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청조(淸朝) - 맑은 아침
“하윽…… 하아…… 하아…….”
말려 올라간 흰 속치마가 짤록한 허리 어디쯤에서 아무렇게나 구겨져 있었다. 엎드린 채 힘겹게 숨을 색색 내쉬는 여인의 동그란 둔부가 격하기만 했던 정사에 파르르 떨렸다. 둔부를 우악스럽게 쥐고 벌려대던 사내의 손아귀 힘을 따라 뽀얀 살덩이에는 검푸른 울혈이 잡혀 있었고, 여린 허벅지 사이는 끈적끈적하고 축축한 체액으로 치덕치덕한 것이 매우 난잡하고 문란하게 번들거렸다.
엎드린 채 색색 대던 청조의 몸은 곧 사내에 의해 옆으로 돌려 세워졌다. 몸을 모로 세우자마자 사내는 힘이 쭉 빠진 청조의 곧은 다리 한 짝을 위로 번쩍 들어 올렸다. 위로 들려진 허벅지를 아프도록 꽉 잡은 사내는 여인의 남은 허벅지를 깔고 올라앉아 여인의 안으로 다급히 제 물건을 밀어 넣었다. 불에 달궈진 커다란 쇠 방망이가 내벽을 쓸어대며 쑥하고 밀려드는 느낌에 청조는 저도 모르게 몸을 굳히며 작은 신음을 흘렸다.
미약한 신음이 끝나기도 전 퍽, 퍽, 거센 사내가 들락거리는 움직임에 맞추어 위로 들린 종아리가 공중에서 힘없이 흔들거렸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강한 힘이 아래를 쉴 틈 없이 쳐댈 때마다 여인의 작은 몸이 위로 밀려나며 들썩거렸다. 하지만 사내가 힘껏 잡고 있는 허벅지 때문에 청조의 몸은 계속 제자리에 머무르며 한껏 성이 난 사내의 양물을 받아내야만 했다.
격한 정사 속에, 사내에게 잡힌 허벅지가 점점 더 위로 밀렸다. 이제는 허벅지가 옆구리에 닿을 듯 말 듯 할 정도로 치골이 한계까지 접혀 있었다. 너무나 격한 체위와 쉴 틈 없이 밀려들며 배 속을 채우는 거대한 부피감에, 청조는 숨 한번 고르는 것이 힘들어 숨을 껄떡거렸다. 껄떡거리는 숨소리 사이사이 고통을 이기지 못한 신음소리가 가느다랗게 흘렀다.
힘들었다. 정말 너무 힘이 들었다. 새벽녘에 제 방 문고리를 당기고 갑자기 밀어닥친 사내의 양물을 받아들인 지가 까마득하게 오래였지만, 사내는 아직 만족을 몰랐다. 지금도 제 허벅지를 깔고 앉아 허리를 앞뒤로 격렬하게 흔드는 거대한 사내의 움직임이 너무 버거웠다. 그의 움직임에 쓸린 허벅지 안쪽 여린 살들이 벌겋게 성이나 얼얼하니 따끔거렸다.
더 이상은 견디기 힘든 듯, 아랫입술을 아프도록 깨문 청조는 겨우 실눈을 뜨고 사내를 올려다봤다. 그를 올려다보는 눈물 어린 시야 사이로 제 발에 걸려 있는 낡은 버선의 애처로운 흔들림이 보였다. 점점 더 거세게 쑤셔오는 그의 몸짓에 아랫도리가 불에 덴 듯 뜨겁게 달아올랐다. ‘아으으으읏’ 헐떡대는 거친 숨소리 사이로 참지 못한 긴 신음소리가 간간이 흘러나왔다.
불에 달군 쇠몽둥이에 굵은 소금들을 다닥다닥 붙여 놓은 듯했다. 그 뜨겁고 거친 표면이 여린 안쪽 살과 정신없이 들락거리는 비문, 그리고 보드라운 가랑이 사이 할 것 없이 박박 긁어 대며 상처를 내는 듯했다. 뜨겁게 구워진 굵은 소금이 잔뜩 긁어놓은 상처에 또다시 짠 소금을 대고 비비는 듯,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밀려와 청조는 애먼 이부자리를 꽉 부여잡고 버티고 또 버텼다.
“제길.”
땀에 미끄러져 놓친 여인의 다리가 바닥으로 고꾸라지자 사내가 혀를 차더니 곧 가냘픈 허벅지를 으스러트릴 듯 강하게 움켜쥐고 다시 번쩍 들어 올렸다. 치골을 한 번에 접어 올려 허벅지가 옆구리에 딱 붙을 정도로 밀어붙인 사내가 허리를 사납게 튕기다가 갑자기 움직임을 뚝 멈추었다. 이윽고 허리를 천천히 밀착시키며 미처 다 들어가지 못한 남근을 청조의 몸 안에 남김없이 욱여넣었다.
한껏 벌어진 여인의 가랑이 사이로, 복사꽃잎 같은 연한 속살이 찢어질 듯 팽팽하게 벌어지며 자신의 양물을 뿌리까지 야금야금 삼키고 있었다. 그 모습에 사내는 희열을 느끼는 듯했다. 사내는 끝까지 삼켜진 자신의 양물을 아주, 아주 천천히 길게 빼었다가 퍽, 한 번에 힘껏 박아 올렸다.
“윽, 윽, 윽!”
뿌리까지 완전히 박힌 물건을 다시 천천히 길게 뺀 후 또다시 한번에 퍽. 여인의 속살과 교합되는 적나라한 모습을 지켜보는 순간이 즐거운 것인지 사내는 몇 번이고 그 행위를 계속했다. 그렇게 허리를 쳐댈 때마다, 청조는 배에서부터 들끓어 올라오는 짧은 신음을 ‘윽’ 하고 한 번씩 내지를 뿐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허리를 격렬하게 떨어대는 사내의 움직임에 고통을 악무는 여인의 신음소리가 쉬지 않고 울렸다. 여인의 아랫도리를 사정없이 쑤석대던 사내의 움직임이 어느덧 멈추더니 뱃속을 가득 채웠던 두껍고 기름한 물건이 쑥 빠져나갔다.
이제야, 이제야 끝이구나. 하아 하아, 숨을 몰아쉬며 안심하던 그때, 옆으로 누워 있던 몸이 휙 돌려지더니 청조는 어느새 천장을 보고 똑바로 누워 있었다. 곧바로 두 다리가 사내에 의해 활짝 벌어졌다. 벌어진 다리 사이로 차가운 기운이 음부에 느껴지는 순간, 청조는 아직도 사내의 욕정이 끝나지 않은 것을 느꼈다.
“제발…… 제발 그만하시어요…… 너무 아, 아픕니다.”
청조는 자신도 본 적 없는 제 은밀한 비부를 사내의 앞에서 활짝 펼치고 있었지만, 그런 수치스런 자세에 부끄러움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제발 그만해 달라고 팔꿈치로 바닥을 기며 그를 피해 몸을 움직였다. 하지만 여인의 눈물 어린 사정에도 아랑곳없이 사내는 도망치려는 여인의 사타구니를 힘껏 잡아 벌리고는 그 중심에 자리를 잡고 무릎을 꿇고 앉았다.
이어 여인의 골반을 강하게 움켜쥔 사내는 여인의 몸을 앞으로 훅 잡아끌었다. 삽시간에 위로 들려 올라간 여인의 엉덩이가 이내 단단한 사내의 허벅지 위에 내려앉았다. 자신의 비문에 양물을 잡아 맞추는 사내의 움직임을 느낀 청조는 어떻게든 그와의 결합을 막아 보려, 사내의 허벅지 위에 내려앉은 자신의 엉덩이를 이리저리 뒤척거렸다.
“제발, 이제 그만…… 아앗!”
갑자기 꿇고 있던 무릎을 바짝 세우는 사내의 움직임에, 청조의 가슴 부분부터 시작하여 하체가 모다 위로 들려 올라갔다. 갑자기 취하게 된 힘겨운 자세와 놀란 마음에 여인의 입에서 새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사내는 여인의 양다리를 제 팔에 걸쳐 야무지게 고정하고 손으로는 여인의 둔부를 거세게 움켜쥐었다. 그런 후, 꿇고 앉은 무릎으로 자신의 몸을 단단히 지지하고 쐐기를 박아 넣듯 단번에 청조를 꿰뚫어 버렸다.
한 번에 꿰뚫어지는 고통에 공중에 들린 청조의 동그란 둔부가 부르르 떨리며 힘이 들어갔다. 어쩔 줄 모를 정도의 고통에 발가락들이 사정없이 안으로 굽었다. 가슴께까지 흘러내려 온 뒤집힌 속치마가 아무렇게나 구겨져 얼굴에 닿을 듯 점점 더 흘러내리고 있었다.
“하아…….”
한껏 위로 들려진 몸을 버티느라 청조는 자신도 모르게 엉덩이에 힘을 바짝 주었다. 자연스럽게 사내의 분신을 강하게 조이자, 처음으로 사내의 입에서 만족스런 신음이 흘러나왔다. 여인이 주는 자극에 기분이 좋은 듯 고개를 한껏 뒤로 젖힌 사내의 울대뼈가 위아래로 꿀떡거렸다. ‘하아아아아’, 다시 만족스러운 한숨을 길게 내쉰 사내는 이윽고 허리를 유연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미 몇 번의 정사로 부드러워진 여인의 안은 처음보다 뻑뻑함이 덜 했다. 고통만 느끼는 행위 속에서도 여인의 본능은 기특하게도 진득한 애액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끈적끈적한 기름처럼, 애액은 여인의 속살로 이어진 길을 매끄럽게 닦아놓아 양물의 침입을 도왔다. 사내는 부드럽게 움직이며 여인의 뜨겁고 야들야들한 내부를 맘껏 느꼈다.
제 분신을 끊어 먹을 듯 꽉 조이는 여인의 내부에 자신의 몸을 깊숙이 묻고 상하로 비벼댔다. 곧 방향을 바꾸어 좌우로 거칠게 비벼대던 것을 이제는 원형으로 둥글게 비벼댔다. 끈적거리는 애액으로 범벅된 여인의 눅눅하고 음습한 음부에 척 들러붙은 고환이 이리저리로 뭉개지자 더 깊은 자극과 쾌감이 발끝부터 올라와 정수리를 강타했다.
“아, 아, 아흣!”
청조는 반쯤 공중에 들린 몸 때문에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다.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결국 눈물이 한줄기 흘렀다. 제발, 이제 제발 그만해 주었으면 하는 마음에 청조는 요의 홑청을 잡고 버티던 손을 뻗어 저와 연결된 그의 분신 끝을 밀어보았다. 씨물로 흠뻑 젖은 그의 축축하고 끈적끈적한 거웃에 애처로운 손끝이 닿았다. 하지만 겨우 툭툭 밀어보는 것이 다였다. 반항 한번 제대로 할 수 없는 작은 움직임은 손끝에 끈적이는 방울만 묻히고는 곧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결국, 다시 이불을 부여잡고 버티던 청조의 몸에서 곧 힘이 빠져나갔다. 꺾인 몸을 지탱하느라 겨우 힘을 주고 있던 몸에서 힘이 모다 빠져 나가자 더불어 그의 물건을 강하게 물고 있던 아랫도리까지 느슨해졌다. 제 물건을 물고 있던 힘이 느슨해지자 사내는 손을 한껏 들어 여인의 여린 둔부를 거세게 쳐올렸다.
“아앗! 아아. 흐윽…….”
둔부에 손자국이 벌겋게 남을 정도로 강한 손찌검에 청조는 반사적으로 온몸에 힘을 꽉 주었다. 이제야 저의 물건을 꽉 죄어오는 청조가 마음에 드는지 사내는 남근을 귀두 끝까지 뺐다 뿌리까지 단번에 치고 들어가며 거센 추삽질을 시작했다. 활짝 벌어진 아랫도리에 사내의 아랫도리가 부딪힐 때마다 살 부대끼는 요란한 소리가 철벅 철벅 울렸다.
시뻘겋게 달군 쇠몽둥이 같은 그의 것이 강한 힘으로 계속 쑤셔오자 얼얼하던 아래가 다시 화끈하게 달아올랐다. 청조는 오장육부가 목구멍으로 넘어올 것만 같아 토악질이 나왔다. 이미 격한 정사로 여인의 복사꽃 같던 비문은 어느새 동백꽃마냥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제발, 이제 그만…… 제발…… 그만하시어요.”
여인의 입에서 억눌린 울음소리가 흘려 나왔지만 사내는 상관하지 않고 더욱 힘차게 허리를 치켜 올렸다. 위로 들려진 몸을 지탱하고 있는 어깨와 뒷목이 당겨오고, 그가 터질 듯 쥐어 잡고 있는 둔부가 아려와 청조는 눈물이 날 듯하였다.
“제발…… 서방님, 서방님 이제 그만…… 아앗!”
네까짓 게 감히 누구에게 서방님이라는 것이냐! 서방님 소리에 청조의 서방, 도운은 다시 한번 작고 보드라운 둔부를 강하게 후려쳐 올렸다. 한 번, 두 번, 세 번을 쳐대고서야 그의 커다란 손이 멈추었다. 그의 손찌검이 한 번씩 둔부를 강타할 때마다 ‘악’ 하고 단말마를 내지른 청조는 입술을 악다물며 고통을 견뎠지만, 어찌할 새도 없이 곧 눈물이 흘렀다.
불이 붙은 듯 뜨겁고 얼얼한 고통이 둔부를 가격하자 공중에 들린 발가락 하나하나에 힘이 들어가며 그 끝이 저절로 굽었다. 하체에 힘을 주며 고통을 참는 여인의 아래가 수없이 뻐끔거리며 도운의 분신을 조였다 풀고 다시 조였다. 자신의 팽팽한 양물을 힘껏 비틀어 잡고는 주물거리는 것 같은 자극에 하초로 열이 몰리자, 도운은 허릿짓에 더욱 속도를 울렸다.
퍽, 퍽, 살 맞부딪히는 소리와 체액이 끈적끈적하게 찌걱거리는 음란한 소리가 한데 섞여 방안을 가득 메웠다. 점점 올라가는 속도에 맞추어 도운의 입에서도 드디어 헉헉거리는 쾌감 섞인 숨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드디어 절정에 다다른 듯 그가 큰 숨과 함께 마지막으로 크게 허리를 치켜 올리고는 움직임을 멈추었다.
하아아…… 쾌감에 몸을 떨며 마른 혀를 축이던 그가 절정을 느끼고는 빠르게 분신을 빼내었다. 동시에 잡고 있던 여인의 골반을 그대로 놓아 버리자, 공중에 들렸던 청조의 몸이 이부자리 위로 털썩 떨어졌다. 바닥에 힘없이 널브러진 청조를 향해 도운은 몸을 떨며 사정했다. 거친 숨으로 들썩거리는 여인의 하얀 배 위로 쥐어짠 씨물들이 점점이 떨어지다 이내 뿌연 액으로 점철되었다.
색과 농도가 진하고 그 냄새마저 강하게 풍기던 처음과 두 번째 진액과는 달리 이번에는 희끄무레한 액만 가득 나왔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의복과 얼굴의 복면을 벗지 않은 그는 마른 영견으로 제 성기에 묻은 방사의 흔적을 닦아낸 채 속고의를 끌어 올렸다. 그리고 이제껏 헉헉대며 달라붙어 있던 여인 따위, 건들기도 싫다는 듯 차갑게 몸을 돌려 버렸다.
축 늘어져 숨을 몰아쉬던 청조는 방울방울 어리는 눈물을 가득 달고 문을 열고 나가는 서방님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이윽고 도운이 방을 나서며 닫아 버린 문이 쿵, 하고 차갑게 울렸다. 그 미련 없이 울리는 소리에 마음이 싸하게 물들었다. 시큼한 방사의 냄새가 가득한 방 가운데, 청조는 그가 방사의 흔적을 닦고 던져 버린 저 영견보다도 훨씬 더럽게 구겨진 모습으로 버려져 있었다.
서방님이 몇 번이고 뿌려댄 씨물을 잔뜩 뒤집어쓴 자신의 몸에서 오뉴월 강한 햇빛에, 시큼하게 쉬어 버린 탁주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가랑이 사이에 치덕치덕 덮여 있던 체액이 말라붙으면서 살을 팽팽하게 잡아당기기 시작하자, 청조는 지친 몸을 일으켜 세웠다. 대충 아랫도리를 정리하고 체액으로 범벅된 속치마와 속적삼을 벗어 버렸다.
지친 몸을 끌고 방바닥을 기어 겨우 머릿장에서 깨끗한 속곳을 꺼내었다. 깨끗한 속곳을 꺼내 입은 청조는 그 위에 치마를 두른 후 치마말기 끈을 대충 여미고 속적삼도 없이 바로 무명저고리를 찾아 입었다. 옷을 입는 데도 어찌나 힘이 드는지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맺혔다.
마지막으로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쓸어 대충 땋아 말은 후 투박한 목 비녀를 찔러 넣는데 손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차림새를 얼추 갈무리한 후 몸을 일으키려던 청조는 아래에 밀려오는 고통에 치마를 움켜쥐고 힘없이 주저앉았다. 쇠몽둥이 같던 단단한 남근이 셀 수 없이 들락거리던 아래가 퉁퉁 부은 것이 느껴질 정도로 이물감이 심하게 느껴졌다.
아래의 여린 살들이 모다 헐어 버린 것인지 너무 씀벅거리고 홧홧하여 한 걸음 옮기는 것조차 무척 고되었다. 겨우 정신을 차린 청조는 바들거리는 손으로 바삐 요의 홑청을 뜯기 시작했다. 계곡에서 치른 수치스럽던 방사 이후, 네 번째 뜯어내는 홑청이었다. 청조는 또다시 고이려는 눈물을 얼른 닦아낸 후, 새 홑청을 꺼내 들었다.
오전에 세답하여 햇빛 아래 잘 널어놓으면 요즘 같은 푹한 날에는 금세 마를 것이다. 뜯어낸 홑청과 옷가지들을 들고 밖으로 나왔을 때, 밖은 이미 몰려온 여명에 사위가 밝아 있었다. 청조는 얼른 세숫대야에 물을 담아 서방님 들어 계시는 처소 앞에 대령하고 그 옆에 깨끗한 영견도 준비해 놓았다. 이어 소세물 떠 놨다 조용히 고하고는 반빗간으로 향했다.
청조는 반빗간에 들어서자마자 아궁이 속 마른 장작에 불씨부터 옮겼다. 엊저녁 불려놓은 보리 섞인 쌀을 가마솥에 넣고 물독에서 물을 떠 부었다. 물 양을 찬찬히 살피다 요정도면 되겠구나 하는 지점에서 기울였던 바가지를 거둬들였다. 타닥타닥, 아궁이의 장작을 요리조리 쑤석거리자 금세 불길이 솟아오르며 장작 타는 소리가 반빗간을 채웠다.
산세가 높은 덕인지 텃밭에서 캐온 무가 여름 무치고는 꽤나 튼실하기에 나박나박하게 썰어, 듬성듬성 썬 무청과 함께 끓는 물에 넣고는 된장을 휘휘 풀었다. 국이 끓는 동안, 어젯밤 끓는 물에 불려놓은 바짝 말린 고사리를 확인하였다. 물을 잔뜩 먹어 보들보들하고 실하게 불은 고사리에 참기름과 소금으로 간하여 조물조물 무치고는 소반에 올렸다.
이미 동튼 지가 일식경(一食頃: 30분)은 훌쩍 넘었으니 바삐 움직여야만 하는데도 청조는 시시때때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오늘따라 더욱 사나웠던 서방님과의 교접이 몸을 너무 고되게 했다. 하지만 아무리 몸이 고되다 한들 어쩔 수 없었다. 저는 어차피 욕정받이 신부로 낙점되어 큰 대가를 받고 자신의 발로 이곳에 들어오지 않았던가. 후회해도 소용없고, 후회해서도 안 될 일이었다.
청조는 투명하게 맺히려는 눈물을 얼른 닦아내고는 코를 훅 들이켰다. 다시 손을 바지런히 움직여 소반을 채워 나갔다. 무쇠 솥뚜껑을 열어 김이 펄펄 올라오는 고슬고슬한 밥을 나무 주걱으로 휘뚜루 뒤집어 한 김 식힌 후, 한 움큼씩 뚝뚝 떠서 사기그릇에 고봉으로 담아 놓았다. 그 후 된장 무국과 며칠 전 새로 담근 딤채를 큼직하게 잘라 그릇에 올렸다.
무침 두어 가지를 소담히 담고 마지막으로 수저를 올리는데 찬이 너무 변변치 않은 듯하여 근심이 어렸다. 요즘 서방님께서 사냥은 아니 나가시고, 칩거하시는 날이 길어져 밥상에 기름진 찬 올린 지가 벌써 여러 날 전이었다. 조만간 지게꾼이 오거든, 염치없지만 돼지고기 한 점이라도 끊어 달라 부탁을 해 봐야 할 것 같았다.
기름기 하나 없는 이런 부실한 찬으로 서방님께서 그 큰 덩치를 어찌 운신하실 것이며, 학문에 정진할 기운은 어디서 얻으실지. 입맛 까다로우신 서방님께서 쉬이 저분질 한번 할 기름진 찬이 없어 걱정스러웠다. 청조는 동그란 이마에 맺혀 있다 흐르는 땀방울을 행주치마로 닦고는 소반을 들고 일어섰다.
반빗간을 나서 서방님께서 기거하시는 방문 앞까지 고작 몇 걸음이었다. 하지만 그 걸음을 떼기가 힘들 정도로 삭신이 쑤시고 아팠다. 이마에서 다시 구슬땀이 또르르 굴러 내렸다.
“서방님, 조반 드시어요.”
겨우 문지방 앞에 소반을 내려놓은 청조는 조신하게 고하고 반빗간으로 돌아갔다. 아궁이에 다 타 버린 장작을 뒤적거려 불씨가 조금 더 살아 있도록 조치를 취하고, 가마솥에 눌은밥이 잘 끓고 있나 확인했다. 끓는 물에 훌훌 올라오는 눌은 밥알들을 건져 그릇에 담고, 남은 찬들을 긁어모아 아궁이 앞에 걸터앉아 퍼먹기 시작했다. 몹시 시장하고 허기가 졌다.
청조는 금세 바닥에 붙은 밥알 한 툴까지 깨끗이 먹어 치우곤 바삐 일어섰다. 가마솥에서 숭늉을 퍼 그릇에 담아 시탁에 올리고는 다시 서방님이 기거하는 방문 앞으로 나섰다. 서방님 조반 다 드시면 해갈할 숭늉을 시탁째 문지방 앞에 놔두고는, 일식경 전쯤 뜯어 놓았던 홑청과 의복들을 챙기어 서둘러 세답을 하러 나섰다.
초가에서 제법 멀리 떨어진 계곡까지 바지런히 걸어가 세답을 한 후, 청조는 시원한 계곡물에 몸을 담갔다. 차가운 물이 잔뜩 성이 난 허벅지 안쪽부터 몸 깊은 곳까지 닿자 쓰라렸다. 그래도 조금 시간이 지나자 불에 덴 듯 열이 나던 것들은 어느 정도 가라앉았다. 청조는 물속에서 반반한 판석을 찾아 그 위에 걸터앉아 노곤한 몸을 풀었다.
이 깊은 산골, 어차피 보는 눈이 아무도 없으니 이 작은 계곡이 모두 저의 차지였다. 마치 호사스럽기 그지없는 목간통을 차지한 느낌에 잠시 기분이 고조되었다. 하지만 이렇듯 사치를 부릴 시간이 없었다. 청조는 서둘러 계곡물에 몸을 씻고 초가로 향했다. 할 일이 많았다. 나흘 전 폭우에 허물어져 제구실을 못 하는 텃밭 울타리를 오늘은 꼭 손봐야 했다.
밤사이 산짐승들이 헤집어 놓은 채소가 아까워 속이 콱 막혔다. 울타리를 생각하자 발걸음이 저절로 빨라졌다. 바삐 걷기 시작하자 차가운 계곡물에 겨우 가라앉았던 아랫도리가 다시 쑤셔왔다. 청조는 잠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며 발걸음을 멈췄다.
“어머나.”
잠시 멈추어 선 그곳에서, 청조는 개망초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동안 이 길을 수십 번은 오간 것 같은데 개망초가 이리도 드넓게 피어 있는 줄 몰랐다. 잠시 눈만 돌려도 발견할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그동안 지나치기만 한 시간이 아까웠다.
순결하기 그지없는 작은 흰 꽃잎 속에 병아리 솜털마냥 노랗고 동그란 꽃술이 올망졸망한 것이 보기가 참 어여뻤다. 더운 바람에 이리저리 한들거리는 꽃밭을 넋 놓고 보던 청조의 뺨에 수줍은 듯 보조개가 피어올랐다.
“금불초…….”
어디서 씨알이라도 날아든 것인지, 개망초 사이로 금불초가 불쑥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다. 생김새가 개망초와 언뜻 닮았지만 꽃술뿐 아니라 꽃잎까지 불타는 듯이 황금빛을 이루는 들꽃이었다. 워낙 생명력이 강하여 주위의 밭까지 망쳐 놓는 망조 든 꽃이라 하는 개망초 사이에서도, 이렇듯 기특하게 살아 있는 금불초가 신기하여 손끝으로 그 노란 얼굴을 톡톡 건드려 보았다.
‘청조야, 이 애비가 보기에는 이 꽃이 참으로 너를 닮았구나.’
아버님. 흔들거리는 금불초를 보고 있자 아버지가 떠올랐다.
‘이 꽃은 온화한 모습이 부처의 미소를 닮아 금불초라 한다. 비록 여기저기 널린 들꽃이라 귀한 대접은 못 받지만, 그 마음이 어여쁜 꽃이 아니냐. 미물조차 되지 못하는 한낱 들꽃에 불과한 것이 부처님의 온화한 성정과 그 도의 깊이를 닮으려 이렇듯 온몸으로 노력하니, 금수만도 못한 인간보다도, 그 어떤 화려한 꽃보다도 훨씬 귀하다. 청조야, 이 애비가 보기에는 이 꽃이 참으로 너를 닮았구나.’
돌아가신 아버지가 마당 한구석에 피어난 금불초를 보며 종종 해 주셨던 말씀이 기억나 가슴이 찌르르 울렸다. 아버지 생각이 떠오르자 식솔들의 얼굴까지 덩달아 떠오르기 시작했다. 모다 평안히 잘 계신지. 이곳으로 시집온 지가 벌써 반년도 더 지났으니, 뵌 지가 오래된 어머니의 안부가 참으로 궁금했다. 이제나저제나 못난 여식 걱정에 잠 못 이루실 터인데. 어머니를 생각하니 명치끝이 걸렸다.
어머니는 여식이 이렇듯 욕정받이 취급을 받으며 사는지 꿈에도 모르고 계실 터, 이 사실을 알면 찢어지는 그 가슴을 어찌 견디실까. 또한, 이미 저세상 가신 아버지는 이 못난 여식이 가엾어 눈이나 제대로 감으실지. 실로 큰 불효가 아닐 수 없었다. 평생을 호방하면서도 정결하게 살아오신 분이신데. 그런 아버지께 이렇듯 부끄러운 딸이라니.
이런 딸이 저승서 아버지를 만나도 어찌 고개를 들 수가 있을까.
한때 내의원 의관으로 지내다 낙향한 청조의 아버지인 서 의원은 화성에서 제법 이름난 의원이었다. 의술에 정진하느라 혼기를 놓쳤으나, 청조의 어머니를 만나고 나서 제대로 된 가정을 꾸릴 수 있었다. 몸이 약한 내자가 회임을 하자마자 그는 곧바로 화성으로 낙향하여 작은 약방을 지었다.
대대로 의관이었던 선대로부터 그 자질을 이어받은 서 의원은 의원으로서 꽤 실력이 좋았다. 특히 침술이 뛰어나 약방은 날이 갈수록 번창했다. 그는 종종 ‘네가 태어난 후부터 약방이 북적거리는구나.’ 하며 청조를 복덩이라 부르곤 했다. 하지만 자신이 복덩이인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아버지의 의술 실력과 조상의 덕이라는 것을 청조는 잘 알고 있었다.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비법으로 조제한 특제 고약이 종기에 매우 효과적이라 먼 곳부터 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이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중인의 신분으로 남들보다 꽤 유복하게 지냈었다.
비록 권문세가의 지체 높은 양반들처럼 호령하는 삶을 산 것은 아니었지만, 춘궁기에 호구 걱정 한번 한 적이 없을 정도로 곳간은 넉넉했다. 넉넉한 곳간만큼이나 서 의원의 인심은 후덕하였다. 춘궁기에는 곳간을 풀어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에게 피죽을 만들어 나누어 줄 정도로 덕이 있는 사람이었다.
또한, 호방한 성품의 의원으로 병자의 행색을 가리지 않고 성의를 다하여 돌보는 의원이었다. 금전이 없어 약방 문턱을 넘지 못하는 병자에게도 그 문턱을 낮추어 정성을 다하였다. 주위에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약초나 민간요법으로 병을 낫게 하니, 서 의원에 대한 가난한 이들의 신망과 존경은 두터웠다.
서 의원이 명을 달리하기 전까지, 청조 역시 병사를 돌며 가난한 이들의 병구완에 손을 보탰었다. 나이와 체구는 적고 작았으나 손이 야무지다며 병자들이 칭찬하는 소릴 종종 들었었다. 병자를 대하는 어린 청조를 보고, 서 의원은 너의 그 미소가 참으로 금불초를 닮았구나 하며 웃곤 했었다.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 길이 없었지만, 청조는 그저 아버지의 말씀이 좋아 늘 작은 보조개를 보이며 배시시 웃었었다. 하지만 그 웃음은 서 의원의 죽음과 함께 끝이 났다. 청조가 막 십육 세가 되던 해 여름, 서 의원은 강에 빠지어 한 구의 익사체로 돌아왔다.
청조가 태어날 즈음부터 가까이 지내던 서 의원의 절친한 친우가 그를 들쳐 업고 대문을 지났을 때, 이미 그에게서는 맥이 느껴지지 않았다. 평소의 밝은 모습 대신 울긋불긋 검붉게 변하신 아버지의 얼굴이 참으로 낯설어 청조는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곧이어 집안에 곡소리가 높이 울려 퍼지고, 아직 어린 아우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눈만 껌벅거렸다.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자마자 낯선 장정들이 차용증을 들이대며 집안에 들이칠 때까지, 집안의 누구도 서 의원이 채무에 시달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렇게 잠시 정신을 놓은 사이 순식간에 집과 전답이며, 집안에 내려오는 비법서까지 빼앗겼다.
한순간에 길거리로 쫓겨난 청조는 식솔을 이끌고 옛 나루터 근처에 쓰러져 가는 삼간초가로 들어가 겨우 밤이슬을 모면했다. 예전에 뱃사공들이 이용했었다는 초가는 겨우 손바닥만 한 방 한 칸과 오래되어 굴뚝이 막힌 아궁이가 있는 반빗간이 전부였다. 곳곳에 걸린 거미줄이며 먼지를 털어 버리고 겨우 세간을 정리하고 나서야 청조는 아버지의 오랜 친우를 찾아가 볼 생각을 했다.
허나 도움을 얻고자 친우를 찾아갔을 때, 그 집은 이미 텅 비어 있었다. 생업으로 등촉을 생산하던 사람이었다. 그 솜씨가 좋아 용초(용을 양각한 궁중의 실내용 초)까지 궁에 납품한다고 들었다. 하지만 그자 역시 고리대금업자에게 채무를 지고 야반도주를 하였다는 말을, 청조는 후에 어디선가 전해 들었다.
허탈하였지만 그분이나마 남은 식솔과 함께 고생하지 않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었다. 그즈음, 평소 건강이 좋지 않았던 그 댁 아주머니께서 많이 편찮으셔서 더 걱정이었다.
그 이후로 삼 년, 청조는 네 식구 호구를 위해 손발이 퉁퉁 붓도록 일을 했다. 다행히 그간의 덕이 있어, 알음알음 사람들에게 일감을 얻을 수 있었다.
낮에는 남의 전답에 나가 농사일을 거들고, 밤에는 부지런히 삯바느질을 했다. 아버지의 임종 후, 마음의 병을 얻으신 어머니께서 날이 갈수록 쇠약해지시니 걱정이 앞섰다. 그나마 세 살 터울인 바로 아래 동생이 부쩍 자라 많은 도움을 주었지만, 연일 이어진 가뭄으로 기근에 시달렸고 새해가 들었어도 앞날이 밝지 못하였다.
흉년으로 인해 벌써부터 곳간이 텅텅 비었으니, 초근목피로라도 연명하고자 백성들이 벌써부터 산과 들을 헤치며 다녔다. 흉년에는 조반은 굶고 점심은 건너고 저녁에는 그냥 자야 한다더니, 하루 종일 피죽 한 그릇을 구하는 것이 힘들었다. 이대로 춘궁기를 어찌 버텨야 할지 청조는 눈앞이 깜깜했다. 종일을 굶다가 저녁 무렵 겨우 구한 시래기에 보리 한 줌과 물 한 바가지를 붓고 피죽을 끓이던 차였다. 청조는 밖에서 자신을 찾는 이의 목소리에 반빗간 밖으로 나섰다.
“게 안에 있소?”
“네, 뉘십니까?”
반지르르 윤이 나는 옥색 비단 도포에 도색 세조대를 허리에 둘러맨 중년 사내가 활짝 편 합죽선으로 하관을 가리고 마당에 서 있었다. 값비싸 보이는 차림새와 고급 합죽선을 든 손의 주름을 보아하니 제법 나이가 지긋한 지체 높은 양반 같았다. 그런 사람이 이곳엔 무슨 일인지 청조는 다시 한번 정중하게 물었다.
연이은 물음에도 대답 없는 사내는 갖춰 쓴 흑립과 하관을 가린 검은 합죽선 사이로 눈을 날카롭게 빛내며 청조의 위아래를 찬찬히 훑기만 하였다.
얼굴빛이 살짝 어둡고 눈 밑에 그늘이 조금 졌으나, 그야 노동과 굶주림이 힘들어 그런 것일 테고. 단정해 보이는 눈빛에 굴곡 없는 이마는 동그랗고 반듯하여 현명해 보이는 것이 복스럽기까지 하고. 동백 꽃잎을 물고 있는 듯 붉고 야무져 보이는 작은 입은 말이 많아 보이지 않으니 음전해 보이는구먼. 허나, 음전한 듯 도톰한 입술은 뭇 사내들이 물고 싶어 달려들 만큼 탐스럽구나. 오호라, 물건이구나.
매서운 날씨에 붉게 터진 볼이 조금 까칠하긴 하다만, 백옥 같은 피부에 진하고 길게 굽어진 눈썹, 거기에 크고 옆으로 길게 찢어진 눈이 전형적인 미인상이군. 곡기를 제대로 잇지 못해 전체적으로 왜소하고 깡마른 몸이지만, 거친 무명저고리 아래 감출 수 없는 저 둔덕을 보자면. 호오, 젖가슴이 제법 실해 보이는 것이, 웬만한 남정네의 손에 넘치겠구먼. 주무를 맛이 나겠어.
행주치마를 질끈 동여맨 허리의 모양새는 돌절구마냥 잘록한 것이 사내의 한 팔로도 휘감을 수 있을 정도로 낭창낭창하고, 골반은 풍만하여 꽤나 색기를 흘리면서도 농염한 몸을 하고 있으니, 어느 사내가 마다할까. 게다가 저 목소리, 옥구슬 구르는 듯 맑고 청아하니 교성 소리 한번 숨넘어가도록 간드러지겠어. 아주 사내의 애간장을 절절 녹이겠구먼. 좋구나, 좋아.
눈이 즐겁고, 손에 잡히는 맛도 좋을 것이고, 거기에 귀까지 즐겁겠으니 사내의 단전부터 욕정을 끌어내기가 딱이야. 청조를 훑던 사내는 늘어진 눈살에 가려 잘 보이지 않는 눈을 치켜뜨고 다 쓰러져 가는 집을 대충 훑었다. 집을 보니 일이 더 수월할 듯싶어, 저도 모르게 흠흠 콧소리가 나왔다.
“저어, 뉘십니까?”
“내 멀리서 자네 소문을 듣고 왔네.”
“소녀를요?”
이제야 대답을 하는 객은 들고 있던 부채를 ‘탁’ 소리가 나도록 손바닥에 내리치며 접었다. 얼굴의 주름을 보아 이미 지명(知命: 50세)에 가까운 나이인 것은 분명한데 하관이 민둥한 것이 수염이 없어 좀 의아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나이가 지긋하여도 누군지 모르는 남정네가 촘촘한 눈빛으로 훑어보며 자신의 소문을 들었다고 하자, 청조는 덜컥 경계심이 들었다.
“자네에게 은밀하게 제안할 것이 있어 내 이 시각에 이곳엘 찾아왔네.”
“제안이라니요?”
“내 제안을 수락한다면 자네에게도 좋은 일이 될 것이고, 자네 식솔에게도 좋은 일이 될 걸세.”
“네? 송구합니다만, 객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소녀가 아둔하여 미처 알아듣지를 못하겠습니다.”
목소리가 나긋나긋하고 말하는 본새 또한 어긋남이나 모자람이 없었다. 집안 꼴은 형편없으나 그래도 중인이라 하더니 내훈을 꽤 잘 익힌 듯했다. 사내는 더 뜸을 들이지 않고 바로 본론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자네, 시집갈 생각 있는가?”
“네?”
“내 자네에게 중신을 설 맘으로 이곳에 찾아왔네.”
“예에? 객께서 뉘신 지 모르오나, 소녀의 처지가 곤궁하여 시집갈 형편이 아니 됩니다. 멀리서 소문을 듣고 오셨다니 이런 말씀 올리기가 참으로 송구합니다만, 소녀의 처지가 좀 그렇습니다.”
뉘인지도 모르는 이가 자신의 중신을 서다니 참으로 이상한 사람이 아닌가. 예의 바르게 거절하고 뒤를 돌아서려는데, 사내의 목소리가 청조를 잡았다.
“자네 처지를 아니 내가 제안을 하겠다는 것 아닌가?”
“무슨 말씀이신지…….”
“자네가 마음을 먹는다면 그에 합당하는 재물을 주겠다 이 말이네. 신랑 쪽에서 보내는 지참금이라 생각해도 되고.”
말이 이상하였다. 왜 재물을 주면서까지 저 같은 이를 데려가려 한단 말인가. 재물을 보낼 정도로 넉넉한 집에서 기울어도 한참 기울어지는 저를 왜…… 생각을 하다 보니 더욱 이상했다.
“혹, 신랑 쪽에 흠이 있습니까?”
조심히 묻는 청조의 질문에 낯선 이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이거 제법 말귀를 알아듣는 아이가 아닌가.
“있네. 사정이 있어 산골에 혼자 떨어져 지내시고 있는 분이시네. 만약 내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산골에 함께 들어가 그분의 수발을 들어야 할 것이네.”
“분이시라면…… 혹 양반가의 자제이십니까?”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청조는 잠시 말을 잃었다. 서로의 신분이 다르니 그는 지금 저에게 첩의 자리를 권하는 것이었다. 말뜻을 이해하자 고운 아미가 살짝 일그러졌다.
“지금 나리께서 저에게 첩의 자리를 권하시고 계십니까?”
“뭐, 아니라고는 하지 않겠네. 허나 지금 자네가 첩의 자리를 가릴 수 있는 처지는 아니지 않은가? 자네 나이면 이미 혼기가 꽉 차서 이제 해가 지나면 혼기를 놓쳤다 할 수 있을 것이네. 혼기를 놓친 과년한 여인도 부담스러운데, 홀어머니에 어린 아우들까지 달린 자네를 어느 집에서 흔쾌히 맞이하겠는가? 게다가 이대로 이번 춘궁기를 무사히 버틸 수나 있겠는가?”
청조의 고개가 미련 없이 돌아갔다. 그의 말이 거짓은 아니었으나, 이는 아니 될 말이었다. 인륜지대사인 혼인을 두고 재물을 거래하다니. 너무나도 불경한 마음이었다. 또한, 아무리 사정이 박복하다 하나 첩이라니, 모욕적인 언사가 아닐 수 없었다.
“밖에 누가 왔니?”
문짝을 열고 밖을 내다보는 어머니의 존재에 의해 잠시 마음이 흔들렸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나날이 야위어져 가는 어머니의 가는 팔목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하지만 청조는 고민하던 마음을 단칼에 잘라 버렸다. 아무리 그래도 그것은 아니 될 일.
“아닙니다. 길 가던 객께서 길을 여쭙기에 답을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래. 바람이 차구나. 객께서 가시거든 어서 들어오너라.”
“예, 어머니.”
청조는 서둘러 대답을 하곤 사내에게 몸을 돌렸다.
“송구합니다만, 듣지 않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인륜지대사인 혼인을 그런 거래로 욕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이만 돌아가 주십시오.”
“내 사흘 안에 다시 찾아오겠네. 그때 다시 대답을 듣도록 하지.”
조용히 읍하고 돌아서는 청조의 뒤로 나이 지긋한 사내의 목소리가 울렸다. 허나 사흘 안이 아니라 석 달이 걸린다 하더라도 마음을 바꿀 일은 없었다. 이 한 몸 바지런히 움직이면 어찌어찌 호구는 하고 살 수 있을 것을, 그런 떳떳하지 못한 거래로 사람의 도리를 포기하고 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은 의미도 없이, 결심은 한순간에 뒤집혔다. 다음날 어머니는 고집을 부려 마을 양반댁 잔치에 허드렛일을 함께 나가셨었다. 마을에서 제일가는 세도가 댁에 귀한 손님이 오셨다며 며칠째 큰 잔치가 벌어졌었다.
허드렛일을 돕고 얻어 온 맛난 전 몇 조각에 아우들은 손뼉을 치며 좋아했었다. 아우들의 모습에 그다음 날도 어머니는 청조와 함께 잔칫집 허드렛일을 하러 나섰고 결국 쓰러지셨다. 어머니가 쓰러지시자 청조는 앞뒤를 잴 여유조차 없이 사내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