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도운(韜雲) - 숨은 구름
산을 내려가라는 도운의 말이 잠시 이해되지 않아 청조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곧 두려움이 엄습했다. 저를 바라보는 그의 맑고 진중한 눈빛에서, 청조는 그가 가볍게 내뱉은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어째서. 서방님께서 이제껏 자신을 내치려 한 적은 많았다. 부러 타박하며 산을 내려가라 윽박질렀지만 진심은 아니실 거라 생각했었다. 허나 이번은 무언가가 달랐다.
“예?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눈이 날리기 전에 내려가거라. 조만간 눈이라도 오면 산을 내려가기 힘들 것이니, 내일이라도 당장 내려가거라.”
서방님께서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진심이었다. 이번엔 진정 저를 내치시기로 작정을 한 것이다. 두려움이 밀려와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이대로 내쳐질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청조는 무조건 잘못을 빌었다.
“제가, 제가 잘못하였나이다. 용서해 주십시오, 잘못하였나이다.”
“네가 무얼 잘못했단 말이냐?”
도운을 바라보는 여인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무엇을 잘못하였는지 열심히 생각하고 있으나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아무렴, 잘못이 없으니 대답을 할 수 없을 수밖에. 여인은 잘못이 없었다. 잘못은 모다 저에게 있었다.
“잘못하였습니다. 다시는 생각 같은 걸 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서방님께서 하라는 대로, 그저 그렇게만 살 것입니다. 다시는 남은 찬을 먹지 않을 것입니다. 다시는 양반을 입에 올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산을 내려가라 하지 마십시오.”
두 손을 열심히 비비며 애원하는 여인의 눈에서 넘실거리던 눈물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이 바보 같은 여인은 벌써 달포도 훨씬 지난, 그 반빗간에서의 일로 자신이 화를 낸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일을 입에 담으며 우는 여인의 모습에 도운의 마음은 미어졌다.
“그것 때문에 내려가라 하는 것이 아니다. 남은 찬을 먹은 것이 어찌 네 잘못이겠느냐? 남은 찬을 먹고 살게 한 내 잘못이지. 모다 내가 잘못한 것이다.”
이지러지는 그의 눈빛이 무엇을 뜻하는지 청조는 감도 잡을 수 없었다. 그저 본능이 시키는 대로 빌고 또 빌었다.
“소첩이 더 잘할 것입니다. 더욱더 성심을 바칠 것이옵니다. 허니 내려가라 하지 마소서.”
“네가 여기서 어찌 더 잘한단 말이냐. 네 잘못이 아니라도 그러는구나. 네가 돌아가면, 대가로 받은 것들을 토해 놓으라고 할까 봐 그러하냐? 그러지 않을 것이다. 내 약속하마.”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결코 아닙니다. 지아비 곁을 떠나라 하심은 소첩에게 죽으라 하시는 것입니다.”
“하아, 진정 그런 뜻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죽으라는 것이 아니야. 이 산을 내려가 너를 위해 줄 다른 좋은 이를 만나 행복하게 살라 말하는 것이다.”
“아니요, 죽으라고 하시는 겁니다. 누굴 만나라 하십니까? 이미 지아비가 있는 소첩에게 이부 종사하라는 말씀은 죽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바닥에 엎드려 진심으로 읍소하는 여인의 모습에 도운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여인의 야윈 두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하자, 도운은 결국 고개를 돌려 버렸다. 저 같은 놈이 뭐라고. 해 준 것은 하나 없고 핍박만 해댄 저 같은 놈이 무슨 서방이라고. 저 같은 놈을 위해 지조를 지키겠노라 목 놓아 우는 여인의 앞에서 도운은 부끄럽고도 비참했다.
“내가 너에게 진정 지아비냐? 서방이냐? 아니다, 난 그저 너를 겁탈한 파렴치한이다. 아무리 변명하고자 한들, 내가 너에게 저지른 일은 그저 겁탈이고 능욕이었다.”
“아닙니다, 겁탈이 아니었습니다. 소첩이 비록 대가로 금품을 받았다고는 하나, 저의 마음을 금품에 판 것은 아니옵니다. 소첩이 산에 들어오기로 마음먹은 순간부터 이미 소첩의 마음과 몸이 모다 서방님의 것이온데, 어찌 그것을 두고 겁탈이라 하십니까? 서방님께서 제 서방님이 아니셨다면, 그 순간 혀를 깨물고 자결하였을 것입니다. 서방님께서 저를 지어미로 생각하지 않으신다 해도 저에게 지아비는 하늘 아래 서방님 한 분이십니다. 제발…… 제발 산을 내려가라 하지 마십시오…… 죽으라고 하지 마십시오.”
고개를 든 여인은 두 손을 싹싹 빌며 애원하고 또 애원하였다. 두 눈에서 넘쳐흐른 눈물에 얼굴이 엉망이었다. 싹싹 빌던 여인은 도운이 아무 말이 없자, 다시 힘없이 바닥에 엎어졌다. 그 작은 몸을 웅크리고 애처롭게 흐느꼈다. 도운은 몸을 들썩이며 우는 여인의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바보 같은 여인, 착하기만 한 여인. 보내 줄 때 미련 없이 떠나면 될 걸 왜 이리 모질지가 못해서.
“그럼 내가 죽었다 생각하고, 재가하거라. 어차피 나는 이 산속에서 죽어 없어질 팔자이니라.”
“서방님께서 이 산속에서 죽으시겠다면, 당연히 소첩도 이곳에 뼈를 묻을 것입니다.”
“그리 말하지 말거라. 산에서 평생을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너도 알지 않느냐. 사내인 나도 힘든 일이다. 평생 이곳에서 다른 사람의 그림자 한번 못 보고 살 수도 있다. 네 가족의 얼굴을 평생 못 보고 살 수도 있다는 말이다. 지금은 몰라도 곧 외롭고, 더욱 지쳐갈 것이야. 어미가 아프다 하지 않았느냐. 어린 동생들이 보고 싶지 않으냐? 걱정하고 보고 싶어 하는 것을 안다. 가서 그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아라. 너는…… 너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는 여인이다. 그러니 그만 개미지옥 같은 이곳을 벗어나거라. 벗어나 행복해지거라.”
괴로운 듯 타이르는 도운의 말에 바닥에 엎드려 울던 청조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청조는 무언가 결연한 표정으로 도운을 빤히 바라보더니 허둥거리며 옷고름을 풀기 시작했다. 저고리를 벗자 달덩이처럼 탐스럽게 솟아오른 젖가슴이 보였다.
“무슨 짓이냐?”
“다리를 벌리라 하면 다리를 벌리라 하셨습니다. 이 산에서의 제 본분이 그것이라면 마땅히 할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소첩을 버리지 마십시오! 소박맞은 여인에게 남는 것은 죽음일 뿐이라는 사실을 잘 아시지 않으십니까? 서방님 없이, 소첩에게 행복은 없습니다. 더 이상의 삶은 없습니다!”
애처롭게 우는 여인의 모습에 도운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여인을 보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가냘프고 선이 고운 여인의 목선을 따라 둥근 언덕을 이룬 탐스러운 젖가슴을 보는 순간 애써 눌러왔던 성욕이 날뛰어댔다. 진정 금수만도 못한 저 자신이 더럽고 수치스럽다가도, 내심 산에 남겠다는 여인을 반가워하는 저 자신을 깨달았다.
여인의 강한 거부가 너무 고맙고 또 그에 안심하고 있는 저였다. 말로는 떠나라 하면서도 결국 남아 주길 바라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 외로운 산에서 저의 곁을 지켜 주는 유일한 동반자를 잃고 싶지 않은 것이었다. 나쁜 놈. 자신은 결국 여인의 인정에 기대고 있던 위선자였다.
“네가 원하는 것을 평생 줄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그것이 지어미에 대한 애모의 마음이든, 본부인의 자리이든, 자식의 어머니가 되는 일이든.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지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인이 남아 주길 바라는 이기적이고 못난 사내가 저였다.
“조르지 않을 것입니다. 마땅히 순응하며 저의 주제를 알고 지낼 것입니다. 맹세 드릴 것입니다.”
“……이리 가까이 오거라.”
샘물 올라오듯 청조의 눈에서 퐁퐁 솟아오르던 눈물이 치마 위로 뚝뚝 떨어졌다. 청조가 무릎걸음으로 다가오자 도운은 앞에 놓인 서가를 치워 버렸다. 정녕 이래도 되는 것인지 마음속 갈등이 일었다. 저 착한 여인을 이리 능욕하며 살아도 되는 것인지 갈등과 죄의식에 마음이 번다했다.
허나 갈등과 죄책감은 가까이에 다가앉은 여인의 향취에 멀리 사라졌다. 가까이서 본 여인의 몸은 훨씬 자극적이었다. 얼마나 참았는지 모른다. 여인의 육감적인 몸을 만지고, 빨고, 제 밑에 깔고 엉망으로 부숴 버리고 싶었다. 그 파렴치한 충동을 얼마나 참아왔는지 모르겠다. 저의 음심을 자극하는 단 하나의 여인을 그동안 얼마나 참았는지 모른다.
도운은 여인의 엉망진창인 얼굴을 부드럽게 닦아 주었다. 계속해서 흐르는 눈물이 멈출 때까지, 청조의 뺨을 계속해서 닦아 주었다. 이윽고 청조의 눈물이 마르자 도운은 손을 내려 치마말기 매듭을 잡아 당겼다. 무명치마가 힘없이 스르르 흘러내리고 백자 그릇을 엎어 놓은 듯 크고 둥근 가슴이 드러났다.
어둠이 내려앉은 밤, 은은한 등의 불빛을 유두 끝에 매달아 놓은 듯 그 끝이 도홍색으로 빛나며 시선을 자극했다. 도운은 그의 큰 손을 여인의 가는 허리에 둘렀다. 두른 손을 끌어당기자 여인의 몸이 도운의 바로 앞까지 힘없이 끌려왔다. 허리에 얹었던 손이 둔부를 쓸며 지나가자 여인은 긴장한 듯 크게 숨을 내쉬었다.
이어 도운은 두 손으로 청조의 엉덩이를 부드럽게 쥐고 슬쩍 들어 올렸다. 그의 의도대로 조용히 따르던 청조가 어느새 다리를 벌리고 도운의 허벅지 위에 올라탔다. 도운의 코앞에 바로 마주 앉은 청조의 가슴이 긴장감에 들썩거렸다.
이미 빳빳하게 선 양물이 금방이라도 얇은 속곳을 뚫고 자신의 몸으로 들어올 듯하였다. 도운의 허벅지에 걸터앉은 청조는 저의 아래로 그것의 존재를 여실히 느꼈다. 거대하게 느껴지는 무서운 살덩이에 청조의 가슴이 아까보다 더 크게 들썩거렸다. 그것이 주던 고통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는지라, 벌써부터 두려웠다.
“괜찮다, 무서워하지 말거라. 절대 아프게 하지 않을 것이다.”
청조의 두려움을 느낀 도운은 달래주듯 여인의 등을 조심스럽게 어루만져 주었다. 거칠었던 청조의 숨이 겨우 잦아들자 도운은 아까부터 들썩거리며 저를 유혹하던 도홍색 젖꼭지를 한입에 삼켜 버렸다. 혀끝에 구슬처럼 감도는 이것을 그간 얼마나 먹어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얼마나 만져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
도운의 망측한 행동에 당황한 청조가 그의 단단한 어깨를 밀어내었다. 하지만 여인의 힘없는 손짓에 엄장한 풍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요지부동인 사내의 입속으로 젖꼭지뿐만 아니라, 젖가슴까지 흡입되듯 쭉 빨려 들어갔다. 빨려 들어간 젖가슴이 입속에서 짓물러지고 물크러지는 소리가 야릇하게 울렸다.
적막한 방에 질척한 소리가 너무나도 적나라하게 울리자 청조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도운은 그 소리가 좋은지 입안에 가득 품은 젖가슴을 더욱 쭉쭉 빨아 당겼다. 젖가슴 다음엔 구슬 같은 젖꼭지를 천천히 맛볼 차례였다. 혀로 젖꼭지를 길게 핥아 올리곤, 앞니로 그것을 잡고 자근자근 씹었다. 자근대던 젖꼭지를 혀로 구슬리다 다시 입안 한가득 젖가슴을 물었다.
“아흑.”
처음 느껴보는 민망한 아픔에 도운의 어깨를 밀어내던 청조는 주먹을 꽉 쥐었다. 이대로 계속 서방님을 밀어내다, 혹시라도 그가 산을 떠나라 할까 두려웠다. 어찌할 줄 모르는 꽉 쥔 두 주먹이 갈 곳을 잃고 그저 허공에서 맴돌았다.
여인의 작은 새 날갯짓 같던 버둥거림이 멈추자, 도운은 다른 쪽 가슴을 혀로 희롱하기 시작했다. 손으로는 이제껏 희롱하던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이제까지 쭉쭉 빨던 젖가슴이 타액으로 미끈거리며 손가락 사이사이로 터질 듯 밀려 나왔다.
“아앗!”
도운의 커다란 손에 잡힌 젖가슴이 터질 것처럼 아팠다. 이로 깨물어지다 다시 입술 사이로 빨려 들어가는 젖가슴은 조이듯 아파왔다. 하지만 아픔 뒤에 따라오는 묘한 쾌감이 있었다. 알 수 없는 쾌감에 몸이 떨려와 청조는 저도 모르게 허리를 비틀어댔다.
이미 잔뜩 흥분한 자신의 양물을 깔고 앉아 그 위에서 바르작거리는 여인의 몸짓에 도운은 더욱 흥분했다. 도운의 흥분에 청조는 얇은 천 사이로 느껴지던 사내의 양물이 더욱 부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으윽’하는 도운의 신음소리가 울렸다. 그의 신음소리에 몸이 굳을 정도로 당황한 청조가 재빨리 사죄하였다.
“소…… 송구합니다. 송구합니다.”
송구하다는 여인의 말이 우스워 도운은 저도 모르게 웃었다. 여인은 왜 송구한 일이 생긴 지도 모를 만큼 남녀 간의 방사에 무지했다. 이 무지한 순백의 여인을 음탕하다 욕하고 멸시한 것이 생각나 웃음소리는 곧 한숨 소리로 부수어져 흩어졌다. 도운의 웃음소리와 한숨을 처음 들어 본 청조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저 고개만 숙였다.
“나를 보거라.”
청조가 어렵사리 고개를 들어 올리자 사내의 기름한 손가락이 여인의 턱을 받쳤다. 복면 사이로 그윽한 두 눈동자가 보였다. 서방님의 눈을 이리 가까이서 본 것이 처음인지라, 청조의 가슴이 심하게 동당 거리기 시작하였다.
“너에게 나는 진정 무엇이냐?”
“저의 서방님이십니다.”
“평생 내 얼굴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얼굴을 뵙지 못한다 하여 서방님의 존재가 달라지는 것도,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여전히 저의 서방님이십니다.”
“내가 복면을 벗을 수 없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느냐? 내가 누구인지 평생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귀가 있는지라 말씀하시면 듣겠지만, 말씀하지 않으신다면 궁금해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이 산에서 서방님과 함께 살 수 있는 것으로 족하고 족합니다.”
여인의 진심 어린 대답을 듣던 도운의 눈이 더욱 깊어졌다. 여인의 바르고 맑은 눈빛을 바라보고 있자니 자꾸 명치끝이 걸려와 자신의 손으로 여인의 두 눈을 가려 버렸다. 그리고 여인의 몸을 뒤로 돌려 앉혔다. 여인이 등을 보이고 앉자 그제야 마음이 조금 편해졌다. 도운은 여인의 가녀린 어깨를 따라 가볍게 입을 맞추어 주었다. 눈을 가렸던 손을 내려 입맞춤을 남긴 어깨를 따라 부드럽게 쓰다듬고는 젖가슴을 꽉 그러쥐었다.
저의 큰 손에도 넘치도록 꽉 차는 것이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보드랍고 말캉하였다. 조금 전, 입에 물고 깨물었을 때 나던 단내가 신기하게 손으로도 느껴졌다. 달디 단 과즙이 뚝뚝 흐르는 농익은 수밀도의 내음이 손으로도 여실히 느껴졌다. 또한, 뒤에서 바라보는 여인의 목덜미가 참으로 먹음직스러운 것이 이곳에서도 단내가 날까 궁금하였다.
도운은 방해가 되는 목비녀를 거칠게 잡아 빼 바닥에 던지고는 선이 고운 목덜미를 함빡 물었다. 두 손에 꽉 잡힌 가슴을 힘껏 주물거리다, 잘 익은 앵두 같은 유두를 잡고 그 끝을 검지 손톱으로 살살 긁어냈다. 한참을 긁어내다 이내 손끝에 잡고 비비적거리자 잘 익은 앵두마냥 말랑했던 것이 어느새 단단해져 꼿꼿이 고개를 들며 일어섰다.
“아흑.”
여인의 입에서 신음이 날 정도로 깨물며 핥아대는 목선에선 젖가슴과는 다른 향이 느껴졌다. 언제나 그렇듯 여인에게서는 산에 내려앉은 이슬 향과 흙내, 그런 것들이 한데 뭉친 청량한 향이 났다. 목선에서 풍기는 향을 따라 움직이는 말캉하고 축축한 혀가 귓바퀴를 부드럽게 쓸고, 귓불을 잡아채 입안에서 굴리며 빨아댔다.
손안에 잡힌 여인의 젖가슴이 단단하게 부풀어 오르자, 손에 쥐는 맛이 미묘하게 달라졌다. 부드럽게 말캉하던 것이, 이제는 부드러우면서도 탄력적이었다. 찌르면 터질 듯 팽팽하게 부푼 젖가슴을 힘껏 주물럭거리자 여인이 억누르는 것 같은 희미한 감창소리를 요사스럽게 흘렸다.
“이 복면 밑에 내 얼굴이 대풍창에 걸려 썩어 문드러진 병자의 얼굴이라면 어쩔 것이냐?”
“……아핫…… 소첩…… 괘념치…… 아……않습니다.”
가슴을 주무르던 손이 점점 아래로 내려가 여인의 배꼽 주위를 맴돌았다. 도운의 손이 배꼽을 따라 빙글빙글 원을 그리자 밭은 숨을 내쉬던 여인의 배에 힘이 들어갔다. 납작했던 배가 더욱 납작해지는 것을 느끼며, 한동안 여인의 아랫배를 쓰다듬던 도운의 손이 더욱 아래로 내려갔다. 사내의 굵고 기름한 손가락이 어느새 속곳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갔다.
얇은 속곳 아래,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인지 신음을 삼킨 청조가 자지러지듯 허리를 튕겼다. 아래에 느껴지는 자극에 허리가 저절로 앞으로 숙여졌다. 하지만 도운의 손에 꽉 잡힌 젖가슴 때문에, 청조는 결국 그의 단단한 가슴에 몸을 기대고 허리만 비틀어댔다. 계속되는 자극을 참지 못하고 청조는 결국 자신의 두 손으로 속곳 아래를 거침없이 누비는 사내의 커다란 손등을 잡아챘다.
“그렇다면 너는 지금 대풍창에 걸린 이와 교접을 하고 있는 것이다. 대풍창이 옮는 병이라는 것을 알고 있느냐?”
“아흑.”
속곳 안을 누비는 도운의 손길이 점점 더 과격해지자 청조는 가랑이를 모으고 꽉 조였다. 얇은 천 아래에서 거침없이 움직이는 서방님의 손등을 잡고는 있으나 그저 잡고 있는 것이 다였다. 손등을 아무리 잡아도, 허벅지를 아무리 조여도, 서방님의 자극적인 손짓을 멈출 방도는 없었다. 결국, 청조는 가슴을 들썩이며 점점 달아오르는 뜨거운 숨만 밭게 내쉬었다.
“대답을 하거라.”
“……아…… 알고…… 있습니다. 허나…….”
“허나?”
“……병이 옮더라도…… 꼭, 으응, 소첩이 서방님의…… 아흑!”
순간 청조의 허리가 자지러지듯 비틀렸다. 아래에 맞닿아 있는 여인의 둔부에서 가느다란 떨림이 느껴졌다.
“소첩이…… 서방님의 병을…… 아흑, 꼭 고쳐 드릴 것입니다.”
여인의 대답에 도운은 눈물이 날 듯하였다. 눈물을 참는 도운의 입에서 자조 어린 웃음소리가 나왔지만 자극에 신음하는 청조는 듣지 못했다. 길쯤한 손가락은 아래 입구의 바로 안쪽을 농밀하게 비벼대다 어느새 갈고리처럼 구부러지며 깊은 곳부터 바깥까지 길게 긁어댔다. 그의 요란한 손짓에 청조의 허리가 비틀리듯 휘었다. 열기로 달아오른 몸에 곧 이슬 같은 땀이 차기 시작했다.
말할 수 없는 은밀한 부위를 중심으로 땀이 번지기 시작하며 사내의 남근을 깔고 앉은 둔부가 축축해지기 시작했다. 청조는 망측한 자세도 물론이거니와 처음 느껴보는 야릇한 열기가 부끄러워 어디론가 숨어 버리고 싶었지만, 결코 서방님의 손길을 거부할 수 없었다. 그저 부끄러움에 견디기 힘든 열락의 순간이 어서 지나기만을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그래, 꼭 고쳐주거라. 네가 나를 고쳐주어야 한다. 네가 나를.”
네가 나를 채워 주어라. 부족한 나의 내면을 꼭 채워 주어야 한다. 뜨거운 바람을 불어 넣으며 말하는 그의 숨결에 청조는 귓가가 간지러웠다. 그 순간 아래를 침범하는 또 다른 손가락에 청조는 앞으로 고꾸라질 듯 허리를 숙여 버렸다. 힘껏 모은 가랑이 사이로 꿈틀대는 그의 손길에 은밀한 부위가 질척거리는 소리를 내며 녹아내렸다.
“대답을 해 보거라.”
“하아, 하아, 예…… 예, 서방님.”
몸을 움츠린 여인의 티끌 한 점 없는 매끈한 등에 척추 뼈가 도드라져 있었다. 도운은 혀로 척추를 길게 핥으며 내려갔다. 아래로, 아래로 움직이다 여인의 허리에서 멈추었다. 한 손으로 여인의 골반을 잡고 앞으로 밀어내자, 몸을 움츠리고 있던 여인의 몸이 쉽게 밀려 나갔다. 청조는 앞으로 쏠리는 몸을 지탱하느라 재빨리 두 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그리고 그 자세 그대로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두 팔로 바닥을 짚고 엎드렸다.
자세가 바뀌자 여인의 속살을 헤집던 도운의 손가락이 그제야 쓱 빠져나갔다. 빠져나온 사내의 손가락이 애액으로 범벅되어 축축했다. 도운은 엄지와 검지를 서로 대고 문지르며 점성으로 미끈거리는 그것들을 느꼈다. 이제껏 늘 말라 있어 뻣뻣하기만 하던 여인의 비문이 젖었다. 그 사실만으로도 하초에 열이 몰려 터질 것만 같았다.
더 이상 참지 못한 도운은 짐승처럼 네발로 엎드린 여인의 속곳을 잡아 아래로 확 내려 버렸다. 그리고 뒤에 척 달라붙어 또다시 혀로 척추를 따라 위로 올라가며 부드럽게 핥았다. 맨살을 핥아대는 축축하고 말랑한 혀의 느낌에, 청조는 온몸에 닭살이 오소소 올라왔다. 마침내 혀로 목까지 쓸어 올린 도운은 그대로 목덜미를 잡아 물었다.
“아앗.”
가느다란 신음소리에 만족한 듯, 도운은 여인의 목덜미를 물고 한참 빨아댔다. 그리고 다시 혀로 척추를 쓸며 아래로 내려왔다. 뜨거운 혀가 계속해서 아래를 향해 내려가자 긴장한 청조의 허리가 휘었다. 허리가 크게 휘며 아래로 쏙 내려가자, 달덩이 같은 엉덩이는 교태를 부리듯 위로 솟구쳤다. 도운은 위를 향해 솟구친 두 쪽의 엉덩이를 꼭 감싸 쥐었다.
도운의 손길을 느끼자 긴장한 듯 동그란 둔부가 움찔거렸다. 교태를 부리듯 움찔거리는 엉덩이를 도운은 질긴 육질을 뜯어먹듯 앙 물어뜯다 달디 단 율당을 녹여 먹듯 혀로 굴리고 빨아댔다. 여인의 엉덩이를 입에 무는 순간, 사내의 기개나 왕족의 허울 따위는 다 벗어던진 듯 후련하였다. 이제 더 이상 거리낄 것이 없었다. 너무나 홀가분하고 산뜻하기까지 하였다.
상채를 벌떡 일으킨 도운은 바지춤을 끌어내리고 제 중심에 단단히 일어선 그것과 함께 여인의 안을 향해 그대로 돌진했다. 밀고 들어오는 사내의 두꺼운 양물에 여인이 고통스런 신음을 흘리며 바닥으로 쓰러져 내렸다. 손가락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거대함이었다. 젖어 있긴 했지만, 아직도 좁기만 한 비문이 찢어질 듯 아팠다. 여인의 아픔을 모른 채 도운은 바닥에 쓰러진 여인의 잘록한 허리를 부여잡고 천천히 허리를 움직였다.
둔부만 위로 바짝 들린 채, 바닥에 널브러진 여인은 사내의 움직임이 시작되자 손으로 바닥을 긁었다. 바득거리며 바닥을 긁고 난 후, 이내 고통을 감내하듯 주먹을 꽉 쥐었다. 바르르 떨리는 엉덩이는 더 이상 교태가 아닌 두려움에 떨리고 있었다. 단단히 부풀어 올랐던 둥근 젖가슴은 딱딱한 바닥에 눌려 납작하게 뭉그러졌다.
그 모습을 보자 계곡 바위에 엎드린 채, 제 아래에서 유린당하며 고통스러워하던 여인의 모습이 떠올랐다. 도운은 좁고 작은 몸속 깊숙이 욱여넣었던 제 남근을 조심스럽게 뺐다. 곧 몰려올 격통을 대비하며 입술을 깨물었던 여인은 바닥에 뺨을 댄 채로 시선을 뒤로 돌렸다. 의아함을 품은 눈동자로 뒤에서 제 둔부를 잡고 있던 서방님을 바라보았다.
여인의 눈빛을 잠시 마주 보던 도운은 아무 말 없이 엎드려 있던 청조를 번쩍 들어 제 보료 위에 똑바로 눕혔다. 그리고 잔뜩 흐트러진 모습으로 자신의 보료 위에 누워 있는 여인을 뚫어질 듯 내려다보았다. 그렇게 청조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도운은 스스로 저고리를 벗었다. 드러난 가슴이며, 팔뚝, 그리고 배를 덮고 있는 단단한 빗근들이 꿈틀거렸다. 마침내 알몸이 된 도운은 여인의 무릎을 벌리고 그 중앙에 자리를 잡았다.
도운은 아플 정도로 팽창한 제 양물을 잡고 여인의 비문에 슬슬 비볐다. 더 이상 참기 힘들었지만, 여인을 위하여 조금 더 인내심을 가졌다. 딱딱하게 솟아올라 이슬을 뚝뚝 흘리는 제 남근을 여인의 음핵에 맞추어 비비고 문질러주었다. 아래를 지분거리는 감각에 눈을 감은 여인의 입에서 다시 달뜬 신음이 흘러 나왔다.
도운은 곧 청조의 몸 위로 자신의 몸을 완전히 포갰다. 여인의 코 바로 앞까지 제 얼굴을 들이대고 여인을 응시했다. 아래에 느껴지는 자극이 참기 힘든 듯 입술을 깨물어 뜯는 여인의 갸름한 얼굴을 바라보았다. 달뜬 여인의 반응을 지켜보며 슬슬 아래를 놀리다,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눈을 뜨고 나를 보거라.”
부드럽게 명령하는 소리에 여인은 겨우 실눈을 떴다. 열락에 차오른 눈으로 저를 바라보는 여인의 두 뺨이 발그스름하게 달아올라 무척이나 어여뻤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서가 청조(淸朝)……입니다.”
“청조라, 뜻이 있느냐?”
“맑은 아침이란 뜻으로 아버지께서 지어 주셨습니다.”
“아비가 글을 알더냐?”
“소첩의 아비가 화성에서, 하아…… 유명한 의원이었습니다. 아아, 흐응.”
도운이 잠시 멈추었던 허리를 천천히 움직이며 비문을 비벼대자, 청조의 코에서 달콤한 감창소리가 길게 흘러나왔다.
“맑은 아침이라, 이름이 꼭 너답다. 나는 도운이다.”
“예?”
“나는 도운(韜雲)이라 한다. 내 사정이 있어 본명은 알려 줄 수 없으나 내 자(字)가 그러하다.”
“하아, 하흑!”
도운의 손가락이 양물 아래 눌린 음핵 속을 비집고 들어와 안을 휘저어대자 청조의 달뜬 숨소리가 더욱 거칠어졌다.
“숨은 구름이란 뜻이다.”
“예에…… 소첩이…… 하아, 가슴 깊이 새겨…… 아흑, 새겨 넣고…… 기억할 것입니다.”
본명이 아니어도 좋았다. 드디어 서방님의 이름을 들은 청조는 마음이 벅차올랐다. 마음과 몸이 모두 벅차올라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 없는 와중, 저도 모르게 달뜬 숨과 함께 눈물이 흘렀다.
“이제 더 이상 울지 말거라. 내 이제 너 혼자 울게 하지 않으마. 약조할 것이다.”
“예, 예, 서방님.”
달뜬 숨을 참으며 대답하는 붉은 입술이 탐이 나 도운은 한입에 청조의 입술을 삼켜 버렸다. 태어나 처음 맛보는 입술이 너무나 달았다. 도운은 더 큰 단맛을 찾아 도톰한 입술이며 입안의 작고 말캉한 혀까지 잡아채 정신없이 빨아댔다. 청조의 몸을 단단히 끌어안고 입속을 휘젓는 동안, 여인의 보름달처럼 풍만한 가슴이 저의 맨 가슴에 닿아 뭉그러졌다.
제 아래에 깔려 부드럽게 짓눌리는 젖가슴의 탄탄한 감촉이 흡족하였다. 단단하게 솟아오른 젖꼭지가 저의 대흉근에 눌려 둥글려지며 꼭꼭 찔러오는 감촉은 더욱 흡족하였다. 도운은 달게 맛보던 입술을 잠시 떼었다. 그리고 아랫도리를 뭉근하게 비벼대다 사납게 비벼댔다. 그렇게 허릿짓에 완력을 조절하며 청조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쾌락이 점점 더 짙어지자 청조는 머리를 옆으로 돌리고 달뜬 신음을 꾹 참았다. 그런 청조의 모습에 도운은 기묘한 쾌락을 느꼈다. 다시 작은 입안을 맘껏 헤집으며 저의 양물을 청조의 안으로 밀어 넣었다. 조금씩, 꾸역꾸역 밀려 들어가는 남근에 맞추어 청조가 도망이라도 가는 듯 둔부를 뒤로 뺐다. 갈 곳이 없는데도 둔부를 자꾸 뒤로 빼니 바들거리는 허리가 점점 곡선을 이루며 위로 들렸다.
잠시 움직임을 멈춘 도운은 곧 상체를 벌떡 일으켰다. 낭창낭창한 청조의 허리를 꽉 부여잡고 남은 남근을 천천히 밀어 넣었다. 바들거리던 청조의 허벅지가 양쪽으로 한없이 벌어지며 그의 침입을 허락하고 있었다. 이내 뿌리까지 완전히 삼켜 버린 청조의 내벽이 힘껏 수축을 반복하며 본능적으로 양물을 강하게 자극했다.
결국 더 이상 참지 못한 도운은 청조의 몸을 끌어안고 광폭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청조는 자신을 덮치고 있는 엄장한 덩치의 움직임이 버겁고 힘들었으나, 전처럼 고통스럽지만은 아니하였다. 슬금슬금 아래에서 올라오는 열꽃이 곧 청조를 야금야금 집어삼키고 도운 안의 짐승을 깨워놓았다.
“아, 아, 하응.”
“하아, 청조야, 청조야.”
열에 들뜬 여인의 콧소리, 쾌감에 불타오르는 사내의 헐떡임. 청조야, 청조야, 청조를 부르는 도운의 목소리가 문지방을 넘어 바람을 타고 밤새 적막한 산속에 메아리쳤다.
* * *
밤새 날린 눈으로 가득 덮인 산은 고요했다. 산짐승조차 추위를 피해 집 안에 숨어 버린 듯, 울음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설산은 적막감이 감돌면서도 차갑고 비정한 아름다움으로 빛났다.
청조는 눈을 뜨자마자 서방님 기거하시는 방 아궁이 불부터 잘 살피고, 반빗간에 들었다. 엊저녁 씻어 놓은 쌀을 안쳐놓고, 눈이 덮인 마당을 쓸 요량으로 잠시 반빗간을 나섰다. 문을 나서는데, ‘쓱쓱’ 눈을 쓰는 소리가 들렸다. 바삐 나와 보니 마당 한가운데 서서 싸리비를 들고 눈을 쓸고 있는 도운의 뒷모습이 보였다. 깜짝 놀란 청조가 잰걸음으로 다가가 도운의 손에 들린 싸리비를 뺏으려 했다.
“서방님, 이리 주십시오.”
“되었다.”
“체통 없으십니다. 남들이 보면 우세스럽다 할 것입니다. 어서 주십시오.”
“볼 사람이 누가 있다고 그러느냐?”
“하늘이 보고 계십니다.”
도운은 진지한 얼굴로 대답하는 청조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소리 내어 웃었다.
“왜? 양반에게 싸리비질을 시켰다고 하늘이 너에게 벌이라도 줄까 그러느냐? 걱정 말거라. 네가 오기 전에도 여러 번 해 봤던 일이다. 내가 장작도 패지 않느냐?”
“허나…….”
“되었으니 들어가 네 일 보거라.”
“……예.”
반빗간으로 돌아온 청조는 어쩔 줄 몰라 하면서도 몸을 바지런히 움직였다. 산에서의 겨울은 하루가 유독 짧고 추웠다. 조반상을 물리고 잡일을 하다 보니 금세 점심상 준비를 할 시각이 되었다. 특히 오늘은 팥죽 쑬 준비를 하느라 더욱 서둘렀다. 며칠 전, 동짓날에 쑤었던 팥죽을 맛깔나게 드시던 서방님이 생각나 오늘 점심은 팥죽으로 정했다.
어제부터 물에 불려 놓고 있던 마른 팥을 가마솥에 넣고 불씨를 조절했다. 팔팔 끓인 팥을 지금부터 은근한 불에 졸이면 점심에는 드실 수가 있을 것이다. 팥죽이라는 것이 본시 만들기가 까다로운지라, 몇 시진을 주걱으로 휘휘 젓고 또 휘휘 저어야 눌어붙지 않고 제맛을 낼 수 있는 음식이었다.
한겨울에도 이렇게 맛깔난 팥죽을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예년보다 일찍 내린 눈으로 산길은 이미 모다 막혀 버렸다. 눈길에 막혀 버린 산길 때문에 달포마다 곡식을 가져다주는 지게꾼이 다녀간 지가 벌써 한참이었다.
허나 봄부터 시작해 여름, 가을 내내 바지런히 긁어모은 것들이 있어 배곯지 않을 수 있었다. 쌀과 보리가 떨어져 가긴 했지만 없으면 없는 대로 봄까지는 그럭저럭 버틸 수 있었다. 벌써 대한이 지났으니 곧 봄이 올 것이다. 봄이 오면 이 산이 또 저희를 위해 많은 것을 준비할 것이다.
그렇게 봄까지만 잘 버티면 호구에 아무 문제 없었다. 문득 그동안 서방님께서 홀로 어찌 겨울을 나셨는지 참으로 궁금하였으나, 곧 머리를 흔들어 궁금증을 털어냈다. 마침내 몽글몽글 끓던 팥이 푹 퍼지자, 청조는 다시 불씨를 조절했다. 약한 불에서 적당히 졸인 팥죽에 소금을 조금 넣어 간을 하고 반상에 올렸다. 팥죽과 함께 청조가 방으로 들자 팥의 구수한 단내가 방안 가득 피어올랐다.
“새알심을 만들지 못하여 대신 잣을 올렸습니다. 뜨거우니 휘휘 저어 드셔요.”
청조가 팥죽과 함께 올린 맑은 동치미를 도운의 앞으로 밀어주며 살갑게 한마디를 건넸다. 도운은 청조가 시키는 대로 뜨거운 김이 올라오는 팥죽을 휘휘 저어 한입 떠먹고는 가늘게 웃었다. 부드러운 팥의 향이 입안 가득 퍼지고, 꼬득꼬득 씹히는 잣의 기름진 고소한 맛이 뒤를 따랐다.
“맛이 참 좋다.”
이리 말하면 청조는 늘 보일 듯 말 듯 작은 미소를 띄운다. 그 작은 미소를 보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입안의 음식은 더 맛있어졌다. 산해진미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었다. 청조의 미소가 제일 맛있는 반찬이었다.
“입에 맞으시니 참 다행입니다.”
그렇게 미소를 짓고는 늘 수줍은 듯 저리 대답한다.
“너도 어서 한술 떠보아라. 따뜻할 때 먹어야 더 맛있지 않느냐.”
도운의 권유에 청조가 숟가락을 들었다. 도운은 반드시 청조와 함께 밥을 먹으려 했다. 그렇지 않으면 청조는 또 아궁이 앞에 앉아 눌은밥 따위나 먹을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남녀가 유별하다며 아니 된다고 버티던 청조는 결국 도운의 건너편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허나, 밥만 같이 먹을 뿐 청조의 밥그릇에는 쌀알보다 감자나 고구마, 그도 아니면 토란이 더 많았다.
그럴 때면 도운은 아무 말 없이 두 사람의 그릇을 바꿨다. 청조의 밥그릇에 누룽지나 감자가 더 많으면 저의 밥그릇과 바꾸고, 국의 건더기가 적으면 저의 국그릇과 바꿔주었다. 그런 일이 몇 번이나 반복되니 언제부턴가 청조는 밥도 국도 모두 골고루 퍼왔다.
나누어 먹으니 밥맛이 더욱 좋았다. 팥죽을 떠먹던 도운은 문득 고개를 들어 청조를 바라봤다. 오물거리며 죽을 떠먹는 입가에 언제 튀었는지, 검붉은 팥 알맹이가 붙어 있는 것이 보였다. 도운은 엄지로 청조의 입가를 쓰윽 닦아 주고는 다시 팥죽을 떠먹었다.
청조를 이 산에 남도록 허한 후, 도운은 자신의 안에서 무언가가 변한 것을 여실히 느꼈다. 저를 숨 막히게 옭아매던 여인에 대한 정염도, 눈에 불을 켜고 산을 누비며 방황하게 하던 고뇌도 모다 사라졌다. 왕족으로 태어나 이 산에 처박혀 초목구부(草木俱腐)될까 노심초사하던 마음도 사라졌다.
이 산에서 초목과 함께 썩어 이름도 남기지 못하고 죽는 것이 뭐가 중요할까 싶었다. 당장 내일 죽어 없어질지도 모를 팔자인 것을. 그저 오늘 하루를 충실히 살면 그뿐, 모다 상관없었다. 바지런한 청조를 보고 있자면 그런 생각들은 모다 쓸데없는 고민일 뿐이었다.
어떤 서책에도, 어떤 성현의 말씀에도 산에서 살아갈 수 있는 지혜가 담겨 있지 않았다. 이제껏 뜬구름 잡는 성현들의 말을 쫓아 줄곧 허상만 쫓아다닌 제 우둔한 모습에 쓴웃음이 났다. 추운 한파에도, 이 험한 산속에서 제가 이리 편히 살 수 있는 건, 얼굴도 모르는 성현들이 남긴 글이 아니라 청조가 정성으로 만들어 온 이 따뜻한 팥죽 한 그릇이었다.
오후가 되자 도운은 몸이라도 풀 겸 장작을 팰 요량으로 밖으로 나왔다. 한데 초가가 적막한 것이 청조가 보이지 아니하였다. 괜히 큼큼거리며 반빗간 안을 살폈지만,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반빗간을 나와 이리저리 살피던 중, 밤새 날린 눈 위에 작은 발걸음이 잔잔히 찍힌 것을 발견했다. 발걸음은 싸리문 밖을 향해 찍혀 있었다.
이리 눈이 쌓인 날, 자칫 발을 헛디뎌 넘어지기라도 하면 어찌하려고 밖을 나갔는지. 쯧, 괜히 혀를 한번 차곤, 못 이기는 척 발자국을 따라나섰다. 깨끗한 세설 위에 홀로 찍힌 발자국이 꼭 청조를 닮아 있었다. 일정한 보폭으로 정갈하게 찍힌 작은 발자국이었다.
발자국을 따라 한참을 걷다 보니, 가는 길이 눈에 익숙했다. 저의 예상대로 발자국 끝에 계곡이 나왔다. 청조는 수위가 낮은 곳의 얇은 빙판을 깨고 앉아 얼음물에 세답을 하고 있었다. 빨갛게 곱아 있는 청조의 손은 빙판을 깨다 생긴 것인지 여기저기 긁힌 상처까지 나 있었다. 도운은 성큼성큼 다가가 청조의 갸름한 팔목을 확 잡아챘다.
“서방님!”
제 팔목을 채가는 도운의 갑작스런 행동에 청조의 가슴이 심히 동당거렸다.
“무얼 하는 게냐?”
“세답을 하고 있었습니다.”
“내 그것을 몰라 묻느냐?”
빨갛게 얼은 뺨을 하고, 얼어붙은 입으로 어눌한 발음을 하면서도 말은 잘한다며 도운은 속으로 혀를 찼다. 곁눈질로 세답거리를 보니 그 양이 꽤 되었다. 불만 가득한 눈으로 청조를 엄하게 바라본 도운은 입고 있던 배자를 벗어 청조의 어깨에 둘러 주었다. 자신이 잡아 온 산짐승의 털을 청조가 직접 무두질하여 속에 덧대어준 따뜻한 털배자였다.
“소첩은 괜찮습니다. 조금도 춥지 않습니다.”
“되었다.”
다시 엄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청조가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여인이 입을 다물자 도운은 바짓부리를 졸라매고 있는 대님을 풀어헤치고 바짓단을 종아리까지 걷어 올렸다. 그 후, 남은 세답거리를 한 번에 물속으로 처박고는 발로 주물주물 밟았다.
“서방님, 서방님, 어서 나오셔요! 고뿔 드십니다.”
청조가 얼음물 밖에 서서 발을 동동 구르며 애타게 불러댔지만, 도운은 끝까지 발길을 멈추지 않았다. 발로 밟아 어느 정도 때가 빠진 그것들을 하나하나 꺼내 가며 손으로 비비고 물에 헹궜다. 마지막으로 물속에서 얼음덩어리처럼 변한 그것들을 꽉 짜고, 탈탈 털어내어 대야에 하나하나 얹었다. 마침내 대야에 세답한 의복들이 가득 쌓이자 도운은 물 밖으로 나왔다.
동동거리며 도운을 바라보던 청조는 조금 가져왔던 뜨거운 물을 그의 다리며 손에 조금씩 부어 비벼주었다. 곧이어 바삐 버선을 신겨주고 바짓부리를 졸라매느라 부산을 떨었다.
“다시는 이리 하지 마십시오. 그러다 고뿔 드십니다.”
“그 고뿔이 너는 피해 간대더냐?”
“소첩은 괘념치 마십시오. 늘 하는 일입니다. 손이 영 차갑다 싶으면, 여기 뜨뜻한 물에 잠시 녹이면 됩니다. 그리 사부작사부작하다 보면 금세 다 합니다. 그러니 너무 괘념치 마시어요.”
제 어깨에 걸쳐진 옷을 끌어내리며 청조가 간청하듯 말하자, 도운은 옷을 끌어내리는 청조의 손을 꽉 잡았다. 차갑게 언 여인의 손에서 옷을 잡아채고는 다시 잘 여며 주었다. 저를 빤히 바라보는 청조의 빨갛게 언 뺨을 무심한 듯 한 번 쓱 보듬은 후, 세답을 끝낸 대야를 들어 한쪽 팔에 끼웠다. 팔에 낀 대야를 달라며 청조가 손을 내밀었지만, 무시하고 초가를 향해 걸었다.
‘서방님, 서방님.’ 뒤에서 종종거리며 저를 쫓는 여인의 목소리에도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청조가 쉽게 쫓아올 수 있도록 보폭을 느리게 유지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내 포기한 듯 조용히 뒤를 따르는 여인을 흘끔 돌아보고 다시 앞을 향했다. 여름내 강한 햇살에 까무잡잡하게 익었던 청조의 얼굴은 입추가 지나고 동지에 들자 그 색이 쌀뜨물처럼 뽀얀 얼굴빛으로 돌아와 있었다.
저 뽀얀 얼굴에 붉은 입술이, 마치 하얀 눈밭 위에 동백꽃잎 한 장이 찍어 놓은 붉은 꽃물처럼 강렬하면서도 순수했다. 청조는 늘 그런 모습으로 저를 미혹하였다.
청조를 곁에 머물도록 결정한 그 날 밤. 처음으로 여인의 달뜬 숨소리를 들었던 그 날 밤 이후 자신을 괴롭히던 들끓는 화염은 없어졌다. 그렇다고 욕정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문득문득 이 작은 여인을 볼 때면 갑작스런 욕정이 저를 덮치곤 했다. 허나, 그것은 그 전과 같이 자괴감이 들 정도로 파괴적이고 가학적인 감정은 아니었다.
이리 걷는 이 순간에도, 문득문득 저 붉은 동백꽃 같은 붉은 입술을 탐하고 싶었다. 벌겋게 얼어 곱아 버린 저 손을 따뜻이 잡아 주고도 싶었다. 묵묵히 걷던 도운은 걸음을 멈추곤 청조를 빤히 바라보았다. 두 뺨에 이어 코끝까지 빨갛게 언 여인을 바라보다 앙증맞은 입술을 한입에 물었다. 깜짝 놀라 눈을 질끈 감는 여인의 빨갛게 얼은 손가락을 하나하나 잡아끌었다.
마침내 여인의 차가운 손가락들이 저의 커다란 손안으로 다 들어오자 한 손에 꼭 그러잡았다. 탐욕스럽고 집요한 입맞춤에 청조가 밭은 숨을 내쉬자 물었던 입술을 놔 주었다. 부끄러운 듯 시선을 내리고 겨우 숨을 고르는 여인의 입에서 나온 하얀 입김이 공중에 흩날렸다. 부끄러움에 발그레해진 여인의 얼굴을 가려주듯, 입김은 청조의 얼굴을 가리다 사방으로 흩어졌다.
“전에…….”
“예.”
“전에 이곳에서 꽃을 바라보고 서 있었지?”
“전에 말씀이십니까?”
“그래, 말복이 지나고 한창 더운 날이 끝나갈 때쯤이었다. 세답을 하고 돌아오던 네가 이곳에 서서 꽃 한 송이를 쓰다듬는 것을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아, 금불초를 보고 있던 때를 말씀하십니까?”
“그 꽃 이름이 금불초더냐?”
“예.”
간결하게 대답을 하고선 가타부타 말이 없다. 잠시 침묵이 흐르는 사이 서로의 숨소리만 쌕쌕 울렸다. 도운은 청조의 작은 손을 꼭 그러쥐고 다시 초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꽃을 좋아하느냐?”
“그것이, 소첩의 아비가 좋아하던 꽃입니다.”
“네 아비가? 그 꽃이 그리 귀한 꽃이더냐?”
귀한 꽃이냐는 말에 청조가 작게 웃었다. 여인의 작게 웃는 모습은 가끔 작은 새 같았다. 작은 새가 ‘포로롱 포로롱’ 지저귀는 듯 웃고 있는 여인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청조라는 이름이 뜻하는 바가 맑은 아침의 청조(淸朝)가 아니라 파랑새의 청조(靑鳥)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간간히 들곤 했다.
“아버지께는 귀한 꽃이었을지는 모르나, 금불초는 들판 아무 곳에서나 볼 수 있는 잡초나 다름없는 꽃입니다.”
“그러하냐?”
“예, 그 꽃이 부처의 웃는 모습을 닮았다 하여 금불초라 불립니다. 아버지께서 미물도 못 되는 한낱 들꽃에 불과한 것이 부처님을 닮으려는 모양새가 참으로 기특하고 어여쁘다 하셨습니다.”
“그러했느냐?”
“예, 가끔 소첩을 보시고는 금불초를 닮았다 농을 하시곤 하셨습니다.”
‘농이 아닐 것이다.’ 작게 웅얼거리는 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도운을 올려다보는 청조의 뺨 위에 차가운 것이 닿았다. 하늘을 보니 또다시 눈이 날리고 있었다.
“눈이 날립니다, 서방님.”
“그러게, 또 눈이 오는구나. 올겨울은 유독 춥고 눈이 많이 날리는 것 같다.”
“예, 하지만 겨울이 추울수록 다음 해에 대풍이 찾아온다 하여 민가에서는 추운 겨울날을 대풍 맞을 준비라 합니다. 아마 모두들 그 기대로 지금의 추위를 이겨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하냐?”
“예, 겨울이 추울수록 병충해가 없어져 이듬해는 곡식이 더 잘 자란다 하였습니다. 올해는 꼭 대풍을 맞아, 굶어 죽는 이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청조는 병든 어머니와 아우들 생각이 간절하였다. 집을 떠난 지가 벌써 한 해가 되었다. 살점이 떨어질 것만 같은 이 한파 속에 어머니의 병이 재발하지 않았는지, 겨우내 먹을 양식은 준비가 잘되었는지 걱정되고 그리웠다.
“그것도 네 아비가 해 준 말이더냐?”
“예에, 그리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보니 네 아비가 현자로구나.”
농을 하며 미소 짓는 서방님의 모습에 가슴이 쉴 새 없이 동당거렸다. 요즘 서방님을 생각하자면 이리 가슴이 동당거려 마음이 무척이나 괴란했다. 무심한 듯 저의 뺨을 스치는 손길 한 번에, 지나가듯 저를 보며 지어 주는 미소 한 번에 이렇듯 가슴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대어 종종 손으로 꾹 눌러야만 했다.
저 복면 아래 어떤 표정이 들어 있을지 보고 싶어졌다. 만져 보고 싶었다. 자꾸만 드는 쓸데없는 욕심에 청조는 머리를 작게 도리질 쳤다.
* * *
눈은 이튿날까지 계속 날렸다. 계속되는 폭설에 무릎까지 빠질 정도로, 산은 눈으로 가득 덮였다. 눈 때문에 도운과 청조는 꼼짝없이 초가에만 갇혀 지냈다. 허나 달리 불편하거나 갑갑하지 않았다. 광에 도운이 준비해 둔 마른 장작이 가득하였고 청조가 준비해 둔 식량과 주전부리 또한 가득 차 있으니 호구 걱정 또한 되지 않았다.
둘은 종종 함께 마루에 앉아 처마 끝에 매달아 놓은 곶감을 하나씩 빼 먹으며 갑갑함을 달랬다. 함께 이불을 뒤집어쓰고 앉아 맑은 공기를 들이마시며 마당을 바라봤다. 딱히 오가는 대화는 없었지만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았다. 오히려 편안했다.
곶감을 먹다 목이 마르면 도운은 처마 끝에 매달린 고드름을 따 청조에게 주었다. 신장이 월등히 크니 저 높은 곳에 달린 고드름도 손쉽게 뚝뚝 따다 청조에게 주었다. 도운은 차가운 고드름을 ‘아그작 아그작’ 부숴 먹었고, 청조는 입에서 살살 녹여 먹으며 갈증을 해소했다.
그렇게 하루가 가면 다음 날은 함께 앉아 화로에 장떡을 구워 먹었다. 청조가 가을 내 진득하게 부쳐 맑은 햇살 아래 꾸들꾸들하게 말린 장떡은 겨우내 먹기에는 별미였다. 언젠가 맛보았던 방아 잎을 넣은 장떡에서는 겨울에도 여전히 매콤하고 애초롬한 향이 풍겼다. 청조가 주는 음식은 늘 새롭고 신기했다.
그렇게 여러 날이 가고, 도운은 서안 위에 서책을 펼쳐 놓고 글을 읽었다. 곁에 앉은 청조는 화로에 알밤을 구웠다. 타닥거리는 밤 굽는 소리가 맑게 울리고 탄 냄새가 온 방에 배어들었다.
청조는 잘 구워진 밤을 깨끗이 까서 서안 위에 놓여 있는 접시에 하나씩 올려놓았다. 도운은 서책을 읽는 종종 그런 청조의 모습을 곁눈질했다. 온 신경을 밤에 집중시키느라 미간에 주름까지 만든 여인은 깨끗한 밤을 제 앞에 놓아두고 정작 본인은 한 점도 먹지 않았다. 그런 면이 너무나도 청조다웠다.
“밤 맛이 이상하다.”
“예? 밤 맛이 어찌 이상합니까?”
“모르겠다. 썩은 것인가? 하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다 이상하다.”
“으응? 그럴 리가 없습니다. 이리 실해 보이는 것이 썩을 리가요.”
“그럼 네가 한번 먹어 보아라.”
그럴 리가 없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던 청조는 접시 위로 손을 뻗었다. 접시 위에는 도운이 반만 깨물어 먹다 남긴 군밤이 가득 쌓여 있었다. 그중 하나를 집어 먹은 청조의 고개가 이상하다는 듯 더욱 기울어졌다.
“소첩이 보기에는 맛이 그만합니다.”
“그래? 그럼 다른 것도 먹어 보아라.”
“이것도 괜찮습니다.”
청조는 결국 도운이 시키는 대로 접시에 남은 밤들이 다 사라질 때까지 반쪽짜리 밤알을 계속 집어먹어야 했다. 하나하나 먹을 때마다 고개가 갸우뚱했다.
“소첩이 맛보기에 이상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정말 맛이 이상하십니까?”
“정말 그렇다는 대도 그러는 구나.”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리는 청조를 보며 도운은 몰래 웃었다.
“그럼 이제부터 네가 먼저 먹어 보거라.”
“예?”
“네가 반쪽을 먹어 보고 맛이 그만하다 싶은 것만 나에게 주면 되지 않겠느냐.”
“소첩이요?”
“그래.”
“예, 알겠습니다. 이제부터는 소첩이 그리하겠습니다.”
말도 참 잘 듣지. 도운은 열심히 밤을 까는 여인을 바라보다 작게 웃었다. 청조는 밤에 온 신경을 집중시키다 말고 서책을 읽는 도운을 슬쩍 곁눈질했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입술을 앙 다물었다. 서방님께서 저를 위해 남겨주신 밤이 참으로 맛있었다. 밤 한 알을 깨끗이 깐 청조가 반쪽을 오독 깨물어 먹었다.
“서방님, 맛 좀 보셔요. 소첩이 보기엔 맛이 그만합니다.”
도운은 서책에서 눈을 떼고 백자 접시 위에 놓인 반쪽짜리 밤을 집어 들었다. 비록 반쪽이었지만 알이 크고 튼실했다.
“그래, 이것은 썩지 않은 모양이다. 밤 맛이 참 좋다.”
“예, 참으로 그러하지요?”
청조는 작게 웃으며 속삭이곤 계속해서 반쪽짜리 밤을 하나하나 접시 위에 올려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