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구름을 비추는 새벽-2화 (2/25)

2. 산속으로

가슴을 부여잡은 어머니께서 마침내 각혈을 하며 쓰러지시자 청조의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아버지의 병사에서 보았던 많은 이들 중, 각혈까지 하던 이들은 모다 그 생사가 불투명한 이들이었다. 좋은 음식을 먹으며 보양을 하고, 비싼 약재를 달여먹어도 시름시름 앓다 죽는 이들을 본 적이 있었다.

그리 정성을 다하여도 생사여부를 장담할 수 없는데, 자신의 처지에 의원을 부를 수도 약 한 첩을 지을 수도 없었다. 이대로 어머니를 잃는 것은 아닌지 눈앞이 깜깜했다. 부모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는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식의 무능력이란…….

“어머니, 어머니! 정신을 좀 차려 보셔요! 어머니, 흐윽!”

울며불며 어머니의 손발을 주무르는데 밖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기억나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문짝을 벌컥 연 청조는 버선발로 뛰어 내려와 저를 찾아온 이의 앞에 무릎을 꿇고 빌었다. 아버지에 이어 어머니까지 이리 갑작스럽고도 허무하게 보낼 수는 없었다.

“예, 예! 하겠습니다,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첩이 아니라 노비살이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저희 어머니 좀 살려 주십시오, 나리. 부탁드리겠습니다. 제발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리!”

무릎을 꿇고 애원하는 청조를 바라보던 중년 사내의 입술이 음흉하게 올라갔다. 안의 상황을 둘러 본 그는 바로 의원을 불러 어머니를 진맥하게 하고 약방문을 처방받았다.

“병자의 병은 소음병으로 차가운 기운에 몸이 상하여 생기는 상한병의 일종입니다. 진작 알았더라면 쉽게 치유가 되었을 것을, 그것이 오래 방치되어 차가운 기운이 가슴에까지 스며들어 큰 병이 되었습니다. 섭생에 크게 신경을 쓰고 몸을 따듯하게 보해야 할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약방문을 적은 의원은 곧 약재를 챙겨오겠다며 방을 나섰다. 약재를 가지러 간 의원을 기다리던 청조의 눈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 목이 막혔다. 작은 병을 이리 키우다니, 어머니께 죄송하여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여인의 가엾은 모습을 보는 중년 사내의 음흉한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운이 좋아도 아주 좋구나. 이렇듯 딱 맞물리게 적당한 시기라니.

“이제 이야기를 마무리하도록 하지.”

이야기를 마무리하자며 종용하던 그의 설명에 청조는 귀를 의심했다.

“그것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말 그대로네. 그분께서는 사정이 있으시어 늘 복면을 쓰고 있으니 절대 그 안의 생김새를 알고자 하면 아니 되네.”

“그 사정이 무엇입니까?”

“그도 묻지 말게.”

“그럼 왜 혼자 외딴곳에 기거하시는지, 그 사정은 물어도 되겠습니까?”

“그 무엇도 알려고 하지 말게.”

“허면 성함은…….”

“그 무엇도 알려 하지 말라 하였네. 존재하나 불리어선 안 될 이름일세. 이름도, 나이도, 생김새도 알려 하지 말게. 그리고 그분이 누구인지도.”

심히 이상한 일이었다. 평생을 함께할 낭군에 대하여 아무것도 묻지 말라 하니, 청조는 정녕 자신이 누구에게 시집을 가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청조가 의구심을 갖든 말든 관심 없는 중년의 사내는 자신이 필요한 말만 했다.

“달에 한 번씩 사람이 들릴 거네. 그이를 통해 식료품이나 세간에 필요한 물품 등을 보내 줄 터이니 끼니는 걱정할 필요 없어. 대신 그분과 둘만 지내게 될 테니 그분의 수발을 잘 들어드리도록 노력하게나.”

“예, 그야 당연하지요. 어찌 되었든 부부의 연을 맺으니, 이제 제 낭군이 되실 분이 아니십니까? 당연히 성심을 다할 것입니다.”

청조의 다부진 대답에 사내는 수염 없는 매끈한 턱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음흉한 미소로 청조를 내려 보았다.

“그 부분에 있어서 말인데. 사실 자네의 자리가 첩이라기보다는 그저 몸을 내주면 되는 그런 자리이네. 그러니 그분에게 부인 대접일랑 일체 기대를 말게. 그분을 보거든 서방님이란 호칭을 쓰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야. 아마 그분의 심기를 심하게 거스르게 될 터이니.”

“하, 하지만…….”

“자네가 할 일 중 가장 큰 일은 그분의 잠자리를 따뜻하게 덥혀드리고, 그분의 넘치는 혈기를 덜어드리는 일이네. 무슨 말인지 알겠는가? 성정이 거칠고 까다로운 분이니 절대 거슬리는 행동을 해서는 아니 될 걸세. 그분이 하고자 하는 일에 일체 이의를 제기해서도, 심기를 거슬려서도 아니 돼. 알겠는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망측한 언질에 청조의 몸이 굳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사내의 잠자리를 덥혀주라니. 이건 그저 씨받이로 들어가라는 말이나 다름없는 말이었다. 허나, 반드시 그의 자손을 생산하여 집안의 대를 이어야만 한다는 말이 없으니 이는 씨받이도 아닌, 무엇이라 말할 수도 없는 존재였다. 기가 막히고 뻔뻔한 요구에 청조는 따지듯 물었다.

“어찌 그러실 수가 있으십니까? 분명 중신을 설 요량으로 소녀를 찾아오셨다 하지 않으셨습니까?”

“혼인만 없을 뿐이지, 지아비나 다름없는 분을 섬기게 되는 일이니 틀린 말은 아니지.”

“소녀, 그리는 못합니다. 아니 될 말입니다! 첩의 자리도 아니고, 이는 그저 몸을 팔라는 말씀이 아니십니까? 이 이야기는 없던 것으로 하겠으니 그만 돌아가 주십시오!”

청조의 강한 반발에 사내의 얇은 눈이 더욱 가늘어지더니 차갑게 빛났다. 줄곧 쇳소리가 섞인 얇은 음성으로 말하던 사내가 갑자기 엄중한 목소리로 무섭게 호통치기 시작했다.

“네 분명 무엇이든 한다 하지 않았느냐! 노비살이도 마다하지 않는다 하였다. 모시는 주인이 원하시면 그 주인을 위해 응당 옷고름을 풀어야 하는 것이 바로 노비니라. 노비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아무렇게나 하겠다고 하였느냐? 정히 못하겠거든 당장 네 어미의 약값을 내어놓던지.”

“그, 그건…….”

“자네가 마음만 먹으면 이제부터 자네 식솔들의 안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이야. 당장 세간부터 옮겨주겠네. 의원 말이 몸을 따뜻이 보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는가? 이런 온돌조차 제대로 되지 않는 집에서 어찌 몸을 따뜻이 보하겠는가? 이 냉골에서 지내다간 조만간 자네의 어린 아우들까지 각혈을 하게 되지 않겠는가?”

두툼한 눈꺼풀 사이로 뱀처럼 빛나는 작은 눈동자가 망설이는 청조를 곁눈질하고 있었다. 청조의 망설임을 읽은 그의 입술이 징그러운 호를 이루다 사라졌다. 잠시 뜸을 들이며 시간을 끌던 그가 간사한 목소리로 마지막 쐐기를 박았다.

“또한, 작은 전답도 내려 줄 걸세. 그걸로 남은 세 식구 앞으로의 호구 걱정은 없겠지. 또한 생각을 해 보게. 자네가 그분에 대하여 묻는 것은 결코 아니 되지만, 사실 그는 자네 하기 나름이지. 어차피 저 깊은 산골에서 그분을 모시는 여인은 자네가 유일할 터. 자네에게 곁을 내준 그분 스스로가 자신에 대하여 이야기를 한다면야, 누가 감히 막겠는가? 그것이 그분의 뜻이라면.”

굳어가는 청조의 얼굴에 대고 흘리는 사내의 징그러운 웃음소리가 귓가에 메아리쳤다. 구구절절 읊어대던 그의 말이 모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청조는 스스로가 올무에 걸려 바동거리는 작은 산짐승이 된 느낌이었다. 하지만 올무에 걸린 산짐승이 된 것을 뻔히 알면서도 도무지 발을 뺄 수가 없었다.

“……조금만, 조금만 말미를 주실 수 있으십니까? 어머니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시는 것만 보고 떠나게 해 주십시오.”

“닷새, 그 이상은 봐주기가 어렵네. 그 안에 준비를 마치게.”

“예…… 나리.”

이틀 후, 청조는 식솔과 함께 새초가로 이사했다. 이렇게 빠르게 초가를 마련하여 준 것도 놀랐는데, 새집은 생각보다 더 훌륭했다. 이전 집에서는 다 부서져 그 기능을 상실했던 싸리문이 번듯하게 갖추어진 집이었다. 가옥도 두 채에 방이 셋이나 되니, 어머니께서 혼자 기거하실 방이 생겼다. 또한, 막내가 사내아이인지라 자매와 유별하니 홀로 방을 쓰기가 합당하였다.

뻥 뚫린 굴뚝으로 연기가 수월하게 통하는 것이 아궁이에 불 지피기도 편하고, 온돌이 뜨끈하여 방도 훈훈하였다. 손바닥만 한 광이었지만, 그곳엔 이미 어머니의 약재며 곡식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그것들을 보니 이번 춘궁기에 끼니 걱정할 일은 없을 듯하였다. 깨끗한 초가며 곡식이 쌓여 있는 광을 보니 더 이상 결심이 흔들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굳건해졌다.

아무렴 노비생활이 배고픔보다 고통스러울까, 씨받이 생활이 기근에 시달리던 식솔을 잃는 것보다 두렵겠는가! 청조는 갑자기 생긴 새집에 어리둥절해 하는 어머니와 동생들에게 좋은 댁에서 혼담이 들어왔다 설명했다. 그리고 그 댁에서 어머니의 병세와 저희의 곤궁한 생활을 염려하여 초가와 전답을 다소 마련해 주었노라고 이야기하였다.

거짓을 고하는데 다소 죄책감이 들었지만, 마음을 굳게 먹었다. 하물며 모다 거짓도 아니었다. 혼담이 들어온 것도 사실이고 어머니의 병세와 곤궁한 생활에 보탬이 되라, 혼처에서 재물을 보내 준 것도 사실이니 모다 거짓은 아니었다.

고단하고 배고픈 삶에 지쳐서인지 아니면 너무 어려서인지, 아우들은 아무 의심도 하지 않았다. 어떤 이가, 어떤 집안이 이리 은혜를 베푸는 것인지, 혹여 저희들의 형제가 어디론가 팔려가는 것은 아닌지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좋은 집과 광을 채운 곡식 가마니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얼마나 큰지 아무것도 의심하고 싶어 하지 않아 했다.

청조의 말대로 그저 좋은 혼처를 만나 이리 은혜를 입는구나, 돌아가신 아버지가 저희를 돌보시는구나 하는 마음이 모두에게 간절했다. 그렇듯 아무것도 의심하지 않는 아우들이 청조는 전혀 섭섭하지 않았다. 믿어주니 되레 다행이었다.

청조는 그날 광에 쌓인 쌀가마니를 뜯어 밥을 했다. 그리고 아우들에게 보리 한 톨 섞이지 않은 흰 쌀밥을 고봉으로 담아 주었다. 쌀알이 한 톨 한 톨, 어찌나 하얗게 빛나고 윤이 흐르는지. 그 빛나는 하얀 쌀밥이 또 어찌나 맛있는지, 아우들은 쉬지 않고 밥만 퍼먹었다.

오로지 어머니만이 청조가 떠나는 날까지 걱정과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허나 자리를 보전하고 누워 정신을 놓을 때가 많으니 청조를 다그치지도 말리지도 못하다 결국 이별의 날을 맞았다. 그동안 어머니께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늘어놓느라 청조의 애간장이 다 타 버릴 지경이었다. 먼저 시댁에서 어머니의 병환이 깊으니 혼례를 시댁에서 올리기를 원하신다고 얼버무렸다.

그 댁의 자손이 귀하여 혼인을 서두르고 싶어 한다는 변명, 시댁이 너무 멀고 아우들이 너무 어려 그중 하나라도 혼례에 참석하기 힘들다는 변명, 그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변명이 쏟아졌다. 변명을 하며 죄스럽던 마음은 혈색이 조금씩 돌아오는 어머니의 얼굴을 보면 풀리곤 했다.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계시지만 약을 꾸준히 먹으면 조만간 분명 일어나실 것이다.

“이제 저가 시집가면, 죽어도 남의 집 귀신이니 오래도록 기별 한 번 없어도 모쪼록 근심을 마세요, 어머니.”

“청조야, 아가. 이제 와 이런 말이 소용없다만…… 내 간밤에 꾼 꿈이 너무 흉흉해서…… 네가 길을 가는데, 발걸음이 닿는 부분마다 가시밭길로 변하지 뭐냐. 네 정녕 이 어미에게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것은 아니냐?”

“그럴 것이 뭐가 있습니까? 꿈은 반대라 하니 제가 꽃길을 걸을 모양입니다. 아, 그러고 보니 시댁에서 보낸 함에 꽃신이 있었습니다. 제가 그 꽃신 신고 걸어가는 모양새를 어머니가 꾸셨나 봅니다.”

거짓이었다. 시댁에서 보냈다는 함에 꽃신 따위는 없었다. 어머니께서 꾸셨다는 꿈이 너무 흉흉하여 자신의 마음 역시 불안했지만, 청조는 꽃신 운운하며 불안해하는 어머니를 다독였다.

“너 정말 괜찮은 거냐?”

“예, 괜찮다마다요. 곤궁한 살림에 시집가기는 어렵다 생각했는데 이렇게 좋은 혼처를 얻어 시집을 다 가게 되고, 저승에서 아버지가 도운 것이 틀림없습니다.”

새침하게 웃어 보이는 딸의 모습에 어머니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병환이 깊어 딸이 시집가는 날조차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하는 어미의 맘은 그저 참담할 뿐이었다.

“네 시부모 공양에 힘쓰고, 부디 서방과 정답게 지내어라.”

“예, 어머니. 어머니 병환 다 낫는 걸 보지 못하고 떠나니 그것이 마음에 걸립니다. 모쪼록 건강 조심하셔요.”

“그래.”

하직 인사로 큰절을 올리는 여식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눈에서 결국 눈물이 떨어졌다. 어머니의 눈물에 청조는 서둘러 방을 나섰다. 울컥 눈물이 올라와 더 이상 방에 있을 수가 없었다. 밖을 나오자 청조를 기다리던 아우들이 눈물 바람으로 배웅했다.

“누이, 이거 받아.”

“응? 이게 뭐야?”

“내가 누이 주려 만들었지.”

이제 열세 살인 사내아이가 뒷짐에 숨기고 있던 물건을 수줍게 내밀었다. 서툰 솜씨로 듬성듬성 깎아 만든 목 비녀였다. 옻칠조차 하지 못한 볼품없고 투박한 비녀였으나 청조에겐 더할 나위 없이 귀한 선물이었다.

“이걸 네가 만들었어?”

“응. 복을 가져다준다는 대추나무요. 내가 나무를 타고 올라가 이렇게 가지를 뚝 꺾어다 만들었지. 잘 만든 것은 아닌데, 그래도 내 마음이야. 가서 잘 살아야 해, 누이.”

말을 하던 아이가 코를 훌쩍이며 울기 시작하자 옆에 선 자매까지 울기 시작했다.

“그럼, 잘 살고말고. 이리 귀한 선물을 주다니, 정말 고맙구나. 내가 이 목 비녀를 항상 하고 다니련다. 모두 잘 있고, 어머니 잘 돌봐야 한다. 이 큰 누이가 없으면 둘째가 이 집의 가장 큰 성이니, 둘째 누이 말 잘 따르고, 또 막내는 장차 우리 집안의 기둥이 될 테니 둘째가 잘 지켜야 한다. 내 말 알아들었니?”

“우리 걱정은 말고 언니나 가서 잘하오!”

새침하게 쏘아대고 뒤돌아 우는 자매를 뒤로하고 청조는 어렵사리 발걸음을 떼었다. 자신을 찾아왔던 정체를 알 수 없는 나리를 따라 꼬박 아홉 날을 걸었다. 그리고 열흘째 되던 날, 이른 아침부터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험한 산세를 얼마나 걸었는지, 추위에도 땀이 솟았다. 집을 떠날 때쯤 입춘이 지났는데, 산골은 아직도 대한에 머무르는 듯 매서운 추위에 손이 곱았다.

“이제 곧 그분을 만나게 될 걸세. 내 일전에 그분의 성정이 다소 거칠다 언질을 주긴 했네만, 생각보다 버티기가 수월하지 않을 거야. 허나 잘 버티어야 하네. 도망가고 싶거들랑 식솔들의 얼굴들을 찬찬히 생각하게나. 자네 하기에 따라 식솔들이 다시 길거리로 나앉아 배고픔에 시달릴 수도 있으니, 그 점을 늘 상기하면 버티기가 좀 수월할 걸세.”

“그것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냥 그렇다는 것만 알아두게. 그리고…….”

앞서가던 나리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고 청조의 모습을 쓱 훑어보았다. 그 뱀 같은 눈빛이 징그러워 재빨리 고개를 내린 청조는 어깨에 걸친 장옷을 더욱 여미었다.

“잘 버티어 그분의 애정을 듬뿍 받을 수 있으면 더 좋고. 그분이 자네의 속살에 빠져 다른 생각을 아예 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지.”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나리는 이해 못 할 망측한 소리를 혼자 속삭이고 징그럽게 낄낄거렸다.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청조의 마음에 불안함이 엄습했다. 안개에 가로막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낭떠러지로 발을 디딘 것만 같아 마음을 다잡기가 힘들었다. 어머니께서 꾸셨다는 꿈 이야기가 자꾸만 생각나 청조는 들고 있던 보퉁이를 더욱 힘껏 끌어안았다.

* * *

“도련님, 그간 강녕하셨습니까? 소인 문안 여쭙습니다.”

꽤나 질 좋은 비단 도포 차림인 나리가 도련님이라고 부르는 서방님께서는 도대체 어떤 분이신지 참으로 궁금했다. 청조는 나리가 건네는 안부 인사를 따라 멀리 장작을 패고 있는 사내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아직 엄동설한인 이 날씨에 적삼 하나만 걸친 사내의 엄장한 몸에서 물안개가 일듯 김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사내가 그 엄장한 몸을 돌리자 청조는 머리에 두른 장옷을 더욱 여며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였다.

들고 있던 도끼를 바닥에 그대로 던져 버린 사내는 저벅저벅, 큰 걸음으로 한 번에 다가섰다. 가까이 다가온 사내는 옆에서 읍하고 있는 늙은 사내 따위 신경도 안 쓴다는 듯 바로 청조의 앞으로 다가왔다. 장옷을 머리에 걸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청조의 턱이 갑자기 우악스러운 힘에 의해 올라갔다. 서방으로 모시게 될 사내와 억지로 시선이 마주치자, 청조의 눈이 놀라움에 한껏 커졌다.

익히 들었던 대로, 무명천으로 만든 이상한 검은 복면을 쓴 사내가 자신을 비웃고 있었다. 참으로 괴상망측한 복면이었다. 복면은 사내의 턱선까지 모다 가릴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턱선을 따라가다 입술 부위만 가위로 오려 낸 듯, 그 부분만 얼굴이 드러나 있어, 마치 하회탈의 하관 부분만 떼어 버린 모양새였다.

하지만 투박한 하회탈과는 다르게 얼굴선과 굴곡에 맞추어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었는지, 코 부분은 돌출되어 있었고 광대를 지나 턱까지 내려온 천은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며 얼굴에 밀착되어 있었다. 그러다 보니 사내의 얼굴에 보이는 것이라곤 두 눈과 입술, 그리고 입술 아래로 조금 보이는 턱이 다였다.

그 조금 보이는 눈과 입술만 보고도 청조는 자신을 향한 사내의 비웃음을 역력히 느낄 수 있었다. 사내의 손에 잡힌 턱이 점점 아려오고, 살벌하게 쏘아보는 그의 눈빛이 무서워 청조는 저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았다.

“그래서, 이것이 이번에 형님께서 욕정받이로 보내신 창기인가?”

“말씀을 어찌 그리 하십니까? 욕정받이라니요, 형님께서 들으시면 섭섭하다 하실 것입니다. 요전에 보내 드린 찬모가 도련님 마음에 차지를 않는다 하시니, 이번엔 소인이 직접 손이 여문 아이로 고르고 골라 데려왔습니다. 부디 요긴하게 쓰소서.”

킥, 사내의 입술이 비웃음으로 비틀렸다.

“그래, 한번 요긴하게 써보지. 저번 찬모는 손이 여물지 않아 그런지 맛이 별로던데, 이번에는 기대를 좀 해 보지. 그만 가보게.”

덜덜 떠는 청조의 턱을 꽉 움켜잡고 이리저리 돌려보던 도운은 손을 확 놓아 버리고 왔던 길을 돌아가 장작을 패기 시작했다. 힘이 어찌나 장사인지 아이 몸통만 한 나무통을 한 손으로 번쩍 들어 지지대에 올린 뒤, 도끼질 한 번으로 쩍쩍 갈랐다. 넋이 나가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청조의 귓가에 헛기침 소리가 들렸다.

“뭐하고 서 있나? 도련님 하시던 일 끝마치시면 조갈 나고 시장하실 테니, 미리 준비하지 않고!”

“예? 예, 알겠습니다.”

“나는 이만 가보겠네. 그리고 아까 내가 한 말 명심하게.”

청조에게 작게 이 가는 소리를 내던 나리는 곧바로 도운을 향해 공손히 읍하였다.

“도련님, 소인 이만 물러가옵니다.”

그가 떠나자 청조는 서둘러 반빗간을 향했다. 가지고 온 보퉁이는 옆으로 아무렇게나 미뤄두고 아궁이에 군불부터 때기 시작했다. 점심때는 한참 지났으니 뭔가 요기할 만한 것을 만들려 반빗간 안을 찬찬히 살폈지만 달리 먹을 만한 것이 없었다. 겨우 반빗간 한 귀퉁이에서 감자가 담긴 소쿠리를 발견하고 몇 알을 깨끗이 씻어 가마솥에 찌었다.

감자가 익어 가는 동안 반빗간 이곳저곳을 살펴보았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관리되어 있는 것이 없었다. 하다못해 감자와 함께 곁들일 시원한 동치미조차 찾을 수 없었다. 식재료를 보내 준다 하였는데, 별로 그런 것 같아 보이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가마솥에 푹 찌어 김이 솔솔 일어나는 감자와 시원한 물 한 그릇을 소반에 올렸다.

소반을 들고 반빗간을 나오다 도운과 마주쳤으나 그는 청조를 지나쳐 그냥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서방님이 풍기는 냉랭한 기운에 잠시 어찌할 줄 모르고 서 있던 청조는 용기를 내어 방 앞으로 다가섰다. 어찌 되었든 이제는 저의 지아비이시니 앞으로 자신이 잘하면 되는 일이었다.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아 불편하긴 하지만, 사람 사는 것이 다 거기서 거기지 않은가.

“잠시 들겠습니다.”

용기를 내 문을 열고 들어간 청조는 벗은 웃통에 새 적삼을 걸치고 있는 도운의 모습에 놀라 재빨리 몸을 돌렸다. 사내의 탈의한 상체를 처음 보았기에 놀란 가슴이 덜컹거렸다.

“소, 송구합니다.”

핏. 혀를 차는 듯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음전한 척하기는, 되었다. 그거나 놓고 나가거라.”

그의 냉랭한 말투도 말투였지만 저를 우롱하는 말에 무어라 답을 할 수 없는 청조는 그저 소반을 내려놓고 방을 나섰다. 워낙 성정이 거칠다 하였으니, 말씀을 하실 때도 거침이 없으신 분인가 보다. 스스로 변명을 하고 집안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마당을 두고 두 채로 나누어진 구조의 초가였는데, 아무래도 반빗간과 붙어 있는 방이 자신이 기거할 방인 듯 보였다.

쓰던 흔적이 남아 있는 걸로 봐선 최근까지 누군가가 이 방에 머물렀던 것 같았다. 청조는 이리저리 쓸고 닦으며 방을 정리한 후, 반빗간과 곳간을 살피며 살림할 준비를 했다. 이것저것을 치우고 익히고 하다 보니 벌써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날이 저물기 시작하자 청조는 없는 식재료를 긁어모아 저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저녁식사 준비되었습니다. 잠시 들겠습니다.”

기다려도 안에서 대답이 없자 불안했다. 그냥 열고 들어갔다 아까처럼 망측한 일이 있을까 두려웠다. 청조는 조심스럽게 방문을 열고 안의 기척을 살핀 후 안으로 들었다. 바로 앞까지 다가갔으나 도운은 서책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바닥에 상을 내려놓고 한참을 기다리던 청조가 이윽고 용기를 내 그를 불렀다.

“저, 서방님. 국이 식습니다. 따뜻할 때 한술 뜨시지요.”

탁, 도운은 바람 소리가 일렁일 정도로 강하게 책을 덮어 버렸다. 쓰고 있는 복면 사이로 날카롭게 빛나는 눈동자가 잡아먹을 듯 청조를 노려보았다.

“감히, 너같이 천한 것이 누구더러 서방이라고 하는 것이냐? 찬모로 왔으면 음식이나 하고, 그것이 아니라면 당장 산을 내려가거라.”

“저는 찬모로 온 것이 아닙니다.”

“찬모가 아니라면 욕정받이로 보내진 것이 맞나 보구나. 감히 욕정받이 주제에 그 천하고 더러운 몸뚱이로 누구보고 서방이라 하느냐! 누가 시키더냐?”

“예? 아닙니다. 저는 그저…….”

“얼마를 받았느냐?”

“예?”

“얼마를 받고 이 산골까지 들어왔느냔 말이다!”

갑작스런 호통에 깜짝 놀란 청조의 어깨가 움찔거렸다.

“그것이…… 작은 전답과…….”

“전답이라? 그리고 가택도 받고, 금전도 받고, 온갖 재물까지 받았느냐? 그것들을 줄 테니 이 깊은 산속까지 들어오라 하더냐? 그걸 주며 또 너에게 뭐라 하더냐. 네 방중술로 나를 꾀어 주색에 곯은 사내로 만들라 하더냐!”

“그, 그런 것이…….”

달리 대답할 말이 없었다. 온갖 재물까지는 아니었으나, 초가와 전답을 받았고, 저를 이곳으로 데려오던 나리가 주었던 언질이 생각나서였다. 서방님의 말씀이 다 옳은 건 아니었으나 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허나 왜 저렇게 화가 나 있는지 알 수 없으니, 청조는 무슨 변명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초가를 받은 건 사실이오나, 서방님을 주색에 곯은 사내로 만들라고 주신 것은 아니옵니다.”

“하! 진정 가택까지 받았다? 그 영감이 고르고 골랐다더니, 이번엔 제법 크게 쓴 모양이구나. 재물에 눈이 어두워 몸이나 팔러 온 천한 창기년 주제에 누구더러 감히. 아, 그래, 너같이 이 사내 저 사내와 뒹굴며 몸을 파는 더러운 계집은 모든 사내를 서방이라 부른다지? 지조 없는 것들.”

“부디 말씀을 삼가소서. 저는 창기가 아닙니다. 비록 사정이 여의치 않아 금전을 받은 것은 응당 부끄러운 일이나, 제 마음을 다해 지아비로 모실 것을 결심하고 이곳에 왔습니다. 서방님께서 소첩을 지어미로 여기지 않으신다 해도 제가 몸과 마음을 바쳐 지아비로 공양할 분은 이 하늘 아래 서방님뿐이라, 천지신명 앞에 그리 맹세하고 이곳에 온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곡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청조의 간곡한 읍소에 남자의 낄낄거리는 웃음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웠다. 한잠을 웃던 도운은 어림없다는 듯 청조를 노려보았다.

“재물을 좀 쥐어 주었다더니, 이번 욕정받이는 제법 말을 할 줄 아는 것으로 보냈구나. 그리 말하라 시키더냐?”

“아닙니다.”

“그래, 네가 나를 지아비로 생각하든 말든 나는 상관없다. 허나 나는 너같이 천한 것에게 내 지어미 자리를 내어 줄 생각이 없으니, 다시는 나를 서방이라고 부르는 건방을 떨지 말거라.”

“그리는…… 못하겠습니다.”

“뭐?”

“소첩은 노비로 이곳에 온 것이 아닙니다. 찬모로 온 것도, 단지 서방님의 육욕을 해결해 드리고자 몸을 팔러 온 것도 아닙니다. 저의 신분이 첩일 수밖에 없는 것은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허나 비록 첩이라 하여도 소첩은 서방님께 시집을 왔고, 서방님을 지아비를 뫼시러 온 것이지 주인 나리를 뫼시러 온 것이 아닙니다. 그러니 소첩이 지아비를 호칭할 수 있는 말은 단 하나입니다.”

그의 노여움에 가녀린 어깨를 떨면서도 청조는 또박또박 소신을 말했다. 저는 창기가 아니었다. 씨받이도 아니다. 비록 첩의 자리라 하여도 시집을 온 것이었다. 결코, 재물을 받고 몸을 파는 유곽의 그런 여인들이 아니었다. 억울한 듯 호소하는 청조를 차갑게 바라보던 도운이 갑자기 달디 단 엿가락 늘어지는 것 같은 목소리를 냈다.

“그래, 네가 그리 몸과 마음을 바쳐 나를 공양하겠다니…… 어디 한번 바쳐 보거라.”

그의 의중을 몰라 눈만 끔벅거리는 청조의 앞으로 어느새 그가 바짝 다가왔다.

“어디 바쳐 보라고! 그 몸을!”

“꺄앗!”

와장창 소리가 나더니 곧바로 몸이 뒤로 휙 넘어갔다. 몸이 넘어가며 얼굴을 덮친 치마를 가까스로 내리고 보니, 저의 허벅지를 깔고 앉아 자신을 내려다보는 사내의 살기 어린 눈이 보였다. 정성으로 지은 저녁상이 문지방 앞까지 날아가 바닥에 굴렀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알 길이 없는 청조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일그러지는 웃음을 짓던 도운은 잠시 물러나는가 싶더니 청조의 속곳을 한 번에 벗겨 던져버렸다.

‘허억.’

말할 수 없는 충격과 부끄러움에 청조는 두 손으로 아래의 중심을 가리고 무릎을 세워 오므렸다. 도대체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눈물이 아롱아롱 고이기 시작했다.

“흥, 부끄러운 척하기는. 왜? 그렇게 하면 내가 좋아할 거라 그 늙은이가 귀띔이라도 해 주더냐?”

“아닙니다. 그런 게,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래? 그렇다면 이 산을 내려가겠느냐? 네 입으로 나를 빌어 몸과 마음을 바칠 네 지아비라 하지 않았느냐? 그 지아비와의 첫날밤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 하지 않겠지? 한데 이제 와 몸을 바칠 수 없다면 나를 서방님이라 부를 자격도 없는 것이다. 그러니 당장 산을 내려가거라! 내려가면 너 같은 창기 하나 사줄 부유한 늙은이가 수두룩할 테니.”

“이미 저에게 지아비는 서방님 한 분이십니다.”

울먹거리면서도 끝까지 고집을 놓지 않는 여인을 보자 도운은 부아가 치밀었다.

“지금 산을 내려가지 않으면, 네 분명 후회할 것이다.”

“결코 후회하지 않습니다!”

“내 분명 후회할 것이라, 경고를 주었다. 너는 내가 준 마지막 기회를 놓친 것이다!”

이를 갈며 경고를 한 도운은 거친 손길로 청조의 무릎을 잡아 양쪽으로 쫙 벌렸다. 은밀한 계곡부터 둔부의 골이 시작되는 곳까지 한 번에 쫙 벌어지자 당황한 청조는 입술을 깨물며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꼭 감은 눈에서 맑은 눈물이 떨어져 마른 바닥에 고였다. 어머니께서 당부하셨던 말씀이 귓가에 윙윙거렸다.

집을 떠나기 전날 밤, 자리를 보전하고 누워 계신 어머니께서 억지로 일어나 단단히 당부를 하시었다. 첫날밤은 그저 지아비가 하는 대로 순응하고 참으면 되는 일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참담하고 부끄러운 일이 될 것이라는 말씀은 아니 하셨다.

두 손을 포개어 가까스로 비문을 가리고 있는 청조를 도운은 비웃듯 바라보았다. 곧 가녀린 여인의 두 손목을 한 손으로 끌어 잡고 머리 위로 올려 버렸다. 이제 아무것으로도 가릴 것이 없어지자 벌어진 여인의 내부가 적나라하게 눈에 들어왔다. 그것을 바라보던 도운은 다시 슬금슬금 무릎을 세우려는 청조의 움직임을 느꼈다.

도운은 다시 세워지려는 무릎을 잡아 여인의 비문이 활짝 드러나도록 더욱 크게 벌려댔다. 사내의 힘에 눌린 청조의 양쪽 허벅지가 차가운 바닥에 닿았다. 개구리 같은 추한 자세를 취하고 천장을 향해 누워 있으려니, 한껏 열린 아래로 찬 기운이 느껴져 청조는 저도 모르게 아래를 움찔거렸다.

“흥, 음전한 척하더니 이곳을 이리 뻐끔거리고 있지 않느냐. 괘씸한 것.”

그가 하는 말의 의미도 모른 채, 청조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어머니가 참으면 지나간다 하셨으니 그대로 따르면 될 것이었다. 참담한 심정으로부터 숨을 곳을 찾아, 청조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저 이 순간이 어서 지나가길 빌었다. 그런 여인의 모습을 비웃기라도 하듯 도운은 억지로 여인의 손을 얼굴에서 떼어 버렸다. 얼굴을 가리던 손바닥이 사라지자 청조는 두 눈을 아프도록 꼭 감고 아랫입술을 굳게 물었다.

“그리 순진한 척하는 것도 방중술에 하나더냐?”

차갑게 이죽거리던 도운은 청조의 순결한 처녀지로 이미 단단해진 남근을 밀어 넣었다. ‘으읏’,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던 청조는 아래를 비집는 해괴한 감촉에 몸을 딱딱하게 굳혔다. 제 몸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밀려오는 고통에 피가 굳어 버릴 정도로 온몸에 힘을 주고 뻣뻣하게 버티었다.

저도 모르게 잔뜩 힘이 들어간 옥문이, 힘으로 들어오려는 남근의 침입을 쉬이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버티는 것도 잠시, 곧 고개를 빳빳이 세운 귀두 끝이 단단히 닫힌 여린 여체를 짓이기며 밀고 들어왔다. 뿌드득뿌드득, 좁디좁은 여체를 억지로 비집는 딱딱한 살덩어리가 여린 막을 거침없이 찢으며 안으로 침입하고 있었다.

맨살에 손톱을 박아 넣고 양쪽으로 쭉 찢어대며 벌리는 것 같은 극심한 고통이었다. 참을 수 없는 극통에 입을 악문 청조의 목에서 가느다란 신음이 흘러나왔다. 조금이라도 고통을 덜어보고자 딱딱한 방바닥을 손톱이 빠질 듯 바득바득 긁어 댔지만 소용없었다. 꼭 감은 눈꺼풀 사이로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아아앗!”

결국, 여체의 안쪽 깊숙한 곳까지 그의 남근이 맞물리자 고통에 숨을 멈춘 청조의 입이 턱 벌어졌다. 피가 몰린 얼굴이 새빨갛게 변하고 목에 핏줄이 불거졌다. 곧 벌어진 입으로 숨을 크게 들이쉬는 쇳소리가 터지더니, 이어 밭은 숨소리와 함께 신음이 흘렀다. 아래의 뻑뻑함에 도운이 잠시 움직임을 멈추자 죽을 듯 아팠던 극통이 아주 조금 사라졌다.

하지만 아래에 꽉 들어차도록 느껴지는 이물감과 둔통에 숨도 쉴 수 없을 정도로 괴롭기는 매한가지였다. 제발 어서 끝났으면. 서방님의 움직임이 멈춘 것을 보니 이제 끝이 나는가 보다 생각하였다.

하지만 남녀 간의 방사에 청조는 너무나도 무지하였다. 갑자기 자신의 다리를 잡아 양어깨에 걸쳐 올린 사내가 격렬하게 움직이기 시작하자 청조는 이것이 진정 시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나도 과격하게 허리를 앞뒤로 움직여대는 사내의 세찬 힘에 몸이 밀렸다. 사내의 딱딱한 사타구니가 여인의 가녀린 아랫도리에 자비 없는 매질이라도 가하는 듯 연이어 철썩철썩 소리가 크게 울렸다.

내부를 긁어 대는 커다란 양물이 뱃속을 가득 채울 때마다 배가 펑하고 터져 버릴 것만 같았다. 쇠공이로 절구를 내리찧는 것만 같은 충격이 배 속을 한 번 울려대면, 바로 그다음 공이질이 배 속을 강하게 빻아댔다. 계속된 공이질에 배가 진정 터져 버릴 듯하여 속이 울렁거렸다. 배 속은 터질 듯 아팠고, 아래는 찢어질 듯 아팠다. 사내의 커다란 손이 자신의 허리를 으스러트릴 듯 붙잡고 아래를 쳐댈 때마다, 생살이 찢기는 격통이 끊이지 않고 청조를 덮어왔다.

“아으흑, 아…… 아흑…….”

말 못 할 고통 속에, 청조는 억눌린 신음을 간헐적으로 흘렸지만, 도운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안 그래도 좁은 여체가 젖어 들지 않아 말할 수 없이 뻑뻑하였지만, 계속해서 힘으로 밀어붙였다. 얼마나 지났는지 알 수 없는 시간이 흐르고, 그의 남근이 갑자기 몸에서 쑥 빠져나갔다. 배 속이 갑자기 텅 비어 버리는 느낌이 들 정도로 그의 물건은 청조의 안을 가득, 그리고 오래 채우고 있었다.

오장육부가 뒤틀릴 정도의 충격이 가시자 힘이 빠진 청조는 숨을 헐떡거렸다. 가슴이 들썩거릴 정도로 격한 숨을 내쉬는데 배 위에 따뜻한 무언가가 한가득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허나 눈을 뜨는 것조차 버거운 청조는 그것이 무엇인지 확인할 기운조차 없었다. 볼일이 끝난 도운이 몸을 일으키자 그의 어깨에 걸쳐졌던 종아리가 바닥에 힘없이 철버덕 떨어졌다.

“뭐하고 그리 자빠져 있는 것이냐! 볼일 끝났으니 당장 그 더러운 몸뚱어리 치우거라! 내 눈앞에서 사라지란 말이다. 지금 당장!”

귀를 찢을 것만 같은 그의 호령에 청조는 겨우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아무렇게나 벌어진 다리 사이에서 흐른 피가 바닥에 이리저리 문대져 있었다. 첫날밤, 어머니께서 이부자리 위에 대어 놓아라 당부하셨던 깨끗한 면포 따윈 준비할 새도 없었다.

희디흰 면포에 묻었어야 할 순결이 방바닥에 아무렇게나 휘갈겨져 있었다. 청조는 배꼽 위까지 올라와 있던 치마를 내려 바닥을 대충 닦고는, 한쪽에 밀쳐져 있던 속곳을 주워들고 절뚝거리며 방을 나섰다.

“소첩,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평안한 밤…… 보내시어요…… 서방님.”

파르르 떨리는 손끝만큼 목소리도 떨리고 갈라졌다. 도운은 그럼에도 끝까지 서방님이라는 단어를 버리지 않는 여인의 고집이 괘씸했다. 고개도 들지 못하고 자리를 뜨던 청조는 도운이 전신에서 내뿜는 냉기에 피부가 시릴 정도로 추웠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쩔뚝거리며 겨우 자신의 처소로 돌아온 청조는 이부자리조차 펴지 못한 채 그대로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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