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3화 외전 3 : 쌍둥이의 대모험(1)
1.
레온은 서재 창문 밖으로 보이는 두 아이의 모습을 보며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위로 올리고 있었다. 비서 펠은 그 바보 같은 미소에 피식 웃음을 흘리다가도 저도 따라 창밖의 두 아이를 보며 헤, 미소를 지었다.
“조그마했던 애들이 벌써 열 살이라니.”
레온의 말에 펠은 맞장구를 쳤다.
“그러게 말입니다.”
레온은 8월의 뜨거운 햇살이 따갑지도 않은지 꼬옥 붙어서 쪼그리고 앉아 있는 두 아이를 눈에 담았다. 너무나도 사랑스러운 자신의 손자 손녀였다.
“그 작은 쌍둥이들이 언제 다 클지 걱정했었는데, 시간이 참 빨라.”
그록을 닮은 검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고 있었고 블란을 닮은 하늘빛 눈동자가 반짝이는 것이 멀리서도 보였다. 레온은 괜히 웃음이 터져 나와 작게 웃음을 흘리며 펠에게 말했다.
“뭐, 내 머리에도 흰머리가 늘었으니. 시간이 많이 흐른 것 같기는 해.”
“저도 이제 애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그렇지. 자네도 결혼한 지 벌써 오 년째군.”
펠과 느긋하게 대화를 나누며 레온은 다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택의 한구석 작은 정원이 그의 눈에 담겼다.
“잠시 쉬고 하지.”
“네. 알겠습니다.”
레온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펠은 말하지 않아도 그가 갈 곳이 어딘지 알 수 있었다. 펠은 미소와 함께 그 뒤를 따랐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푸르름이 멋진 정원이었다. 레온이 방금까지 눈에 담고 있던 두 아이들은 지금 꽤 심각했다.
이란성 쌍둥이 중 한 명인 여자아이 무나는 작은 삽으로 땅을 파고 있었다. 무뚝뚝한 얼굴이었지만 그 손길은 사뭇 진지했다.
“무, 무나. 살살해. 다쳐.”
그리고 그 옆에 같이 쪼그리고 앉은 또 다른 쌍둥이인 남자아이 카이는 수건과 물통을 품에 꼬옥 안은 채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괜찮다. 안 다친다.”
무나가 담담하게 답했지만 카이는 불안한지 수건을 쥐고 있는 손가락이 연신 꼼지락거리고 있었다. 무나는 이를 힐끗 보더니 입을 열었다.
“약초는 본디 뿌리가 상하지 않은 것이 중요하다고 들었다. 그래서 땅을 아주 살살 파고 있다.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그, 그렇지만!
카이는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지금 무나가 캐는 건 야, 약초가 아니라 잔디잖아.”
무나가 열심히 삽질을 하는 곳은 잔디밭이었다.
“안다. 하지만 연구자는 본디 실험 전에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나는 지금 연습 중이다.”
“그, 그러면 어쩔 수 없지만.”
카이는 우물쭈물하다가 결국 약초 캐듯 잔디를 신중하게 파내는 무나에게 손부채질을 해줬다. 카이는 무나가 한 번 무언가에 빠져들면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에 옆에 머물렀다.
“물!”
지금처럼 지쳐 보이는 그녀에게 가끔씩 물을 내밀면서.
“고맙다, 카이.”
“아, 아니야.”
수줍어하면서도 좋아하는 카이의 모습에 무나는 무뚝뚝하게 말했다.
“이 연습이 끝나고 난 뒤에는 같이 서점에 가자.”
“지, 진짜?”
카이가 번쩍 고개를 들었다. 단발보다는 조금 짧은 카이의 검은 머릿결이 찰랑였다. 카이보다 짧은 커트 머리의 무나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간다. 아버지가 한 시간 뒤에 서점에 가신다고 했다. 따라간다.”
“오, 오-”
두 손을 꼼지락거리며 카이의 얼굴에 생기가 넘치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설렘이 가득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용감한 다람쥐의 모험’ 두 번째 이야기가 나왔대! 그거 첫 번째 이야기 기억하지?”
동화책보다 약초 백과사전을 더 좋아하는 무나였지만 카이가 좋아하는 책들은 모두 읽었다.
“응. 거기 나오는 코뿔소가 멋있었어.”
“맞아! 무나는 코뿔소가 좋다고 했지. 나 그거 보고 싶어서, 이번에는 무슨 이야기 있을까 상상하다가 어제 자, 잠도 하나도 못 잤어!”
순간 무나의 손길이 뚝 멈췄다.
“흡!”
카이는 자신이 내뱉은 말에 놀라 입을 꾹 다물었다. 서서히 카이를 향한 무나의 무뚝뚝한 눈빛에 카이는 더 쪼그라들었다. 그 모습을 보며 무나는 말했다.
“잠 많이 자야 한다.”
“마, 맞아. 그래야 하는데, 어제 너무 떨려서 모, 못 잤어.”
카이는 고개를 푸욱 숙인 채 중얼거리듯 말했다.
“미, 미안해.”
분명 무나는 걱정할 것이다. 카이는 저 무뚝뚝한 눈빛 속에 담긴 걱정과 자신을 향한 마음에 미안했다.
툭. 툭.
“괜찮다. 이해한다.”
“저, 정말?”
무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카이에게 말했다.
“나도 어제 약초 백과사전 본다고 못 잤다.”
씨익 무나가 미소를 그렸고 카이도 따라 미소를 그렸다.
“아버지, 어머니께는 비밀이다.”
“응. 비밀이야.”
두 사람만의 작은 비밀이 생긴 순간이었다. 무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이것으로 두 번째다.”
“맞아, 두 번째야.”
두 번째 비밀이었다. 카이는 첫 번째 비밀을 떠올리며 살짝 볼이 발그레해졌다. 무나는 이를 보며 무뚝뚝하게 입을 열었다.
“기다린다.”
“응. 고, 곧 써서 보여줄게.”
카이는 자신만의 작은 이야기를 쓰고 있었다. ‘용감한 다람쥐의 대모험’처럼 엄청난 이야기는 아니었지만 상상하던 것들을 적어보고 싶었다. 그리고 이를 아는 사람은 무나뿐이었다. 엄마, 아빠한테도 비밀이었다.
“기대한다.”
“응!”
씨익 웃는 무나의 미소에 카이는 눈을 빛내며 고개를 힘차게 끄덕였다. 그때,
“안 더우냐?”
카이와 무나의 고개가 순식간에 홱 하고 돌아갔다. 레온이었다. 그는 쌍둥이들에게로 다가갔다.
역시. 레온이 예상하던 대로 무나는 이번에도 일명 ‘약초 연구자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쩜 저리 제 아버지를 꼬박 닮았는지.’
약초에 관심을 보이는 무나는 그록을 닮아 있었다. 말투도 표정도 어찌 그리 무뚝뚝하고 딱딱한지.
‘장인어른, 다녀오겠습니다.’
순간 오늘 아침도 무뚝뚝한 얼굴로 인사하던 그록이 떠올라 레온은 순간 입가를 찡그렸다. 그때,
“할아버지.”
무뚝뚝한 무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자신의 바지 옷깃을 슬그머니 잡아당기는 그 손길에 레온의 얼굴은 순식간에 풀어지며 그도 모르게 바보 같은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그래, 우리 무나!”
하이구. 못 말리신다니까. 뒤에 서 있던 비서 펠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레온은 무나의 작은 몸짓 하나 하나에도 좋아서 어쩔 줄을 몰랐다. 여전히 사위인 그록의 후원자로 남아 있듯이 말이다.
“약초를 캐고 있었습니다.”
“그랬느냐? 우리 무나는 뭐든 열심히 해서 좋아! 하하하하!”
레온은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역시, 벌써부터 자신의 목표를 정해서 나아가는 자세! 역시 내 손녀다워! 레온의 입꼬리가 연신 위로 올라갔다. 그 순간,
“하, 할아버지-”
우물쭈물하는 작은 목소리가 레온의 귓가에 닿았다. 자신의 옷깃도 잡지 못한 채 손을 꼼지락거리는 카이가 보였다.
“그래, 우리 카이!”
레온의 얼굴에는 더 이상 환할 수 없을 만큼 커다란 미소가 지어져 있었다. 카이는 블란을 완전히 빼다 박았다고 할 정도로 닮아 있었다.
“무나 옆에 도와줬느냐?”
“네에.”
“아이구, 잘했다.”
레온이 머리를 쓰다듬어주자, 카이는 수줍어하면서도 미소를 그렸다. 그런 카이에게로 다가간 무나는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말했다.
“고맙다.”
“아, 아니야. 나, 나중에 서점 같이 가기로 했으니까!”
“호오. 서점에 가기로 했느냐?”
레온의 물음에 카이는 신이 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늘 수줍음이 많은 카이였지만 책과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면 아주 활발해졌다.
“네, 네! 아버지가 서점 간다고 해서 따라가려구요!”
“오, 그래?”
그의 입꼬리가 다시 위로 씰룩였다. 레온은 카이의 머리를 다시 쓰다듬으며 말했다.
“카이 기분이 좋겠구나.”
“네! 할아버지!”
할아버지.
저 단어 하나에 레온은 사르르 녹아들어갔다. 비서 펠은 주체할 수 없는 표정으로 환히 웃고 있는 레온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할아버지.”
“그래, 무나.”
“궁금한 것이 생겼습니다. 화이트로우는 어떤 약초입니까?”
“……어?”
“저, 저도 궁금한 게 있어요.”
“그, 그래. 카이도 말해보려무나.”
“어제 책을 봤는데요, 거기서 은유라는 말이 나왔는데 그게 무슨 뜻이에요?”
이러니 평생 해본 적도 없는 약초 공부와 문학 공부에 뒤늦게 열을 올려야 했다.
“하하하, 그게 말이지.”
더불어 펠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레온의 간절한 시선에 펠은 앞으로 나섰다.
“크흠. 그것은 말이지요.”
두 쌍둥이들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어째서 이 두 쌍둥이들은 자신이 관심 있는 분야를 이야기할 때마다 이토록 눈을 빛내는 것일까. 천상 그록을 닮은 연구자 기질이 있었다. 펠은 천천히 화이트로우와 은유에 대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음. 그렇군요.”
무뚝뚝한 얼굴로 무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오, 오!”
카이는 연신 작은 입으로 감탄을 내뱉었다. 그 순간,
“다들 여기 계셨군요.”
연구소에 잠시 갔던 그록이 돌아왔다. 정원으로 그가 들어선 순간,
“하.”
펠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아버지.”
무나가 눈을 빛내며 무표정한 얼굴로 다다다다 그록에게 달려갔다. 아주 맹렬하게 뛰어가는 그 품새는 마치 전투를 앞둔 전사와 같은 비장함이 있었다. 그러고는,
찰싹!
그록의 오른쪽 다리에 붙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아, 아버지-”
뒤이어 카이가 우물쭈물하며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무나가 얼른 오라고 휙휙 손짓을 하자 조금씩 걸음이 빨라지더니 곧 그록 앞으로 달려갔다.
찰싹!
그리고는 무나처럼 그록의 왼쪽 다리에 붙었다.
“크흠. 왔는가?”
그리고 비서 펠은 뭔가 불만이 가득한 얼굴의 레온을 볼 수 있었다.
“네. 장인어른. 생각보다 빨리 끝나서 일찍 왔습니다.”
그록은 담담하게 답하며 두 쌍둥이를 품에 안았다. 여전히 무뚝뚝한 얼굴이었지만 두 쌍둥이를 품에 안고 토닥이는 그 손길은 다정하기 그지없었다. 그 손길에 무나는 뺨을 비볐고 카이는 순한 미소를 지었다.
“무나는 오늘도 연습을 했어? 손에 흙이 묻어 있는데.”
아. 순간 그록의 물음에 무나는 움찔하다가 곧 번쩍 고개를 들어 그록을 바라봤다.
“아버지. 서점에 가야 합니다.”
“알아.”
음? 안다고? 어떻게?
카이와 무나의 눈에 의문이 담겼다. 그 의문을 마주하며 그록은 담담하게 이어 말했다.
“오늘은 ‘용감한 다람쥐의 대모험’ 두 번째를 가지러 가야 하니까.”
그록이 씨익 미소를 지었고,
“오!”
“음!”
카이와 무나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점점 얼굴에 미소를 그리기 시작했다. 오늘 그록이 서점에 가려던 이유가 애초에 카이의 동화책을 사기 위해서였다.
“아, 어머니도 조금 있다고 온다고 하니, 같이 가자.”
“네, 알겠습니다.”
“좋아요, 아버지!”
요즘 그록보다 더 바쁜 블란이었기에 그녀와 함께 간다는 말에 두 쌍둥이의 얼굴은 한층 더 밝아졌다. 카이와 무나는 얼른 시간이 다가오길 기다렸다.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었다.
“다들 모여 있었네요.”
때마침 블란도 저택으로 돌아왔다.
무나와 카이는 눈을 반짝이며 블란에게 두 팔을 벌렸고 블란은 한 팔에 한 명씩 쌍둥이를 마주 안았다. 그러고는 그록과 레온을 향해 입을 열었다.
“왔어요.”
음? 의아해하는 두 사람의 눈에 그제야 블란의 손에 들린 편지 봉투가 하나 보였다. 그 순간 그록의 눈이 커졌다. 낯익은 편지봉투였다.
“아.”
드디어, 드디어 왔군.
낮게 탄식을 흘리는 그록에게 블란은 묘한 미소를 입가에 띠며 말했다.
“교수를 하지 않겠냐는데요?”
블란의 손에는 우드 아카데미의 상징이 찍힌 편지 봉투가 들려 있었다. 강사 과정을 끝냈지만 근 10년이 넘도록 도달할 수 없었던 곳에서 먼저 연락이 온 것이다. 그록은 천천히 블란에게로 다가갔다.
“드디어 왔군요.”
이미 서 우드 아카데미 약초학과의 교수가 된 그록은 블란의 손에 들린 편지 봉투를 보며 눈을 빛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