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해가 저물면
어느덧 눈이 녹아들고 있었다. 날이 입춘에 들어서자마자 거짓말처럼 포근한 바람이 찬바람 속에 섞여 불어오고 있었다. 아직 곳곳이 눈으로 덮여 있었으나, 햇빛이 잘 닿는 곳부터 눈이 녹고 있었다. 눈이 녹은 마당이 한동안 질퍽거렸으나 이제는 그것도 많이 좋아졌다. 바람이 부는 것을 느끼고 서 있던 청조는 처음 이 산에 오르던 이맘때 생각에 빠져들었다.
도끼질을 하던 서방님의 모습과 제 턱을 부여잡고 ‘욕정받이’라고 차갑게 윽박지르시던 모습이 생각났다. 허나 곧 마른 행주치마에 젖은 손을 탁탁 털며 잡생각을 떨쳤다. 이제 저는 ‘욕정받이’ 따위가 아니다. 비록 본부인이 아닐지언정, 이 산속에서 서방님의 곁을 지키는 단 하나뿐인 내자였다.
스스로 마음을 다잡고 반빗간에 들어서려는데 주위가 소란했다. 고개를 돌려보니 익태가 처음 보는 젊은 지게꾼과 함께 마당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나리.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이 사람 안에 있느냐?”
“사냥 나가셨으나 곧 돌아오실 때가 되었습니다.”
“그래? 그럼 내 안에 들어 기다릴 터이니 같이 온 이에게 마실 것이나 좀 내어 주고 가져온 물건을 받도록 하여라.”
“예, 나으리.”
조용히 읍하는 청조를 서늘하게 바라보던 익태가 지게꾼에게 뭔가 눈짓을 하곤 곧 섬돌에 올라섰다. 익태가 안으로 든 지 반 시진이 지나는 사이 사냥을 마친 도운이 초가로 돌아왔다. 기분이 무척 좋았다. 잡은 토끼 세 마리의 몸집이 제법 큰 것이 가죽이 많이 나올 듯싶었다. 겨울 토끼인지라 털이 길고 숱도 많은 것이 배자 하나 지어 입으면 꽤나 따뜻할 듯했다.
살은 발라 청조와 함께 몸보신하고 털은 잘 무두질하여 이번 겨울에 너 배자 하나 지어 입거라 할 요량으로 사냥을 나갔다 세 마리나 잡았다. 세 마리면 여인의 배자 하나 정도는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남는 가죽으로는 조바위 하나 만들어 머리에 쓰고 다니라 일러야겠다. 청조가 좋아할 모습이 눈에 선하여 기분이 무척이나 좋았다.
아니나 다를까, 제가 들어오는 소리에 반빗간에서 청조가 한달음에 달려 나왔다. 저를 마중 나온 청조를 향해 손에 든 토끼를 높이 들어 보여 주자, 그 고운 얼굴이 환히 빛났다.
“이 많은 걸 서방님께서 다 잡으셨습니까?”
“아니다. 귀먹은 토끼들이 내 앞에서 잠을 자고 있기에 그냥 주워왔다.”
도운의 농에 청조가 눈을 크게 휘며 환히 미소 지었다.
“듣기를 잘하려고 이리 큰 귀를 가진 미물의 귀가 먹다니요?”
“그러니까 말이다. 참으로 억울할 일이지. 그 큰 귀로 듣지를 못하여 이렇게 내 손에 잡히고 말았으니. 잘 두었다가 너 배자 지어 입고, 가죽이 남거들랑 조바위 하나 만들어 쓰고 다녀라.”
“아닙니다. 소첩이 서방님 남바위 먼저 만들어 드릴 것입니다. 그것 쓰고 다니셔요. 추위에 귀가 빨갛게 얼었습니다.”
찬바람에 발갛게 변한 귀가 걱정되는지 손으로 저의 귀를 덮어주는 청조의 손이 참으로 따뜻했다. 저를 들여다보는 여인의 걱정스런 모습이 마냥 좋아, 도운은 귀를 덮은 따뜻한 청조의 손 위에 제 손을 덮었다.
“나는 되었다. 원체 열이 많은 사람이니 그런 것까지 머리에 뒤집어쓰면 더워 못 산다. 너 만들어 입고, 머리에 쓰고 다니라고 일부러 잡아 온 것이니 내 생각은 말고 네 옷이나 지어 입거라. 그리고 다음에는 여우를 잡아다 주마. 이런 토끼보다 여우 털이 훨씬 따뜻할 것이야. 내 그것 잡아 오면 통째로 목에 두르고 다니거라.”
“예에? 그것을 어찌 목에 두르라 하십니까?”
“혹시 아느냐, 그것 두르고 네가 여우 같은 마누라가 될지.”
“여우 같은 마누라 말씀이셔요?”
“그래, 너는 여우보다는 곰 같은 마누라이지 않느냐.”
농을 던지며 작게 웃는 서방님의 모습도 좋았지만, 마누라라는 말이 너무 좋았다. 진정 서방님의 내자가 된 듯하여 기쁨에 가슴이 동당거렸다. 수줍게 고개를 내린 청조는 그저 배시시 웃었다. 파랑새처럼 웃으며 다소곳이 내리까는 청조의 짙은 속눈썹 사이사이에 봄이 매달려 있는 듯했다. 도운은 민들레 홀씨 불어 내듯 충동적으로 청조의 속눈썹에 바람을 후 불었다.
“바람이 따뜻하구나.”
“예에? 그 무슨 말씀이셔요? 아직 바람이 많이 찹니다. 따뜻하다 생각 마시고, 든든히 입으셔요. 그러다 고뿔 드십니다.”
바람이 따뜻하다 실없이 말하는 자신의 옷차림을 꼼꼼히 여며 주는 청조의 모습이 무척이나 어여뻤다. 아니다, 청조야. 금일 네 미소를 닮은 바람이 무척이나 따뜻하구나. 청조를 흐뭇이 바라보며 홀로 생각하는데, 갑자기 생각난 듯 청조가 급히 말을 꺼냈다.
“아, 안에 익태 나리 드셨습니다.”
“익태?”
청조에게 토끼를 내어 주던 도운은 익태가 왔다는 소리에 방으로 들었다. 웬일인지 그의 방문이 썩 반갑지 않았다. 서안 앞 방석에 앉아 있던 익태가 도운의 등장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자네 왔는가? 내 기다리고 있었네.”
“웬일인가? 다녀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얼마나 되었냐니? 꽤 되지 않았나? 겨우내 지게꾼이 산에 한 번 오르지 못하여 내 걱정이 많았네.”
“왜? 내가 굶어 죽기라도 했을까 봐 걱정하였는가?”
“이 친구, 농인 줄은 알지만 내 실제로 그러했네. 올겨울이 유독 한파가 심하고 예상보다 일찍 눈이 오지 않았는가? 양식은 떨어져 갈 터인데 산에 오르지는 못하니. 내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네.”
“보다시피 멀쩡하니 그런 걱정은 접어두게.”
말을 하는 모양을 보니 진실로 그런 듯하였다. 복면에 가려진 얼굴색이나 표정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목소리에 기운이 서려 있고 입술에 혈색이 도는 것이 굶은 사람 같지는 아니하였다. 허고, 저 따뜻해 보이는 털배자는 무엇인지 궁금했다. 처음 보는 옷이었다. 자신은 저런 옷을 가져다준 적이 없는데 어디서 얻은 물건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자네 모습이 참 좋아 보이네그려.”
“그런가? 뭐, 대충 잘살고 있네.”
피식거리며 대답하는 친우의 모습이 실제로 그러한 듯 보였다. 겨울이 지나면 늘 버석하게 말라 있던 자였다. 겨우내 말라 있다 저를 보면 말은 아니 하여도 내심 반기던 이가 달라져 있었다. 다녀간 지 얼마나 되었다고 또 왔냐는 말을 할 처지가 절대 아니었다. 산에서의 겨울은 춥고, 고독하고, 또 굶주림의 연속이었다. 한데 혹독한 시간을 보냈어야 할 사람이 너무 멀쩡했다.
꺄아앗!
갑자기 밖에서 요란스런 소리가 울리더니 청조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여인의 비명소리에 도운은 벌떡 일어서 방문을 나섰다. 소란의 중심인 반빗간으로 달려가자 바닥에 넘어진 채로, 지게꾼에게 멱살이 잡힌 청조가 보였다. 입가에 핏물이 고인 청조를 향해 손을 높이 쳐든 지게꾼을 보자마자, 도운은 망설임 없이 달려들었다. 지게꾼의 배를 가격한 후, 넘어진 놈에게 사정없이 발길질을 퍼부었다.
“이 개만도 못한 종자 새끼가 뭐하는 짓이냐!”
“아이쿠, 도련님, 도련님, 그게 아닙니다요!”
“이보게, 도운! 진정하게!”
흥분해서 날뛰는 도운을 가까스로 말린 익태가 지게꾼을 향해 엄히 물었다.
“무슨 일이냐?”
“그것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그것이 저 계집이 저를 물었습니다요, 작은 나리. 이것 좀 보십시오.”
지게꾼이 제 소맷부리를 걷자 팔뚝에 선명한 잇자국이 보였다.
“왜 물었느냐?”
도운의 물음에 청조가 대답을 못하고 입술만 답삭거렸다.
“묻지 않느냐! 저놈이 너에게 무슨 짓을 하였느냐?”
“그것이…… 그것이, 저자가 소, 소첩의…… 소첩의 가슴을…….”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청조의 움츠린 어깨가 가늘게 떨렸다. 그것을 본 도운의 눈에 살기가 서렸다.
“이 파렴치한 놈이 감히!”
“아, 아닙니다, 도련님. 저 계집이 저에게 추파를 던졌습니다. 먼저 저에게 철썩 달라붙어서, 그래서…….”
“이놈!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거짓을 고하느냐!”
“거짓이 아닙니다요, 도련님.”
“그만하거라. 그만하고 너는 나가 있거라.”
“예, 작은 나리.”
지게꾼이 밖으로 나가자 익태는 청조의 모습을 곁눈질했다. 뜨문뜨문 봤을 때는 잘 몰랐지만, 이리 보니 청순함 속에 색기를 잔뜩 숨기고 있는 것이 천하의 요부가 따로 없었다. 과연 동궁전 한 내관이 왜 이 여인을 보냈는지 알 것 같았다. 여인의 외양을 매섭게 살피던 익태는 조금 전 청조가 말한 하나의 단어에 온 신경을 집중했다. 소첩이라…….
“그만 노여움을 풀게, 지게꾼의 말이 틀리지는 않을 것일세.”
“뭐라?”
짧게 뒤받는 소리에도 역정이 잔뜩 묻어 있었다. 익태는 그 모습을 가늘게 바라보았다.
“한가, 그자가 보낸 물건일세. 자네도 잘 알지 않는가, 그자가 어떤 자인지! 그간 그자가 보낸 창기들이 내 지게꾼에게 추파를 부린 것이 한두 번이 아니지 않은가.”
도운은 화를 참느라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그동안 저런 말도 안 되는 오해로 자신이 청조를 얼마나 멸시했던가, 그 멸시로 청조는 또 얼마나 고통을 받았던가. 저희들의 행복한 초가를 침범해 다시금 그 일을 들추는 익태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잇새를 짓이기며 겨우 화를 참고 도운은 우선 청조에게 조용히 일렀다.
“내 곧 뒤따라 나갈 것이니, 잠시 나가 있거라. 내 익태와 잠시 할 말이 있다.”
“아니, 여기 가만 있거라. 네년이 무슨 생각으로 산에 올랐는지 모르겠다만, 그리 호락호락 넘어갈 내가 아니다. 이 사람은 속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나는 다르다. 이곳에 온 목적이 무엇이냐?”
익태의 서늘한 말에 걸음을 옮기려던 청조의 발이 멈추었다. 걸음을 멈춘 청조에게 한껏 눈을 부라린 후, 익태는 역정이 담긴 눈으로 저를 노려보는 제 친우의 눈빛을 마주 보았다.
“밖으로 나가 있거라. 밖에 나가서 그 종자 새끼가 네 근처에 얼씬이라도 하거든 바로 나를 불러야 한다. 알았느냐?”
들릴 듯 말 듯 대답하고 반빗간을 나서는 청조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은 채, 도운은 익태만 노려봤다. 그의 두 눈이 분노로 가득 차, 곧 넘치기 일보 직전이었다.
“왜, 내 말이 틀렸는가? 저것의 용도가 무엇인지 자네도 모른다 하지 않겠지. 자네의 형님께서 의도하신 일이고, 형님의 충복인 한가 그자가 고른 여인일세!”
“그 입 다물어. 그리고 다시는 저 망종 새끼를 데려오지 말게. 다시 한번 내 눈에 띄거든 내 직접 주리를 틀고 목을 따 버릴 테니까!”
“선비의 입이 어찌 이리 거친가! 벌써 저 천박한 것에게 물이라도 들은 것인가? 진정 저쪽 술수에 넘어가자는 것이야? 그 교활한 늙은이에게 대가를 받고 제 몸을 팔러 온 속되고 천박한 계집이네. 그런 것이 스스로를 칭하여 소첩이라 하는 것을 내 귀로 들었어. 전에는 서방님이란 소릴 입에 올리더니, 이제는 소첩이라니! 자네 혹시 저 미천한 것의 머리를 올려 준 것은 아니겠지?”
청조를 비하하는 익태의 말이 계속될수록, 도운의 심사는 더욱 뒤틀렸다. 눈에 쌍심지를 켠 도운은 작심한 듯 그의 화를 돋우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왜 아니겠는가? 자네가 말했듯 어차피 그런 용도인데.”
어험, 큰소리로 헛기침을 내뱉은 익태는 도포 자락을 펄럭이며 뒷짐을 지고는 가슴을 내밀었다.
“자네가 어찌 이럴 수가 있는가! 예화 생각은 정녕 아니 하는가! 오매불망 자네 생각뿐인 아이이네. 그 고운 아이를 두고 저런 천한 계집과 아무렇지도 않게 몸을 섞다니! 아무것도 모르는 그 순진한 아이가 이런 추잡한 사실에 받을 상처가 얼마나 크겠나!”
“밤 노리개로 첩 년 한둘 아니 두는 사내가 어디 있나? 자네 아버님께서도 몇이나 두고 있질 않은가?”
“그건 다르네. 저 여인은 한가가 보낸 여인이야. 정녕 그 뜻을 모르는가?”
“알지.”
도운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내 잘 알지! 이 산에 처박힌 불쌍한 사내놈, 매일 여체나 탐하며 육욕에 취하라 보내 준 암캐라는 것을 내 잘 알지. 그 암캐의 아랫도리에 달라붙어 발정 난 개처럼 헉헉거리며 외로운 밤 위로나 하라고 보냈겠지. 그래서 원하는 대로 매일 저것의 다리를 잡아 벌리고, 그 쫄깃한 속살에 빠져 밤이고 낮이고 헤어 나오지 못하고 살고 있네. 이제 되었나!”
“그 무슨 괴란쩍은 망측한 소리인가! 그게 선비가 할 소리인가?”
“내 원체 성미가 마르고 괄괄하여 저잣거리 시정잡배마냥 말본새가 고약한 것이 어디 어제오늘 일인가?”
“어허.”
“더는 말하고 싶지 않으니 그만 돌아가게. 내 자네의 종놈 새끼 얼굴 다시는 보고 싶지 않으니 저놈의 상판을 지금 당장 치워 버리게! 다시 한번 내 눈앞에 얼쩡거리거든 당장 그 사지를 찢어 버릴 것이니!”
“하, 자네 심기가 어지러운 듯 보이니 내 오늘은 이만 돌아가네. 허나 자네도 잘 생각해 보게. 진정 무엇이 옳은지.”
“생각할 것 하나도 없네. 허고 다시는! 다시는 청조를 저것이라고 부르지 말게. 천한 창기라고도 부르지 말고. 저 여인에 대해 그런 말을 지껄이려면 다시는 이 산에 오르지 말게! 꼴도 보고 싶지 않으니!”
이 사람이 제정신이 아니구나. 청조라니, 언제부터 저 천것의 이름을 부르고 살았단 말인가. 게다가 뭐, 다시는 이 산에 오르지 말라니. 진정 제정신이 아닌 것이다. 십삼 년, 아니 이제 해가 바뀌었으니 십사 년째였다. 궁에서 내쳐진 그를 자신의 집안에서 돌본 것이 벌써 그리 오래되었다. 그 오랜 세월 받은 은혜도 모르고 이자가 어찌.
크게 헛기침을 한 익태는 반빗간 문을 거칠게 열었다. 활짝 열린 문 바로 앞에 서 있던 청조가 익태를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다시 한번 크게 헛기침을 한 익태가 청조의 위아래를 경멸스럽게 훑은 후 밖으로 나섰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지게꾼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이니, 지게꾼이 허리를 접어 고개를 숙이고는 금세 지게를 등에 메고 그를 따랐다.
저의 친우가 저 천한 것의 불결한 몸뚱이에 빠져들었다. 제 누이의 서방이 될 자가, 저의 매제가 될 자가. 이 나라의 왕이 될 자가! 겨우 저런 천것의 술책에 빠져서 허우적거리다니! 육욕에 취해 저런 더러운 것을 집어 먹다니! 혹시나 하였는데, 역시나 그러하였다. 예화를 데리러 이 산을 올랐을 적, 그때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도련님께서 역정이 많이 나신 것이 아니십니까?”
“괜찮다. 잘하였다. 내 알아볼 것 다 알아보았으니 그만 내려가자.”
다 알아보았다. 저 여인을 쫓는 제 친우의 눈길, 마음 다 보고 다 들었느니라. ‘흐음’ 큰소리로 헛기침을 한 익태가 눈을 부릅뜨고 산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 * *
“개놈의 종자 새끼.”
이가 뿌드득 갈렸다. 어디 할 짓이 없어서, 연약한 여인을 때린단 말인가. 하, 생각할수록 어처구니가 없고 기가 막혔다. 청조의 터진 입술에서 스며 나오던 피가 생각나 다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허나…… 그 피가 청조와의 첫날밤을 떠올리게 하여 마음이 심히 어지러웠다. 바닥 한가운데 흩뿌려 있던 처녀의 혈이 눈앞에 있는 듯 생생하고, 코끝에서 피비린내가 나는 듯했다.
그렇게 안는 것이 아니었다. 차갑고 딱딱한 방바닥에서, 그 개놈의 종자 새끼보다도 더 파렴치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청조를 유린했었다. 그리하지 말 것을. 마음이 몹시 괴란 하였다. 청조에게 한 짓이 후회스러웠고, 제가 집을 비운 사이 또 이 같은 일이 있을까 불안하였다. 보료에 앉아 분을 삭이는데 불현듯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것을 어디에 두었더라. 도운은 벌떡 일어나 머릿장을 뒤지기 시작했다. 머릿장에 이어 책장까지 하나하나 뒤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디에 두었는지 아무리 뒤져도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서안 옆에 있는 문갑을 뒤졌다. 중요한 물건을 넣어두는 용도이니 당연히 이곳에 넣어 두었을 것을, 조급한 마음에 이제껏 엄한 곳만 뒤져댔다. 마침내 찾던 것을 손에 쥐는 순간 청조가 밥상을 들고 방으로 들었다.
“그 일을 당하고도 뭐하러 저녁을 짓느냐, 그냥 쉴 것이지. 하루 저녁 굶는다고 죽지 않는다.”
도운의 나직한 말소리에 청조의 고개가 숙여졌다. 숙인 얼굴을 찬찬히 살펴보니 낮에 맞은 뺨이 아직 가라앉지 않고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입술 끝에 핏물이 살짝 마른 것이 그대로 딱지가 앉을 것 같았다.
그 얼굴을 보자 다시금 살의가 올라왔다. 그 정도만 패서 보내는 것이 아니었다. 평생 사내구실 못하도록 아랫도리를 박살내었어야 했다. 겨우 화를 가라앉힌 도운은 밥상을 옆으로 밀어 버리고 청조의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이어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청조의 앞으로 연꽃이 곱게 수 놓인 쪽빛 비단 주머니 하나를 내밀었다.
“열어 보거라.”
청조는 두 눈을 끔벅거리다 주머니를 열어 보았다. 안에는 은장도가 하나 들어 있었다. 칼집에 옥색과 치자색 칠보로 화문을 새긴 세 치(약 9cm) 정도의 작은 은장도였다.
“이것이 무엇입니까?”
“나를 어미같이 보살펴 주던 이가 남긴 것이다. 나와 함께 이 산에 들어와 세 해 전 겨우내 죽었다. 그이가 쓰던 물건이나 이제부터 네가 간직하거라.”
“그런 분의 물건을 어찌 저를 주십니까? 소첩이 간직하기에는 너무 귀한 물건입니다.”
도운은 은장도를 앞으로 내밀며 머리를 조아리는 청조의 까만 정수리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수수한 머리였다. 수수하다 못해 초라한 청조의 모습에 도운은 후회가 밀려왔다.
그이가 죽으며 남긴 옷가지를 다 태워 버리지 말 것을 그랬다. 머릿장 깊숙이 아껴 두었던 비단 치마저고리 하나는 남겨 둘 것을. 애지중지하던 붉은 산호 박힌 호화스럽던 은비녀를 저승길 동무하라 관에 넣지 말 것을.
“앞으로 불미스러운 일이 또 생기거든…….”
다 헤지고 닳아빠진 치마저고리 대신, 투박하고 조악하기 이를 데 없는 저 목비녀 대신 그이가 쓰던 그것들 걸치고 있었으면 이리 보고 있기가 덜 힘들 것을.
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저의 처지가 오늘따라 유독 원망스러웠다. 족쇄가 풀리면 제일 먼저 청조를 데리고 장에 나갈 것이다. 장에 나가거든 칠보 박힌 은장도, 비취로 만든 노리개, 커다란 산호 얹은 은비녀, 모다 다 사줄 것이다.
“앞으로 그런 자를 또 만나거든, 그 은장도로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상대의 눈을 찌르거라.”
“예?”
“그 작은 칼로는 사내의 어디를 치르던 치명타가 될 수 없다. 특히 빗근이 잘 발달되어 있는 사내는 더욱 그러하다. 그러니 눈을 찌르거라. 아무리 무예가 높다 한들, 아무리 빗근이 잘 발달되어 있는 사내라 해도 그곳만은 인위적으로 발달시킬 수 없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알겠느냐?”
“제가…… 소첩이 그리 하지 않았습니다.”
“…….”
“맹세코 그 사내에게 추파를 던지지 아니하였습니다. 정말입니다.”
“안다.”
단호한 도운의 대답을 들은 청조는 손바닥 위에 놓인 은장도를 말없이 지켜보다 이내 고개를 들었다.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지만, 눈빛이 울고 있었다. 자신을 믿어주는 서방님의 눈빛을 바라보던 청조는 시선을 다시 은장도로 내렸다.
“소첩이 이것을 평생 품에 넣고 귀히 여길 것입니다. 평생 소중히 아끼며 살겠나이다.”
슬픔이 묻어 있는 청조의 얼굴과 목소리가 애틋하였다.
“아까 반빗간에서 그자가 한 말은…….”
“예, 알고 있습니다. 소첩의 본분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주제넘은 생각일랑 절대 하지 않사오니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 말이 아니다. 아까 익태 그가 한 말은 너무 귀담아듣지 말거라.”
“소첩, 괘념치 않습니다.”
“그런데 왜 우느냐? 고개를 들어 보아라.”
고개를 든 청조의 붉게 부어오른 뺨 위로 눈물 줄기가 지나가고 있었다.
“서방님께서 주신 물건이…… 너무 감사하여…… 그래서 우는 것입니다. 소첩이, 소첩이 진정 귀히 여길 것입니다. 평생을 소중히 간직할 것입니다.”
“이리 오너라.”
길게 한숨을 내쉰 도운은 청조에게 손을 뻗었다. 제 앞으로 다가온 청조의 부푼 뺨을 조심스럽게 쓸어 주고는 피딱지가 내려앉은 입술을 살살 건드렸다.
“다시는 네가 울지 않게 해 준다 하였는데, 또 내가 너를 울렸구나.”
“아닙니다. 진정 너무 감사하여 우는 것입니다.”
“내가 또 아프게 하였어.”
“아프지 않습니다.”
도운은 아프지 않다 거짓을 고하는 동백 꽃잎 같은 입술을 한입에 담뿍 담았다. 먼저 도톰한 아랫입술을 혀로 쓸고 부드럽게 주물렀다. 아랫입술에 이어 윗입술까지 단번에 핥아 올리곤 혀로 작은 입을 벌렸다. 미끄러지듯 입안으로 들어간 도운의 혀가 그 안에 든 작은 혀를 확 잡아채 휘감았다. 이어 혀끝으로 청조의 말캉한 혀를 꽉 누른 도운은 그대로 살덩이를 맞댄 채 농밀하게 비벼댔다.
혀의 작은 돌기들이 하나하나 살아 있는 듯, 혓바닥에서 짜릿한 성감이 느껴졌다. 이내 청조의 입안을 부드럽게 탐닉하던 도운의 혀가 도톰한 아랫입술과 윗입술을 번갈아가며 정신없이 물어뜯었다. 숨 쉴 틈 없이 휘둘러지는 사이 어느새 청조에게서 달뜬 숨소리가 새어 나오기 시작했다. 마침내 도운의 입술이 떨어져 나가자, 소담히 부풀어 오른 청조의 붉은 입술이 타액으로 번들거렸다.
하아, 하아, 밭은 숨을 내쉬는 청조의 얼굴에 몽롱함이 퍼져 있었다. 자신이 주는 쾌감에 몽롱하게 풀려 버린 청조의 얼굴을 보자 묘한 성취감과 함께 욕정이 터져 버렸다. 우는 얼굴은 보고 싶지 않았다. 대신 이런 얼굴은 평생 보고 싶었다. 도운은 아직도 밭은 숨을 쉬고 있는 청조의 옷고름을 풀어 버리고 서둘러 저고리를 벗겼다.
오늘따라 마음이 너무 급했다. 도운은 저고리를 미처 다 벗기기도 전에 벌어진 앞섬 사이로 보이는 치마말기 끈부터 잡아당겼다. 끈이 풀린 치마말기를 덥석 붙잡아 단숨에 치워 버리고, 청조의 몸을 번쩍 들어 올려 보려 위에 앉혔다. 자신의 저돌적인 행동에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뜨는 청조의 어여쁜 모습에 그나마 조금 있던 여유가 단번에 사라졌다.
서둘러 벽에 기대앉은 청조의 속곳부터 끌어내렸으나, 급하게 끌어내린 속곳이 버선목에 걸려 잘 빠지지 않았다. 그렇게 한쪽 버선목에 속곳을 걸은 채로 청조는 무릎을 바짝 세워 본능적으로 몸을 가렸다. 도운은 자신의 의복을 서둘러 벗어 버리고 몸을 가리고 있던 청조의 무릎 사이에 손을 끼워 넣었다.
손에 잡힌 무릎을 양쪽으로 활짝 벌리자 무릎에 가려졌던 청조의 가슴부터, 거웃에 가려진 비밀스런 입구까지 한 번에 열렸다. 이미 터질 것 같은 남근을 달래고 달래며 청조의 중심에 자리를 잡은 도운은 우선 젖가슴부터 크게 한입 물었다. 산을 내려가라 윽박지르던 그 날 밤 이후로 처음이었다. 실로 오랜만에 입에 물어보는 그 맛에 온몸이 노곤하게 풀렸다.
도운은 탄탄한 두 개의 젖가슴을 아래에서부터 힘껏 밀어 올려 두 언덕 사이에 깊은 골짜기를 만들었다. 쩝쩝쩝, 가슴 사이의 골과 빳빳하게 일어선 유두를 오가는 사내의 혀가 쉬지 않고 음란한 소리를 만들었다. 벽에 등을 기대고 앉은 채, 가슴을 들썩거리던 청조의 고개가 점점 뒤로 꺾였다. 몰려오는 쾌감과 갈증에 제 젖가슴을 유린하는 사내의 머리통을 힘껏 끌어안았다.
그가 주는 기묘한 통증에 서방님을 불러대는 감창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서방님이 쥐어짜며 빨아대는 것은 젖가슴인데, 이상하게도 뱃속이 간지러웠다. 알 수 없는 간질거림에 거친 숨을 내쉬는 청조의 가슴이 크게 들썩거렸다. 들썩거릴 때마다 부풀어 오르는 젖가슴을 도운은 터트릴 듯 주물럭거리다 사납게 비틀었다.
그가 주는 아픔에 청조는 저도 모르게 허리를 움찔거렸다. 바르작거리는 여인의 몸짓을 느낀 도운의 입매가 음란하게 올라가더니, 청조를 번쩍 들어 제 허벅지 위에 올렸다. 민감한 부위에 실한 그의 양물이 느껴지자 청조의 허리가 저도 모르게 앞뒤로 움찔거렸다. 작은 새가 품에서 날갯짓하는 것만 같은 여인의 모양새가 어여뻐 도운은 입맛을 다셨다. 이제야 청조가 남녀 간의 은밀한 즐거움에 눈을 뜨고 있었다.
도운은 청조를 품에 꼭 껴안고 보드라운 등허리의 한가운데를 지나는 척추 마디마디를 하나하나 짚으며 간질였다. 그가 손가락으로 어루만지는 곳마다 열꽃이 피어오르는 듯했다. 청조의 몸에 열꽃을 피우며 도운의 손가락이 점점 아래를 향했다. 그의 손가락이 주었던 쾌감을 기억하고 있는 몸이 사특하게도 벌써부터 떨려왔다.
아래로, 더욱 아래로, 이윽고 손가락이 엉덩이골에 닿자 긴장한 청조의 비문이 쉴 새 없이 뻐끔거리며 저의 남근을 주무르는 것을 도운은 고스란히 느꼈다. 마침내 뒤쪽에서 찌르며 들어오는 굵고 기름한 손가락에 청조의 숨이 ‘헉’하고 트였다. 하지만 손가락은 입구만 살살 문대다 빠져나가, 다시 엉덩이골 사이에서만 맴돌았다.
그러다 예고 없이 그곳을 푹 찔러오는 손가락에 청조의 발가락이 쥐라도 난 듯 구부러들었다. 하지만 손가락은 또 입구만 살살 문지르다 빠져나갔다. 그러기를 여러 번, 청조는 갈증이 나기 시작했다. 저의 안쪽을 찔러대는 손가락이 조금만, 조금만 더 깊이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아래를 힘껏 조였다.
또다시 빠져나가려는 얄궂은 손가락을 따라 둔부를 뒤로 쭉 빼보았지만, 손가락은 미련 없이 제 몸을 빠져나갔다. 이쯤 되니 갈증이 심하다 못해 조갈이 났다. 혀로 말라비틀어진 입술을 축이는 청조의 애가 타는 얼굴이 보였다. 도운은 붉게 달아올라 몽롱한 듯하면서도 애가 달아 어쩔 줄 몰라 하는 청조의 얼굴을 보는 것이 꽤 즐거웠다.
“내가 무언가 해 주길 바라느냐?”
“……아닙니다.”
“그래? 아니란 말이지.”
“아흥.”
말이 끝남과 동시에 손가락 두 개가 비문을 푹 찔러 왔다. 조금 전보다 부피가 커진 그것이 조금 더 깊게 찔러오자 허리가 들썩거렸지만, 곧바로 빠져나가자 청조는 애타는 신음을 흘렸다. 이상하였다. 뱃속이 간질거리고 아랫도리는 견디기 힘들 정도로 감질이 났다. 난감하고도 달뜬 표정으로 허물어진 청조의 얼굴을 바라보는 도운의 입매가 즐거움에 한껏 올라갔다.
“추파를 던져 보거라.”
“예? 그게 무슨…….”
“그 종놈이 말하던 추파라는 것을 던져 보란 말이다.”
“제, 제가 그런 것이 정녕…… 으흥!”
도운이 급히 변명하는 청조의 음핵을 손가락 사이에 끼우고 살살 비비다 비틀자 자지러지는 감창소리가 나왔다.
“안다. 그러니 한번 해 보라 하지 않느냐. 그놈이 보지 못한 그 추파라는 것을 내 앞에서 해 보거라. 내가 네 속살을 찌를 마음이 들도록 여우 같은 마누라가 되어 보란 말이다.”
“하지만…… 소첩이 어찌…….”
“아니라면 이 밤이 새도록 이렇게 있어도 좋고.”
거짓이었다. 밤새 이러고 있기에는 이미 자신이 먼저 한계에 다해 있었다. 청조에게서 풍기는 흙 내음에 취해 정신이 날아갈 것만 같았다. 허나 음란하게 흐트러진 청조의 모습을 좀 더 보고 싶기도 하거니와, 청조가 남녀 사이의 운우지락을 알기를 바라였다. 그리하여 지금 저희가 하고 있는 일이 교미가 아닌 교접이라는 것을, 윤간이 아닌 화간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첫날밤의 괴로운 기억이 모다 사라질 수 있도록. 수치를 안겨주었던 계곡에서의 두 번째 방사를 다 잊을 수 있도록 황홀한 경험이 되었으면 했다.
도운의 바람을 알 길 없는 청조는 더욱 애가 탔다. 하지만 애가 타는 것은 오직 저뿐인 듯, 서방님은 정말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있었다. 이러다가는 정녕 이대로 밤을 새울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쩔 수 없이 도운의 분신에 맞추어 저의 비부를 슬쩍슬쩍 비벼보던 청조는 결국 울어 버릴 것 같은 표정으로 그를 올려다봤다.
“소첩이 어찌해야 합니까? 모르겠습니다. 가르쳐 주십시오.”
“글쎄, 고 작은 머리통을 굴려 열심히 생각을 해 보거라. 네가 어찌하면 내가 좋아할지.”
생각을 하듯 눈동자를 굴리던 청조는 난감한 듯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곧 남근을 깔고 앉은 저의 작은 움직임에도 신음을 토해내던 서방님을 기억해냈다. 무언가 결심이라도 한 듯, 청조는 도운의 단단한 가슴을 손으로 밀었다. 가볍게 밀기만 했는데도 도운의 몸이 알아서 보료 위로 넘어갔다. 보료 위에 누운 도운은 기대에 찬 얼굴로 청조를 응시했다.
능글맞게 저를 보는 도운을 바라보다 청조는 숨을 크게 내쉬었다. 곧 무릎을 곧추세우며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제 가랑이 사이에 있는 그의 양물을 확인했다. 팽팽하다 못해 터질 듯 부풀어 오른 양물의 자세한 생김새를 실로 처음 보았다. 뱀 같은 몸뚱이에 대가리를 바짝 치켜세운 모양새가 독이 오른 살모사마냥 무서웠다.
길이가 배꼽 위치에 닿을 정도로 길쯤하고 두꺼운 것이 검붉은 빛까지 띄우고 있으니, 불에 달궈진 쇠 방망이라 느꼈던 저의 느낌 그대로였다. 저리 두껍고 기다란 물건이 저의 속을 어찌 파고들었는지 보고도 믿기질 않았다. 청조는 긴장감에 바들바들거리는 허리를 천천히 내리며 쇠방망이 같기도 하고 살모사 같기도 한 뜨거운 기둥에 저의 아래를 맞추고 앉았다.
‘하아아’ 뜨거운 살 기둥이 아래에 닿자 긴 숨이 저절로 내쉬어졌다. 청조는 자신의 손으로 아래의 갈라진 골을 양쪽으로 슬쩍 잡아당겼다. 스스로 제 음부를 잘 익은 조개처럼 벌려가며 기둥에 끼워 맞추자, 서로의 입에서 달뜬 신음이 흘러나왔다. 드디어 자신의 중심에 사내의 기둥이 꼭 들어맞자 청조는 몸을 뒤로 살짝 젖혀 도운의 단단한 허벅지를 짚고 몸을 지탱하였다.
미처 벗지 못했던 저고리가 스르르 흘러내려 도운의 허벅지를 짚고 있는 청조의 팔목 사이에 걸렸다. 몸을 한껏 뒤로 젖힌 여인의 풍만한 젖가슴이 위를 향해 봉긋 솟아올랐다. 버선만 신은 채 알몸으로 제 허리를 타고 앉은 여인의 모습이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음란했다.
처음 보는 청조의 음란함에 도운은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얼추 준비가 끝나자 크게 숨을 들이마신 청조가 허리를 천천히 앞뒤로 움직였다. 하지만 움직임은 곧 멈추었다. 청조는 저 스스로의 몸짓이 부끄러운지 잠시 울먹이는 표정으로 슬쩍 도운을 내려다봤다. 그의 얼굴에 번져 있는 즐거움을 본 청조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박을 타듯 유연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아, 아아!”
천천히 움직이던 몸짓이 저도 모르게 점점 속도가 더해갔다. 속도가 올라갈수록 여인의 비음 소리도 높아갔다. 거친 듯 매끈하고, 부드러우면서도 땡땡한 기둥을 끼고 앉은 중심부터 회음까지 열이 올랐다. 뜨거운 기둥에 비벼지고 문질러지는 자극에 말 못 할 쾌감이 느껴지는 것이 수치스러웠지만, 청조는 멈출 수가 없었다. 아직도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에 감질이 나는 청조는 도리어 자신의 몸을 더욱 빠르고 강하게 흔들 수밖에 없었다.
서방님의 남근이 제 속 어딘가를 휘둘러 주었으면 좋겠다.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고, 청조는 처음 느껴보는 타는 듯한 갈증을 해소하려 허리를 더욱 열심히 움직였다. 정신없이 허리를 흔들어 대며 그의 기둥에 제 아래를 사납게 비벼댔지만 그럼에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에 청조는 괴로운 신음을 흘렸다. 청조의 신음하는 얼굴에 도운의 쾌감은 커져갔다.
도운은 연신 입술을 적시는 청조의 작고 붉은 혀의 움직임과 허리를 흔들어 댈 때마다 출렁거리는 풍만한 가슴을 눈으로 좇았다. 터질 듯 부풀어 오른 청조의 백자 같은 고운 젖가슴 위로, 보일 듯 말듯 파랗게 지나가는 혈관의 색감에 눈이 시렸다. 그 아래 잔뜩 힘을 주느라 쏙 들어간 여인의 배가 보였다.
꺼진 그 배를 저의 물건으로 그득 채우고 싶은 욕구가 솟아오르자 흥분으로 양물이 더욱 부풀었다. 그의 양물이 부푼 것을 느꼈는지 청조가 뜨거운 숨을 내쉬고는 잠시 속도를 늦추었다. 그리고는 게슴츠레 뜬 눈으로 도운을 내려다보았다. 흥분과 쾌감에 풀려 버린 음탕한 눈이 너무도 유혹적이었다. 갈증이 나는지 연신 입술을 축이던 청조가 부끄러워하며 겨우 입을 열었다.
“아직 아니 된 것입니까? 더 커지신 것 같은데…….”
울 것만 같은 얼굴로 부끄러워하며 묻는 청조를 보자 묘한 만족감이 들었다. 청조가 어렵사리 몸을 움직일 때마다 여인의 보드라운 거웃 사이로, 저의 양물이 사라졌다 다시 고개를 뻣뻣이 들이밀었다. 그 양물의 선단 끝에선 이미 꿀같이 찐득찐득한 진액이 잘금거리며 도운의 배 위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끝내고 싶지 않았다.
청조의 가녀린 노력을 조금 더 보고 싶었다. 열에 들떠 자신의 몸을 타고 스스로 허리를 흔들어 대는 요염한 모습을 좀 더 보고 싶었다. 제 눈앞에서 출렁대는 뽀얀 젖가슴의 움직임을 더 보고 싶었다. 하지만 더 이상 청조를 수치스럽게 할 수는 없었다.
“이리 와서 구순을 맞추어 보거라.”
그의 부드럽고 유혹적인 명령에 잠시 머뭇거리던 청조가 허리를 굽혀 도운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다가온 입술을 부드럽게 음미하며 도운은 손으로 청조의 동그란 둔부를 가볍게 쓸었다. 이내 둔부를 주물거리기 시작한 손가락이 두 엉덩이의 골 사이로 사라졌다. 손가락은 골 사이에 숨어 있는 본문의 주름을 하나하나 쓸어가며 갈라진 틈 사이를 타고 점점 아래로 향했다.
이내 회음부에 도착한 손가락이 주위에 살살 원을 그리다 꾹꾹 눌러대며 청조의 그곳을 희롱했다. 이미 애액으로 범벅되어 미끈거리는 그곳을 지분거리자 청조의 허리가 찌르르 떨렸다. 몰려오는 자극에 참지 못한 청조가 입술이 떼려 하자 도운은 청조의 뒤통수를 강하게 잡아 눌렀다. 한 손으로는 청조의 머리를 누르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여전히 여인의 음핵을 어루만졌다.
입속을 한가득 침범하는 자극과 함께 아래를 어루만지는 감각에 청조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정신이 없는 틈에도 청조는 더 큰 열락을 찾아 자신도 모르게 노력하고 있었다. 뜨겁게 달아오른 자신의 음부를 뜨겁게 달아오른 불기둥에 대고 본능적으로 비벼댔다. 여인의 움직임에 만족한 도운은 손가락에 힘을 주었다.
끈적이는 애액으로 범벅된 도운의 손가락이 그의 양물과 찰싹 맞닿아 있던 여인의 내부로 자연스럽게 침범해 들어갔다. ‘흐응’ 도운에게 입이 막힌 청조의 신음이 밖으로 나오지 못하고 목구멍에서 울렸다. 도운이 손가락을 이리저리 휘두르며 내벽을 긁어대자, 양쪽으로 벌리고 앉아 있던 청조의 허벅지가 바들거리며 도운의 몸통을 힘껏 조여 댔다.
‘아흐흥’, 개수를 늘리며 들어온 도운의 손가락이 주는 쾌락을 이기지 못하고 몸을 움츠린 청조의 코에서 비음이 흘러나왔다. 여인의 비음에 더 이상 참지 못한 도운은 몸을 굴려 청조의 몸 위를 타고 올랐다.
“아흑.”
청조의 양 무릎에 팔을 끼워, 여인의 허벅지가 가슴에 닿을 정도로 접어 올린 도운은 저의 분신을 거침없이 찌르고 들어갔다. 여인의 홀쭉했던 뱃속을 터질 듯 가득 채운 제 분신을 확인하고 싶은 욕구가 넘쳤다. 도운은 손으로 여인의 배를 매만지다 가볍게 눌러, 뱃살 아래 들어 있는 저의 존재를 확인했다. ‘흐흡’, 안이 가득 찬 배가 눌리자, 터질 것만 같은 압박감에 청조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그대로 멈추었다.
“이제 어찌해 주랴?”
“……예?”
“이제 내가 어찌해 주랴? 말을 해 보아라.”
붉게 달아올라 흐트러진 청조가 아무런 대답을 못 하자 도운은 남근을 길게 빼었다 단번에 훅 박아 넣었다.
“아흣!”
“어찌할까? 이다음엔 어찌하면 좋을지 말해 보거라. 추파를 던져 보라 하지 않았느냐?”
“……저, 저는.”
청조의 달뜬 얼굴에 눈물이 고이기 시작하였지만, 도운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말을 하거라. 네가 진정 밤새 이리 있을 작정이냐?”
“소첩은…… 서방님께서…… 흑…….”
“그래. 내가?”
“서방님께서…… 움, 움직여 주셨으면…….”
“움직이라고? 이렇게 말이냐?”
“하앙.”
도운이 허리로 원을 그리며 묻자, 청조의 입에서 작은 교성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원하는 것은 이것이 아니었다.
“그, 그것 말고…….”
“그럼 무엇을 말함이냐?”
“……앞…… 앞뒤로…….”
“앞뒤로 움직여서, 네 쫄깃한 속살을 퍽퍽 때려 달란 말이냐?”
능글맞고 망측한 언사에 귀까지 벌겋게 달아오른 청조는 대답은 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관자놀이를 타고 흐르는 청조의 눈물을 핥으며 도운은 대답을 재촉하였다.
“대답하거라.”
“……예에…… 소첩이 그리 해 주시길…… 바, 바라옵니다.”
“잘하였다. 네가 원하는 그것이, 바로 내가 원하는 일이다. 우리가 함께 나누고자 하는 즐거운 일이다, 알아듣느냐?”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아듣는 것은 아니었지만, 청조는 그저 고개를 끄덕거렸다. 정신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여인의 모습에 도운은 굵은 소리로 웃었다. 마침내 몸을 일으켜 세운 도운은 청조의 치골을 힘껏 잡고 저돌적인 움직임을 시작했다.
무겁게 방아를 찧는 듯 쿵쿵, 뜨거운 몽둥이로 안쪽의 민감한 속살을 쳐댔다. 불에 달군 쇳조각을 내리치며 담금질하듯, 땅땅 박자에 맞춘 힘찬 움직임이었다. 단단한 살이 부드러운 살에 맞부딪히는 음란한 소리를 타고 청조의 간드러진 교성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 * *
‘볼일 끝났으니, 어서 그 더러운 몸뚱이 치워라!’
‘하악!’ 참았던 숨이 한 번에 터져 버린 듯, 큰 숨을 껄떡거린 청조가 몸을 일으켰다.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로 계속된 교접에 어느 순간 정신을 잃었다. 동당 거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어두운 주위를 살피던 청조는 곁에 누워 있는 도운의 모습에 화들짝 놀라 몸을 일으켰다. 서둘러 주위에 널브러진 옷을 주워들고 도망치듯 처소를 빠져나갔다.
‘외로운 밤 위로나 하라고 보낸 암캐.’
제 처소로 돌아온 청조의 얼굴이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첫날 들었던 서방님의 호통과 전날 반빗간에서 저를 두고 하신 서방님의 말씀이 귓가를 아프게 때려댔다. 지게꾼을 피하고자 문 앞에 서 있던 것이 후회되었다. 문 앞에 서 있지 말 것을. 차라리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을. 그랬다면 고함치시는 서방님의 목소리가 문틈으로 모다 들리지 않았을 것인데.
서방님께서 진심으로 하신 말씀이 아닌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산에 오른 첫날에도, 계곡에서의 그날에도, 늘 볼일이 끝나면 미련 없이 떠나던 서방님의 모습이 생각나 청조는 몸을 웅크렸다. 욕심을 가져선 아니 된다. 주제를 알고 순리에 맞게 살아야 한다. 늘 다짐을 하면서도 마음이 너무 시렸다. 예화 아가씨께서 기다리고 계시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잠든 서방님의 그 곁자리가 너무나도 탐이 났다.
덜덜 떨릴 정도로 몸이 너무 추워 청조는 반빗간으로 달려가 아궁이에 불을 때고 그 앞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아궁이 밖으로까지 혀를 날름거리며 활활 타오르는 불꽃 앞에 앉아 있는데도 몸이 시리고 추웠다. 몸을 둥글게 만 청조는 새벽이 몰려올 때까지 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또 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