다, 빼꼼 내민 눈이 청조와 마주칠 때면 위로 바짝 치켜세웠다. 그러고는 기분이 좋은 듯 원을 빙글빙글 돌렸다.

너무 귀엽고 어여뻤다. 덩치는 가히 산군 중의 산군이라 해야겠지만, 그 생김새는 아직 어린 호랑이였다. 그래서일까. 청조는 그것이 호랑이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무섭지가 않았다. 오히려 설렐 정도로 애정이 갔다.

“왜 그러고 있느냐? 이리 들어오너라. 어서, 어서 이리 온.”

후후훗, 여전히 부끄러워하며 숨는 아기 호랑이가 귀여워 웃음이 나 버렸다. ‘무엇이 그리 재미있느냐?’ 저를 깨우는 서방님의 목소리. 청조는 달콤한 도운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눈을 뜨고서도 입가에 달린 미소가 지워지지 않았다.

“무슨 꿈이라도 꾸었느냐?”

“으응? 꿈이요?”

“그래, 네가 무슨 꿈을 꾸었는지 계속 웃고 있었다.”

“으응? 모르겠습니다. 무슨 꿈이었는지 까먹어 버렸습니다. 무척이나 기분 좋은 꿈이었던 것 같은데…….”

“그러냐? 그럼 더 자려무나. 기분 좋은 꿈이 이어질지도 모르니.”

“아닙니다. 일어나야지요. 함께 소풍을 가기로 하였지 않습니까? 어여 소첩이랑 소풍 가시어요.”

둘은 함께 산세를 즐기며 재미난 시간을 보내고 초가로 돌아가던 중 커다란 산뽕나무를 발견했다. 이미 수확 시기를 넘어선 오디가 땅바닥에 가득 떨어져 바닥이 온통 검은 빛이었다. 땅이 온통 검게 뒤덮일 정도로 많은 열매가 떨어졌으나, 아직도 나무에는 탐스러운 오디가 꽤나 남아 있었다.

“서방님, 서방님, 오디 따 주셔요. 소첩이 저것으로 서방님께 과편 만들어 드릴 것입니다.”

망태기를 가져오지 않은 것이 후회되어 고운 아미를 찌푸리다, 청조는 곧 치마를 두 손으로 잡아 그물처럼 활짝 펴들었다. 도운에게 이것도 따달라 저것도 따달라 말을 하자 도운은 청조가 가리키는 오디를 뚝뚝 따기 시작했다.

“서방님, 그 옆에 걸로 따보셔요. 그것이 더 실합니다.”

“요놈 말이냐?”

“예, 고놈 말입니다.”

맑게 울리는 청조의 목소리에 도운은 망설임 없이 오디를 따 청조의 치마에 담아 주고, 청조의 입에도 한 알씩 넣어주었다. 달달한 오디의 맛에 청조는 어깨를 움츠렸다. 치마 한가득 오디를 담아 내려오는 길, 계곡에 들러 도운은 오디로 검게 물든 손을 씻어내었다. 이제 막 봄이 지났을 뿐인데도, 해가 머리 꼭대기에서 반짝거리니 날이 무척이나 더웠다. 손을 씻던 도운은 갑자기 청조에게 다가섰다.

“무얼 하십니까?”

“가만있어라. 애써 딴 오디가 다 떨어지겠다.”

도운은 저고리 아래 치마말기를 풀었다. 오디가 담겨 있던 청조의 치마를 벗겨내 오디를 잘 감싼 후 바닥에 놔두었다.

“이리 와라.”

“어맛!”

도운은 청조를 안고 물이 허리까지 잠기는 곳으로 들어가 함께 물속으로 풍덩 잠겼다 일어섰다. 물을 뒤집어쓴 청조가 얼굴에 흘러내리는 물기를 닦아내고는 익살스럽게 웃고 있는 도운을 바라봤다.

“시원하지?”

“옷이 다 젖어 버렸습니다.”

“금방 마를 것인데 젖으면 어떠하냐?”

청조는 대답 대신 도운에게 물을 튕겼다. 서로가 튕기던 물이 점점 거세지고, 청조의 까르르 웃는 소리와 도운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계곡에 가득 울렸다. 한참을 요란하게 놀다 정적이 찾아왔다. 부쩍 더워진 날씨에 속적삼 없이 저고리만 챙겨 입었더니, 물에 젖은 모시 저고리가 몸의 곡선을 따라 철썩 들러붙었다.

물에 젖은 얇은 저고리 아래로 소복치마말기에 눌린 하얀 젖가슴이 다 비쳐 보였다. 음심을 동하게 하는 여인의 음란한 모습에 도운은 청조의 가는 허리를 끌어당기고 입을 맞추었다. 계곡물에 서늘해진 여인의 살갗에 기분이 더욱 좋아졌다. 점점 더 게걸스럽게 탐하던 입술이 목선을 타고 가슴으로 내려갔다.

마치 얇은 피부처럼 청조의 가슴에 착 달라붙어 있는 저고리 채, 도운은 젖가슴을 힘껏 빨아들이고 깨물어댔다. 참을 수 없는 성욕에 서로의 숨결이 점점 거칠어지며 몸이 엉켜 들었다. 도운은 급히 청조의 옷고름을 풀었으나 물에 들러붙은 저고리를 쉬이 벗기지는 못하였다. 결국, 반만 드러난 청조의 어깨를 입으로 짓이기다, 속치마의 치마말기를 잡아 힘으로 끌어내렸다.

가슴을 누르던 치마말기가 쓱 벗겨지자 그 안에서 풍만한 가슴이 튕기듯 모습을 드러냈다. 차가운 물이 서늘하게 만들어 놓은 젖가슴에 뜨거운 혀가 닿자 청조는 몸을 떨었다. 서로를 거칠게 탐하다, 도운은 청조의 몸을 번쩍 들어 올렸다. 청조의 미끈한 다리가 사내의 허리를 감싸자 도운의 커다란 손이 탱탱한 여인의 엉덩이와 허벅지를 단단히 받쳐 들었다.

도운은 청조에게 입을 맞추며 천천히 물 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 옛날 겁탈하듯 청조를 안았던 바위에 청조를 내려놓고서도 쉬지 않고 입을 맞추었다. 농밀한 입맞춤을 계속하며 바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은 청조의 다리를 벌리고 그사이를 천천히 밀고 들어갔다. 예고 없는 갑작스런 침입에 청조가 힘겨운 신음을 뱉었다. 도운에게 매달려 잠시 몸을 굳혔던 청조는 곧 손으로 바닥을 짚고, 몸을 살짝 뒤로 젖혀 자세를 잡았다.

“괜찮으냐? 힘들지 않느냐?”

청조가 고개를 흔들자, 도운은 남은 양물을 천천히, 그러나 끝까지 밀어 넣었다. 아직 준비되지 않은 좁은 길을 트며 느릿하게 지나가는 거대한 움직임에 청조는 입술이 말랐다. 생생한 날것이 휩쓸고 지나가는 원초적인 감각과 거친 압박감에 숨이 막힐 듯 고통스러우면서도 가려운 듯한 묘한 쾌감에 허리가 뒤로 바짝 휘었다. 감질날 정도로 느릿느릿했던 침입이 마침내 끝에 다다르자, 배 속과 아래가 가득 차는 느낌이었다. 청조는 도운의 몸통에 다리를 감아 그를 바짝 끌어당겼다.

“아, 아흑.”

청조의 둔부를 터뜨릴 듯 힘껏 잡은 도운이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그의 움직임이 빨라질수록, 청조의 허리가 큰 곡선을 이루며 몸이 한껏 뒤로 젖혀졌다. 몸을 뒤로 젖힐수록 팽팽하게 부푼 젖가슴은 도운을 향해 그 존재를 과시했다. 도운은 자신을 향하여 출렁거리는 젖가슴을 한 손에 꽉 쥐어 잡고 입속으로 삼켰다.

참기 힘든 쾌락에 청조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가슴을 희롱하면서도 아래를 쳐대는 힘은 더욱 거세졌다. 바위를 짚은 손에 더욱 힘을 준 청조는 자신의 아랫도리를 앞으로 힘껏 내밀며 도운의 가열찬 움직임을 버티고 또 버텼다. 이윽고 절정의 순간이 다가오자, 도운은 청조의 몸을 꽉 끌어안고 아래를 더욱 밀착시켰다.

“하아, 하아.”

사내의 단단한 가슴에 몸을 기댄 청조는 거친 숨으로 들썩거리는 도운의 가슴을 따라 자신도 함께 밭은 숨을 내쉬었다. 몸을 씻겨 주겠다며 청조를 안고 계곡물로 들어간 도운은 결국 또다시 청조의 젖가슴을 물었다. 조금 전 절정을 느꼈던 여인의 몸은 조그만 자극에도 쉽게 달아올랐다. 흥분으로 단단하게 일어선 젖꼭지를 강하게 물자, 청조의 코에서 ‘아으흥’ 하는 교성 소리가 길게 흘렀다.

초가로 돌아오는 길, 청조를 업은 도운의 손에 이제는 보따리가 되어 버린 청조의 치마가 들려 있었다. 도운은 등에 업혀 잠이 든 청조의 젖어 버린 옷을 벗겨 준 후, 조심스럽게 이부자리에 눕혀 주었다. 곧 반빗간에 들어 뜨거운 물을 떠 와 청조의 서늘한 몸을 닦아 주었다. 날이 더워지긴 했지만, 아직은 밤바람이 서늘한 계절이었다. 혹 찬물에 오래 담갔던 몸에 감모라도 들까 걱정되어 도운은 몸을 따뜻이 해 준 후, 이불을 꼼꼼히 덮어주었다.

도운이 젖은 옷을 벗겨 주고 따뜻한 수건으로 몸을 다 닦아 주는 동안에도 청조는 미동도 없이 잠만 잤다. 무슨 좋은 꿈을 꾸는 것인지, 아니면 잠이 달콤한 것인지 엷게 미소까지 짓고 있었다. 도운은 미소 짓는 청조의 입술에 입맞춤을 남기고 이불을 덮어 준 후 방을 나섰다.

‘왜 아니 들어오고 그러고 있니? 응? 어서 들어오렴.’

눈만 빼꼼 내밀던 호랑이는 이제 얼굴 전체를 문 안으로 들이밀고 청조를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나도 귀여운 미소로 부끄러워하며 청조를 바라봤다. 표정이 없는 짐승이 어찌 미소를 짓겠냐 하겠지만, 실로 호랑이의 입술 끝이 웃고 있는 듯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그렇게 살포시 미소 지으며 여전히 부끄러운 듯 머리를 내밀었다 숨었다 하고 있었지만, 담벼락 위로 미처 숨기지 못한 꼬리가 여전히 원을 그리며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후후후, 괜찮으니 어서 이리 와보렴.’

오늘은 앞발이 싸리문 안까지 들어왔다. 발이 어찌나 큰지 커다란 바윗덩어리 같았다. 다음날 계속된 청조의 부름에 드디어 호랑이가 우물쭈물 거리며 마당으로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집채만 한 몸이다 보니, 단 세 걸음 만에 청조의 앞에 섰다. 가까이서 보니 호랑이는 더욱 커 보였다. 호랑이의 몸집이 마당을 가득 채울 정도였으니, 과연 산군이라 할 만했다.

청조는 자신을 내려다보는 호랑이를 올려보다 손을 들어 뺨을 쓰다듬었다. 청조의 손길에 호랑이는 그 커다란 몸으로 애교를 부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머리를 만져 달라 청조의 손에 대고 머리를 비비적거렸다. 청조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이제는 배를 보이고 바닥에 누워 몸을 배배 꼬았다. 갸르릉 소리와 함께 몸을 꼬아대는 모습이 너무 어여쁘고 소중해 청조는 호랑이의 배도 쓰다듬어 주었다.

털이 어찌나 보드라운지, 청조는 호랑이의 배에 자신의 뺨을 비볐다. 청조가 배에 뺨을 비비자 신이 난 호랑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청조의 무릎을 베고 발랑 누워 까만 눈으로 청조를 올려다보았다. 인왕산 바위만큼이나 커 보이는 얼굴이 무릎 위에 올라왔지만, 신기한 것이 하나도 무겁지 않았다. 청조는 두 팔을 벌려 호랑이의 얼굴을 껴안았다. 두 팔이 모자랄 정도로 큰 얼굴을 껴안고 보드라운 털에 뺨을 비볐다.

‘홀로 너무 오랫동안 기다렸습니다. 얼마나 외로웠는지 모릅니다. 이제 저도 데리고 가셔요.’

청조는 문득 잠에서 깨어났다. 분명 아이 목소리였다. 어찌 말 못 하는 짐승이 사람의 말을 한단 말인가? 참으로 이상하였다. 청조는 자리에서 일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동이 트고 있는지 사위가 잿빛이었다. 그러고 보니 산에 올라 며칠째 호랑이 꿈을 꾼 듯했다. 그중에서도 어젯밤 꿈은 너무 생생했다. 그 보드라운 털의 감촉이 아직도 손끝에 느껴지는 것만 같아 청조는 손바닥을 펼치고 바라보았다.

조반을 간단히 먹은 후 청조와 도운은 초가를 나섰다. 밖에서 초가의 모습을 하나하나 눈에 아로새기고 싸리문을 단단히 걸어 닫았다. 언제 다시 올 수 있을지 모르니 마음이 애잔했다. 미련이 남은 듯 청조가 손끝으로 싸리문을 더듬자 도운은 청조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다음에 또 올 것이다. 나중에 아들놈이 태어나거든, 선위를 하고 너랑 나랑 이곳에 들어와 살아도 되고.”

도운의 말에 청조는 방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곤 함께 뒤를 돌았다.

“가는 길에 저잣거리 구경 실컷 하고 돌아가자. 내 장에 가서 너에게 어여쁜 비녀 하나 사줄 것이다.”

“정말이셔요?”

“정말이지.”

“그럼 비녀하고, 엿가락도 하나 사주시렵니까? 오늘따라 소첩이 달달한 엿가락이 먹고 싶습니다.”

“뿐이랴, 네가 원하는 것 모다 사줄 것이니 다 말하여라.”

호언장담하는 도운의 손을 꼭 잡고 내려가는 길, 청조는 문득 자리에 멈춰 섰다.

‘이제 저도 데리고 가셔요. 또 저만 남겨 두고 가시면 아니 되십니다.’

문득 어젯밤 꿈에 들었던 호랑이의 목소리가 저를 부르는 듯했다. 산을 내려가던 청조는 이상한 기분에 뒤를 돌아 초가를 바라본 후, 자신도 모르게 배를 쓰다듬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