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화
62.
눈물과 미소로 얼룩진 시간을 보내고 난 후, 피곤해 잠이 든 블란을 둔 채 그록과 다른 이들은 그녀의 방을 나왔다.
달칵. 문이 닫혔고 모두 아무 말이 없었다. 특히 그록은 살면서 두 번째로 감정이 폭발한 순간이어서 그런지 온몸에 힘이 없었다.
“그록.”
목이 잠긴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고개를 돌리자 그록은 레온과 시선을 마주할 수 있었다. 연신 블란의 이름을 부르며 눈물을 흘리던 그는 천천히 그록의 앞에 섰다. 그러고는,
꽈악.
그록을 안았다.
순간 그록의 눈동자가 커졌다. 하지만 이내 그 눈동자는 다른 빛을 띠기 시작했다. 그록의 얼굴이 묘하게 일그러졌다.
툭, 툭.
레온이 그록의 등을 두드렸다. 그는 말했다.
“고맙네. 정말 고마워.”
물기가 가득한 목소리로 레온은 연신 그록에게 고맙다고 말했다. 그록은 다시 울컥 무언가가 치밀어 올랐지만 꾹 참았다. 그는 레온을 떠올렸다.
베스 노옐. 블란의 어머니 이름으로 후원을 해준 사람. 그 덕분에 그록은 이 연구를 성공할 수 있었다. 본래라면, 자신은 연구자로서 레온에게 연구 성공에 기여한 부분에 대해 감사함을 표해야 했겠지만.
그록은 몇 번 입을 달싹이다가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아버님 덕분에 블란 양을 낫게 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툭.
등을 두드리던 손길이 멈췄다. 그러고는 이내 레온은 그록을 더 꽈악 껴안았다. 이번에는 그록이 그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툭. 투욱.
그록의 시야에 울고 있는 비서 펠과 환하게 미소 짓는 의원 카만이 보였다. 그록은 입을 열었다.
“모두의 노력 덕에 블란 양이 살아났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감사합니다.”
그 순간 레온이 울음을 담아 작아진 목소리로 말했다.
“아냐. 자네가 있어서, 그래서 할 수 있었어. 모두 자네 덕분일세. 고맙네. 정말 고마워.”
그록은 한참 동안이나 더 레온과 포옹을 한 채 그의 고맙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그리고 그 포옹에서 벗어나 레온과 마주하게 되었을 때, 그록은 새삼 느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하네.”
레온. 그와의 거리가 생각보다 훨씬 더 가까워졌음을, 가족이 되어가고 있음을. 그록은 느꼈다.
***
블란의 기쁨에 가득 찬 얼굴과 레온의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는 말. 그 때문인지 그록은 더욱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3주라는 긴 시간에 걸린 후에야 효과를 보이기 시작한 치료제는 점점 그 효과가 커져갔다. 그 때문일까.
어느새 8주차에 들어선, 두 달이 흐른 지금. 치료제 연구 보고서를 건네받은 그레이 교수의 표정은 시시각각 바뀌고 있었다. 그록은 그레이 교수의 얼굴 위로 나타난 표정을 보고 작게 미소를 그렸다.
“이거, 정말이지.”
연구 결과 보고서를 읽어 내려가는 그레이 교수는 놀라움을 감추질 못했다. 결국 마지막 장까지 읽은 그는 눈앞의 그록에게 말했다.
“학계가 뒤집히겠구만. 아니지.”
그의 목소리는 담담했지만 내뱉는 말을 결코 담담할 수 없는 내용이었다.
“세상이 뒤집히겠어.”
세상이 뒤집힌다.
약초학계와 의학계가 이어져온 그동안 어느 누구도 치료할 방법을 찾지 못했던 워보트 병.
그 병을 치료할 약이 드디어 만들어졌다.
이 결과는 그간 치료할 수 없다고 확신처럼 여겨오던 수많은 불치병에 대한 생각을 깨부수는 첫 발걸음이자, 동시에 수많은 환자들에게 희망의 불씨가 되는 첫 걸음이기도 했다.
“아직 완전한 결과가 아닙니다. 이제 중간과정일 뿐입니다. 정리할 부분이 태산같이 많습니다.”
담담하게 그록은 답했지만 그레이 교수 눈에는 보였다. 그는 지나간 그록의 노력들을 떠올리며, 담담하게 툭 내뱉듯이 말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기쁨이 담겨 있었다.
“축하하네.”
평소처럼 무뚝뚝한 얼굴로 그록이 그레이 교수를 바라봤다. 하지만 그레이의 눈에는 보였다. 그록이라는 사람 자체가 밝아져 있었다.
“그동안 고생했어.”
그록은 답했다.
“교수님 덕분입니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그레이 교수 덕분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록은 아예 실험을 해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록은 정말로 고마운 사람이 많았다. 이번 연구는 자신 혼자서 한 것이 아니었다.
“에이, 고맙기는. 내가 한 게 무엇이 있다고. 그러면 이걸 토대로 논문을 낼 생각인가?”
“네. 정리한 대로 학계에 내고자 합니다.”
그레이 교수는 자신의 손에 들린 보고서의 가장 앞장을 바라봤다. 그러고는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연구자.
거기에 적힌 두 이름을 보며 그레이는 입을 열었다.
“아버님께서 좋아하시겠구만.”
주 연구자인 그록 바서. 그 밑에 적힌 또 다른 이름.
레간 바서.
“프시아와 관련된 연구 부분은 아버지의 연구 내용이니 당연히 표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네 가문도 뒤집히겠구만. 도대체 몇 군데가 뒤집힐지 모르겠어.”
농담을 하며 그레이 교수는 웃었다. 그리고 그록도 웃었다.
“자네 논문이 정말 기대되는구만.”
대화를 마무리하며 그레이와 그록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레이는 문을 향해 걸어가는 그록을 향해 툭 내뱉듯이 말했다.
“자네는 정말로 연구자야. 연구자.”
문을 잡던 그록의 손길이 멈췄다. 고개를 돌려 다시 그레이를 바라보자, 그레이는 미소와 함께 말했다.
“자네는 내가 본 누구보다도 멋진 연구자일세.”
그록은 순간 많은 생각들이 스쳐지나갔다. 그는 입을 몇 번 달싹이다가 답했다.
“감사합니다. 교수님.”
“그래. 이제 아스트한테 연락하러 가는 건가?”
그록은 그레이의 물음에 조금 더 환한 미소로 답했다.
“네. 선배도 이 연구에 많은 도움을 주었으니까요.”
아스트 선배. 그도 이번 연구에 그록을 도와주었다. 그록은 정말로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받았다. 과거엔 블란뿐이었다면 이제는 블란과 함께 많은 이들이 곁에 있었다.
“그래. 그리고 나서는 연구를 할 테고?”
지나가듯이 가볍게 물었던 그레이 교수는 그록의 얼굴 위로 나타나는 당황에 순간 눈을 크게 떴다. 뭐지?
“어, 음. 그게.”
그록은 편지들을 부치고 난 후에 할 일을 떠올리자 급속도로 심장이 쿵쿵 뛰었다. 할 말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던 그록은 결국 답했다.
“어, 그게. 일단 가보겠습니다.”
음? 일단 간다니?
그레이 교수의 얼굴에 의아함이 나타났지만.
달칵. 아주 빠르게 문이 닫혔고 그록은 연구실을 떠났다.
“으음. 무슨 일을 하려고?”
그레이 교수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의자에 앉았다. 하지만 이내 미소가 입가에 어렸다. 제자의 성공이, 그리고 한 사람의 바람이 이루어져 기쁜 그였다.
그록은 그레이 교수의 연구실을 나오자마자 편지를 보내기 위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아스트 선배보다 먼저 편지를 보내야 할 사람이 있었다.
그록이라는 사람이 연구자가 될 수 있도록 가장 많이, 오랜 시간 동안 도와줬던 사람. 그록은 어머니 루린에게 얼른 성공했다는 소식을 알려드리고 싶었다.
편지들을 모두 다 부치고 다시 블란의 저택으로 걸음을 옮기는 그록의 표정은, 비장했다.
그는 연신 침을 삼켰다. 그록은 자신의 안주머니에 있는 하늘색 편지 봉투를 떠올렸다. 긴장으로 그의 얼굴이 무뚝뚝하게 굳어갔다. 저택으로 들어선 그록에게 의원 카만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왔나?”
“네.”
“블란 아가씨 보러 가는가?”
움찔. 순간 그록이 멈칫하는 모습에 카만의 고개가 한쪽으로 기울었다.
그간 치료제 실험이 진행된 8주 동안 그록은 정말이지 최선을 다했다. 특히 3주차가 되어 블란의 병에 차도가 보인 것을 확인한 후로는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그리고 섬세하게 블란을 돌보았다.
‘블란이 사람을 제대로 잘 본 것 같아.’
레온이 흘러가듯이 한 말을 카만은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 레온은 그록을 아주 이뻐 죽겠다는 듯이 흐뭇하게 바라봤다.
‘분명 아가씨를 보러 갈 때면 아주 거침이 없던 이였는데.’
카만의 표정이 묘하게 변해갈 때 그록은 답했다.
“이, 일단 보러 갑니다.”
일단?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빠르게 그록이 카만 앞에서 사라졌다.
뭐지? 카만의 얼굴 위로 의아함이 나타났다. 하지만 블란의 방으로 향하는 그록의 얼굴은 점점 더 하얘졌고 무뚝뚝하게 변해갔다. 그는 자신의 안주머니께에 손을 올렸다.
“후우.”
깊은 심호흡을 한 후, 그록은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네, 들어오세요!”
그록의 입가에 자연스레 미소가 지어졌다. 힘차고 밝은 목소리였다. 앞으로도 계속 저렇게 밝을 것이란 생각에 그록은 마음이 꽉 찼다. 문고리를 잡고 돌리며 그록은 오늘 어머니에게 보냈던 편지를 떠올렸다.
[어머니, 오늘 청혼을 할 생각입니다.]
달칵. 문이 열렸고 블란이 보였다.
독한 향이 여전히 방 안에 가득했다.
잠시 그록은 문 앞에 서서 블란을 바라봤다. 침대가 아닌 책상 앞에 앉아서 그녀는 시를 적고 있었다. 오늘은 무엇을 적고 있을까?
붓기가 전보다 많이 빠지고 살도 조금 빠졌지만 여전히 작은 실눈은 귀여웠고 열심히 펜을 놀리는 통통한 손과 종이를 바라보는 그 하늘빛 눈동자가 아름다웠다. 사실 아직은 많은 변화가 눈에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록의 눈에는 보였다.
살아 숨 쉬는 블란이. 그리고 앞으로 함께할 블란이.
“음? 그록 씨, 안 들어오세요?”
“들어갑니다.”
그록은 심장 근처 안주머니 위로 손을 잠시 올렸다가 떼며 방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요 근래 그래왔듯이 블란의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그러자 블란은 펜을 손에서 놓으며 그록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 그때,
“블란 양.”
그록이 블란을 불렀다.
음?
블란의 얼굴 위로 의아함이 나타났다. 그록의 손이 평소와 달리 테이블 위가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
그록은 안주머니에서 편지 봉투를 꺼냈다. 그리고 펜을 놓은 블란의 손 위에 봉루를 올려두었다.
“받으십시오.”
블란은 손 위의 하늘색 봉투를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지금도 소중히 보관하고 있는, 그록이 준 첫 편지와 같은 봉투였다.
살짝 고개를 들어 그록을 쳐다보니, 묘하게 굳은 그의 얼굴이 보였다. 블란은 왠지 모를 긴장감을 느꼈다.
“보십시오.”
블란은 나직한 그록의 목소리에 저도 모르게 봉투를 뜯었다. 그록은 작게 심호흡을 하며 이 모습을 바라봤다. 블란은 천천히 편지지를 펼쳤다.
“아.”
나직한 탄성이 그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때 그녀의 귓가로 그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조금 떨리고 있었다.
“답장입니다.”
블란은 편지에서 눈을 떼지를 못했다.
편지지 위에는.
“그리고 제 첫 시입니다.”
방패.
그 시가 새겨져 있었다. 언젠가 블란에게 보내겠다는 답장. 언젠가 블란에게 주겠다던 그 시. 그 시가 오늘에서야 블란에게 전해졌다. 블란은 시를 읽었다.
[세상의 가장 단단하다는 것을 깎아
당신의 앞에 세워두고 싶다.]
당신.
그것은 그록이 말해주지 않아도 자신임을 그녀는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단단한 것의 앞에 서고 싶다.]
방패.
시의 제목이 그녀의 입안에 맴돌았다.
[그래서 이 마음속의 불길로
모든 비를 막을 것이고
모든 바람을 막을 것이고
모든 세상의 어둠을 밝히고 싶다.]
아.
블란의 얼굴이 우는 듯 웃는 듯 묘하게 일그러졌다. 그 순간 다시 그록의 목소리가 그녀의 귓가에 닿았다.
“이 시를 2년 전 봄에 처음 지었습니다.”
시선들에 움츠러들고 아파하던 블란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했을 때. 그때, 그록은 시를 썼다.
“그리고 제가 블란 양의 방패가 될 수 있을 때. 그때 블란 양께 이 시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블란의 시선이 그록에게로 향했다.
“그런데 그때 드리기에는, 제가 많이 모자란 것 같아서 드리지 못했습니다.”
블란은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었다. 모자라다니, 그록이 블란에게 모자랐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녀의 입술 끝이 떨려왔다.
그록은 그 모습을 보며 담담하게, 어느 때보다도 신중히 말했다. 그 목소리는 미세한 떨림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내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블란과 그록의 시선이 서로에게로 향했다.
“제가 블란 양의 방패로 계속 곁에 있고 싶습니다.”
방패. 연구자로서 약속을 지켜낸 자신은 이제 방패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록은 블란의 답을 기다렸다.
조용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 순간 그록은 수많은 감정들이 스쳐지나가는 그녀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곧 정적은 깨졌다.
“싫어요.”
작은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순간 그록의 눈동자가 커졌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에, 긴장으로 굳어 있던 그록의 얼굴이 다른 의미로 굳어졌다. 뒤 이어 청혼을 하려고 했던 그록은 계획과 달리 일이 흘러가자,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 순간, 블란은 한 번 더 말했다.
“방패는 필요 없어요.”
아.
그록의 표정이 묘하게 바뀌어 갔다.
필요 없다고 말하는 그녀의 눈동자가 보였다.
너무나도 다정하고 따뜻한 하늘빛 눈동자.
굳어있던 그록의 어깨가 풀어졌다. 갈색 눈동자와 하늘색 눈동자가 오직 서로만을 담았다. 블란은 말했다.
“대신에 옆에서 같이 걸어갔으면 해요.”
블란이 환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조금씩 건강해지는 그녀의 모습은 생기로 가득 차 그록의 눈에 담겼다.
그녀라는 존재 자체가 눈앞에 있다는 그 사실이 그록에게는 아름다웠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말했다.
옆에서 같이 걷고 싶다고.
그제야 굳어 있던 그록의 얼굴에 조그맣게 미소가 맺혔다.
그래, 그녀의 말이 맞다.
그록은 과거에도 그리고 이번 생에도 자신의 옆에 있어주었던, 함께했던 그녀의 존재를 깨달을 수 있었다.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꽉 채워져 갔다.
원래 계획했던 것과는 다르게 흘러갔지만 이것도 좋았다. 아니, 더 좋았다.
그록은 어느 때보다도 확신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크지 않고 작은 목소리였지만 더 이상 그 목소리는 떨리지 않았다.
“저도. 저도 블란 양과 함께 평생 같이 걸어가고 싶습니다.”
다시 정적이 둘을 감쌌지만.
째깍째깍째깍.
초침 소리를 뚫고 블란은 수줍음을 담았지만 또렷한 목소리로 답했다.
“저도요. 저도 평생 함께하고 싶어요.”
블란의 답을 듣는 순간, 묘한 감정이 그록의 온몸을 감싸 안았다. 그 감정을 그록은 알고 있었다.
환희.
환희가 그록을 감싸 안았다.
평생 같이 걸어가기.
두 사람은 함께 또 하나의 약속을 했다.
그록은 평소처럼 담담하게 물었다.
“그러면-”
하지만 그 눈빛이 묘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언제 결혼하는 것이 좋으실 것 같습니까?”
“……네?”
순간 블란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러고는 급속도로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블란은 과하게 반짝이는 그록의 눈동자를 보았다.
평생, 평생 함께하기로 했지만. 갑자기 바로 결혼이라니! 아니, 방금 한 게 결혼 약속이 맞기는 하지만!
그녀는 그제야 그록이 평생 함께하자고 한 말이 실감 났다. 블란은 붉어진 얼굴로 한 손을 꼼지락거렸다. 한참 동안 손을 꼼지락거리던 블란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제가 완전히 낫고.”
그록은 떨리는 마음을 꾹 참으며 블란을 바라봤다.
“저도, 그리고 그록 씨도 서로 꿈을 어느 정도 이루고 일이 자리 잡힌 후에 했으면 해요.”
아.
그록은 블란의 꿈을 떠올렸다.
자신의 첫 시집을 출간하는 것.
우물쭈물하며 바라보는 블란을 향해 그록은 환한 미소와 함께 답했다.
자신의 꿈은 이미 하나 이루었다.
블란과 함께하는 것.
“좋습니다.”
그리고 그록은 블란의 꿈도 이루어지길 바랐다. 아픈 와중에도 펜을 놓지 않았던, 강인하고 아름다웠던 그녀가 더 자신의 꿈을 펼치길, 그록은 진심으로 원했다.
“정말 좋습니다.”
연신 무뚝뚝한 얼굴로 좋다고 말하는 그록을 보며 블란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에 그록도 따라 웃었다.
이날 블란의 일기장에는 또 하나의 글귀가 새겨졌다.
[앞으로 같이 할 일.]
[1. 도서관에서 같이 공부하기.]
[2. 같이 1년 동안 준비하기.]
사각사각.
세 번째가 채워졌다.
3. 평생 같이 걸어가기.
미래를 향해, 꿈을 향해 두 사람은 앞으로 함께 걷기로 약속했다.
그록은 블란과 평생을 약속했다.
오늘 이 자리를, 이 미소를 그록은 평생 기억할 것 같았다.
-본편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