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화
41.
그는 자신에게로 향한 사람들의 시선과 마주하며 툭 내뱉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사실을 말하는 것처럼.
“오래 살면 서른인 병이 있습니다.”
비서 펠은 저도 모르게 움찔하며 레온을 바라봤다. 블란의 아버지, 레온. 그는 아까부터 아무런 움직임 없이 단상만을 주시했다.
“여기 계신 학생분들이 졸업하시면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그록은 외부인만큼이나 많은 동, 서, 남 우드 아카데미 학생들에게 물었다. 하지만 그 답은 본인이 바로 했다.
“열여덟입니다.”
그는 쉬지 않고 이어 말했다.
“그리고 길게는 12년을 더 살다가 죽습니다. 그 병에 걸린 사람들은요.”
그록은 유리가 깨진 시계를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그 사람의 삶은 이 초침 시계와 같습니다.”
째깍째깍째깍.
“특히, 산산이 부서진 이 초침 시계와도 같습니다.”
블란은 멍하니 그록을 바라봤다. 저도 모르게 마주 잡은 손바닥 안에 땀이 고였다.
자신이 아닌 더 멀리, 대강당 안의 사람들을 보며 말하는 그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워보트 병.”
두 손을 맞잡은 그녀의 손이 조금씩 떨려왔다.
“그 병의 이름입니다.”
비서 펠은 순간 레온이 주먹을 꽉 쥐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워보트 병? 그게 뭐야?”
“몰라. 불치병인가 본데?”
다른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레온의 귓가에 닿았다. 그는 그 소리들을 흘려들으며 그록의 목소리에만 집중했다.
“워보트 병은 현재 불치병입니다.”
담담하게 말하는 그록은 그 표정도, 목소리도 무뚝뚝했지만 묘하게 어딘가 요동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병의 증상에 대해서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록은 천천히 단상 위를 걸으며 말했다.
“우선 체력과 면역력이 급격하게 약해집니다. 그래서 늘 조심해야 합니다. 또한 소화 기능이 떨어지고 위에 다른 합병증이 생길 위험이 커집니다. 그래서 먹어야 될 음식이 정해져 있습니다.”
우뚝. 걸음을 멈춘 채 그는 사람들을 보며 말했다.
“여러분들이 편하게 식당에서 가서 먹는 음식들을 그분들은 먹을 수 없습니다. 소화가 힘들거든요.”
사람들을 바라보는 그록의 눈빛은 담담했지만 강한 빛을 띠고 있었다.
“정말 괴롭지 않겠습니까?”
하지만 그 목소리만큼은 침착했다. 묘한 분위기였다.
“그리고 병이 초기를 지나 말기쯤에 가면 대부분 침대에서 하루하루 생을 마감하면서 천장만을 보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그 담담한 목소리와 강한 눈빛 덕분인지 서서히 사람들의 머릿속에 워보트 병에 걸린 한 환자의 인생이 그려지고 있었다.
그 상상에 더하는 듯 그록은 말을 이었다.
“20대.”
오래 살면 서른인 병.
“보통 가장 인생의 꽃일 시기라고 불리는 때에, 여러분들이 아카데미를 벗어나 직장에 취직하고 꿈을 펼쳐나갈 시기에 그분들은 침대 천장만 오직 보며 살아갑니다.”
몇몇 사람들의 얼굴이 찡그려졌다.
그 찡그림과 마주하며 그록은,
“그리고…….”
선고하듯이 말했다.
“죽습니다.”
무거운 적막이 대강당 안을 감쌌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 삶이 어떠시리라 생각하십니까?”
그 적막에 대고 그록은 물었다.
“불쌍합니까? 안됐습니까? 그런 사람이 있다면 위로를 하고 싶습니까?”
몇몇이 그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레이 교수는 자신의 등 뒤편 한 여자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불쌍해.”
그는 저도 모르게 블란을 바라봤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그녀의 얼굴은 굳건해 보였다. 하지만 떨리는 손을 감출 순 없었다.
잠시 멈췄다가 그록은 다시 말을 이었다.
“워보트 병에 대해서 조금 더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그는 다시 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워보트 병에 걸리면 온몸이 퉁퉁 붓고 또한 위의 기능이 떨어져 입에서 역한 냄새가 납니다. 그리고 치료에 쓰이는 약초들이 대부분 향이 독해 늘 몸에서 역한 냄새가 납니다.”
그록은 쉴 새 없이 말했다.
“또한, 몸이 붓는 것뿐만 아니라 살도 찝니다. 초기. 그나마 밖으로 나가서 걸어 다니고 세상을 볼 수 있을 그 시기에…….”
그는 단상의 앞쪽, 사람들 가까이로 다가가며 말했다.
“워보트 환자들은 뚱뚱하고 역한 냄새를 풍기는 외양을 가지게 됩니다.”
그 순간 동서남 아카데미 학생들은 한 사람을 떠올릴 수 있었다.
뚱뚱한 데다가 역한 냄새를 풍기는 여자.
돈혐지.
돈 많고 혐오스러운 돼지.
그리고 유명한 그록의 여자친구.
블란 샤를을.
방금 불쌍하다고 말했던 둘째 줄의 여자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막았다. 앞에는 블란의 커다란 등이 보였다.
그록은 조금 수군거리는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그리고 그런 외양의 사람을 어떤 사람들은 바라봅니다.”
그는 손을 들어올렸다.
그 손에는 대장간에서 주문제작한 작은 망치가 들려 있었다.
“이 망치처럼요.”
그는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인 채 땅을 보며 말했다.
“이야, 저렇게 뚱뚱한데 왜 사냐? 아, 눈 버렸다.”
순간 몇몇의 사람들은 흠칫했다. 그록은 바닥에 부서진 유리조각을 보며 담담히 독백하듯이 말했다.
“뚱뚱하다고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그는 말을 이었다.
“쟤 입 냄새 심하대. 저런 애는 밖에 나다니면 안 되지.”
바닥에 시선을 둔 그록이 모두에게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과 대화 한 번 해보지도 않았는데.”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제일 먼저 보였다. 맨 앞줄 가운데에 앉아 있는 블란이.
그록은 잠시 눈을 감았다. 그 상태로 입을 열었다.
“그 얇은 유리 막을 부숴버립니다.”
여전히 눈을 감은 채 그는 말했다. 그 모습에 절로 사람들은 상상이 되었다.
“그래서 그나마 걸어 다닐 수 있는 초기에 세상을 제대로 못 보고 삽니다. 워보트 병 환자들 대부분은요.”
초침처럼 짧은 생을 사는 사람들이 유일하게 세상을 누릴 그 시간을.
그 사람들은 누리지 못하고 살았다.
“참으로,”
그록은 천천히 눈을 떴다.
“이 망치가.”
그는 천장을 바라본 채 말했다.
“잔혹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시선이 점점 사람들에게로 향했다. 담담한 시선인데 어째서인지 그 시선이 마치 초침의 날카로운 끝처럼 날카롭게 사람들에게로 다가왔다.
“진정 시간을 뺏어가는 것은 이 망치와 같은 시선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블란은 순간 머릿속으로 수만 가지의 장면들이 지나갔다. 조금씩, 조금씩 자신을 작아지게 만들었던 그 망치와 같은 눈빛, 말, 행동이 떠올랐다.
줄어드는 시간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무섭고 두려운 것들이었다.
그녀의 눈가가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제가 이 자리에 나온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하지만 블란은 꾹 참으며 그록을 바라봤다.
단상 위 눈부신 빛 아래에서 그록이 말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그록의 시선이 블란에게 닿았다가 다른 이들에게로 향했다.
“저는 이 짧은 시간을, 초침을 분침으로 그리고 시침으로 만들고 싶어서 워보트 병의 치료에 대해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록은 처음엔 이 병을 고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만큼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필요한 것은,”
담담한 그록의 목소리가 대강당 안에 울려 퍼졌다.
“이 삶의 시간을 늘리는 것만큼이나.”
그록은 모두를 보며 말했다.
“그 시간이 행복한 것 또한, 세상에 나갈 수 있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순간 들려온 말에 꾹 참으며 듣고 있던 블란은 결국 무너지고 말았다.
행복한 것.
세상에 나갈 수 있는 것.
그녀의 눈가가 뿌옇게 변하기 시작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향한 시선이 삶을 더 행복하게 해주는 따뜻한 시선이 되길 바랍니다.”
그록을 만나기 전.
블란은 늘 땅을 보고 걸었다. 그러면서도 늘 주위를 살펴야 했다. 혹여 사람들과 부딪치면, 피해를 주면 안 되니까.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땅을 보던 이유는, 무서웠다.
사람들의 시선이.
그록은 천천히 유리가 부서진 채 움직이는 초침 시계로 다가갔다.
“비록 이 시계는 초침밖에 없지만.”
째깍째깍째깍.
“저는 이 가늘고 작은 초침이.”
그록은 주머니에서 하나를 더 꺼냈다.
그것은 첫 번째 커다란 시계에 달린 것과 똑같은 크기의 시침이었다.
“이 시침만큼 크고 단단해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에게로 다가서며 그록은 말했다.
“망치를 잠시 내려두셨으면 합니다. 동정도 필요 없습니다.”
날카로운 시선도.
불쌍하다는 안타까움이 담긴 시선도.
다 필요 없었다.
“그냥 한 번만 그 사람의 눈동자를 봐주시길 바랍니다.”
그록은 천장을 바라봤다.
맑은 하늘을 닮은 블란의 눈동자가 떠올랐다. 그 눈동자를 떠올리며 그록은 단상 아래를 바라봤다. 하지만 순간 보인 광경에 그의 입술 끝이 파르르 떨려왔다.
“그러면 여러분과 똑같이 지금 이 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 보일 겁니다.”
그록은 어색하게 입가에 미소를 그려 넣었다. 그의 눈에는 단상 아래에서 우는 블란이 보였다.
무엇이 서러운지 어깨를 들썩이며 블란은 펑펑 울고 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한 손으로 입을 꾹 막은 채 숨죽여 울고 있었다.
저런 블란의 모습을 그록은 처음 보았다. 그는 목 끝에 차오르는 무언가를 꾹 눌러 삼켰다.
그는 한참 동안 블란을 바라봤다. 사람들은 그의 시선이 어디를 향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무도 말하지 않는 조용한 시간이었다. 한참 뒤 그록은 입을 열었다.
“이상, ‘잔혹한 시선’에 대한 발표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록이 허리를 숙이며 인사했고 대강당은 정적이 감돌았다.
그 순간,
짝짝짝짝짝-
그레이 교수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있는 힘껏 박수를 쳤다. 그는 아무 말 없이 계속해서 박수를 쳤다.
몇 초 뒤, 이를 시작으로 대강당 안에는 커다란 박수가 울려 퍼졌다.
짝짝짝짝-
하지만 환호를 하는 사람도, 다른 말을 하는 사람도 없었다. 다들 그저 박수만을 보냈다. 그러나 그 소리만큼은 이번 축제 기간 중에 가장 컸다.
그록은 그 소리들을 들으며, 일어선 사람들의 박수를 보며 블란을 바라봤다.
그 순간에 블란도 그를 바라봤다.
그는 어설프게 블란을 향해 미소를 그려보였다. 이를 본 블란 역시 눈물을 흘리며 미소를 그려보았다.
박수로 가득 찬 대강당 속에서 비서 펠은 괜히 코끝이 찡해 저도 모르게 코를 부여잡았다. 그 순간,
“어?”
펠은 돌연 일어나 강당 밖으로 향하는 레온을 볼 수 있었다. 왜 벌써? 예의상 박수가 끝날 때까지 아무도 나가지 않는데! 펠은 황급히 레온을 따라 밖으론 나갔다.
그리고,
“아.”
그는 탄식을 내뱉었다.
대강당 앞 계단에 서서 아무 말 없이 하늘을 바라보는 레온이 보였다. 그 눈동자가 담은 빛에 펠은 아무 말 없이 뒤에 서서 레온을 기다렸다.
꽉 쥔 레온의 주먹이 보였다.
한참 동안 레온은 맑은 하늘만 바라보며 서 있었고 그의 얼굴은 무뚝뚝했지만 무엇을 삼키는지 그의 목울대는 몇 번이나 무언가를 삼켜내고 있었다.
비서 펠은 아무 말 없이 지금 이 순간 레온의 시간을 기다려주었다.
*
“수고했어. 훌륭한 발표였네.”
그레이는 단상에서 내려온 그록을 와락 안아주며 칭찬했다. 그록은 어색하게 미소를 그려보였다. 그레이는 이를 보고 씨익 웃더니 뒤를 돌아보며 그록에게 말했다.
“어쨌든 난 인사를 했으니 이만 가겠네.”
그레이는 가볍게 인사를 하고선 그록에서 멀어져갔다. 그리고 그레이의 뒤에 서 있던 블란이 앞으로 그록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록도 블란에게로 다가갔다.
그록과 블란은 마주했다.
블란은 빨갛게 물든 눈가를, 언제 서럽게 울었냐는 듯 예쁘게 접으며 말했다.
“고마워요. 그록 씨.”
그 말에 그록은 무뚝뚝하게 답했다.
“당연한 것을 한 것뿐입니다.”
블란은 지금 이 순간 자신의 시간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잔혹한 시선.
시선을 바꾸기 위한 그록의 발표가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