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개 같은 사이-75화 (75/79)

75화.

“전무님, 말려야 하는 거 아닙니까?”

경식은 경악하며 얼굴을 붉혔다. 교진은 보수적인 아버지의 어깨를 두드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자신이야 워낙 숨 쉬듯이 본 광경이라 놀랍지는 않지만…….

“사국현 회장님! 따님과 서도운 전무님이 정말 연인 사이가 맞습니까?”

“한 말씀 해 주시죠! 두 분의 관계를 알고 계셔서, 서도운 전무님을 호적에 올리시지 않은 것입니까!”

“조금 전 키스 또한 사전에 협의가 이뤄진 대본입니까? 그것이 알고 싶습니다!”

이거야 원, 하이에나들에게 나 좀 물어 채 가시오, 하며 떡밥을 뿌린 게 아닌가. 두 사람이 연회장을 떠나자 기자들은 좀비처럼 국현의 주위를 에워쌌다.

민첩한 경호원들이 얼른 그들의 앞을 막아섰다. 국현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잡고 인상을 찌푸렸다.

“말씀하시면 당장에라도 가서 두 분을 데리고 오겠습니다.”

경식은 부모의 마음으로 국현에게 다짐했다. 두 눈을 지그시 감았다가 뜬 국현은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냥 둬.”

“네? 하지만, 지금…….”

“여기서 내가 말리면 제인이 이미지는 물론이고, 도운이 저 녀석만 난봉꾼 돼.”

국현은 두 사람이 사라진 연회장 입구를 바라보며 혀를 찼다. 저 대책 없는 녀석. 제발 오늘만큼은 티 내지 말고, 얌전히 좀 있으라니까.

제한제약 막내아들이 제인에게 꼬리 치는 것을 보고 국현도 그만 꼭지가 돌 뻔했다. 어디 감히 약쟁이 새끼가 순진한 내 딸한테 살살거려.

국현이 그 열 받음에 가면을 덧댈 수 있는 사람이라면, 도운은 행동으로 보이는 원초적인 본능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더 보란 듯이 제인에게 키스한 것일 테고, 지금도 그에 대한 후회는 없겠지. 한마디로 잘 참고 있던 서도운의 코털을 건드린 건 제한제약 막내아들이라는 것이다.

“이런 감방의 콩밥도 아까운 놈.”

제인에게 집적거리지만 않았다면 도운은 저 스스로 목줄을 차고 있었을 터다. 제 말이라면 몰라도 제인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애니까.

“사국현 회장님! 앞으로 두 사람의 향후 계획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승계 문제는 물론, 손제인 씨는 아직 임시 상무인 거로 알고 있는데요! 서도운 전무의 부인이 되는 겁니까?”

기자 한 명이 큰 소리로 질문하자 국현은 판단을 내렸다. 그래, 서도운 이놈아. 이게 다 네가 흩뿌린 흔적이다. 치우는 건 너희가 치워야 한다.

“배 실장.”

“예.”

경식은 살짝 묵례하며 귀를 기울였다. 국현은 잠시 말을 멈춘 뒤 고개를 끄덕였다.

“제인이 경영 수업, 일정 조금만 앞당기지. 캐나다에 연락 넣어 놔.”

* * *

입술이 맞붙어 흘러나오는 숨결 사이로 웅웅, 진동이 울렸다. 도운의 슈트 재킷을 타고 흐르는 진동에 제인은 흠칫 몸을 떨었다.

미약한 반응을 눈치챈 도운은 얼른 팔을 뒤로해 재킷을 벗었다. 그리고 몸이 움직일수록 턱을 앞으로 내밀며 절대 제인의 입술을 놓아주지 않았다.

재킷은 이제 호텔 러그 위에 툭 떨어져 진동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어쩌면 전화가 꺼졌을 수도 있다.

살짝 눈을 뜬 제인은 다시금 울리는 도운의 핸드폰 액정을 보았다.

<교진이>

그러자 집중하라는 듯, 도운이 핸드폰 위에 셔츠를 떨어뜨렸다. 언제 봐도 조각상 같은 몸이다. 벨트까지 푼 도운은 한껏 치솟은 중심을 거리낌 없이 보여 주었다.

저 몸이 주는 쾌감을 아는 제인은 입안이 말라 가는 걸 느꼈다.

“우리 제대로 사고 쳤어.”

다시 느긋하게 상체를 숙인 도운은 아직 드레스를 벗지 않은 제인의 목덜미에 입술을 촉, 촉 붙였다. 오프 숄더 드레스라 도운에게는 참 흔적을 남기기 좋은 새하얀 설원 같았다.

“네가 아니라 내가. 여긴 우리가 처음 사고 쳤던 장소고.”

긴 드레스 치맛자락을 쥐어 올린 도운은 그녀의 허벅지가 반이나 드러나자 은밀한 곳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보이진 않지만 생경하게 느껴지는 움직임에 제인은 흣, 하며 신음을 삼켰다.

도운 또한 보지 않아도 손끝으로 제인이 가장 예민하게 느끼는 부분을 거침없이 매만졌다.

“참아?”

내가 이러는데도? 좋아 죽으려고 하면서도?

짓궂음이 가득한 말투에 제인은 두 눈을 꾹 감았다. 집요한 시선을 마주할 수 없었다. 피부 곳곳에 닿아 입안에 굴리는 축축함을 견딜 수 없었다. 제인은 손등을 입가로 막았다.

“어쭈.”

피식 웃은 도운은 최후의 수단을 썼다. 제인의 옷을 끝끝내 벗기지 않은 도운은 그녀의 허벅지 사이로 얼굴을 박았다.

“아! 그거 싫……!”

어, 아, 아아…….

황급히 세운 상체는 다시 풀썩 무너지며 침대에 등이 닿았다. 아예 더 느끼라고 작정했는지 도운의 얼굴은 드레스 안으로 종적을 감추어 버렸다.

“달아.”

습한 숨결이 젖은 곳에 스쳤다. 제인은 허리를 뒤틀며 허벅지를 떨었다. 제발 그런 말 좀 하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데.

벌어진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건 날카로운 교성이었다. 끙끙 앓기도 하다가 도운의 이름을 부르며 애원했다가 어느 순간엔 낯선 목소리로 괴상한 소리를 내었다.

고개를 젖힌 뒤에야 제인의 눈에 이 호텔 방이 보였다. 서도운이 말한 처음 사고를 쳤던 이곳. 이곳은 도운의 취임식 날, 함께 뜨거운 밤을 보냈던 날이다.

아, 아아. 그때도 이런 소리를 냈던 것 같은데. 끊임없이 목을 축인 도운은 제인의 허리가 붕 뜬 뒤에야 드레스 사이에서 나왔다.

그는 곧장 드레스를 제인의 엉덩이까지 올렸다.

“이제 우릴 가로막을 사람은 아무도 없어.”

콘돔을 차는 도운의 손은 익숙했다. 제인은 눈을 질끈 감고 허리에 힘을 주었다. 다가올 감각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번엔 사라지면 안 돼.”

타오르는 시선을 맞춘 채 도운은 자신의 중심을 밀어 넣었다. 아랫배가 빠듯하게 조이는 느낌에 제인은 도운의 목을 와락 감싸 안았다.

그 밤에 도운은 평소보다 더 격렬했다.

* * *

다음 날, 포털 사이트가 난리 나는 것은 당연했다. 머리 검은 짐승의 배신이라느니, 앞으로 상속권은 누구에게 주어지냐느니.

요즘 들어 두통을 안고 사는 국현은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 오른쪽에 앉은 도운은 기사의 주인공이 아닌 것처럼 유유자적하게 다리를 꼬았다.

“이제 결혼 발표만 내면 되겠네요.”

태블릿으로 기사를 휙휙 넘겨 보는 손가락은 성의가 없었다. 오히려 들뜬 목소리로 입꼬리를 올리니 국현은 열이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회사가 장난이야? 여기가 너희들 놀이터냐고.”

결국, 국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제인은 면목이 없었다.

“죄송해요, 아빠.”

“회장님이라고 해. 여기선 부녀지간도 필요 없으니까.”

“네, 회장님. 죄송합니다.”

국현의 단호한 일갈에 제인은 빠르게 시정했다. 단 한 번도 제인을 혼내 본 적 없는 국현이지만, 앞으로는 그럴 권한이 충분히 있었다.

“에이. 우리 회장님 딸 빼앗겼다고 단단히 삐지셨네.”

“네가 힘을 쭉쭉 뺏는 거야, 네가!”

국현은 복장이 터져 한숨을 푹 쉬었다.

“뭐가 그리 태평해. 지금 제인이 아직 상무로 자리 잡지도 않았어. 이러나저러나 말 많은데 거기서 너까지 기름 부으면 어쩌자는 거야.”

“파격적이긴 했지만, 우리 사이를 언제까지 감추고 있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나중에 기자들이 꼬리 밟고 알아내면 지금보다 더 큰 꼬리표와 수식어가 붙었을 테니까요.”

키스는 정말 열 받아 한 행위이긴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최고의 장면이었다. 제 여자를 건드리는 놈 앞에서 손제인의 연인임을 밝힌다.

그것 외에 두 사람의 사이를 확정 짓는 게 무엇이 있을까. 나중에 우리 연애해요, 하고 밝혀 봤자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느니 서도운의 단물만 빨아먹을 생각이라느니 하며 오히려 제인에 대한 수식어만 더 안 좋아질 게 뻔했다.

“전 후회하지 않습니다, 회장님.”

남자가 돼서 본인 여자 지킨다는데. 도운은 고개를 기울이며 웃었다. 제인은 눈치를 주듯 그 옆에서 그의 허벅지를 검지로 쿡 찍었다.

“하는 수 없다.”

국현의 음성에 모두 그를 바라보았다. 국현은 제인과 도운을 한 번씩 응시하다가 말했다.

“제인이 너, 곧바로 캐나다로 가.”

“네? 왜 그렇게 급작스럽게…….”

제인이 말끝을 흐렸다. 뭔가 짐작한 도운은 허리를 세웠지만, 국현의 말이 더 빨랐다.

“1년만 다녀와서 자리 잡고 결혼을 하든 지지고 볶든 너희 마음대로 하라는 소리야.”

갑작스러운 통보에 제인과 도운이 고개를 돌렸다. 해명을 바라는 시선에도 국현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미 제인이 너에게 제안했던 부분이기도 해. 캐나다에 에덴 건셀이 하나 더 있어. 거기서 부딪치고 배우다 보면 실무에 관해 금방 터득하게 되겠지.”

“하지만 아빠, 그건…….”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국현의 입에서 기어코 해외 유학 이야기가 나온 건 전부 그녀와 도운이 공개 연애를 자처했기 때문이다.

“제인이는 뭐. 더 할 이야기라도 있어?”

“……아니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있어도 못 하지. 또 너무 구구절절 맞는 말씀만 하셔서 더더욱.

제인은 국현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다 커서 아빠한테 혼난다는 기분이 들어 국현의 눈을 마주할 수 없었다. 반면 도운은 거리낌 없이 답답하다는 한숨을 소리 내어 뱉어 냈다.

“회장님, 이건 유배나 다름없죠. 겨우 만난 애인을 이렇게 떼어 놓겠다뇨.”

“그럼 네가 가? 이미 경영권 따고, 실무에 참석한 네가 제인이 대신 해외에 갈 거냐고. 그렇게 되면 네가 원하는 결혼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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