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화
38.
“저기, 근데요, 선배님.”
“왜?”
봄이 되니 우드 아카데미에 새로운 바람이 불어왔다. 그건 바로 이 남학생 눈앞의 징글징글한 신입생들이었다.
약초학과 신입생들의 아카데미 안내를 맞게 된 그는 귀엽기는커녕 시꺼먼 남자 놈들을 보며 툭툭 내뱉었다.
“그 천재라는 선배님은 어디 가야 뵐 수 있습니까?”
“아.”
순간 그 신입생 주위 1학년들의 눈빛이 번뜩이는 것이 보였다. 흰 코트를 입은, 패기 가득 찬 16살 남자애들의 그 번뜩임은 정말이지 도우미 2학년에게는 끔찍했다.
“실험실.”
“오! 역시!”
신입생들은 저들끼리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끄덕여댔다.
전무후무한 점수를 기록하는 약초학과의 천재!
그 선배님을 닮고 싶은 것이 이 신입생들의 소망이었다.
“왜? 그 선배 얼굴이 보고 싶냐?”
“네? 아, 네, 네! 그록 선배님처럼 되는 것이 제 꿈입니다!”
“그래?”
순간 2학년이 씨익 웃었지만 그 웃음의 어둠을 보지 못한 신입생들이었다.
“곧 볼 수도 있을 거야.”
“네?”
“정말요?”
놀라면서도 기대를 한가득 담은 신입생들의 모습에 도우미 2학년은 실험동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여기가 실험동이거든. 보통 실험실 안에 계신다고 들었는데. 지나가는 길에 볼 수도?”
오오오오오오!
한창 변성기의 목소리들이 수줍어하며 환호를 하자, 도우미의 얼굴은 더욱더 구겨졌다.
차라리 남 우드 신입생들 안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루 종일 하겠다!
“그런데 그 선배님이 엄청 멋있으시다고 들었는데.”
“아. 그록 선배?”
“네.”
흐음. 어제 슬쩍 기숙사에서 봤던 그록을 떠올리며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오오오.
그 모습에 또 감탄을 하는 1학년들이었다. 도우미 2학년은 여전히 고개를 끄덕이며 생각했다.
그래, 잘생기긴 했지. 확실히.
“음?”
1학년들을 이끌며 걷던 그는 순간 바람에 실려 온 쓴 향에 잠시 앞을 유심히 바라봤다. 그러고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걸음을 멈춘 그를 신입생들이 의아하게 바라봤다. 도우미 학생은 신입생들과 앞을 번갈아 바라보더니 말했다.
“저기 오시는 분이 우리 약초학과의 가장 우수한 인재라 불리는 그록 바서 선배님이시다.”
“오오오오!”
신입생들은 저들끼리 환호를 하거나 눈을 빛냈다.
90점대의 깨지지 않을 기록! 모든 연구소들이 원하는 인재! 더불어 잘생긴 외모까지!
그들의 상상 속에서 그록은 최고의 선배이자 닮아야 할 롤모델이었다.
“오오오오…….”
설레는 마음으로 이제 입학한 지 2일 된 신입생들은 그록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오오오……오?”
하지만 이내 그 환호는 조금씩 이상하게 변해갔다.
“어?”
“응?”
“오?”
도우미 2학년은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을 씰룩였다. 그는 앞을 바라봤다.
저 멀리서 쉴단의 그 독하고 쓴 향을 두른, 웬 무시무시한 사신 한 명이 다가오고 있었다.
흰 코트를 펄럭이고 있었지만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 눈빛이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1학년들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잘생겼다. 하지만 뭔가 무서웠다.
그들은 인사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자신들을 스쳐 지나가는 그록을 멍하니 바라봤다. 흰 코트가 펄럭였고 그와 함께 아주 독한 약초의 향이 함께 스쳐지나갔다.
“1학년들은 주목.”
도우미는 진지한 얼굴로 그들을 불렀다. 멍하니 되돌아보는 1학년들을 향해 그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저 모습이 바로.”
그는 두 팔을 벌리며 환영하듯이 말했다.
“너희들의 미래 모습이다.”
서 우드 아카데미 사람들이 가장 살벌한 때는 3학년 1학기. 취직이 결정되기 전이었다.
“내가 너희들에게 아주 유용한 팁을 하나, 대대로 내려오는 격언을 하나 말해줄게.”
미소를 지우며 진지한 얼굴로 그는 진정한 충고를 했다.
“3학년 1학기에 재학 중인 우드 아카데미 학생들은 그때만큼은 사람이 아닌 괴물이니, 건들지 마라.”
꿀꺽.
몇몇은 그 분위기에 저도 모르게 침을 다시 한 번 더 삼켰다. 그들은 방금 전 그록의 눈빛을 떠올렸다.
정말로 무시무시했다. 그 비실비실해 보이는 체격에서 뿜어내는 박력은 장난이 아니었다.
“그러니, 지금 3학년 선배님들이 가장 많이 계시는 이 A동 실험동은!”
2학년 도우미는 1학년들을 향해 말했다.
“쥐 죽은 듯이 지나가자.”
1학년들은 답 대신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2학년은 그 모습에 흐뭇하다는 듯이 싱긋 웃더니 다시 안내를 시작했다.
낭만 가득한 청춘 소설을 기대하고 왔을 1학년들에게 취직의 무서움을 보여준 것 같아 2학년은 스스로에게 흐뭇함을 느꼈다.
1학년들 몇몇은 그 도우미를 따라가면서도 힐끗 뒤돌아 그록을 바라봤다. 그 중 한 명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멋있다.”
흰 코트를 펄럭이며 지나가는 그 뒷모습이 꽤 커 보였다.
그록은 그레이 교수의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똑똑똑.
“네. 들어오세요.”
평소처럼 그 잔잔한 목소리에도 그록은 마음이 불편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미 올 줄 알았다는 듯이 편하게 미소 짓는 얼굴이 보였다.
“왔구만. 앉게.”
그록은 묵묵히 그레이 교수와 마주보고 앉았다. 오늘 A동 실험동에서 재크 교수와 면담을 하고 온 그록이었다.
아카데미 학부생으로 입학한 후 한 번 지정된 지도 교수는 그 교수가 버리지 않는 이상 계속 그 교수 밑에 제자로 남아야 했다.
그렇기에 그록은 그레이 교수 밑으로 들어가고 싶어도 들어갈 수가 없었다. 그 사실 때문에 그록은 재크 교수와의 면담 후 마음만 갑갑했다.
“내가 오늘 자네를 부른 이유가 말일세.”
하지만 그레이 교수는 늘 그렇듯 평온했다. 오히려 즐겁다는 듯 입가에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으음. 자네 연구는 잘 되고 있는가?”
그레이의 가벼운 물음에 그록은 진지한 얼굴로 답했다. 다른 이들에게는 대충 답했겠지만 적어도 후원자 베스 노옐과 그레이 교수, 아스트, 블란, 부모님에게만큼은 늘 진지하게 답하는 그록이었다.
“네. 빠르지는 않지만 저번에 교수님이 조언해주신 대로 처음부터 새로이 수정하면서 나아가고 있습니다. 길이 보이지는 않지만 방향은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다행이군.”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레이는 그록을 빤히 바라봤다. 그러고는 흘러가듯이 툭 내뱉었다.
“여름 방학 때 할 일 있는가?”
“실험을 계속 진행할 예정입니다만.”
아직 학회에 논문을 내는 것은 아스트와 그록, 둘만의 비밀이었다. 물론 블란도 알고 있었지만.
“그렇군. 그럼 하리안 제국 가본 적 있나?”
“가본 적 없습니다.”
“그러면 여행은 해본 적 있는가?”
도통 흐름을 알 수 없는 질문들에 그록은 의아했지만 성실히 답했다.
“없습니다.”
“그럼 여름 방학 때 하리안 제국으로 여행을 다녀오는 건 어떻겠는가?”
“……네?”
처음 보는 그록의 당황이 나타난 얼굴에 그레이는 유쾌한 미소를 입가에 그렸다. 그는 그록에게 편지를 하나 건넸다.
“기억하는가? 하리안 제국에 아는 약초꾼이 있다고 했던 것 말일세.”
“네. 기억합니다. 그때 주신 자료들이 정말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사실 그렇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십 년 이상 쉴단을 연구한 그록과 비슷한 수준의 지식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건 엄청나다고 생각하는 그록이었다.
“그래. 그 사람이 말하더군. 예상에 따르면.”
그레이는 마치 맛있는 음식을 코앞에 둔 것마냥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올 여름에 자신이 있는 프시아 군락지에 쉴단이 나타날 것이라고 말이야.”
순간 그록의 눈이 커졌다.
그는 저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그, 쉴단은 언제 나타날지 정확하게 모르는 약초라고 들었습니다만.”
보통 프시아 군락지에서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에 한 번씩 쉴단이 나타난다. 물론 이것도 추정일 뿐 그 정확한 시기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쉴단은 모든 것이 신비에 휩싸인 약초였다.
인공으로 재배를 하려고 해도 인간의 손만 타면 썩고 마는 씨앗을 가진 약초. 그 쉴단의 수확 시기를 안다고?
“그렇지. 하지만 약초꾼들에게는 그들만의 감이 있네.”
그레이는 확신에 가득 찬 어조로 말했다.
“그녀가 그렇게 말한다면 분명히 올 여름에 쉴단을 수확할 걸세.”
순간 그녀라는 단어에 그록은 움찔했지만 쉴단 수확이라는 단어에 눈이 커지며 머릿속이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그레이는 입을 열었다.
“자네에게 내가 미처 말하지 못했지만. 사실 약초꾼이 여자라고 하면 그 색안경이 조금 끼일 것 같아서 말이야.”
“아니요.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단박에 들려오는 그록의 답에 그레이 교수는 미소를 그렸다. 그록의 연인인 블란이 시를 썼으나 상을 수상하지 못했다는 말을 들었다.
서 우드 문예 공모전 최초 여성 수상자의 이야기는 꽤 유명했다.
그레이는 그록이 그런 블란의 연인이었기에 이번 여행에 대한 이야기와 약초꾼 헤리아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쉴단 채취에만 자그마치 30년을 바쳤어.”
아.
그록의 입에서 절로 감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자신이 쉴단에 바친 시간이 20년이었다. 그런데 그 약초꾼은 30년이라고 한다. 그 시간이 얼마나 길고 힘든 시간인지 아는 그록은 문득 전문적인 교육조차 받지 않은 약초꾼이 정리했던 그 자료들을 떠올렸다.
10년을 넘게 연구한 자신과 비슷한 수준의 그 연구 자료들을.
문득 그 약초꾼을 만나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왠지 길이 보일 것 같았다.
마지막 산을 넘을 것 같았다.
강한 예감이 찾아왔다.
그록은 망설이지 않고 입을 열었다.
“여행이라 함은, 그분이 쉴단을 채취하는 곳을 찾아가는 것입니까?”
이미 결정이 난 듯한 눈빛을 보며 그레이는 부드럽게 답했다.
“그래. 약초꾼, 그러니까 헤리아 그녀가 자네에게 보여주고 싶다더군.”
“가겠습니다.”
“그래, 잘 생각했어. 내 생각엔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걸세.”
한 번도 그록은 약초들의 생산지에 가보지 않았다. 하리안 제국이라. 마프렌 왕국조차도 제대로 둘러본 적 없이 연구만 하고 살았었는데. 그록은 갑자기 어려진 것마냥 심장이 뛰었다.
그 순간 한 가지가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다섯 번째. 같이 여행가기.]
블란과 함께 해야 할 일 다섯 번째가 떠올랐다. 미리 자신이 먼저 여행을 가보고 나중에 그녀와 떠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그록은 그레이 교수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 가고 싶습니다.”
“그래. 나머지 일정들이 정해지면 말해주겠네. 내 이 말 하려고 부른 걸세. 할 말 다 했으니 이만 가도 좋네. 3학년이니 바쁘지 않겠나?”
부드러운 목소리와 따뜻한 눈빛을 그록은 마주했다.
자신은 해드린 것이 아무것도 없고, 담당 제자도 아니라서 공을 내세울 수도 없을 텐데.
그록은 아까부터 불편했던 마음을 말했다.
“교수님. 죄송합니다.”
“음? 뭐가 말인가?”
정말로 의아하다는 듯이 바라보는 그레이 교수를 향해 그록은 말을 이었다.
“내년에 박사 과정에 지원하면 교수님 밑에 받아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그제야 그레이 교수는 무엇이 죄송하다고 말하는 지 알 것 같았다.
참, 무뚝뚝하지만 정이 많은 제자였다.
“교수님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다.”
그록은 말을 다하고서 그레이 교수를 바라봤다. 재크 교수를 바라볼 땐 느껴지지 않았던 어떤 긴장감이 느껴졌다. 그런 그록을 향해 그레이는 툭 가볍게 내뱉었다.
“원래 제자 아니었나? 난 자네를 제자라고 생각했는데.”
장난스럽게 내뱉는 그 말에 그록은 긴장이 풀렸다. 그는 고개를 숙이며 인사했고 그레이는 그런 그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말했다.
“교수로 길을 정했나 보구만. 열심히 하게. 재크 교수도 좋은 사람이니 학부 동안 열심히 배우게.”
그록은 좋은 사람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못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레이 교수의 배웅을 받으며 그록은 그의 연구실을 빠져나왔다.
하리안 제국이라.
새로운 계획이 갑작스럽게 생겼지만 그록은 예감이 좋았다. 그는 이 예감을 그대로 가진 채 블란에게로 향했다.
3학년 남 우드 여학생은 새로 입학한 여동생에게 귀찮은 표정으로 안내를 했다.
“그런데 언니.”
“어.”
귀찮아하는 표정에 여동생은 순간 짜증이 났지만 궁금증이 더 컸기에 은근슬쩍 물었다.
“저 선배가 혹시 그, 언니가 말한 그 돈혐지야?”
“야!”
“왜?”
버럭 소리를 지르는 언니의 모습에 놀라 눈을 크게 뜬 여동생은 주위를 휙휙 둘러보았다.
저 멀리 뚱뚱한, 방금 돈혐지라고 불렀던 여자가 서 있었다.
“왜? 왜 그래?”
“입 다물어!”
“읍!”
그리고 자신의 옆으로, 한 잘생긴 남자가 지나가고 있었다. 순간 남자와 눈이 마주칠 뻔했지만 갑작스럽게 입을 틀어막는 언니 때문에 여동생은 숨을 쉬기 위한 사투를 벌여야 했다.
“푸하! 갑자기 왜 그래!”
“야! 너 말 조심해!”
“뭐가? 그냥 물어보는 것도 안 돼?”
3학년 여학생은 저 멀리 이쪽을 주시하며 사라지는 흰 코트의 남학생. 그 유명한 그록 바서를 보며 여동생을 한쪽으로 끌고 갔다. 그녀는 동생에게 속삭였다.
“너 방금 전에 지나간 게 누군지 알아? 돈혐지 남자친구야, 남자친구!”
“헐. 그 제니 언니 무시하고 돼지에 빠진 남자가 저 남자였어? 완전 잘생겼던데? 내 취향인데.”
“허이구. 네 취향이면 뭐하게.”
“내가 꼬셔볼까?”
쯧쯧.
3학년 여학생은 아직 뭘 모르는 여동생을 향해 한없이 깔아보며 혀를 찼다.
“넌 절대 안 돼.”
“왜?”
“쟤는 블란 샤를만 쫓아다니거든. 아주 지극정성이야, 지극정성.”
“헐. 말도 안 돼.”
여동생이 뭐라 지껄이든 말든 그녀는 블란 샤를이 있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록 바서와 함께 걸어가는 블란의 얼굴이 보였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던 그녀는 여동생에게 말했다.
“야. 그리고 앞으로 돈혐지라고 하지 마. 네 선배야.”
“뭐, 몸매나 얼굴 보면 완전 돈혐지가 딱이구만.”
“야. 너 말투 좀 안 고쳐? 아버지한테 이른다?”
“흥.”
그녀는 진지한 눈빛으로 동생에게 말했다.
“어쨌든 돈혐지라고 하지 마. 네 선배고 쟤도,”
잠시 입을 달싹이던 그녀는 말했다.
“여잔데 돈혐지는 좀 심한 것 같다.”
“하! 자기가 작년에 그렇게 비웃으면서 말하더니!”
“아이, 진짜! 어쨌든 그러지 마!”
여동생을 한 번 강하게 째려본 뒤 그녀는 다시 블란을 바라봤다. 이제는 그 뚱뚱한 뒷모습만 보였지만, 그녀의 뇌리에는 남아 있었다.
그록 바서를 향해 환하게 웃던 그 미소가.
그 미소만큼은, 돈혐지라고 하기 미안할 정도로, 꽤 예뻐 보였다.
“하리안 제국이요?”
“네. 아직 확정은 아니고 예정입니다.”
블란은 놀라워하면서도 되레 본인이 들뜬 얼굴로 말했다.
“우와! 가보시고 저한테도 알려주세요.”
“네. 다음에 같이 가지요.”
같이 가자는 그록의 말에 블란은 수줍게 웃어 보였다. 그록은 그런 블란의 손을 잡으며 천천히 거리를 걸었다.
첫 번째. 같이 손잡고 걷기.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왔다. 서서히 꽃봉오리들이 맺히는 계절이었다.
두 사람은 함께 손을 잡고 걸으며 함께하는 두 번째 봄을 맞이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곧 찾아왔다.
우드 시가 가장 화려하고 활기찬 순간.
축제의 시간이.
그록이 일 년 동안 기다리고 기다리던 순간이었다. 그는 기숙사 자신의 방 안 달력 앞에 서서 얼마 남지 않은 축제의 시작일을 바라봤다. 축제는 2주 뒤 시작이었다.
그록은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이제 끝이야.”
돈혐지.
돈 많고 혐오스러운 돼지.
그 말 같지도 않은 말을 지워버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