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화
5.
그록은 침대 위에 누운 블란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워보트 병은 아직까지 고칠 수 없는 불치병이었고 블란은 다른 워보트 병에 걸린 이들에 비하면 오래 버티고 있는 편이었다.
물론 그것도 그녀가 돈이 많기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미안해요.”
그렇기에 그록은 더욱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말 미안해요, 그록.”
왜 그녀는 자신을 볼 때면 매일 미안하다고 하는 것일까.
그록은 점점 더 미안하다는 말을 자주하는 블란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늘 평소와 같은 무뚝뚝한 목소리로 물었다.
“뭐가 미안하다는 건지 모르겠군.”
또 군.
그록은 이렇게 말할 때면 늘 어색하게 웃어 보이는 블란의 미소를 볼 수 있었다. 이제 그녀는 한 손으로 자신의 입을 가릴 힘도 없었다.
그 손은 힘없이 말라비틀어져 있었으니까.
워보트 병 초기와 중기의 사람들을 보면 대부분이 뚱뚱한 체형에 고약한 냄새가 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말기로 갈수록 그 뚱뚱한 체형이 언제였냐는 듯 사라져 해골처럼 삐쩍 말라갔다. 그리고 그 고약한 냄새는 더욱더 심해졌다.
마치 썩은 시체의 냄새와 같다고, 죽음의 냄새라고 학자들은 말했다.
“그러게요. 뭐가 미안한지 저도 모르겠어요.”
블란이 작게 건네는 말에 그록은 무심히 그녀와 눈동자를 마주했다.
어차피 예견한 일이었다.
블란에게 접근하고 나서 그녀가 워보트 병이라는 것을 알았고 이를 알고 그록은 그녀와 결혼을 했다. 그녀야말로 누구보다도 후원자로서 제격이었으니까.
“제가 없어도, 아버지가 후원자로 계속 있어주시기로 했어요.”
“그렇군.”
“네. 그리고 이 저택도 그대로 두기로 했구요.”
대부분 흐릿한 눈동자로 바라보던 그녀가 가끔씩 또렷한 눈빛을 하고 그록을 마주할 때면,
“달라진 것 없이, 그대로. 당신은 그대로 연구하면서 살 수 있을 거예요.”
계속해서 블란은 사후의 일에 대해서 그록에게 말해주었다.
“그렇군.”
그리고 그록이 답할 수 있는 말은 이 말뿐이었다. 이럴 때면 그록은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어 ‘그렇군.’만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록이 건네는 말에 블란은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제가 당신의 유일한 후원자잖아요.”
그록은 다시 알트 차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고는 찻잔을 차탁 위에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당연한 소릴.”
그 답에 블란은 미소를 지었다.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그록은 시계를 바라봤다.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만 가보도록 하지.”
“네. 연구하셔야죠.”
“그럼.”
그록은 늘 그래왔듯이 차 마시는 시간이 끝나자 블란의 방을 나섰다.
달칵.
문을 열자 카만이 밖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이 늙은 의원은 이제 거의 이 저택에서 살다시피 했다. 그록의 장인인 레온 샤를의 간절한 부탁 때문에.
“오늘도 연구하러 가는 겁니까?”
“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참, 바빠 보이는군요.”
카만의 이어진 말에 굳이 답하지 않고 그록은 걸음을 옮겼다. 그의 말대로 요즘 그록은 몹시도 바빴다. 그 자신조차 왜 바쁜지 모르겠지만.
달칵.
연구실에 들어오자마자 짙게 배어 있는 쉴단의 향을 들이마시며 그록은 연구를 시작했다. 이제는 조금씩 실마리가 보이고 있었다. 아주 조금씩.
한 달 전 실험에서 보인 반응을 조금 더 깊숙이 연구한다면, 충분히 쉴단의 진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똑똑똑.
“주인님. 저녁 시간입니다.”
오늘도 역시나 그를 부르는 집사의 목소리를 그록은 듣지 못했다.
한 번 더 집사가 그를 불렀지만 이내 더 이상 아무 목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블란이 침대에서 생활하게 된 이후로 더 이상 같이 식사를 할 일은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록은 그 시간에 대해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고 판단해 더 이상 그 시간을 위해 시계를 들여다보지 않았다.
블란과 결혼을 한 이상 그녀의 배우자로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도리가 아니라면 그록은 굳이 지킬 필요가 없었다.
그는 오직 연구를 하기 위해 그녀와 결혼을 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그녀와의 약속이 아니라면 굳이 다른 일에 신경 쓰지 않은 채 연구에 모든 것을 다 쏟는 것이 그에게는 당연했다.
그렇기에 다시 해가 바뀌어 그녀와 결혼 생활을 한 지 9년째가 되었을 때.
“자꾸 식사를 제대로 안 하신다고 들었어요. 그게 점점 더 심해진다고 들었는데.”
블란이 건네는 질문에 그록은 담담하게 답할 수 있었다.
“연구의 성과가 보이오.”
그는 그녀를 보며 확신 어린 눈빛으로 말했다.
“당신이 나를 후원한다고 했던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곧 볼 수 있을 거요. 그러니 지금은 시간을 최대한 줄여서 연구에 매진해야 할 때라고 생각하오.”
그록은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블란의 눈동자를 보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조금만 더 기다리시오. 내가 곧 결과를 가져다주리다.”
블란의 얼굴이 묘하게 찡그려졌다. 그녀는 작게 미소를 그리며 물었다.
“정말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되는 건가요?”
“그렇소.”
그록은 확신했다.
이제 조금만 더 연구를 하면 모든 것이, 자신의 생각한 가설들이 맞음을 밝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연구자는 자신의 후원자에게 한 가지 꼭 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것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보여주어 후원자에게 보답하는 것.
그 일이 중요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만약 지금 세운 가설이 맞다면. 연구자로서의 책임뿐만이 아니라,
그록은 블란에게 제대로 후원에 대한 보답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록과 블란의 시선이 마주했다.
늘 그렇듯 둘이 가지는 차를 마시는 시간이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그 쓴 향이 나는 알트 차의 향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독한 약초의 향과 블란의 몸에서 나는 냄새로 방 안이 가득 찼다는 것. 그리고 블란의 몸이 더욱더 말랐다는 점일 것이다.
그리고 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이 시간은 그록이 알트 차를 마시는 시간이라는 점과 블란이 손을 잡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록이 그녀의 손을 잡고 있다는 것뿐이었다.
그는 그녀를 보며 확신에 가득 찬 어조로 말했다.
“그렇소.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되오.”
그 말에 블란은 작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그록은 다시 시계를 보았고 시간이 끝났음을 알아차리고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이만 가겠소.”
“그…….”
걸음을 옮기려던 그록은 평소와 다른 반응에 블란을 바라봤다. 블란은 늘 그래왔듯이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그, 연구를 하러 가, 가야 하나요?”
뭘 그리 당연한 질문을.
그록은 블란의 질문에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답했다.
“당연하지 않겠소.”
“……그렇군요.”
살짝 웃어 보이는 블란과 잠시 시선을 마주하고선 그록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흐음.
왠지 찝찝한 느낌에 그록은 잠시 문 앞에서 멈췄지만 이내 오늘 할 연구를 떠올리며 문고리를 돌렸다.
전보다 흐려진 표정의 집사와 웃고 있지만 체념의 빛이 보이는 카만 의원에게 인사를 한 후 그록은 걸음을 옮겼다.
조금만 더!
연구실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점점 더 빨라졌다.
***
한참 입을 달싹이던 그록은 블란을 향해 물었다.
그로선 자신의 이 부탁이 정당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왜 이렇게 말을 꺼내기 힘든지를 몰랐다.
“블란.”
이제는 대답도 하기 힘든 그녀인지라 눈빛으로 그록에게 답을 했다.
왜 그러시나요?
그녀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그록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눈빛을 보며 몇 번 입술을 달싹이던 그는 블란을 향해 말했다.
“연구의 결과가 얼마 남지 않았소. 마지막 문턱만 넘으면. 제대로 된 마지막 가공 방법만 찾으면 아주 길이 남을 약이 탄생할 것 같소.”
그는 자신을 바라보는 블란을 향해 말을 이었다.
“그래서 그런데.”
이제 그들의 결혼 생활이 시작된 지 10년째가 되어가고 있었다. 앞으로 두 달 뒤. 그날이 그록과 블란이 결혼을 한지 십 년이 되는 날이었다. 그날을 그록은 기억하고 있었다.
십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연구자로서 후원자에게 어떠한 결과도 보여주지 못했다니!
그 사실은 그록이 스스로에게 화가 나도록 만들었고 또한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지금은 시간이 중요했다.
“괜찮다면 당분간 이 시간을 잠시 뒤로 미루어도 되겠소?”
그록은 그녀를 만나면 늘 가져왔던 이 차 마시는 시간을 줄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이미 나머지 줄일 수 있는 시간은 모두 줄여왔다.
그는 블란을 바라봤다.
가만히 그록의 얼굴 위를 보는 그녀의 눈동자가 어디를 보는 것인지 그록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의 시선이 다시 그록의 눈동자로 향했을 때.
“그럼요. 되죠.”
그록은 잡은 블란의 손을 살짝 힘주어 다시 잡았다. 블란은 살짝 미소를 띠며 덧붙였다.
“기다릴 수 있어요.”
그록은 그녀의 눈동자를 보며 답했다.
“고맙소.”
그녀의 손을 놓으며 그록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직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알트 차가 탁자 위에 올려져 있었지만 그록에게는 시간이 없었다.
연구자로서 더 이상 성과를 보여주지 못하는 그런 불성실한 모습을 보여줄 수 없었다.
자신의 유일한 후원자에게.
“그럼 지금 가겠소.”
고개를 끄덕이는 블란을 본 뒤 그록은 뒤돌아 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 앞에 서게 되었을 때. 그록은 문고리를 잡았다가 다시 놓으며 살짝 뒤돌았다.
자신을 보고 있는 블란의 눈동자가 보였다. 그 눈동자를 향해 그록은 말했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분명히 결과를 가져다주겠소.”
괜히 그록은 하고픈 말이 많아졌다. 그는 여전히 문 앞에 선 채 말을 이었다.
“그, 연구자로서 내 유일한 후원자에게 성과를 보여주지 못해서 미안하오.”
아니에요.
블란의 눈동자가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들려왔다. 신기하게도.
“하지만 이번에는 곧 보여주겠소.”
그록은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는 천장을 보며 입을 열었다 닫았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말했다.
“두 달 뒤가 결혼기념일 10주년이라고 알고 있소.”
블란의 눈동자가 잠시 커졌지만 그록은 천장을 보느라 알지 못했다. 그는 말을 이었다.
“그때 안에는 반드시 가져오겠소.”
이상하게도 그록은 블란을 보기가 불편해 천장에서 바로 문으로 시선을 돌리고는 문고리를 돌렸다.
그러자 묘한 표정의 카만 의원이 보였다.
시간이 없어 짧게 목례만 하는 그록을 향해 카만이 말했다. 이제 그는 그록을 향해 편하게 말할 수 있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너무 무리한 연구를 하는 게 아닌가 싶은데.”
“아닙니다.”
그록의 바로 이어진 답에 카만 의원은 웃는지 혹은 찡그리는지 알 수 없는 묘한 미소를 입가에 띠며 말했다.
“자네나 블란 아가씨나 몰골이 닮았구만. 부부라고 어째 똑같이,”
더 이상 카만은 말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그록은 무심하게 이를 보다가 고개를 숙인 후 걸음을 옮겼다.
그런 그의 등을 향해 카만이 말했다.
“끼니는 제때 챙겨 먹고 해. 몰골이 꼭 죽기 전의 환자 같구만.”
그록은 그 말에 답하지 않았다. 들리지 않았으니까.
그는 빠르게 연구실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두 달. 한 번 말한 것은 꼭 지켜야 하는 것이 연구자의 기본 자세였으며 그것이야말로 긍지였다.
그록은 연구실로 들어가 제일 먼저 시계를 치웠다.
이제 더 이상 시간을 자주 볼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난 후 그록은 본격적인 연구에 들어갔다.
이제 마지막. 십 년 가까이 이어오던 연구의 마지막 높은 산 하나만이 남았다.
똑똑똑.
“주인님. 저녁 식사 시간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똑똑똑.
“주인님. 아침 식사 시간입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똑똑똑.
“주인님. 문 앞에 한 명을 대기시켜둘 테니 식사를 하시려면 말씀해주시면 됩니다.”
똑똑똑.
“주인님. 어제 지시하신 대로 오늘부터 보고 드립니다. 이제 29일 남았습니다.”
마지막 산은, 관문은 예상대로 높았다.
하지만,
똑똑똑.
예상과 다른 것이 있었다.
“주인님. 이제 9일 남았습니다.”
시간은 생각보다 더 빠르게 흘러갔다.
그록은 9일 남았다는 말에 순간 움직임을 멈췄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침이 밝아와 있었다. 분명 방금 전까지만 해도 밤이었던 것 같은데.
그는 손을 대충 뻗어 식어서 딱딱해진 빵을 베어 물었다.
9일.
결혼기념일 10주년까지 남은 시간이자,
그록이 연구자로서 자신의 긍지를 지키기로 약속한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록은 처음으로 짙은 패배감에 눈을 감았다.
마지막.
마지막!
쾅.
그록은 손에 빵을 든 그대로 책상을 내리쳤다.
마지막으로 쉴단의 효과를 극대화 시킬 제대로 된 사용법의 마지막 단추가 해결되지 않았다. 이것만 해결한다면! 그렇다면!
그록은 차오르는 패배감을 다시 속으로 삼켰다. 그는 떠오르는 해를 보며 다시 실험에 들어갔다.
이제 정말 시간이 얼마 없었다.
9일. 그 시간을 떠올리며 그록은 떨리는 손에 애써 힘을 주었다.
하지만,
시간은 정말로 얼마 없었다.
아니, 기다려주지 않았다.
똑똑똑!
똑똑똑!
똑똑똑똑똑!
평소와 달리 조급한 노크 소리에 그록은 창밖을 바라봤다. 어두운 밤이었다.
뭐지?
아직 7일이 남았는데?
그 순간,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 주인님! 어서 마님께!”
절규와 같은 집사의 목소리였다. 순간 그록은 움직임을 멈췄다. 그는 자신의 손에 들린 쉴단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벌컥!
문이 열렸다. 집사는 처음으로 허락도 없이 그록의 연구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 잠시 그는 말을 잃었다.
엉망인 몰골의 그록이 보였다. 쉴단을 손에 든 채 실핏줄이 터져 시뻘게진 눈동자의 그록을 향해 집사는 입을 열었다.
“마님께서 찾으십니다.”
그록은 알 수 없는 예감을 느꼈다. 그는 손에 들린 쉴단을 멍하니 보다가 끓고 있는 용액의 불을 껐다. 이 모든 것이 아주 조용히 그리고 담담하게 이루어졌다.
그러고는 그록은 쉴단을 실험대 위에 올려두었다. 천천히 그의 입이 열렸다.
“그렇군. 가지.”
7일.
그록의 연구에 주어진 시간이 끝이 나기 전,
그보다 먼저 블란에게 주어진 시간의 끝이 먼저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