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새벽에 뜬 구름
“도승지 영감 말씀이온데, 자객을 만났다 하심은 거짓이옵니다. 지금 그 댁에 난리가 났사옵니다.”
“그게 무슨 말이냐?”
“그것이 집안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간 들락날락하던 무사들이 꽤 소란스러웠던 날이 있었다 지난번 말씀 올렸지 않사옵니까? 그런데 사흘 전에 또 무사 하나가 다급히 영감의 집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후 도승지 영감께서 무엇에 역정이 나셨는지 이렇게 무서운 얼굴을 하시고.”
청은 작은 얼굴에 인상을 그려가며 익태 흉내를 내고는 다시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화가 나신 듯 밖으로 나오셨습니다. 하여 소인이 영감 뒤를 따라 기방으로 들어가시는 것을 보았사옵니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
“그것이…….”
청은 갑자기 몸을 웅크리고 눈동자를 굴려 가며 도운을 빠끔히 훔쳐보았다. 감히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것이…… 그 기방에 찬모로 일하는 여인을 희롱하셨다고…… 그래서 희롱당하던 여인이 도승지 영감을…….”
“뭐라? 그가 무얼 해?”
“주,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도운의 표정이 엄하게 변하자 청은 바짝 엎드리며 죄를 고하였다. 사대부가의 양반을 괜히 추문으로 몰고 갔다 불경죄를 물어 도리어 제가 치도곤을 당할 수 있었다.
“너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다. 도승지가 정말 찬모를 희롱했느냐? 확실한 것이냐?”
“예, 전하.”
어찌 그자가 그리 파렴치한 짓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늘 고매한 선비처럼 굴던 그자가. 문득 제가 아는 익태의 모습이 몹시 의심스러웠다. 그가 보낸 지게꾼은 늘 일부러 그러기라도 하듯,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식량을 가져다주었었다. 험한 산길이라 무거운 짐을 나르기가 여의치 않다, 눈이 너무 내려 산에 오르는 길이 모다 막혀 버렸다며 변명을 했지만, 도운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그가 일부러 그리한 것을.
지게가 무거우면 두 명, 세 명의 노비가 지게를 지고 오르면 된다. 눈이 문제이면 겨울이 오기 전 식량을 바지런히 날라다 놓으면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영의정의 집안은 늘 정해진 날, 최소한의 식량만 보냈었다. 어린 시절 그런 부분을 따지려 한 적이 있긴 했었지만, 구걸하는 듯한 모양새가 구차하여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이제 와 돌이켜 보니, 그런 것 또한 그의 이중적인 모습의 한 단면이 아니었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도움을 주는 척하면서 그와 그의 가문에게 꼼짝없이 기대게 하는 기술이었다. 마치 자신을 천천히 길들이듯이.
“그리고, 전에 알아보라 하셨던 기와집 말씀이옵니다.”
생각에 빠졌던 도운은 미성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래, 그 기와집에 사는 이가 누구인지 알아냈더냐?”
“그것이 참으로 이상하옵니다.”
“뭐가 말이냐?”
“소인이 도승지 영감을 따라 그 기와집 앞을 두어 번 더 다녀왔사옵니다. 헌데, 영감이 그 기와를 방문하는 날, 다른 대감들도 그 가택을 방문하는 것을 보았사옵니다. 주위에 사는 이들에게 물었으나, 가택의 주인을 아는 자를 도통 만날 수가 없었사옵니다. 조금 더 말미를 주시면…….”
“그래, 너무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다. 수고하였다.”
들을 만한 것을 모다 들은 도운은 자리에서 일어서 직접 문고리를 잡았다. 문을 열려는데 문득 익태의 일이 궁금했다. 그저 아주 작은 사소한 호기심에 마음이 변덕을 부렸다.
“그래, 그날 도승지는 어찌 되었느냐? 이렇게 등청을 못 할 정도로 많이 다쳤더냐?”
“그것이 머리에 면포를 칭칭 동여매신 도승지 영감이 노비의 부액을 받으시어 사인교에 올라타는 것을 보았사옵니다. 그리고 바로 집으로 들어가셨사옵니다.”
“머리에 면포를 둘렀다? 그럼 머리를 다쳤더냐? 아낙을 희롱하다 머리를 다쳤다니, 그 찬모가 이마로 들이받기라도 하였다느냐? 그 아낙 머리통이 너만큼이나 단단한가 보구나.”
참으로 우세스러운 이야기에 도운은 빈정거리며 헛웃음을 지었다. 그 상놈에 그 종놈이었군. 예전 청조를 희롱했던 지게꾼 생각에 울컥 짜증이 올라왔다. 감히 저까짓 놈이 뉘를 탐을 내. 점점 선명해지는 당시의 기억에 짜증이 역정으로 바뀌어 갈 때쯤, 청의 목소리가 도운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아닙니다. 그것이, 그 여인이 눈을 찔렀다 하옵니다. 그나마 운이 좋아 눈을 비껴갔으나 관자놀이 부근에 크게 상처를 입으셨다 하옵니다.”
뭔가 기분이 묘하였다. 하필 눈을 찔렀다니. 도운은 잡고 있던 문고리에서 손을 떼고 청을 빤히 바라봤다.
“눈을? 무엇으로 찔렀다 하더냐?”
“그것이 은장도로 찔렀다 하였사옵니다. 기생들이 떠드는 소리가 어찌나 큰지 담벼락을 넘어 소인의 귀에까지 다 들렸사옵니다.”
“은……장도? 지금 은장도라 하였느냐!”
“예? 예에…….”
갑작스런 도운의 고함에 청은 목을 움츠렸다. 도운은 목이 사라질 듯 움츠린 청의 어깨를 으스러트릴 듯 부여잡았다. 어깨를 죄어오는 도운의 악력에 청의 몸이 점점 더 움츠러들었다.
“그 여인 이름이, 이름이 뭐라 하는지 들었느냐?”
“그것은…… 잘 기억이…….”
“혹여 청조, 청조라 하지 않더냐? 아니, 그이의 얼굴을 네가 봤느냐? 혹 전날 무사들이 들고 있던 용모파기에 그려진 얼굴을 닮지 않았더냐? 응? 어서 대답을 하거라! 아니다, 그 여인, 그 여인은 지금 어디 있느냐!”
고함을 질러대는 도운의 눈이 시뻘겋게 물들고 있었다. 처음 보는 도운의 무서운 모습에 청의 몸이 덜덜 떨렸다. 자신이 무슨 대답을 잘못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대답 없이 덜덜 떨기만 하는 청을 도운은 탈탈 흔들어 댔다.
“대답하지 않고 뭘 하느냐!”
“그것이 생각이 잘…….”
“생각을 잘해 보아라. 그 여인 지금 어디 있느냐! 어디에 있느냐!”
“의금부에서 달려와…… 그 여인을 추포해 갔습니다. 그, 도승지 영감께서도 오늘 낮에…… 의금부를 다녀…… 다녀오셨는데…….”
“의금부?”
도운의 무시무시한 눈빛에 압살 되어 버릴 것만 같아 청의 공포감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이름을 떠올리지 않으면 경을 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불현듯 머릿속에 불쑥 이름 하나가 떠올랐다.
“예, 그리고…… 이름은…… 이름이…… 아, 서가! 서가 여인이라 하였습니다.”
다급한 청의 대답에 작은 어깨를 흔들던 도운의 손이 툭 하고 아래로 떨어졌다. 지난날 자신이 청조에게 은장도를 건네며 당부했던 말이 떠올랐다.
‘다음에도 불미스런 일이 생기거든 이 은장도로 상대의 눈을 망설임 없이 찌르거라.’
은장도, 눈, 그리고 서가 여인, 서가…… 서청조. 아찔함에 비틀거린 도운은 다리에 힘이 풀려 풀썩 주저앉고 말았다. 아주 잠깐 멍하니 앉아 있던 도운의 눈에 곧 숨길 수 없는 살의가 어리는 것을 발견한 청은 안절부절못하였다.
“저, 전하. 괜찮으신 것이옵니까?”
“앞장서거라. 의금부로 갈 것이다.”
“예? 곧 인정이 울릴 이 늦은 시각에 말이옵니까?”
“앞장서거라!”
“예! 예, 소인이 앞장설 것이옵니다.”
금일 누구 하나 분명 작살이 날 것이다. 청은 도운의 무시무시한 살기에 서둘러 방문을 열고 버선발로 뛰어 내려와 섬돌 위에 놓인 도운의 태사혜를 잡아 주었다. 무시무시한 살의를 풍기며 주막을 나서는 도운의 모습에 내금위장 남현은 영문도 모른 채 왕의 뒤를 따랐다.
“뉘시오, 이 시간에. 조금 있으면 인정이 울리는 것 모르십니까? 뉘신 지는 모르겠으나 바삐 돌아가셔야 할 것입니다.”
“당장 문을 열거라.”
의금부의 육중한 문을 지키고 서 있던 나졸들이 도운의 출입을 막아서자, 도운의 곁을 지키던 남현이 그들을 저지했다. 호위무사로 보이는 자가 주는 위압감에 나졸들은 주춤했다. 그의 손에 쥔 검은 저들 같은 이가 평생 만져 볼 수 없을 정도로 진귀해 보이는 것이었다.
“당장 문을 열라 했다!”
세가 높아 보이는 당당한 사내들의 모습에 결국 서로 눈치를 보던 나졸들은 굳게 닫힌 출입문을 열었다.
“여인들의 옥사가 어디냐? 옥사로 안내하고 이곳 지사를 당장 데려와라!”
버럭 소리를 지르는 도운의 위엄에 나졸들은 지사를 찾아 바삐 움직였다. 도운은 지사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옥사로 향하였지만, 어찌 된 일인지 옥사 앞을 지키고 서 있어야 할 나졸들이 기절해 있었다. 둥둥, 다급한 마음이 북을 쳤다. 도운은 빠르게 안으로 들어가 주위를 살폈다. 퀴퀴한 옥사로 들어서자 여기저기서 청결하지 못한 냄새와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청조야, 어디 있느냐! 내가 왔다, 청조야, 내가 왔어. 어디 있는 것이냐! 청조야, 청조야…….”
미친 듯이 두리번거리며 옥사를 훑던 도운은 검을 빼 들고 한 옥사에서 튀어나오는 사내와 맞부딪혔다. 복면을 쓴 사내의 너머로 보이는 옥사 안에 작은 여인이 웅크려 있는 것이 보였다.
“누구냐!”
곧 남현의 날카로운 검이 복면을 쓴 사내와 대치했다.
“비켜서라! 어서!”
검을 쥔 손에 힘을 꽉 주던 사내는 도운을 알아본 듯 곧 검을 힘없이 떨어뜨렸다. 무시무시한 눈으로 사내를 노려본 도운은 곧바로 옥사 안으로 들어갔다. 핏물에 절은 작은 여인의 뒤태가 눈에 익었다. 분명 청조였다. 겨우 청조의 몸을 안아 일으키자 고통스러운 듯 청조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작은 신음이 흘러나오는 입술은 온통 피딱지로 변해 있었다.
“이것이…… 대체…….”
너덜너덜한 청조의 모습에 도운은 눈물이 왈칵 올라왔다.
“청조야. 아, 청조야…… 대체 이것이…….”
“제발 여인을 놔주십시오, 전하.”
무릎을 꿇은 사내가 청하는 소리에 도운의 날카로운 눈이 사내를 향했다. 복면을 쓴 남자가 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었다. 대체 이자가 누구기에, 청조에게 다른 사내가 있다던 익태의 말이 잠시 머리를 스쳤지만, 곧 지워 버렸다. 그런 조악한 술수에 넘어가 청조를 이렇게 만든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온몸을 휘감았다.
“네가 누구인데, 감히 네까짓 것이 무엇인데! 대체 청조에게 무슨 짓을 하고 있었느냐!”
곁에 서 있던 남현이 사내의 복면을 벗기자 재환의 맨 얼굴이 드러났다. 그의 얼굴을 확인한 남현의 얼굴이 굳어 버렸다.
“말을 하라. 네놈은 누구냐?”
“전하, 이자는…….”
“그대가 아는가?”
남현이 주위에 있던 나졸과 청을 보곤 도운의 귓가에 대고 속삭였다. 그때 부름을 받고 달려 온 지사가 다가오자 남현은 얼른 복면을 다시 재환의 얼굴에 씌웠다.
“대체 뉘시기에 감히 이 시각에 의금부를 침범한단 말이오! 당장 신원을 밝히시오. 그대가 어느 댁 자제인지는 모르겠으나 이 사태에 대하여 책임을 피하긴 어려울 게요! 내 그대의 죄를 엄히 물을 것이오! 뭐하느냐! 어서 저자들을 포박하고 죄인을 당장 다시 하옥하라!”
“그 입 다물라! 감히 뉘를 보고 죄인이라 하느냐! 네까짓 것이 나를 포박한다 하였느냐? 오냐, 어차피 죽은 목숨이 될 것이니 그 전에 네 할 수 있는 말을 맘대로 지껄여 보거라.”
“뭐? 이런 고얀!”
부들거리는 지사에게 다가간 남현이 그의 귓가에 차갑게 소곤거렸다. 흑립 아래 도운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던 지사가 침을 꼴깍 삼켰다. 아직 수염도 없는 젊은 사내에게서 뻗어 나오는 무시무시한 기운에 지사는 온몸의 피가 발바닥으로 쭉 빠져나가는 듯 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
“무엇하고 있느냐! 당장 여인을 눕힐 방으로 안내하고, 의원을 대령해라!”
쩌렁쩌렁 울려대는 도운의 고함에 지사가 덜덜 떨며 겨우 발걸음을 떼었다. 지사가 안내한 방으로 들어 청조를 금침 위에 내려놓은 도운은 그제야 환히 들어오는 청조의 모습에 눈을 질끈 감았다.
다 죽여 버릴 것이다. 다 죽여 버릴 것이야!
밖에서 덜덜 떨고 서 있는 지사 놈부터, 청조에게 이리 매질을 한 놈까지, 아니 이곳으로 끌고 온 놈들까지 다 죽여 버릴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익태 그놈을 잡아다 사지를 거열 한 후 젓을 담아 개들 먹이로 내다 버릴 것이다. 그놈의 살을 먹은 개새끼들까지 모다 잡아 죽여 버린 후, 저자 한복판에 묻어 버릴 것이다. 산산이 나눠진 온몸이 개새끼들 안에 갇힌 채, 백성들의 발에 밟히며 그 혼백이 영원히 고통 받게 할 것이다.
청이 곧바로 들여온 따뜻한 물로 도운은 직접 청조의 얼굴과 몸을 정성스럽게 닦아 주었다. 부드러운 면포가 지나갈 때마다 가느다란 신음이 계속 흘러 나왔다. 도저히 닦아낼 수 없을 만큼 뭉개진 허벅지를 보자 도운은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참았지만 결국 울분이 터졌다. 도운의 명에 따라 청은 새빨갛게 변한 핏물을 작은 발을 동동거리며 몇 번이나 갈아 왔다.
“의원은 아직 안 왔느냐!”
성마르게 물어오는 도운의 외침에 청의 입안이 바짝 말랐다. 그때 마침 도착한 의원의 모습에 청은 반색을 하며 고했다.
“예, 예, 의원 들었사옵니다.”
의원은 청조를 이리저리 살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새살이 돋는 것을 봐야 알 수 있지만, 뼈가 너무 상하였으면 평생 다리를 못 쓸 수도 있습니다. 허나 지금은 그것을 걱정할 때가 아니오라…….”
“무엇이냐?”
“병자의 상태가 이 정도면 장독이 올라…….”
“고치거라. 다른 말은 다 필요 없으니 무조건 고치거라. 만약 이 여인이 일어나지 못한다면 그때는 너도 죽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죽는 것이다. 도운은 머리를 감싸 쥐다 청조만 하염없이 바라봤다. 속에서 복받치는 감정을 주체하기가 너무나 힘들었다.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온 도운은 덜덜 떨며 서 있는 의금부 지사를 향해 곧장 다가섰다. 곁을 지키고 서 있던 남현의 손에 들린 검집에서 검을 쭉 빼 들었다. 시리도록 빛나는 검이 지사의 목을 위협했다.
“죄 없는 여인을 저리 만들라고 내가 너에게 그 지위를 주었다 생각하느냐?”
“송, 송구하옵니다, 전하. 하지만 저 여인이 도승지를 해하고자, 으헉!”
눈 깜짝할 새에 지사의 몸이 바닥을 굴렀다. 금세 핏물로 얼룩진 어깨를 감싼 채 지사는 신음도 제대로 못 내며 두려움에 덜덜 떨었다. 도운은 몸을 한껏 웅크린 의금부 지사를 향해 허리를 숙여 얼굴을 가까이 대었다.
“아프냐? 겨우 이 정도에 아프냐!”
“송……구하옵니다. 용,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여인이 누구를 해하고자 함이었더냐? 정조를 지키고자 한 짓과 그렇지 않을 짓을 구분 못 하고 저리 만들어 놓고는 뭐라? 누구를 해하려 했다고? 너처럼 덜떨어진 놈이 의금부 지사라고 자리를 잡고 앉았으니, 그간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억울하게 죽어 나갔겠느냐!”
“그…… 그것이…….”
“말해 보거라. 저 여인이 이곳에 온 지 얼마나 되었느냐?”
“사, 사흘째이옵니다.”
“사흘째인데 여인이 어찌 저리되었느냐? 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하루에 장 삼십 대를 넘길 수 없으며, 고신을 행한 후 사흘 안에는 다시 고신을 할 수 없도록 국법이 정해 놓고 있다! 헌데 죄도 없는 여인의 주리를 틀고 그것도 모자라 장을 쳐? 앞장서서 국법을 지키고, 국법을 행하고 심판하는 데 있어 그 공정함을 잃어선 안 되는 것이 너의 자리다. 헌데! 지엄한 국법 하나 제대로 지키지 않고, 시시비비를 가리는 데 있어 그 기준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네까짓 것이 과연 이곳을 지킬 자격이 있는 것이냐!”
벌벌 떨던 지사는 차가운 돌바닥에 머리를 조아리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제 자신은 죽은 목숨이었다. 저 눈빛만으로도 자신을 태워 죽일 것 같은 젊은 왕의 노여움으로부터 도저히 살아날 구멍이 없어 보였다. 시퍼런 검이 다시 지사의 목을 겨누었다.
“부디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그것이 아니옵니다! 도, 도승지 그자가 그리 시켰사옵니다. 여인을 벌하는 것을 보고자 이곳을 찾아오니 소신이 달리 선택의 길이 없어…….”
“그자가 무얼 어찌하였다고?”
“바로 오늘 도승지가 찾아왔사옵니다. 자신을 이리 만든 여인을 가만두지 않겠다 펄쩍 뛰더니, 소신에게 여인의 서방이 누구인지 캐물어라 그리 시켰사옵니다. 분명 서방에 대해 답하지 못할 거라 이르며, 얼마 전 달아난 역적과 관계가 있을지도 모른다 하였사옵니다. 소신, 도승지의 말을 듣고 역적을 잡아 공을 세우고자 하는 마음에…….”
“그저 공명심을 위하여 죄도 없는 여인을 저리 쥐어짰단 말이냐!”
“그…… 그것이 아니라…… 도승지의 뒷배에 영의정 대감이 있는지라. 소신은 뚜렷이 거절할 명분이 어, 없는…….”
“명분이 없다? 그것이 말이 되느냐! 의금부가 뒷배 있는 놈들의 사주나 받아 죄 없는 이들을 고문하는 건달패 소굴이더냐! 백성을 위한 현명한 판관이 되어야 할 놈이 백성을 쥐어짜는 더러운 탐관이 돼? 이놈을 당장 끌고 가 하옥하라. 그곳에서 네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고 있으라. 곧 땅바닥에 떨어진 네 눈으로 네 몸을 마주 보도록 만들어 줄 터이니.”
“저, 저, 전하! 억울하옵니다. 부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도승지가 시키었습니다. 그런 것이옵니다! 소신은 정말 억울하옵니다!”
끌려가면서 소리치는 지사에겐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도운은 섬돌 위로 올라섰다.
“그놈을 끌고 와. 청조를 데려가려 했던 놈.”
도운의 한마디에 끌려온 재환은 도운의 등을 바라보며 무릎을 꿇고 앉았다. 잠자리 날개마냥 아른거리는 발 건너로 희미하게 보이는 사내의 등이 사뭇 의아하였다. 여인만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이 과연 여인이 걱정이 되어 바라보는 것인지, 아니면 여인을 어찌할지 고민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사내의 의중을 알 수 없는 재환의 마음은 까맣게 타들어 갔다.
그만큼 사내의 등에선 정확한 의도나 감정, 그 무엇도 읽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쭉 계속되는 정적을 깨고 등을 보인 사내에게서 낮고도 짙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왜 청조를 빼내려 했느냐? 네가 청조를 어떻게 아느냐?”
“부상을 입은 채 깊고 차가운 물길에 떠내려가던 소신을 구해 주었사옵니다.”
“너를? 청조가?”
“예, 전하. 소신, 석 달 전쯤 추세꾼에게 몰려 칼부림 끝에 부상을 입고 깊은 물 속으로 빠졌사옵니다. 그때 옆을 지나던 여인이 위험을 무릅쓰고 저를 구해 주었사옵니다.”
담담히 대답하는 재환의 눈빛은 고요했지만 조용한 분노를 담고 있었다. 그런 불경한 눈빛으로 도운의 뒷모습을 가만히 노려보았다. 비록 정실부인은 아니라지만 한때 본인의 여인이었던 곱고 선한 여인을 죽이려 하고, 간신과 충신을 구분하지 못하여 제 일가를 박살 낸 왕이었다.
이제는 저보다 지체 높은 제 귀한 누이와 조카를 가두고 모욕을 주는 사내지만, 또한 여전히 충성을 바쳐야만 하는 주군이었다. 주종관계가 가져오는 이 모순된 상황에 마음을 하나로 갈무리할 수 없는 재환은 그저 원망스런 주군의 등만 고요히 노려보았다.
“청조와 너의 사이에 내가 알아야 하는 무슨 일이 있더냐? 나에게 왜 여인을 놓아달라고 했느냐?”
“그것은 전하께서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으시옵니까?”
“내가 무엇을 알고 있단 말이냐?”
“저 여인을 해하려 살수까지 동원하셨지 않사옵니까? 두 해 전, 우연히 살수에 의해 죽임을 당할 뻔했던 여인을 소신이 구해 준 적이 있사옵니다. 그리고 스무날 전, 또다시 여인을 찾는 살수들과 소신 사이에 칼부림이 있었사옵니다. 모두 도승지 영감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을 이용하여 여인을 죽이려 하지 않으셨습니까?”
젊은 왕의 넓은 등이 순간 경직되는 듯 보였으나, 여전히 아무 미동도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여전히 알 수 없기에 재환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도승지가 청조를…… 그리했단 말이지.”
이를 갈며 무섭게 읊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 방에 들어와 처음으로 왕이 감정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여인에 대한 왕의 심중이 따로 있었던 것은 아닐지. 제가 미처 깨닫지 못한 여인에 대한 마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닐지, 재환의 마음이 흔들렸다.
“나가 있으라. 내 너를 따로 부를 것이니, 그때까지 기다리거라.”
“송구합니다만, 전하. 소신 한 가지만, 단 한 가지만 여쭈어볼 수 있도록 허하여 주시옵소서.”
“뭐냐?”
“여인을 어찌하실 것이옵니까? 설마 이대로…….”
“나의 여인이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단 한 순간도 나의 여인이지 않은 적이 없다.”
도운은 어수를 들어 까칠한 청조의 뺨을 너무도 소중히 쓸어 주었다. 처음 산에 올랐을 때의 청초했던 청조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때, 왜 나는 너에게 그리 모욕을 주었는가. 처음부터 나만을 바라보고 험준한 산에 올랐던 순수한 너를 왜 몰라보았는가. 처음부터 나만을 너의 사내라 믿고 순결을 바친 너에게 어찌 그리 참혹한 첫 기억을 안겨 주었는가 말이다. 네가 인간이냐? 너 같은 것이 진정 만인지상이냐? 하물며 금수도 제 짝을 알아보고 서로를 아끼거늘. 이 천하의 빌어먹을 놈!
꽉 쥔 주먹이 부르르 떨리더니 도운의 고개가 푹 떨어졌다. 괴로운 듯 이마를 감싸고, 굽어 버린 등을 들썩거리는 사내의 뒷모습에서 이제는 많은 감정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아’, 긴 한숨 끝에 곧 사라질 것만 같은 애처로운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만 물러가거라.”
재환은 대답 없이 고개만 숙여 예를 다 한 후 방을 빠져나왔다. 어차피 대답을 하여도 저 사내에게 들리는 말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밖을 나와 남현과 마주친 재환은 애잔하게 저를 바라보는 오래전 상관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분을 너무 미워하고 곡해하지 말게. 외롭고 힘든 분이시네.”
남현의 한마디에 재환은 그저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의 모습을 본 남현은 굳게 닫힌 방문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날이 밝기 전 궁으로 돌아가야 할 것인데, 근심과 걱정이 앞섰다.
도운은 자리에서 꼼짝도 못 하고 앉아 청조만 바라보았다. 혹시라도 청조가 일어나면 먹이려 뜨끈하게 김이 올라오는 탕약을 곁에 놓고 있었다. 탕약이 식을 때쯤, 청은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와 김이 올라오는 탕약을 가져다 놓고 식어 버린 탕약을 들고 나갔다. 관저 내, 쉴 틈 없이 탕약을 달이는 냄새가 가득했다.
그렇게 새벽이 다가오는 사이 가느다란 신음소리를 내며 청조가 몸을 뒤척였다. 도운이 뒤척임을 돕고자 청조의 어깨를 잡는 순간 가늘게 떨리던 눈꺼풀이 살짝 떠졌다.
“청조야, 청조야. 나를 알아보겠느냐?”
“……서방…….”
청조의 입에서 들릴 듯 말 듯 가느다란 소리가 겨우 나왔다.
“그래, 나다. 네 서방이다. 그러니 정신을 좀 차려 보거라.”
“……서방, 흐윽, 어디를…… 어디를…… 다녀오셨습니까? 소첩이…… 얼마나, 얼마나…….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속에서 올라오는 울먹거림을 꾹꾹 눌러 담는 청조의 바싹 마른 입술이 잘게 떨렸다. 잘 떠지지도 않는 눈에서 줄줄 흐르는 눈물을 닦아 준 도운이 ‘우지 마라, 우지 마라.’ 조용히 속삭이며 다독거렸다.
“나도, 나도 네가 사무치도록 그리웠다, 청조……야, 으윽…….”
하지만 청조를 다독이던 도운 역시 속에서 몰려오는 오열을 참지 못하고 결국 탄식을 내뱉었다.
“나를 내버려 두고, 도대체 어디에 있었느냐? 아니다, 아니야. 내가 잘못하였다. 내가 다 잘못하였어. 너를 두고 오는 것이 아니었다…….”
도운의 울먹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던 청조의 눈이 다시 스르르 감겼다. 청조가 다시 정신을 잃자, 청조의 손을 잡고 있던 도운은 여인의 마른 손등에 이마를 묻고 흐느꼈다.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왕의 모습에 새로 끓인 탕약을 들고 왔던 청은 조용히 탕약을 두고 방을 나섰다.
“전하께선 어찌하고 계시느냐?”
“아씨께서 잠시 깨어나신 모습에…… 전하께서 어깨를 들썩이시며, 히잉……. 옥루를 흘리고…… 계십니다.”
훌쩍거리던 청이 제 소맷부리로 불그스름한 코와 뺨을 닦아내며 겨우 답을 하자 남현은 한숨을 내쉬었다. 곧 파루가 칠 것이다. 그 전에 궁으로 돌아가는 것이 급선무였다.
“전하, 신 내금위장이옵니다. 잠시 들겠습니다.”
조용히 방문을 열고 들어온 남현은 들썩거리는 도운의 등을 보며 괴롭게 고하였다.
“전하, 곧 파루가 칠 것이옵니다. 그 전에 궁으로 돌아가셔야 히옵니다.”
“청조가 또 잠이 들었네. 다시 깰 때까지 내가 있어야 하네. 이 여인을 두고 다시는 홀로 떠나지 않을 것이다.”
“전하, 하지만 지금은 돌아가셔야 하옵니다. 여인을 위해서라도 지금은 가셔야 하옵니다. 이곳 일은 청이에게 맡기소서.”
남현의 간곡한 말에도 굳건한 왕의 등은 움직임이 없었다.
“그때도…… 그리 말했지. 익태 그자가 나에게 그리 말하였네. 왕명이다, 어서 궁으로 가야 한다, 청조를 금방 데려오겠다. 한데 이게 무엇인가. 두 해나 지난 지금 청조가 내 앞에 이런 꼴로 누워 있네.”
쓸쓸함이 묻어나는 주군의 말에 남현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망설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러하다 하여도 지금은 돌아가야 할 때였다.
“하지만 전하, 지금은 가셔야 하옵니다. 작금의 상황으로 볼 때 도승지의 검은 속내가 무엇인지 아무것도 가늠할 수 없습니다. 아직 저들을 상대하기에는 전하의 힘이 너무 약하시옵니다. 전하께서는 내관들과 대신들의 긴밀하고도 은밀한 모종의 결탁을 아직 잘 모르십니다. 궁에 있는 상선 영감을 통하여 어떤 말이 저들에게 흘러 들어가고 있는지 모르옵니다. 송구하오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가셔야 하옵니다. 이럴 때일수록 머리를 차갑게 하셔야 하옵니다. 그렇지 않으시면 전과 같은 일이 다시 생길 수 있음을 유념하여 주시옵소서.”
도승지, 주익태, 도승지, 주익태. 이가 갈렸다. 영의정, 조정 신료들 그리고 중전까지 모두 한통속일 것이다. 남현의 말이 옳았다. 자신은 그들에 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산에 파묻혀 지낸 시절에도, 궁으로 돌아온 지난 시간 동안에도 원망만 하느라 시간을 흘려버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청조를 위해서라도 이제 무능한 왕이 되어선 아니 되었다. 어리석은 사내도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었다. 다 터진 채 핏물이 가득 고인 청조의 입술을 바라보던 도운은 이윽고 결심을 굳혔다.
“청이를 불러오게. 그리고 옥사에 갇힌 지사도 끌고 와.”
청에게 청조의 안위를 맡기며 도운은 이것저것을 당부했다. 잠든 청조를 오랫동안 바라보던 도운은 이윽고 밖으로 나섰다. 차가운 땅에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지사의 눈앞에 도운의 태사혜가 불쑥 다가왔다. 도운이 신고 있는 태사혜의 가죽 무늬를 바라보는 지사의 몸이 덜덜 떨렸다.
“네놈은 우선 두고 볼 것이다. 만약에라도 내일 도승지가 또 찾아오거들랑 네가 알아서 잘 돌려보내거라. 내가 이곳에 들렸다는 것을 누구도 알게 해서도 아니 되지만, 저 여인의 존재에 대해 이곳의 그 누구도 입에 올려서도 아니 된다. 만약 이를 어길 시, 삼대가 멸족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 줄 것이다. 내 말 무슨 말인지 알아듣느냐?”
“예에…… 예, 전하. 소신, 목숨을 걸고 전하의 명을 따르겠사옵니다.”
도운이 자리를 뜨고 멀어질 때까지도 지사는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덜덜 떨고만 있었다. 이내 도운의 모습이 눈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지사는 핏기가 사라져 허옇게 뜬 얼굴로 땀을 뻘뻘 흘리다 그제야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 * *
궁으로 돌아오는 길, 짙은 어둠을 밀어내는 맑은 새벽이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청조(淸朝)가 어둠을 밀어내고 있는 그 푸른 경계에 선 도운은 알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에 휩싸였다.
“그날 냉이와 두릅을 따러 나갔겠지. 과인이 그것들을 넣고 끓이는 된장 조치를 좋아하였으니, 그걸 기억하는 그이가 이른 봄날부터 그것을 따러 간다며 바지런을 떨었었네. 한데…… 과인이 혼자 나가지 못하도록 했다. 겨우내 굶주린 사나운 짐승이라도 나올까, 그 깊고 험준한 산에 혹시라도 낯선 사내가 청조를 위협할까 덜컥 겁이 났거든. 그래서 그날 그이가 나 몰래 봄나물을 뜯으러 나갔을 것이야. 그런 여인이었네. 늘 과인을 위해 하루를 바지런히 사는 여인.”
처음 들어 보는 왕의 사적인 이야기였다. 늘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 길이 없는 분이셨고, 늘 위험하고 위태로운 눈빛으로 비틀거리던 분이셨다. 임금을 위험으로부터 지켜야 하는 내금위장의 직분을 띤 자신이었다. 하지만 그리도 위험해 보이는 왕을 도대체 어떻게 구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늘 가슴이 조마조마했었다.
젊은 왕이 왜 그다지도 위태로워 보이는지 이제껏 그 누구도 몰랐었다. 왜 중전마마를 비롯한 어느 여인들도 품지 못하시는지, 왜 감정이 없는지, 왜 마지못해 살아가는지 그 이유를 궁에 있는 그 누구도 몰랐었다.
“그이가 처음 산에 올라 그것들을 넣고 끓여 온 된장 조치를 맛있게 먹었음에도, 과인이 불퉁한 사람이라 그것을 한 번도 표현해 본 적이 없네. 그런데도 청조는 다 알고 있었어. 과인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말을 안 해도 다 아는 여인이었어. 나에 대해서도, 산에 대해서도. 그거 아는가? 그 험준한 산에서 과인이 이리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다 그이의 지혜와 바지런함 덕분이었네. 그런 여인을 과인이 오랫동안 오해하여 괄시하고 멸시했었지…… 감히 내 주제에 그런 귀한 여인을…….”
“전하.”
“하지만…… 어여쁘고 또 너무 어여뻐서…… 도저히 마음에 품지 않을 수 없는 여인이었네.”
“그러셨습니까?”
도운은 지사에게 건네받은 은장도를 손에 들고 조심이 쓰다듬었다.
“그날 돌아올 시각이 지나서도 그이가 돌아오지 않았네. 그이를 두고 오는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여 끝까지 기다리려 했지만, 어명에 따를 수밖에 없었어. 그 후, 청조를 데려오겠다던 도승지가 홀로 돌아와 나에게 청조의 배신을 알렸네. 내가 주었던 이 은장도를 팔아먹어 다른 사내와 도주하였다 했는데…….”
“전하.”
도운은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멀리 푸른 새벽이 몰려오자 어둠 속에 숨어 있던 구름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긴 하루 중, 어둠을 밝히는 가장 맑은 순간이었다. 청조를 또다시 남겨두고 와야만 하는 마음이 무거웠지만, 그 전처럼 불안하지 않았다. 이제 다시는 헤어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앞으로 다시는.
그날 조회를 위해 근정전에 든 도운은 어좌에 앉아 줄지어 선 조정 신료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날카롭게 살폈다.
“도승지는 오늘도 입궐하지 않았는가?”
“망극하옵니다, 전하. 도승지의 상처가 생각보다 깊어, 며칠 더 치료에 전념하여야 할 것 같사옵니다.”
“그래요? 도승지의 상처가 그리 안 좋다니, 영의정의 근심이 크겠소. 나랏일은 조금 내려두고 오직 섭생에만 신경 쓰라 하시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허리를 숙이며 읍하는 영의정의 뻔뻔한 모습을 보며 도운은 어금니를 꽉 악물었다. 지금 뻔뻔한 저 모습이 후에 살려 달라 엎드려 비는 모습으로 바뀔 것을 생각하며 지금은 참았다.
“전에 언급하였던 호구 조사는 어찌 되었소? 조사를 하명한지가 언제인데 아직까지 장계가 올라오지 않는 것이오?”
“전하, 온 나라를 뒤지며 하는 일은 그만큼 시간과 인력을 필요로 하옵니다. 하물며 이미 몇 해 전 조사를 마친 것을 다시 조사하심은 나라의 국고를 축내는 일이 아니옵니까?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몇 년 전의 것은 선왕의 나라를 위해 한 것이지, 과인의 나라를 위해 한 것은 아니지 않는가? 정녕 과인이 직접 집집마다 돌며 집마다 있다는 그 누렁이가 누구인지 밝혀내야겠는가! 과인이 나의 백성을 위해 명한 일을 두고, 감히 옳고 그름을 따지는 너는 과연 어떤 왕을 모시는 것이냐! 말해 보라.”
도운의 호통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하자 도운은 그들을 비릿하게 쳐다보았다.
“오라, 이제 보니 그대들은 과인을 왕으로 섬기지 않는 모양인가 보오. 그렇지 않다면 과인이 하명한 일에 이리 늦장을 부릴 수가 있는가?”
“전하, 그 무슨 천부당만부당하신 말씀이시옵니까?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통촉을 바라거든, 제대로 된 장계를 올리시오. 내 직접 확인하고, 하나라도 틀릴 시, 사특한 그대의 혀부터 자를 것이니.”
도운은 통촉하여 달라며 소리 높여 떠드는 대신들이 누구인지 그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저놈도, 저놈도 제 기득권과 부를 위하여 통촉하여 달라 떠들고 있었다.
“지금부터 통촉하여 달라는 놈은 역심을 품었다 생각하고 그놈의 재산부터 조사할 것이다. 하나라도 부정이 나올 시 모다 몰수할 것이야. 그것들로 그대들이 걱정하는 국고에 보태어 호구 조사 하는 데 쓰면 되겠구나. 어디 입이 있는 대신들은 계속 떠들어 보시오.”
도운의 날카롭게 빛나는 눈빛에 대신들은 결국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이제껏 건성으로 정사를 보던 왕이 얼마 전부터 변하고 있었다. 긴밀한 회동이 필요한 순간이었다. 영의정을 중심으로 대신들은 서로 눈치를 슬쩍슬쩍 살피며 하나둘씩 근정전을 떠났다.
* * *
청조는 잠이 너무 달콤하여 일어날 수가 없었다. 눈꺼풀과 몸이 모두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지만, 마음은 가벼웠다. 서방님의 팔을 베고 이리 누워 있으니 절절히 끓어오르는 제 마음이 불씨가 되어 활활 타 버릴 것만 같았다. 허나 이대로 불에 타 재가 되어도 상관없었다. 서방님께서 다시 돌아오셨으니 함께라면 상관없었다.
다시는 소첩을 두고 어디 가지 마시라, 절대 떨어지지 않고 꽉 붙들어 매고 있을 것이다. 청조는 도운의 옆구리를 바짝 끌어안고 코를 비벼댔다.
그 순간 어디선가 살이 타들어 가는 고통이 밀려왔다. 뜨거운 고통에 화들짝 놀라 눈을 뜨니, 화염에 감싸인 다리가 불타고 있었다. 정말, 자신의 마음이 불씨가 되어 자신의 몸을 태우는가 보다. 하지만 서방님과 함께라면 죽음마저도 이렇게 달콤하였다. 마지막으로 함께 서로를 바라보며 생을 마감한다면 더 이상 소원이 없을 듯싶었다. 청조는 조용히 서방님을 불러보았다.
서방님, 서방님, 저 좀 봐 주시어요, 네? 서방님, 소첩 좀 봐 주셔요.
“……서방, 저 좀…… 서방님…… 저 좀…….”
가까스로 뜬 눈앞에 말간 소년의 얼굴이 비쳤다. 저를 향해 눈을 끔벅거리던 소년이 환히 웃으며 부산을 떨어대는 모습에 청조의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이 조용히 흘렀다. 꿈이었구나. 서방님께서 돌아오시는 꿈을 또 꾸었구나.
열에 들떠 뜨거운 숨을 내쉬던 청조는 다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청조의 눈에서 눈물방울이 관자놀이를 타고 쉼 없이 흘렀다. 다시 잠들고 싶었다. 다리를 끊어 버릴 것만 같은 고통보다도 서방님께서 아니 계시는 현실이 더 고통스러웠다.
‘아씨, 아씨, 많이 아프십니까?’ 앞에 앉은 소년이 어쩔 줄 몰라 묻는 소리도, 사르륵 조용히 방문이 열리는 소리도 청조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그저 다시 잠들고만 싶었다. 꿈꾸고 싶었다.
“왜 울고 있느냐? 청이 네가 또 뭔가 실수한 것이냐?”
“예에? 아닙니다. 소인이 그런 것이 아니옵니다. 아씨께서 일어나시자마자…….”
감았던 눈을 번쩍 뜬 청조가 슬픈 듯 미소를 짓고 서 있는 낯선 사내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흐으으윽, 허어엉.”
설움이 복받쳤다. 기쁨이 복받치고, 안도감이 복받쳐 청조는 몸을 들썩이며 한 번도 내본 적 없는 소리로 울어 버렸다.
꿈에서 깨어 버린 줄 알았는데, 다행히도 아직 꿈이었다.
그 사실에 몸이 푹 가라앉을 정도로 안도감이 온몸을 감쌌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설움이 복받쳤다. 한 번도 뵌 적 없는 서방님의 얼굴이 꼭 이런 얼굴일지 궁금했다. 청조가 자신을 덮고 있는 얇은 모시 이불 밖으로 겨우 손을 빼 들자, 도운은 상처투성이의 작은 손을 부드럽게 쥐어 제 뺨에 대어 주었다. 청조는 손끝에서 느껴지는 서방님의 감촉이 너무 사실적이라 더욱 서러웠다.
“다행……입니다.”
“무엇이 다행이냐?”
“아직 꿈속이라 다행입니다. 꿈에서 깨어난 줄 알았는데, 아직 꿈이라…… 너무 다행입니다. 꿈이어도 좋으니…… 가지 마소서. 이제 소첩을 두고 가시면 아니 되십니다.”
눈에 아롱아롱거리다 넘쳐흐르는 청조의 눈물을 닦아 주며, 울음을 겨우 참은 도운은 희미하게 웃었다.
“나다, 청조야. 꿈이 아니다.”
“…….”
“꿈이 아니다. 내가 너를 데리러 왔다.”
도운을 멍하니 바라보던 청조가 몸을 일으키려 버둥거리자 도운은 서둘러 청조의 몸을 일으켜 주었다. 처음 뵌 서방님의 얼굴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기만 하던 청조의 눈에서 서러운 눈물이 후드득 떨어졌다. 도운은 따뜻하게 미소 지으며 청조가 저의 뺨을 어루만지고, 콧등을 쓸어 보고, 반듯한 이마를 짚어 보는 것을 지켜보았다.
“진정이십니까? 진정 제 앞에 있으신 겁니까?”
“그래.”
“진정, 서방님의 모습이십니까?”
“그래, 내 모습이다.”
“꿈이 아니옵니까?”
멍하니 자신을 바라보다 꿈이 아니냐고 묻는 청조의 입술에 도운은 살며시 입을 맞추었다. 입술에 닿는 사실적인 감촉에 청조의 눈에 가득 고여 있던 눈물이 뚝뚝 떨어져 흘러내렸다.
“내 꿈을 많이 꾸었느냐?”
“예, 예. 많이 꾸었습니다. 날마다…… 날마다 꾸었습니다.”
고개를 끄덕거리며 대답하는 청조의 입에서 간간히 흐느낌이 흘러나왔다. 청조를 바라보던 도운은 참지 못하고 결국 굵은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리 너의 꿈에 자주 찾아가 주었는데, 너는 어찌 그리 매정하였느냐? 어찌하여 요 고운 얼굴을 간간히 보여 주었느냔 말이다. 내가 얼마나, 얼마나…….”
도운은 목이 콱 메어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지난 두 해, 미워하고 증오하면서도 결코 놓을 수 없었던 단 하나의 정인, 나의 여인. 자신의 우둔함으로 오해하여 이리 고초를 겪게 하고는 또 투정부터 나갔다. 왜 꿈에서조차 요 작은 얼굴을 자주 보여 주지 않았느냐 투정부터 하였다.
“내가 너를 얼마나…… 얼마나 그리워하였는지 모른다, 청조야. 네가 없는 세상이 어둠뿐이라, 이 몸이 길을 잃고 한참을 헤매었다. 이제는 나를 두고 어디 가지 말거라. 알았느냐? 절대 내 곁에서 떨어져선 아니 된다. 절대 혼자 떠나서는 아니 된다.”
여전히 속에서 끓어오르는 감정에 대답을 하지 못한 청조는 고개만 겨우 위아래로 끄덕였다. 도운은 자신을 향해 고개만 끄덕이는 청조의 눈물을 닦아 주고 작은 몸을 품에 살며시 안았다. 오랜만에 품에 안은 청조의 몸이 기억보다 마르고 가냘픈 것이 슬펐다. 부서질 듯 위태로워 마음껏 안을 수 없음에 마음이 더욱 애잔하였다.
심한 고초를 겪은 몸에서 열기를 느낀 도운은 자신의 품에서 울고 또 우는 청조를 달래고 얼렀다. 이대로 열이 계속되면 장독이 오르기 쉽다고 했던 의원의 말이 생각나 바삐 청에게 명하였다.
“청아, 가서 아씨 드실 미음과 탕약 들여오너라.”
“예, 예.”
다소 진정된 청조를 위해 도운은 청이 들여온 미음을 손수 떠먹여 주고, 약까지 떠먹여 주었다. 미음을 먹으면서, 약을 먹으면서, 이제는 베개를 베고 누워서도 청조는 도운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자리에 누운 청조의 손을 잡아 준 도운이 청조의 마른 뺨을 살살 보듬어 주었다.
“왜 그리 보느냐?”
“신기하여 그럽니다.”
“무엇이 신기하냐?”
“서방님께서 앞에 계신 것이…… 서방님의 얼굴을 이리 보는 것이…… 신기하여 그럽니다. 이제 복면은…… 아니 쓰셔도 되는 것이옵니까?”
숨을 쌕쌕거리며 청조가 겨우겨우 말을 이었다. 힘들어하는 청조의 모습에 도운은 눈물을 참느라 계속해서 마른침만 삼켰다.
“그래, 내 이제 복면을 쓰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더 이상 은둔하여 살지 않아도 된다.”
“정말…… 이십니까?”
“그래, 정말이다. 네 몸을 다 추스르거든 그때 자세히 말을 해 주마. 그러니 어서 회복하여야 한다. 먹는 것이 힘들어도 탕약을 열심히 먹어야 하느니라. 그 탕약이 몸에 열을 빼주고 몸을 보해 주는 것이다. 알아듣느냐?”
“예에. 예, 금세…… 일어날 것이옵니다. 근심 마셔요.”
“내가 대신 아프고 싶구나…….”
“걱정하지 마셔요…… 소첩 하나도…… 아프지 않습니다.”
“……그럴 리가 있느냐.”
괴로운 듯 한숨을 삼키며 대답하는 도운을 청조는 다른 말없이 바라봤다. 정말이었다. 정말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자신의 마음이 이제 정말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이마에 식은땀을 매달고서도 아프지 않다고 말하는 청조의 쩍쩍 갈라진 입술이 안타까워 도운의 애가 탔다. 잘 떠지지 않는 눈을 억지로 뜨고, 쌕쌕거리며 밭은 숨을 쉬면서도 청조는 도운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왜? 내 얼굴이 네 마음에 드느냐? 그래서 그리 쳐다보는 것이냐?”
도운의 짓궂은 질문에 청조가 겨우 입술 끝을 올리며 미소를 보여 주었다.
“예에, 참으로…… 잘나셨습니다. 소첩은…… 이런 옥골선풍의 헌헌장부를…… 일찍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하냐?”
“예에. 그러합니다.”
“너는 참으로 좋겠구나. 이리 잘난 헌헌장부가 네 서방이니.”
네 서방이란 말에 쌕쌕거리던 청조가 도운을 빤히 올려다보았다. 저에게 마음 한 자락, 첩의 자리를 내어 주셨으나 한 번도 서방이라 스스로를 지칭한 적이 없으셨다. 서방이란 단어에, 이미 예화와 혼례를 올렸다던 익태의 말이 떠올라 마음이 잠시 괴란했다.
“왜 말이 없느냐? 내가 헌헌장부라 좋지 않은 것이냐?”
“아닙니다. 소첩이 참으로…… 좋습니다. 참으로 이 세상 최고의…… 헌헌장부이십니다.”
“그리고 너는, 내게 하나뿐인 해어화(解語花)이니라.”
저를 꽃이라 칭해 주시는 서방님의 말씀이 좋아 한 번 더 듣고 싶었지만, 조르지 않았다. 조르지 않을 것이다. 저를 잊지 않고 찾아 주시었다. 꽃이라 칭하여 주시고, 저를 위해 눈물을 흘려주셨다. 충분하고 과분하였다. 더 이상 욕심내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애달프고 애달팠지만, 더 원하고 원하였지만, 욕심을 부리다 이번에는 정녕 서방님을 영원히 잃을까 두려웠다.
“그만 푹 자거라. 자고 일어나면 또 볼 것이다.”
싫습니다. 자기 싫다 말하려는 청조의 입술이 보일 듯 말 듯 움찔거렸다. 서방님의 얼굴을 더 보고 있고 싶은데, 그 손을 더 잡고 있고 싶은데 자꾸 졸음이 쏟아졌다. 아직 드릴 말씀이 많이 남아 있는데…… 혹시 잠이 들었다 일어나면 정말 이 모든 것이 꿈일까 두려웠다.
청조는 졸음을 참지 못하고 눈을 끔벅거렸다. 잠이 밀려오면서도 도운을 바라보며 버티고 버티다 결국 잠이 들었다. 잠이 들어서도 힘이 드는지 쌕쌕거리는 숨소리가 주기적으로 울렸다. 도운은 잠든 청조의 머리를 보듬고 쓰다듬었다. 식은땀에 들러붙은 머리카락을 떼어주고, 찬물에 적신 영견으로 얼굴과 손을 닦아 주었다.
잠이 보약이라, 약재에 잠이 잘 드는 산조인을 넣었다 하더니 숨소리는 다소 거친 듯해도 편안한 얼굴로 잠이 들었다. 깊게 잠이 든 청조를 확인한 도운은 밖으로 나와 허옇게 뜬 얼굴로 대기하고 있던 의금부 지사를 만났다. 자신이 베어 버린 어깻죽지가 불편한지, 지지대로 고정한 팔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웠다.
“도승지가 오늘도 다녀갔느냐?”
“예, 전하. 오전에 들렸사옵니다.”
“그자에게 뭐라 일렀느냐?”
“밤새…… 누군가가 습격하여 여인을 데려갔다 하였사옵니다. 죽었다 하면 분명 시체를 내어 달라 할 듯싶어 그리하였사옵니다.”
“시체를? 왜?”
“그, 그것이 추국을 시작할 당시, 만약 여인이 고신을 당하다 죽게 되면 그 시체를 보여 줄 이가 있다 하였사옵니다. 죽었다 하면 당장 시체를 보자고 할까 싶어, 차라리 그리 말했사옵니다.”
“그 보여 줄 이가 나였단 말이지?”
도운이 차갑게 말을 내뱉자 지사의 얼굴이 더욱 하얗게 질렸다.
“소, 소신은 정녕 몰랐사옵니다. 전하를 말하는 것일 줄은 꿈에도 몰랐사옵니다. 미, 믿어 주시옵소서! 전하, 정녕 모르는 일이었사옵니다.”
“도승지가 여인의 시체를 나에게 보여 주고 나면, 그다음 시체는 누가 되었을 것 같으냐?”
“예? 그것이 무슨…….”
갑작스런 질문에 어리둥절하여 눈동자만 굴리고 있는 지사를 보고 도운은 코웃음을 쳤다.
“네가 참으로 어리석은 자가 아니냐. 도승지가 여인을 죽인 죄를 누구에게 뒤집어씌웠겠느냐? 국법을 어기고 여인에게 과도한 추국을 한 그대겠지. 도승지가 선택한 희생양으로 제 목숨 바치고 있는지도 모르는 그대가 참으로 어리석은 자가 아니고 무엇이냐.”
도운이 지사의 어리석음을 비웃으며 설명하자 지사의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다시 벌겋게 달아올랐다. 도승지 그자가 어찌 이럴 수가 있는지, 까딱하면 자신의 목숨뿐만 아니라 삼대의 씨가 마를 뻔했다. 생각만으로도 오싹하고, 배신감에 치가 떨렸다.
“그자가 추국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했었지. 그자가 추국을 그리 즐기더냐?”
“예? 예, 진정 그리하였사옵니다! 그자가 여인이 매를 맞는 것을 보며 소름 끼치게 웃는 것을 소신이 직접 보았사옵니다. 또한, 여인을 가엾이 여겨 매를 시원치 않게 치는 나졸에게 자신이 직접 매를 가하며 더욱 강하게 칠 것을 종용하기까지 했사옵니다!”
저를 희생양 삼으려 했다는 도승지에 대한 분노로 지사는 이것저것 토설하기 시작했다.
“허나 그리 하다가도 여인이 고초를 겪는 모습을 오랫동안 보겠다며, 죽지 않을 정도로 완급을 조절하라 이르기도 하였습니다!”
지사의 말이 많아질수록, 도운의 분노도 점점 커졌다. 익태 그놈을, 그놈을! 이를 악무는 도운의 잇새로 이를 가는 소리가 뿌드득 크게 울렸다.
“누군가 습격하여 여인을 데려갔단 말은 믿던가?”
“예, 전하. 소신이 그렇게 말을 전하자, 그자가 크게 역정을 내더니 잠시 의심하는 듯했사옵니다. 허나 의금부를 습격한 이와의 칼부림에 상처를 입었다 어깨를 보여 주니, 무언가 고민하는 눈초리였사옵니다. 그러고는 ‘설마 그자인가?’ 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사옵니다.”
“그자? 그자가 누구를 지칭함인가?”
“송구하오나, 그것은 소신도 잘 모르겠사옵니다.”
곰곰이 생각을 하던 도운은 바로 옥사로 향하였다. 혹여 그자가 재환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익태 그자는 재환이 청조와 함께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말이었다.
“네가 청조의 곁에 머물렀던 것을 도승지가 알고 있었느냐?”
두꺼운 나무 창살 너머로 바르게 정좌를 한 재환에게 날카로운 질문이 쏟아졌다.
“여인의 곁에 누군가 있다는 것을 짐작할 뿐, 그것이 소신인 것은 모르고 있는 듯하옵니다.”
여인의 곁이란 말에 도운의 심기가 크게 뒤틀렸다. 비록 청조가 그를 사내로 보고 있지 않은 것을 알고 있으나, 그럼에도 참을 수 없는 역정이 몰려왔다. 그것은 아마 복면 사이로 보이는 저 눈빛 때문일 것이다. 같은 사내이기에 알 수 있었다. 자신을 연적 쳐다보듯 바라보는 저 사내의 눈빛을. 한 여인을 저와 같은 눈으로 바라보는 사내의 마음에 누가 들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자세히 고하라.”
“두 해 전, 복면을 한 두 명의 사내에게 목숨을 위협당하고 있던 여인을 처음 만났사옵니다.”
“그래, 어젯밤 네가 잠시 언질을 주었던 것을 기억한다. 도승지의 짓이라고?”
“예, 그러하옵니다. 우연히 소인이 발견하여 여인을 구해 준 후, 여인은 바로 도성을 떠났사옵니다. 여인의 말로는 도성에 있는 친정을 다녀오는 길, 도적을 만난 것이라 했지만 기실 그것이 아니었사옵니다.”
“너는 그것을 어찌 알았느냐?”
“여인이 소신의 목숨을 구해 준 후, 함께 도성으로 들어왔사옵니다. 그리고 달포 전, 함께 용마봉에 다녀온 일이 있사옵니다. 그때 용마봉을 내려와 기방으로 돌아가는 저희를 본 자가 있는 듯했사옵니다. 며칠 후, 저자에서 소신에게 여인의 용모파기를 보여 주던 이들이 있었사옵니다.”
그 일이라면 도운도 알고 있었다. 청이 그 아이가 보았다는 용모파기를 떠올렸다.
“그래서 무슨 일이 있었느냐?”
“여인의 초상이 그려진 용모파기를 보여 주며 함께 있던 사내로 소신을 의심하였습니다. 하여 그들을 유인하여 배후를 캐물었지만, 소신의 검에 죽어가면서도 대답하지 않았사옵니다. 그때의 칼부림으로 총 다섯의 사내가 죽었으니, 그쪽에서도 소신을 찾고 있을 것이옵니다.”
“그렇다면 도승지가 지사의 말을 믿고 돌아갔을 가능성이 높겠군. 계속하라.”
“기방으로 돌아와 여인을 다그치니 여인이 그제야 실토를 하였사옵니다. 여인이 말하길 이전에 살던 산에서 도승지의 무사들이 자신을 해하려 한 적이 있었다 하였사옵니다. 그때 여인을 해하려던 무사 중 하나가 사시안을 가졌었다 말하였사옵니다. 그리고 두 해 전 그 고갯길에서 여인을 죽이려 하던 한 사내의 눈이 딱 산에서 만났던 무사의 눈이라 하였사옵니다. 소신, 당시 무사들의 모습을 정확히 기억하는 것은 아니옵니다. 허나 여인이 그 눈을 정확히 마주 보았고, 똑똑히 기억한다 하였사옵니다.”
“산? 산에서? 산이라 하였느냐?”
그렇다면 산에서부터 청조를 죽이려 했다는 말이었다. 그렇게 목숨을 위협받고 쫓기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그따위 산나물이나 따러 가서 오지 않는다고 얼마나 원망을 하였는가. 도운은 자신이 과연 얼마나 더 한심한 인간인지 알 수가 없었다. 한심하고도 한심한 지아비였다. 그동안 청조가 겪었을 고초에 도운은 억장이 무너지는 듯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여인의 말을 모다 듣고 나서야 여인이 찾는다는 서방이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알면서, 왜 청조에게 말하여 주지 않았느냐? 네 가문을 박살 낸 나에 대한 복수였느냐?”
“전하께서 여인을 죽이려 한다고 생각하였사옵니다. 소신, 당연히 그리 생각하였사옵니다. 악랄하기로 악명 높은 저 영의정 부자와 한통속이신 전하가 아니시옵니까? 그들과 함께 충신이셨던 소신의 아버지를 역적으로 몰아 쫓아 버리셨습니다. 백성의 고혈을 빼어 먹는 저들의 말을 믿고, 소신의 가문을 몰락시키신 분이시옵니다! 그런 분이, 이번엔 도승지를 시켜 걸림돌이 될 여인을 처리하려 하신다, 당연히 그리 생각하였사옵니다!”
“이 사람, 재환! 전하께 어찌 그런 불충한 언사인가!”
재환의 발악에 남현이 끼어들었지만, 사내의 원망 섞인 날카로운 눈빛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도운은 아무 말도 없이 사내의 원망을 가만히 듣고 서 있었다.
“여인은 제 서방을 찾아 두 해를 떠돌아다녔다 하였습니다. 기방에서 전해 들은 별것도 아닌 풍문에 의지해 서방을 찾는다며 도성으로 향한다 하였습니다. 그 후, 이곳 도성에 들어와 용마봉까지 올랐었습니다. 서방이 좋아하는 음식이라며 새벽부터 요상한 주먹밥까지 만들어선, 한껏 들떠 산에 올랐사옵니다. 그곳에 올라 문둥이들을 만났을 때 소신, 사내대장부로 태어나 부끄럽지만, 그 자리에서 오줌을 지릴 뻔하였사옵니다. 허나 여인이 찾는 자가 바로 그들이었사옵니다.”
“청조가 대풍창…… 병자를…….”
“여인은 겁도 없이 병자들에게 다가가 직접 싸 온 음식까지 모다 내어 주며 사정하고 또 사정하였지요. 제 서방이 있는 곳을 알려 달라, 혹여 본 적은 없느냐! 결국,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하고 그 허무함에 며칠을 앓아누웠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그 얼음장 같은 물에 몸을 던져 소신을 구한 것도, 이제 와 알고 보니 소신을 전하인 줄 착각하였던 것이었사옵니다! 당시 소인의 모습이 여인이 찾던 서방의 모습, 그 모습이었습니다. 예, 딱 그랬사옵니다! 얼굴을 가린 저와 같은 덩치의 사내를 본 적 없느냐며 여인이 대풍창 병자들에게 애걸하며 물었사옵니다!”
‘이 복면 아래 나의 얼굴이 대풍창에 걸려 썩어 버렸다면 어찌할 것이냐?’
지난날 청조에게 물었던 질문이 생각나 버렸다. 겨우 그 한마디 때문에, 겨우 그 물음 하나 때문에 용마봉에 올랐느냐? 그 무섭고 무섭다는 천형이 옮으면 어쩌려고…… 도운의 몸이 옆으로 기우뚱거렸다.
“기방에 몸을 의탁하고 막 방사를 치른 기생들의 더러워진 다리 사이를 닦아 주며 살았사옵니다. 방사에 노곤해진 기생들의 몸을 주물러 주면서도 제 서방에 대한 단서를 단 하나라도 들을까 노심초사하며 그들의 비위를 맞추고 살았사옵니다. 두 해 동안, 전국을 떠돌며 노숙을 두려워하지 않고 기방의 천한 여인들의 뒤치다꺼리를 마다하지 않고 그리 살았사옵니다.”
도운이 비틀거리자 곁에 선 남현이 부축하려 손을 뻗었다. 하지만 도운은 남현의 손길을 마다하고 몸을 추슬렀다.
“모두 제 서방을 찾기 위함이라 하면서도, 제 서방에 대해 물으면 입을 꾹 다물었습니다. 저리 살이 터지고 뼈가 상하도록 매타작을 당하면서도, 제 서방에 대하여 일언반구조차 하지 않은 그런 여인을! 전하의 하나뿐인 친우인 도승지가 살수를 보내 죽이려 하지 않았사옵니까! 소신, 당연히 전하께서 하교하신 일이라 그리 생각하였습니다. 소신이 잘못 생각한 것이옵니까? 여인이 그리 지낼 동안 대체 전하는 무얼 하고 계셨사옵니까!”
원망과 질책이 섞인 재환의 악다구니에 도운의 얼굴은 충격으로 점점 창백해졌다. 청조가, 청조가 저를 찾아 두 해 동안이나 그 고생을 하며. 차마 변명도 하지 못한 도운은 맥없이 돌아서서 청조가 잠들어 있는 방으로 향했다.
잠든 청조를 바라보는 도운의 등이 한없이 굽어들었다. 얼굴에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에 깊이 잠들었던 청조의 눈이 힘겹게 떠졌다.
“왜 울고 계십니까?”
잠에 취해서도 우는 저를 걱정하는지, 청조의 고운 미간에 작은 골이 패었다.
“어디가…… 안 좋으십니까? 편찮은 것이어요?”
힘겹게 손을 들어 도운의 이마를 매만지는 청조의 미간에 근심이 더욱 깊어졌다. 잠에 취해서인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면서도 자신을 걱정하는 청조에게 도운은 억지로 미소 지었다.
“아프긴 어디가 아프다 하느냐. 내 이리 너를 보고 있는 것이 몹시도 기꺼워 잠시 눈물이 흐른 것을…… 내가 여기서 지키고 있을 것이니 좀 더 자거라.”
도운의 말에 입꼬리를 살짝 올린 청조가 다시 잠이 들었다. 피딱지로 까슬한 청조의 입술에 살며시 입을 맞춘 도운은 청조의 머리맡을 꼬박 지키고 앉았다. 줄곧 식은땀을 닦아 주고 이마에 놓인 찬 수건을 갈아 주었다. 하지만 새벽이 몰려오기 전, 돌아가야 함을 알고 있는 도운은 어쩔 수 없이 방을 나섰다.
“그대가 보기에도 과인이 참으로 한심하겠지. 재환 그자의 말이 그른 것이 하나도 없다. 돌아가신 선왕과 대비마마의 말씀이 모다 옳다. 과인은 처음부터 왕이 되어선 안 되는 인물이었어.”
“두 분 지존께서 그리 말씀하셨사옵니까?”
“그랬네. 과인을 일러 의경 세자의 운명을 훔쳐 왕이 된 패륜아이자 반역자라 말씀하셨지. 그러니 항시 죄인의 마음을 가지고 몸과 마음을 낮추어 치세를 하여야 한다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그분들에게 처음부터 왕의 자리는 내 자리라 으름장을 놓았네. 그래서 그 자리를 과인에게 돌려주려 하늘이 형님을 알아서 데려간 것이다, 임종하시는 선왕의 귓가에 대고 그리 떠들었네. 대비마마의 면전에서 운명을 잘못 읽은 성수청 무당을 잡아 족쳐 버리겠다 패악을 부렸고. 하지만 아마도 그분들의 말씀이 옳을 것이야.”
“하지만 전하의 말씀대로 처음부터 전하의 자리였을 수도 있사옵니다. 전하께선 아직 아무것도 하시지 않았사옵니다. 그러니 이제 그분들이 틀린 것을 증명하시면 되시지 않겠사옵니까?”
멀리 궁이 보이기 시작했다. 도운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남현을 돌아본 후, 다시 궁을 보았다. 본인이 있어야 할 곳이 저곳이라면, 앞으로 청조가 있어야 할 곳도 저곳이었다. 다시는 청조가 굶지 않도록, 다시는 고초를 받지 않도록 안전한 곳으로 만들려면 이제부터라도 똑바른 왕이 되어야만 했다.
“그대 말이 옳아.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라도 올바른 왕, 힘 있는 왕이 되려 하네. 그대가 과인을 돕겠는가? 과인이 믿을 자가 도통 없으니 실로 무력한 왕일세. 허수아비 왕이야.”
“허면 소신은 믿으시옵니까?”
내금위장 남현의 진지한 물음에 도운은 궁을 바라보던 시선을 돌려 그의 우직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이자의 얼굴이 이런 얼굴이었던가. 궁에서 두 해를 살며 주위의 것들을 하나도 보지 못하고 살았다. 도운은 시선을 올려 까만 하늘을 바라보았다. 총총히 빛나는 작은 별들이 깔려진 미리내가 어둠을 가로지르는 빛나는 길처럼 보였다.
마치 황금 부스러기를 뿌려 놓은 것만 같은 그 길 끝엔, 저를 맑은 새벽으로 인도하는 청조가 금가루를 뿌리며 서 있는 듯했다. 이미 자신의 주위에는 자신이 걸어가야 할 옳은 길들이 있었다. 자신의 곁을 우직하게 지키던 남현은 아마 그 길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어둠이라 하여, 어둠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네. 나를 인도하는 길이 그곳에도 있었어. 단지 과인이 그것을 알아보는 혜안을 가지지 못했을 뿐.”
“송구하옵니다. 소신의 학식이 부족하여, 전하의 심중을 알아듣기에 어려움이 있나이다.”
도운은 맑은 미소를 띠우며, 고개 숙인 남현을 바라보았다.
“자네가 어젯밤 의금부에서 나를 질타하지 않았다면, 그리하여 궁으로 돌아가게 하지 않았다면, 그대를 의심했을 것이네.”
도운의 부드러운 음성에 남현은 고개를 들었다. 감히 용안을 똑바로 마주 본 남현은 처음으로 도운의 또렷한 눈동자를 발견했다. 늘 위태하기만 하고 늘 어둠에 가려졌던 그의 눈동자가 맑게 열려 있었다.
“전하, 신은 전하를 지키는 무인인지라 정치는 잘 모르옵니다. 소신, 그저 전하를 지키는 일을 일생 단 하나의 천명으로 삼고, 이를 지킬 뿐이옵니다. 전하께서 소신을 믿고 전하의 안위를 맡겨주신다면, 신에게 다시없는 영광이옵니다.”
“이 순간 이후로 그대는 과인에게 있어 유일한 호위무사이며, 최초의 충신이며, 진실한 벗이 될 것이다. 그러니 옳고 그름에 있어 과인에게 잘못이 있거든 가감 없이 탓하고 충고하라. 내 그대의 말은 의심 없이 경청할 것이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두 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절도 있게 읍하는 남현의 모습을 흡족하게 바라본 도운은 궁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은 집이 아닌 궁이었다. 청조가 머무를 안전한 집으로 만들기 위해 도운은 이 밤, 다짐과 각오를 새로이 했다.
* * *
밝은 햇살에 눈을 뜬 청조는 자신의 몸을 닦고 있는 여인을 발견하곤 놀라 몸을 일으키다 금침 위로 다시 힘없이 쓰러졌다. 그간 정신을 잃고 며칠이 지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밤사이 서방님의 얼굴을 보았던 것만 간간히 기억났다.
“괜찮으십니까?”
“누구십니까?”
“아씨의 수발을 명받은 다모 막녀라 합니다.”
“막녀?”
“예, 편히 불러주십시오.”
막녀는 따뜻한 물에 푹 적신 면포로 청조의 손과 팔을 깨끗이 닦아 준 후, 허벅지와 종아리에 입은 상처를 조심스럽게 살폈다. 뭉개진 살들에 약초를 올리고 통풍을 위해 이불과 치마를 허벅지 위까지 올려 준 후, 준비된 흰죽을 청조에게 떠 주었다.
“의원께서 다행히 뼈가 많이 상하지 않았다 하셨습니다. 근심하던 열이 내렸으니 이제 조리를 잘하면 금세 아물 것이라 했습니다. 그러니 너무 심려 마셔요. 여려 보이는 외양과는 달리 꽤 강골이시라 의원께서도 놀라셨습니다.”
“예, 보살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한데…… 저희 서방님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떠 주는 흰죽을 받아먹을 생각이 없는 듯 불안한 눈빛으로 청조가 물었다. 분명 꿈이 아니라 하셨고, 꿈이 아닌 것을 직접 확인하였는데 눈앞에 보이지 않자 불안함이 밀려왔다.
“정무가 바쁘시어 한동안 오시기에 힘이 드실 것이라 알고 있습니다.”
“저, 정무요?”
“예, 아씨.”
“혹, 저희 서방님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 알고 계십니까?”
“송구하오나 쇤네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그저 위에서 시키는 명에 따를 뿐입니다. 그러니 어서 죽부터 드시지요. 죽을 다 드시면 곧 탕약을 올릴 것입니다.”
오후가 되자 처음 눈을 떴을 때 보았던 소년이 방으로 들었다. 얼굴이 창백한 소년은 자리에 앉아 있는 청조의 모습에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삐 다가왔다.
“아씨, 아씨, 이리 앉아 계시면 어찌하십니까? 편히 누워 계셔야지요.”
“온종일 누워 있자니, 허리가 아파 그러하네.”
“그래도 누워 계셔야 합니다. 아씨가 이리 앉아 계신걸, 전, 아니 주인어른께서 보시면 소인이 경을 칩니다.”
“주인어른이면 서방님을 말하는 것이니?”
“예, 아씨.”
“서방님께서 지금 어디에 계시는지, 혹여 아는 것이 있니?”
“그, 그것은, 지금은 정무가 바쁘시어…….”
“정무라 하면, 혹여 서방님께서 관직에 계시는 것이니?”
청조의 말에 청은 눈을 굴리다 어색한 웃음소리를 냈다.
“예, 그렇습니다, 아씨.”
그렇구나. 청조의 입에서 작은 소리와 함께 한숨이 나왔다. 서방님의 부재는 이리도 불안한 것이었다. 다시 어디론가 사라져 버릴까 불안하여 청조는 홀로 쓴웃음을 지었다.
참으로 고깝구나, 청조야. 이제 서방님을 찾게 되어 늘 함께 있을 줄 알았더냐? 양반이시고 이제는 다른 누군가의 부군이실 터이니 응당 공사가 다망하실 분이신데. 갑자기 마음이 허했다.
“한 가지만 물어볼게. 혹, 서방님께서…….”
“예, 아씨.”
“아니, 아무것도 아니다.”
혹여 예화가 서방님의 본처가 되었느냐 물으려다 그만두었다. 예화가 아니어도, 서방님의 본처는 그 누군가일 것이고 그래야만 하는 것이었다. 신경 쓰지 않으려 청조는 부러 딴말을 하였다.
“서방님께서 혹 언제 돌아오시는지, 아는 것이 있느냐?”
“그것이, 전, 아니, 주인어른께서 돌아오시려면 시일이 좀 걸리실 것입니다. 스무날 후에는 오실 것입니다. 사실 일이 많으시어 어젯밤도 겨우 다녀가신 걸요. 아씨께서 주무시고 계신 것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계시다 가셨습니다. 저에게 아씨를 잘 보필하고 있으라, 당부하시고 또 당부하셨습니다.”
“그래? 스무날 후에나…….”
“예, 아씨.”
또랑또랑하게 대답하던 청은 소반에 올려 있는 타락죽을 청조에게 권했다.
“타락죽입니다. 아시지요? 임금님만 드신다는 귀한 죽입니다. 아씨께서 빨리 쾌차하시라 저희 주인어른께서 특별히 당부하신 음식입니다. 그러니 어서 드시고 빨리 쾌차하셔야 합니다.”
이리 귀한 죽을, 서방님댁의 권세가 하 높은가 보다.
청조는 괜히 주눅이 들어 어깨가 처졌다. 청조의 어깨가 처진 줄도 모르고 청은 숟가락을 쥐여 주며 청조의 앞으로 타락죽을 밀어주었다.
“드셔 보십시오, 아씨. 이것 드시고 어서 쾌차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스무날 뒤, 주인어른을 따라가실 수 있습니다.”
“응?”
“다음에 오시거든 주인어른께서 아씨를 데려가실 것입니다.”
“데려간다니, 어딜?”
“어디긴요? 당연히 주인어른 댁이지요.”
청의 씩씩한 대답에 청조가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댁이라 하면, 이곳은 서방님의 댁이 아니란 말이니?”
“예, 아닙니다.”
“그럼 이곳은…….”
“죽 먼저 드십시오. 귀한 죽인데 다 식습니다. 뜨거우시면 소인이 좀 불어 드릴까요?”
“아니, 괜찮다. 내 알아서 먹으마.”
동그란 눈으로 재촉하는 아이를 보자 화성에 있는 아우 생각이 났다. 지금쯤 많이 자라 있을 것이었다. 계속되는 청의 재촉에 죽을 한술 뜨자 고소함이 입안 가득 퍼졌다. 아직도 상처는 불에 덴 듯 화끈거리고 움직일 수 없는 몸은 갑갑하였다. 그리고 서방님이 보고 싶었다. 한 번만 뵈면 소원이 없을 것 같았는데, 한 번 뵈니 더욱 그립고 보고 싶었다.
“스무날만 지나면 꼭, 꼭 오시는 것이겠지?”
“암요, 꼭 오십니다. 꼭 오실 것이니, 어서 마저 드십시오. 어떠십니까? 맛이 참 좋지요?”
해맑게 묻는 청의 질문에 청조가 살포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신다 하였으니 오실 것이고, 데려간다 하셨으니 데려가 주실 것이다. 한 번도 의심한 적 없었고 앞으로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청조는 날이 밝고 밤이 오는 것을 기다리며 끼니를 든든히 채우고 들여오는 탕약을 열심히 마셨다.
* * *
청조는 손가락으로 날을 세어 보았다. 분명 스무날째인데 왜 아직 아니 오실까? 새살이 어느 정도 올라오며 거북이 등껍질 같은 검붉은 딱지가 허벅지에 가득 내려앉았다. 아직은 성치 않은 다리가 불편함이 있었지만, 움직일 수 없을 정도는 아니었다. 언제 오시려나, 청조는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방문 앞까지 다가갔다.
“아씨, 뭐하십니까? 어서 자리에 누우십시오.”
마침 문을 열고 들어오던 막녀가 기함하여 들고 들어온 탕약을 내려놓았다.
“아직은 이리 돌아다니시면 아니 되십니다. 다행히도 상처에 딱지가 제대로 앉았으니, 딱지가 저절로 떨어질 때까지 힘을 주시면 아니 되십니다.”
막녀는 가볍게 타박을 하며 청조를 부액하여 금침으로 데려갔다. 청조가 금침 위에 자리를 잡고 앉도록 곁에서 시중들고는 탕약을 가져다주었다. 막녀가 건네는 탕약을 비운 청조는 입가심하라 건네받은 편강 조각을 입에 물었다.
“밖이 많이 어두워졌습니까?”
“예, 곧 인정이 울릴 것입니다. 어서 자리에 누우시지요.”
인정이 울린다면, 오늘은 오시지 못하시는 것일까?
자리에 누운 청조는 인정을 울리는 종소리가 멀리서 울리는 것을 들었지만, 아직 기다리고 싶었다. 시각이 늦었지만, 그래도 오신다 하셨으니 오실지도 몰랐다. 하지만 가만 누워 기다리자니 점점 눈이 감겼다. 청조는 감기려는 눈을 몇 번이나 부릅뜨다 결국 잠 속으로 빠져들었다.
‘……청조야, 청조야.’
멀리서 들리는 서방님의 목소리. 꿈결에서조차 저를 부르는 서방님의 목소리는 늘 자신의 오감을 부드럽게 깨웠다. 예, 서방님. 입 모양으로 조그맣게 대답하는 청조의 눈이 스르르 열렸다. 저를 보며 환히 웃고 있는 도운의 모습에 청조의 입꼬리가 배시시 올라갔다. 역시 서방님께서 약조를 지키시었다.
“가자꾸나.”
“예.”
어디를 가자 하든지 상관없었다. 가자는 말 한마디에 청조는 아무것도 묻지 않고 바로 대답했다. 서방님께서 가자고 하신다면 그곳이 이 세상 끝이라도 상관없었다. 밖으로 나온 도운은 섬돌 아래로 내려가 툇마루에 서 있는 청조를 향해 허리를 굽혔다.
“업히거라.”
“아닙니다. 걸을 수 있습니다.”
저를 향해 등을 내준 도운을 보곤 청조가 급히 손사래를 쳤다.
“어서 업히거라. 누가 네가 걸을 수 없다더냐? 내가 업어주고 싶어 그런다.”
“하지만…….”
“업히거라.”
고집스레 등을 내주는 도운의 모습에 청조는 천천히 다가가 등에 기대었다. 허벅지 상처가 쓸리지 않도록 청조의 골반에 조심스럽게 팔을 두른 도운은 몸을 벌떡 일으켰다. 생각보다도 가볍고 마른 청조의 몸이 등을 통해 고스란히 느껴져 마음이 매운 땡고추로 지진 듯 아려왔다.
“꽉 잡거라.”
“예에.”
등에 업힌 것이 좋은지 도운의 목을 꽉 그러안은 청조가 도운의 목에 뺨을 슬쩍 비볐다. 업힌 청조의 머리 위로 막녀가 장옷을 걸쳐주자 도운이 길을 나섰다. 달마저도 구름 뒤에 숨은 깊은 밤, 어디선가 부엉이 울음소리가 구슬프게 울렸다.
“등에 업히니 좋으냐?”
“예, 좋습니다. 한데, 서방님께서 힘에 겨우실까 걱정됩니다. 힘에 겨우시면 꼭 말씀하시어요. 소첩이 걸어갈 수 있습니다.”
“꼬챙이처럼 마른 몸을 해서는 무슨 힘이 들까 걱정을 하느냐? 하나도 무겁지 않으니, 더 잘 먹어야 한다. 내 이제부터는 한 번씩 너를 업고 확인을 할 것이야.”
“정말 또 업어주시렵니까?”
“그래, 매일매일 업어줄 것이다.”
“그럼 소첩, 조금만 먹을 것입니다. 소첩이 살이 찌면 이제 아니 업어주실 것이 아니십니까?”
청조의 농에 도운은 짐짓 웃음을 지었지만, 마른 청조의 몸이 금방이라도 말라 부서질 듯 가벼워 마음이 덜컹거렸다. 작고 마르긴 했어도 몸은 튼실한 편이었는데, 그간의 고초로 몸이 많이 쇠약해진 듯하여 걱정이 앞섰다.
“나를 찾아 많은 곳을 헤매었느냐?”
“…….”
“무섭지 않았느냐?”
실로 많은 곳을 헤매었고 너무나 무서웠다. 이 나라의 끝에서 끝까지 다니며 숱한 밤을 산길에서, 버려진 움막에서 노숙하며 산짐승과 낯선 사내들을 피해 도망 다녀야 했다.
“아닙니다. 무섭지 않았습니다. 가는 곳마다 좋은 분들을 만나 편히 다녔습니다.”
“……거짓일 테지. 내가 너를 모르느냐…….”
도운의 한숨에 청조는 도운의 목을 더욱 꽉 그러안았다. 그의 살결에서 나는 냄새가 너무 좋았다. 그립고 그립던 서방님의 향이었다. 저벅저벅, 달빛이 사라진 어두운 길목에 저를 업은 서방님의 발걸음 소리가 듣기 좋아 가슴이 무척이나 동당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