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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접근하는 이유-78화 (77/95)

# 78화 외전 2 : 한겨울의 결혼(4)

4.

2학기가 시작된 지도 한 달이 흘러 어느새 10월이었다.

드르르륵. 강의실 문이 열리는 소리에 서 우드 1학년 학생들은 바짝 허리를 펴고 똑바로 앉았다.

“반갑습니다.”

담담한 인사를 하며 그록이 강의실로 나타났다. 그의 강의를 듣는 학생 중 한 명인 포카는 침을 꿀꺽 삼켰다. 오늘 그록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언제나 담담하고 화를 절대 내지 않는 그록 바서. 그의 강의는 첫 강의임에도 불구하고 희한하게도 귀에 쏙쏙 잘 들어왔다. 그리고 늘 알아듣기 쉽게 설명을 잘 해주었다.

‘마치 나 같은 평범한 놈들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단 말이야.’

포카는 사실 자신의 머리가 평범보다 못한 편인 것을 알고 있었다. 왕국 내에서 내로라하는 똑똑한 놈들이 모인 것이 서 우드 아카데미였고 거기서 자신은 중간도 가기 힘들었다.

그렇기에 버거웠던 강의가 많았다. 그런데, 그록은 그런 자신에게 놀랍도록 쉽게 잘 설명해주었다.

마치 그록 자신도 신입생 때는 포카처럼 이런 부분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는 것마냥.

“신기하단 말이야.”

천재라면 이해력이 달리는 자신 같은 학생의 마음을 몰랐을 텐데.

어쩌면 정말로 그록이 천재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서서히 포카의 마음속에 피어올랐다.

“다들 그간 밥은 꼬박꼬박 다 챙겨 먹었습니까?”

희한하게도 그록은 늘 학생들의 밥을 챙겼다.

“자, 아침 안 먹은 학생들은 한번 손을 들어보겠습니까?”

지금처럼.

포카는 슬그머니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들 손을 안 들고 있었다.

“후우.”

다행이야.

포카는 그록을 바라봤다.

“좋은 자셉니다.”

흐뭇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가 보였다. 학생들은 그록의 교탁 위 아주 두꺼운 공책이 보였다. 처음에는 책인 줄 알았다.

‘이런, 아침을 먹지 않은 학생들이 많군요. 어제 저녁도 안 먹은 학생분들도 많고.’

하지만, 그들은 그 무시무시한 두께의 공책의 정체를 오리엔테이션이 끝난 첫 수업 때 알 수 있었다.

[음식 섭취 보고서]

그록은 그 묵직한 책을 들어 보이며 연구자에게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파했다.

‘그러니 써오도록 하세요.’

그리고 식사를 하지 않은 학생들에게 음식 섭취 보고서를 과제로 내주었다. 포카는 그때를 떠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학생들의 끼니까지 챙기는 강사는 처음 보았다.

“자, 그러면 이제 수업을 시작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포카는 그록 강사가 꽤 좋았다. 그는 펜을 쥐며 그록의 강의를 열심히 들었다.

수준이 낮지 않음에도 이해하기 쉬운 강의. 그록의 수업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럼 이만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학생들의 커다란 목소리를 들으며 그록은 짐을 챙겨 강의실 밖으로 향했다. 그의 발걸음은 묘하게 가볍고 어딘가 들떠 있었다. 그때.

“교수님!”

그록은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등을 돌렸다.

아, 누구였더라. 자신의 수업을 듣는 학생이었다. 그록은 곧 그 학생의 이름이 떠올랐다. 작고 왜소한 체격이 눈에 띄었던 학생이었다.

“포카 군이군요.”

그래서 늘 그록이 식사를 제대로 챙겼나 유심히 지켜보는 학생이기도 했다.

“네, 그, 그-”

질문을 하러 허겁지겁 나왔던 포카는 막상 질문을 하려고 하니 이런 질문을 해도 되나 싶어 잠시 멈칫했다.

“편히 질문하세요. 아니면 제 실험실에 가서 할까요?”

“아, 아뇨, 아뇨!”

그록은 힐끔 자신을 올려다보는 포카를 가만히 기다려주었다. 꽤 내성적인 학생이었던 것 같은데, 무슨 문제로 자신을 불렀을까?

“그, 교수님.”

포카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괜히 마음에 남아서, 그래서 물었다.

“그, 연구를 하는 게 연구자라고 하셨잖습니까?”

‘연구자는 연구를 하는 것. 그것뿐입니다.’

그록의 그 말이 포카의 머릿속에 계속 맴돌았다. 그록은 진지한 포카의 눈빛을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면 무슨 연구를 해야 합니까?”

포카는 그것이 궁금했다. 그는 그록에게 방향에 대해서 듣고 싶었다. 요즘은 어떤 연구가 활발한지, 혹은 어떤 방향으로 공부를 해놓는 게 좋은지. 그리고 그 답은 곧바로 들려왔다.

“포카 군이 연구하고 싶은 것을 하면 됩니다.”

“……예?”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조금이라도 비전 있는 분야를 듣고 싶었던 포카는 예상과 다른 답에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그에게 그록은 담담하게 말했다.

“어려운 일입니다.”

“예?”

“연구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은요.”

그록은 담담하게 말했다.

“포카 군도 알 것입니다. 하고 싶은 것을 하기 쉬운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요.”

포카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하려면 많은 것들을 감수하고 또한 엄청난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 쉽지 않을 겁니다. 그리고 성공까지 얼마나 걸릴지 알 수 없습니다.”

알고 있다.

그래서 포카는 그록에게 물었다. 조금 더 비전이 있고 후원을 받아서 하기 쉬운 연구가 무엇이냐고. 요즘은 희귀 약초가 대세니까, 그쪽 전문 분야인 그록이라면 길을 알려주지 않을까. 포카는 이를 기대했다.

하고 싶은 것.

하지만 어려운 것.

포카는 저도 모르게 주먹이 힘이 들어갔다.

툭툭.

그런 그의 어깨를 약하게 두드리는 손길이 느껴졌다. 그록이었다.

“하지만 그 연구를 한다면 한 가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포카는 그록을 바라봤다. 확신에 가득 찬 눈빛이 빛나고 있었다.

“그 연구가 성공하면,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그록은 담담하게 사실을 말해주었다.

“연구자로서 최고로 행복한 순간이 될 것입니다.”

아.

포카의 입이 벌어졌다. 그는 멍하니 그록을 바라봤다.

어렵고,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고, 성공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럼에도-

포카는 주먹을 쥐었다.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포카와 그록이 시선이 마주했다.

“저는 프시아에 대해서 연구하고 싶습니다.”

순간 그록의 눈이 커졌다. 그리고 이내 환한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포카의 눈이 놀람으로 커졌다.

“훌륭한 주제입니다.”

하지만 이내 들려온 그록의 말에 포카 역시 미소를 그렸다. 그 미소에 그록은 잠시 자신의 스승을 떠올렸다. 그레이 교수가 자신에게 했던 모습이 생각났다.

“제가 비록 강사지만 연구실이 필요하면 말해주세요. 최대한 구해줄 테니까.”

어-

포카는 그록의 말에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는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아니 그게, 전 아직 연구실을 받기에는, 그러니까 성적도 별로고. 특출한 점도 없어서,”

“그런 건 상관없습니다.”

포카는 자신의 말을 자른 그록을 바라봤다.

“노력하려는 사람에게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는 것은 당연한 겁니다.”

포카의 표정이 묘하게 변했다.

그록은 더 이상 다른 말 없이 포카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럼, 언제든지 내 연구실에 와도 됩니다.”

그러고는 짧은 말을 남기고선 다시 걸음을 옮겼고 멍하니 포카는 고개를 숙이며 그에게 인사했다. 그는 멀어져가는 그록의 뒷모습을 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자신의 손이 보였다. 대중적이지만 요 근래 들어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프시아. 프시아 뿌리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 중이지만, 자신은!

포카는 주먹을 꽉 쥐었다.

프시아의 기본적인 사용법을 더욱더 효과적으로 개선해서 그 단가를 조금 더 낮추고 싶었다. 돈이 되지 않는 연구지만 그래도 조금이라도 많은 이들이 병에서 벗어나길 그는 바랐다.

“……하자.”

작은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너무나도 작은 목소리라 어느 누구도 듣지 못했지만, 또 다른 길이 열린 순간이었다.

포카는 멀어진 그록의 뒷모습을 눈에 담았다.

연구자는 연구를 하는 것. 그것뿐이다.

포카는 그 말을 마음속에 새겼다.

*

들뜬 걸음으로 빠르게 거리를 지나친 그록이 어느 가게의 문을 열었다.

딸랑!

위스 찻집이었다. 그는 익숙한 걸음으로 찻집 안에 들어섰고 바로 보이는 이의 모습에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그록 씨.”

블란이었다.

그는 얼른 그녀에게로 다가갔다. 그록은 오늘 어머니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그록 씨. 오늘은 기분이 유독 좋아 보여요.”

“그렇습니까?”

그는 블란과 마주보며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블란 양. 오늘은 예복에 대해서 계획을 짜야 하죠?”

블란은 그록과 함께 만든 결혼 계획 보고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오늘은 예복부터 하면 돼요.”

그록은 오늘 아침에 온 편지가 떠올랐지만 이는 잠시 뒤로 미루고 담담하게 물었다.

“블란 양. 맡기고 싶은 디자이너님이 계십니까?”

“아, 그게-”

그록의 얼굴 위로 의아함이 나타났다. 근래 들어 블란이 망설이는 모습은 처음 보았다. 괜히 손을 꼼지락대면서 블란이 그록을 힐끔힐끔 바라봤다. 뭐지?

“그, 있잖아요. 그록 씨.”

“네.”

하지만 곧바로 이어진 블란의 말에 그록은 의문을 지웠다.

“어머님께 부탁드려볼 수 있을까요?”

아. 순간 그록의 눈동자에 어떤 빛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그는 담담하게 되물었다.

“굳이 원하지 않으시는데 저희 어머니라서 부탁하실 필요는,”

“아, 아니에요! 절대 그런 거 아니에요!”

블란은 황급히 손을 가로저었다. 그녀는 잠시 우물쭈물하다가 곧 결심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고는 말했다.

“제가 입은 옷을 보세요!”

그록의 눈에 그제야 그녀가 입은 옷들이 눈에 담겼다.

정말이지. 그록의 입가에 작은 미소가 걸렸다.

모두 어머니가 블란을 위해 만들어주었던 옷이었다.

어머니는 여전히 수선집에서 일하시지만 그 사이 수선집의 장이 되셨다. 그리고 디자이너에게 어느 정도 능력을 인정받아 의상실에서도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정식 디자이너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수습 디자이너라는 명함을 받았고 이는 어머니의 보물 중 하나였다.

블란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는 어머님이 만드신 옷이 좋아요. 그,”

그녀는 자신의 윗옷 끝단을 매만졌다. 어떻게 아시는지 항상 자신의 취향을 잘 아셨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만 만들어주셨다.

“그리고 애정이 느껴져서 정말 좋아요.”

그리고 옷에서 애정이 느껴졌다. 그 마음이 블란은 너무나도 좋았다. 제대로 기억나지도 않는 어릴 적 돌아가신 어머니의 마음 같이 느껴졌다.

그녀는 그록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래서 그 어머님이 괜찮으시다면 정식으로 의뢰를 넣고 싶어요.”

요즘 수습 디자이너 일로 바쁘시다고 들었다. 그렇기에 블란은 조심스럽게 그록을 바라봤다.

“그건 조금 곤란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여지도 없이 그록은 담담하게 답했다. 순간 블란의 어깨가 조금 아래로 내려갔다.

“그, 그렇군요. 그러면 다른 분으로,”

“아뇨.”

또 다시 이어진 그록의 단호한 목소리에 블란은 그녀를 바라봤다. 순간 그녀의 눈동자가 커졌다. 장난기 어린 그록의 얼굴이 보였다.

“자, 이거 읽어보십시오.”

그록이 편지를 하나 건넸다. 블란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편지를 펼쳤다.

[괜찮다면, 너희들이 입고 싶어 하는 옷을 설명해주면 내가 내 손으로 직접 만들어주고 싶구나.]

블란의 눈동자가 커지며 그녀의 입이 저도 모르게 벌어졌다.

[결혼 선물로 해주고 싶어.]

그록의 어머니 루린의 편지였다. 블란은 그록을 바라봤다. 담담한 얼굴이 보였다. 하지만 그 속에 작게 기쁨이 보였다.

“의뢰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선물이니까요.”

블란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을 보며 그록은 입을 열었다.

“그러면 옷은 해결인 겁니까?”

“네! 엄청 잘 해결되었어요!”

블란의 신이 난 목소리에 그록은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그 순간, 탁! 날카로운 소리가 두 사람 사이의 탁자 위에 울려퍼졌다.

“아주 닭털이 폴폴 날리네, 아주!”

찻잔을 놓는 이의 등장에 그록과 블란은 눈을 크게 떴다.

“선배님.”

“아스트 씨!”

아스트였다.

“왜? 갑자기 깜짝 등장해서 놀랐냐?”

“네. 놀랐습니다.”

“놀라긴. 제수씨는 잘 지내셨습니까?”

“네? 아, 네.”

여전히 제수씨라고 부르는 능글맞은 그 모습에 블란은 수줍어하며 답했다. 그 모습을 보던 아스트는 짓궂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이야, 이제는 진짜 제수씨가 되겠네요. 좀 있으면 둘이 부부가! 되니까!”

부부. 그 단어에 강조를 하는 아스트의 모습에 그록은 담담하게 답했다.

“맞습니다. 곧 부부가 됩니다.”

수줍어하는 블란과 달리 재미없는 반응에 아스트는 입을 삐쭉이며 툭 내뱉었다.

“그래서 너희 둘 결혼은 언제 해?”

“겨울에 합니다.”

그록의 답에 아스트는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아직 멀었네? 휴일에 하는 줄 알았더니. 방학에 하게?”

“아, 그, 그게.”

여전히 수줍어하는 얼굴로 블란은 손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

“멀리서 할 거거든요.”

“멀리요?”

“네.”

아스트는 묘하게 단호한 블란의 말에 잠시 두 눈을 껌벅거리다가 다시 물었다.

“어디?”

이번에는 그록이 답했다.

“프쉴.”

“아, 그래- 프, 프쉴?”

그 담담한 답에 고개를 끄덕이던 아스트는 곧 눈을 크게 뜨고서 그록을 바라보며 되물었다.

“뭐? 프쉴?”

“네.”

그록은 한 번 더 확실하게 답해주었다. 아스트는 저도 모르게 다다다 말이 쏟아져 나왔다.

“외국에서 한다고? 게다가 거기는 그냥 프시아 초원이잖아? 아, 아니. 다 떠나서 거기는 결혼식장도 없고, 그냥 허허벌판인데?”

그록이 담담하게 답했다.

“겨울에도 그곳은 붉습니다. 아름답죠.”

그 답에 아스트는 그록에게서 시선을 홱 돌리며 블란을 바라봤다. 정말? 정말 외국, 그 허허벌판에서 한다고? 그 시선에 답하기라도 하듯 블란은 미소를 그리며 답했다.

“네. 프쉴에서 할 거예요.”

그 확고한 목소리에 아스트는 잠시 입을 닫은 채 두 사람을 바라봤다. 확고한 눈빛들이 보였다. 그는 입을 달싹이다 떨떠름한 얼굴로 물었다.

“양가 부모님께서는 아시니?”

그록은 답했다.

“어제 장소를 정해서 편지를 보냈습니다.”

허. 아스트는 입을 벌린 채 그록을 바라봤다.

“아마 며칠 뒤에 도착하실 겁니다.”

아스트는 입을 꾹 닫은 채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그러고는 조용히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그리고 며칠 뒤, 그록과 블란의 편지가 도착했고.

[프쉴에서, 가족들만 모시고 소박하게 하고 싶어요.]

레온은 눈을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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