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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같은 사이-36화 (36/79)

36화.

국현이 떠난 공기는 다가오는 5월의 봄 햇살과 같은 밀도로 제인의 가슴을 울렸다. 묵직하게 변해 가는 제인이 표정이 보여 도운은 질투심이 차올랐다.

“어딜.”

지금껏 키워 준 국현에게는 미안하지만, 손제인은 제 것이다. 키스에 오물거리며 열중하던 표정이 알 듯 말 듯 변하는 건 용납하지 못한다.

“하지 말아요!”

“안 해. 넣지도 않을 거고, 결혼도 안 할 거야.”

도운의 손짓 한 번에 벽을 보고 선 제인의 눈에 수건이 발아래로 떨어지는 게 보였다. 제인은 도운이 뭘 하려는지 알 것 같아 두 눈을 꾹 감았다.

“급한 불은 꺼야지.”

“읏…….”

“다른 것보다도 얘를 재워야 할 것 같다.”

키득거리며 웃은 도운은 제인의 목을 쥐었다. 남은 한 손은 은밀하게 내려와 제인의 바지를 풀어 내렸다. 순식간에 맨다리가 드러난 제인의 두 허벅지 사이엔 저도 모르는 힘이 콱 실렸다.

하지는 않지만, 하고는 있다. 등 뒤에서 도운의 느릿한 움직임이 느껴졌다. 꺼졌던 야릇함이 피어오르자 제인은 입 안으로 칭얼거렸다.

“천천히, 흣, 한다고 했으면서.”

“그래서 안 넣고 있잖아, 제인아.”

도운은 제인의 빨개진 귓불을 잘근잘근 물었다. 동시에 허벅지 안쪽을 치닫던 힘이 퍽, 하며 격하게 밀려왔다.

“하아…….”

기지개를 켜는 듯한 나른한 숨결이 목덜미로 계속해서 떨어진다. 제인은 그 순간까지도 눈을 뜰 수 없었다.

“샤워 다시 해야겠네.”

그 의미가 무슨 뜻인지 알아서.

제인은 도운이 몸을 다시 돌린 뒤 연신 입맞춤을 퍼붓고 흔적이 안 보이게 정리하는 순간까지도 눈을 뜨지 못했다.

* * *

오늘 출근은 최대한 늦장을 부렸다. 초코가 아침 산책을 오매불망 기다리고 있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각하지 않을 만큼의 시간에 일어나 씻고, 아침을 간단히 먹고, 카페에 들러 체리 에이드도 주문했다.

그런데도 시간은 남았다. 사실 지각을 한다고 해서 도운을 피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어제의 행위가 없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전 전무님이 결혼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심채연이 쏘아 올린 충동은 그야말로 미친 짓으로 이어졌다. 서도운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는 열망과 막 샤워를 하고 나온 서도운의 야릇한 분위기가 한데 버무려져 또 난잡하게 뒤엉킬 뻔했다.

그것도 집무실에서, 벽 하나를 사이에 둔 자신의 친부 몰래.

‘샌드위치 잘 먹었다고 전해 줘라.’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제인은 국현의 음성을 되새겼다. 무뚝뚝하지만 멋쩍어하시던 아빠.

투명한 빨대를 베어 문 제인의 입술에 희미한 웃음이 번졌다. 입 안에 퍼지는 달콤함과 새빨간 색깔의 에이드는 어제 제인이 느낀 두 사람과 매우 흡사했다.

나쁜 짓을 하며 도둑질해 들은 사국현의 어색한 진심은 제인에게 새빨간 장작불 같은 따뜻함을 주었다. 또 서도운의 발칙한 입술과 늠름한 몸은 그녀의 심장도, 피부도 새빨갛게 물들였다.

미묘한 잔떨림이 자꾸만 심장을 지배한다. 제인은 자신의 데스크 위에 가방과 음료수를 올려놓았다.

“뻔뻔해질 순 없겠지만 일은 해야겠지.”

애써 내린 결론은 타이밍 좋게 열리는 집무실 문소리에 흐트러졌다. 흠칫 어깨를 떤 제인은 얼른 뒤를 돌아보았다.

“제인 씨, 좋은 아침. 오늘은 좀 늦게 오셨네요?”

교진은 제인을 향해 한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네, 오늘 늦잠을 좀 자서요.”

거짓말. 교진의 옆에선 도운이 매끈한 입술로 소리 없는 말을 덧그렸다. 역시 뻔뻔해지는 건 체질이 아니다. 시선을 피해도 도운은 고분고분 넘어가 주는 성미가 아니었다.

“그래? 나는 되게 잘 잤는데.”

“너야 전날에 밤새워서 그런 거고.”

“그런가. 묵은 게 제대로 풀렸나.”

은근한 시선이 제인에게 닿는다. 눈을 굴린 제인은 애써 이 상황의 돌파구를 찾았다.

“제가 오늘 오는 길에 아침 기사를 확인해 봤는데요, 여전히 에덴 호텔의 떨어진 주식과 주가 실적에 관한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안 그래도 큰일이에요. 일주일 내로 주식 복구하지 않으면 투자자들이 손을 뗄 수도 있고, 평판이 안 좋아질 수도 있으니.”

교진 덕분에 서도운의 짓궂음을 수월히 피해 갈 수 있었다. 제인은 진지하게 물었다.

“제가 잘 몰라서 그러는데 떨어진 주식이 다시 회복되거나 상승할 수 있나요?”

도운도 기꺼이 그 장단에 맞춰 주었다.

“그 짧은 시간에 올리려면 내가 하루에 기부를 몇 억은 해야겠지. 근데 그것도 너무 속 보이는 수법이라 오늘은 네가 좀 고생해 줘야겠어.”

“말씀하세요.”

제인이 도운에게 몸을 틀자 거리가 좁혀졌다. 동시에 코끝에 닿는 달큼한 향이 도운을 자극했다.

“호텔 바로 옆 면세점 알지?”

“네.”

아, 또 난다.

“내가 에덴에 들어오기 위해 시작한 첫 영업 방침이야. 그쪽은 계속 호황 추세니까 사진 찍어서 홍보 기사 좀 올려 줬으면 해.”

“기존 기사와 최대한 겹치지 않도록 시도해 보겠습니다.”

그것도 손제인의 입 속에서.

잠시 제인의 어깨 너머를 바라본 도운은 그녀를 향해 상체를 기울였다. 제인이 숨을 훅 들이쉬자 도운은 책상 위에 올려진 잔을 들어 올렸다.

“체리 에이드 먹었어?”

기울인 고개는 정확히 제인의 목덜미로 향했다. 콧날이 턱에 부딪힐 것 같아 제인은 입을 거의 벌리지 않다시피 해 대답했다.

“네.”

“어쩐지.”

“…….”

“어제처럼 물고 빨고 싶더라니.”

교진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속삭인 음성엔 해소되지 않은 욕구가 가득했다. 반면 다시 자세를 세우고 제인의 뺨을 쓰다듬는 손등은 온화하기만 하다.

“나 오늘 회의 늦어질 거야. 밥 챙겨 먹고, 잘 놀고 있어. 알았지?”

저에게만 다정한 남자의 행동에 제인은 뜨거워지는 뺨을 막을 수 없었다.

* * *

도운이 떠나고, 그제야 제인은 그가 시키고 간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탁, 가볍게 누르는 엔터 소리에 제인의 발밑에 있던 초코가 헐레벌떡 일어난다.

“컹!”

산책하러 가는 거야?

쫑긋쫑긋 올라간 귀에는 기대감이 가득하다. 그 귀여운 모습에 제인은 하는 수 없이 핸드폰을 들었다.

“잠깐만. 아빠한테 물어볼게.”

도운과 교진은 참석한 회의에서 여태껏 돌아오지 않았다. 산책도 못 시켜 주고 홀로 집무실에 있는 초코가 마음에 걸려 제인은 초코를 제 옆으로 오게 했다.

서도그. 그렇게 저장한 도운에게 문자를 하니 입꼬리가 간질거린다.

[지금 면세점 내려갈 건데, 초코 입구 직원한테 잠깐 맡겨도 될까요? 사진만 찍고 바로 산책하려고요.]

[교진이 시켜서 연락해 둘게.]

상당히 빠른 답장에 제인은 잠시 눈을 깜빡였다. 마치 연락을 기다리기라도 한 것 같다. 어쨌든 허락을 받은 제인은 도운의 집무실로 가 초코의 목줄을 찾았다. 그리고 보게 됐다.

‘찾았다.’

어제처럼 수북하게 쌓인 서류의 가장 끄트머리에 적힌 낙서. 결혼, 주식 그리고 기억법. 기억법이란 글자 테두리엔 동그라미가 유독 많이 그려져 있었다.

“기억법을 찾았다는 건가?”

밤을 지새우면서 결국?

“컹컹!”

묘한 환희는 초코의 성화로 갈무리됐다. 기분 좋게 초코의 목줄을 채운 제인은 1층 로비로 내려갔다. 내딛는 걸음이 어쩐지 가뿐하고 상쾌하다.

“초코,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금방 일하고 올게.”

초코를 입구 밖에 있는 직원에게 맡긴 제인은 면세점으로 향했다. 면세점 역시 에덴 호텔과 마찬가지로 화려한 황금빛 조명으로 반짝거려 티끌 하나 없는 웅장한 위엄이 느껴졌다.

면세점의 전체적인 인테리어와 주요 상품을 집중적으로 찍고 있을 때였다. 핸드폰 진동이 울렸다.

서도운인가? 곧 제인은 낯설지만 익숙한 번호를 보며 표정을 굳혔다.

잠시 고민한 제인은 결국 받는 것을 택했다.

“왜.”

-기껏 서도운 선택해서 한다는 일이 개 산책이니?

“너 나 뒷조사도 해?”

톡 쏘아 대는 음성을 듣자니 소름이 돋았다. 제인은 의식적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어딘가에서 심채연이 지켜보고 있는 게 분명했다.

-선택권을 줄게. 한 시간 안으로 나한테 와.

전화는 그렇게 끊겼다. 독단적이고, 이기적이며 마치 그녀가 자신을 버렸다는 식으로 폭력적인 책임 전가까지 하면서.

좋았던 기분을 심채연이 또 망친다. 하지만 망가지도록 둘 만큼 제인은 마음이 여리지 않았다. 역시나 서도운을 빼앗기기 싫어서 자극하는 거겠지.

확신한 제인은 다시 카메라를 들어 사진을 찍었다. 번쩍번쩍 터지는 플래시가 심채연의 잔상을 감췄다.

* * *

한 시간 하고도 30분이 지났다. 그건 곧 추가 시간을 더 준 채연의 관용과 인내심이 바닥이 났다는 뜻과 일맥상통했다.

“끝까지 서도운을 선택한다는 거지…….”

채연은 손등이 창백해지도록 주먹을 쥐었다. 손제인은 정해진 시간마다 개 산책을 시킨다고 했다. 정말이지 하찮아서 화가 났다.

기어이 서도운한테 가서 하는 일이라곤 냄새나는 개를 산책시키는 거라니. 생략 평온한 삶을 사는 손제인이 괘씸했다. 정작 본인이 버린 저에 대해 반성은 하지도 않으면서.

“기어코 나를 배신하고.”

에덴이라는 동산 이름 아래에서 제인은 사랑을 선택했다. 그래 놓고 저에겐 혈육으로서의 애정 하나 줄 수 없단 말인가. 흐트러진 호흡을 가다듬은 채연은 원우에게 전화를 걸었다.

“나야.”

-손제인 지금 면세점에서 기사 사진 찍고 있어.

전화를 받은 원우는 감시자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채연은 싸늘하게 읊조렸다.

“나오면 들이박으라고 해.”

오늘은 결혼 이야기를 다시 논하는 에덴과 금도의 자리가 있다. 말이 거창할 뿐이지 결국은 다시 상견례다.

아빠의 도발에 넘어간 사국현은 분명 결혼을 추진할 것이다. 심창진과 사국현 그리고 최연정은 결국 한 명이 죽어야 끝나는 지독한 악연이니까.

“죽지 않을 만큼만, 살짝.”

그 틈에 손제인은 다치는 거다. 자신이 선택한, 사랑하는 서도운이 어쩔 수 없이 결혼을 선택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아무것도 못 하고 전전긍긍 애가 타야 한다.

그리고 제 손으로 버린 나에게 연락해야 한다. 결국, 떠나간 서도운을 보며 제 선택이 잘못됐다는 걸 알고 나를 찾아야 한다. 네게 남은 건 나뿐일 테니까.

“적어도 소중한 무언가가 없어져 봐야 내가 필요하겠지.”

-어떻게 할까.

“시작하라고 해.”

위험한 명령이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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