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검은 사내
아주 잠시 저녁산보를 나왔던 것이었는데, 생각보다 시각이 많이 지체되었다. 하늘의 달이 이동한 것을 보니 얼추 반 시진(時辰: 1시간으로 한 시진은 2시간)은 이러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도운은 일어나 바지를 탈탈 털다 ‘핏’ 하고 멋쩍은 듯 허탈한 웃음소리를 냈다. 제 하는 행동을 보면 누가 선비라고 생각하겠는가, 저잣거리의 시정잡배가 따로 없지.
아무렴, 이 산에 들어온 지가 벌써 십일 년째다. 그간 의관도 제대로 정제하지 않고, 사냥꾼마냥 아무렇게나 걸친 저고리를 허리띠로 대충 동여매고 다녔다. 팔과 다리에는 토시를 차고 산을 누볐다. 무예를 익힐 때면 검을 손에 쥐었고, 장작이 필요할 때는 거리낌 없이 손에 도끼를 쥐었다. 도운은 달빛을 받아 계곡 수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수면 위로 족쇄 같은 검은 복면이 보였다. 그 아래로 온통 검은 의복을 한 엄장한 풍채의 사내는 저잣거리의 시정잡배보다도 못한 산도적 같은 모습이었다. 제 외양을 닮아가는 것인지 성정 또한 점점 모나고 거칠어지고 있었다. 도운은 바닥을 구르는 돌을 집어 자신의 모습을 비추는 물을 향해 힘껏 던져버렸다.
직선을 그리며 물속으로 빠진 돌이 물결을 흩트려 버리자, 보기 싫은 제 모습 또한 이지러졌다. 잠잠해진 수면에 다시 검은 복면이 비치자 또 다른 돌을 던졌다. 몇 번이나 계속된 돌팔매질에 흐트러진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후에야 도운은 뒤를 돌았다.
잠시 후 초가에 도착하였으나 아직도 속이 좋지 아니하였다. 답답한 명치끝을 살살 만지며 안으로 들어서는데 반빗간에서 불빛이 새어 나왔다. 기척을 죽이며 다가서니 아궁이 앞에 앉아 숭늉에 말은 밥을 허겁지겁 퍼먹고 있는 여인이 보였다. 허나, 밥이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 한술 뜰 때마다 숟가락에 건져 올라오는 밥알은 도통 없었고, 그냥 멀건 숭늉뿐이었다.
이 야밤에 아궁이 앞에 들러붙어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그 궁상스러움에 기가 막혔다. 목이 타 저러나 싶었지만, 허겁지겁 떠먹는 모습에는 실소가 터졌다. 아무렴, 천성이 어디 가겠나. 고운 시를 읊던 기품 있는 여인과 비교되는 추저분한 여인의 모습에 욕지기가 올라왔다. 도운은 싸늘하게 몸을 돌려 바로 제 방으로 돌아갔다.
* * *
이튿날, 쑥 찜질과 안마가 효험이 있는 것인지 예화는 몸이 매우 가뿐한 것을 느꼈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몸이 나른하여 잠시 오수에 들었다가 도운과 함께 근처로 산보를 나섰다. 부러 언년은 초가에 떼어 놓고 도운과 함께 오붓하게 길을 걸었다.
“이렇듯 오라버니와 함께 나란히 길을 걸으니 너무 좋습니다. 사가에서는 꿈도 못 꿀 일이 아닙니까?”
“응? 무엇이 말이냐?”
“남녀가 유별하니 이리 나란히 서서 함께 걷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지요. 심지어 혼인을 한 사이도 아닌데 말입니다.”
혼인이라는 단어를 은근히 강조하며 예화는 눈을 지그시 내리깔았다.
“저에게 혼담이 들어오고 있다는 말 들으셨지요?”
“그래, 익태를 통하여 들었다.”
“소녀가 어찌했으면 좋으시겠습니까?”
“무엇을 말이냐?”
내리깐 여인의 고운 눈동자가 흔들거렸다. 예화는 손끝에 말아 쥔 옷고름을 가녀린 몸짓으로 입가에 가져다 대었다.
“소녀의 마음을 아시지 않으십니까? 그 옛날 사가에 오셨을 때부터…… 소녀의 마음에는 줄곧 오라버니밖에 없었습니다. 오라버님도 같은 마음 아니셨습니까?”
예화의 수줍은 질문에 도운은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같은 마음인지 아닌지 저는 잘 모르겠다. 아주 어릴 적, 궁에서 쫓겨난 고슴도치 같던 저의 곁을 지켜 주던 다정한 아이. 그저 귀하고, 어여쁜 아이라고만 생각하였다. 그런 누이 같은 아이와의 혼담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도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허나 언젠가 족쇄가 풀리는 날이 온다면, 그때 자신의 옆에 설 수 있는 여인은 예화 같은 여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지체 높은 가문의 아리땁고 귀한, 그런 여인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것은 같은 마음인 것일까? 곰곰이 생각을 해 봐도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예화야, 내 말을 곡해하지 말고 들어라. 너도 알다시피 나는 그분의 뜻 없이는 이 산, 아니 초가조차 벗어날 수 없는 몸이다. 그런 내가 어찌 너를 탐하겠느냐. 아무리 내가 너를 어여삐 여긴다 해도 그건 사내의 도리가 아니다. 그러니 더 늦기 전에 좋은 이를 만나 혼인하거라.”
“그리 말씀하지 마십시오. 오라버니께서 약조해 주신다면 소녀, 기다릴 수 있습니다.”
“기다리지 말거라.”
“어찌 그리 마음이 약하십니까? 곧 이 산을 벗어날 수 있으실 겁니다.”
“영원히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 네가 이곳으로 들어와 살기라도 할 것이냐?”
짐짓 농으로 던진 말이었지만 예화의 얼굴이 굳어졌다. 예화의 굳은 얼굴이 자신의 처지를 확고히 하는 것 같아 도운의 마음이 차갑게 굳었다. 도승지 영감이 허락할 리도 없지만, 규방 안에서 귀하게 자라 온 아가씨에게 씨알이나 먹힐 소리인가. 하물며 밑바닥 인생을 살아온 여인네들조차 앞다투어 도망치던 고된 산 생활이었다.
“세자 저하의 병증이…… 심각하다 들었습니다. 혹시 이대로 그분께서…….”
“그만하거라!”
“……오라버니.”
“불경하고 불충한 말이다. 누가 들을까 무섭구나. 그런 말을 하려거든 당장 산을 내려가거라.”
“송구합니다, 소녀가 잘못하였나이다. 소녀는 다만…….”
예화의 눈에서 흐르는 투명한 눈물이 진달래처럼 화사한 뺨 위를 굴렀다. 눈물을 뚝뚝 흘리던 예화가 보기에도 애처롭게 시선을 떨구었다.
“소녀는 다만…… 오라버니께서 이 산을 벗어나시길 바라는 마음에…….”
“그래, 안다. 그러니 그만 눈물을 거두어라. 내가 말이 지나쳤다.”
도운은 예화의 턱을 들고 뺨 위에 흐르는 눈물을 닦아 주었다.
“오라버니.”
감정을 이기지 못한 예화가 도운의 품에 쓱 안겨 더욱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 저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청조는 서둘러 몸을 돌렸다. 어깨에 들쳐 멘 망태기를 꽉 움켜쥐고 잰걸음을 쳐서 그곳을 벗어났다. 곧바로 반빗간에 들어 정신없이 아궁이에 장작을 넣은 후 부지깽이로 이리저리 뒤적거렸다.
금세 불길이 활활 올라왔다. 한데 이상하였다. 저만의 장소, 자신만의 따뜻한 장소에 들어앉아 있는데도 몸과 마음이 너무 찼다. 무엇에 홀린 듯 청조는 장작을 더욱 밀어 넣었다. 원앙 한 쌍처럼 잘 어울리던 두 사람의 모습이 뇌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마음에 이는 찬바람이 쉬이 멈추질 않았다. 아무리 장작을 밀어 넣어도, 아무리 불길이 치솟아도 몸이 너무 추웠다.
“넋을 놓고 앉아 뭐하시오?”
“아무것도 아니네. 뭐, 필요한 것이 있는가?”
한겨울 두껍게 언 강물도 깨뜨릴 것만 같은 언년이의 앙칼진 목소리에 청조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바삐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에 두었던 망태기를 부뚜막에 올려 두었다.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고. 내 게가 일 잘하는지 보러 왔수다. 어지간히 궁둥이가 무거워야 말이지. 내 어제도 일렀지만, 우리 아가씨 저녁 찬거리에 각별히 신경을 좀 쓰시오! 또 어제 같은 그런 허접한 찬을 내오거든 경을 칠 줄 알란 말이오. 그리고…….”
말끝을 흐린 언년이가 샐쭉한 표정으로 눈알을 굴리더니 은근히 속내를 드러내었다.
“어제 그 쑥 찜질 말이오. 그것도 좀 준비해 두시오. 오늘 우리 아가씨 산보 다녀오시걸랑 고단하다 하실 터니. 뭐, 하는 김에 넉넉히 준비 좀 하고.”
제 몫의 찜질까지 은근히 요구한 언년이가 제 할 말만 하고 몸을 돌렸다. 휙 돌아서는 언년이의 무명 댕기가 눈앞에서 팔랑거리더니 사라졌다. 청조는 한숨을 집어삼킨 후, 망태기에서 채취해 온 송이버섯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이어 싸리버섯과 맨 아래 넣어 두었던 땡감을 하나 꺼내었다.
운이 좋아 산속에서 발견했던 감나무였다. 이제나저제나 열매 딸 날만 기다려 오다 오늘 드디어 손에 쥘 수 있었다. 잘 말려 곶감으로 만들어 겨우내 서방님 주전부리할 요량으로 한가득 따 왔다. 색이 진하고 땡땡한 것이 그 맛이 심히 떫을 것 같았다. 청조는 넋이 나간 듯 땡감을 이리저리 돌리며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보았다.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서방님께 저는 이 땡감 같은 존재일 것이다. 땡감을 씹은 뒷맛처럼 떨떠름하고, 입안을 빠득빠득하게 만드는 그런 성가신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그러함에도…… 어여쁨 받고 싶었다. 얼굴도 모르고 이름도 모르는 서방님이지만 어찌 되었든 평생을 지아비로 모시고 살기로 천지신명께 맹세하였으니, 죽어도 서방님의 내자로 죽고 싶었다. 허나 내자의 자리는 처음부터 저의 것이 아니었다.
반상의 법도가 유별하니 평생을 첩으로 살아야 하는 저의 팔자야 이미 감내할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어여쁨 받고 살고 싶었다. 예화 아가씨를 대하는 그 섬세한 손길의 반이라도 느껴보고 싶었다. 하지만 다 헛된 욕심이었다. 아가씨의 말씀이 옳았다. 그저 천명대로 처지에 순응하고 도리를 다하면 되는 것이었다.
‘화대를 받은 만큼, 내가 원할 때 다리만 벌리면 된다! 생각을 하려 하지 말거라.’
서방님의 말씀이 귓가를 어지럽혔다. 아가씨의 말씀은 옳지만, 그저 사내의 욕정을 푸는 배출구로만 사는 것이 저의 천명이고 도리라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다시금 핑 도는 눈물을 닦고, 청조는 바삐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 * *
그 후로 이틀간, 산세 이곳저곳을 감상하는 예화와 도운의 마음은 서로 다른 이유로 사뭇 무거웠다. 사흘 전, 도운은 서럽게 울던 예화를 다독여 주었지만 끝내 확답을 해 주지는 않았다. 그런 도운에게 섭섭한 예화는 기분이 푹 가라앉았다. 마음이 무거우니 경치를 바라봐도 흥이 나지 않았다. 시무룩한 예화의 옆에서 언년이가 젓가락을 쥐어 주었지만, 손이 가질 않았다.
“아가씨, 좀 드셔요. 왜, 찬이 부실하여 그러하십니까? 이 여편네가 그리 일러도, 에휴.”
계속해서 구시렁거리는 언년이의 말에 도운의 미간이 잠시 일그러졌다. 반빗간에 든 여인이 애를 쓰고 있다는 것은 비록 반빗간 사정을 모르는 사내인 저도 웬만치 알 수 있었다. 숯불 향이 후각을 자극하는 귀한 송이구이라던가, 머루나 다래로 만든 시큼 달달한 과편은 저도 이 산에 오르고 처음 맛보았던 귀한 것들이었다.
하지만 언년이의 불만은 끝이 나질 않았다. 돌섬네가 있었으면 조기구이를 올렸을 터인데 하고 투덜거리는 모습엔 그만 실소가 터졌다. 산에 올라 조기타령이나 해대다니. 그저 무식한 여종의 말인지라 사내인 저가 굳이 나서 해명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만하거라. 모시는 상전 앞에서 어찌 입이 그리 가벼우냐!”
그 여인을 함부로 말하는 언년의 오만 방자한 모습에 저도 모르게 한마디를 하고야 말았다. 가슴에 돌을 얹은 듯 무겁고, 괜스레 짜증이 일었다. 요 며칠 원인을 알 수 없는 체기가 계속 이어지다 보니 밥맛이 없었다.
“오늘은 그만 돌아가자. 며칠 새 바람에 찬 기운이 많이 실렸구나. 아가씨 감모 들지 않게 어서 뫼셔라.”
입매를 꽉 맞물려 닫은 도운의 엄한 모양새가 예화의 마음을 설레게 하였다. 꽉 닫힌 입매가 도운의 마음이 얼마나 어지러운가를 여실히 보여 주고 있는 듯했다. 보이지는 않지만, 복면에 가려진 오라버니의 이마에는 내 천자가 깊이 새겨져 있을 것이다. 말은 제 핑계를 대시지만, 마음이 어지러워 내려가자고 하시는 것을 저는 잘 알고 있었다. 응당 마음이 어지러우시겠지.
탐하는 꽃을 꺾지 못하는 사내의 번다한 마음이 얼마나 애가 탈까. 저 절개 높은 사내의 마음과 고뇌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확답을 받지는 못하였지만 고뇌하는 도운의 모습에 예화는 무거웠던 마음을 털어 버렸다. 더 이상 그에게 조르지 않으리라. 어차피 그는 저의 남자가 될 운명이니까. 도운의 어지러운 마음을 즐기듯 작게 미소 지은 예화는 도운을 따라 사뿐히 일어섰다.
초가로 내려오던 길, 도운은 서너 달 전 여인을 겁탈하듯 안았던 그 계곡을 지나쳤다. 저 판판한 돌 위에 저고리 하나만 걸친 채 엎드려 있던 여인의 하얀 나신이 떠올랐다. 제가 싸질러 논 누런 씨물이 여인의 하얀 허벅지를 타고 흐르던 그 퇴폐적인 모습이 생각나자 관자놀이가 꿈틀거렸다. 갑자기 하초에 열이 몰렸다. 그에 당황한 도운은 잠시 비틀거렸다.
“오라버니, 어디가 편찮으십니까?”
“아니, 아니다. 그저 찬바람을 많이 쐰 것 같구나.”
애써 자신을 다스리며 초가로 돌아오는 길, 도운은 가슴에 얹은 돌의 크기가 더 커진 것을 느꼈다. 맘이 답답하면서도 욕정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저녁 반상을 들고 들어오는 여인의 버석하게 마른 얼굴을 보자 괴로움은 더욱 커졌다. 다스렸다 생각했다. 고귀하고 어여쁜 예화의 아름다움에 이런 불결한 음심은 다 사라졌다 생각했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무의식적으로 손을 놀렸다. 문득 정신을 차려 보니 언제 비웠는지 그릇이 깨끗했다. 하, 대체 뭐하는 놈이냐, 너는. 그저 일어나 먹고, 싸고, 음심만 키우는 너는 정녕 무엇이냐. 자신은 그저 본능만 남은 금수 한 마리에 지나지 않았다. 도운은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가 버렸다.
문을 열고 나오다 섬돌을 밟고 올라오던 여인과 마주쳤다. 여인을 보자 몸속 깊은 곳에서부터 참지 못한 욕구가 더욱 치솟았다. 당장에라도 이성을 잃고 여인을 제 밑에 깔아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 저에게 욕지기가 올라오자, 도운은 아무 잘못이 없는 애먼 여인에게 무서운 눈빛을 던졌다.
“이리 늦은 시각에 산보 나가십니까? 밖이 많이 어둡습니다.”
자신의 살벌한 기운에 주눅이 들어, 머리를 조아리면서도 여인은 제 행보를 물어오고 있었다. 도운은 속에서 올라오는 화를 다스리지 못하고, 쇠를 긁어 대는 엄한 목소리를 내버렸다.
“네까짓 것이 내 행보에 무슨 관심이더냐. 내 분명 주제넘은 행동은 삼가라 하였다!”
쌀쌀한 밤공기에도 몸에서는 열이 들끓었다. 정신없이 달리다 어느덧 계곡에 도착했다. 물 위에 비친 제 모습은 여전히 검었다. 얼굴 없는 놈. 평생을 이 산에 갇혀 썩어 뭉그러질 팔자. 서책을 읽어대면 무엇하고, 무예를 익히면 무엇할 것이냐. 모두 쓸데없는 몸부림인 것을. 그저 머리 검은 금수에 불과한 놈.
도운은 바닥에 구르는 돌을 집어 제 모습을 비춘 수면에 던지고 또 던졌다. 한껏 이지러지는 자신의 모습에, 그제야 조금 분이 풀리는지 씩씩대던 숨결이 잦아들었다. 붉게 충혈된 시선을 돌리자, 낮에 보았던 판판한 바위가 보였다. 그 뒤로 자연히 반빗간 여인의 얼굴이 떠오르자 다시금 역정이 치솟았다.
너는 왜, 대체 왜 이 산을 내려가지 않는 것이냐. 왜 남들처럼 도망가지 않는 것이냐! 나처럼! 왜 나처럼 제 처지를 비관하며 살지 않는 것이냐!
아무리 구박을 하여도, 아무리 무시를 하여도 왜! 밥상 따위가 무엇이 중요하다고. 하루 종일 텃밭에 나가 소처럼 일하고, 온 산을 헤치고 나물 따위나 긁어 오고! 그까짓 일들이 대체 뭐라고, 곡물 낱알 따위나 보듬으며 웃기나 하고! 도대체 왜!
도운은 바닥에 놓인 묵직한 돌을 들어 제 얼굴 위로 던져버렸다. 첨벙, 큰 물보라를 일으키던 커다란 돌이 물속 깊이 가라앉자 잠잠해진 수면은 검은 가면을 뒤집어쓴 제 추악한 모습을 다시 비췄다. 하, 허탈하고 속에서 쓴 물이 올라왔다. 아무리 애를 쓰면 뭐하랴. 감추려야 감출 수 없는 제 검은 모습을 비추는 저 수면이 진실인 것을.
터벅터벅 싸리문을 지나 초가로 들어섰다. 며칠 전과 같은 야심한 이 시각에 반빗간에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설마 하는 마음에 가까이 다가서자, 문틈으로 숭늉이나 다름없는 눌은밥을 손에 들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여인은 눌은밥과 함께 먹다 남은 지저분한 찬을 허겁지겁 떠먹고 있었다. 괜히 심술이 올라왔다.
“뭐하는 게냐?”
“서…… 서방님.”
갑작스런 도운의 등장에 놀란 여인은 그릇을 부뚜막에 올리고 일어섰다. 서둘러 입가를 닦는 여인의 모습을 바라보는 도운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허, 배 속에 거지가 들어앉았느냐? 이 야심한 시각에 괭이 새끼마냥 몰래 들어앉아서는. 추저분하여 도저히 볼 수가 없구나. 내가 괜히 너를 천하다 하는 것이 아니다. 본데없는 네 행동이 너의 천성을 보여 주고 있질 않느냐. 양심이 있다면 너 같은 것이 감히 날 서방이라 부르지 못할 것이다.”
낮고 싸늘하게 울리는 목소리에 경멸이 담겨 있었다. 커다란 눈을 끔벅거리며 서 있는 여인을 뒤로하고 도운은 반빗간을 나섰다. 도운이 자리를 뜨자, 끔벅거리던 청조의 눈에서 결국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떨리는 입술을 깨물고 다시 그릇을 손에 들었다. 그 모욕을 당하고도 배가 고픈 자신이 너무 싫고 비참하였다. 청조는 터질 것 같은 눈물을 참고 숭늉 한 숟가락을 입에 퍼 넣었다.
* * *
밤새 잠을 잘 이루지 못한 도운은 머리가 깨질 듯이 지끈거렸다. 마지막으로 예화와 함께 산길을 걷고 있는 이 순간에도, 마음은 온통 그 작은 여인에게 쏠려 있었다. 고단함에 말라 버린 도운의 입술에 허옇게 각질이 일어섰다. 도운의 허연 입술을 보는 예화의 마음은 기쁨으로 충만하였다. 얼마나 저를 생각하시면, 저리 입술이 터질 정도로 고민을 하셨을까.
“오라버니.”
“그래.”
“일전에 소녀가 너무 경솔하였습니다.”
“무엇을 말이냐?”
“오라버니의 사정을 뻔히 알고 있는 저가, 어린아이마냥 굴었습니다. 소녀, 이제 더 이상 오라버니를 조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그만 근심을 내려놓으세요.”
예화가 하는 말을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한 도운이 잠시 멍해 있는 사이 예화가 가련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궜다.
“지금 당장 약조해 주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허나, 소녀가 기다리는 것까지 뭐라 하지는 말아 주셔요. 곧 산에서 벗어나시어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실 것을 소녀는 의심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그때를 기다리는 것에 대해 다른 말씀은 말아 주셔요.”
그제야 예화의 말뜻을 알아차린 도운은 가늘게 떨고 있는 예화의 어깨를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사실 예화가 이 문제를 다시 이야기하기 전까지, 도운은 그 일에 관해서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너무 무심하였나 싶어 미안하였다. 여인이 이런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인데.
“예화야, 그것은…….”
“아니 들을 것입니다. 말씀하지 말아 주셔요.”
홀로 걸어가는 예화의 뒷모습에 마음이 씁쓸하였다. 이 산을 벗어난다. 하, 천하가 뒤집히지 않는 한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말 그대로 천하가 뒤집어져야 가능한 일이었다. 씁쓸함 속에 마지막 날이 저물어 가고 있었다. 쓸쓸히 지는 해를 등지며 도운은 반빗간 여인이 있는 초가로 향했다.
도운은 저녁상을 물리고 또다시 산보를 다녀왔다. 요 며칠 돌을 던져대던 물가에 한참을 서서 물에 비친 검은 사내를 바라보다 초가로 돌아왔다. 마루로 올라서려는데 섬돌 위에 고운 운혜 한 켤레가 보였다. 그리고 섬돌 아래, 짚신 두 켤레가 보였다. 하나는 언년이의 것일 테니, 또 하나는 반빗간 여인의 것이 분명했다. 이 시각에 그 여인이 건넛방에 들 이유가 무엇인지 이상하였다. 방으로 들어서던 도운의 맘이 갑자기 변덕을 부렸다.
“예화야. 잠시 들어도 되겠느냐?”
“예에? 오라버니? 어, 어서 드십시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후끈한 방이 쌉싸름한 쑥 냄새로 가득하였다. 예화와 언년은 부산스럽게 치마를 매만지며 일어서 상석을 내어 주었다. 일어선 언년이가 재빨리 발치에 있던 버선을 뒤로 밀어 감추었다.
“그만 나가 보거라.”
“예.”
예화가 나긋하게 명하자, 이마에 구슬땀을 매달고 있던 반빗간 여인이 고개를 조아렸다. 여인은 곧 김이 올라오는 놋쇠 대야와 이것저것을 주섬주섬 챙기어 방을 나섰다.
“저 여인이 예서 무얼 하고 있던 것이냐?”
“아무것도 아닙니다. 소녀가 산행이 조금 고되었는지라 찜질할 뜨거운 물을 좀 가져다 달라 했습니다.”
“그래?”
의심스런 눈빛으로 방을 둘러보던 도운의 얼굴이 한순간에 굳어 버렸다. 언년이의 입가에 대롱대롱 달라붙어 있는 저것이 무엇인가 바라보다, 근처 그릇에 수북이 담겨 있는 누룽지를 발견했다.
“예까지 어인 일이십니까?”
“오늘이 마지막 밤인지라, 네 얼굴을 한 번 보려 들렀다.”
“예에. 오라버니 덕분에 소녀가 너무 좋은 시간을 보내다 갑니다.”
“그래, 네가 좋았다니 참으로 다행이다. 언년이 너도 좋은 시간 보내었느냐?”
“예? 예, 암요. 미천한 이년 눈이 참으로 호강하였습니다요, 도련님.”
도운은 예화의 동그랗게 부푼 치마에 이어 언년이가 치마폭에 감춘 발을 싸늘하게 쳐다봤다. 발치에 머물던 시선을 올려 아직도 누룽지 부스러기를 달고 있는 발칙한 언년이의 입가를 노려보던 도운이 차갑게 읊조렸다.
“그래, 네가 참으로 호강하고 가는구나.”
방을 나선 도운은 주먹을 꽉 쥐고 섬돌을 내려섰다. 반빗간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이 몸을 끌어당기듯, 발길이 저절로 그곳으로 향했다. 여인은 갸름캉캉한 얼굴로 희멀건 숭늉을 이제 막 가마솥에서 건져내고 있었다. 꺼져가는 아궁이 앞 어디쯤에 자리를 잡고 앉는 여인의 모습에 도운은 숨이 막히도록 명치끝이 저려 왔다.
여인이 건넛방에 들어 무엇을 하느라 그리 땀을 흘렸는지는 대충 알 것 같았다. 아마 매일 저녁 그 방에 들어앉아 저리 땀을 흘리고 있었겠지. 첫날 김이 훨훨 올라오던 놋쇠 대야를 들고 건넛방을 향하던 여인의 모습이 생각났다. 그 모습이 떠오르자 명치끝이 저리다 못해 아파왔다. 대체 왜, 차라리 악다구니라도 쓸 것이지. 왜 이리 바보처럼 사는 것이냐!
저런 꼴로 자신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여인이 원망스러웠다. 저 여인이 산에 오른 후, 마음의 번민에서 단 하루도 벗어난 적이 없었다. 원망하듯 여인을 노려보던 도운의 눈가가 금세 붉어졌다. 허나 도운은 이내 고개를 떨어뜨렸다. 감히 제 주제에 누구를 원망한다 말할 수가 있는가. 모다 자신의 잘못인 것을.
반빗간의 사정을 잘 모르는 사내라 몰랐었다는 말은 궁색한 변명이었다. 아무리 모른다 한들, 천하의 백치가 아니고서야 어찌 모르겠는가. 요 며칠 새, 초가에는 몇 명의 객식구가 늘었다. 늘어난 객식구가 제 몫의 양식을 챙겨 온 것도 아닌데, 곡식이 당연히 부족할 것이다. 아니 그래도 부족한 곡식인데, 건넛방에 들어선 여인들에게 그나마 있던 누룽지까지 빼앗겼으니.
빈 가마솥을 아무리 끓여 본들 그 안에서 밥알을 어찌 찾을 수 있으랴. 희멀건 숭늉으로 주린 배를 채우는 여인을 두고, 저가 무어라 떠들어 대었던가. 걸신이 들어앉았느냐 하였지. 추저분한 모습이 천하다 하였지. 건져지는 밥알의 수가 보일 정도로 멀건 숭늉으로 배를 채우는 여인에게, 그 꼴이 참으로 궁상스럽다 하였지.
허탈하였다. 마음이 허하고 냉기가 스몄다. 마음속 돌의 정체가 이제야 무엇인지 깨달았다. 애써 모른 척한 여인의 고단함이 무거운 원망이 되어 자신의 가슴을 누르고 있었다. 애써 외면한 여인의 어진 성품이 저의 못난 성질을 질책하고 있었다.
‘끼익’, 슬며시 밀어보는 반빗간문이 잡음을 울리자 여인이 경기하듯 놀라 일어섰다. 도운은 반빗간 안으로 한걸음 성큼 들어서 안의 풍경을 살폈다.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깨끗이 정리된 찬간이라던가, 그 위에 물기를 말리고 있는 깨끗한 그릇들, 부뚜막에 올려 있는 쇠솥에서는 반짝반짝 윤이 났다.
그 부뚜막 위에 건넛방에서 먹다 남은 저녁 찬거리를 한데 쓸어 모은 지저분한 그릇이 보였다. 그나마 그 양도 턱없이 적었다. 그 꼴을 보자 명치끝이 더욱 아팠다. 하지만 괴란한 마음과는 다르게 말은 엇나가고 있었다.
“개, 돼지도 아니고, 더럽게 남이 먹다 버린 찬 따위를 주워 먹고 있는 것이냐? 진짜 걸신이라도 들린 것이야?”
어제저녁 크게 타박을 들었는지라, 이번엔 무슨 책을 잡힐까 두려워하는 모양이 눈에 선했다. 개, 돼지나 다름없다는 말에 여인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리더니, 맹한 것이 또 그 커다란 눈만 껌벅거렸다.
“왜 말이 없느냐? 처음 이 산에 오른 날에는 똑똑한 척 꼬박꼬박 말대답도 잘하더니, 그새 천치가 되어 버렸느냐?”
“음식입니다. 음식에 더러운 것이 어디 있습니까? 모다 귀하게 나고 자란 것들입니다.”
“그리 귀해 버리기가 아까웠느냐?”
도운은 부러 말을 더욱 모질게 했다. 여인의 속내를 듣고 싶었다. 아니, 그보다는 저를 질타하는 눈빛을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었다. 그래야 가슴에 박혀 버린 돌이 빠져나가고, 이 체기가 가라앉을 듯하였다. 하지만 저의 타박에도 여인은 또 허리만 깊숙이 숙일 뿐이었다.
“아까웠느냐고 물었다!”
“예, 아깝습니다. 쌀알 한 톨도, 무침 한 가닥도 모다 아깝고 귀합니다. 그 귀함을 모르는 자는 먹을 자격이 없는 자입니다.”
“자격이 없다?”
“기근이 심하여 많은 백성들이 초근목피로 겨우 연명하였습니다. 굶어 죽은 아이의 부모가 제 이웃들이었습니다. 그들이 내는 곡성으로 마을이 들썩이던 때가 바로 얼마 전입니다. 먹을 수 있는 것을 내어 주는 산과 텃밭에 감사하여야 하고, 그것에서 나는 모든 것을 소중히 해야 합니다.”
“그래? 그럼 그것들을 허투루 여기는 나는 먹을 자격이 없겠구나. 이제 보니 나더러 굶어 죽으라고 하는 소리구나.”
“아닙니다. 곡해 마옵소서. 소첩이 어찌 그런 마음으로 말씀 올리겠습니까? 참으로 아닙니다.”
“감사하지 않는 자는 먹을 자격이 없다. 지금 네 입으로 말을 하지 않았느냐?”
“하지만 서방님께서는…… 양반이시지 않습니까?”
“뭐?”
“……양반님들께서는 경작지의 주인이 아니십니까? 땅에서 난 모든 것의 소유자이시니 배고픔을 모르고, 배고픔을 모르니 그것의 귀함을 모르는 것은 당연하지요. 그러니 자격이 있다, 없다를 어찌 논하겠습니까?”
꺼져가는 목소리로 말끝을 흐리는 여인의 대답은 실로 충격적이고 파격적이기까지 했다. 이 나라의 근간인 사대부를 교묘히 꼬집는 말이었다. 당연히 여인은 뜻을 담고 한 말은 아니었으나, 여인의 말은 종친으로서의 제 자만심을 꼬집었다.
“그래서…… 이 산에 들어온 이유가 그거였느냐? 배곯는 것이 싫어 대가를 받고 이곳에 왔느냐?”
나직이 묻는 말에 여인의 손이 가늘게 떨리는 것이 보였다. 탓을 하려 물은 것이 아니었다. 그저 여인이 산에 들어온 이유가 궁금했다. 하지만 떨리는 여인의 손을 보니 아마 제가 또 질책한다 생각하는 듯싶었다.
“어머니께서…… 편찮으셨습니다.”
“어머니가?”
“예, 아니 그래도 병약하신 분이 먹을 것 한 움큼이라도 얻어 보겠다고 양반댁 잔칫집에 허드렛일을 하러 가셨다 각혈을 하고 쓰러지셨습니다. 의원 말이 가슴에 스민 냉기가 쌓인 병이라 하였습니다. 섭생에 각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하였는데, 방법이…… 방법이 없었습니다…….”
대답을 하던 청조는 정말 방법이 없었는지 이제 와 의문이 들었다. 서방님의 말씀대로 배고픔이 고단하여 병든 어머니의 핑계를 댄 것은 아니었는지. 마음이 잠시 번잡스러워 말끝을 흐렸다.
“네가 떠났으면 지금 네 어미는 어찌 지내느냐?”
“아우들이 성심을 다하고 있을 것입니다.”
여인의 말에 두 해 전 피를 토하던 늙은 여인이 생각나 버렸다. 늙고 기운 빠진 몸으로 저를 보필하다 끝내 병을 얻어 죽은 여인. 자신이 의지하고, 아끼던 단 하나의 식솔이었다. 그런 여인이 쓰러졌을 때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도운의 고개가 아래로 숙여졌다.
건방진 놈. 자신은 천하에 건방진 놈이었다. 부정하고도 불길한 상징으로 태어나 산에 갇힌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인 주제에.
제 처지가 이런 줄도 모르고, 저가 한없이 고매한 무엇이라도 되는 줄 알았다. 혈통이 다 무엇이란 말인가. 결국, 스스로 할 줄 아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주제에. 그런 주제에 열심히 사는 여인을 천박하다 했다. 몸을 파는 창기라 매도하고, 겁탈하고, 능욕하였다. 여인을 뒤로한 도운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자리를 떠 버렸다.
이튿날, 해가 중천에 뜬 지 얼마 안 되어 익태가 도착하였다. 익태가 도착하자 반빗간이 더욱 부산스러웠다. 청조는 전날 힘겹게 갈아놓은 보리에 방아 잎과 장을 넣어 장떡을 부쳤다. 매콤하면서도 잎 내음이 애초롬한 장떡에 미리 만들어 놓은 감주까지 소반에 올렸다. 익태를 수발하러 따라온 이에게는 따로 한 상 가져다주고 청조는 도운의 방으로 향했다.
밖에서 조용히 읍한 청조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세 사람 사이에 오가는 말이 잠시 끊겼다. 허나 곧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동안 즐거웠느냐?”
“네, 오라버니께서 산의 명소를 모다 꿰고 계시니, 소녀에게 좋은 풍경을 참 많이도 보여 주셨습니다.”
“그랬느냐? 고맙네.”
“고마울 것까지야. 어릴 적에 보고 처음 보는 아이이니 나 역시 반가워 즐거운 시간을 보냈네.”
도운의 즐거웠다는 말에 예화는 저도 즐거웠노라 답을 하고 환히 웃었다. 웃고 있는 예화를 향해 청조가 조심스럽게 고했다.
“아가씨, 건넛방 주전부리는 따로 준비해 두었습니다만, 이곳에서 드시겠습니까?”
“그래? 아니다. 두 분끼리 하실 말씀이 있으실 테니 나는 이만 건너갈 것이다. 건넛방으로 가져오너라.”
“예, 아가씨.”
“오라버님, 그럼 소녀는 이만 건너가 보겠습니다. 두 분 말씀 나누시어요.”
예화가 방을 나서자 문 옆에서 조용히 읍하고 서 있던 청조 역시 소반을 내려놓고 곧 방을 나섰다. 어째서인지 도운은 방을 나서는 청조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오전부터 반빗간에 들어 허리 한번 펴지 못하고 일만 하더니, 여인의 얼굴이 창백한 듯 보였다. 여인의 고단한 얼굴과는 다르게 소반에서는 입맛을 돋우는 애초롬한 향이 퍼졌다. 어제 여인이 한가득 따온 이름 모를 산나물에서 나는 향이었다.
도운은 이런 이름도 모를 풀이, 이렇듯 귀하고 맛있는 음식으로 상에 오를 줄 몰랐다. 반평생을 산에서 살고 있는 저도 모르는 많은 것들을 여인은 모다 알고 있었다. 참으로 지혜로운 여인이었다. 문득 엊저녁, 여인이 한 말이 떠올랐다. 백성들이 산과 들을 헤치며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명한다던 그 말. 그들도 이런 이름 모를 풀들을 찾아 산과 들을 헤치며 다니는 것일 테지.
“작년에 기근이 심하여 많은 이들이 굶었는가?”
“글쎄, 기근이 심하여 때아닌 흉년이었기는 했지…….”
“기근에 시달리던 백성들이 굶주림에 나무껍질과 그 뿌리까지 파먹었다지? 아이들이 굶어 죽는 바람에 그 부모들의 곡소리가 담장을 넘었다던데?”
“응, 아마도 그랬을 걸세. 예년에 비하여 비가 한참 오지 않아, 전하께서 직접 기우제를 지내셨지.”
“그랬는가?”
전하께서 기우제를 지냈을 정도였는데도 자신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이 산에 똬리를 틀고 앉아 있었으니, 속세가 어찌 돌아가는지도 잘 모르고 있었다. 한 해에 서너 번 산을 방문하는 익태에게서 산 아래 사정을 대충 들었지만 그리 비참한지는 몰랐다. 확실히 작년엔 가뭄이 심하긴 하였으나 그것으로 인해 어린아이들이 죽어 가는 줄은 몰랐다.
“나라에서는 무얼 하고? 백성이 굶어 죽어 나가고 있는데, 구휼미를 나누어 주지 않았는가? 어찌 아이들이 굶어 죽어 간단 말인가?”
“창고에 쌓인 구휼미에도 한계가 있지 않은가? 백성의 몫으로 쌓여 있는 구휼미의 양이 어디 그리 많단 말인가?”
“백성의 몫이라니? 그럼 백성의 몫이 따로 있고, 다른 몫이 따로 있단 말인가? 나라에서 구휼에 힘을 쓰지 않는다면 백성들이 어찌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인가?”
“창고에 쌓인 곡식들은 모다 나라의 살림이 아닌가? 살림은 곧 관리들의 녹봉과 왕실의 내탕금이고.”
“그게 무슨 말인가? 백성들이 굶어 죽는 때에 녹봉과 내탕금 타령이라니! 양반들이야 녹봉이 아니더라도 소작농들에게 거둬들인 곡식이 있을 것이 아닌가? 누구라도 나서서 개인 곳간이라도 열고, 그 안의 곡식을 풀어야지.”
도운의 외침에 익태가 감주를 한 모금 들이켰다.
“그러니까 말일세. 그게 지금의 조정이라네. 백성들이 굶어도, 제 창고는 꼭 지키려고 하는 것들이 바로 지금 조정에서 세를 잡고 있는 권문세가들이라네. 그러니 어찌하겠는가? 이 나라의 근간이 양반이고, 왕실인 것을. 기득권의 생각이 바뀌지 않는 이상 어찌할 수 없는 문제네. 특히 좌찬성 대감이 문제일세.”
“좌찬성?”
“세자빈마마의 아버님 말일세. 세력이 얼마나 큰지 날아가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분이시네. 그분에게 잘 보이려는 조정 신료들과 지방의 관료들까지, 온갖 패물을 든 이들이 대문 밖까지 줄을 선다 하더군. 그 패물들이 다 어디에서 나오겠나? 모다 백성들의 고혈이고 통곡일세. 지금도 저리 하늘 높은 줄 모르는 분이신데, 곧 영의정으로 승차까지 한다네. 게다가 세자 저하께서 보위에 오르시면 좌찬성 대감은 그대로 부원군에 등극하는 것이 아닌가. 외척의 세가 지금도 득실대는 마당인데, 좌찬성 대감 역시 중전마마의 집안사람이네. 그런 좌찬성 대감이 이대로 부원군까지 된다면 외척의 세가 얼마나 더 강해지겠느냔 말이지.”
말을 마친 익태는 다시 감주를 들이켰다. 감주를 들이키며 잔 너머로 도운을 면밀히 살펴보았다. 도운은 뭔가 생각에 잠겨 있는 듯 말이 없었다. 익태는 그의 눈치를 대충 살피다 본론을 꺼냈다.
“그나저나 예화 말일세. 그 애가 별말 하지 않던가?”
“무슨 말을?”
“제 혼담에 대해 말이야. 사실 전에도 말하였지만, 그 아이에게 혼담이 들어오기 시작한 지가 벌써 여러 해 전이네. 그런데 예화가 고집을 부려서.”
“그 이야기라면 내 알아듣게 이야기해 두었으니 걱정하지 말게. 내 처지가 이러하니 어떤 확답도 줄 수 없다고 하였네.”
도운의 대답에 잠시 멈칫하던 익태는 손으로 술잔만 만지작거렸다.
“그것이, 자네도 그 아이의 고집을 잘 알지 않는가? 해서 당분간은 그 아이가 원하는 대로 내버려 둘 작정이네. 그러니 만약, 정말 만에 하나라도, 자네가 이 산을 벗어나게 되는 때가 온다면 예화를 받아주게.”
“그것은…….”
“나도 아네. 그러니 당분간이라는 것이 아닌가? 한 해만 기다리겠네. 그 후에는 내 강제로라도 그 아이를 시집보낼 것이야. 그러니, 만약 그 전에 자네의 족쇄가 풀린다면 그때 혼약을 약조해 줄 수 있겠나? 내 오라비로서 이렇게 부탁하네.”
“족쇄가 풀릴 리가 있겠는가? 그런 생각 말고 더 늦기 전에 혼인을 시키게.”
“그러니 딱 한 해만 기다린다 하지 않는가. 자네 설마, 혹 예화가 맘에 차지 않는가?”
도운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였다. 혼인이라는 것은 당사간의 맘에 차고 안 차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당사자의 마음보다는 가문의 결합이었다. 만약 족쇄가 풀린다면, 그때 맞이할 대군 부인으로서 예화의 자격이 떨어지진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이름도 모르는 반빗간 여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떠오르는 얼굴을 지우고 도운은 애써 변명했다.
“그것이 아니라, 춘부장께서 가만히 계시겠는가?”
“아버님께서는 이미 허락하신 일이네.”
예화를 부인으로 맞게 되는 것은, 그것은 아마 꿈같은 일일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이 산을 벗어난다는 의미일 터이니. 게다가 저의 태생에 걸맞은 여인을 반려로 맞이하는 일이었다. 모든 것이 순리에 맞게 돌아간다는 뜻이었으니, 물론 기꺼운 일이어야만 했다.
하지만 하나도 기껍지가 않았다. 뭔가 꺼려지는 맘이었다. 자신이 이 산을 벗어나는 일은 영원히 없을 테지만, 그럼에도 선뜻 약속을 할 수가 없었다. 자꾸만 반빗간 여인의 모습이 떠오르자, 당황한 도운은 급히 그 모습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우발적으로 대답했다.
“알겠네,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내 그리 하겠네.”
“고맙네, 고마워.”
집안에 들었던 객식구들은 이튿날 새벽밥을 먹고, 동이 틀 무렵 길을 나섰다. 도운과 헤어지는 것이 못내 아쉬운 예화는 보기에도 애절하게 도운을 바라보다, 몇 번이나 뒤를 돌아보며 산을 내려갔다.
객식구들이 떠나고 도운은 한참을 생각에 잠겼다. 해가 떠 있는 동안 사냥을 하며 산속을 헤집었다. 정신없이 뛰어다니며 생각하고 또 생각을 하였다. 사냥을 하는 목적이 생각을 하는 일인지라, 손에 잡히는 산짐승은 한 마리도 없었다. 그렇게 산속을 헤매다 여인이 싸준 주먹밥과 육포로 허기를 달랬다. 주먹밥을 한입 베어 물자 많은 것들이 떠올랐다.
기근에 굶어 죽었다던 어린아이들, 그럼에도 꽉 채워져 있다는 양반들의 곡식 창고. 화려했던 예화의 머리 장식, 산에 올라 조기 타령을 하던 언년이. 그리고 반빗간의 여인.
‘서방님께선 양반이 아니십니까?’
양반이라는 것이, 종친이라는 것이 이토록 부끄러운 것이었다. 허울과 가식 뒤에서 공자 왈 맹자 왈 이나 할 줄이나 알았지, 진정 그 속에 담긴 참뜻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것이 양반이고 종친이었다. 저를 지켜 주던 늙은 유모가 없었다면 자신은 아마 벌써 요절하였을 것이다. 이 험한 산중에 들어앉아 떠먹여 주는 밥만 먹을 줄 알았다. 그 밥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줄도 모르고.
이런 자신이 산에 올라 조기 타령이나 하던 무식한 언년이와 과연 무엇이 다를까. 사람의 귀천이라는 것이 태생에서 나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일까? 화려한 머리 장식 없이도 여전히 예화는 귀하고 아름다운 여인인가? 한참을 생각하다 보면, 나라의 근간을 흔드는 불경한 생각에 이르곤 했다.
그렇게 생각을 하고 또 하는 사이 입김은 허옇게 불어나고, 산은 온통 말라비틀어진 나뭇잎으로 가득 덮여 갔다.
어느 날 사냥에서 돌아온 도운은 서안 위에 놓여 있는 새 의복을 발견했다. 세답을 한 것이라면 머릿장에 들어가 있어야 할 것이나, 서안 위에 있다는 것은 분명 새 의복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도운은 손을 뻗어 곱게 개어져 있는 그것을 펼쳤다.
펼쳐 본 그것은 엄밀히 말하여 새 의복은 아니었다. 자신이 입던 겨울 저고리에 그동안 잡아 온 산짐승의 털가죽을 안에다 덧댄 것이었다. 배자(저고리 위에 덧입는 소매 없는 덧옷) 역시 안쪽으로 털가죽을 대고, 그와 맞추어 팔 토시와 다리 토시 안까지 모두 털가죽을 대어 놓았다. 사냥할 때 활동적으로 입으라고 준비한 티가 역력히 났다.
어찌나 정성으로 지었는지, 털가죽이 부드럽고 푹신하였다. 덧댄 가죽과 저고리의 이음매가 안 보일 정도로 촘촘하고 섬세하게 바느질되어 있었다. 도운은 바느질된 이음매를 따라 손으로 저고리를 보듬었다. 마치 여인의 다정한 마음을 보듬듯, 한없이 애틋한 손길로 저고리를 보듬었다. 순간 저고리 위로 굵은 눈물이 한 방울 뚝 떨어졌다. 유모가 죽었을 때조차 흘리지 못했던 눈물이 서글픔에 흘러나왔다.
도운은 이제껏 힘들게 고민하던 일을 결정할 때가 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제껏 애써 미루고 미루던 일을, 이제는 더 이상 미룰 수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눈물을 잘 갈무리한 뒤 도운은 반빗간 여인을 방으로 불렀다.
“이것이 무엇이냐?”
“겨우내 서방님 입으시라고 있는 옷을 조금 손보았습니다.”
두 손을 꼭 마주 잡고 대답하는 반빗간 여인의 해진 저고리 소매며 닳아빠진 동정이 보였다. 그것을 보자 또 눈가가 뜨거워졌다. 이런 여인을 자신이…… 더 늦기 전에 여인을 보내야만 했다. 도운은 올라오는 격한 감정을 억누르고 청조를 바라봤다. 그리고 이윽고 그 말을 꺼냈다.
“이 산을 내려가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