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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접근하는 이유-52화 (51/95)

# 52화

52.

블란은 빨리 약속 장소로 가야 했지만 그럴 수 없음에 어찌 해야 할지를 모르고 연신 얼굴에 난감함을 드러냈다.

요즘 그녀는 자신이 겪는 일들이 신기했고 정신이 없었다.

블란은 옆을 바라봤다.

“서언배애니이이임!”

자신의 팔에 매달려 떨어질 줄을 모르는 문학 동아리 글마음 회장 메리를.

메리는 블란에 팔에 착 달라붙듯 매달리고선 연신 그녀에게 말했다.

“아! 제발, 진짜 제발! 아아무우거엇도오! 안 하셔도 돼요! 그러니까, 제발! 네? 네?”

“아, 아니 그게.”

블란은 난감함에 메리를 보던 시선을 돌려 주위를 배회했다. 하지만 마주치는 눈길마다 흠칫하며 블란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지금 블란이 메리와 서 있는 곳은 남 우드 아카데미 3학년들이 주로 강의를 듣는 건물이었고 지금 그녀의 시선을 피하는 이들은 3학년이었다.

예전이라면 블란을 빤히 바라보거나 대놓고 수군거렸을 시선들인데, 이제는 많이 변했다. 아주 많이. 그것도 축제 뒤에 한 번. 그리고 이번에 한 번. 급격하게.

“선배니임, 제발요. 네?”

그리고 그 사실이 블란에게는 묘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더 신기한 것은 그렇게 자신을 대놓고 비웃는 이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행복하고 기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었다.

막상 이렇게 되니, 느껴진 것은 단 하나였다.

상관없다.

이제 블란 자신의 삶은, 저런 시선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그냥 말 그대로 상관없었다.

“선배! 제 말 안 듣고 계시죠?”

“으응? 아, 아냐, 아냐.”

“아니기는요!”

메리는 장난스럽게 블란을 흘겨보다가 다시 들러붙으며 말했다.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는 주위 사람들 모두의 귀에 닿았다.

안 그런 척하면서도 남 우드 아카데미를 발칵 뒤집어 놓은 블란 샤를에 대해 궁금해 하는 모든 이들의 귀에 닿았다.

“지금 서 우드 문예 창작학과랑 국문학과, 문헌정보학과, 철학과! 진짜 글이나 인문학과 조금이라도 관련 있는 곳에서 저희 동아리에 연락이 온단 말이에요. 선배님이 저희 동아리인 줄 알고요. 지금, 진짜 난리가 났는데!”

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메리와 블란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진짜! 저희 동아리 살려주신다 생각하시고 선배님, 명예 회원으로 들어오시면 안 될까요?”

“그, 그런 거 없다고 들었는데.”

“만들면 되죠! 그까짓 거 선배님을 위해서 만들면 되죠! 뭐 어때!”

메리는 블란의 얼굴에 나타난 갈등을 보고는 놓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선배님 귀찮게 해드리지 않을 거구요. 아무것도 안 하셔도 돼요. 그냥 이름만 올려주시면 그것만으로도 저희는 정말 감사해요. 사실 저희 동아리 전체에서 다 온다고 한 거 저만 온 건데.”

블란은 메리를 힐끗 바라봤다.

“선배님, 네?”

메리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다른 여러 곳에서 저희 동아리에 관심을 보내는 때에 이 기회를 살리고 싶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그냥 선배님은,”

팔을 슬쩍 놓는 메리를 블란은 바라봤다. 메리는 어딘가 비장한 표정으로 많은 이들이 지나가는 복도 위에서 두 팔을 벌린 채 외쳤다.

“선배님은 우리 우상이에요! 진짜로! 엄청!”

헐.

누군가의 황당함을 담은 목소리가 들렸다. 순간 사방에서 메리를 쳐다보았고 덩달아 블란도 함께 바라봤다.

하지만 메리는 진지했고 당당했다, 아주.

대신 블란의 얼굴이 부끄러움으로 벌겋게 물들었고 그녀는 황급히 띄엄띄엄 답했다.

“그, 우선 생각해볼게.”

“네! 사랑해요, 선배님!”

“으응.”

어색하게 웃으며 걸어가는 블란의 등 뒤에 대고 메리는 연신 ‘사랑해요’를 외쳤다. 그리고 블란이 보이지 않게 되었을 때.

휙!

주위를 사납게 바라봤다. 그 순간 메리를 보고 있던 시선들이 다른 곳으로 향했다.

뭘 그리 보고 있어?

선배인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니꼬운 표정으로 3학년들을 바라보던 메리는 블란과 반대방향으로 걸음을 옮겼다.

솔직히 말해 블란이 싫어하면 동아리에 데려오고 싶지 않은 게 메리의 속마음이었다. 하지만,

“어때? 어떻게 됐어?”

“잘 말씀드렸어?”

자신은 문학 동아리 회장이다.

메리는 자신을 향해 눈을 빛내는 회원들을 향해 걱정 말라는 듯 엄지를 척 올려보였다.

그녀는 좋아하는 2학년 회원들과 1학년들의 반짝이는 눈을 보면서 작게 미소를 그렸다.

정말 블란은 이제 우상이었다.

적어도 여기 눈앞의 동아리 회원들에게는. 특히 아직 여성 문인의 어려움을 덜 겪어본 1학년들에게는.

그래서 메리는 블란이 필요했다.

온실 속 화초로 자라고 싶지 않은데 그렇게 자라야만 하는 자신들에게 블란은 하나의 지표가 되어줄 것이다. 관상용 화초가 아닌 드넓은 초원에 자리한 하나의 살아 숨쉬는 존재로.

메리는 블란의 긍정적인 답을 간절히 바랐다.

그리고 메리와 헤어진 블란은 또 한 번 당황스러운 일을 마주했다. 메리와 있을 때보다 더 했다.

“어때요? 블란 작가니임~”

“예? 아, 아니 그게.”

교양 수업인 문학 담당 교수가 환하게 웃으며 건네는 말에 블란의 얼굴 위로 어색한 미소가 걸렸다.

블란 작가님이라니!

그리고 저, 저건!

저건 너무하지 않은가!

“하하하하, 내가 힘을 써봤지요. 이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학장님! 우리 작가님의 업적을 알려야지요.”

블란의 눈에 보였다.

곧 아카데미 정문 앞에 매달 것이라는 아주 기다란 현수막이.

그리고 그 현수막에는]적혀 있었다.

[남 우드 아카데미 3학년 블란 샤를의 탄신일 기념 문예 공모전 수상을 축하합니다!]

아주 커다란 글씨로.

3년 동안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이런 건 처음 보는 블란이었다.

그녀는 학장님과 문학 교수님, 그리고 주위의 교수님들을 바라봤다. 아주 기대로 가득 찬 눈빛이었다. 블란은 침을 삼키곤 입을 열었다.

“그, 아직 정확히 어떤 상인지도 발표가 안 났는데…….”

탄신일 기념 문예 공모전은 수상자들에게 초대장을 보냈지만 정확한 상 이름은 그 당일에 발표했다.

그렇기 때문에 블란은 자신이 제일 아래인 장려상이라고 생각했다.

“그게 무슨 상관인가요? 받았는데! 받은 게 중요하지!”

문학 교수는 아주 경기를 하듯이 들떠서 말을 이었다.

“두 번째 최연소 수상자예요! 최연소! 거기다가 여성이고!”

학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몇몇 지켜보던 이들도 머리를 끄덕였다. 단순한 상이 아니었다.

“문예 공모전 중 최고인 탄신일 공모전이고 거기서 극복의 상징이신 고 케인 시인님이 18살에 받은 이후로 두 번째 18살 최연소 수상자이며, 덧붙여 여성입니다! 블란 양, 이 의미가 무엇인지 정녕 모르겠습니까?”

문학 교수는 자신이 말을 하면서도 어떤 경이와 벅참을 느끼고 있었다.

이건 정말 엄청난 일이었다. 자신의 대에 이런 일을 겪을 수 있다는 것이 교수는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블란은, 소녀는 모르는 것 같았다.

여전히 어색한 미소와 꼼지락거리는 두 손이 참으로.

그래서, 교수는 이해되었다. 그녀는 이래서 받을 수 있었구나, 하고.

아니, 쓸 수 있었구나, 하고.

“하여튼 이것은 알려야 합니다. 무조건!”

“네, 네.”

블란은 어색하게 답하면서도 시야를 전부 차지한 현수막의 크기에 귀가 벌겋게 물들었다.

“자, 시간이 되면 우리 작가님하고 대화 좀 나누어볼 수 있을까요?”

우, 우리 작가님이라니!

블란은 그 호칭에 더 벌겋게 물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거절의 말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그록과의 약속이 먼저 있었다.

“그, 죄송합니다. 약속이 있어서요.”

“아, 그렇군요. 그러면 다음에 괜찮죠?”

“네! 다음에는 됩니다.”

블란은 문학 교수와 들뜬 학장의 배웅을 받으며 본관 건물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후우.”

정신없이 몰아치는 일들에 블란은 살짝 고개를 흔들며 그 어지러움을 털어냈다. 그 순간, 다시 고개를 든 블란은 뜻밖의 인물들을 마주쳤다.

제니와 그녀의 무리였다.

‘네 처지는 네가 더 잘 알잖아?’

‘돈혐지면 돈혐지답게 살아야지, 안 그래?’

그녀와 그녀의 무리가 자신을 둘러싸고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지금은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제니가 블란을 빤히 바라봤고 블란 역시 그런 제니를 빤히 바라봤다. 제니의 입이 뭐라고 할 듯이 열렸지만 블란은 이를 무시하고선 걸음을 먼저 옮겼다.

“하!”

제니는 사라지는 블란을 보며 기가 차다는 듯이 탄식을 내뱉었다. 여전히 뚱뚱하고 혐오스러운 뒷모습이 보였다.

“남자친구 만나러 가는 건가?”

제니는 곁에 있던 누군가가 하는 말이 들려왔다.

“그렇겠지. 남자친구는 올해의 논문으로 선정됐다며? 둘 다 장난 아니네.”

“에이. 올해의 논문보다 탄신일 문예 공모전이 더 크지 않나? 아닌가?”

“아니지. 저 나이에 올해의 논문에 선정된 것도 엄청난 거지. 약초학과에서는 천재가 나왔다고 난리라던데.”

“그래? 이야.”

감탄과 부러움을 담은 목소리에 제니는 저도 모르게 쏘아붙이듯이 말했다.

“그래봤자, 돼지잖아. 어차피 평생 저리 살아야 할 텐데.”

그 순간 주위는 조용해졌다. 제니는 그 적막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자신의 시선을 피하거나 혹은 꺼리는 태도가 느껴졌다.

“뭐? 내 말이 틀렸어?”

“아니. 저거 워보트 병 때문이라던데?”

“알아! 곧 죽는 병!”

제니의 답에 더 주위는 조용해졌다. 제니 역시 입을 꾹 다물었다. 자신의 시선을 피하던 시선들이 자신을 바라보며 말하고 있었다.

어떤 기분 나쁜 말들을.

그 순간,

“자, 자, 조심해서 옮겨요. 튼튼하기는 하지만 이 현수막 찢어지면 곤란하답니다아~”

아주 신이 난 문학 교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고 사람들 몇몇이 커다란 천막을 본관 앞으로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제니와 그녀의 무리, 그리고 지나가던 이들 모두 볼 수 있었다.

[남 우드 아카데미 3학년 블란 샤를의 탄신일 기념 문예 공모전 수상을 축하합니다!]

블란의 수상을 축하하는 커다란 현수막이 남 우드 아카데미 정문에 커다랗게 걸리는 것을.

그 시각, 그록은 블란과 만나기 위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서 우드 아카데미를 거니는 그를 향해 많은 이들이 시선을 보냈다.

“저 사람이라고?”

“어. 이야, 올해의 논문이라니. 진짜 천재긴 천잰가 보네.”

“와, 사람 맞아?”

질투와 감탄, 부러움, 호기심. 모든 의미를 담은 시선들이 그록에게로 향했다.

18살. 이전에 더 어린 연구자 중에서도 올해의 논문으로 선정된 이들이 있었지만 그들은 이미 100년 전의 인물들이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모두 책에 기록되는 위인이 되었다.

“진짜 대단하네. 그래서 연구 주제가 뭐래?”

“몰라. 탄신일 행사에서 올해의 논문 발표하잖아. 그때 알 수 있지 않아?”

“아. 언제 기다리지, 궁금한데.”

“야! 넌 철학과면서 약초에 대해서 어떻게 알려고?”

“그냥 궁금한 거지.”

그렇기에 그록에 대한 서 우드의 관심은 엄청났다. 확연히 드러난 어떤 움직임은 아니었지만 더 깊이 있었고 더 넓었다.

왜냐하면 이곳은 마프렌 왕국 최고의, 그리고 최대의 지혜를 바라는 이들이 모인 곳이었으니까.

아무리 그 본질이 퇴색했다고 해도 사라지지는 않았다. 그것은 이들에게 일종의 자존심이었으니까.

“아, 근데 쟤 여자친구도 엄청나다며?”

“어. 문창과 애들 난리 났잖냐. 그리고 들리는 바로는,”

한 남학생은 기가 차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우드 문예 공모전 알지?”

“어.”

“거기 작년에 장려상 블란 샤를이 받았는데, 필명으로 냈잖아. 그래서 누군지 드러나니까 상장만 주고 상패도 안 주고 시상식에도 못 오게 했거든.”

“헐. 진짜? 난 왜 몰랐지?”

남학생의 말을 듣던 동기는 기가 차다는 말했고 그 반응에 남학생은 한쪽 입꼬리를 삐뚜름하게 올리며 말을 이었다.

“네가 언제 시에 관심을 뒀냐? 어쨌든 그래가지고 이번에 난리가 났잖냐. 어찌 보면 우드 문예 공모전 심사자들은 엄청난 인재를 스스로 놓친 거고.”

“또, 자기들 공모전 이름에도 먹칠을 한 게 될 테고?”

“그렇지.”

“이야. 재밌게 돌아가네.”

그렇지. 재밌게 돌아가지.

남학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문창과와 도서관 행정실은 지금쯤 아마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는 저 멀리 걸어가는 그록의 뒷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그록 바서와 블란 샤를.

어떻게 저런 사람 둘이 만난 거지?

그리고 어떻게 둘 다 이런 큰일을 할 수 있었던 거지?

새삼 그런 궁금증이 들었다. 이는 그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동, 서, 남 우드의 많은 학생들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전혀 모르는 그록과 블란 두 사람은 마치 금광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기분 좋은 얼굴의 릴리를 볼 수 있었다.

위스 찻집을 찾은 두 사람은 지금,

“이것도 먹고.”

탁.

“요것도 먹고.”

탁.

“이것도 마셔요. 아, 더 줄까요?”

“아닙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릴리는 기분이라며 블란과 그록이 먹을 수 있는, 쓰면서도 위에 부담이 안 가는 케이크와 차를 마구마구 테이블 위에 쌓고 있었다.

얼떨떨한 얼굴의 블란과 무뚝뚝한 얼굴의 그록을 그녀는 흐뭇하게 바라봤다. 요즘 그녀는 찻집에서 두 사람을 향한 감탄과 놀람, 그리고 질투 담긴 이야기들을 들으며 꼬시고 재밌어서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럼 더 필요하면 나 불러요.”

“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사라지는 릴리를 의아하게 보던 그록은 블란을 다시 바라봤다. 며칠 전에 그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그, 아버지께서 그록 씨만 괜찮다면 같이 갔으면 한다고, 말해보라고 하셔서요. 어떠세요?’

블란의 아버지 레온 샤를은 그록에게 우드에서 수도까지의 여정을 함께하자고 제안을 했다. 그때 그록은 며칠 뒤에 답하겠다고 했고 그 며칠 뒤가 오늘이었다.

[정말 너무 기쁘고 자랑스럽구나. 우리 아들, 정말 대단해.]

어제 어머니에게서 답장이 왔다. 편지 안은 온통 같은 말의 반복이었다.

우리 아들 대단해.

사랑해.

자랑스러워.

엄마와 아빠는 너무나도 기쁘다.

하지만 그 같은 말이 지루하지 않았다. 그록은 오히려 읽고 또 읽었던 것 같다. 몇 번이나 읽고 난 뒤 맨 마지막에 적힌 구절이 그록의 눈에 들어왔었다.

[아버지가 이미 짐 챙겨놓으셨단다. 나도 그렇고. 그런 날을 일을 빼야지. 꼭 가마.]

수도와 가까운 곳에 위치한 그록의 고향은 하루면 수도에 닿을 거리였다. 그래서 그록은 올해의 논문에 뽑힌 것을 편지로 알리며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짧게 덧붙였었다.

[혹시 보러 오실 수 있으십니까? 어머니 일이 바쁘시다면 괜찮습니다. 아버지 연구도 그렇고. 혹시나 해서 그냥 여쭙습니다.]

그록은 어머니의 답장을 떠올리며 블란을 향해 입을 열었다.

“블란 양.”

“네!”

방긋 웃어 보이는 블란의 모습에 그록은 절로 입꼬리를 위로 올리며 말했다.

“저도 같이 가고 싶습니다.”

“진짜요?”

“네.”

오오.

블란이 작은 목소리로 기쁨을 표했다. 그록은 그 모습을 보며 덧붙였다.

“첫 여행이 되겠군요.”

탄신일 기념이 끼인 11월 첫째 주. 그때 수도는 아주 아름다우며 화려하다고 들었다. 그곳에 함께 간다면. 그리고 둘 모두 자신이 바라던 것을 인정받게 된다면!

블란과 그록 둘은 각자의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에 행복의 미소가 입가에 맴돌았다.

“그러면 아버지께 말씀드릴게요.”

“네. 아, 저희 부모님도 오십니다.”

“그록 씨 부모님이요?”

“네.”

와아.

작게 입 모양으로 감탄하는 블란의 얼굴이 더 밝아졌다. 이를 그록도 밝은 얼굴로 마주했다.

그리고 10월 말.

“오랜만이군.”

“반갑습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그저 그렇지.”

그록은 레온 샤를과 비서 펠. 그리고 몇몇의 일행들과 만났다.

수도로 떠나는 날이었다. 원래는 서 우드와 남 우드에서 배웅 인사를 하겠다며 준비를 하려 했지만 그록과 블란이 거절했다.

“크흠. 그럼 갈까?”

“네! 어서 가요, 아버지!”

해맑은 블란의 들뜬 목소리에 레온은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미소를 그렸다. 하지만,

“네.”

그록의 답에,

“크흠.”

헛기침을 하며 입꼬리를 내렸다. 이를 지켜보던 비서 펠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블란에게는 웃어주고 그록 앞에서는 일자로 입을 꾹 다무는 그 모습을 자꾸만 반복하는 레온의 모습에 펠은 며칠 전을 떠올렸다.

‘왜 블란 것만 챙기지?’

‘네?’

‘그록 바서 그 녀석 것도 챙겨.’

‘그렇지만 그록 군은 자기 것은 본인이 챙기지 않을까요?’

‘……그냥 챙겨놔.’

쯧쯧.

왜 뒤에서는 다 챙기면서 정작 앞에서는 저렇게 불퉁하게 구는지.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가 되었다.

“신나는군요.”

“네! 진짜 좋아요!”

블란이 그록을 향해 환히 웃는 모습은 그 못난 외모와 달리 참 예뻤으니까. 그 모습에 어느 아버지가 질투를 안 하겠는가.

이번 여정의 모습이 어떨지.

펠은 눈앞에 선하게 그려지는 광경에 저도 모르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지만 그는 몰랐다.

“자네도 어서 타지.”

“네. 감사합니다.”

레온의 일자로 꾹 다문 입이나 조금 못마땅하다는 듯이 보내는 시선에 그록이 생각하는 바를 그는 몰랐다.

‘정말 다정하시구나. 역시.’

과거에 비하면 아주 다정해진 레온의 모습에 그록은 편안함과 함께 바뀐 삶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기분이 좋았다.

이는 그록을 살피며 기를 죽이려 했던 레온의 의도와 펠의 걱정을 모두 비껴가게 만드는 생각이었지만 아직 레온과 펠은 몰랐다.

“그럼 이제 출발하겠습니다.”

그록은 수도로 향했다.

그리고 그 옆엔 블란이 함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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